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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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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소설

숨결
2013년 12월 14일 15시 21분  조회:3450  추천:0  작성자: 넉두리
단편소설
 
숨 결

 
김희수
 
 
그날 아침 공장사람들은 하나, 둘 출근하는 길로 벽보를 둘러쌌다. 홍상철이도 사람들 틈에 끼여 제일 첫머리에 있는 자기의 이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눈살이 찌푸려지고 얼굴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홍동문 이번에도 주력이군. 영광스럽겠네!》
리회계가 상철이의 어깨를 툭툭치며 웃었다. 상철이가 한마디 툭 쏘아주려는데 몇몇 로동자들이 걸어왔다.
《허허, 이번엔 〈앉은 놈〉들이 로동개조를 든든히 하게 됐군!》
《그만큼 편안했으면 내려와 뼈다구를 좀 놀려보는것도 마땅하지!》
《제길, 한달이 아니라 한 일년 붙들어뒀으면 좋겠는걸!》
공장은 추석월병철이면 농촌의 모내기철처럼 분망하다. 추석을 한달 앞두고 돌격적으로 월병생산에 들어서는데 이때면 《앉은 놈》들도 절반은 의자에서 엉뎅이를 털고 일어나 의무로동을 해야 한다. 이런 일은 두해에 한번밖에 없으나 (워낙 한해에 한번씩인데 륜번으로 사람을 바꾸다보니 평균 한사람에게 두해에 한번씩 차례지는 셈이다.)앉은 놈들은 거의 모두가 직장에 내려와 밀가루먼지를 뒤집어쓰기 싫어 병을 핑계댄다든가 집에 무슨 딱한 사정이 있다든가 하며 구실을 만들어 가지고 몸을 빼려고 한다. 그래서 해마다 제1, 2, 3 《쏘파분》들께서 토론하여 명단을 작성했던것이다.
이런 연고로 홍상철이는 노기등등하여 《제일쏘파분》을 찾아가 따지고들었다.
《전 작년에 내려갔는데 왜 또 내려가라는겁니까?》
《제1일쏘파분》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띄우고 상철이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사실 나도 이번엔 홍회계를 내려보내지 않으려고 했소. 그런데 직장에서 홍회계의 이름을 특별히 찍어서 요구했소. 그러니 고생스럽지만 좀 수고해주오. 허허허!》
직장에서 홍상철의 이름을 찍어 요구했다는것은 사실이였다. 홍상철이가 어찌나 몸을 내번지고 일을 잘했던지 이번해에는 여러 작업반장들이 서로 자기반조에 보내달라고 다투어 요구했던것이다.
《전 제가 내려가는데 불만이 있어 그러는게 아닙니다. 왜 리회계같은 사람은 몇년째 한번도 내려가지 않습니까?》
《허허참, 모든 일이 어떻게 천편일률로 되겠소. 홍회계, 한달만 수고해주오!》
말해봤자 헛수고였다. 이런 대답이 나올 줄 미리 알고있은 홍상철이는 구태여 더 따지지 않고 공장장사무실을 나와버렸다.
누가 그랬는지 공장사람들을 두패로 나누어 《앉은 놈》과 《선놈》으로 갈라놓았다. 《앉은 놈》이란 의자가 차례진 지체높은 분들을 가리키고 《선놈》이란 직장에서 일하는 로동자들을 말하는것이다. 《앉은 놈》을 또 쏘파, 나무의자, 절반의자로 세등급을 내였다. 쏘파에 의젓이 앉은 분들은 상등분들이고 나무의자에 편안히 앉은 분들은 중등분들이니 절반의자에 쪼크리고 앉은 분들은 하등분들이라 해야겠다.
그런데 하등분들을 어째서 절반의자라고 하는가? 반쪽의자를 깔고 둘이서 한의자에 엉뎅이를 붙이고 앉는다는 뜻인가? 아니, 하등분들도 중등분들과 마찬가지로 나무의자에 앉아 사무를 본다. 다르다면 상등쏘파분들의 지시를 받는다든가 하층 선놈들의 부름을 받는다든가 할 때면 즉시로 의자에서 엉뎅이를 털고 일어나 《앞으로 갓!》을 해야 하는것이다.
절반의자는 전공과 접수실인원 그리고 창고보관원을 례로 들수 있다. 전공은 말로는 절반의자라고 하지만 기실 위세를 부리는 면에서나 자기 배를 채우는 면에서나 모두 나무의자들보다 나은것이다. 접수실인원은 비록 지위면에서 창고보관원만 못하지만 편안한 일자리만 탐내는 공장사람들은 문지기라고 천하게 보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 나무의자들도 그 자리를 탐내는것이다. 그러니 절반의자에서도 창고보관원이 꼴찌인것이다.
공장에는 네개의 창고에 보관원 넷이 있다. 철물교전류창고, 포장물창고, 제품창고, 원료창고 이 네개의 창고중에서 최령감이 맡았던 원료창고의 일이 제일 어지럽고 힘들다. 그래서 공장사람들은 최령감을 《말석령감》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그가 퇴직하여 잠시 그 말석의자가 비여있다.
홍상철이는 공장에서 문화정도가 제일 높은 《1등수재》이다. 그는 공장에서 유일한 중등전문학교졸업생인데 자습하여 대학본과졸업증서까지 탔었다. 홍상철이가 있는 재무과에서는 과장자리에 앉아있던 분이 관계망을 통해 모 은행으로 뚫고 들어가는 바람에 잠시 그 과장자리가 비여있었다. 도리대로 말한다면 이 자리는 응당 주관회계인 홍상철에게 차례져야 할것이나 고중졸업생인 리회계에게 이 자리가 차례진다는 소문이 떠돌고있었다.
알만한 사람들은 홍상철이가 《제1쏘파분》의 눈에 난것을 다 알고있다. 홍상철이가 경제를 틀어쥐고있는데서 가끔 모순이 생기게 되였다. 《제1쏘파분》께서 이렇게 하라하면 고분고분 그대로 해야겠는데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고 홍상철이는 이렇게 하면 좋지 않으니 저렇게 하는게 어떻겠냐 하면서 제 의견을 내놓는가 하면 이건 절대로 이렇게 할수 없다고 외고집을 부리기까지 하였다.
리회계가 찦차를 사자는 제의는 《제1쏘파분》의 지시를 받고 내놓은것인데 홍상철이는 찦차를 사는 나쁜 점에 대해 열가지로 렬거하면서 견결히 막아나섰고 그대신 공장운영에 리로운 트럭을 사야한다고 손을 흔들어댔다. 그래서 《제1쏘파분》께서 찦차를 사는 일을 뒤로 미루었으나 이 일로 하여 홍상철이는 리회계와 《제1쏘파분》의 눈에 나게 되였다.
공장에는 원래 생산직장마다 남자가 희소했는데 홍상철이가 내려간 오춘화작업반에는 남자라곤 한사람도 없는 《랑자군》반이였다. 게다가 그와 함께 내려간 세명의 《앉은 놈》도 녀자여서 그가 유일한 남자였다. 마침 그의 이름이 영화 《홍색랑자군》에서 나오는 당대표 홍상청이와 비스했기에 누군가 그에게 《당대표》란 별명을 달아주었다.
《당대표》가 《랑자군》을 거느리고 창고에 가서 원료를 타내올 때는 볼만했다. 사탕가루와 밀가루포대를 가득 실은 밀차를 뒤에서 숱한 랑자군들이 밀고 앞에서는 《당대표》가 혼자 끌고 간다. 그때면 직장에 내려가지 않은 몇몇 《앉은 놈》들이 그늘밑에 앉아서 《샹챈진! 썅챈진!》하고 《홍색랑자군》의 행진곡을 부르며 《당대표》를 골려주는데 그중에서도 리회계의 목소리가 제일 높았다.
《어이, 〈당대표〉! 일 잘하는데, 하하하!》
《당대표》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앉은 행운아들을 쏘아본다. 그러면 그게 더 재미있다고 그치들은 목청을 높여 소리친다.
《어이, 《당대표》, 오청화가 련애하자고 따르고있네!》
작업반장 오춘화는 자기를 빗대고 놀리는 줄 알고 밀가루를 한웅큼 손에 쥐고 달려가서 그치들에게 밀가루벼락을 안긴다.
《어이쿠, 퉤!퉤!》
얼굴에 밀가루먼지를 푹 뒤집어 쓴 리회계가 우거지상이 되여 툴툴거린다. 그러자 《랑자군》들속에서 일시에 짜그르르 유쾌한 웃음보가 터지고 《앉은 놈》들도 제멋에 배를 끌어안고 웃는다.
《하하하, 오청화가 리과장에게 고급분을 발라줬군!》
한 《앉은 놈》이 손벽을 치며 고아대자 《선놈》들은 그만 어정쩡해졌다. 리과장이라니? 리회계가 언제 과장으로 승급했단말인가? 리회게가 공장에 들어오자마자 회계자리에 앉은것은 그가 배전국 모 과장과 사돈이 되였기때문이다. 몇달전에는 상업국 국장이 후실을 맞아들이는 바람에 뜻밖에도 그분의 처5촌조카가 되는 행운까지 지니게 되였다.
직장에 돌아온 《선놈》들은 분통이 터지여 너도나도 욕설을 퍼부었다.
《정말 기차오! 어째 개뿔도 모르는 리회계를 다 과장을 시켰다오?》
《응당 홍회계가 과장이 돼야지요!》
《그렇지 않구! 그 눈깔 먼 병신들이 인재를 몰라본당이!》
했건만 홍상철이는 말없이 일만 했다.
요란한 반죽기와 전기화로의 동음속에서 떠들썩한 녀인들의 웃음속에서 《당대표》는 기름때를 묻혀가며 한달을 보냈다. 《랑자군》들과 작별의 술을 마신 이튿날 아침, 홍상철이는 사무실계단을 오르다가 웃층에서 내려오는 《제1쏘파분》과 만났다. 《제1쏘파분》은 싱글벙글 웃으며 《당대표》의 어깨를 친절하게 두드렸다.
《허허, 홍동무, 수고했소!》
《수고야 뭘, 응당한 일이지요.》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당대표》의 입가엔 쓰거운 미소가 어려있었다. 그가 재무과로 발길을 옮기려는데 《제1쏘파분》께서 다시 불러세웠다. 돌아다보니 최고분은 웃고있었다.
《홍동무, 한달만 더 수고해야겠소!》
《?》
《홍동무도 알다싶이 한달동안 내처 월병만 생산하다보니 지금 다른 품종의 생산이 딸리고있는 형편이오. 그런데 오춘화작업반엔 남자가 없어 생산에 영향을 받고있소. 맨 녀자들이 100킬로그람짜리 쌀마대랑 어떻게...》
《오, 그래서 저더러 직장에 남으라는겁니까?》
《영 남으라는게 아니오. 다른 남자를 배치하기전까지 홍동무가 좀 수고해달라는거요!》
이리하여 《당대표》는 또다시 《랑자군》들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다시 한달만에 재무과로 들어가니 리과장이 득의에 찬 미소를 짓고있었다.
《오, 홍동무, 무슨 용무가 있소? 아니면 옛 사무실이 그리워...》
《리회계, 난 사업하러 왔소!》
《사업하러 왔다구? 하, 이거 아직 모르고있소? 여긴 홍동무의 자리가 없는데...》
《당대표》가 보니 자기의 자리엔 웬 낯선 녀인이 앉아있었다. 주먹같은 분노가 가슴에서 올라왔다. 재무과를 나온 그는 한달음에 공장장사무실로 달려들어갔다. 마침 쏘파에 비스듬히 앉아 신문을 보고있던 《제1쏘파분》이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오, 홍동무구만! 무슨 일로?...》
아닌보살하는 최고분을 보자 《당대표》의 불끈 틀어쥔 주먹에서 우득우득 소리가 났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오, 그 일말이오? 이거 참, 일이 딱하게 됐소. 재무과에 새로 온 동무는 방역소의…》
《알만합니다!》
《당대표》는 뿌질뿌질 끓어오르는 격분을 가까스로 참았다. 담배불을 붙여무는 《제1쏘파분》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알면 됐소. 재무과엔 인원이 넘어나니까 어쩌겠소. 원료창고의 보관원자리가 비여있는데…》
최고쏘파분은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또 한번 말끝을 흐리였다. 《당대표》는 두눈을 부릅뜨고 최고분을 쏘아보았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춘화작업반에 남자가 없어서 어쩝니까?》
《거긴 보이라공 주충일이를 보내기로 했소.》
《주충일?》
《당대표》는 주충일이를 잊을수 없었다. 지난해의 어느날밤, 그가 간부직일을 설 때였다. 손전지를 켜들고 공장안을 돌아보던 그는 갑자기 배가 아파나 땅바닥에서 대굴대굴 구울었다. 그때 보이라불을 때던 주충일이가 아우성소리를 듣고 달려와서 그를 업고 시병원까지 달려갔다. 말수 적고 수걱수걱 일만하는 주충일, 《당대표》는 이 주충일을 돕고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렇다면 저대신 주충일이한테 창고보관원을 넘겨주십시오. 전 그냥 오춘화작업반에 남겠습니다.》
이렇게 되여 《앉은 놈》이였던 홍상철이는 《선놈》이 되고 《선놈》이였던 주충일이는 《〈앉은 놈》이 되였다.
《말석의자》에 앉기전까지 주충일은 공장사람들에게 《주깍쟁이》로 불리웠다. 주충일이가 성이 주씨인데다가 한심한 깍쟁이라고 그런 별명을 달았는지 아니면 소설 《고옥보》에서 나오는 주깍쟁이를 생각하고 그런 별명을 달았는지 하는건 딱히 알수 없지만 그가 소문난 깍쟁인것만은 사실이였다.
주충일은 술담배와는 인연이 없고 마작이나 트럼프놀음도 깜깜부지이다. 옷도 일년 사시절 늘 그 한벌밖에 없는듯한 초록색 옷에 남색바지를 입고 《해방군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겨울이면 밑에 솜옷을 더 껴입을뿐이다. 그가 그 옷을 20년전 공장에 들어올 때부터 입었다는 사람도 있고 10여년전 장가 들 때부터 입었다는 사람도 있는데 여하튼 그 옷을 오래전부터 입고 다닌것만은 사실이다.
주충일이는 홍상철이가 재무과에서 밀려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쓰려났다. 홍상철이가 자기보다 서너살 더 어리다고 하지만 학식있는 그를 몹시 존경하는터였다. 상철이를 찾아가 한마디 위안이라도 해주고싶었다.
그가 과자직장문어구에 이르렀을 때 안에서 숱한 《선놈》들이 왁작 떠들어대고있었다.
《세상에 어디 이런 법이 있어요! 인재를 밀어내다니? 홍회계가 억울해요!》
《공장이 망하자고 하는 짓이야!》
《홍회계를 밀어내선 안되오! 우리 올라가 해내기오!》
《옳소! 우리 모두 올라가 도리를 따지기오!》
《선놈》들이 벌떼처럼 직장안에서 밀려나왔다. 주총일이는 얼른 한켠에 비켜섰다. 분노에 찬 《선놈》들이 주먹을 휘두르며 사무청사로 돌진하려 할 때 홍상철이가 뒤따라나오며 앞을 막아섰다.
《여러분, 이러지 맙시다! 떠든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전 직장에 내려와 여러분들과 함께 일하는게 더 마음이 편안합니다!》
홍상철이가 이렇게 나오자 선두에 섰던 오춘화는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여럿ㅇ르 이끌고 직장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주충일이는 홍상철의 앞으로 다가서며 그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아쥐였다.
《상철아, 난 무슨 말로 널 위안했으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형님! 형님과 같은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으니 난 조금도 괴롭지 않소!》
《상철아, 네가 보관원직을 내게 양보했다면서? 감사는 하다만...》
《허허 참, 형님두, 그 일이 보이라공보다는 나을거요. 난 일하러 가야겠소.》
상철이가 떠나자 주충일이는 열쇠뭉치를 흔들며 원료창고로 돌아갔다.
공장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소문난 《쓰레기대장》인 주충일이를 하찮게 보고있었다. 집에 아무런 가장집물도 없는데다가 몇해전에는 안해까지 달아나서 홀아비가 되였지, 후에 외국에 있는 그의 친척이 거금을 보내왔다는 소문이 났건만 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그대로 업심을 받고있는 상태였다. 그런 속에서도 이 《말석의자》를 인간적으로 가장 가까이 대해주는 사람이 딱 둘이 있는데 그들인즉 《당대표》와 작업반장 오춘화였다. 오춘화는 남편이 늘 술을 마시고 폭행을 저질러서 리혼한 녀인인데 인물은 수수해도 마음씨가 비단같고 성미가 시원시원했다. 그녀는 누가 뒤에서 《말석의자》를 《깍쟁이》, 《쓰레기》, 《눈병신》이라고 헐뜯기만 하면 당장에서 남의 인격을 모욕하지 말라고 따갑게 타이르군 했다. 워낙 말수가 적은 《말석의자》도 오춘화와 마주서기만하면 말이 그칠새 없었다. 이 모든것을 한눈에 꿰뚫어본 《당대표》는 좋은 일을 하려고 오춘화를 찾아 가만히 대중을 떠보았으나 그녀는 무슨 롱담을 하느냐고 아닌보살하며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타내온 원료가 모자라서 《당대표》와 오춘화는 일하던 도중에 《말석의자》한테로 가게 되였다. 빈 밀차를 함께 밀고 가던 오춘화가 갑자기 밀차에 뛰여오르며 까르르 웃어댔다.
《호호호, 동갑이, 내가 앉으니 더 가볍지?》
사실 사람이 앉으니 밀차가 평형을 잡으며 끌기가 더 쉬웠다. 《당대표》는 오춘화를 태운 밀차를 밀고 쏜살같이 달렸다.
《이제 내 혼내주지 않나봐!》
밀차의 속도가 빨라지자 오춘화는 질겁하여 《멈춰요, 멈춰요!》하고 소리쳤다. 바로 그때 뿡뿡-요란한 경적소리가 울리며 달려오던 새 찦차 한대가 밀차옆을 스쳐지나더니 공장마당을 한바퀴 빙빙 돈후 다시 그들 앞에 와서 멈춰서는것이였다. 운전수좌석에서 최고쏘파분의 아드님이 내리고 뒤좌석에서 최고쏘파분과 재무과 리과장이 위풍당당하게 나왔다. 최고분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리과장을 보며 말했다.
《허허, 새차가 좋긴 좋구려!》
《더이를데 있습니까? 이제부터 우리한테도 자기 차가 있으니 연길로 갈 때 편리하게 됐습니다!》
맞장구를 치던 리과장은 밀차를 밀고 가는 《당대표》를 발견하고 손을 저어대며 소리쳤다.
《어이-〈당대표〉! 오청화와 둘이서 재미 좋은데, 하하하!》
《제길, 너무 좋아하지 말어!》
홍상철이는 리과장을 쏘아보고는 계속 밀차를 밀었다. 밀차에 앉아 최고쏘파분의 아드님이 찦차를 닦고있는것을 바라보며 오춘화는 입을 삐죽거렸다.
《하긴 잘하오. 공장은 밑지기만 하는데 저들은 호강을 부리고...》
《호강을 부리라지.》
《운전수가 남아도는데 찦차는 제 아들을 몰게 하구 참!》
《맘대루 날뛰라지!》
창고문앞까지 갔을 때 홍상철이는 문에 자물쇠가 걸리지 않은것을 보고 안에 대고 소리쳤다.
《형님, 문을 여오! 새각시를 데려왔소!》
《아이, 동갑이두!》
오춘화는 갑자기 얼굴이 홍당무우처럼 빨개서 밀차에서 뛰여내렸다. 이윽고 창고문이 열리며 《말석의자》가 나왔다. 그는 온몸에 밀가루먼지를 보얗게 뒤집어쓰고있었는데 흰 위생모밑에 드러난 머리카락은 《백발》이 되여있었다. 그 모양을 보고 입을 싸쥐고 키득키득 웃던 오춘화가 주충일에게 눈을 곱게 흘겼다.
《아이참, 주동무, 어서 옷을 갈아입고 세수하세요!》
《아니, 또 일하면 묻겠는데 뭘...》
오춘화가 손으로 주충일의 옷을 털어주자 홍상철이가 놀려주었다.
《어허, 동갑이, 신랑재만 생각하다가 원료는 안 타가겠소?》
《아이, 괘씸해라!》
오춘화는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상철이한테 막 대들었다. 상철이가 요리조리 피하며 달아나자 춘화는 붙잡겠다고 기를 쓰고 쫓아다녔다.
《상철아, 아이들처럼 무슨 장난이냐? 빨리 싣기나 해라!》
주충일이가 말려서야 그들은 《정전》을 하고 밀차에 원료를 실었다. 오춘화가 주충일이와 표를 맞춰보는 사이에 혼자서 밀차를 밀고 나간 홍상철이는 재빨리 밖으로 문을 걸어놓았다. 오춘화가 상철의 의도를 알고 달려갔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녀는 열리지 않는 문을 안타깝게 밀어댔다. 주충일이도 달려와 문을 밀며 소리쳤다.
《상철아, 문을 열어라! 어서!》
《하하하, 형님, 둘이 마음놓고 련애를 하오. 내 한시간후에 와서 문을 열어줄게.》
상철이는 익살스럽게 웃으며 밀차를 밀고 떠나버렸다.
그때로부터 석달이 지난후 주충일이와 오춘화가 간단하게 결혼식을 올렸는데 상철이는 남의 기쁜 날에 흰술 많이 마시고 취해서 울었다고 한다.
《혀...형님! 우...우리 공장이 마...망하게 됐소! 나...난 시...실망했단말이우!》
상철이는 충일의 어깨를 막 부여잡고 흔들다가 자기이 가슴을 마구 두드려댔다. 술을 입에 대보지도 못한 충일이였지만 취중진담이란것만은 아는지라 크게 한숨를 내쉬였다.
《내 가슴도 찢어지는것 같다!》
상철이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눈앞에는 얼마전에 있은 일들이 영화필림처럼 스쳐지났다.
삼복철이여서 《선놈》들은 직장에서 땀을 철철 흘리며 일하는데 《앉은놈》들은 밖이 그늘밑에 한두줄로 쭉 줄지어 앉아서 부채질하며 한담을 하고있었다. 밸이 꼬인 상철이가 《앉은놈》들의 사무실을 하나도 빠짐없이 돌아다니며 보니 두칸을 제외하고 모두 텅텅 비여있었는데 그 두칸나마 한칸에 한놈씩 낮잠을 자고있었다. 듣자니 오늘도 최고분은 찦차를 타고 연길로 공원놀이를 갔다고 한다. 원료나 제품을 싣지 못하는 찦차는 《쏘파분》들을 위해 잘도 봉사했다. 공가일이나 사사일이나 찦차, 코앞을 가도 찦차, 쩍하면 연길로 내달리는 찦차...
한번은 생산도중에 기계가 고장나서 상철이는 수리공과 전공을 데리러 갔댔는데 꽁꽁 잠긴 자물쇠만 그를 맞아주었다. 온 공자안을 다 돌아다녔으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다른 《앉은 놈》들도 태반이나 보이지 않았다. 알아보니 더러는 트럼프놀이를 하러 가고 더러는 마작를 놀러 갔다고 한다. 그가 공장장실로 찾아가니 최고분은 보이지 않고 제2쏘파분이 맞아주었는데 정황을 들은 두번째분은 사정이 그렇게 됐으니 오늘은 잠시 생산을 중지하라는것이였다.
그래서 여느때보다 일찍 퇴근한 상철이는 오래동안 만나보지 못한 친구네 집으로 자전거를 달렸다. 그 친구네 집은 바로 최고분네 집 앞집이였다. 듣자니 최고분네는 요즘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집을 짓는다고 했다. 그가 친구네 집부근에 이르러보니 최고분네 층집은 거의 마무리가 되여가고있었다. 그런데 바삐 도아치는 일군들이 태반이나 낯익은 얼굴들이 아닌가! 공장의 전공들은 전기를 가설하느라고 정신없이 돌아치고 공장의 수리공들은 계단란간을 만드느라 뒤나가는 줄도 모르고있었다. 리과장과 나머지 《앉은 놈》들은 땀벌창이 되여 이리저리 뛰여다니며 잔심부름을 하고…
《자네 공장치들이 집을 허물때부터 와서 저렇게 땀을 흘리며 일하고있네. 지도자분의 군중위신이 높은 모양이지? 그런데 정직한 지도자분이라면 왜 공장의 직원들을 데려와 제집을 짓는 일을 시키겠나? 허허, 저 집을 짓는 자금도 제호주머니의 돈이겠는가 하는 의심이 들지 않나?》
어느새 왔는지 친구가 히죽거리며 하는 말에 상철이는 주먹을 불끈 틀어쥐였다.
상철이는 최고분이 미웠다. 공장의 운명엔 관심이 없이 제 배만 채우기에 급급한 최고분이 미웠다. 그래서 어느날 최고분께서 그들이 일하는 직장에 내려왔을 때 심술을 부렸다. 그날은 수공과자를 만들었는데 상철이가 밀가루반죽을 책임졌다. 최고분께서 뒤짐을 지고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반죽기 있는데로 다가올 때 기다리고있던 상철이는 채 쏟지 않은 밀가루포대를 뒤번져가지고 반죽기 안에 대고 탁탁 정신없이 털어댔다. 그러자 새뽀얀밀가루먼지가 주위에 날리면서 최골분의 양복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 모양이 어찌나 우스웠던지 《랑자군》들 속에서 폭소가 터졌다. 그제야 상철이는 《미안합니다!》하며 아닌보살하며 콩기름이 번지르르한 두 손으로 최고분의 신사양복을 탁탁 털어드렸다. 그러자 그 멋진 양복이 얼룩덜룩 불꼴없이 되였다. 상철이는 최고분이 성내기를 기다렸다. 성내는 그 모습을 보는것이 그의 목적이였다. 그런데 최고분께서는 아무 일도 없는듯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젊은이, 일할 땐 조심하게나.》하며 빙그레 웃기까지 하는것이였다. 상철이는 분했다. 하지만 상철이는 알지 못했다. 최고분은 벌써 가슴속에 《칼》을 갈고있었던것이다.
바로 그해 공장은 불경기여서 절반 로동자들을 《방학》시키게 됐는데 그 명단에는 상철이의 이름도 들어있었다. 공장사람들은 어째서 직장에서 일 잘하고 주력인 상철이를 《방학》시켰을가고 의문을 품었으나 그 내막을 아는 사람은 많지 못했다. 하지만 이 《방학》이 상철에게 얼마나 유리했는가를 그들은 몰랐었다.
《당대표》가 공장에서 나간지 딱 석달만에 《말석의자》도 《벼슬》자리를 떼우고 공장에서 나가게 되였다. 충일이가 《말석의자》를 빼앗기우기 한달전에 《제1쏘파분》의 아드님이 결혼잔치를 했는데 종업원당 최저로 20원씩 로임에서 떼내여 부조를 했다. 그때 20원이 뭉텅 잘리운 로임봉투를 받아든 충일이는 당장에서 부조돈을 거둔 리과장을 찾아가 한다는 말이 《내 돈을 돌려줍소!》였다. 하니까 리과장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 《다른 사람들은 50원, 100원, 300원, 500원씩 하는데 동문 낯이 간지럽지 않소?》하고 면박을 주니 충일이는 《남은 싫다는데 왜 억지로 그램둥?》하며 끝내 그 돈 20원을 도로 찾아갔다고 한다. 이 일로하여 충일이가 《방학》하게 된 일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충일이가 《방학》한 그해 그의 부친이 병으로 돌아갔다. 그의 부친의 장례날은 공장이 완전히 문을 닫는 날이였다. 그날 충일이는 땅을 치며 통곡하다가 드러눕고말았다.
6개월후 춘화가 공장에서 전체종업원대회를 열고 새 공장장을 선거한다는 소식을 전하자 충일이는 너무도 기뻐 안해를 안고 몇바퀴 빙빙 돌기까지 하였다.
《춘화, 우리 상철이를 찾아가기오. 새 공장장 적임자는 상철이밖에 없소!》
범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더니 이때 상철이가 문을 노크하고 들어섰다. 그는 《방학》기간에 기업관리에 관한것을 파고들어 학습도 하고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며 시장정보도 료해하면서 많은것을 배웠다. 그러다가 남방에서 큰 기업을 꾸리고있는 동창생을 만났는데 그 동창생이 그의 재능을 보아내고 월로임 1천 5백원에 그를 초빙했다. 공장에서 받던 60~70원의 로읾에 비하면 그것은 대단한 유혹이 아닐수 없었다. 그래서 고향에 돌아와 떠날 준비를 하고 옛정분을 생각하여 충일이한테 작별인사를 하러 왔던것이다.
《상철아, 너 떠나겠다는 말이냐? 공장이 싹 잘못되는데 못본척하고 떠나겠단말이냐? 엉?》
충일이는 성이 나서 입술을 푸들푸들 떨었다. 상철이는 충일이를 외면하며 한숨을 내쉬였다.
《형님, 나도 공장을 사랑하오. 하지만 이미 망태기가 된 공장을 춰세우자면 곤난이 막심하오. 벌써 1년동안이나 로임을 못내주고있지 않소? 형님도 나와 함께 가기오. 내 좋은 자리를 알선해줄께.》
《사람이 돈을 보고 살겠니? 내 지금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먹고 입고 쓸 돈이 있다. 하지만 내가 죽게 일하는게 무엇때문이겠니? 공장은 내 집이란 말이다. 나를 20여년이나 먹여준 공장이 지금 망하고있다. 상철아, 난 너에게 희망을 걸고있다. 내 비록 배운것은 없어도 사람 볼줄은 안다. 이번 공장장선거경쟁에 참가해다구! 내 빈다!》
《형님, 지금 형편에 50~60년대의 과자를 생산해선 팔아먹을수 없소. 새항목을 하자면 자금이 수요되는데 지금 국가재정도 곤난하여 대부금을 맡자해도...》
《네가 정말 해낼 신심만 있다면 돈은 내가 대주마!》
《형님!...》
상철이는 감격에 겨워 충일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바로 이때 밖에서 떠들썩하더니 오춘화가 이끌고 온 숱한 《선놈》들이 집안에 들어섰다.
《홍동무! 우리 공장 200여명 종업원들을 위해 이번 선거에 참가해주오!》
《우린 모두 홍동무를 지지하오!》
집안에서부터 밖에까지 쭉 늘어선 방대한 대오를 본 상철이는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이처럼 뜨거운 마음들을 저버리고 떠나려고 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는 당장에서 초빙장을 찢어버렸다.
상철이가 공장장선거경쟁에서 승리하게 된것은 그가 내놓은 방안의 세밀성과 빈틈없는 과학성, 대다수 종업원들의 지지도 있겠지만 곤난한 국가재정에 손을 내밀지 않겠다는 그 한마디가 논 역할이 컸다. 이것은 주충일의 공로였다.
공장구락부에서 상철이는 격정에 넘치는 취임연설을 하였다.
《모두들 알다싶이 우리 공장엔 〈앉은 놈〉과 〈선놈〉이 있습니다. 200여명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공장에 100여명이나 되는 〈앉은 놈〉이 있습니다. 이후엔 〈앉은 놈〉이건 〈선놈〉이건 구별이 없습니다. 오직 능력에 따라 사람을 쓰고 로동강도에 따라 로임을 내주겠습니다. 제가 제일 처음 할일은 찦차를 파는것입니다.》
장내에선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조용하십시오. 한가지 공포하겠습니다. 우리 공장에서 〈말석의자〉에 앉아있던 주충일동지가 우리 공장을 위해 100원이란 거액의 돈을 무리식으로 선대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공장사람들은 왁작 끓어번졌다.
《여러분! 주충일동지는 또 공장의 돼지먹이로 돼지를 먹여 판 돈과 공장의 페품을 팔아 모은 돈을 저금했는데 2만원이랍니다. 그는 이돈을 몽땅 공장에 바치면서 오래동안 로임을 타지 못해 곤난을 겪고있는 여러분들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만세!》
《만세!》
공장사람들은 눈물이 글썽하여 웨쳐댔다.
이때로부터 공장은 들끓기 시작했고 공장사람들의 숨결은 전례없이 높뛰였다.
199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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