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호선생은 쓸쓸한 마음으로 휑뎅그렁한 교정을 거닐고있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수백명학생들의 글소리가 랑랑했던 이 자그마한 산골학교가 학생원천이 끊어져 문을 닫게 된것이다.
젊은 녀성들은 모두 도시거나 외국으로 나가고 늙으이들과 학부모로 될 나이의 로총각들만 이 산골마을을 지키고있으니 자연히 후대가 끊어진것이다. 학생수가 줄고 줄어 나중에는 4명만 남았댔는데 페교되면서 그 4명학생마저 배움터를 떠나게 되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교정을 바장이던 남선생은 학교문에서 나와 마을쪽으로 걸어갔다. 4명학생의 전도가 근심된것이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생각에 잠겨 걸어가던 남선생은 누군가 인사하는 말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인사하는 학생은 4명중의 금송이와 송국이였다.
“선생님, 우린 오늘부터 한족학교에 다닙니다.”
그 말에 가슴이 쓰려난 남선생은 “한어를 배우는것도 중요하겠지만 학생들은 조선족으로서 언제든지 우리 말 우리 글을 잊지 말아야 하오”라고 당부하였다. 다른 애들의 정황을 물어보니 옥숙이는 도시학교로 가고 성무도 곧 한족학교에 다닐것이라고 했다. 남달리 총명하여 공부에 으뜸인 성무마저 한족학교에 가게 된다니 남선생의 마음은 쓰리고 아팠다.
“선생님, 우리 성무를 못봤수?”
금송이와 송국이가 떠난후 성무의 할아버지가 허둥지둥 달려오며 물었다. 그 애는 아버지가 학족학교에 붙이겠다니깐 싫다고 달아났다는것이다.
남선생은 성무의 할아버지를 도와 사처로 성무를 찾으러 다녔다. 나중에 페교된 학교에서 그애를 찾을수 있었다. 그애는 자기가 공부하던 교실에서 책을 펴놓고 공부하고있었던것이다.
“선생님, 내가 저애를 공부시키겠다고 한마리밖에 없는 소까지 팔았수다. 그런데 학교가 없어졌으니 이젠 어째유? 저애는 한족학교에는 안가겠다지, 우리 힘으로는 도시학교에 보내지 못하지…”
성무의 할아버지가 눈물이 글썽해서 하는 말에 남선생은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 말에는 “애비 없이는 살아도 소 없이는 못산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애비보다 더 귀중한 소까지 팔아 자식을 공부시키려고 했건만 배움터를 잃어버렸으니 이보다 더 큰 비애가 어디에 있겠는가!
“선생님, 오늘 마지막으로 저한테 더 강의해주세요!”
성무의 간청에 의해 성큼성큼 교단에 올라간 남선생은 흑판에 큼작하게 열네글자를 써놓고 높은 소리로 읽었다.
“우리는 우리 말 우리 글을 사랑한다!”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 힘주어 따라 읽는 성무, 그애의 새별같은 눈에 이슬이 반짝였다. 그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난 남선생은 자신이 밥술을 드는한 꼭 성무학생을 공부시키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졌다.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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