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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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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방살이
2013년 12월 29일 18시 36분  조회:3430  추천:1  작성자: 넉두리

세방살이/콩트이야기

 
김희수

 
퇴근길은 오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하루일을 마치고 총망히 자기의 보금자리로 찾아가는 사람들속에 근심에 쌓여 터벅터벅 걸어가는 명호라는 젊은 사나이가 있다. 동료들이 술 마시러 가자고 끌었으나 그는 집에 급한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빠져나왔다. 그의 호주머니에는 같은 작업반에서 일하는 승호가 베껴준 유상저금당첨번호를 적은 종이 한장외에는 일전한푼도 없다. 손목시계는 팔아서 전기세와 위생비, 수도세를 물었고 자전거는 팔아서 새해분 집세에 보탰다.
결혼해 8년은 세방살이 8년이였다. 세집만 해도 아홉번 바꿨는데 아홉번 이사에 안해 순실이의 손목시계와 자전거, 결혼잔치 때 갖춘 재봉기와 세탁기를 모두 집세에 밀어넣었다. 이제 가장집물이란 이불장과 찬장, 텔레비죤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도 팔아야 할 위기에 직면하였다. 처제의 결혼잔치와 삼촌의 환갑잔치가 당금인데다가 조카의 첫돌생일까지 겹치였는데 설상가상으로 안해가 출근하는 공장이 문을 닫아 밥통까지 떨어지게 되였다.
《부조에 나갈 돈만해도 몇백원인데…호―》
한숨을 내쉬는 순실이의 앞에서 무기력한 명호는 《텔레비죤을 팔기요》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텔리비죤을 팔지 마! 으응…응…》
딸애가 당금 누가 빼앗아가기라고 할듯 텔레비죤을 꼭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린다.
《당신은 정말…》
순실이는 딸애를 달래며 애틋하고도 야속스러운 눈길로 명호를 쳐다본다. 그런 눈길이 이젠 몇번째인지 모른다. 새해분 집세를 물지 못하여 임신한 몸으로 한 겨울에 집주인에게 쫓겨날 때도 순실이는 그런 눈길로 명호를 쳐다보았다. 그런 눈길이 말보다도 더욱 명호의 가슴을 찔러준다. 날로 초췌해가는 안해의 모습을 볼 때마다 명호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것 같았다. 생활고에 부대낄대로 부대끼면서 불평 한마디 없는 안해를 대할 때마다 명호는 무능한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고지식한 자기를 만나 온갖 고생을 다 겪고있는 안해가 불쌍하기만 했다. 원래 새해에는 그에게 집이 차례질 순서였지만 공장에서는 갑자기 처한 불경기로 인해 종업원의 주택을 지을 계획을 포기해버렸던것이다.
명호가 세집에 들어섰을 때 순실이가 벌써 딸애를 유치원에서 데려다 놓고 밥을 짓고있었다. 딸애는 명호의 눈치를 슬슬 살피며 텔레비죤을 막아섰다.
기분이 잡친 명호는 저녁술을 드는둥마는둥 하다가 갑자기 생각난듯 호주머니에서 유상저금당첨번호를 적은 종이장을 꺼내 순실앞에 내밀었다.
《전번에 산 유상저금권이 있지 않소? 당첨번호가 나왔는데 어디 한번 맞춰보오.》
《우리한테 언제 그런 복이 있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순실이는 서랍에서 유상저금권 두장을 꺼내 말등부터 하나하나 대조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순실이가 유상저금권 한장을 높이 쳐들고 집이 떠나갈듯 환성을 질렀다.
《빨리 와보세요. 당첨됐어요! 우리 당첨됐어요!》
《보나마나 또 말등이겠지.》
《특등입니다! 특등!》
《뭐요? 그게 정말이요?!》
특등이면 1만원이다. 이런 행운이 어디 있단 말인가! 명호는 믿어지지 않아 재빨리 순실이의 손에서 유상저금권과 당첨번호를 빼앗다싶이 해서 한글자 한글자 맞춰보았다. 특등에 13075인데 유상저금권번호도 한글자도 차이 없는 13075였다.
《야, 특등에 당첨됐구나! 만세!》
명호는 미칠듯이 기뻤다! 딸애를 끌어안은 순실이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함뿍 피여났다. 이 돈으로 무엇을 살가? 명호도 순실이도 같은 생각을 하고있었다. 순실이가 먼저 물었다.
《우리 이 돈으로 뭘 사겠습니까?》
《전자풍금!》
딸애가 선참으로 요구했다.
《저…》
명호는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들어 안해를 보고 말했다.
《우리 먼저 자기가 사고싶은걸 손바닥에 쓰기요. 그 다음 〈시작〉하고 동시에 손바작을 펴보는게 어떻소?》
《그게 참 재미있겠습니다!》
명호와 순실이는 각각 손바닥에 쓰고 나서 《시작!》하는 소리와 함께 동시에 손을 쭉 폈다. 서로 상대방의 손바닥에 적힌 글자를 바라보던 그들 부부는 한바탕 통쾌하게 웃고말았다. 그들의 손바닥에는 모두 똑같은 《집》이란 글자가 큼직하게 적혀져있었던것이다. 아, 얼마나 마음속으로 갈망하던 집이였던가! 1만원이면 괜찮은 위치의 30평방메터정도의 단층벽돌집을 살수 있다. 이제 곧 내집마련꿈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날밤 그들은 궁궐같은 집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꿈을 꾸었다.
이튿날은 명호가 휴식하는 화요일이였다. 아침을 먹은후 그들은 딸애를 유치원에 맡겨놓고 곧추 은행으로 향했다.
숱한 사람들이 은행문앞에 나붙은 당첨번호를 맞춰보느라고 법석거리고있었다. 그들이 사람들속으로 비집고 들어가려 할때 명호에게 당첨번호를 베껴줬던 승호가 안으로부터 나오다가 그들을 알아보고 근시안경을 추스르며 쑥스럽게 웃었다.
《명호, 어제 내가 베껴준 당첨번호 특등이 있잖아? 오늘 다시 살펴보니 한글자가 틀렸더라. 원래 번호는 13675인데 내가 가운데 6을 0으로 빗보고 잘못 베꼈더라.》
《뭐라구?!》
명호는 두 어깨가 내려앉으며 사맥이 나른해졌다. 순실이도 실성한 사람처럼 멍해있었다. 명호는 믿어지지 않아 사람들속을 비집고 들어가 다시 대조해보았다. 그러나 역시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명호는 실망해 주저앉은 안해가 더 근심되였다. 그는 재빨리 사람들속을 비집고 나와서 안해를 위안해주었다.
《순실이, 너무 괴로워 마오! 내가 앞으로…》
《앞으로는 그냥 이렇게 살지 맙시다!》
명호는 《이렇게 살지 말자》는 말에 깜짝 놀랐다. 안해가 이젠 지긋지긋한 가난에 질려 나와 헤여지려는게 아닐가? 순실이는 뜻밖에도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행운을 바라지 맙시다. 우린 아직 젊습니다. 우리 자신의 두손으로 행복을 창조합시다. 전 이제 곧 장사할 생각입니다. 내 두손으로 벌어서 꼭 우리의 보금자리인 내집마련을 실현할 결심입니다!》
《순실이, 고맙소!》
명호의 눈에서 이슬이 반짝였다. 그는 안해의 손을 뜨겁게 잡고 말했다.
《나도 한몫 감당하겠소!》
《우리 손잡고 해봅시다!》
나젊은 부부는 손에 손을 잡고 자기들의 행복한 앞날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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