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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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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26) 김장혁
2022년 07월 12일 12시 36분  조회:1145  추천:0  작성자: 김장혁
 
    36. 야반도주
 
“잠간 멈추세요!”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하영이 고함쳤다.
정호는 오토바이를 수림 속 령길에 멈춰 세우면서 물었다.
“왜?”
하영은 오토바이에서 내려 헬멧을 벗어쥐고 어둠 속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우린 지금 어디로 도망가는 거죠?”
“살 델 도망가.”
“목적지는 어딘가요?”
“목적지? 나도 몰라. 생존할 수만 있다면 어디로든지 가야지.”
늙은 너구리 머리에는 아주 면밀한 도주계힉이 서 있었다. 그러나 나영한테 지금 말할 수 없었다.
(도중에 나영이 또 마음 바꿀지 누가 아는가? 금방 봐. 내 몰래 금은보화를 메고 갱도로 도망치려고 했지 않았는가?)
“어마나. 목적지도 없이 어디로 이렇게 도망가요?”
정호는 나영의 어깨를 다독였다.
“겁내지 마. 너도 봤지? 숱한 수사일군들이 지금 널 체포하자고 꼬리를 딱 물고 쫓아다니지 않아? 우린 우선 여기를 빠져나가야 돼.”
“이게 무슨 개고생인가요?”
“그래, 개고생할 걸 알았으면 자초부터 공금에 손을 대지 말게지.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있니? 넌 체포되면 감옥밥을 먹어야 돼.”
나영은 헬멧을 땅바닥에 탕 메쳤다.
“차라리 감옥에 가도 이렇게 밤중에 수림 속을 헤매기보단 나을 거 같아. 씨, 흐흐흑, 흑흑,”
나영은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껴 울었다.
정호는 나영을 꼭 끌어 안아주었다.
“짧은 생각하지 말라. 감옥에 가면 그리 좋을 거 같아? 지옥은 자유를 가두는 염라전이야. 우린 자유를 위해 밤중에 날아가고 있는 거야. 훨훨 날아 이놈의 지옥 같은 지역을 벗어나면 꼭 자유를 맞이할 거야. 힘내라.”
나영은 정호한테 기대 어깨를 들먹였다.
“그래, 내가 있는 한 널 꼭 행복하게 만들 거야.”
“저는 이젠 최국장님 밖에 믿을 사람 없어요. 남편도 아들도 다 버리고 최국장님만 믿고 따라 왔는데요.”
정호는 머리를 끄덕이며 나영의 볼에 키스를 뽁 해주었다. 그는 맹세하듯 진심어린 고백을 했다.
“그래. 나도 너 밖에 없다. 나영아, 사랑해. 난 목숨이라도 바쳐 널 지켜줄 거야. 미국 로스안젤레스에서도 그랬잖아. 이제부터 내 모든 걸 다 바쳐 널 행복하게 만들 거야.”
순간 나영은 적수공권으로 흑인강도를 차눕히고 사경에서 자기를 구하던 정호가 떠올랐다. 그녀는 다시 한번 감동을 먹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정호 품에 안겨 흐느꼈다.
“미안해요. 제가 철없이 놀았어요.”
“무슨 소리야. 미안하다. 널 고생시켜서.”
나영은 솔직이 정호한테 미안했다.
그녀는 별장 차창 밖으로 두리모자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정호가 해지기 전에 별장에 돌아오지 않자 나영은  벽단스에 숨어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벽단수 뒷벽이 열리면서 갱도입구가 나지지 않겠는가.
그녀는 너무 놀라 한참만에야 놀란 가슴을 쓸어넘기면서 핸드폰 조명등을 켜들고 갱도로 한 발자욱, 한 발자욱 들어가 보았다. 방공굴이 꽤나 깊었다.
한 30메터 나가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별장 갱도는 방공굴과 이어져서 여러개 출구가 있지 않겠는가.
(허허. 여기로 도망치자.)
그녀는 망아산 중턱에 있는 방공굴 출구까지 갔다. 그런데 출구가 소나무와 누런 진흙에 거의  막혀 있었다.
이전에 문걸이 참사랑의 블랙홀이라고 소나무를 찍어 쑤셔넣어 막고 흙으로 파묻어놓은 출구였다.
그 방공굴은 정호가 영희, 황선희, 하영 등 숱한 미녀들을 데려다 놀던 더러운 자리기도 했다.
나영도 몇번 여기 와서 정호와 속살을 섞은 적이 있었다. 하영은 이 방공굴 출구 부근에서 정호와 맥주를 마시다가 강도들의 쇠뭉둥이에 맞아 쓰러졌다. 이 곳은 피비린내 나는 죄악의 현장이기도 했다.
나영은 말라버린 소나무가지 사이로 내다보이는 수림과 황혼이 비낀 하늘을 내다보면서 망아산 수림 속을 빠져나갈 속궁리를 굴렸다.
그녀는 소나무 가지만 빼내면 바깥으로 기여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안간힘을 다해 소나무가지를 빼려고 애썼다. 그런데 워낙 소나무가 깊숙이 파묻혀 빼내는 수 없었다.
그녀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물앉았다.
한참 후 그녀는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났다.
“아차, 도망가도 별장에 둔 딸라와 금은보화를 가지고 도망가야지.”
나영은 방공굴의 어둠을 더듬으면서 다시 별장으로 되돌아갔다.
이윽고 그녀는 갱도 입구로 해 다시 벽단스에 나갔다.
그녀는 바깥동정을 살피면서 살금살금 옷장에 다가가 배낭을 주어들고 벽단수에 들어갔다.
“이 돈이면 어데 가 못 살겠느냐? 내 혼자 실컷 쓰면서 호강하겠다. 에라, 정호구 뭐구 모르겠다. 그놈 색마를 따라 숨어다니다가 무슨 경 칠라고. 흥!”
그녀는 경찰들이 벽단수 입구를 찾아 뒤쫓아올가봐 겁나 벽단수 입구를 잘 닫아놓고 갱도로 도망쳤다.
“빠이, 빠이!”
그녀는 다시 방공굴 입구에 돌아가자 배낭을 내려놓고 소나무가지를 빼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안간힘을 다 써도 빠지지 않았다. 설성가상으로 어둠이 덮쳐오자 더럭 겁났다.
“하영처럼 이 곳에서 강도나 만나면 어쩌지?”
그녀는 또다시 물앉았다.
기실 방공굴에는 숱한 출구가 있었다. 그런데 나영은 모르고 있었다. 공포에 잠겨 더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방공굴 출구로 여겨보니 어둠이 깔린 온 망아산에 경찰들이 우글거렸다. 밤하늘에 드론이 떠도는 엔징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도망치지 못하고 숨이 한줌만해 방공굴 한쪽 구석에  숨어 있었다.
이제야 뒤늦게 방공굴로 해 찾아온 정호와 딱 마주쳤던 것이다. 그들 둘은 모두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미안해요. 최국장님.”
“아무 말도 할 필요없어.”
늙은 너구리는 나영의 검은 속내를 대개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면서 능청을 떨었다.
“나영이, 참 잘했어. 네가 금은보화 메고 도망쳤기에 저놈들의 시선을 따돌렸어. 저 놈들 별장에서 금은보화 찾지 못했잖아. 나영이 내 때벗이를 해줬어. 허허허.”
 
사실 정호는 검찰원에서 문 밖을 나서면서 어떻게 하면 수사일군들을 따돌리고 나영을 차고 도망칠가 번개같이 속궁리를 굴렸다.
그때 검찰원 상공에서 드론이 떠돌았다. 그놈 드론은 자기 꽁무니를 따라 정희네 다방까지 오지 않겠는가.
정호는 정희를 찾아가 한바탕 해내고 싶었다.
“더러운 년, 다방까지 차려줬는데. 길러준 개 발뒤축을 물어? 배은망덕한 년, 제 명에 죽지 못할 년.”
그런데 다방에 들어서자 피비린 내가 물씬 풍겼다.
그가 다방에 들어가 사위를 둘러보니 정희가 카운터에 피못 속에 쓰러지지 않았겠는가.
“이크!’
정호는 뒤저참하면서 물러났다.
(자칫 혐의를 쓰겠다.)
그는 몸소리치며 밤거리에 달려나가 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달려와 멈춰섰다.
“망아산으로!”
“아니, 이 밤중에 망아산으로 가요?”
택시 운전수는 뒷좌석을 돌아보면서 주저했다.
“이 사람 몰라면 몰게지. 왜 꾸물거려?”
“거긴 강도가 출몰하는 곳이여서…”
“그래? 내 강도 돼 보여?”
“그건 아닌데요.”
“그럼 뭔가? 어서 몰라구.”
그래도 택시는 움직일줄을 몰랐다.
“정 가기 싫으면 그만두게.”
정호는 짜증나 택시에서 내렸다.
그는 밤거리에 서서 다음 택시를 기다렸다.
그는 택시를 타고 망아산으로 달리면서 정희 처참한 말로를 두고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괘씸한 년, 천벌을 맞아 싸. 길러준 개 발뒤축을 물더니 끝내 썩어졌어. 뺑덕이어미 같은 년, 량심없는 더러운 년, 제명에 썩어지지 못했어.)
그러나 인차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루 밤 부부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데. 필경 내 애인이 아니였는가. 후-)
순간 정호는 정희와 운우지정을 나누던 추억에 잠겼다. 
(이젠 허리 활등처럼 휘여져 올라오던 정희를 다신 볼 수 없구나.)
참 이상했다, 원쑤처럼 증오하다가도 애잡짤해나는 것이.
“택시를 세우세요.”
“왜?”
“잠간. 핸드폰 치고 가기오.”
“예.”
택시가 멈춰섰다.
정호는 택시에서 내려 손목시계를 입가에 가져다댔다.
“박국장이오? 양, 처남, 명도다방에서 살인사건 발생했소. 보스 정희 살해됐소. 금방 내 거기 갔다가 똑똑히 보았소. 확실히 머리 쪼개진 채 살해된 것 같소. 양, 즉시 가 보오.”
정호는 다방의 녀복무원이 사건을 신고한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는 어쩐지 정희를 위해 마직막으로 사건신고라도 해주고 싶었다. 흉수를 나포해 정희 원쑤라도 갚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자기 핸드폰으로 처남한테 전화하면 자기 위치가 탄로난다는 것도 짐작이 갔다. 그러나 사건신고를 함으로써 자기는 정의감이 있는 사람으로서 수사기관을 도왔다는 평판도 받을 것이며 무죄한 시민이기에 여유작작하다는 것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는가.
이거야 말로 일거량득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최혜영 국장은 정호가 박국장한테 사건신고를 한 걸 즉시 파악했다. 그러나 박국장과는 그런 내색을 내지 않고 정호사건수사에서 회피하라고만 일러뒀던 것이다.
 
정호는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곧추 망아산 별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별장 주위에 숱한 두리모자들이 우글거리지 않겠는가.
어두운 하늘에는 숱한 드론이 떠돌고 미녀로봇까지 날아지나갔다.
로련한 늙은 너구리는 모든 것을 개의치도 않고 별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나영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옷장을 열어보니 금은보화 가방도 보이지 않았다.
(이년, 이게.)
그녀는 지하주차장에까지 내려가 두리번거렸다. 나영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혼자 금은보화 가지고 도망쳤어?)
그의 판단은 맞았다.
벽단스를 열고 보니 밑바닥에 굽 높은 구두발뒤축 자리가 찍혀 있지 않겠는가.
(아니, 비밀갱도 입구는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여기로 도망갔어?)
정호는 벽단스 갱도 출구가 발각돼 꼬리를 밟힐가 봐 걸레를 가져다 벽단스 밑바닥을 말끔히 닦아놓았다.
그때 남검사를 비롯한 수사일군들이 뛰여들어와 수색했다. 정호는 수사일군들이 헛물켜고 물러가자 회마창(回马枪) 하기 전에 벽단수 문을 열고 스리슬쩍 갱도로 들어가 방공굴로 도망쳤던 것이다.
그는 혹시나 해 방공굴 여기저기를 헤매면서 나영을 찾아헤맸다.
과연 유서 깊은 그 방공굴 출구 쪽에서 물앉아 있는 나영을 발견했다. 그때 나영은 두 무릎 사이에 턱을 고이고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물앉아 있었다.
“누구야?”
“나영이, 나야.”
그들 둘은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나영은 우쭐 일어나 멍해 서 있었다.
정호가 다가가 와락 끌어안았다.
“여기 있었구나.”
나영은 미안하기도 하고 어선을 만나 기쁘기도 했다. 그녀는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오랜만에 만난 아빠 품에 안기듯이 정호 품에 안겨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흐느꼈다.
정호는 나영의 잔등을 가볍게 어루만지면서 문안했다.
“놀랐지? 겁내지 마. 내 있잖아.”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정호를 더욱 꼭 끌어안았다. 나중에 그녀는 폴깍 뛰여 정호한테 안기더니 두 다리로 정호 허리를 꽉 껴안았다.
정호는 나영을 끌어안아든 채 핸드폰 조명등으로 여기저기 비춰보았다. 방공굴 한쪽 구석에 배낭이 얼핏 보였다.
(살았구나.)
그는 나영을 둘쳐업더니 배낭을 들고 방공굴 안으로 걸어나갔다.
나영이 잔등에서 내렸다.
“최국장님을 련루시켜 미안해요. 고생시켜 죄송해요.”
“괜찮아. 우린 빨리 여기서 벗어나가야 해. 경찰들이 우글거려. 핸드폰 몽땅 버려.”
“이걸 버리고 뭘로 련락해요?”
나영은 주춤 멈춰섰다.
“경찰들이 우리 둘 핸드폰 위치를 보고 추격해올 거야. 이 핸드폰은 이미 경찰들한테 위치 폭로됐어. 또 따로 준비해둔 핸드폰 배낭에 있어.”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방공굴 바닥에 동댕이쳤다.
정호는 핸드폰을 주어들더니 바뗄을 쑥 빼냈다. 그는 방공굴 출구쪽으로 스적스적 다가갔다.
그는 소나무가지로 가려진 방공굴 출구로 핸드폰을 내던지려다가 그만뒀다. 그는 자기 핸드폰도 꺼내더니 바뗄을 빼낸 후 함께 방공굴 어귀 흙더미에 파묻고 소나무가지로 잘 가려 놓았다.
최혜영 국장이 통제센터에서 정호 핸드폰 위치를 발견한 것은 정호가 핸드폰을 파묻기 딱 직전이였다. 최혜영 국장은 통화내역을 훑어보았다. 나영이 정호를 찾느라고 핸드폰을 친 시간대는 정호가 한창 검찰원에서 심문받을 때였다.
나영은 묵은 핸드폰에도 여러번 쳤고 무신분증핸드폰과 손목시계핸드폰에도 여러번 쳤다. 그러나 묵은 핸드폰과 무신분증핸드폰은 검찰원에 압수돼 정호가 받지 못했고 손목식계핸드폰은 진동에 놓은데다가 심문받느라고 감히 받지 못햇던 것이다.
아무리 핸드폰을 쳐도 받지 않자 나영은 무척 심상치 않음을 느겼다. 아니, 심지어 다른 마음을 먹기도 했다.
“경찰에 붙잡혔어? 어쩐다?”
한참 고민에 빠졌다가 나영은 정호를 기다리지 않고 혼자 도망칠 궁리가 머리를 쳐들었다…
 
정호는 나영이 손을 잡고 다른 출구쪽으로 달려갔다.
“저게 오토바이 아닌가요?”
나영이 여겨보니 방공굴 출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새 오토바이가 벽에 기대 서 있지 않겠는가.
“그래. 며칠 전에 미리 가져다 놨지.”
“네- 최국장님은 뭐나 참 주도면밀하군요.”
“그래. 오디승용차는 이미 수사일군들의 감시대상으로 돼버렸어.”
정호는 헬멧을 건넸다.
“자, 쓰오.”
정호는 자기도 헬멧 썼다.
“타오.”
나영은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 뒤좌석에 앉아 정호 허리를 꼭 껴안았다.
부르릉부르릉.
오토바이는 어두운 방공굴 정적을 깨우면서 출구로 빠져나갔다.
남검사가 수사일군들을 이끌고 별장으로 회마창(回马枪) 해 쳐들어갈 딱 동시간대였다. 그때 정호는 오토바이를 몰고 산 중턱의 방공굴 출구를 빠져나와 산고개를 넘어갔던 것이다…
 
“최국장님, 미안해요. 련루시켜서 죄송해요.”
정호는 헬멧을 주어다가 나영이 머리에 씌워주었다.
“무슨 소리. 우린 빨리 이 자리를 떠나야 해. 두리모자들이 뒤쫓아올 수 있어.”
나영은 다시 오토바이 뒤좌석에 올랐다. 그녀는 정호 허리를 꼭 껴안고 잔등에 머리를 파묻었다.
(이것도 운명이겠지.)
그녀는 모든 운명을 정호한테 맡겨버렸다. 순간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야밤에 오토바이에 앉아 령길을 달리며 불어오는 산바람마저 아주 신기하게 시원하지 않겠는가.
(나영아, 미안해. 모든 건 너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그래.)
정호는 오토바이 유문발브를 힘있게 밟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영아, 용서해달라. 널 너무 사랑했기에 심계국에 고발한 거야. 심계국에서 네 탐오죄를 수사해내지 않았더라면 네가 이렇게 따라 오겠느냐? 내겐 이젠 너 밖에 없어. 본댁은 내게서 마음이 떠난지 오래. 가짜리혼은 허위에 얽맨 허울 밖에 남지 않았어.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은 다 떼버렸어. 정희는 도끼에 찍혀 죽었어. 하영인 가무단 단장으로 됐이게 이젠 내 필요없을거구. 제 애비 같은 날 따라 오자겠어?)
오토바이는 칡흙 같은 어둠을 뒤로 하며 시원한 산공기를 간음하면서 번개처럼 나래쳤다.
“서랏!”
갑자기 하늘에서 청천벽력 치는 듯한 녀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정호와 나영은 거의 동시에 머리를 쳐들었다.
그들의 딱 머리 위 상공에서 웬 녀인이 훨훨 날면서 추격하지 않겠는가.
“어디로 도망쳐?!”
“이걸 어쩝니까?”
나영은 기겁했다.
그러나 정호는 녀인인걸 보고 대수로워하지도 않았다.
“넌 누구냐? 귀신이냐? 뭐냐?”
녀인은 노란 금발머리를 흩날리며 을러멨다.
“서지 않을래? 오토바이를 박산낸다.”
“왜 이래? 남이야 어디로 가든 무슨 상관이냐?”
녀인은 훨훨 날아와 오토바이에 덮쳐들었다.
정호는 오른팔을 휘둘러 녀인의 손을 막았다.
이게 뭐야?
녀인의 가는 팔은 보기와는 달리 어찌나 힘이 센지 막을래야 막을 수 없었다. 녀인은 반사경을 잡아 훌 뜯어냈다.
“이번엔 핸들을 뜯어버릴테야.”
“잠간. 오토바이를 세울게.”
정호는 오토바이를 천천히 세웠다.
“누가 파견한 년이냐?”
정호는 나영을 뒤로 세우고 싸우려고 손을 걷고 나섰다. 나영도 땅에 날아내리는 녀인을 노려보며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너네 년놈들이겠냐? 하이!”
녀인은 그 무거운 오토바이를 꽁기돌 다루듯해 길옆에 훌 내동댕이쳤다.
정호와 나영은 깜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섰다.
“어서 오라를 지지 못하겠어?”
“아니, 댁은 누구신지요? 우리 무슨 죄 있다고 이래요?”
“난 리문걸 화가가 보낸 미녀로봇이야.”
“오- 알았어. 아사꼬녀사군요.”
“네놈들은 경찰들을 따돌려도 이 금발미녀만은 속이지 못해? 내겐 최첨단도청기와 천리혜안이 장치돼 있어. 경찰들은 보아내지 못했지만 난 진작 네놈들이 별장에서 방공굴 쪽에 도망갔다는 걸 알았어. 오토바이 타고 도망쳐도 날 따돌리진 못해.”
그제야 정호는 미녀로봇을 스피드나 힘으로는 따돌리 못할 것을 알고 다른 수를 대기로 했다.
이전에 공원에서 그는 문걸과 함께 거니는 미녀로봇을 지껄였다가 혼난 적이 있었다. 그때 미녀로봇이 허망 둘러메치는 바람에 목덜미를 꺾이울번 했다. 문걸이 말리잖았더라면 미녀로봇이 날리는 태권도 발길질에 죽을번 하지 않았던가.
“아사꼬 녀사, 금발미녀, 제발 우릴 놔주오.”
“가자, 우리 리선생님 널 기다린다. 량심없는 놈, 어쩜 친구 안해를 다 몇십년이나 간통해? 그러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정호는 헬멧까지 벗고 번대머리를 조아리면서 빌었다.
“아사꼬 녀사, 사실 잘 모르는 것 같은데요. 사실 영희는 문걸보다 내 먼저 사랑했는데요. 난 사랑하는 녀인을 친구한테 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때 내 마음은 얼마나 찢어지는듯 아팠는지 아오?…”
어둠 속에서 미녀로봇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정호를 손삿대질하면서 질책했다.
“궤변 작작 부렷! 어서 가자!”
“내 말 좀 들어보소.”
정호는 미녀로봇에게 뒤덜미를 잡혀 끌려가면서도 감언리설을 주어대면서 미녀로봇을 얼리려고 했다.
“문걸과 나는 죽마고우오. 나는 이제껏 관건적인 시각마다 문걸을 도와주었소. 대학졸업 때도 그를 건축설계원에 배치해줬고 앓아서 죽는다 산다 할 때도 내 그래두 병문안 가구 치료비도 대주었소. 날 내놓고 누가 그처럼 병시중하겠소? 성호랑 종호랑 친구 몇이 있어두 그저 한두번 병문안하고 다시 찾기나 했겠소? 그래도 내 나서서 끝까지 문걸을 구해냈지…”
미녀로봇은 정호 멱살을 쥐여 흔들었다.
“개소릴 작작 쳐. 난 기계여서 그따위 감정 몰라. 내 몰인정스런 걸 아직도 몰라. 난 그저 기계적으로 우리 주인님의 명령을 집행할 뿐이야. 가자!”
“이 못된 년, 누굴 모욕해? 놓지 못할가?!”
나영이 보다 못해 씽 달려나가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미녀로봇은 어데서 그런 괴력이 나왔을까.
그녀는 한 손으로 정호를 건뜻 쳐들어 휘둘러 팽개쳤다. 정호는 저만치 뿌려나가 나영을 깔아뭉개면서 쓰러졌다.
“호호호. 년놈들, 이제야 이 아사꼬 무서운줄 알겠는가? 오늘 본때를 보여주마!”
정호는 기여 일어나며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아사꼬 녀중호걸이시여, 내 둘도 없는 친구 문걸도 야반도주할 처지에 처한 나를 보면 용서해줄 거요.”
그때 갑자기 어둠 속에서 문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사꼬는 주인 말 들으라. 그 년놈들을 놔줘라. 그래도 날 구한 친군데. 놔둬라.”
“놔주다니오? 어떻게 잡은 년놈이라고.”
미녀로봇은 정호가 문걸의 성대모사를 하는 줄도 모르고 주인의 말인줄로 알고 기계적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별수 없군요. 주인님 자비를 베푸니깐.”
미녀로봇 아사꼬는 정호를 놔주면서도 손삿대질하면서 날카롭게 경고했다.
다시 나쁜 짓 해봐라. 이 아사꼬 손에 죽을줄 알아라!”
정호는 손을 저어 작별인사까지 했다.
“돌아가 문걸한테 일러라. 친구는 영원한 거야. 빠이, 빠이!” 
정호는 나영을 데리고 오토바이를 잡아타고 또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미녀로봇 아사꼬는 이상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윽고 그녀는 씽 날아오르더니 어둠 속 수림을 누비며 주인을 찾아 헤맸다.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 해.)
정호의 머리 속에는 위기감이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아사꼬가 문걸을 만나는  순간 모든게 탄로나. 문걸은 우리 오토바이 타고 도망친다고 공안국에 신고할 거야. 좀 지나면 오토바이도 표적이 될 거야. 그 전에 멀리 도망쳐야지.)
정호는 발로 유문발브를 연신 밟았다. 오토바이는 어둠을 꿰뚫고 질풍같이 수림을 달렸다. 저 멀리 발 밑에 별무리처럼 내린  불야성이 내려다보였다.
순간 정호는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몇십년을 살아온 정다운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그의 심정인들 오죽하랴.
(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올가? 별수 없어. 후회되지 않아. 이제껏 고삐 끊은 들말처럼 풍류아로 살았잖아. 숱한 아기씨들을 데리고 즐겁게 살았지. 후회나잖게 즐겼어. 숱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어. 죽어도 이젠 원이 더 없어. 허허허.)
그는 정든 고향과 모든 걸  버려야 했다.
(이놈의 고장에서 이젠 발붙힐 곳이 없어. 죽마고우 문걸이나, 성호나 친구들도 모두 날 의리도 없는 죽일 놈이라고 이빨을 쁙쁙 갈아. 저승사자년은 나를 지옥에 처넣을 거야. 자유를 위해 이젠 공직이고 뭐고 다 버리고 도망쳐야 해.)
그는 잔등에 딱 붙은 나영, 그리고 딸라뭉치와 금은보화가 불룩한 배낭이 있어 마음이 든든했다. 
오토바이는 혜성처럼 어둠을 헤가르면서 령길로 야반도주하며 씽씽 달렸다. 어둠을 뚫고 자유로운 려명을 찾아 훨훨 나래쳤다. 지지리 못난 어둠은 두 팔을 벌리고 뒤쫓아오다가 맥없이 뒤로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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