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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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전기 설한 (6)
2014년 03월 03일 07시 51분  조회:3017  추천:1  작성자: 김송죽
 

 6.      

 

이틑날 한낮때. 이 집에 매여 지내오던 50여명의 남녀가노와 그의 권속들은 창문을 활 열어젓힌 바깥사랑방에 모여 무릅꿇고 앉았다. 모든 시선이 한사람ㅡ 문서더미앞에 묵묵히 앉아있는, 오늘따라 더 유표하게 새로 다린 도포에 통영갓을 말쑥이 갖춰 쓴 젊은 주인을 우러러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이 량반이 오늘따라 거인가와보이면서 또한 생소할 지경으로 괴이해보이기도했다. 노예를 해방시켜주다니! 세상에 그렇게 고마운 사람도있단말인가? 그러나 그런 사람이 과연 있는것이다. 바로 눈앞에 있는 주인 김좌진이 아닌가!

<<내 오늘은 오래동안 매여지내던 너희들을 놓아주련다.>>

이같이 운을 뗀 좌진은 자기가 가노를 해방시키게 된 동기를 말했다. 그리고는 그네들에게 지금은 나라가 풍전등화같이 위태로우니 각자는 생업에 종사하면서 짬짬이 배움에 힘써서 눈을 뜨고 나라일을 관심하는 국민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종들은 모두 젊은 주인의 장부다운 기개에 감동하면서 고마움이 무극했다.

<<그동안 고생 많이들했다. 우리 집 살림이 결코 그렇게 많지는 못하지만 너희들 지어먹고 살 전답마지기쯤은 되니 그것을 내 오늘 얼마씩 모두 나눠주마.>>

좌진은 이러면서 여러대 묵어온 종문서를 나눠줄테니 받아서 불을 사르든지 아니면 찢어없애든지 마음대로 하라했다. 그리곤 팔만이, 춘봉이, 삼월이....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불러 옛문서와 함께 그들 매개의 가정에 나눠주는 새논문서를 주니 그걸 받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이라곤 없었다.

이날따라 국화냄새 풍기는 마가을의 날씨는 류달리 청쾌했다.

좌진은 허리펴고 기지개를 켰다.

<<아, 나도 좋구나! 십년묵은 체증이 내려앉는것 같구나!>>

그날 밤 춘봉이네 늙은 할미는 랭수를 떠놓고 젊은 주인 좌진의 장수와 오복을 오래도록 빌고 또 빌었다.

이틑날 광천에 간 좌진은 며칠후 비룡(飛龍)이라 이름지은 호마(胡馬)한필을 사갖고 돌아왔다. 옛병서만 읽어왔던 그는 현대적인 군사기술을 장악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던거다. 하여 그는 집에 며칠 있지 않고 어머님과 하직하고 서울로 올라가 한국무관학교에 입학했다.

좌진은 련건동(蓮建洞) 278번지에 있는 친척집에 류숙을 정하고 매일 말을 타고 통학하면서 열심히 현대군사기술을 배웠다.

워낙 어려서부터 병서를 많이 읽없고 무예도 익힌지라 좌진은 출중한 학생으로 인정받아 17살을 잡는해에 졸업했다. 그런데 1905년 그해는 조선에 비운이 내리는 해였던 것이다.

1월에 경성(京城)의 경찰치안군을 일본헌병대에서 장악했고 찬정(贊政) 최익현(崔益鉉)은 고종에게 일본침략의 위험성을 상소했다. 허지만 랭혹이 덮치는 이 위험을 무엇으로 어떻게 막아낸단말인가? 2월에는 일본인 마루야마가 경복궁고문에 임명되였다. 그리고 4월에는 나라의 신경계통을 장악하고있던 통신원(通信院)마저 일본의 손에 들어가버렸다. 8월부터 연해와 하천에 일본상선들이 제멋대로 싸다니였다. 항행무역권도 그자들에게 허용되였던 거다.

백성들의 원성은 높이 터졌다.

<<이 나라가 왜놈의 세상이 되는구나!>>

그렇다, 틀리지 않았다.

9월 5일, 로씨야전권대표 윗떼와 일본 전권대표 고무라 류다로는 미국 포스마스에서 강화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에서 일본은 전쟁에 패한 로씨야로부터 려순과 대련을 포함한 료동반도에 대한 조차권, 관성자ㅡ려순간의 철도(소위 남만철도)와 북위 50도이남의 싸할린(화태), 오호쯔끄해와 베링그해에서의 어업권 등을 양도받앗을뿐만아니라 조선에 대한 정치, 군사, 경제상의 우월권을 승인받았다. 하여 일본은 이 조약에서 사실상 조선을 자기의 식민지로 전환시켯던 것이다.

11월, 이또 히로부미가 조선에 다시나타났다. 로일전쟁대 왔다간적이 있는 그를 사람들은 자기의 음으로 이등박문(伊藤博文)이라 불렀는데 임진왜란때 조선에 무수한 재난을 들씌운 도요도미 히데요시를 알고있듯이 그를 기억하고있었다.

<<여우가 좋은 맘을 먹고 남의 집 문을 긁을리 없다.>>

좌진이는 말했다.

아니나다를가 일이 났다.

바로 그달의 보름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볼일있어 홍성에 갔던 좌진은 려관에 들렸다가 거기서 서울서왔다는 웬 이목구비 번듯한 사나이가 일본과 조선사이에 <<보호조약>>이 체결되였고 민영환(閔泳煥 )이 자결했다는 말을 하는걸 들었다. 향년 44세인 민영환은 일찍이 좌진이 9살나던 해의 3월에 로시야 황제의 대관식에 특파된적이 있고 영국, 독일, 프랑스, 이딸리아, 오스트랄리아의 특명공사(特命公使)를 력임했던 나라의 문신이다. 그는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될 때 의정대신 조병세(趙秉世)와 해주관찰사 홍만식(洪萬植) 등 13유생과 더불어 조약페기를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이에 주민과 각국공사에 고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던거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알리 없는 좌진이는 그 말한 사나이를 되꾸짖었다. 

<<거 쓸데없는 거짓말 좀 작작하라.>>

<<안믿어지거든 이걸 보시오.>>

서울사나이는 호주머니에서 신문을 꺼내뵈였다.

신문에는 분명 큰 활자로 <<保護條約>>이라 또렷이 찍혀져있는지라 좌진은 맏지 않을래야 믿지 않을수 없었다.

<<아아, 내 나라가 이제는 이런 꼴이 된단말인가?>>

좌진은 송에 들고보던 신문지장을 발기발기 찢어 땅바닥에 동댕이쳤다. 그리고는 밖으로 달려나와 말을 풀어타곤 힘것 배를 걷어찼다.

초풍할지경 화닥닥놀랜 말은 앙칼진 소리를 내지르곤 냅다뛰기 시작했다.

가슴속에서 울분이 활화산같이 터진 좌진은 어디다 당장 분풀이할데도 없어서 그저 말만 미친듯 몰아댔다.

말은 어느새 갈산이 보이는 수리재골을 내려가고있었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거기 오른족 골짜기에 선친의 무덤이 있었다.

그런데 달려가던 말이 무덤에 채 이르지 못하고 마치 무엇에 걸채이기라도 한것처럼 폭 고구라졌다.

좐진은 동작이 하도 잽싸 상한데 없는데 말은 고꾸라진채 다시일어나지 못했다.

<<비룡아! 일어나!>>

말은 <<으흥>> 코투레질 뿐 네발로 하늘을 향하고 버둥거렸다. 그러는 말을 좌진이는 일어나라고 주먹으로 대갈통을 몇 대 갈겼다. 말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커다란 눈알을 까뒤집었다.

<<비룡아! 아하.... >>

좌진은 죽어가는 말의 목을 끌어안았다. 어떻게 살려낸단말인가.

좌진은 말을 팽가치고 달려가 선친의 무덤앞에 턱 무릎꿇곤 머리를 당에다 깊숙이 박았다.

<<아버지, 조선은 지금 망해가요!>>

그리고는 눈물을 하염없이 쏟았다.

<<아버지 듣나요. 이 아들은 유언대로 이젠 정말 불호랑이가 되겠어요.>>

온 나라가 울적한 기분에 잠겨버렸다.

5개조항으로 된 <<보호조약>>에서 일본은 도꾜에 있는 저들의 외무성을 통하여 금후 조선에 대한 외교관계 및 사무를 관계하며 조선은 일본의 중게가 없이는 국제적성격을 띈 어떠한 조약이나 약속도 할수 없으며 일본은 조선에 <<통감>>을 두어 외교사무를 관리케하는 외에 다로 각 지방에 리사관을 배치하고 <<통감>>이 이를 지휘한다는것을 규정하였다.

그런데 이 <<조약>>은 문제있었다.

11월 20일자 <<황성신문>>은 11월 15일 일본천황의 특사 이또와 면담시 고종의 언론을 공개했다.

 

<<조정이래로.... 국가의 중대사건이 있을 때에는 정부의 대소관리들, 전임 및 현임 대신들과 밖으로는 선비들까지도 의논한 후에야 체결하고 또 국내신사, 백성들의 여론까지도 물어가면서 시행하는 전례가 잇었으므로 짐이 자의로 결정하지 못하노라.>>

<<이 조약을 허락하면 곧 나라가 나라가 망하는것과 같으니 짐은 차라리 종묘사직에 순국할지언정 인허치 못하리라.>>

 

한즉 을사년의 이 <<보호조약>>이란 황제 고종의 수표와 국새날인을 받지 못한것만은 사실, 비법무효의 위조문서였던 것이다.

하건만 일본천황은 뻔뻔스레도 <<을사조약>>을 공포한 닷새후인 11월 22일에 이른바 <<통감 및 리사관에 관한 칙령>>을 만들어 반포했다.

분노할 일이였다!

고종은 11월 26일 미국인 헐버트와 프랑스주재 공사 민영찬에게 비밀전보를 보내여 자기의 태도를 아래와같이 똑똑히 표명했다.

<<짐은 총칼의 위협과 강요아래 최근 한일량국간에 체결된 이른바 <보호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한다. 짐은 이에 동의한적도 없고 금후에도 결코 동의하지 않을것이다.>>

 

<<황성신문>>의 주필 장지연(張志淵)이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논설을 써서 자기 신문에 발표했다.

<<잡아서 간이나 씹어 없애치울 역적놈들!>>

좌진은 그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고 주먹이 떨리였다.

그랬다. 그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고 주먹을 떨지 않은 사람이라곤 없었다.

11월 20일신문의 그 글은 일본침략의 부당성과 조약의 무효를 주장했고 영달과 리익에 눈이 어두워 일본의 위협에 그저 벌벌 떨면서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된 저 개 돼지만도 못한 대신(大臣)이라는 자들은 이제 무슨 면목으로 황제와 국민들을 대할것이냐고 크게 꾸짖었다.

이 론설과 함께 <<황성신문>>은 또한 <<오건조약청체전말(五件條約請締顚末)>>이라는 제목으로 이 조약이 강제적으로 맺어지기까지의 경위를 폭로했다. 장지연이 이 사실과 기사를 실은 신문을 일본군의 검열을 받지 않고 배포한 것으로 하여 <<황성신문>>은 무기정간처분을 당하고 사장인 그와 공무원을 포함한 10여명의 사원이 체포되였다.

일제의 이같은 무자비한 탄압에 그래 조선의 신문들은 한마디의 말도 못한단말인가? 그런것이 아니였다. 영욱인 배설(T.E.BCTHELL)이 경영하는 ,<대한매일신보>>는 11월 21일지에 장지연의 구속과 <<황성신문>>이 정간되였음을 제꺽보도하고 23일에는 도 경무청의 일본인 경찰고문이 장지연에게 <<어째서 검렬을 받지 않고 신문을 발행하여 치안을 방해케 하느냐>>고 묻자 장지연이 도리를 따지면서 반문하고 항변하여 일본인 고문으로 하여금 대답못하게 만들어놓은 사실을 보도했다.

글을 좀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모두 신문을 보았고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보호조약>> 즉 <<을사조약>> 혹은 <<을사5조약>>이라고도 부르는 이 전대미문의 엉터리조약으로 일어난 파문이 쉽게 가라앉기는 만무한 일이였다.

민영환의 뒤를 이어 며칠사이에 조병세와 홍만식도 자결하고말았다. 비보가 전해지더니 해가 바뀌여 1906년의 벽두에는 리용익이 로씨야에서 암살되였다는 소식이 건너왔다. 그는 본래 륙군부장(陸軍部長)이 되어서 일본세력의 구축을 위해서 프랑스, 로씨야 세력과의 제휴룰 꾀하라는 고종의 밀령을 받고 프랑스로 건너가려다가 풍랑으로 좌절되곤 로씨야에 망명했던 사람이다.

이해의 2월에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였고 림시통감대리에 하세가와가 취임했다.

<<을사5조약>>에 빙자하여 설치된 통감부는 닐본이 조선에 군림한 통치기관이였으며 그 우두머리인 통감은 조선의 외교권과 내정 등 모든 실권을 장악한 실제적인 식민지총독이였다.

통감부(統監府)의 설치로 리조봉건정부는 아무런 실권도 가지지 못한 친일매국노의 허수아비기관으로 전락되였다.

 

<<한국내정은 일본인이 지휘하고 외무는 동경에서 관할하니 한국독립이 지금 편안히 존재하는가 단지 황제존호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것은 3월 9일, <<대한매일신보>>가 조선이 당하고있는 현실의 처지를 개탄해서 실은 글이였다.

이달에 민종식이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한편 초대통감에 이또 히로부미가 부임되였다.

이또가 통감에 부임되면서 조선에서는 그 전해의 말에 각국주재공사를 소환했던 탓으로 조선에 주재했던 각국 공사관들도 재빨리 철수되였다.

5월에 전참찬 최익현이 전라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전해의 11월에 고종은 그에게 비밀지령을 보내여 경기도를 제외한 전국의 7개도에서 반일의병투쟁을 벌리도록 한바가 있었는데 이제 그것이 행동에 옮겨진것이다.

온 삼천리강토에서 반일정서가 점점 고조되고있었다. 그러더니 10월에 잡아서는 마침내 전국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일제는 서울에다 통감부까지 설치하고나서 통감의 감독하에 서울, 인천, 마산, 목포, 군산, 진남포, 평양 및 대구 등 20개소에 거류민단을 조직하고 침략군을 끌어들이기시작했다. 1906년 3월에 들어온 군인수가 61,900여명이던것이 반년이 지나 9월에는 80,700명으로 늘어났다.

일본은 각지방의 주요도시를 강점한다음 <<수비대>>와 경찰대를 배치하고 경비를 강화했다. 그러나 의병들은 온갖난관을 무릅쓰면서 용감한 투쟁을 벌리였다. 이 투쟁의 앞장에는 충청도와 전라도지방의 의병들이 서있었다.

의병대조직자들가운데는 최익현, 민종식과 같이 이름난 유생들과 퇴직관리들이 있는 반면에 이미 오래전부터 농민폭동에 참가한 신돌석과 같은 폭동지휘자들도 있었다.

그네들은 구국항쟁을 벌릴데 대한 글을 많이 발표하였다. 그가운데서 가장 큰 영향을 준 글이 여러사람이 돌려보는 <<통문>>이였다.

반일의병투쟁을 세차게 일으키기 위해 서울에서 13도유생을 대표하여 26명이 련명으로 낸 의병통문은 아래와 같은 내용이였다.

 

<<저 일본이 임진년이래 한하늘을 같이 이고 살수 없는 원쑤인데 매국도배는 원쑤임을 잃어버리고 강화하여 갑오년 국보를 빼앗기는 해를 자아냈으며 또 을미년 왕후의 망극한 변을 당한것을 어찌 차마 말하겠는가. 지금사세가 우리 부형을 해치며 우리 자제들을 잡아가두며 우리 처자를 릉욕하며 우리 몸뚱이를 훼상하는것이 목전에 박두하였다. .... 어떻게 평일의 고정된 의리만 고수하여 팔짱을 끼고 물러앉아서 천만고에 없는 비상한 변고를 순수히 받고 필경에는 살아서 용납할 곳이 없는 사람이 되고 죽어서 돌아갈데가 없는 귀신이 될가부냐. 전국인민이 죽기로서 한몸이 되여가지고 안으로는 선정을 하고 밖으로는 강한 적을 막아내자.... >>

 

<<통문>>에는 또한 비록 요긴하게 소용되더라도 일본물건은 사지 말고 기차와 기선을 타지 말고 전신과 우편은 이미 빼앗겼으니 절대 리용하지 말라고 했다.

<<통문>>외에 <<격문>>과 기타의 글도 많이 나왔다. 어떤 <<격문>>은 백성들이 옷을 찢어 기발을 만들고 반일의병투쟁에 나서며 특히 땅파고 막일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설것을 강조했다.

좌진은 물론 <<격문>>도 보고 <<통문>>도 보았다.

(어떻게 할가?.... )

그는 속이 움찔거렸다. 가슴속에서 피가 설설 끓어번지였다. 허나 그는 감정에 충동되지 않고 랭정히 사고하면서 지그시 참았다. 가노를 해방시킨 후 한가지 거룩한 구상이 무르익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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