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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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 2장 (5)
2014년 12월 30일 17시 59분  조회:2201  추천:0  작성자: 김송죽
 

  5.

 

   두 정찰병이 도시로돌아오고있었다. 장패장과 김려홍이였다.  그들의 이반 정찰임무는 호룡산에 있는 토비들의 근일 활동정황을 알아내는 것이였다. 지금도시주위 백여리 이내에 잇는 수십개 마을들에는 시에서 공작대를 파견하여 군중을 발동하고 무기고들을 헤쳐 총을 나누어주었기에 자체무장이 잇게되였다. 마을마다 자위개를 조직하여 마을을 지키고 익을뿐만아니라 련방제도를 실시하여 안전을 기하고있다. 마을과 마을지간에 소식이 령통했고 행동이 과연 민첩했다. 만약 어느 한 마을에 토비가 달려들면 린근의 마을들에서 인차출동하여 함께 대처하길래 웬간한 토비무리는 감히 달려들지 못했다. 한데 이러한 마을을 제외한 기타의 마을들에는 자위력이 없어서 토비들에게 무척 시달림을 받고있었다.

   <<장패장동무, 우리는 이번에 별루 정찰한게 없지 않습니까. 토비들이 략탈하는건 다 아는건데... >>

   <<아니 동무는 정찰을 어떻게 했소? 그자들이 퍼뜨린 소문을 들은건 정찰이아니요?>>

   <<그까짓 란설을 갖고서... >>

   <<하 이 동무, 그게 란설인지 진설인지 동무가 어떻게 판정할수 있소?... 란설이라해두우리는 그 란설이 나오게 된 근원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오. 적들은 뭣 때문에 도시로 쳐들어온다는 소문을 또 퍼뜨렸겠소? 음력설전에 쳐들어오겠다는데... 이건 중시해야 할 문제요.>>

   장패장은 여러곳 마을을 돌아다니며 들은 꼭같은 소문에 대해서 각별히 중시하고있었다.

   (참, 그럴사하기도 하다. 왜서 그런 소문이 낫을가? 그게 그저 허풍떠느라고 꾸며 퍼뜨린 요언일가?... )

   려홍이는 아직 단순하고 거치르고 심각치 못한 자기를 스스로 뉘우치면서 항일련군이였던 장패장이 적정을 제대로 포착하는 정찰병다운 재능에 감탄했다.

   <<정찰병은 밝은 눈 밝은 귀로 보고 들은후에는 명석한 두뇌로 그것을 분석해낼줄을 알아야 하오.>>

   장패장은 사람의 주의를 끌지 않은 곳에 왕왕 본질적인 것이 숨어있을수 있다면서 화제를 다른데로 돌렸다.

   <<려홍동무는 당수를 언제 배웠소? 나는 기껏해야 권투를 좀 알뿐인데 동무는 나보다 받기와 차기를 더 알거던! 난 그게 부럽소. 왕정위도 동무한테 그런 재간이 있다는걸 알고 젊은 사람이 언제 그런걸 배웠느냐고 대견해하더구만.>>

   <<아니 왕정위가 그러시더란말입니까!>>

   <<그렇소, 장차 정찰련에다 보급시켜 매개 정찰병들이 그런 재간을 장악하게끔하라고 지시했다오. ... 그러니까 이제 김반장을 정식교련원으로 모실지도 모르겠소.>>

   <<저같은게 어찌... 그리고 대단한것도 없어요.>>      

   려홍이는 처녀들처럼 낯을 붉혔다. 똑똑히 말해서 그는 아직 왕정위를 잘 모르고있었다. 약 20일전에 관내에서 파견되여 온 이 로 항일간부는 몸집이 웅장한편은 아니나 골격이 크고 단단하게 생긴데다 50미만의 왕성한 근력이 드러나보이는 분이였는데 모두들 보통인물이 아닐거라고 수군수군했다. 처음보는 상급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렇겠다느니 저렇겠다느니 추측과 평가가 있기마련이다. 려홍이는 어느 한 상급을 저울판에 올려놓고 무계를 가늠하려고는 하지 않았지만 가부간 그의 래력에 대해서만은 알아두어야겠다고 느껴졌기에 꼬치꼬치 캐여묻지 않을수 없었다.

   그랬니 장패장은 부대 선전과장한테서 들은 소리라면서 왕정위는 1935년 11월에 장개석의 <<포위토벌>>을 물리친 직라진전역에서 특공을 세운일이 있고 일제침략지를 항격하는 싸움에서도 여러차례 공을 세운 영웅이라했다. 듣고보니 대단한분이였다. 그리고 이렇게 정위로 파견되여왔으니 물론 정치적지도능력도 대단할것이였다. 박퇀장, 마참모장, 김영장, 전련장 그리고 정찰을 함께 다니면서 늘 무엇이든 깨우쳐주고있는 이 장패장과 같은 사람들도 모두가 험있고 능력있는 사람들이다. 려홍이는 해방전에 반공선전을 적지 않게 들었다. 놈들은 산속에서 갖은 풍상고초를 이겨내면서 저네들을 반대하여 한사코 싸우는 항일련군사람들을 토비라느니 비적이라느니 하고 악선전을 했는데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은 허무하기 짝이 없는 중상에 지나지 않았다. 실로 지금에 와서 보게되고 알게 된 이 사람들은 듣던 그런 악선전과는 전혀 다른 류형의 사람들이였다.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에게 자신의 피와 목숨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주고있는 이네들이야말로 가장 위대하고 거룩한 사람으로 안겨와서 려홍이는 그들을 한평생 존경하고 따르고싶었다.

   <<김반장, 내 한가지 묻겠는데 제대루 대답하겠나?>>

   장패장이 멋진 수염을 손바닥으로 내리쓸면 넌지시 물었다.

   <<뭘 그럽니까?>>

   <<저... 올해 스믈다섯이라지. 장갈갔다는 소린 못들었는데, 어디다 약혼은 해놨는가?>>

   려홍이는 패장이 이런것은 왜 묻는지 몰라서 쭈물거리며 대답을 얼른 못했다,.

   <<하긴 어째볼새두 없었을거야. 감옥살이를 두해나 했다지 집에 갔다가 도주해서들어왔지...>>

   이렇게 일부러 묻는데 구태여 속일 필요는 없을것 같았다. 그래서 려홍이는 골직히 속심을 털어놓았다.

   <<패장동무, 턴 잔치를 하잖았을 뿐이지 약혼은 했습니다. 제 마음에 드는 처녀인데 마을에 두고왔지요. 네, 나이말입니까? 올해 스믈두살입지요... 아마 저한테 마음두고 기다리느라 여직 시집을 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허허, 그렇겠지. 그런걸 접때 누군가 약혼도 하지 않은 총각이라했군.>>

   성격이 걸걸한 장패장은 벙긋이 웃으며 가늠하는 눈길로 려홍이를 함참 보다가 고개를 돌리고 묵묵히 걸었다.

   려홍이는 일편단심 혁명을 하느라 나이 서른이 되도록 아직 약혼했다는 소문도 없는 로총각인 패장앞에서 어쩐지 모름지기 자기가 약혼한것을 자랑한것 같아서 쑥스럽고 미안쩍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머리를 수굿하고 걷다가 입을 열었다.

   <<패장동무, 전 약혼은 했어두 지금 장가갈 궁리는 꼬물만큼도 없습니다. 먼저 원쑤들을 소탕하고봐야 하니까요. 저 .... 그런데 패장동무, 제가 약혼녀를 데려오면 부대에 넣어주겟어요? 진심으루 이건... >>

   <<거참 좋은 생각을 했구만! 혁명은 녀성들에게도 한몫있지. 공동한 길에서 전우로 된다면 그땐 사랑도 더 의의있고 굳어지게 될거요.>>

   장패장의 진심스럽고 시원시원한 소리였다. 려홍이는 흐믓한 심정에 잠겨 고개를 수굿하고 걸었다.

   낮익은 신작로에 들어섰다. 도시의 급수탑과 굴뚝들이 보였다. 려홍이는 사모자촌을 떠나 도시로 가던 날 말애게 풀을 뜯기우느라고 바로 이 길섶에 앉아 쉬던 일을 잊을수가 없었다. 출세욕에 들떳던 미치광이같은 백납먹은 자와 사향뒤쥐처럼 냄새피우던 녀석의 몰골이 떠올랐고 리경광의 상판을 채찍으로 후려쳤던 일이 즐겁게 상기되였다. 이제와 보면 그때 탄알에 어깨를 맞고 자선병원에서 치료받지 않고 항승병원에 들어가기를 잘했다. 그랫기에 치료를 빨리 받고 남보다 대오를 먼저찾을수 있은게 아닌가. 인생의 길에선 전혀 예상치 않았던 불행을 갑자기 당할수도 있고 또 당한 불행이 예상치 않았던 행운으로 바뀌우는 경우도 있을수 있는것이다. 려홍이는 이 두가지 경우를 다 당해보았다고 할수 있었다.

   <<아직 30리길은 실히 남았으니 서너시간은 걸어야겠군!>>

   장패장은 길가에 있는 립정표를 보며 말했다. 묵묵히 걷던 그가 또 말을 꺼냈다. 이번에는 반장인 려홍이더러 자기 반 전사들에 대해서 한번 자기절로 감정을 해보라는것이였다. 려홍이는 자기를 제외한 11명 정찰병들의 출신이며 문화정도며 성적이며 임무를 완수하는 정도며를 하나하나 말했다. 장패장은 다 듣고나서 두사람에 대한 자기 견해를 내놓았다.

   <<최재명을 지식분자로 볼수 있소. 온 부대치고 그 사람처럼 중학을 다녀본 사람이 거의없다싶히 하니깐. 배운 지식을 썩이지 말도록 해야 할것이요. 동무네반의 문맹퇴치사업을 그한테 맡겼는데 참 잘했소. 그렇게 책임을 맡기고 그 책임을 다하겠끔 고무추동해주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좀 안다고 코대를 쳐들면 군중위신을 잃을수 있으니 주의해야하오.>>

   <<지식인의 냄새를 좀 피우긴 합니다만 임무를 적극적으로 완수하고 반의 사업에 열정적이길래 지금은 전사들에게 돌림받지 않고있습니다. 속담에 <다북떡쑥도 삼밭에 나면 곧아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결바른 사람으로 되겠지요. >>

   <<하하하, 그렇게 되면야 좋은 일이지.>>

   장패장은 한바탕 웃고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리홍석동무는 요즘 어떻소? 이번에 복리툰으로 정찰을 나갔으니 언녕 돌아왔겠지.... 김반장은 그가 규률성이 강하지 못한걸 크게 치치 않는데 그렇게해서야 되겠소?>>

   <<패장동무, 홍석이는 적개심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복수만을 생각하고있지요. 그러니... >>

   <<그러니 규률성이 약한건 별문제란말이지?>>

   장패장은 말을 중간채고나서 부드럽게 그러나 엄숙하게 말끝을 이었다.

   <<복수심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거요. 지도원동무도 전번에 말씀했지만 이 문제를 정확히 해결하지 못하고는 대오에 들어와도 튼튼히 서있을수 없소. 왜냐하면... >>

   (또 사상교육이구나.)

   려홍이는 아무 응대도 하지 않았다. 패장이 계속하는 다음의 말들은 건성으로 스쳐버렸다....

   부대에 도착하니 정오가 이미 지나 인민무장부대청사앞 넓은 광장에서는 오후 훈련이 한창이였다. 전사들은 구역구역 나뉘여 구령에 맞추어 힘있고 날렵한 몸가짐으로 창격련습과 수류탄던지기련습을 하고있었는데 <<싸! 싸! >>하는 웨침소리. 총창의 절걱거리는 소리... 모든 것이 귀맛좋게 들려왔다. 려홍이는 먼 로정에 몸이 지쳤어도 매양 부대에 돌아와 훈련을 다그치고있는 전사들을 볼 때면 감격과 흥분으로 가슴은 불플군했다.    .

   광장을 꿰질러 곧추 련부쪽으로 꺾어도는데 언저부터 나와 기다렸는지 정찰련의 전련장이 반겨맞으면서 바퇀장이 시계를 자주보며 기다린다고 알려주었다. 그리하여 그들 두사람은 로독도 풀 짬이 없이 곧추 퇀부로 향했다.

   그들이 붉은 기발이 날리고있는 3층집과 고리가 썩 가까워졌을 때 담회색 군복을 입은 녀성 셋이 후근처에서 나와 퇀부로 들어가고있었다.

   <<웬 녀성동무들이요?>>

   <<어제 방금 온 위생병들이요.>.

   패장의 물음에 전련장은 코등으로 미끄러져내리는 안경을 바로잡으며 대꾸했다.

   <<팔팔한 처녀들인데 퇀부에 배치했다오.>>

   (정찰련이 퇀직속이니까 저치들이 이제 우리마저 간섭하려들게다. 하필이면 남성위생병들을 남기지 않고 저런... )

   려홍이는 이렇게 속으로 두덜거리며 피끗 뒤를 돌아다보는 순간 안으로 쑥 들어가는 한 녀인의 모습에 신경이 아프게 긁히였다. 매력있는 몸매, 기다란 머리태, 얼핏 스쳐지나가는 얼굴모습....

   (아, 저게 누굴가? 어쩌면 저렇게도 신통하담?!)

   려홍이는 순간적이나마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래층 저기 안쪽 어느 방에선가 방금 들어간 녀위생병들의 웃음소리가 간간히 울려왔다. 모양새를 한번만 더 봤으면... 려홍이는 걷잡을수 없는 흥분에 사로잡혀 층계를 올라갔다.

   박퇀장과 마참모장은 지도를 가운데 펼쳐놓고 탁상에 마주서서 머리가 서로 대일지경 수굿하고 무엇을 찾고있다가 정찰병들이 들어서는바람에 얼굴을 들었다.

   <<수고들했소! 딴데갔던 사람들은 언녕왔는데 동무들이 돌아오지 않아 기다리던 참이요. 경위원, 더운물을 가져와. ...음!>>

   박퇀장이 친히 더운물 한고뿌씩 따라주었다. 려홍이는 물을 마시려다가 고뿌를 가까이에 있는 상우에 도로놓고 시큼시큼해나는 무르팍슬개골을 자근자근 뚜드렸다. 장패장은 꿋꿋이 선채 정찰보고부터했다. 마참모장이 일어서려는 려홍이를 어깨눌러 앉혔다.

   <<동무는 그냥 앉아 쉬여도 되오. 6백리길도 너머 걸었으니 다리뼈가 뻐근할게요. 앞으로 동무들에게 말을 줄테요.>>

   그의 낮은 음성속에는 전사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관심이 슴배여있었다.

   <<뭐, 음력설에 쳐들어온다구? 허허!>>        

   박퇀장은 짙은 눈썹을 찌긋하고 정찰보고를 곰곰이 다 듣더니 어이없어 웃었다.

   <<음력설이라? 가만있자, 그럼 며칠남지 않았군!... 이건 너무도 보깨는걸.>>

   <<정보가 좋소! 필경 어느 경망한자의 입에서 작전계획이 루설된 소문같은데... >>

   박퇀장이 사색을 깊이하려다 문득 생각나는지 려홍이를 돌아다보며 한경 친절하고 웃음기 담긴 음성으로 알려주었다.

   <<김반장, 이거 깜박 잊을번했네, 아래층 의무실에 가보오. 동무를 만나려는 사람이 있소.>>

   <<동무의 약혼녀가 왔소!>>

   <<네?!...>>

   마참모장이 해석까지 달아주어 헤옥이가 왔다는것을 똑똑히 알게 된 려홍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여기룬 어떻게 찾아왔답니까?>>

   <<이제 만나면 의례 말하지 않을라구, 자 어서 가보오.>>

   <<허허허, 재미있는 친구들이군!>>

   박퇀장과 마참모장은 마주보며 쾌활하게 웃고나서 다시금 적정을 올바로 파악하기에 골몰했다.

   <<옷이나 갈아입고 만나라구.>>

   려홍이는 장패장이 일깨워주는 말도 미처 받아듣지 않고 거기를 나왔다.

가슴타는 괴로움을 이겨냈기에 이젠 상봉의  났다. 려홍이는 손기척을 한번 해놓고는 인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상자안에서 약품들을 꺼내서 약장에 정리해넣고있던 위생병들이 문득 뛰여든 사나이를 보자 적이 놀란 표정을 하고 일손들을 멈추었다.

   <<혜옥이! 나야!>>

   <<아? 저!... >>

   혜옥이는 쥐였던 약병을 얼른 놓고 달려왔으나 악수도 선듯이 못하고 머뭇거렸다. 마침 려홍이의 후덥고 아퀴센 손이 자기 손을 먼저 잡아주어서야 다시금 쳐다보며 웃는데 거울같이 맑던 그의 눈에선 어느덧 눈물이 남실남실 흘러넘쳤다. 그러다가 머리를 푹 수그려 소리없이 눈물을 주르륵 떨구었다. 려홍이는 세차게 흔들리는 혜옥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의 허연 목깃을 이윽토록 바라보며 흥분에 들까부는 자기 가슴을 진정시켰다.

   뜻밖의 상봉을 앞에 두고 두 위생병ㅡ 춘자와 옥금의 눈에서도 어느덧 뜨거운 이슬방울이 맴돌았다. 그들은 두 련인이 감격의 소용돌이속에서 말없이 서있는것을 새삼스레 감촉하자 마치 무엇을 훔치러 들어왔다가 들킨 사람 모양으로 얼른 자리를 피해버렸다.

   <<아니, 모두 왜 가니?... >>

   혜옥이는 환각에서 소생한것처럼 눈을 두리번거리며 소리쳤다. 그리고는 환희에 다홍물이 든 자기 얼굴을 마음놓고 려홍의 품에 파묻었다. 리별의 가슴타는 괴로움을 이겨냈기에 이젠 상봉의 황홀한 기쁨을 마음껏 맛보고있지 않는가. 혜옥이는 안도와 그지없는 기쁨에 푹 잠기였다. 려홍이는 쿵쿵 뒤는 자기 가슴속에 그를 포옹한채 말없이 서있었다. 할말이 너무도 많았건만 정작 이렇게 만나고보니 무슨 말부터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내가 여기루 온걸 어떻게 알고 찾아왔나요?>>

   혜옥이가 얼굴을 들어 자기를 애무하는 려홍이를 말끄러미 올려다보며 물었다.

   <<박퇀장이 알려주도구만, 헌데 그분이 나와 동무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알고있소?>>

   <<왜 모르겠어요. 어제저녁켠에 나를 부릅디다. 그래서 갔댔어요. 퇀장실에는 박퇀장이 게시구 왕정위와 마참모장도 게셨어요. 그분들이 나한테 손가장에 있는 별동대놈들의 형편에 대해서 이것저것 자꾸 캐묻습디다. 그래서 난 일고잇는것만큼 다 말했어요. 그러다나니 자연 동무와의 사이도 말하게 된거예요.... 벌서 좀 알고들있더군요. 항승병원황주임 있잖아요. 동무가 치료를 받은 그 병원에 계시는 녀성분말이예요. 그분이 아마 박퇀장한테 얘기했던모양이지. 그들은 부부간아닌가요.>>

   혜옥이는 황주임을 좋은 아주머니라면서 여기로 오던중 말파리를 만나 다행히 구원받은 일이며 오자마자 단기훈련반에 들어 학습했던 일이며를 얘기하고나서 이번에는 자기가 손가장을 떠날때의 일을 말했다.

   <<내가 징역굴같은 그놈의데서 나오지 않았더면 어떻게 되었을가?...>>

   이젠 마음에 쌓였던 고통을 떨어버릴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애닯던 지난날을 죄다 털어놓았다.

   <<오빠는 나더러 꼭 떠나라고 했어요. 그리고 나도 하루도 저 있고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끝내 떠나오고말았어요. 오빠는 동무를 몹시 생각하고 그리워해요. 그런데 오빠는... 난 박퇀장한테 싹 다 말했어요. 박퇀장은 나보고 울지 말라면서 오빠를 구원해주겠다 했어요. 손가장백성들을 인츰 다 구원해주겠다 했어요!... >>

   려홍이가 손가장 사람들의 안부를 물어본건 더 말할것 없는 일이였다. 그는 자기를 행운아로 여기는 혜옥이를 보면서 기분좋게 말을 이어갔다.

   <<혜옥이, 날 몹시 생각했지? 나도 그랬어. 이렇게 만나니 정말 꿈닽다니까... 이젠 전처럼 오빠라 부르지 말고 두글자를 더 붙여 동무라고 불러. 나도 이제부텀은 혜옥이를 혜옥동무라 부를테니까. 어때, 좋지??... 우린 동무로 됐어!>>

   <<좋아요, 그렇게 부르겠어요. 그런데 한가지 말못했어요. 우린 이젠 전우로도 됐어요.>>

   <<아, 그렇지, 그래! 그지간에 벌써 배웠구만. 하하하!>>

   전우란 생명을 피로 이어줄 사이가 아니냐.

   려홍의 맑은 눈이 예지로 빛났고 혜옥의 얼굴에는 드높은 긍지와 행복으로 아름다워진 웃음이 남실거렸다. 두 청춘의 가슴은 기쁨과 희망으로 부풀었다.

   <<그런데 이봐요. 김동문 얼굴이 너무 수척해졌어요.>>

   <<동무는 더 고와졌소. 이젠 의였한 우리네 위생병이 됐으니 기쁘오.>>

   <<그래요! 나도 동무와 함께 있게되니... 그런데 옷은 왜 이 모양으로 차려입었어요? 신통히도 토비비같애요.>>

   <<그래서 첨엔 날 그렇게두 몰라본건가? 허허허, 내분장이 괜찮은모양이구만, 정찰병들은 나갈 때 이렇게 차려야 하오. 이제 곧 옷을 갈아입거던 보오. 그땐 사랑하는 제 사람으로 보일거요.>>

   <<아니, 옷을 나쁘게 입어서 제사람 아니라는게 안예요. 처음엔 몰라보고 호... >>

   혜옥이는 처음 만나쑈을 때처럼 또다시 얼굴을 붉혔다. 둘이 이러고있을 때 문이 덜컥 열리더니 금록이와 청송이 느닷없이 뛰여들었다.

   <<김반장, 이거 참... 오늘은 기쁘겠소!>>

   금록이 웃으며 넋살좋게 말했다. 청송이는 소리없이 웃으며 제쪽에서 귀밑이 빨개서 부끄러워 어쩔줄 몰라했다.

   <<혜옥이, 인사하오. 이 단단하고 씩씩한 청년은 박금록이라 하는데 발전소에서 공인으로 있다가 부대에 들어왔구 저 고수머리 애숭이는 김청송이라 부르는데 제혁공장에서 견습공으로 있다가 들어왔소. 모두 나와 한반에 있는 훌륭한 전우들이요.>>

   <<아, 그래요! 건데 어디서.... 면목 좀 있어보이는군요!>>

   혜옥이는 려홍의 소개를 듣고 약간 놀란 눈으로 두 두 청년을 다시보며 반갑게 부르짖었다.

   <<장차 자세히 알게 되겠지만 우린 서로 보통처지가 아니였소. ...그런데 이봐, 홍석이는 왜 오지 않았나?>>

   <<방금까지두 누워있었는데 어디루 나갔는지 <박퇀장은 우릴 들여않혀 알을 깨울 예산인가?> 하고 두덜대더니 밖으로 휑 나가버렸소.>>

   하고 청송이는 무엇이 우스운지 혼자 히쭉 웃었다.

   <<그 앤 조급증이 많은게 큰 탈이요. 정찰을 나가지 않고 하루만 있어도 엉덩이에 좀이 생겨 쑤셔나는지 가만있지를 못하고 들랑날랑한단말이요.>>

   부반장인 금록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준비만 다 되면 의례 싸움하러 나가지 않을라구 그렇게 조급해하는가 원.>>

   려홍이는 좀전에 홍석의 규률성을 절대 소홀히 여기지 말라고 당부하던 장패장의 충고를 얼핏 상기했다. 이럴즈음에 아까 의무실에서 나갔던 춘자와 옥금이가 부끄러워 서로 앞서 들어가라고 밀거니끌거니하다가 살며시 들어섰다.

   <<동무즐의 사업을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천만에요!>>

   <<눈치무딘 우리가 더 미안해요.>>

   려홍이의 례절바른 인사에 두 위생병처녀는 머리를 수굿하고 도리여 사과했다.

   <<한가지 물읍시다!>>

   롱을 즐기는 금록이가 좋은 기회를 만났다고 짐짓 엄숙한 태도를 지으며 나섰다.

   <<요전날 팔팔한 청년들이 빈들빈들 논다구 하던게 누굽니까?>>

   아닌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불쑥 들이대는 질문에 처녀들은 얼굴이 빨개져서 몸둘바를 모르고 쩔쩔맸다. 그래도 얼굴을 숨기고 돌아섰던 옥금이가 점직한 가운데서도 솔직한 말을 했다.

   <<량해하세요. 그건 제가 그랬어요.>>

   <,동무가 그랬다?... 허, 동무는 입이 꽤 걸런데... 안되오, 량해라는게 다 뭐요. 난 혁명동지를 함부로 조롱한 사람을 가만놔두지 못하겠소.>>

   <<용서하세요. 입으로 지은 죄니까 입으로 씻어도 되잖는가요.>>

   떡심좋은 옥금이가 능청스레 둘러대길래 모두 웃음통을 터치고말았다. 방안은 유쾌하고 화애로운 기분에 포근히 잠겼다.

   땅거미지고 방안이 어두워 전등을 켰다. 이젠 저녁식사시간도 되었기에 의무실에 있던 여섯사람은 문을 나섰다.

   바로 이때, 바깥에 나와 돌던 리홍석이가 식당을 향해 시적시적 걸어가는데 까마귀가 머리우를 날아가면서 까욱! 까욱! 울어댔다. 리홍석은 곱지 않게 까마귀를 흘겨보며 두덜댔다.

   <<저 빌어먹을 까마귀가 왜 방정맞게 저모양이냐 제길!>>

   그러자 마을에서 도망치던 날, 까마귀들이 거적덮은 부모님들의 시체에 달려들던 일이 선히 상기되였다.

   <<허, 까마귀 우는게 무슨 변리요. 세상에 울지 않는 까마귀가 어디 있다구?>>

   방금 보초를 교대해주고 들어오던 면목 모를 전사가 싱겁게 남의 혼자말에 참견했다.

   <<동무 뭐라우?... >>

   음성이 거칠어진 홍석이는 자기 몸에서 권총을 찾다가 없으니 그의 어깨에서 총을 얼른 잡아챘다. 그리고는 격발기를 절컥거리며 얼른 장탄을 했다. 그 전사가 어리둥절 했다가 급기야 놀란 소리를 쳤다.

   <<안되오! 남의 총은 왜서 뺏으며... 이게 무슨짓이야?>>

   하지만 홍석이는 일단 자기 손에 잡힌 총을 쉽게 돌려줄 잡도리가 아니였다. 총을 빼앗긴 전사는 그가 무슨 거조를 낼것만 같아서 도로찾으려 달려들었으나 억센팔에 탁 밀쳐서 궁둥이가 깨질 지경 언땅에 철썩 넘어지고말았다.

   <<사람이 쩨쩨하게... 그까짓 총알 하나 뭔가.>>

   홍석이는 씹어뱉듯이 사납게 뇌까리면서 총을 두손으로 번쩍 받쳐들더니 방금 날아가 굴뚝우에 앉은 까마귀를 겨누고 방아쇠를 질끈 당겼다.    <<땅!>> 소리와 함께 까마귀는 날개를 푸덕거리며 땅에 떨어졌다. 갑작스레 울린 총소리에 모두 깜짝 놀랐다. 사달이 생겼다.

   <<이게 무슨짓이야 !...>>

   <<누가 총을 쐈는가?... >>

   전사들이 욱 모여들면서 시야비야 떠들기 시작했다. 땅에 넘어졌던 그 전사는 급작스런 변을 당하고보니 어리뻥뻥해서 말뚝같이 서있었고 홍석이는 뻔뻔스럽게 그냥 총을 쥐고있었다.

   <<이게 무슨짓이야 엉? 이게 무슨짓인가?... >>

   금록이는 자기 반 전사임을 알자 되게 꾸짖었다.

   <<총을 놔. 누가 맘대루 쏘라했어? 놓으란데두.... 그래두 또 맘대루 쏠판인가?>>

   <<쏠테야! 모조리 쏴버릴테야!>>

   홍석이는 완강하게 맞서면서 까마귀를 또 찾는데 그 몰골이 점점 더 험악해졌다. 놀래고 야유하는 눈들이 번득거렸다.

   <<저치가 누구야, 뻔뻔스레 총을 그냥 쥐고있는데?... >>

   <<나가 돌아만 다니다보니 규률이 뭔지두 모르는 모양이지.>>

   <<정찰병이라는게 하긴 잘 하네... >>

   전사들은 모욕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총을 놓아라! 그냥 쥐고있을테냐?>>

   려홍이 와서야 총을 빼앗아낼수 있었다. 홍석이는 그 자리로 직일에게 잡혀갔다.

   려홍이는 저녁도 목지 못하고 숙사에 박혀 골통을 싸쥐였다. 다른 정찰병들도 마음이 부산해서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실로 난처한 일이였다.

   (참 말썽거리야.... 이젠 온 부대에 소문이 퍼질게구... 검토를 받아야겠지. 설은 기분없이 쇠게 됐군 허참... )

   려홍이는 속이 탔다. 그런데다 최재명이 와서 아픈 신경을 더 허벼놓았다.

   <<반장동무, 이거 원 창피스러워서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저따위 규률위반자를 그래 가만둘수 있습니까? 당장 우리 반에서 쫓아냅시다.>>

   <<쫓아내자구? 다시말해봐, 쫓아내자구?>>

   려홍의 음성은 무섭게 떨렸다. 그는 사납게 최재명을 쏘아보았다. 최재명은 눈치를 살피더니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네가 홍석이를 반에서 쫓아내자구?... 조물주가 어쩌느라 저런 괴짜를 만들어냈누?...)

   려홍이는 이 경우 일을 저지른 사람보다 그가 더 미워났다. 그래서 비슬비슬 물러가는 그의 뒤통에 가슴츠레한 눈총을 쏘았다.

   일은 더 한심하게 되었다.

   이틑날아침에 불쾌한 소문이 온 부대에 쫙 퍼졌다. 직일실에 갇혀 자는것 같던 홍석이가 어느결에 살그머니 일어나 총까지 한자루 가지고 달아나보렸다는것이였다.

   <<이게 무슨 소리야?>>

   너무도 상상밖이여서 려홍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벌꺽 소리질렀다.

   달아나다니? 홍석이가 부대를 버리고 달아난단말인가?... 사실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그래서 놀라며 괴이쩍어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가슴속에 복수를 품고 전투와 위훈을 갈망하여오던 홍석이 아니였는가. 그러한 홍석이가 무엇 때문에 부대를 떠날수가 있단말인가?... 려홍이는 고민의 도가니속에 깊이 빠졌다. ㅡ이게 그래 평소에 규률쯤은 큰문제로 삼지 않은 결과가 아니란말인가? 홍석이를 아무 결점없는 사람으로 치부한 정신적착오가 빚어낸 후과가 아니란말인가?... 기막힌 일이였다. 그에 대해 책임을 다하지 못한 무거운 생각이 갑작스레 밀물처럼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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