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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그처럼 생기에 넘쳐 떠들썩하던 거리는 밤이 되자 조용해졌다. 밤이 없으면 도깨비가 뛰놀지 못하는 법이다. 이지러진 달빛이 어슴프레 비치고있는 요즘도 야맹금같이 심보사나운자들이 박쥐처럼 활동하고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호철은 잠을 잘수 없었다. 그는 여러날의 수면부족으로 인하여 두눈에 피발이 일어섰다. 침식을 거의나 잃다싶이 한 그는 깔깔하고 쓰려나는 눈을 손으로 지긋이 누르고있다가 찬물에 담가놓은 수건을 짜서 다시 한번 얼굴을 문지른 후 창문을 활짝 열었다. 뽀뿌라나무가지를 가볍게 흔들고있는 서늘한 가을바람이 방안으로 몰려들어오자 기분이 한결 상쾌해졌다. 박철호는 뒤짐을 지고 방안을 뚜벅뚜벅 거닐기 시작했다.
올해 마흔인 그는 <<9.18사변>>에 일본침략자들 손에 량부모를 다 잃자 격분해서 삼림경찰대의 총을 빼앗아 메고 항일에 나섰던 사람이다. 전투적인 생활은 그를 시련을 겪게 했고 견강한 혁명투사로 자라게 했었다.
그는 항일에 참가한 첫날부터 자기 한 가정의 복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도탄속에 헤매고있는 수천만의 피압박인민의 숭엄한 해방을 위해서 싸워왔다. 임무를 맡고 적정을 정탐하거나 군중을 계몽시키기 위해 북만일대의 도시와 농촌을 거의 편답했으니 항일구국투쟁에로 궐기시킨 사람은 얼마이며 희생된 동지의 총을 받아쥐고 부대를 지휘하여 천산만수를 넘어 간악한 원쑤를 무찔러 싸운 전투는 또 얼마였던가!... 실로 그는 언제나 굴함없이 싸워온 항일의 투사였다.
새것은 언제나 낡은것의 저애를 받기 마련이니 량자간에는 필연적으로 사활적인 투쟁이 벌어지게되는 것이다. 500명 비도들의 습격을 분쇄하고 암해결사단을 복멸한것은 이제 첫 승리에 불과했다. 일제가 남긴 험상한 페허들이 군데군데 있는 아르금시에는 그 페허와 함께 낡고도 진부한 잔재가 적지않게 남아있었다. 한간과 특무, 매춘부와 유곽경영자들이 남아있는가 하면 협잡군과 도매상들, 턱없는 풍우란설을 퍼뜨리기 좋아하는 날부란당무리들이 욱실거렸다. 이같은 정황하에서 위만시절에 일제의 괴뢰노릇을 했던 시정부와 그에 딸렸던 부속들을 청리하고 시내에다 방금 건립해놓은 인민의 새 정권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 분투하고있는 공산당사람들은 새로운, 더욱 복잡하고도 어려운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치안의 만전을 기하기 위하여선 인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생산을 파괴하는 일체 적대분자들에게 적시적으로 타당한 진압조치를 강구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지금 우리의 이 동북은 인민의 새 동북으로 건설되여야지 절대로 국민당반동파의 손에 넘어가서 암흑한 동북으로 되지 말아야 하고 미제나 그 어떤 다른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로 다시 저락되여서도 안됩니다.>>
하고 상급지도원은 당전의 국내정세를 분석하고나서 이엏게 거듭 강조하여 말했던 것이다.
중국공산당중앙위원해는 지난 8월 25일에 <<평화, 민주, 단결>>의 3대구호를 내놓고 전국의 통일을 실시하며 <<독립, 자유, 부강의 새중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국공 량당간의 투쟁은 불가피적으로 치렬해지는 방향으로 나가고있었다.
총을 들고 사선을 넘나들며 십여년동안이나 싸워온 그는 일본침략자의 손에서 동북인민을 해방하는 사업도 간고했지만 앞으로 홀시해서는 안될 곤난들이 많으므로 충분한 정신적준비를 하고있어야 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한간을 청산하고 경제를 회복하며 도시의 치안사업을 잘하는 한편 날로 횡행하고있는 토비를 숙청하기 위해선 무장대오도 황대해야했다.
박호철은 상자안에 수구히 찬, 시경비대에서 암해결사단과 테로분자들의 손에서 빼앗아낸 권총과 탄알들을 야멸에 찬 눈찌로 쏘아보았다.
<<더러운놈들, 언제까지 맛설텐가.>>
적들은 결코 멸망을 달가와하지 않고 최후의 발악을 기도할 것이니 이 계급투쟁이야말로 얼마나 준엄하고 무자비한가!
벽에 걸린 괘종이 벌써 밤 12시를 알렸다. 박호철은 가로등불이 졸고있는 밤거리를 다시한번 내다보고나서 창문을 닫으며 초조한 심정을 가까스로 진정했다.
반시간이 더 니나서야 임무를 맡고 나갔던 마길준 등 7명이 돌아왔다.
<<수고들했소. 어서 거기에 앉소,... 마동무 그래?... >>
박호철은 물 한고뿌를 따라주고나서 두손으로 탁상을 짚으면서 갔던 일이 어떻게 되었는가고 묻는 눈길로 그들 일행을 휘둘러보았다. 마길준은 우선 물고뿌에 담긴, 이미 식어버린지 오랜 물을 다 마시고나서 입을 열었다.
<<범인을 체포해왔소. 방금 류치장에 처넣고 보초병더러 단단히 지키라고했소.>>
<<잘했소!... 모두들 수고했소!...>>
나갔던 사람들은 잠자리로 갔다. 방안에는 잠을 방금 깬 경위원과 박호철, 마길준 세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보아하니 그놈은 몹시 약아빠진 놈이여서 처음부터 단단히 잡죄지 않구서는 안될게요.>>
마길준은 자기의 말에 각별한 흥미를 갖고 귀를 모으는 로전우를 경모하는 눈길로 마주보다가 이렇게 자기의 판단을 내놓았다.
<<인젠 손에 단단히 잡았으니 전번에 민주동맹지도자가 암살된 안건도 파안이 될것 같소. 틀림없이 장기적으로 암장해있으려 시도한 그 몇놈들이 저질러놓은 죄악인것 같소.>>
<<오늘밤에 체포된자가 바로 안장코도배의 비밀련락소 주임이니까, 그리고 혐의분자로 지목되고있는 자선병원 의사와도 내통이 있는것 같소.>>
<<근거는 뭐요?>>
<<의사첩년이 그자의 집에 가있다는거요.>>
<<의사첩년이?... 그의집에 가잇더란말이지?...>>
박호철은 이것만은 예상못했던 일이기에 고개를 기웃거렸다.
<<당신은 그 녀인이 의사첩년이란걸 어떻게 알았소? 그가 첩질하는걸 본적이야 없었겠지?>>
<<물론 본적이야 없지, 내가 뭐 뚜쟁이노릇한다구 그런걸 다 눈여겨보았겠소.>>
마길준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의사의 첩년이란건 그가 제 입으루 말한거요. 우리가 들어가보니 글쎄 아낙네가 둘이 있더구만. 그래서 내가 둘중에서 누가 이 집 주부인가고 물었지. 그러니까 한년이 자기라고 선듯이 대답하는데 한년은 말을 못하더란말이요.>>
<<음! 그게 의사첩년이였던 모양이군.>>
마길준은 갑자기 담배생각이 나서 호주머니를 만지며 하던 말을 계속했다.
<<내가 왜 남의 집엔 와서 자느냐 물었더니 뭐 본댁과 싸웠다나.>>
<<엤소, 내걸 피우오...그래 다른건 물어보지 않았소?>>
박호철은 궐연 한 대를 뽑아주고나서 성냥까지 켜주었다. 마길준은 둬모금 길게 들이빨았다.
<<물어보았지.>>
그의 음성은 갈증을 푼 목구멍에서 울려나올 때처럼 풍만하고 맑지였다.
<<이 집으론 언제부터 다녔는가고 물었지. 그러니까 그가 하는 대답이 이전엔 면목몰랐더랬는데 가지부터 알고 다닌다는구만. 남정들이 서로 거래가 있게 돼서....>>
<<음. 그렇지!>>
박호철은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호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여 이미 그려진 술집과 자선병원사이에다 만연필로 줄을 쳐 이어놓았다. 마길준은 그가 그리는것을 건너다보고나서 자기가 건사했던 권총을 꺼내여 상우에 놓았다.
<<이건 그자의 집을 수색해서 찾아낸거요. 박동무도 나와 함께 갔더면 그놈이 노는 꼴을 잘 보았을걸 그랬소. 하하하!>>
마길준은 이렇게 말해놓고 어깨를 들썽거리며 한참이나 웃었다.
<<그녀석이 어쨌길래?>>
<<글세 우리가 돌연습격을 했더니만 그자식이 홀랑벗은 알몸뚱이루 녀편네곁에 붙어자다가 그만 기겁하지 않았겠소. 내가 옷을 입으라했더니 그자는 일어나 옷을 찾는척하다가 갑자기 덤벼들더란말이요. 리규모양으루 발가벗은 그대로 하하하... 그랬다가 넋살을 먹었지!>>
<<허, 그놈 성질이 사박스럽겠군.>>
마길준은 자기가 방금 내놓은 권총을 넌지시 보다가 쓰겁게 웃었다.
<<흥, 제깐놈이 아무리 사박한들 별수있겠소... 그럴수록 본질만 더 드러나지. 우리는 그리 애먹지 않고 이 권총을 당반우에 있는 밥곽에서 들춰냈소. 그랬더니 허 글쎄, 그 녀석이 어진 혼은 싹 빠지고 아연실색하면서 안전부절을 못하더란말이요. ... 속옷 벗고 함지방에 든 꼴이였지, 허.>>
<<허, 그랬으면 그 작자도 담은 큰놈이 아니로군. 담있는 놈이라면 연기술이 졸렬하지 않을텐데.>>
박호철은 입가에 경멸에 찬 웃음을 지엇다가 문득 아직밝혀내지 못한 <<민주동맹지도자살해안건>>이 떠올라 엄굳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니다. 과연 담이 크지 못한 자들의 서투른 연기술이라 할수 잇겠는가?)
어떤 사람은 그 안건을 그닥 엄중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있다. 그것이 정말 불량한자들이 재물을 탐냈거나 어떤 개인적인 알륵으로 사람을 죽이려 한것이란말인가? 절대 그럴것이 아니라 보여졌다. 사실이 엄연한바 왜 하필 염낭에 동전한푼없는 사람을 살해하려들었겠는가? 지금 이 도시에서뿐아니라 할빈, 목단강 등 도시들에서도 련속발생되고있는 국가공무원에 대한 암해와 이미 접관된 구(舊)정부의 기밀문건절취 등 사건들을 련게시켜놓고 볼때, 전번의 그 안건은 결코 협착한 판단에 밀어 처리해버릴 경한것이 아니였다.
박철호는 이것을 좀 더 넓은면으로부터 분석하고있었다. 지금 국민당은 애써 구실을 찾아서 공산당을 배척하려 하며 더욱이는 국내안정과 단결을 운운한 장개석자신이 국민당의 일당독재를 주장하면서 자기 대변인의 입을 빌어 팔로군과 신사군을 <<인민의 공적>>이라고 공공연히 중상한 사실만을 보더라도 성군작당하고있는 사회상 잡귀신들의 행위가 절대로 우연적인것이 아니라 여기기는 필시 다른 중대한 정치적야심을 품은 자들의 계요와 막후지위가 있음이 분명한것이였다.
위만경찰서보존서류에는 방금 체포해온 인물은 경찰서 특무계에 들어있는 특무였고 일찍 일본에 류학가서 어느 상업학교를 다닌후, 상해와 남경일판을 쏘다니면서 영업을 하려다가 실패했던 자였다. 본성이 간특한 자는 하는짓이 사사스러운 법이다. 자기의 정체를 감추려고 천방백계를 다하여 변색토끼모양으로 궤변을 부리면서 대방을 교묘하게 속여넘기는것이 그런자들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상투적인 대항술법이기도했다.
박호철은 숙였던 머리를 건뜩 들고 사색에 골몰하고있는 마길준에게 눈길을 던졌다.
<<길준동무, 범인을 체포할 때 사출해낸 무기는 이 권총밖에 없었소? 그자에게 비수는 없고?>>
<<찾아내지 못했소. 온 집안을 삿삿이 수색해보았는데 그건 끝내 찾아내지 못했소.>>
박호철은 미간을 모았다가 탁상우에 있는 권총을 집어 자기의 서랍속에 넣었다.
<<그자를 여기에 끌어오우. 대체 어떻게 생긴 놈인가 내눈으로 보아야겠소.>>
마길준은 나갔다가 얼마안되여 들어왔다. 이윽고 두 전사가 포승으로 뒤짐을 지운 사나이를 끌어왔다.
일견 그리 못난 상판은 아니였는데 입술이 터진데다 이마니 볼따귀니 어데나 멍이가 진 것으로 보아 체포때 반항하다가 되게 얻어맞았음이 분명했다.
박호철은 탁상건너편 쪽걸상에 옹송그리고 마주앉은 그자에게 차가운 눈길을 던졌다. 저쪽은 머리들고 피끗보더니 은근히 불만스러운 심리를 감추지 못한채 몸가짐을 바로하면서 머리를 다시 푹 수그렸다. 심문이 시작되였다. 묵직하고도 위압적인 첫질문이 그의 앞에 떨어졌다.
<<여기를 왜 붙잡혀왔는가?>>
<<예? 저... 전, 전 정말 어찌된판인지 모르겠어유. 저를 왜 붙잡아왔는가유?>>
<<왜서 붙잡아왔는지 모르겠단말이지?... 어른은 그래 무슨일을 하는 사람인가?>>
<<예? 헤헤헤! 나는, 나는 술공장을 경영하고있습지요.>>
<<술공장을 경영한단말이지?... 그래 술을 얼마나 고왔는가?>>
박호철이 짐짓 이렇게 딴전을 쳐서 질문하자 그자는 적이 안도감이 드는지 가벼운 숨을 내쉬였다. 하지만 무릎우에 올려놓은 손만은 그냥 떨어대는것을 어쩌지 못하면서 떨떠름하게 대꾸하는것이였다.
<<예 저, 헤헤... 제가말입지요?... 전, 술이라군 한번도 도매하여 시장을 혼란시킨적이 없는데요.>>
<<그랬다면 좋소. 그래 술을 고는게 본업인가?>>
<<그렇습지요. 그게 바루 본업입지요. 내가 술공장을 차리고잇다는건 온 시내판이 다 알고있는 사실인뎁쇼.>>
<<허지만 다른일하는건 다들 모르고있지?>>
<<그, 그건 무, 무슨 말씀인지유?...>>
범인은 일부러 얼떨떨해진 눈을 치뜨며 자기를 심문하고있는 경비책임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래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말이지?>>
이렇게 반문하고나서 박호철은 돌연적인 역습을 들이댔다.
<<요즘 므슨노릇을 했는가? 그걸 바른대로 말햇!>>
그자는 흠칫 놀라더니 이어 교활한 웃음을 띠우며 어리석게도 한번 능갈친 수작을 피워보려했다.
<<헤, 헤헤, 장관님! 장관님께선 아마도 잘 모르고계시는것 같습니다요. 저는 벌써 싹 다 교대했는데요. 저기 저분께서두 게시지만 아까 체포도리 때 말입니다. 저... 전 정말루 그렇게 사실대루 탄백을 하문 관대하게 처리해줄거라 믿었지요. ....공산당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임자는 지금도 여전히 술팔러 다녔다고 주장한다는 말이지?>>
<<예 예, 바로 그렇습지요. 거짓말이면 개아들입니다.>>
<<닥쳐!>>
박호철은 방안이 쩌렁쩌렁 울리게 호통빼며 자리에서 벌컥 일어났다.
<<돼먹지 못하게 그게 무슨수작인가?... 우리가 그래 임자같은 망나니와 싱갱이질하고있는줄 아는가?... 이건 뭔가?.>
하면서 서랍속에서 권총을 꺼내여 상우에다 탕 놓았다.
<<저, 저... >>
악연히 놀라 두손으로 가슴을 짚었다가 진정하려 애쓰는 그자를 그냥 쏘아보면서 박호철은 어물거릴 기회도 주지 않고 단연한 어세로 계속 질문했다.
<<이 권총은 누구핸지 말해.>>
<<그, 그건 저... 제 아들놈이 주어온겁니다. 믿지 못하겠으면 제 아들놈허구 물어보십슈. 정말입니다.>>
<<물을필요없어..>
박호철은 그자의 림기응변을 랭소로 받고나서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댔다.
<<그래 일본특무계에서 받은걸 떼질 쓸 작정인가?>>
<<아! ㅡ >>
<<놀랄거 없어... 왜 또 어물거리는건가?>>
<<저... >>
<<민주동맹사람을 누가 죽였어?>>
<<뭐, 뭐랍니까?... 난, 난 그런거라곤 모르는데요.>>
<<모른다구? 흥, 자기가 한 일을 그래 자기가 모른다? 그게 어디 되기나 한 수작인가?... 모르쇠로 잡아떼지 말고 공모자가 누구란걸 솔직히 탄백하란말이야.>>
술공장경리는 몹시 당황해났으나 아직은 무엇을 숨길수있다고 생각했던지 입을 꾹 다물고 버티려들었다.
<<이 두억시니같은 녀석아! 바른대로 말하지 않을테냐? 끌어내갈테다!>>
마길준은 화가 동해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권총집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범인은 자기를 총살해버리려는줄로 알고 온몸을사시나무떨듯했다.
박호철은 절망에 빠진 그자의 창백해진 얼굴을 넌지시 보다가 마길준에게 슬쩍 눈짓을 한 후 아까와는 다른, 퍽 너그러워진 음성으로 충고했다.
<<두뇌가 명철한 사람이면 자신의 전도에 대해서 생각해봐야지. 우리는 손에서 무기를 놓고 대항하지않는 사람은 죽이지 않아. 그러니까 솔직히 탄백함이 자신에겐 퍽 유리할거요. 다시한번 곰곰이 생각해봄이 어떨가?... 길은 두갈래인데 자신이 선택해야겠소. 솔직히 탄백하면 관대한 처분을 받을게고 항거하면 엄벌을 받을게요. 알겠서? 임자말대루 공산당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제야 술공장경리는 관대한 처분을 받기가 원이라면서 양금채같이 고분고분해지는척 하면서 탄백하느라했다.
이자는 자기가 일본특무였음을 승인했다. 그러나 자기손으로 민주동맹사람을 암살하는 짓은 하지 않고 호룡산에서 왔다는 사람이 시정부에서 각계각층의 사회단체대표들이 회의를 하는 날자와 시간을 탐지해달라고 해서 알려준 일은 있으니 그것이 위법행위라면 벌을 받겠다는것이다.
당치않은 소리였다. 이자의 말대로하면 보안대사람을 알고만 있을뿐 자기는 보안대사람이 아니며 암해결사단의 성원도 아니라는것이였다. 그렇다면 체포된 후 관대처분을 받아 지금 감옥안에서 목숨을 보존하고있는 그 호룡산에서 파견되여 온 어리광대녀석이 거짓말을 해서 생사람을 잡아먹는단말인가?
술공장경리는 방금잡아놓은 원숭이처럼 눈을 깜짝깜짝 하더니 수작을 피워댔다.
<<정말입니다. 저는 정말루 애매하다니요. 그 사람이 위협공갈을 하면서 어린 중 젖먹이듯 나한테 그렇게 나쁜일을 시켰다니까요.>>
<<그러니까 결국은 시켜서 한 노릇이란말이지? 그래 야바위군같은 그자한테서 심부름해준 값은 얼마나 받았는가?>>
<<받지 못했습니다. 보상은 후에 하겠다구 했습지요. ... 정말이지 어린이와 개는 꾀는데로 간다구 그저 돈벌궁리만 하고있었던 나는 덕심있는것 같은 그가 일후에 영업이 잘되게끔 조력해주겠다느니 행운이 떨어지게 만들어주겠다느니 하는 달콤한 말을 딱 곧이들었습지요.>>
술공장경리는 이제와서야 어섯눈을 뜨게 되었다면서 후회막급해하는 가련한 상을 짓는 것이였다.
박호철은 차겁고 검질긴 눈으로 그의 일거일동을 주시했다. 그자는 자라목이 되어 앉아있는데 깍지낀 두손을 알릴락말락하게 떨면서 연신 코를 킁킁거리는 품이 겁결에 죄를 승인해놓고보니 미상불 더 큰 근심과 공포가 생겨 이제부터는 마음에 내키지 않는 대답을 어정잡이로 하면서 어떻게 하나 당면한 고비를 슬쩍 넘겨보자는 수작임에 틀림없었다.
<<흥, 어물쩍하게 넘겨보자는 심사로군. 여봐, 의사하곤 무슨 내통이 있는가? 무슨소린가구?... 자선병원에 있는 안경쟁이의사하구말이야.>>
<<아, 아니, 그하구는 저... >>
질문하는 소리는 비록 높지 않았지만 술공장경리는 몸을 와뜰 떨었다. 그러나 그것도 일순뿐이고 이자는 또 다른 꿍꿍이를 꾸미느라고 머리를 쓰는게 분명했다.
<<왜 그렇게 놀라는거여? 그리구 또 무슨 궁리를 하는거여? 꿈꾸면 해몽하는 사람이 있는줄 모르는가?>>
조소를 받은 술공장경리는 명문이 막히는지 아무런 대꾸도 못했다.
박호철은 그를 넌지시 보면서 비꼬았다.
<<뭐 어린애와 개는 꾀이는대로 간다구?... 그게 일본가서 류학까지 했다는 사람의 말재주인가? 상전이 꺼꾸러지니 인젠 다른 상전을 얻어 섬기면서 주구질을 해먹어?... 속담에 약바른 강아지 밤눈 어둡다는 말이 있어. 임자는 남의 사타구나 긁으면서 출세해보려구 했지? 어리석은 사람이야. 남이 너를 배반했으면 너는 그를 믿지를 말라는 말이 있는걸 모르는가? 벗이 자기를 고발했는데두 바보같이 의리를 지키느라 고집부리니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보란말이야. 어쩔테냐, 탄백하겠는가 안하겠는가? 풍진해가 누구냐? 왜특무놈! 네가 그래 사문동의 보안대 아르금시비밀련락소 주임이 아니란말이냐?... 네놈의 황량몽은 깨여졌다!>>
증오와 경멸에 찬 이 마다마디 말은 회초리마냥 그자의 정수리를 마구 내리쳤다. 술공장경리는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이마를 땅바닥에 조아리면서 이제부터는 사실대로 죄다 탄백하겠으니 제발 관대처분을 해달라면서 손이야 발이야 빌기 시작했다. 천부적인 인권과 자유를 주장하는, 자칭 개명하다고 하는 양광스러운자들의 추태란 바로 이런것이였다.
박철호는 상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한마디한마디씩 력점을 찍어가며 단호히 말했다.
<<어디보자! 의사의 탈을 쓰고 그따위짓을 하고있는 네놈을 잡아내여 자선의 허울을 벗겨낼테다! 그어떤 위장을 한놈이든 몽땅 잡아낼테다.!>>
범인을 다시 류치장에 처넣어버렸다.
유리창문이 희슥희슥해졌다. 먼동이 터왔다.
박호철은 방안의 텁직항 공기를 바꾸려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시경비대전사들을 깨우는 쟁쟁한 나팔소리가 맑고도 시원스레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면서 도시상공으로 울려펴졌다.
<<벌써 새날이 시작되는구만!>>
새벽공기에 한결 기분이 상쾌해진 박호철은 만면에 희색을 띠였다.
<<마동무, 우린 이번에도 옹근 3일간의 백병전을 했구려!>>
<<뻐근한걸, 하하하!>>
마길준은 억센 두팔을 벌리여 기지개를 켜니 차소부같이 든든한 그의 량어깨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박호철은 전우를 정겹게 보면서 관심조로 말했다.
<<당신은 몹시 지쳤구만. 오늘은 푹 쉬도록하오!>>
<<날보구 휴양병되란말이요? 하하하!>>
<<하하하!>>
피곤이 가셔지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밖에서 울리는 나팔소리와 화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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