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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찰병 최재병은 변득스러운 꿈을 꾸다가 소스라쳐 깨여났다. 꿈에 요정에게 실컷 희롱받고보니 허전하고 사지가 날씬했다. 몸이 지긋지긋한게 감기걸릴 징조같았다. 옆구리도 결리였다. 어제 오후에 리홍석이 둘러메쳤는데 아마도 사정을 적게본것 같았다. 신임패장 김려홍이는 요즘 정찰나가지 않은 전사들에게는 대적훈련을 지꿎게 시켰다. 그 본신이 당수를 좀 안다고 맨주먹쓰기를 배워주는데다 1반 반장이 <<유도>>라는것까지 배워주노라 해서 정찰병들은 갑자기 싸움꾸러기들처럼 쩍하면 치고, 박고, 차고, 둘러메치기를 하니 남처럼 드세지 못하고 애련한 재명이같은 사람은 실로 힘이 부치는 일이였다.
눈치러 밖에 나갔던 사람들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자 이제는 팔씨름을 해보자!>>
누군가 웨치니
<<해볼려면 해봐, 누가 나한테 덤빌텐가?>>
하고 뽐내는 사람이 있었다.
한참은 조용하던 방안이 다시금 들끓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하루치고 기껏해야 대여섯시간이나 조용해지는것 같았다,.
(허참, 다들 곤하지도 않는 모양이지.)
최재명은 한컨벽에 비스듬히 기대여 앉아서 남이 팔씨름하는것을 보는둥 마는둥했다. 그의 가까이서는 리홍석이 두다리를 <<八 >>자로 퍼더거리고 앉아 아까부터 자기의 권총을 분해하여 열성스레 닦고있었다. 이때, 반에서 꼬마로 불리는 청송이가 벌쭉 웃더니 곱글곱슬한 머리를 쓱쓱 올리면서 재명이한테로 다가와 집적거렸다.
<<왜 보고만있습니까? 자, 내하고 한번 팔씨름해보죠.>>
<<저리물러가, 시끄럽게 굴지 말구.>>
최재명은 귀찮은듯이 화를 냈다. 청송이는 퉁맞고 머쓱해서 머리를 썩썩 긁더니 이번에는 리홍석이한테로 갔다가 그만 그의 옆에 있는 총기름병을 번져놓았다.
<<아차, 더퍼리같은게 왜 이모양이냐?>>
리홍석은 딩구는 기름병을 쥐느라고 몸을 굽혔다. 그런데 청송이는 자기를 답새기자고 그러는줄로 알고 저쪽으로 냉큼 달아나 숫접게 웃었다.
<<헤헤헤... 내가 그만 헤헤헤... >>
<<너같이 덤비는녀석은 정말 처음봤다. 에에, 내가 제때에 널 버릇 고쳐주지 못한게 잘못이지!>>
리홍석은 사람좋게 한마디 하고는 도로 앉아 분해했던 총을 맞추기시작했다. 누가 이겼는지 <<와!>> 하고 웃음이 터졌다. 팔씨름이 다시 붙는 모양이였다. 리홍석은 권총을 다 맞추고나자 그쪽으로 가면서 흥흥 노래했다.
적탄에 육체가 가루될망정
혁명의 발길을 돌릴소냐
우리들은 정의의 붉은군대다
총칼을 둘러메고 혁명전선에....
최재명은 어쩐지 기분이 명쾌하지 않고 흐릿해서 누워버렸는데 홍석의 노래소리가 찌들고 얇아진 그의 신경을 허비여 속이 토라지게 하였다.
(흥, 적탄에 육체가 가루되면 뭐로 되게. 죽고야 볼게뭔데?)
그리고는 규률성이 부족하다고 벌써 몇차례나 반에서 검토를 받은 홍석이의 일을 회상하며 혼자 <<쳇! >>하고 웃었다.
(노래는 잘한다만 <혁명>이란게 뭔뜻인지도 바로해석못하는 주제에 뭘 바라고 피를 흘리자는거야?... )
최재명은 돌아눕자니 옆구리가 또 결리였다. 왜 이렇게 아픈지 몰랐다. 숨을 길게 쉬여도 결리고 몸을 움직여도 결리니 혹 륵막염에나 걸린게 아닌지 의심까지 더럭났다. 괜한노릇에 병을 얻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더 아파나는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위생병을 찾아가 보이려고 일어났다. 신을 신자고 보니 누가 밟아놓아 쭈그러졌다. 그의 신은 털구두였는데 아마 온 부대치고 제일 멋스러울것이다. 부대에서는 매개 군인에게 겨울솜옷과 털모자를 발급했지만 신은 부족되여 그렇게 내주지 못한 상황이였다. 그래서 어떤 전사는 울라신도 없어서 여름에 신던 <<지까다비>>를 그냥 신고있었기에 발이 얼었다는 말들이 자주 들렸다. 그런데다 비하면야 털속에 묻힌 발이 얼마나 운수 좋고 행복한지 몰랐다. 최재명은 며칠전에 도시로 갔다오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이 구두를 가져오게 했던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구두안에 넣어 보낸 편지에다 아래와 같이 짧고 간곡한 부탁을 했었다.
<<아들아, 찾아온 군인의 인편에 너의 겨울신을 보낸다. 집은 다 무사하다만 너의 어미는 네가 고생하는 일 때문에 근심이 많다. 의사의 따님도 변함없이 너를 그리고있으니 아무쪼록 변고없이 싸우다 살아서 돌아오기를 바란다.
아버지로부터 >>
최재명의 아버지는 도시에서 가게방을 차려 남보다 살림이 족족유여한편이였다. 그는 애초부터 귀동으로 키운 아들을 탄알이 날아다니는 싸움판에 내놓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은 한창나이의 젊은놈으로 집구석에 들어박혀있는것을 졸장부의 행실로 여겨오던차에 대중적인 궐기에 휘말려들어 참군을 하고만것이다.
그런데 최재명은 이제 몇 달 안되는 사이에 전쟁이란것은 그가 격문을 읽고 상상해보았던것처럼 걸음마다 혁혁한 위훈으로 명예를 굳건히 해주는, 열정만이 끓는 도가니가 아니였던 것이다. 그로서는 미처 상상도 못했던 고생스러운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최재명은 구두를 알른거리게 닦아신고 영부위생실로 갔다. 손가장원의 손옥란이 들어있던 방이였는데 파괴된것이 없었거니와 예전대로 화려하고 아늑했다. 5명의 위생병들속에 녀성이라고는 유독 혜옥이 혼자였다. 영부에 와서 김영장을 만나보고 돌아가다가 녀동생이 있는 위생소에 들렸던 남천오가 방금 들어선 젊은이를 보자 빙그레 웃음을 띠였다. 그것은 반가와서거나 면목을 알아서가 아니라 수파련에 밀동자같은 군인이 남없는 구두를 신어 별로 멋져보였기때문이였다.
<<오빠 알고지내요. 김동무와 한반에 있는 정찰병이요. ...재병동무, 우리 오빠예요.>>
혜옥이가 두사람을 접촉시켰다.
<<오, 정찰병인가! 난 성이 남가고 이름은 천오라 해.>.
면도질을 하지 않아 턱수염이 꺼칠꺼칠한 남천오는 소탈한 친절성을 갖고 그를 대했다.
<<기의련의 련장동무시지요?! 이번에 대단히 큰 공을 세웠다는걸 우린 잘알고있습니다.>>
<<과분한 소리요. 큰공이야 여러분들이 세웠지 내가 세웠겠소. 허허허!>>
남천오는 입이 버그러지게 웃었다. 최재명은 인사없이 여러번 보긴 했지만 제 누이동생같이 얼굴이 두리두리한 이 기의련장이 아주 걸걸하고 호협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라는것을 이제야 똑똑히 알게 되었다. 하기에 자기가 군인이라는데서 자호감이 많은 그였지만 그를 존경에 가까운 감정으로 친절히 대하는수밖에 없었다.
<<오빠, 이 재명동무는 내가 아르금시에 가서 춘자랑 옥금이랑 함께 제일 먼저 면목익힌 군인동무예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참군했어. 그렇지요, 최동무?... >>
혜옥이는 순진한 친절성을 갖고 명랑하게 말했다. 최재명은 그가 자기 존재를 가면없이 오빠에게 소개해주니 반갑긴 하지만 그때 자기를 내놓고 자랑했던 일이 실없는 짓으로 느껴져서 얼굴이 스스로 붉어졌다.
<<중학공부를 했으면 대단하구만! 나의 이 동생은 학교라곤 문앞도 가보지 못해서 글아는 사람이면 무척 부러워하고 존경한다오. 그러니 잘 배워주오.>>
남천오가 두눈을 슴벅거리면서 가면없이 하는 말이였다.
그가 돌아가자 집안에는 혜옥이와 재명이만 남게 되었다.
<<어디가 마픈가요?>>
<<난 옆구리가 아파 왔습니다. 여기가 몹시 결립니다.>>
최재명은 자기의 옆구리를 가리켰다.
<<몹시 결린다구요? 어디?... 어디?... 여기?... >>
초재명이 솜저고리 단추를 벗기고 옆구리를 내보이기에 혜옥이는 여기저기 짚어가며 물었다. 그의 부드러운 손끝이 살에 대일때마다 최재명은 온몸에 간지오운 짜릿한 감촉을 느끼면서 심장이 들뛰였다.
<<혹, 혹시 륵막염에나 걸리지 않았나해서... >>
<<륵막염이라니? 그게 그렇게 쉽사리 걸리는 병인가요 뭐. 의심이 병이라고들 해요. 좋게 생각하는 편이 퍽 낳을거얘요.>>
연연한 생각이 야릇한 정서를 안고 돈다. 혜옥이는 최재명의 흥분되고 상기된 얼굴을 살짝 바라보고는 관심조로 타이르늣이 보탰다.
<<어데 박히진 않았어요? 요즘 정찰병들은 그냥 그 연습이니 주의해야합니다. 그리구 대담해야 해요. 김동무는 어렸을적에 당수를 배우느라 주먹에 껍질이 죄가 벗겨지고 썩살까지 박혔대요.>>
<<아, 그랬답니까, 우리 김패장이 말이지?!>>
최재명은 공경과 질투를 갖고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자기의 비루한 감정이 내치칠가봐 저어하면서 슬쩍 덧붙였다.
<<혜옥동문 기쁘겠습니다. 우리네 김패장은 용감하고 지혜있는 정찰병입니까요.>>
<<호, 재명동문 참 우스운 소리 다해요. 용감하고 지혜로운 정찰병이라면 우리들 모두의 기쁨이 아닌가요.>>
<<하긴 그렇지만 김패장하고 혜옥동무야 특별한 관계가 아닙니까! 그래서 허허허... >>
최재명은 너름새좋게 말하면서 슬쩍 눈치를 살폈다.
<<아유, 별소릴 다하네! 꼭같은 전우고 동무인데 무슨 또 특별한 관계라는게 있을가?>>
혜옥이는 눈을 할끗 흘기고나서 깔깔 웃으며 얼굴을 붉혔다.
지금 영부에서는 전술을써 적을 저희들끼리 한바탕 대판으로 싸우게 만들어놓고는 흐믓한 즐거움에 잠긴채 다음번의 전술적 방안을 또 연구하고있는중이였다. 김영장은 남림촌에서 쫓겨난 굴대장군의 그 랑아영을 먼저때려야하는가 아니면 남림촌으로 들어간 손창유의 별동대를 먼저때려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반복적인 사고를 하다가 그들지간에 꼭 다시금 싸움이 붙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방금 막 돌아온 정찰병의 보고는 그의 예측이 틀림없으리라는것을 알려주고있다.
<<우리는 만보툰에 들어가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걸 들었는데... >>
약간 사팔뜨기눈인 정찰병은 자기의 보고를 믿게 하려고 애쓰면서 말을 계속했다.
<<이건 조금도 빗듣지 않았습니다. 굴대장군은 지금 단단히 벼르고있답니다. 손창유를 붙잡든지 아니면 아예알거지로 만들어놓던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호룡산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땅벼락같이 벼른답니다.>>
<<음, 그렇겠지! 그렇겠지! 그자가 그렇게 하지 않고 달리 행동할수야 없는거지.>.
김영장은 혼자말 비슷이 중얼거리고나서 고개를 번쩍 들고 여러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정찰병들에게 눈길을 돌리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고를 다했소? 굴대장군은 지금 졸병이 얼마라오? 그걸 알아왔는가?>>
<<예, 알아왔습니다. 한 2백명가량 된답니다.>>
<<그것도 동네사람들이 하는소리였소? ... 2백명이라... 그러니까 삼분의 일이나 없어진게로군! 헌데... 죽고 포로된자가 그렇게두 많을가?>>
김영장은 미덥지 않다는듯 머리를 가로저었다. 이때 남림촌으로 보냈던 정찰병들이 돌아왔다. 그네들의 보고는 새로운 문제를 말했다. 손창유는 굴대장군이 남림촌에 들어오자마자 위협공갈과 기편수작으로 모집했던 50여명되는 사람을 거의 포로했다가 도로풀어놓고 매인당 금을 바치라는 강박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왜서 포로를 인차 놓았을가? 이 일은 실로 적들의내막을 알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가배의 주의를 야기시키지 않을수 없었다.
(패전장군이 졸병보다 금을 더 탐내는 리유가 대체 무엇일가?)
모두들 이 새로운 수수께끼를 풀어보려고 머리를 짰다. 손창유가 원병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건 사실이고 포로들을 금과 바꾸는 것으로 보아 다시 달려들지 않고 도망치려 하는것만은 틀림없는것 같았다. 그리고 랑아영은 3분의 1쯤 없어진게 확실하였다. 죽고 포로된 나머지는 다른데로 흩어져버렸을수도 있었다.
<<김패장, 여기 좀 오오.>>
김영장은 려홍이를 가까이에 불렀다.
<<정찰은 다시 보내야겠소. 손창유가 아군의 추격과 굴대장군의 보복을 막으려 하고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만보툰을 피해서 호룡산으로 달아날 잡도리인지 둘중에 어느것인지를 똑똑히 알아야만 우리도 더 파악있게 행동할수 있지 않겠소.>>
<<예, 그래야지요. 적정을 제대로 파악못하면 언제나 피동에 처하게 되지요.>>
하고 려홍이는 마치 김영장이 채하지 못한 말을 보충하듯 자기의 견해를 털어놓았다.
<<정찰은 정확하고 판단은 절실하고 타격은 맹렬해야 한단말이요. 알겠소? 이 세가지를 절대루 잊어선 안되지!... 그래 이번 임무는 어느 반에다 맡길 예산이요? 금방 돌아온 동무들을 재차 보낼순 없지 않소.>>
려홍이는 잠간생각하고나서 대답했다.
<<2반에 맡기겠습니다. 2반은 휴식했습니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도록하고 동무는 돌아가오. 통신원, 어제왔던 신병호란분을 좀 모셔와.>>
김영장이 교도원과 함께 마을사람들이 최마름의 죄행을 적발한것을 연구하기 위해서 소작농책임자를 찾는것을 보고 려홍이는 영부에서 나왔다.
2반 정찰병들은 새 임무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한편 노래를 부르면서 즐거이 보내고있었다. 아마 주먹치기와 유도연습도 시들해진 모양이다.
박금록은 부엌에서 둔박스런 나무방치를 들고 울라초를 보드럽게 하느라고 뚜드리고있었다.
<<여봐, 좀 보자구.>>
<<새 임무요?>>
박금록은 나무방치를 얼른 놓고 일어섰다. 려홍이는 그의 옷섶을 앞으로 끄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찰을 보내야되겠어. 두사람가량. 방금 1반에서 갔다왔는데 보고가 어쩐지 시원치않거던. 손창유가 포로들을 내놓고는 금을 내라고 한다는데 도망칠 잡도린지 어쩔 잡도린지 명확치 않단말이요. 그걸 똑똑히 알려면 아마도 마을에 들어가 눈치를 봐야겠소.>>
<<그거 참 어렵겠는걸! 남의 속맘이야 알아낼 재간있는가.>>
<<그러게 눈치를 보고 온다는게 아닌가. 방어냐 도주냐 하는건 그자들이 나다니는 꼴만 봐도 알게 될게 아닌가.... 그럼 누굴 보낼나?>>
<<글세... 누굴 보낸다?>>
박금록의 시선이 사람들쪽으로 돌려지자 위생실에 갔다온지 몇분 안되는 최재명이 자기한테 정찰임무를 맡겨달라고 자진해 나섰다.
<<옆구리가 결린다면서... 갈수 있겠소?>>
<<이까짓거 좀 아픈데야 뭐.>>
최재명은 곤난을 극복하는 적극적인 표현을 보였다. 여러번이나 이럭저럭 정찰을 나가지 않았는데 정찰임무리행이 남보다 너무 떨어지는것 같았다. 그래서는 안되겠다싶었거니와 사실 그보다도 하기싫은 훈련을 피해 바람이라도 쏘이고 돌아오는것도 괜찮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럼 최동무가 가기로 하지! 다른 사람은 누굴 보낸다?... >>
<<반장동무, 저를 보내주십시오!>>
<<아니 제가 가겠습니다.!>>
<<이번엔 제가 가야 할 차렙니다!>>
정찰병들은 너도나도 다투어나섰다. 이럴때 보면 여기서는 오직 정찰병들의 숨결, 정찰병들의 률동, 정찰병들의 정서만을 강렬하게 느낄수 있을뿐이였다.
금록이는 빙그레 웃다가 통소를 불고있던 청송에게 눈짓했다.
<<이번엔 꼬마가 최동무와 같이 갔다오지.>>
<<옛! 제가 갔다오겠습니다.>>
청송이는 퉁소를 얼른던지고 서둘러 몸을 바로잡으며 오돌차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털모자를 얼른 집어쓰고 반장앞에 와서 마치도 굳어진 버릇처럼 군복바지혼솔에 손을 비비면서 구체적인 지시가 내리기를 기다렸다.
금록이는 그의 털모자를 바로씌워주고나서 미더운 눈매로 미소지었다.
<<두 동무는 사고없도록 잘 행동해야겠소. 좀 늦게 돌아와도 되니 될수록 마을안까지 들어가보고 올것. 알겠소? 정찰목적은 적들이 방어준비를 하느냐 아니면 퇴각도주를 시도하느냐 하는걸 알아내는것이요.>>
<<알았습니다! 방어를 준비하느냐 아니면 퇴각도주를 시도하느냐 하는걸 정탐하는 것.>>
두 정찰병은 이구동성으로 반장의 말을 힘있게 받아 뇌였다. 그러고나서 그 자리로 정찰의 길에 올랐다. 그들은 중도에 말탄 적순라병을 만날 우려성이 있었기에 손가장으로부터 곧추 남림촌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서북쪽 약 20여리지점에 있는 얼랑산으로 갔다가 거기서 방향을 서남으로 꺾어 남림촌으로 가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길을 많이 걷지만 그대신 퍽 안전할것이였다.
마을밖을 나서자 청송이가 최재명이 구두를 신고 떠난것을 보고 마뜩잖아하며 입을 열었다.
<<아니 최형, 왜 구두를 그냥 신고 떠났소?>>
<<어때서? 발이 시리지 않아 제일이다.>>
<<오늘은 길을 많이 걸어야 할텐데 발이 부르트지 않을가? 더구나 그냥 길로만갈것두 아니구....>>
<<내 걱정은 말어라. 그래두 발을 땅땅 얼구는것보다야 났지.>>
청송이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남의 걱정은 하지 말라는데 코떼우면서 더 해서야 무슨소용있는가. 두 사람은 한참 묵묵히 걸었다. 바람에 굳어진 눈이 철박은 구두바닥밑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빠작빠작 났다. 먼길을 걷는데는 간편한 헝겊신보다 못한게 빤하지만 번쩍거리고 소리내는 멋에 당분간은 좋을것이였다. 청송이는 자기도 구두를 신고싶었다. 지금이 아니였다. 토비를 다 숙청하고나서 평화로울 때, 그때가서 전런 구두를 척 신고 나서면 의젓해보일것이다. 누구나 이 청송이를 영예로운 명군인이였다는 것으로 해서 사랑과 존경을 갖고 대해줄 것이다. 거리를 걸을 때면 원쑤들을 소탕한 승리의 기쁨에 받들리워 콩크리트바닥에 부딧쳐 나는 구두발작소리는 한결 귀맛좋게 들릴게 아닌가. 청송이는 이같은 감미로운 생각에 잠겨 혼자서 씩 웃었다.
<<청송이는 군대에 들어오기전에 시내에서 무슨일을 했다구?>>
최재명이도 빤히 알고있는 일이겠는데 일부러 모르는양 물어보는 말이였다.
<<내말이요? 난 제혁공장에서 견습공노릇하다가 들어왔지요 뭐.>>
청송이는 그가 자기보다 다섯 살이나 이상이라는데서보다도 정찰반과 패에서 학습보도를 하고있는 사람이라는데서 존대하는 것이다. 소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채 일하는것부터 배웠던 자기를 때론 습득이 빠르지 못하다느니 머리가 아둔하다느니 할 때면 밸이 꼬였지만 내가 네보다 배우지 못했으니 방법없지 하고 스스로 자비를 속으로 지긋이 누르군했던 청송이였다.
<<제혁공장에서 일했으면 가죽을 많이 만졌겠네.>>
최재병은 하찮은 흥미를 갖고 하는 말이였다.
<<그렇구말구요. 내 손으루 다룬 가죽만도 얼만지 모르지요. 최선생의 그 구두가죽도 혹시 내가 이긴 가죽으루 만든거아닌지 모르지요.>>
하면서 청송이는 허나 자기는 여직 가죽신도 신어보지 못했노라 했다.
<<집이 몹시 구차했던가봐.>>
<<...... >>
청송이는 수치를 당할 때 처럼 낯이 빨개졌다. 최재명이 또다시 그를 넌지시 바라보면서 물었다.
<<아버지도 제혁공장에 다녔는가?>>
<<아니, 여러해째 앓고있습니다.>>
<<그럼 집에는 벌이군이 없겠구만.>>
<<없지요, 어머니가 삯빨래를 해서 겨우... >>
<<저런! 헌데 군대엔 왜 나왔나, 집에서 돈벌이나할게지.>>
<<적을 소탕할 일이 더 급하니까요.>>
청송이의 대답은 간단했고 태도역시 정중했다.
이번에는 최재명이 도리여 낯이 붉어졌다.
그들은 둬시간 착실히 걸려 얼랑산(二狼山)에 당도했다. 얼란산은 경사도가 가파르긴 하지만 여느산보다 그리높지 않고 기이하지도않았다. 가둑나무와 자작나무들이 많고 느릅나무와 황철나무들도 섞여있는 혼성림이 온 산을 덮고있었는데 눈우에 간혹 짐승발작은 있으나 새소리도 나지 않고 조용했다. 헌데 이런 산을 왜 얼랑산이라 부르는지?... 이전에 어떤 사람이 홀몸으로 여기를 넘다가 승냥이 두 마리를 만났는데 두놈 다 달아나지 않고 사람을 해차려하기에 갖고있던 박달방망이로 턱주가리를 쳐서 모두 입비뚤이로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이것이 얼랑산이라는 이름이 생기게 된 유래였다.
최재명의 구두는 눈길에 있는 나무강대에 여러군데 긁히였다. 이젠 발바닥이 부르터서 걷기조차 구차했다. 땀이 빠질빠질 났다. 산으로 오르기를 점점 기다싶이해야했다. 몇발짝 톺아올라서는 멈춰서서 털모자를 벗어 땀난 얼굴을 문지르군 했다. 그런데 청송이는 지칠줄모르고 점점 기운이 나서 날렵해지는것만 같아보였다. 그래서 최재명은 그가 부럽기도 하고 괘씸하기도했다. 아무튼 구두를 신고 떠난 자기가 후회막급했다.
<<기운내서 걸어야지. 떨어졌다간 입삐뚤이승냥이의 밥이 되겠습니다. 산등성이만 넘으면 내리막이니 앉아서 미끌면 썰매타듯 내려갈겁니다. 그러면야 신선일거야! 자, 내 손을 잡으시오.... 옳지!>>
청송이는 자주 돌아서서 최재명을 끌어올리군했다. 그들은 이렇게 얼랑산을 넘었다.
남림촌동북산에 이르니 아직 해가 있었다. 나지막한 산을 의지삼아 동으로부터 서로 기슭을 따라 3백여호의 인가가 기다랗고 무질서하게 널려앉았는데 마을이 굉장히 커보였다. 마을동쪽 멀리로부터 깊은 골짜기가 이루어져 길게 나오다가 밥주걷같이 넓어진것이 남림촌앞벌인데 눈덮힌 울룩불룩한 모래무지들이 수두룩해서 누가 와보나 이 마을은 오랜 금광촌이라는것을 인차 알수 있었다. 수십년간 땅속에서 파낸 버럭은 골짜기와 버덕을 거진 메우고있었다. 산지사방에서 모여든, 오래전부터 복사씩기를 해온 사람들이 이곳의 토착민으로 돼버린 셈이다.
산꼭대기에 오른 두 정찰병은 잠자듯 조용한 마을을 눈아래 굽어보면서 뚫고들어갈 진로를 찾아보았다.
<<조용한걸 보니 토비들이 달아나버린게 아닐가?>>
최재명은 이 자리에서 되돌아가고픈 생각이 불쑥나서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때 저기앞, 마을동켠골에 말탄기병 셋이 나타났다. 동남쪽에서 온 그자들은 눈덮힌 모래무지들사이에 난 길로 해서 채 얼지 않은 개울을 건너 마을로 들어가고 있었다. 틀림없이 적의 순찰병이였다. 말탄 세 비도는 마을안으로 들어가더니 보이지 않았다. 떠나올 때 들어서 적이 주둔하고있는 곳은 대개알만하지만 아무리 살펴봐야 적이 방어준비를 하고있는지 하지 않고있는지 알아내기가 힘들었다. 그러니 어떻게 하든 마을안으로 들어가봐야 했다. 하여 그들은 땅거미가 설핏이 깔려들기 시작 할 때를 기다렸다가 경계가 적을것 같아보이는 곳을 택하여 조심스레 마을에 접금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얼음판에서 팽이도 치고 썰매도 타면서 놀고있었다. 어쩐지 안온한 기분을 주었다. 주위에는 확실히 보초선이 없었다. 토성도 없는 이 커다란 마을이 마치도 틈많은 싸리광주리같아서 물처럼 얼마든 스며들어갈수 있었다. 그들이 제일 먼저 지나게 된 집은 창문이 죄다 동쪽에 났고 가둑나무로 울바자를 한 집이였는데 부엌문을 열고 나와 뜨물을 던지던 령감이 두 청년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들어가버렸다.
<<우리가 수상해보이지 않는 모양이지.>>
<<글세.... >>
두 정찰병은 마음을 풀면서 점점 마을안으로 들어갔다. 물지게를 지고 한팔을 저어대면서 가는 사람이 있었다. 청송이와 재명은 이 마을에 사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면서 능청스레 그를 따라 마을안으로 점점 깊숙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곳에 이르어 그들은 빈 물통을 진 장년과 마주치게 되었다.
<<아직두 몇지겔 더 길어야 하는가? 제길할!>>
이쪽 사람이 묻고나서 두덜거렸다.
<<아직 두지게씩은 더 길어야 하우. 말이 적은가 열다섯필이나 되는데.>>
마주오던 사람은 물지게를 흔들어 물통소리를 삐각삐각 내면서 지나갔다.
귀가 초롱같이 밝아진 이쪽 정찰병들은 이네들이 별동대의 말을 먹이고있다는것을 제꺽알아맞혔다. 한데 어쩐지 별동대놈들같지 않고 이 마을 사람인것만 같았다. 이 마을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포로되였다가 금을 바치지 못해 그대신 강박으로 로동을 하고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정녕 그러하다면 이 사람을 입을 벌리게 하여 별동대의 동향을 알아낼수도있지 않겠는가. 청송이는 슬그머니 이런 마음이 동했다.
토담도 없고 울바자도 없는 한 허름한 집 앞마당에 말들이 매여져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그리고 거기서 가까운 곳에 불을 켠 커다란 집이 있었다. 틀림없이 별동대토비들이 들어있었다.
<<더 가선 안돼!>>
최재명이 갑자기 겁을 집어먹고 청송이를 잡았다.
<<최동문 여기있으시오. 내가 저 사람을 따라 들어가 말을 걸어볼텝니다. 선량한 마을사람같아보이니까.>>
<<안돼, 그건 모험이야. 대담한 행윈줄 아나?>>
최재명은 겁기라곤 전혀없어보이는 청송이를 되게 꾸짖었다.
<<그럼 어떻게 해? 이러구다녀서야 내막을 알아낼재간없지 않습니까.>>
바로 이때, 뒤에서 총쥔 비도 둘이 불쑥 나타나면서 소리질렀다.
<<누구얏? 꼼짝말고 손들엇!>>
와뜰놀랜 두 정찰병은 바싹 다가들며 겨눈 총구멍앞에서 정말 꼼짝할 수가 없었다. 한자가 총을 내리우고 몸을 수색하자고 들 때였다. 청송이는 갑자기 그자의 눈통을 주먹으로 답새기고는 돌아서면서 총을 겨눠든 자의 다리까지 걷어차 쓰러뜨렸다. 그리고는 들고뛰면서 다급히 웨쳤다.
<<빨리! 빨리! 말있는데로!>>
청송이 말고삐를 제꺽 풀고 돌아다보니 뒤따라오는것 같던 최재명이가 구정물던진 얼음판에 미끌어 넘어져서 낑낑거리고 있었다. 그를 일쿠러 막 가자고 하니 때는 이미 늦었다. 한놈이 먼저 달려와 그에게 덮쳤고 집안에있던 자들이 고함소리를 듣고 우르르 쓸어나오고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청송이는 혼자서 말을 타고 냅다뛰는수밖에 없었다.
보초선을 넘어설 때까지 뒤에서 총알이 날아왔지만 그를 맛히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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