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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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 2장 (6)
2014년 12월 31일 23시 41분  조회:2437  추천:0  작성자: 김송죽
 

   6           

 

   <<김반장! 퇀부에서 부릅니다.>>

   퇀부통신원이 와서 알렸다.

   여러날 돌아다니며 정찰하다보니 몸이 지친데다 정신적피로가 겹쳐 신도 벗지 못한 그대로 곤드라져 통잠자고 일어났던 려홍이는 명령이니 또 퇀부로 가야했다.

   <<나도 가서 반성할테요.>>

   박금록이 문밖까지 따라나섰다. 리홍석이 도주한것 때문에 상급에서 불렀을게고 이제 가기만하면 반장인 려홍이가 락자없이 비평받으리라고 생각한 그는 반에서 발생한 문제니 부반장인 자기한테도 한몫 책임이 있다면서 받게되는 고통을 나누어가지자는것이였다.

   <<넌 오라는 지시도 없는데 왜 나서는거냐. 공연히 핑잔받지 말고 가만있거라. 아무리 무서운 처벌이 있대도 내혼자서 받아내지 않으리.>>

   려홍이는 그의 친구다운 애정을 후덥게 느끼면서 따라오지 못하게 막았다.

   퇀부에는 어제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왕정위도 있었고 여러 참모들도 모였으며 정찰련 련장과 1패의 장패장도 와있었다. 한쪽 벽에 있는 군용지도의 보밀카텐이 열려진것을 보니 방금전에 어떤 토론이 있은것 같았다.

   <<보고! 정찰련 1패 2반 반장 김려홍이 명령뎌로 왔습니다.>>

   <<좋소!>>

   박퇀장이 보고를 받고 다가서며 물었다.

   <<몹시 곤하지 않소?>>

   <<곤하지 않습니다.>>

   <<새 임무를 맡을만하겠소?>>

   <<퇀장동지, 전 정말 곤하지 않습니다. 간밤에 실컷 잤습니다.>>

   려홍이는 의외의 일인지라 환성을 막 지르고싶었다.

   (그러면 그렇겠지, 아무렴 련장이 있겠다 지도원이 있겠다 패에는 또 패장이 있는데 퇀장이 나서서 쩨쩨하게 훈계하겠는가.)

   려홍이가 몹시 기뻐하는 내속을 방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는 몰랐다.

   <<좋소, 좋소!>>

   박퇀장은 정찰병에게 미더운 시선을 주고나서 굳어진 버릇처럼 손가락을 굽혀 상을 가볍게 톡톡 치더니 입을 다시여는 것이였다.

   <<여기 장패장은 이미 알고있는데... 동무는 장패장과 같이 다시한번 원거리정찰을 나가야겠소. 동무들이 여러 방면으로 정찰해온데 따르면 사문동은 확실히 도시를 공점할 야심이 있는것 같소. 우리는 그자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서 적정을 좀더 깊이 알아야겠소. 동무들의 이번 임무는 호룡산과 손가장사이에 취해지고있는 련락이 무엇인가를 알아오는것이요. 알겠소? 적들이 지금 무슨 행동을 준비하고있는가 하는걸 정탐해내야 한단말이요.>>

   흥미있는 일이라는듯이 입가에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박퇀장은 남의 내장을 말끔히 끄집어내놓고 하나하나 검사해보고서야 시름놓을 검질긴 억척보두같아보였다. 박퇀장은 사문동이 도시를 공점하려면 꼭 별동대를 장세울것만은 사실이기에 이번의 정찰목적을 그렇게 정하고 양역설날이건만 일각의 유예도 허락함이 없이 떠날것을 요구하는것이였다.

   려홍이는 장패장을 따라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겠다고 힘있게 다짐했다.

   마참모장이 가늠하는 가늠하는 눈매로 이흑이 생각에 잠겼더니 입을 열었다.

   <<두사람으로 되겠소? 한사람 더 가지. 거리가 멀고 시일도 걸릴게고 의외의 난관에 봉착할수도 있으니 그때는 두사람의 지혜보다 세사람의 지혜가 더 낫지 않을가. 속담에 <구두쟁이 셋이면 제갈량보다 났다>고 했소. ...장패장, 누굴 데리고 갈 마음이요?>>

   <<금록이가 좋겠구만. 중국말이 능해서 함께 변장하고 행동할수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고, 아까도 말했지만 돌아올 때 꼭 시간을 단축하도록 하시오. 지름길은 동무가 안다구했지?>>

   <<예, 그건 손금보듯하니 념려마십시오.>>

   장패장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장패장, 김려홍, 박금록 그 세사람은 말을 타고 도시를 떠나 정찰의 길에 올랐다. 장패장과 려홍이는 루런 기마복에 각각 양피털가옷을 입고 너구리털모자와 여우털모자를 썼는데 박금록은 그보다 초라하게 솜옷을 꿍쳐입고 개털모자를 썼다. 모양새들이 인민무장부대군인같지 않았고 호룡산의 선견군인이나 손가장의 별동대사람 같지도 않았다. 그들이 호룡산과 손가장사이에 오가는 련락의 내용을 알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련락병을 붙잡는것이였다. 이를 목적으로 하고 그들은 극력 마을과 사람을 피하면서 도시에서 서남쪽으로 3백리되는 곳 ㅡㅡ 호룡산이 여기서 서쪽으로 30리, 손가장이 동쪽으로 50리가량되는 지점에 이르렀다. 산이 높고 나무들이 무성했다. 한가닭의 신작로가 산굽이를 돌고돌아 한쪽으로는 손가장에이르고 다른 한쪽으로는 호룡산에 이르러 두곳을 련계시켰는데 그사이에 마을이 세 개밖에 없었다. 여기서 손가장쪽으로 두 개마을이 있는데 하나는 이름이 남림촌이고 다른 하나는 만보툰이며 호룡산에 거의 이르러있는 마을은 채하자라고했다. 채하자와 남림촌은 꽤 큰 금광마을이고 만보툰은 금광마을이 아니였다.

   이곳은 산이 빙 둘러서 반원형을 이루었고 길은 산기슭을 따라서 굽이치고 안쪽 으슥한 곳엔 허름한 산신묘가 있었다. 실로 량측 돌출부의 길을 감시하기 알맞춤한 자리였다. 세 정찰병은 말에서 내려 어떻게 하면 적련락병을 생포할것인가를 연구했다.

   <<만약 이 길로 놈들의 련락병이 다니지 않으면 어쩝니까, 우리는 그저 헛고생만 하게 되지 않을가요?>>

   하고 박금록이 좀 막연해하는 투로 물었다.

   <<왜 련락병이 다니지 않겠소. 꼭 다니오. 좋은 길을 놔두고 그놈들이 어디로 다니겠소. 여겐 이 길밖에 없소.>>

   <<금록이는 적들이 서로 련락이 없을가봐 걱정하는 모양이구만. 그놈들이 서로 련락이 없을리 있나!>>

   려홍이는 장패장의 말에 동의를 표시하였다. 그들이 한창 토의하고있는데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던 려홍이가 무릎을 탁 쳤다.

   <<쉿!... 옳지, 저기 한놈이 오는구나. 패장동무, 저길 보시오!>>

   장패장과 금록이는 려홍이 가르키는 곳을 눈여겨보았다. 저기 위쪽 산굽이를 돌아 한자가 말을 달려 오고있었다.

   <<손가장으로 가는 련락병이 틀림없소!>>

   장패장은 제꺽 판단하고 입술을 옥물었다.

   <<내가 먼저 나가 막을테니 인츰 뒤쫓아오시오!>>

   하고나서 려홍이는 말을 제꺽 타고 길에 나섰다.

   달려오던 말은 바로 자기 코앞에 웬 말탄 사람이 불쑥 나오는바람에 놀래여 소리치며 앞발을 쳐들었다.

   <<어떤놈인데 남이 가는 길을 막는거냐?>>

   달려오던자가 안장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득거리며 갈린 소리를 쳤다. 려홍이는 그따위 소리는 받아듣지도 않고 날쎄게 말을 뛰워 옆을 휙 지나면서 억센 손으로 그자의 덜미를 잡아채여 땅에 떨어뜨렸다. 그런것을 장패장과 박금록이 달려들어 깔고앉아 바줄로 묶었다.

   <<이, 이게 무슨 지랄이냐?... 네, 네놈들은 뉘귀냐?>>

   그자는 붙잡혀갖고도 달아나자고 버둥질쳤다.

   <<이 개자식아, 무슨 악다구니질이냐? 대낮에 몸을 털어내는 사람이 누군지를 몰라서 묻느냐?>>

   장패장은 욕지걸이하면서 주먹으로 그자의 대갈통을 답새겨 정신이 얼떨떨하게 만들어놓았다. 이럴 때 려홍이는 그자의 몸에서 권총을 찾아낸 후 팔목에서 시계까지 벗겨내면서 무등 기뻐했다.

   <<형님 이걸 보우! 이자식이 내한테 시계없는걸 알았던지 하나 차고 왔구만.>>

   <<하하하, 오늘은 벌이가 괜찮은가부다!>>

   <<큰형님, 팔목에 시계까지 찬걸 보니 괜찮은놈같은데 잘들춰봅시다. 금광굴에 드나드는 놈이면 몸에 혹시 금싸래기라도 있을지 모릅지요.>>

   박금록이 능란한 중국말로 이렇게 말하면서 려홍이와 함께 그자를 끌고 산신묘있는데로 갔다.

   <<다, 당신들은 누, 누구요?... >>

   혼겁한 그자는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다그쳐 물었다.

   <<눈깔 펀히 뜨고서도 모르겠냐. 너같은 부객을 만나면 털어내서 배를 채우는 북만호객들이다!>>

   장패장이 뒤짐지고 서서 음산하게 대꾸하고는 금목걸이를 보며 말했다.

   <<둘째야, 금이 있는가 잘 찾아봐라. 이녀석 몸에서 오늘 털어내는건 네것이니 바지까지 홀랑 벗기고 찾아봐라.>>

   날시가 살을 에이듯하건만 금록이는 정말 무지한 강도모양으로 그자의 바지까지 벗기려들었다. 이때 려홍이는 그자의 속옷호주머니에서 접은 종이장을 찾아내여 제꺽 펼쳐보고는 눈우에 던지면서 맹랑한듯이 두덜거렸다.

   <<형님, 이녀석 몸엔 저따위 종이장밖에 없소... 제길할 넌 넌 돈도 없는 거러지냐?>>

   <<동생, 그게 무슨 종이장인데 던지는가?>>

   장패장이 종이장을 주어서 보니 그자는 눈을 더 부릅떴다.

   <<큰형님, 그게 뭔가요? 뻘건 도장찍은걸 보니 무슨 소개신같습니다요.>>

   금록이는 몸을 수색하다말고 목을 빼들고 장패장이 쥐고있는 종이장을 들여다보았다. 그 종이는 사문동이 총망히 쓴 지령서였는데 아래와 같은 짤막한 글이 씌여있었다.

   

   <<별동대 손대장:

   원계획 변동없으니 늦어도 20일전으로 말발굽산을 돌습하여 총과 탄약을 충분히 장만하오.

             사령 사문동 호룡산 원월 5일>>

 

   <<큰형님, 무슨 소개신인가유?>>

   금록이는 보고도 모르겠다는듯이 눈을 거무럭거렸다.

   <<내가 너같은 무식쟁일 동생으루 삼았으니 속이 안탈리있니. 무슨눔의 뚱딴지같은 소개신같은 소리는 자꾸 하는거야. 이건 사문동나으리가 손가장대감한테 보내는 편지다.>>

   하고 장패장은 맹랑하고 분한 상을 해갖고 화를 냈다.

   <<아니 그러면 이녀석은 중앙군사람 아니여?... 우린 사람을 잘못잡고 털어냈구만.>>

   려홍이는 후회되는것처럼 침을 퉤퉤 뱉었다. 그런데 그옆에서 금록이가 빈정거렸다. 

   <<둘째형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우리 손에 잡히우는 놈은 매한가지요. 생각해보오. 안장코님이 돌아갔다고 그를 섬긴 부하를 랭대한 사문동에게 무슨 덕성이 있다구 우리가 그의 부하를 환대해준단말이요?>>

   <<글세... 좀 생각해봐야겠구나.>>

   장패장이 난처한 기색을 하고 종이장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려홍이 손을 숙 내밀었다.

   <<그까짓건 왜 자꾸 보우? 날 주오. 담배종이나 하게스리. ...그리구 형님, 이 녀석을 아예 없애치우기요. 그래야 후환이 없어질게 아니요.>>

   이 말을 들은 적 련락병은 갑자기 울음을 터쳤다. 려홍이 그자의 털모자를 제꺽 벗겨 아가리를 틀어막았다. 포로는 자기를 붙잡은 세사람이 처음에는 제편인줄 알았으나 행동을 보고서 손가장으로 가버린 장삼에게마저 버림받은, 알짜비적질해먹고있는 북만호객인줄 알고 목숨을 구해볼 희망을 지꿎게 가졌다.

   <<큰형님 어떻게 할 셈인가요? 그렇게 담대하던 형님이 노늘은 왜 과단 못하고 망설이는가요?>>

   하고 박금록이 급한듯이 처리는 재촉했다.

   <<강도질을 해도 사람을 보아가며 하고 때를 보아서 마음을 너그럽게 쓸줄을 알아야지.>>

   장패장은 입을 틀어막은 털모자를 빼내여 머리우에 씨워주고나서 그자의 가련한 상을 보면서 말했다.

   <<옛의리를 생각해서 너를 살려줄테다. 그대신 우리는 이렇게 다니면서 우리 식대로 사는 사람이니 그런줄이나 알고 돌아가 비방하지 말거라, 알겠냐?>>

   <<형님, 기어코 살려보내겠소?>>

   려홍이는 갑자기 반대해나섰다.

   <<그럼 이 시계도 돌려주구려!>>

   <<시, 시계는 싫습니다. 어른님들! 어른님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그리구, 그리구 살려주겠거든 그 종이장도 제발 돌려주십시오. 시계는 싫어두 그 종이장만은... >>

   포로는 종이를 주지 않으면 돌아가도 죽는다면서 눈물, 코물을 흘리면서 애걸복걸했다.

   <<너를 살려보내는데 그까짓 종이장이 무슨 값진게라고 우리가 갖겠느냐. 그리고 권총도 너한테 줄테다. 한데 탄알만은 빼놓고 줘야겠다. 알아들었냐?>>

   장패장이 말하고나서 금록이더러 어서 바를 풀라고 했다. 그리고나서는 과연 사문동의 지령장을 그자의 호주머니에 넣어주고나서 탄알뽑은 권총마저 돌려주었다.

   포로되였던 적 련락병은 자기가 죽지 않고 살게 된게 꿈만같아서 감사하다고 땅바닥에다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는 말을 타고 혹시 뒤통수를 갈기지나 않을가 겁나하면서 미친사람모양으로 손가장쪽으로 내뺐다.

   세 정찰병은 큰무리를 찾지 않고 사사이 패를 지어 단독행위를 감행하고있는 비적처럼 행세하였는데 연기술이 그럴듯해서 성공적인것 같았다.

   그들은 인차 그 자리를 떠나 도시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섰다.

   <<계획은 변동없으니 늦어도 20일전으로 말발굽산을 돌습하여 총과 탄약을 충분히 장만하라.>>

   잔패장은 사문동의 지령을 속으로 곱씹으면서 떠날 때 마참모장이 시킨대로 거리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지름길을 택했다. 헌데 지름길로 가면 복리툰을 거치게 된다. 복리툰에는 천지주의 무장대가 있지 않는가. 하지만 두려울건 없었다. 세사람은 말을 그냥 달렸다. 별로 장애되는것도 없었다. 호룡산 근방처럼 적의 순라병을 만날 우려도 없었다.

   <<장패장동무, 복리툰까지 가자면 아직두 몇시간 걸려야 합니까?>>

   려명전의 암흑속에서 려홍이는 앞에 가고있는 형체를 보고있다기보다 느끼면서 물었다.

   <<다리를 건넜으니 이제 한시간만 가면 될게요.>>

   장패장의 대답이였다.

   (우리가 언제 다리를 건너왔던 모양이지?)

   남은 장님같이 어둠속에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가는판인데 그는 어둠도 능히 꿰뚫고보는 형안을 갖고나 있는것처럼 용이주도하게 길잡이를 서고있는것이다.

   <<패장동무, 이 길로 복리툰을 지나가면 우린 사모자를 거치게 되지 않습니까?>>

   려홍이는 언녕부터 원칠두를 만나보고싶은 마음이 있어서 물었다.

   <<제 의견은 잠간만이래두 사모자에 멈췄다 가는게 좋겠습니다. 아는 집에 들리면 먹을것도 좀 구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

   장패장도 금록이도 사모자에는 려홍이 면목아는 한족집이 하나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하여 장패장은 려홍의 제의에 동의했는데 그건 쉬거나 먹을것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였다.

   <<우리가 그 한족을 만나면 적정을 다문 얼마래두 알수있겠지?>>

   <<그분은 선량한 사람입니다. 천지주를 몹시 미워하니 제가 물으면 뭣이든 아는건 죄다 알려줄겝니다.>>

   려홍의 장담이 무모하지 않았다.

   원칠두는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자기를 부르는 려홍의 목소리를 묘하게 인차 알아듣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 려홍이는 다른 사람들을 공연히 깨울가봐 안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정주간에서, 그것도 낯을 전혀 알아볼수 없는 캄캄한 어둠속에서 말을 건늬였다.

   <<그간 안녕하셨어요? 집 식솔들은 다 무사한지요? 그런데 이렇게 문득 뛰여들어 미안합니다.>>

   <<헌데 이 사람, 어데루 가는길이길래 이렇게?... 난 자넬 얼마나 생각했는지 모르네.>>

   친절감이 푹 배인 말이였다. 원칠두는 두려움보다도 어둠속에서나마 려홍의 몰골을 보고싶어했다.

   려홍이는 불을 켜지 못하게 하면서 대답했다.

   <<저는 급한 용무로 멀리에 갓다가 오는길입니다. 문앞을 지나가면서 들려보지 않을수도 없고 해서... 참, 더날 때 미처 인사도 못했습니다...

   <<이 사람아, 언제 그럴새가 있었겠나. 내가 사정을 아니 미안해말게. 그렇게 훌꺼덕 떠나길 잘했지 안그랬더면 어쩔번했겠나. 자네가 떠나간지 한시간도 채 되지 않아 손가장서 왔다는 놈들이 이 마을에 뛰여들었댔네. 달아난 자네를 붙잡으려는것보담 말을 잃은게 더 아까와 기를 쓰고 찾는판이였더랬네.>>

   <<저 때문에 욕보진 않았습니까?>>

   <<무사히 넘겹ㅎ냈네. 그따위 놈들이야 속여보내기 쉬웠지. 헌데 이사람, 자넨 지금 도기에 가 있는가?>>

   <<예!>>

   려홍이는 대답하고나서 그의 안색을 살피려는 듯 어둠속에서 눈을 크게 떠보고는 긴하게 물었다.

   <<듣자니 천지주는 무장대를 조직했다면요? 보초가 심합니까? 우리는... >>

   <<우리라니, 몇사람이 왔는가? 모두 어데 있는가?>>

   원칠두는 눈치채고 질러 묻는거이였다.

   <<제까지 셋입니다. 지금 마을밖에 있습니다. 로인님 우리는... >>

   <<념려말게. 내가 보초병한테 들키지 않고 갈수 있는 길을 알려줄테네.>>

   원칠두는 이롷게 말하다가 문득 떠오르는것이 있어서 한발작 가가들며 귀속말 비슷이 수군거렸다.

   <<참 이보게 자네네 그곳에서 도망친 사람이 없었나? 조선청년인데 개같은 유지회놈들에게 붙잡혔네.>>

   <<아니, 뭐랍니까!? 붙잡혔다구요? 총은 가졌답니까?>>

   <<가졌네. 총을 가지고 사람까지 하나 죽였다고 하데. 모두들 하는 말이 필가툰사람인데 부모원쑤 갚는다고 그렇게 나덤비다가 붙잡힌거라나.>>

   려홍이는 그것이 리홍석이 틀림없을거라 점 찍으면서 울분과 원망에 가슴이 막 찢어지는것 같았다.

   원칠두는 리홍석이 아직 죽지 않았을게라고 했다. 그러면서 바로 오늘낮에 복리툰의 유지회류치장에 갇힌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손만 제대로 쓰면 능히 빼낼수 있다고했고 자기가 도와줄테니 가자고 자진해 나서기까지 했다.

   아직 어둑새벽이다. 네 사람은 복리툰으로 향했다.

   그 전날 리홍석은 벽에 새하얗게 서리끼고 퀴퀴한 냄새까지 풍기는 너느 집 헛간바닥에서 깨여났다. 가느다란 해빛이 간신히 스며드는 어스크레한 속에서 그의 몸은 반나마 얼어들고있었다. 간밤에 받은 그 무서운 타격은 터지고 부어오른 그의 뒤잔등과 얼굴에 아직도 경련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보려고 했다. 그러나 몸은 제대로 움직일수 없을 정도로 거북했다.

   (이제는 끝장인가? 내가 이제는 정말 이 모양으루 끝장본단말인가?... )

   이제는 복수할수 없게 되었고 살수도 도망칠수도 없는 처참한 신세로 되엿다는것을 똑똑히 깨닫게 된 그는 헤여나올수 없는 절망에 빠지고말았다.      바깥에서 인적기가 났다. 눈밟는 빠작빠작 소리가 나더니 문가에 이르러 뚝 멎었다. 홍석이는 고개를 들었다가 돌리고 누가 안을 들여다보고있다는것을 륙감적으로 느꼈다. 자물쇠여는 소리가 절거덕나더니 문이 삑하고 열렸다.

   <<야 이자식아, 이리루 나오라!>>

   어깨에 총을 메고 팔에 푸른 삼각형표식을 단 녀석 둘이 왔는데 들어오지않고 바깥에 선채 감때사납게 호령했다. 그자들은 홍석이를 묶지 않았다. 묶을 필요도 없었던것이다. 홍석이는 느린 걸음으로 걸어나갔다. 한자가 앞서고 다른 한 자는 총을 꼬나들고 뒤에서 떠라왔다. 그들은 얼마가량 걸어서 바로 천지주네 량식창고앞에 이르렀다. 거기 휑뎅그렁한 마당에 사람들이 벌써 수태모여있었다. 크고 둥그런 석마돌우에 걸상을 놓고 거기에 주황색나는 털가옷을 입은 50여세의 살찐 사람이 목에 털목도리를 두르고 앉아있고 그앞 아래땅바닥에 성질이 아주 고약스러워보이는자가 개털모자의 귀덮개를 올려쓰고 서서 이따금 끈을 달아 어깨에 멘 커다란 목갑권총을 거들거리면서 팔짱을 꼈다뺐다 멋을 피우고있었다.

   (이것들이 어쩌자구 나를 끌어내는걸가?... 저 뚱보는 천지주고 저놈은?...)

   어느새 자기의 신세마저 잊은 홍석이는 커다란 호기심을 갖고 석마돌아래에 선 녀석을 여겨보면서 멈춰섰다. 그자가 독살스런 눈으로 쏘아보았다.

   <<이쪽으루, 내앞으루, 썩 가까이루 오너라!>>

   뒤에서 탁 밀쳤다. 홍석이는 반항도 못하고 다시 몇발짝걸어서 지정한 자리에 가 섰다. 수백쌍의 눈들이 자기 한몸에 집중되고있음을 감촉했다.

   <<아니 저게 누구여, 저게 필가툰 리호남의 아들 아니여?>>

   모인 사람들중 면목아는 중국사람이 홍석이를 알아보고 탄식을 터뜨렸다.

   <<젊은 사람이 어쩌다나니 이런 변고를 당할고?>>

   뭇사람들의 수근거림속에서 불쌍히 여겨주고 동정하는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홍석이는 우러나오는 북받치는 비감에 눈물이 막 쏟아질것 같아서 머리를 푹 수그렸다.

   <<에, 오늘 여러분을 이렇게 모이란건 다름아니라 간밤에 아랫마을에서 살인하는놈 하날 붙잡았는데 보다싶이 에ㅡ >>

   개털모자를 쓴 녀석이 말을 길게 뽑다가 쇠벽스레 뚝 끊고는 갈고리눈으로 홍석이를 쏘아보았다.

   <<이놈아, 뭐라고 두덜대는거여?>>

   모인 사람들이 술렁대다가 다시 조용해졌다. 천지주가 벌커덕 일어서면서 누가 살인범을 동정해주는가고 소리질렀기 때문이다. 위엄에 찬 권력을 뽐내면서 그는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그는 홍석이다 간밤에 필가툰에 사는 무당로파를 총으로 쏴죽인 다음 그의 아들마저 죽이려고 이 마을까지 왔다가 경각성높은 보초병한테 붙잡혔다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필가툰도 자기의 권하에 속하는 마을이며 특히는 유지회성원이나 그의 가족은 절대 불가침범이라는 것, 만약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해로운 행위를 취한자는 모두 죄인으로 처서 엄벌에 처하리라고 엄초를 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이 복리툰은 물론이고 필가툰이나 사모자 등 유지회의 관할하에 있는 다섯 개마을에서 누가 만약 홍석이 같은 살인자거나 혐의분자를 동정해 숨겨주거나 빼돌린다면 용서치 않으리라고 재차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모여선 군중을 휘휘 돌아보더니 머리를 홱돌려 다시금 홍석이를 족쳐댔다.

   <<이놈아, 네가 총은 누구한테서 가졌느냐 엉?>>

   <<하느님한테서 가졌어유.>>

   <<이자식이, 그냥 그따위 얼빠진 소리만 할테냐?... 하느님이 뭐라고 네놈에게 그걸 줬단말이냐?>>

   <<복수하라구요! 무당아들 죽이라구요! 죽더라도 복수하라구요!>>

   <<아, 아니 이자식, 그냥 그따위 소리만 줴칠테냐?>>

   천지주는 벌레라도 삼킨듯이 오만상을 찌프렸다.

   <<이자식 입다물어! 아직두 혼빵나지 않아서 그따위 소리야?>>

   개털모자를 쓴 녀석이 소리를 빽 지르면서 주먹으로 홍석의 머리통을 쥐여박았다.

   <<네가 무당 아들을 죽이겠다구? 흥, 그 사람은 벌써 손가장에 가서 별동대 랑아련 패장노릇하고있다. 두고봐라 너를 이제 그 사람한테 맡겨 각을 뜯어먹게 만들테다!>>

   천지주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는 자기가 조직한 지방유지회의 무장대는 사문동의 지령을 받고 중앙군에 가담하였은즉 자격이 당당한 별동대로 되어 장차 싸움의 선코에 나설것이라면서 누구나 성심껏 옹호해나서야 한다고 근 두시간이나 입심을 뽑았다.

   홍석이는 다시갇혔다. 춥고 더러운 류치장안에서 그는 어둑시그레한 구석쪽을 멍하니 보면서 난생처음 뼈저린 후회에 잠겼다.

   (내가 이젠 여기에 갇혀있다가 죽는단말인가?... 무당아들놈을 죽이러왔다가 복수도 못하고 제가 도로 죽다니, 아아아... )

   원통해도 방법없었다. 이젠 죽음만 고스란히 기다려야 할 가련한 신세로 되었다. 불행한 자기 신세를 통감하게 되는 이 시각에 그는 자기가 부대를 뛰쳐나온것이 후회막급되면서 심장이 조여들듯 가슴아팠다....

   세 정찰병이 원칠두와 함께 말을 타고 복리툰에 이르렀을 때까지도 날은 밝지 않았다. 그들은 곧추 홍석이 갇혀있는 류치장으로 갔다. 그 옆에 외양간이 있었는데 잠자던 늙은 개가 놀래여 갑자기 짖는통에 일은 더 급하게 되었다. 새벽보초를 방금 교대해선 천지주무장대녀석이 피우던 담배를 홱 던지고 총을 거머쥐면서

   <<누구얏!>>

   하고 소리쳤다. 거리가 너무가까와 갑자기 대처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절컥거리는 유저소리를 들은 려홍이는 단검을 뽑아쥐고 성큼성큼 다가가면서 중국말로 두덜거렸다.

   <<빌어먹을 개가 사람도 모르고 짖어대?>>

   <<누구요?>>

   하고 보초병이 다시물었다.

   <<내다! 너도 개처럼 겁나니?>>

   려홍이는 이렇게 대구하면서 그자의 앞으로 바싹 다가들며 불시에 덮쳐들어 단검을 그자의 가슴팍에 박았다. 보초병은 끽! 하고 외마디소리를 지르며 꼬꾸라졌다. 그런데 그자의 호주머니에는 열쇠가 없었다. 총착으로 자물쇠를 깬다면 필경 소리가 날 것이였다. 그래서 려홍이는 총끝을 자물쇠고리에 넣고 탈았다. 그랬더니 마침내 문이 열렸다.

   놀랜 홍석이는 웬 영문인지 몰라 벽에 딱 붙어섰다.

   <<홍석이, 홍석이, 빨리나와! 나 려홍이야!... >>

   홍석이는 귀에 익은 반장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달려나왔다.

   <<아, 김반장!... >>

  그는 목메인 흐느낌소리를 냈다.

   <<제기, 이럴때가 아니야. 빨리 이쪽으로!... >>

   려홍이는 비칠거리는 홍석이를 제꺽 둘쳐업었다. 금록이가 달려와서 부축했다. 둘은 말께로 오자 그를 잔등에 올려놓았다.

   원칠두는 그 자리로 급히 돌아갔다.

   정찰병들은 보초선을 우회하여 복리툰을 벗어나자 말을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온 마을 개들이 다 깨여나 짖어댔지만 천지주는 날이 샐때까지 마을안에서 무슨일이 생겼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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