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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옥란이 자장붙이보다 더 귀중히 여기던 비파가 옹근 한달째 소리를 끊고 벽에 걸려있다. 옛말에 외모가 요조숙녀로 보이는 한 요귀가 있었는데 마음이 어찌나 요변스럽고 사악한지 한번 굴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아흔아홉사람의 간을 빼먹고서야 하늘을 우러러 빌고 사람의 몸으로 변하여 돌아오군했다고 한다. 손옥란이 이제 그 모양이 되는판인가싶다.
<<향란아, 이리 온>>>
수양대지휘소로 사용하고있는 평천부(平天府)에 갔다온 그는 제 몸종애를 불렀다.
불갑사댕기를 머리에 맨 귀엽고 깜찍스런 계집애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얼굴에 놀란 빛을 띠였다.
<<아씨님이 오늘은 대사가 있어 나가시겠다해놓고 왜 돌아오셨나요? 나는 손대감분부대로 접객실을 거두려 가려던참인데요.>>
<<네 아니면 손님접대를 못한다더냐? 다른데로 뺑소니칠 념은 말고 어서 내 방이나 잘 거두거라.>>
손옥란은 눈을 할기며 핀잔하고나서 제 오래비가 선사한 륙혈포를 구식권총이라 나무라고 던진후 벌서 일곱 번째나 고른 죄꼬마한 권총을 손에 쥐고 보았다.
<<아유! 어쩌면... >>
소녀애가 손옥란의 새 권총을 보자 놀라떠는 소리를 냈다. 손옥란은 그를 할끗 보고나서 새 탄알을 탄창에 재워넣으려 했다. 소녀애는 콩알만한 탄알이 널려있는 연록색 비로도카바를 씌운 원탁우에 손을 가져가며 주인이 노리개로 주었던 부전조개를 쥐려고 했다.
<<맘대로 다치지 말어!>>
손옥란이 탄알을 얼른 쥐며 어딘가 위협적인 음성으로 앙칼지게 말했다. 소녀애는 마치 불에 데기라도한듯이 손을 얼른거두고 제 가슴을 짚었다. 성격이 괴상하게 돌변해버린 녀주인의 표독스런 얼굴을 쳐다보면서 그는 무서워 몸을 떨었다.
손옥란은 요즈음 각별히 자주 외출하군했다. 소녀애가 한번은 우연히 농군들이 거처하고있는 사랑채 들창앞을 지나다가 손옥란이 제 손으로 길가는 웬 사람을 쏴죽이더라고 힐난하는 말을 피뜩 훔쳐들은적이 있었다. 그때로부터 각별한 조심성이 생기게 된 소녀애는 웬 일인지 말못할 일종의 공포증이 생겨 병처럼 은연중 몸을 떨군 했다.
<<왜 그렇게 병신스레 노는거냐, 무섭냐?...>>
손옥란은 야유하듯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소녀애는 여리고 가냘픈 손으로 도근거리는 제 가슴을 짚으며 가까스로 진정했다.
<<무서워요 어쩐지... 그걸 보면 난 가슴이 막 떨려나요.>>
<<가슴떨린다구? 내가 너한테 총구멍도 안대는데두?>>
<<아씨님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해도 그게 사람죽이는거니까 난 매한가지로 무서워요.>>
손옥란은 저의 몸종을 마뜩잖게 흘겨보고나서 손을 재게 놀려 탄알을 마저 재워넣었다. 소녀애는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쉬였다. 그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까닭모를 일이였다. 그래서 벽에 걸린 비파를 다시 보고나서 물었다.
<<아씨님 저걸봐요. 비파가 먼지껴요. 아씨께서 인제 저 비파를 영영 버리려나요?>>
<<뭐라냐?... >>
손옥란은 성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녀인으로서는 찾아보기 드믄, 지독한 야심이 숨겨있는 무거운 음성으로 단정하여 말하는 것이였다.
<<나한텐 이젠 비파보다 이 권총이 더 필요해.>>
이 소리까지 들으니 소녀는 소름이 끼쳤다. 사람목숨밖에 빼앗을줄 모르는 저따위것을, 생각만해도 무서운 저따위 흉기를 왜서 저렇게 좋다고 하는걸가?...
소녀는 방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애고사리같은 손에 걸레를 쥐고 많은것을 새로닦아야 했고 자기키보다 갑절높은 그 큰 경대 하나를 닦기 위해서도 그는 걸상을 놓고 올라서야만했던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키도 커지고 기운도 좀 더 세지리라 여겼지만 그것은 알리지 않고 어찌된 일인지 힘에 부치는 일만이 점점 더 생겼다. 그래서 소녀의 가슴속에는 각가지 근심들이 어수선하게 맴돌이쳤다.
(옥란아씨는 나더러 자기를 더 잘 보살피라는데 어떻게 해야 한담?... 그인 무슨 장교인지 하는 어른한테 시집을 가리라는데... 그 장교님은 나를 어떻게 대해줄가?... )
총가진 사람이나 칼찬 사람이나 이 손가장원에 있는 모든 나리들과 어른들은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있으니 누구를 찾아가서 속타는 마음을 하소연할수 있으랴. 하여 그는 막연한 비탄에 빠지면서 가슴이 꺼질듯한 한숨을 후 내쉬였다.
(나한테 주인이 많이 생긴건 고통이야. 눈을 부라리며 서로들 제 심부름을 더하라고 죽닥질을 할거야. 그러면 난 고달퍼. 난 어쩌다나니... )
소녀는 경대앞에 오도카니 않은 손옥란의 날씬한 몸매무시를 보니 왜ㅔ선지 예전에 없었던 염오감이 불쑥 생겼다. 그의 눈앞에 상판이 객주집칼도마같이 우무러들어간 장삼이란 사나이가 바로 어제 어리칙칙하게 손옥란의 저 가느다란 허리를 글어안아보려고 징글스레 놀아치던 모양이 자꾸 떠올랐다. 어찌된 연고인지 그가 5백명되는 제 부하를 데리고 이곳으로 찾아오자 평소에는 과묵하던 늙은 손대감이 너무도 반가와 지어는 분수에 넘게 춤이라도 출 지경이였고 그의 아들 손도령은 또한 온 장원이 들썽하니 무슨 <<례>>라는것을 갖추어 그를 공손히 맞아들엿던 것이다. 장삼이 데리고 온 졸병들은 오자마자 본지방에 있던 6백명 수향대 대원들처럼 깜장복장으로 바꿔입었다. 토성안이 너르기 다행이엿다. 지금 손가장원안은 원래의 수향대인원에다 장삼이 거느리고 온 무리를 합쳐놓으니 그야말로 구정물독안에 악마구리끓듯하였다. 그런데다 또 무슨놈의 <<귀객>>들이 찾아온단말인가?... 그네들을 잘 맞아들이라는 늙은 손대감의 지엄한 명령이 내렸다고 어제오늘은 성미가 결패스러운 청지기가 앞장서서 농군, 종, 식모, 과방군, 동자아치... 무엇무엇 근 200여명이나 되는 사람을 동원시켜 소잡는다, 돼지잡는다, 닭잡는다... 갖춤새에 내모는데 지어는 앞잡이를 시켜 회초리까지 들고 분대질치는 판이니 그놈의 등쌀에 사람들은 목구멍에서 단 겨불내 날 지경, 사타구니에서 행금소리 날 지경 달아다녀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도 지치고 들볶아대니 자칫 억울해서 못살겠다고 아우성까지 칠 지경... 이런 현상을 보고잇는 소녀는 이 손가장원에서 하여튼 무슨 큰일이 벌어지고있다는 것은 짐작했으나 손창유가 사문동으로부터 보내온 비밀답신을 받았다는것은 알리만무였다.
<<손형께 아뢰오;
전일보낸 편지를 감사히 받아보았소. 만주에서 일본인이 패망한 후 질서는 문란하고 민심은 자못 소란해졌소. 당전의 국세로 보아 우리 자신이 일어나 운명을 지고나서야 함이 보다 명지한 처사인줄로 아오. 자고로 뜻이 서로 맞는 사람은 의리를 중히 여겨왔거늘 나는 로형께서 나와 능히 생사를 할줄로 믿소. 세상일이 모두가 뜻대로 되는 법은 아니지요만 사람에게 담량과 의지가 있다면야 성사못할 일이 어디있겠소.
장총통께서 이미 건국강령을 반포하여 새 국가를 창건하시겠노라 했거늘, 공산당이 세력을 뻣쳐 여기 북만에서 정권을 튼튼히 잡기전에 우리가 먼저 빼앗는다면 이것이 우국지사며 충신으로 다해야 할 의무가 아니겠소. 일각천금이라는 말이 바로 지금의 형세를 놓고 비유한줄로 아오. 하기에 손형의 의사대로 내가 그곳으로 가서 여러 형제들과 한자리에서 대사를 한번 의논하려하오니 그리아시오.
중앙선견군 사령 사문동올림.
민국 34년 10월 x일. 호룡산에서
손옥란은 진주구슬달린 휘장을 내리우고 침대에 누궈버렸다. 몸이 해나른해서 한잠 푹 자고 일어나려는 것이다. 소녀애가 방안을 마저정리하고나서 긇인 차물을 담으러 차관을 들고 나가려다 문을 뚝 떼고 들어오는 손자량과 마주쳤다.
<<에키, 남의 코등깰라! 조꼬만 계집애가 덤벼치긴 제기! >>
그의 입에서 역한 술내가 확 풍겨와 낯에 들씌워졌다. 소녀는 어마지두에 떨리는 소리를 짧게 지르면서 한손으로 자기의 코를 감싸쥐였다. 이 모양을 본 손자량은 능갈치게 껄껄 웃었다. 그의 넓은 이마밑에 가로 쭉째진 뱁새눈이 한자나 되게 길어진것 같았다.
<<흐흐흐흐... 발칙한 계집애! 참새모양으루... 제 집 사람보고도 무서워해쌌네 흐흐흐... >>
그의 이런 롱을 여직 한번도 받아본적이 없는 소녀는 외려 겁을 더럭 집어먹고 누워있는 손옥란에게로 막 달려갔다.
<<요 계집애 왜 이래, 응?...>>
손옥란은 몸종애를 욕하려다말고 곤드레만드레 취한 제 오래비를 힐끔 보고는 돌아누워버렸다. 웃동을 벗아 반라체나 다름없는 제 누이의 박속같이 희고 부드러운 살결을 게슴츠레 보던 손자량은 암내맡은 수캐모양으로 히죽이 웃었다.
소녀는 가슴이 그냥 오돌오돌 떨려 한쪽 구석에 있는 쪽걸상에 피해가서 몸을 옹성그리고 앉은채 간간이 숨을 톫았다.
제 동생이 아니고 남이라면 에누리없이 희롱질을 할 손자량이 지금은 제법 사람답게 정욕을 누르고 거의 입이라도 맞춰줄양 얼굴을 바싹 들이대며 말을 수다스레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무튼 일은 제대로되여가는판인가보다. 매사불여튼튼이라고 한번 네 손아귀에 넣었으면 달아나지 못하게 단단히 잡도리하란말이다.>>
손옥란은 입을 삐죽거리더니 눈을 슬며시 감아버렸다.
<<쩌쩌 왜 이러는거냐?>>
손자량이 엉뎅이를 끌며 바싹 다가붙었다.
<<아니 네가 그래 이 오래비하는 말이 귀잖단말이냐?>>
<<아이참, 듣기 역겨워.>>
손옥란은 응석부릴때처럼 몸을 떨었다.
<<이런 제기! 그, 그게 무슨말이냐 응?... 괜히 이러지를 말고서 시원스레 대답해보렴.>>
손자량은 상통을 찡그렸다가 달래듯했다.
<<나는 여직 한번도 너를 버린적없다. 우리 이 손가네 집안에서 혈육자매라곤 드나노나 너와 나 둘뿐이 아니냐. 아버지는 로쇠하여 사실 여생이 오라잖고 네까지 시집가고나면 나는 뭐가 되겠냐. 이 몸은 혈혈단신이 되어 떠돌아다니다가 무주고혼이 돼버릴게다.>>
소녀애가 머리쳐들고 놀란 눈으로 그를 여겨보았다. 거의 울상이 된 손자량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어도 가슴이 꺼지듯하는 탄식으로 제 누이의 고독한 심정을 건드려놓은 것이다.
손옥란은 낯빛을 흐리우며 서글프게 말했다.
<<오빠! 내 오빠! 하구많은 말을 두고 왜 하필 그따위소린해요?... 난 시집갈래도 오빠 혼자 남을 일 더 걱정스러워 과단못하겠어.>>
<<옥란아!>>
손자량이 목메여 불렀다.
<<네 심정이 정녕 그렇다면 과연 고마운 일이다.!>>
웬 일인지 손옥란이 눈물을 훔쳤다. 여지껏 함께 살아오면서 그가 우는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던 소녀는 적이 놀란 눈을 샛동그랗게 떳다.
손자량은 승마복호주머니에서 담배케스를 꺼내여 권련 한 대를 뽑아 입에 물었다가 신경질적으로 홱 팽개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제기, 계집애가 역기는 원!... 신랑가이 맘에 안드니 딱 나눕는판이구나. 그러면서도 신통스레 제 오래비 걱정이라지.)
다른 사람에게 오로지 노예적인 굴종만을 강요하려드는 만성적인 악습이 자라고있는 손자량은 이렇게 속으로 지벌거리고나서 말을 다시꺼냈다.
<<얘 옥란아, 이 오래비가 너를 진심으루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 제발 들어다구.>>
<<무슨 말을 그러오?>>
손옥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손자량은 안타까운 듯 상을 찡그렸다.
<<언 어째서 그렇게도 어물쩍하게 묻는거냐?... 네가 정말 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서 딴전을 부리는거냐? 내 말은 어서 시집가라는거다....>>
<<아이참! 그런데 오빠는 애 장창 술만 마셔요?>>
<<애 마시느냐구? 거야 내멋대루 살자니까 그러는게지. 너도 눈을 뜨고 뻔히 보다싶이 내야 꿰맨 뚜껑이 아니냐.>>
손자량은 변명하듯 둘러맞추고나서 충고했다.
<<얘 옥란아, 꽃도 한철뿐이니 잎만지면 그만이아니냐. 그런데 넌 왜 그렇게도 목석같이 바보노릇하려는가말이다? 원 네속은 알지도못하겠구나. 호박이 늙은건 먹기나좋다만 처녀늙은건 정말 꼴불견이더라. 좋은 당사자가 나섰을 때 어서 제꺽 응하거라.>>
이 말에 손옥란은 외면해서 돌아앉으며 한숨쉬였다. 시원스레 응대해주면 쾌연하련만 녀동생은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손자량은 더욱 등이 달았다.
손옥란은 탄식에 잠기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갑자기 항변해나섰다.
<<오빠, 난 그, 그사람한테는 정말 시집가고푼 마음이 없어요. 장삼은 정말 싫어!>>
<<제길할! 에참! 너 그게 무슨 미치고 창빠진 소리냐? 이게 대체 무슨 어린애장난이라고 이랬다저랬다하는가말이다? 내가 맘 있어한다 대답했는데 이제 와서 네가 실쭉해하면 그 사람이 뭐라겠니?... 이건 정말 가문이 깎일 일이다.>>
<<그래도 난 싫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한테 억지로 시집가진 않을테야.>>
손옥란은 내놓고 땅고집썼다. 실로 골치아픈 일이였다. 장삼이 찾아온건 매우 반가운 일인데 이 좋은 일이 나쁘게 변해버릴가봐 그게 걱정이였다. 손자량은 속이 탔다.
장삼은 안장코와 더불어 아르금시를 손에 넣어보려는 어리석은 꿈을 안고 반란을 시도했었다. 한데 그 미몽이 산산이 부서지자 사문동의 직접 지휘하에 큰 무리를 만들고있는, 로마적이며 숙지였던 굴대장군과 합치려고 호룡산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거기에 가서는 또 새 상전으로 등장한 사문동께 위신을 얻으려는 야심과 지위다툼으로 하여 그들사이에는 화목과 친선을 유지할수 없었다. 그리하여 장삼은 어느날 한번 사소한 일로 굴대장군과 다툰 끝에 급급히 저의 졸병 500여명을 거두어 호룡산에서 빠져나왔던것이다. 결국은 장삼이 하는수없이 옛상전을 찾아온 것이고 한번 패권을 쥐여보려는 야심이 발발한 굴대장군은 사문동에게 단단히 붙은것이다. 이로인하여 손창유는 굴대장군이 옛상전인 자기를 버렸으니 의리를 배반했다고 욕했고 자기를 충심으로 섬기려찾아왔노라 하는 장삼은 더없이 믿을만한 부하라고 대단히 칭찬했던 것이다. 그리고 손가네 부자간에는 장차 해나갈 일들에 대해서 밀모가 있었다.
어려서 마적질을 해먹던데로부터 만주국공민으로 되어 노가다판으로 돌아다니며 십장질도 몇 년간, 실업계에 들어가 어찌어찌하다가 나중에는 아르금시에서 협화회 회장노릇까지 해본 장삼은 오늘 손가네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노라 맹세를 보이지만 실상은 딴심보를 품고있으면서 능란한 말솜씨와 처세술로써 옛상전의 환심을 얻고있는데 불과했다.
장삼이 나이가 실지는 40고개를 넘겼지만 이제 겨우 32세밖에 안되는 로총각이라고 멀쩡한 거짓말을 꾸며댔으나 손창유는 자기 딸을 그한테 넘겨줌으로써 의리를 베풀어주고 대신 그를 제 손아귀에 단단히 거머쥐려는 음흉한 배포였다.
하지만 눈치역은 손옥란은 첫눈에 벌써 나이많고 인물이 그닥지 않은데다 성미마저 결패스러워보이는 장삼에게 제 몸을 맡기고싶지 않아 그만 해뜩 나눕고말았다. 밤사이에 생긴 이런 봉변을 장삼은 전혀 모르고있는데 만약 알게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더욱이 바보같은 그보다도 횡재난 다름없이 얻은 그 500명되는 졸병들을 잃어버릴가봐 손창유는 걱정이 태산같았다. 그래서 이 난처한 국면을 돌려세우려고 그는 아들을 시켜 딸을 달래게 한것이다.
<<어떠냐, 이 오래비말이 틀리느냐?... 제발 딴전을 부리지 말고 내 말을 곰상히 들어다구.>>
손옥란은 그냥 시들픈 생각에 잠겨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았다. 손자량이 타협조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였다.
<<내놓고보면 이건 본시 희사인데 형제지간에 공연히 원망거리로 만들 필요는 없는것 같다. 가부간 네가 그와 당면해서 관계를 끊지 않기만 바란다. 이 오래비가 간대로야 셈판이 없이 일을 처리하겠니. 이건 기실 당분간의 응부조치이고 후일은 좋도록 방도를 대보자꾸나. 정 성가시게 군다면 그까짓거 하나쯤 처리하는게 뭘 대수겠니. 졸병없는 장군은 허수아비니 우리한테는 그 사람 하나보다도 그가 갖고온 500명 졸병이 더 필요되는거다.... >>
이틑날부터 약정대로 귀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권세욕에 눈이 어두워진 손창유는 원래 자기의 옛부하마저 제 손아귀에 후려넣은 사문동의 일이 그지없이 괘씸했지만 그가 지금은 실제상 이 북만에서는 실권있는 거두라고 여겨졌기에 공공연히 맞서기를 단념하고 상객으로 치부하면서 딴 방에다 접대했다.
사문동은 원래 대지주출신이였는데 한때 투기적으로 항일에 나섰다가 시련을 겪어내지 못하고 위만서울이였던 신경(장춘)에 찾아가 황군문턱밑에 엎드려 자수해버렸던 후안무치한 변절자이다. 그는 혁명을 배반하고 동지들을 팔아먹은 덕분에 일제와 만주국황제에게 신임얻어 개명정객으로 불리워 수년간을 상류계의 문턱을 넘나들며 충성해온 사환군이였다.
비적의 습성에 이골이 튼 손창유는 그를 문전에서 맞아들일 때 자기는 대의명분을 지키겠노라 다짐하는것으로써 그에 대한 손가족의 신의와 친절을 충분히 표달했던 것이다.
사문동이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대하는바가 역시 그것이였는데 황차 그쪽에서 그같이 대해주니 웃음집이 흔들흔들했다.
저의 아버지 추김대로 고급요인들앞에서 한번 자기의 패기와 슬기를 자랑하고싶었던 손자량과 손가네 유능한 재산관리인인 청지기가 마음먹고 차린데서 과연 이고장에서는 류례없던 큰 잔치가 성대하게 벌어졌다.
사문동은 자기가 로형이라며 존경하는 손창유와 의논하여 이번 잔치를 <<합심결사연(合心決死宴)>>이라 이름달았다. 이번 이 연회에는 그들 두사람의 초청을 받고 온 사람들이 수십명으로서 그네들은 모두가 고관대작으로 되어보려는 미몽을 품고 탐위와 권세에 힘을 다하고있는 고루한 장부들이였다.
널직한 평천부(平天府) 대청에 10여개의 팔인석 둥근 탁상이 널려있는데 한가운데 해, 산, 들,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부기, 학, 사슴, 물 따위의 10장생을 그린 열간 병풍을 한켠에 두르고 새하얀 보를 씌운 원탁둘레에 손창유와 사문동을 위시해서 그들의 측근자이며 동사자인 리화당, 마희산, 장흑자, 로국천, 곰보방치가 앉아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부귀와 공명을 례사로 아는 우두머리로서 목단강일대와 밀산, 통하, 벌리 등 지방에서 저의 손아귀에 끌어넣을수 있는 인간들은 전부 끓어넣어 도당을 크게 무은 소위 국민당중앙선견군의 고급장교들이였다. 그옆의 다른 탁상에는 손자량을 주체로 해서 장삼과 리경광 그리고 사문동의 사위와 아들들이 앉았고 그옆의 다른 탁상에는 손옥란과 사문동의 기생첩, 리화당의 정부와 장흑자의 딸 몇몇이 앉았으며 기타의 탁상들에는 모두가 선견군의 아류인물로 되거나 그 비슷한 인간들이 앉았는데 꼭마치 빈 절간에 구렁이끓듯했다. 그네들은 모두가 저의 상전을 본받아 세상 어리석은 꿈을 품고있는 이른바 <<명사호걸>>들이였다.
이번 연회에는 금성에 있는 토호 호위전과 호룡산을 지키고있는 굴대장군을 제외하고는 북만의 거두들은 거의가 림석한셈이였다. 사문동은 자못 득의양양해하였다. 한것은 바로 얼마전에 중경에 있는 장개석총통에게서 높은 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장개석의 친필서명이 있는 <<위임장>>에는 사문동을 <<국민당중앙선견군 동북빈수도가보안 총사령>>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던 것이다.
기고만장해진 사문동은 연신 너털웃음을 쳐가며 이번에 갖게 된 <<합심결사연>>을 자신의 취임식으로 대체하면서 이번 모임은 임명장을 하달하고 돌아간 국민당 x x <<비적토벌총사령부>> 판공실 x x참모가 이야기한바와 같이 장개석총통께서 직접 비준한것이라면서 첫시작부터 그럴듯하게 운을 뗏다. 그의 모든 정력은 우선 여기에 모인 량심사납고 까다로운 몇몇사람들에게서 신망과 존경을 얻자고 하는데 집중되였고 경쟁자를 일거에 물리치려는 야심을 은페하면서 위엄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한데 집중되고있었다. 그는 자기를 전지전능한 정치가, 군사가로 분장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에, 형제자매들! 우리가 불원천리하고 이같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것은 다름이 아니라 국가의 대사를 한번 의논해보자고 하는데있지.>>
하면서 사문동은 류창하기는 하나 어딘가 짜내는 목소리로 이번연회의 목적과 의의에 대해서 일장의 장황한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신중성이 부족한 젊은이들은 처음부터 그의 연설에서 자기 기분에 맞는 음을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사문동을 대해줌에 있어서 언제나 제일 까다로운건 마희산이였다.
<<제길할거! 황새와 조개가 싸우는통에 농부가 득을 봤는데 저 빌어먹을 령감쟁이와 내가 싸우면 어느놈이 중간에서 득을 보게 될가?>>
하고 마희산은 은근히 볼이 부어서 속으로 두덜거리고있었다.
사문동의 첫연설이 끝나자 연회가 정식으로 시작되였다.
연회청은 분잡해지기 시작했다. 어디서 주어모아온것인지 일본사람들의 료리간과 오페라극장의 악사들이 쓰던 기타며 만도링이며 하는것들을 손에 든 사나이들이 퇴페한 류행곡들을 연주했고 새까만 비로도원피스를 차려입고 진주같은 유리구슬을 목에 건 해사한 1등급 녀기생이 두손을 맞잡고는 마치도 교예단의 암말처럼 궁둥이를 흔들어대면서 간간히 노래불렀다.노래가 끝날 때마다 술상들에서는 술잔을 맞찧는 쟁그렁소리, 재청을 요구하는 희롱적인 휘파람소리가 한데뒤범벅이 되어 잡다한데 새로 지은 산뜻한 비단옷을 입은 손지주네 사환군들이 갓 볶아낸 료리를 쟁반에 담아 받쳐들고 날면들면 분주히 서둘렀다.
낯이 갸름하고 두눈이 쌍거풀진 젊은 사환군이 새로 맥주 한상자를 들고 들어오니 술에 이미 걸근해진 마희산이 제가 제일즐기는 포도주병을 찾으려고 긴 허리를 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니 누런 구리단추가 번쩍거리는 일본 관동군 장교복에다 옆구리에 찬 기다란 일본군도가 가죽군화에 부딧쳐 거들거리면서 쇠소리를 요란스레 냈다. 파리마저 달라붙기 힘들어할 정도로 이마가 훌렁 벗겨진 그는 자기와 동석한 다른 인물들에 못지 않은 양 거드름을 피웠다.
<<기실은 이 마희산이 려장이 아니라 총사령으루돼야 할건데 근모의 복이 어쩌다나니 저 팔자수염쟁이 령감한테루 달아났을가.>>
속으로 이러면서 사문동을 넌지시 보는 그도 한때 <<애국자>>라는 간판을 내걸고 항일을 하다가 무치하게 변질해버린 사람이요, 출세 하나만을 위해서라면 천인이 공노할 만행도 서슴없이 감행할 용감무쌍한 장골이요, 대의명분을 요란하게 떠벌이면서도 일단 자기에게 손톱눈만큼한 손해라도 잇을라치면 침이 마르도록 치살려오던 동사자마저도 서슴없이 잡아먹을수 있는 재질을 갖고있는 위인이였다. 사문동이 손에 든 술잔에서 술이 쏟아지는것도 모르고 손창유와 코를 맞대고 그냥 뭐라 신나서 떠벌이는 모양을 고깝게 보는 그의 가슴속에서는 도끼날같은 질투가 욱 치받쳐올랐다.
<<빌어먹을 령감두상이 왜놈총에 급살이나맞지 않고 여직 꾸역꾸역 살아와 이젠 제법 내노라 행세하게 됐구나. 어디 두고보자 누가 더 잘되나.>>
속으로 이러면서 마희산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손이 가는대로 큼직한 돼지발쪽 하나를 덥석 쥐였다.
안락의자가 당장 부서지듯 삑 소리를 냈다. 몸체가 뚱뚱한 사문동이 뒤로 기대앉으면서 수건으로 기름묻은 입을 쓱 닦는것이였다. 그의 비게덩이가 두둑하니 부어난 뒤덜미와 절구통같이 딱 바라진 체구, 거만스레 비꼬아올린 콧수염과 기름묻은 뒤웅박같이 번들거리는 대머리를 봐서는 어느 관자집주인같았지 군사가로는 전혀 보여지질 않았다.
마희산은 그의 투미한 두볼을 이윽히 가늠하듯 보다가 씩 웃고나서 코를 킁킁거렸다. 정치적식견을 한번 떠보자는 심사였다. 그는 우선 력사인물 몇을 들어서 비하며 그를 한번 올리추었다.
<<사사령! 우리 나라에만도 전해지고있는 옛로장들을 들여볼라치면 춘추때 손무(孫武)요, 전국때 오기(吳起)요, 연나라때 렴파(廉頗), 진나라때 왕전(王剪), 한무제때 (趙充國), 송조때 반초(班超), 한세충(韓世忠)이 있었다더니만 오늘 이 북만에서는 사문동(謝文東)이 나왔구려 허허허!... 헌데 사사령, 에.... 공산당에서 지금 련합정부를 수립하고 련합통수부를 수립하자한다는데 그런다면 이에 대한 우리측의 태도는 여하한지 이전 기회에 한번 사사령의 탁견을 내놓는것이 좋겠구만요.>>
무슨 말을 하는가해서 귀를 벌쭉 세우고 듣던 사문동은 이러루한 질문에는 벌써 준비가 되어있은지라 입을 헤벌리고 머리를 끄덕끄덕했다.
<<우리의 장총통께서는 지금 일당독재를 주장하고있소. 사실이 엄연한바 우리 중국에서는 오직 국민당 혼자가 정권을 잡아야만 나라가 번영하고 부강해질수 있는거요.>.
그는 잠간 말을 끊고 비대한 몸을 자리에서 일으키더니 좌중을 한번 빙 둘러보고나서 다시금 말하기 시작했다.
<<에ㅡ 목전 국세로 보아 우리들에게 있어서 선차적으로 필요한것은 바로 <국민대회>를 소집하는거요. 나의 주장은 이러하오. 지난 3월 1일에 중경에서 소집되였던 <헌정실시협진회>에서 진술한 장총통의 연설은 확실히 신형의 창조인것이요. 우리는 지금 우리들 내부의 구호가 바로 <반공제1>이라는것을 잊지 말아야하는거요.>>
<<하기야 그런데... >.
하고 이번에는 손창유가 입에 물었던 담배물부리를 빼고 제법 정치적소견이 있는 태도로 물었다.
<<저... 미국의 태도는 어떠하오?>>
<<에... 그건 이렇지요.>>
사문동은 배를 내밀며 머리를 뒤로 젖혔다.
<<전임 미국대통령 루즈벨트씨가 표명했던 태도와 정책은 이미 현실적의의를 잃었지요. 현재 우리의 가장 믿음직한 벗은 헬리입니다. 그는 지난 4월 20일에 워싱톤에서 성명을 발표했던겁니다. 우리는 그의 성명을 바로 미국의 태도로 보아야합니다. 무슨 성명이였는가말이지?... 그건 바로 우리 국민당만을 지지한다는게지요. 세상에서 제일 부유강국인 미국이 우리를 받들고있단말입니다. 하하하!... >>
사문동이 너털웃음을 치자 방안의 어중이떠중이들도 모두 덩달아 웃었다. 여태껏 여자들이 앉은 상에 추파만던지고있던 리경광이 안경을 바로걸고 하이칼라를 손가락으로 빗어 넘기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경찰출신다운 딱딱한 질문을 들이댔다.
<<사사령님께 한가지 문의합니다. 미국이 우리를 지지한다면 히로시마와 나가사기에 던졌던 그러한 최신의 폭탄도 대줄수 있답니까?>>
<<하하, 철부지같구려! 그런걸 몰라서 묻나, 응?>>
누군가 킥하고 웃었다. 리경광은 제 이마빼기를 긁으면서 그만 주저앉고말았다. 어떤 계집은 사문동의 희떠운 연설에 너무 좋아 엉덩뜀까지 하며 깔깔 웃어댔다.
<<우리가 미국만 단단히 믿으면 랑패없을거네.>>
사문동이 계속피력했다.
<<국민당은 이미 상해와 남경을 취득했네. 황군의 무장을 전부 접수했고 위군마저 접수하여 선견군으로 재조직을 했으니 그 수자가 이미 50만이 된대, 50만!>>
<<어마나! 그렇게도 많은가요?>>
누군가 경탄의 소리를 빼자
<<그걸 대단하다고 한다면 나도 이제 불원간에 그만한걸 조직해낼테요.>>
하면서 사문동은 발발한 야심을 신심으로 보이려고 주먹까지 내들었다.
<<이제 남은건 일본이 남기고 간 이 부요한 만주땅이요. 우리 중앙선견군의 신성한 임무는 바로 이 만주땅을 먼저차지하였다가 장차 국군과 배합하여 반공에로 넘어가는거란말이요. 그런데 모두들 아르금시에 인민무장부대가 생겨났다고 걱정들하는구려. 그네들이 우리를 소탕하련다구?... 흥, 어림도없는 수작이지. 이제 두고보란말이요. 내가 그녀석들을 벼룩잡듯이 잡아없앨테란말이요.
우리는 우선 인민무장부대부터 없애치워야하오. ... 재삼강조하거니와 그렇게하기 위해서 우리는 <합심결사>의 뜻대로 싸워야한단말이요. ... 나는 이 장소에 모인 여러 형제자매들에게 이번에 다진 맹세대로 목숨바쳐 피흘리며 싸워서 사람마다 출중한 공을 세워 상받고 나라에 충신으로 이름날릴것을 한번다시 바랍니다.>>
사문동의 이같은 연설은 확실히 청중의 마음을 끌어 갈채를 받았다. 연회참가자들은 마치 궂들은 무당모양으로 좋아 야단쳤다. 어떤 사람은 당장 상금을 받기나하는것처럼 손벽치며 너벌대기까지 했다.
주야장천 술놀이에 시달려서 얼굴색마저 누래진 리화당이 너털웃음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하하!... 그렇지 그래, 그렇구말구! 이럴 때 여러분이 인생락을 봐야지 언제 보겠나. 거동궤서동문(車同軌書同文)이라, 오늘 우리가 여러 지방의 할거를 없애고 마음과 행동을 통일할 의사를 내놓았으니 이보다 더 큰 대사가 어디에 있겠나. 예로부터 성인들은 이르기를 백령백리하여 수완이나 궁냥이 넓은 사람은 우매한 인간을 다스려야 할 직책이 있다고했으니 이 철리를 깨닫는 사람이라면 한번 발벗고 나서서 해볼만한 때이네.>>
그는 제법 신수좋은 호한모양으로 방자하게 말하고나서 궐련 한 대를 뽑아 탁상에 그루박더니 젊은측들이 있는 이쩍 상으로 건너왔다.
<<옳습니다, 옳습니다! 과연 인간세사에 통명하십니다, 통명하십니다!>>
하며 장삼이 턱을 만지면서 감탄조로 맞장구쳤다.
<<힘있는 사람은 힘을 뽐내고 재간있는 사람은 재간을 뽐낼때가 왔지요. 재질과 위력이 월등한 사람이라면 하늘에 있는 별이라도 떼서 제 이마에 달고 다니라지요. ... 하니까 우리는 우리가 맘속에 그리는 유토피아국을 제 손에 쥔 칼로 건설하기 위해 분투해얍지요.>>
이 말에 자리를 차고 일어나는 사나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손자량이였다.
<<그렇지 그래! 장삼씨 말씀이 옳아, 옳구말구!>>
요란스레 떠들면서 그는 자기 옆구리에 차고있던 보도를 쭉 뽑았다가 희떱게 잘칵 겉어넣고 부르짖었다.
<<옛적 한고조는 말우에서 천하를 얻고 열손가락에 피를 냈다고 합니다. 나도 한번 그처럼 말타고 이 칼 휘둘러 내가 얻고푼것을 얻고야말텝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곰보방치가 자리를 차고 일어나 건너다보며 몽둥이같은 자기 팔을 내두르면서 쉬억쉬억한 바스로 한마디 툭 내던졌다.
<<그렇게 하문 돼! 칼루서 안되문 몽둥이루 뚜드려대!>>
모두들 우후후 웃어대면서 그럴 멋도 있다 했다. 장삼과 마주하고 앉아있던 리경광이 잔뜩 흥분해갖고 손자량의 어깨를 툭 치더니 자기 입을 끌어다 그의 귀가에 대고 감정을 발라맞췄다.
<<헤헤, 제일이요! 우리네 손도령이 제일이요! 이제 두고보지, 재력이 풍부한 손도령이 앞으로는 혜혜혜... 온 북만이 우리 손에만 들어와보라지. 그때면 성장은 사사령께서 하게될게고 할빈이나 아르금의 시장은 틀림없이 손도령이 헤헤헤... 그때면 이 경광에게도 한몫은 차례지겠지 헤헤헤...>>
충성도 지나치면 우스워보이는 법이다. 치살림이 지나쳐 그만 트레바리같은 손자량이 비위거슬려 하는것 같기에 리경광은 안경을 만지는것처럼 하며 저려나는 제 코등을 만지고는 슬며시 주저앉아버렸다.
손자량이 열이 부쩍 올라 목단추를 벗겨놓으며 자리에서 다시 벌컥 일어났다. 그리고는 본래 돼먹지못하게 자란 배짱을 시위나 하듯 주먹을 쳐들고 높은 소리로 웨쳐댔다.
<<세상만사는 사람이 할탓에 달렸어! 행운이 거저 생기는줄 아는가! 용기도 없고 밑천도 없는 작자는 아예 나서지도말고 물러앉으란말이야!>>
<<허허, 거 참 호기남아로군!>>
사문동이 건너상에서 갈채를 보내고 묻는 말이다.
<<그래, 자량이는 어쩔셈인가?>>
손자량은 보라는 듯 제 가슴을 툭 쳤다.
<<장부일언이 중천금이라 하지 않습니까. 한번 맹세한바를 이루지 못하면 이 자량이를 손씨네 후손으로 치지 마십시오. 당국에 충성할 뜻을 이루지 못하고는 죽어도 눈을 감지 않을텝니다!>>
<<좋네, 좋네, 과연 그럴듯한 명담이군, 명담이야!>>
사문동은 연신 찬탄하면서 ㅛ창유더러 장차 웬간한 무리는 손쉽게 후려낼 위인인것 같으니 자식교양을 잘했다고 곱씹었다. 그런후 그는 자기 좌석에 도로 가 앉은 리화당과 더불어 금후 북만에서의 선견군확충문제를 갖고 이러니저러니 운운했다.
그러는 사이에 아쪽 여러 탁상들에서는 처음에는 점잖은체하던 장교들이 시중군들의 고통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상우에와 료리쟁반들에다 술잔을 연거푸 엎질러가면서 술망나니짓들을 하고있었다.
곤드레만들에 취한 장삼이 저의 당연한 처남으로 인정하고있는 손자량과 얼굴을 맞대고 무슨 말을 하느라 정신팔렸을 때 리경광이 손옥란이한테 납신 달라붙었다.
<<고향떠나 몇 달만에 돌아와보니 웬 일인지 모든게 서먹서먹해졌구만.>>
<<뭐가 달라졌나요?>>
얼굴을 살짝 붉힌 손옥란은 은근한 눈으로 얼굴이 밴밴한 총각을 보면서 애교부렸다.
<<집도 옛집, 사람도 옛사람, 뭐가 서먹해졌어요?>>
리경광은 손옥란의 발등을 슬쩍 밟고나서 귀에대고 속삭였다.
<<이봐 옥란이, 귀여운 아씨님! 사랑하는 나의 아씨님!... 난 여자들의 맘속은 정말 모르겠소. 꽃이라고 꺽자 들면 가시있어 찔리우고마니 원, 제기.>>
<<아니 왜 이래요 오빠가 보겠어요.>>
손옥란은 민망스러운듯 어깨를 떨었다. 하지만 마음은 싱숭생숭해져 자기에게 이미 사랑을 건 장삼을 한눈으로 경계하면서 그의 희롱을 흡족히 받았다.
리경광의가슴은 애욕에 젖어 마치도 기름묻은 솜뭉치 타듯했다. 그는 주위를 제꺽 눈치보고 다시금 속삭였다.
<<옥란아씨님, 이제 두고보라니까. 난 난 오직 아씨님 하나를 위해서 싸울테요. 그대의 행복을 위해서 바닷물이 마를지언정 이내 마음 변할가,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씨만 잊어주지 않는다면 나는... >>
면목이 선 사문동의 첩이 야살궂은 눈으로 할깃 보니 손옥란은 그만 낯이 빨개나며 리경광을 슬쩍 밀어버렸다.
<<아이참, 징글스레 노네. 저리비켜요, 남자들이란 어쩌면 성미가 이리도 꼭같아요?... 그저 달라붙는게 업인가봐요.>>
처녀의 이같은 도답하고도 익살스런 말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장삼과 자량은 웬 일인지 몰라 목을 빼들고 보다가 제풀에 시들해졌다.
합심결사연은 목적대로 끝났다. 사문동이 계획한 선견군의 행동방향이 채택되였고 북만에서 지주무장으로 제일 유력해진 수향대가 선견군의 별동대로 명명되여 손창유가 이 별동대의 대장으로 임명받았다.
손창유는 자기 아들에게 넘겨주어 건사하게 한 두 번째 세전지보인 마적명부에 적혀있는 인물들을 세여보았다.
<<안장코는 붙잡혀 끝장났구나. 그러나 장삼이 왔고 살모사가 왔고 부엉이와 설파장군이 와서 반갑다. 그런데 굴대장군녀석이 배반헀으니 괘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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