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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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 2장 (2)
2014년 12월 27일 17시 24분  조회:2726  추천:0  작성자: 김송죽
 

2.

 

 한로, 상강이 다 지나가고 립동이 가까워오는 마가을 검은 구름이 해를 가리워 날시가 한결 음산한데 손가장마을안 벽돌로 담을 쌓은 손가장원의 높은 대문추녀밑에 매달아놓은 청천백일기가 아래로 축 처져 바람에 펄럭이고있다. 멀리 타고장에까지 알려지고있는 중앙선견군의 별동대지휘부가 바로 이안에 있다.

   일제가 동북을 강점한후 만들어놓았던 집단부락이 오늘은 별동대의 요새로 변해버렸기에 그안에서 살고있는 백성은 집중영에 갇힌거나 다름없었다.

   추위가 닥쳐와 이젠 땅이 얼어들기 시작하건만 제 집 겨울차비는 할 새도없이 고된 부역에 그냥 나가야 했다. 별동대는 장차 기병부대로 될테니 적어도 말 1천필을 넣을수 있는 마구간 10채를 죽든살든 땅이 얼기전에 다 지어놓아야 한다는 손창유의 엄명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처음으로 강철고락지에 넙죽한 가죽을 단 채찍을 보았고 더러는 벌써 등과 어깨죽지의 살점을 뜯기웠다. 하기에 일본이 망했다고 좋아하며 새 희망을 품고 안존한 삶을 심원해오던 사람들의 숙망은 구중천으로 날아가버렸다. ...북만에서 흔히 볼수있는 것이 떼장집이 아니면 타래벽집이였다. 타래벽집은 새로 타래쳐서 걸죽한 흙물구덩이에 넣고 짓밟았다 끄집어내여 벽체를 만든것인데 두께가 보통 한자가 넘고 마른후면 든든하고 오래 견딜뿐더러 겨울에 한기를 제일 잘 막는다. 그래서 촌창유는 마구간도 타래벽으로 만들게 했다.

   <<제밀할거! 우린 뭣땜에 이눔의 고생을 하는거여?...>>

   누군가 두덜대면서 흙나르던 쪽지게를 벗어 동댕이치고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니 같이 등짐으로 흙을 져나르던 사람들이 놀랍고 두려운 시선으로 주위를 얼핏 살피더니 쪽지게를 작개기로 받치고 뿌리워간 삼태기를 주어 올려놓으면서 갈린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이러지 말고 어서 일어나오. 괜히 경칠라구... 털보녀석보겠소.>>

   <<보겠으문 보라지, 맥없어 죽겠는걸 어떡허겠소.>>

   <<그래두 앉아있진 마시우! 빌어먹을 놈들이 눈에 쌍불켜고서 점점 더 지랄스레달구치는판인대 괜히... >>

   타래를 땋아 벽을 만들고있던 사람이 한숨젖은 불만을 내뿜고나서 벌겋게 얼어 감각마저 잃을 지경이 된 손을 녹여보려고 입김을 쐬였다. 이어 사람들이 불평에 찬 소리가 섞갈려 들려왔다. 마구간짓는데 동원된 사람은 말짱 장년과 늙은이들뿐이였다.

   젊은 사람들은 총을 메고 훈련을 받고있었다. 모두 수향대에 들었다가 이젠 별동대의 병졸로 되었다. 마을에서는 지금 장삼이 안장코와 함께 아르금시를 들이쳤다가 실패한 후 각처로 쏘다니며 긁어모아온 그 500명에다 부엉이니 살모사니 설파장군이니 하는 옛마적들이 거느리고 온 <<병사>>들을 합쳐서 5개 련이 있고 제바닥사람으로 편성된 한 개의 조선족련이 있었다. 이 조선족련의 련장이 바로 남천오였다.

   혜옥이는 오빠가 수향대에 들었고 게다가 련장노릇까지 하고있으니 모순되는 착잡한 사념에 빠졌다. 죽어도 수향대에 들지 않겠다 맹세했던 오빠가 수향대에 들었고 그 수향대가 별동대로 된 지금도 의연히 손가네 충복질을 하고있는게 마음에 아니꼬왔다. 그렇다고 욕할수도 원망할수도 없는 형편이였다. 려홍이가 손가장을 탈출한 뒤 오빠는 혐의자로 지목되여 장원에 잡혀갔었다. 벌방에 갇혀 매맞고 조련도 당했다. 그러나 자기는 려홍이와 무척 가까운 사이긴해도 절대 빼돌린 일은 없다고 딱 나눕고 끝까지 내뻗쳤다.  그랬더니 손가네는 아무런 근거도 쥐지 못했던터로 하는수없이 형벌을 리용하는 수단으로 바꾸었는바 도망치지 않았거나 도망쳤다가 집으로 되돌아온 청년들로 겨우 수향대를 조직해놓고 조선족련을 그한테 맡긴것이다.

   <<허참, 이게 그래 울며 겨자먹기 아니냐. 난 이놈의 노릇을 하고퍼 하는게 아니다. 그렇잖으면 온 가족이 그놈들 손에 몰살당하겠으니까.>>

   수향대가 조직되여 취임식이 있은 그날 장원에 들어가 연회에까지 참가했던 오빠는 집으로 돌아와 이렇게 말했던것이다. 그때 그는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멍청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고 그랬다가는 또 무슨 생각에 깊이 빠진군했었다.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직무를 괜찮게 감당한다.>>는 칭찬까지 받고있으니 손가네한테 다소 신용을 얻은셈이였다. 그렇다해도 그자들에게 충성하려는것이 결코 그의 본의가 아님이 뻔했다. 혜옥이도 말없는 오빠의 고통이 크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오빠가 불쌍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려홍에 대한 그리움이 날이갈수록 점점 더 절절해났다. 손가네는 도망간 그를 붇잡아오려고 사람들을 산지사방에 풀어놓아 찾아보게했으나 헛물만켜고말았다. 행방불명이라던것이 썩 후에 조률개가 아르금시에 갔다와서 자기 눈으로 려홍이를 직접 보았노라고 마을에 소문을 펴놓았다. 혜옥이네 온집식솔이 이 소문윽 듣고 그의 행방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거기에 가있구나!... 도시에서 어떻게 지내고있는지?...)

   혜옥이는 마치도 신혼부부간에 생리별을 해서 마음괴롭고 허전한것 처럼 언제가면 다시만날가 하고 애간장을 태웠다.

   어수선하고 뒤숭숭한 날은 지지리 꼬리를 물고 지속되여갔다.

   하루는 바깥사돈이 드러누웠다기에 혜옥이는 올케와 함께 가보았다.

   오칠성령감은 부역에 지칠대로 지쳤다. 본래 살결적은 얼굴에 눈확이 우묵하니 꺼져들어가 흡사 염병하는 사람의 몰골과도 같았는데 게다가 기침까지 나서 장밤을 눕지도 못하고 앉아새웠다는 것이다. 하니 이 모양으로 드러누웠다가는 아예 일어나보지도 못하고 황천길을 걸을것 같았다. 그래서 마누라는 갑자기 어쩌면 좋을지 몰라 청승스러운 살림살이를 원망해봤다, 혹독한 손가네를 원망해봤다 하면서 안절부절을 못했다.

   이러는판에 급살맞을 털보녀석이 졸개 둘을 데리고 미친개모양으로 풀쩍 뛰여들어 사람을 놀래웠다.

   <<령감! 왜 일하러 나가지 않고 집구석에 자빠져있어 엉?>>

   털보는 들어오자바람으로 눈을 흡떴다. 혜옥이는 던지러운 그자를 보기만해도 소름이 끼쳐서 놀란 가슴을 부등켜안고 얼른 한켠에 숨어섰다.

   <<않는 사람이 어떻게 일해요?>>

   올케가 나서면 항변했다. 그랬더니 털보는 고개를 탈고 눈살을 곤두세웠다.

   <<넌 웬 계집년인데 참견이냐?>>

   <<이 집 딸이요.>>

   <<딸? 흥, 출가지외인이야. 가서 네 시애비나 잘 공대하거라.>>

   <<그건 무슨 소리요? 육친도 모르는 그따위 막된 소리를 누가 듣는대요?>>

   <<빌어먹을 년!  웬 주둥아리질이냐?... 물러서지 않을테냐?>>

   털보는 을러메면서 채찍 든 손을 번쩍 올렸다. 질겁한 오칠성마누라가 그의 팔을 붙잡고 제발 때리지 말라고 사정했다. 그래도 무가내하고 채찍을 다시들던 털보는 사람을 때리지 말라고 소리치는 혜옥이를 보자 행패를 더 부리지 않았다. 그는 눈을 흘기면서 오칠성령감더러 애 허가없이 맘대로 일하러 가지 않았느냐고 한바탕 욕지거리하고는 두 졸개보고 끌어일으키라고 했다.       

   식솔들이 앓는 사람이니 그러지 말아달라고 사정해도 소용없었다. 공사를 빨리 끝내라는 손대감의 명령이니 앓아도 집안에 누워있지는 못한다는것이였다.

   혜옥이는 그자들이 오칠성령감을 사정없이 끌어 일으키는것을 보고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애타는 가슴을 쥐여뜯다가 이 일을 빨리 오빠한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피뜩 나서 별동대훈련장으로 되어있는 학교마당으로 장달음쳤다.

   남천오는 마침 훈련을 시키던 중인데 혜옥이가 급히 달려와 털보가 방금 앓고있는 장인을 일터로 끌고갔다고 하니 밸이 불끈나서 침을 <<퉤!>> 뱉고는 훈련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말았다.

   마을동남쪽귀퉁에 있는 허름한 농가 몇채는 큰 마구간을 짓는데 터전을 빼앗겨 사면초가의 신세로 되어버렸는데 마가리안에서는 지금 제세상이노라 거만스레 놀아대는 장삼의 졸병들이 쌈지거리를 하고있는지 아니면 도박을 하는지 버짝 떠다고와치고있었다.

   남천오가 헐헐하고 공지에 이르니 사람들이 하던 일을 중지하고 덤덤히 둘러앉아있었다. 팔에 흰 완장을 낀 공사감독이 마치 큰 죄범이나 잡아온것 처럼 득의양양해서 으스대는데 털보녀석이 가뜩이나 험상굳은 상판대기에 식헤먹은 고양이상을 하고 채찍쥔 손을 내저으면서 고래고래 소리질러댔다.

   <<어느녀석이 또 맘대로 일하러 나오지 않을테냐 엉? 이제 또 집에 처박혀있을 녀석은 여기에 나서라! 이 곽기무가 어떤사람이란걸 모르고있어? 이제 너희들한테 내 손맛이 어떤가 보여줄테다!>>

   <<나는 몸이 아파서 누웠다. 그것도 죄란말이냐?>>

   완장낀자들이 말을 못하게 막아도 오령감은 악을 품고 발명했다.

   <<두상, 입을 다물지 않을테냐?>>

   털보가 서리를 빽 지르더니 채찍을 번쩍들어 내리쳤다. 오령감은 뒤잔등을 한 매 되게 얻어맞고 <<에쿠!>>하며 몸을 비츨거렸다. 딸이 울음을 터치며 달려가서 채찍을 자기몸에 받으며 아버지를 그러앉았다.

   <<때리지 말아, 이 개같은 털보야!>>

   <<앓는 사람을 어떻게 할 작정이냐?>>

   <<저자식을 때려죽이지 못할가?>>

   사람들이 털보의 폭행을 보고 참을수 없어서 떠들며 욱 모여들었다. 분노의 눈들이 번득이였다.

   <<네, 네놈들이 감히?...>>

   털보는 얼음판에 쓰러진 소처럼 눈을 희번덕거리며 채찍을 다시금 쳐들었다. 이때 천오가 달려가며

   <<야 털보놈아, 채찍을 놓지 못하겠니?>>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천오는 덮치듯 그한테 달려들어 다짜고짜로 채찍을 손에서 악아냈다. 그러고는

   <<이, 이거!... 이, 이거!... >>

   하며 어리둥절해서 돌아치는 털보의 상판을 냅다 후려갈겼다. 털보는 갑자기 선불맞은 호랑이소리를 줴치면서 손으로 제 얼굴을 감사쥐였다. 천오는 분김을 억누를수 없어 한 대 더 답새기려는데 안해 금련이가 팔을 꼭 붙잡으며 괜히 일나겠으니 이러지 말라고 만류해나섰다. 천오는 다시 몸부림치려다 말았다. 참아야했다. 이까짓 털보녀석 하나를 없애서는 무슨 소용이 있는가. 천오는 어금이를 으드득 갈며 채찍을 발로 밟고 끊어 동댕이쳤다.

   털보도 드의 졸개들도 감히 접어들지 못했다. 훈련을 집어치우고 달려온 청년들, 일을 그만두고 겹겹이 둘러싸는 장년들과 늙은이들, 그들 모두가 증오의 빛이 번쩍이는 차고 매서운 눈길로 털보를 쏘아보았다.

   <<으ㅡ음 너희들이?!... 그래 너희들이?!... >>

   털보는 식은땀을 흘리며 뒤걸음을 쳤다. 그러다가 무어라 입속말로 씨부렁거리더니 황급히 꽁무니를 빼고말았다. 그러자 겁을 집어먹은 다른녀석들도 달아나버렸다.

   누구나 일을 계속하려하지 않았다.

   장원대문안에 있는 첫집이 <<공사감독소>>였는데 털보는 씨근거리며 뛰여들어갔다.

   <<무슨일인가?>>

   <<보, 보고! 일, 일하던 놈들이.... >>

   <<뭐라구?!.... >>

   리경광은 펄쩍 뛰여일어났다. 방금 태화전에 불리워가서 손창유에게 마구간이 되어가고있는 형편을 보고하고나서 그한테서 마을사람들을 잘 다스려 변고가 없이 힘겨운 이 건축공사를 끝맺도록하라는 지시를 받고 왔는데 느닷없이 뛰여든 털보의 거동이 신통치 않았다. 털보는 차렷자세도 하지 않고 덤벼쳤다.

   <<좀 천천히 말해. 일하던 놈들이 어쨌단말인가?>>

   리경광은 놀란 가슴을 진정하느라고 애쓰는 한편 상관다운 틀을 차리기 위해 느리고 엄하게 물었다.

   <<그놈들이 막 덤벼들고있소! 네미 좆같이... 일을 못시켜먹겠소!>>

   털보는 매맞은 분을 풀지 못해 풀풀거리면서 푸덕거리다가 자기가 지금 겁쟁이짓을 하고있구나 느끼고 병신성스레 걸상에 주저앉았다. 그랬다가 분을 참지 못해 다시 일어나 수치도 모르고 일러바쳤다.

   <<남련장이 나를 때렸소! 에ㅡ 분해죽겠소! 그 조선놈새끼가 채찍으루 나를 때렸다니까!>>

   <<뭐, 남련장이 때리더라구?!... >>

   리경광은 그제야 덩달아놀라면서 털보의 얼굴을 여겨보았다. 맞은 자리에 열과 독이 튀여나는지 뻘건 줄이 쭉 일어섰다. 리경광은 자기가 얻어맞지 않은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볼수록 끔직스러워 웃음을 참아가며 책망하듯 물었다.

   <<아니 그런데 채찍은 왜서 뺏겼는가, 손에다 쥐고있었겠지?>>

   <<그자식이 불시로 달려들어 빼앗아냈소. 막 빼앗더라니까.>>

   털보는 자기가 미처 어쩔새없이 빼앗겨 그것으로 되얻어맞던 일을 생각하니 창피해서 아파나는 얼굴을 보기흉할정도로 이지러뜨렸다. 그리고는 천오가 련장이니 가만두었지 그렇지만 않았더라면 당장에서 권총으로 쏴서 죽였거나 대들보에 달아매고 혀를 가로물때까지 뚜드려팼으리라 했다.

   리경광은 모지락스러운 위인이 이제 와서 분풀이하지 못한걸 밸쓰며 한탄하니 아마 되게는 혼낫던모양이구나 짐작했다.

   <<이봐 곽패장, 좀 차견히 제대루 말하라구. 채찍은 어찌누라 그한테 빼앗겻는가말이야? 제 책찍에 낯을 얻어맞다니, 아마 맞을짓을 했던 모양이지?>>

   <<어이구, 내가 맞을짓을 하다니요!>>

   털보는 약이 올라 발명을 들이댔다.

   <<내가 얼마나 수고하는지 알기나하우. 오늘아침에두 마을을 한고패 돌았지.... 누가 집에 박혀서 일하러도 나가지 핞는가구말이요. 좀 약아빠진 놈은 아침에 나가 그림자만 얼른보이고는 일을 피해버릴수도 잇으니까말이우. 물론 내 들살에 감히 끄따위 수작하는 놈은 없지만두... 그리서말이요, 내가 한바퀴 돌아보느라니 저기 한집에 령감이 앓는다고 들어앉아있지 않겟소. 그런걸 끄집어내려다가... 제길할, 그 령감쟁이를!... 뭐 성이 오가라는가?>>

   <<가만ㅡ 누구라고? 오가라니 등이 구부정한 령감쟁이말인가?>>

   <<옳소, 바루 그 령감쟁이요. 내가 그 령감쟁이를 채찍루.... >>

   <<아ㅡ니 곽패장이 그 령감을 때렸단말인가?>>

   리경광이 말을 앞질챘다.

   <<허, 그게 누군줄 아는가? 그게 바로 남련장의 장인이란말이야! 허참, 바보같은게 괜히 불집을 거드렸군!>>

   <<뭐, 뭐라구요?!>>

   털보는 눈이 둥그래졌다. 일시에 손맥이 탁 풀리였다. 이제와서 리경광이가 바보라고 조롱해도 변명할 여지조차 없었다. 오령감이 남련장의 장인인줄만 알았더면 건드리지도 않았을거라는 후회가 머리를 쳐들었지만 엎어지른 물이였다.

   좀 이윽해서 제9호마구간건축 장소에서 사람들이 일은 하지 않고 떠든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제길할, 일이 점점 개망태기로 돼가는구나!>>

   보고를 접한 리경광은 화가 동해서 털보를 손가락질하며 곰처럼 미런하고 우둔한 인간이라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털보야, 네가 오늘 무슨일을 이렇게 저질러놓았느냐, 엉?... 사고가 생기지 말도록 아량있게 일을 시켜먹으라고 백번도 너머 일러줬건만 끝내 이 란장판을 빚어내고말앗구나, 이 등신같은 놈아! 옛날 노가다판에서 십장노릇할 땐줄 알았니 이 놈팽이야, 여기는 손가장, 손가장이란말이다! 이제 시공이 늦어지면 내가 네녀석을 혼쭐부터 뽑아놓고말테다 이 미련통아!>>

   <<저, 저, 제발... >>

   털보는 당장 권총을 빼앗기우고 급이 떨어질가봐 겁을 집어먹고 쩔쩔매면서 물러나갔다.

   리경광은 그이 뒤모습을 쏘아보면서 무언중 조소를 던졌다. 생각하면 망탕굴러먹어서 상관도 알아봄이 없이 아무렇게나 그 말버릇부터 고쳐놓아야했다. 리경광은 털보의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밸이 꼬여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골치아프게 된 이 사건을 어떻게 하면 말성없게 눌러놓겠는가가 근심되였다.

   리경광의 출생지는 조선이나 중국이 아니라 일본의 중부지방인 이시가와현소재지인 가나자와였다. 그는 당시 그곳의 한 검찰관의 정부이며 극장배우였던 곱살하게 생인 일본녀자와 일본에 류학간 조선대학생사이에 생겨난 사생아였다. 검찰관은 그때 시내판에서 돌아치는 한 건달뱅이를 매수하여 그의 손으로 자기 정부를 꼬여낸 류학생을 죽여버림으로써 자기가 모욕당한데 보복했던 것이다. 때마침 향항에서 일본으로 노상 건너다니는 이름있는 거간군인 리아무개란 사람이 그곳에 갔다가 거리바닥에 던져진 이 조선사람의 피줄을 타고난 아이를 보계되자 생김새가 못나지 않은데다 몇 달을 보양할수있는 돈마저 보자기에 싸여있기에 가져다 길러보았다.; 거간둔은 아이를 다섯 살 먹을때까지 기른 뒤 할빈으로 이사가는 같은 성씨의 사람에게 양아들로 삼게 팔아버렸다.

   리경광은 사생아로 태여난것을 최대의 수치와 불행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기구한 운명을 낳은 사회와 보복하려 하였으나 결국은 그 사회의 순복자로 전락되고말았다. 자기 몸에 일본사람의 피가 섞여있다는 것으로 하여 그는 일본이 동북에 들어왓을 때에는 그네들에게 호감을 가졋더랬고 그네들이 가고 없어진 지금에는 또 나에게 어디 조국이라는게 있느냐 이 세상을 희롱하며 살아야 할 사람이라고 마음먹고 출세만을 지고무상의 신조로 삼고있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그에게는 매한가지였다. 그야말로 아무 주인에게나 붙어서 살바하고는 충복으로 되리라는 것이 그의 처세술이였다. 그의 이같은 처지와 사상에서 아마 그의 약고도 지독스런 성미가 생긴 모양이다.

   손창유는 자기가 별동대 대장으로 된 후 아들을 부대장으로, 장삼을 참모장으로, 리경광을 부관으로 삼았다. 리경광은 자기가 부관으로 된것이 어떤 특출한 군사적재능이 있기때문이 아니라는것을 똑똑히 알고있었다. 그것은 자기가 경찰학교를 나왔으므로 백성들을 어떠한 폭압조치에든 무조건 순종케하는 수완을 배웠을뿐만아니라 잔인한 정횡도 서슴없이 감행하는 기질을 갖고있다는것을 손창유가 믿고있기때문이라는것을 짐작하고있었다.

   리경광은 제정때 훌륭하게는 몰라도 괜찮았다고 평가받으리만큼은 경찰노릇을 해왔었다. 또 이런 형편을 잘 알고있는 손창유이니만큼 이번의 별동대마구간건축공사도 두말할것없이 리경광에게 책임지워 그의 능력을 한번 과시애보게끔 하였다. 인력, 물력을 조직하고 배치한 후 <<압력식>>과 <<비행기식>>으로 냅다몰아 일이 그럭저럭 무사고로 되어가는 판인데 오늘 털보녀석이 그만 그르쳐놓았으니 두통거리가 아닐수 없었다. 쇠도 너무강하면 부러지고 참대도 너무휘면 꺾어지는 법이다. 감독녀석들이 너무 엄하게하여 불만을 잔뜩 야기시킨 모양이였다. 리경광은 마을사람들의 불만을 막고 소란된 민심을 다소 안정시켜볼 예산으로 직접 공사장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털보가 한 대 얻어맞고 갔으니 꼭 좋지 않은 후과가 있으리라 걱정하면서도 일장소는 떠나지 않았다.

   누런 스프링코트를 걸친 리경광이 나타나자 모두들 하던 말을 중단하고 잠잠해졌다.

   <<에, 모두들 수고해, 수고해.>>

   리경광은 웃는 얼굴로 여러 사람들을 너그럽게 둘러보았건만 반겨주는 얼굴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항의하는 차디찬 눈길에 부딪쳤다. 속이 꿈틀하고 당황해났다. 그러나 그는 당황한 빛을 보이지 않고 애써 화애로운 자태를 꾸미면서 남천오가 어디 있는가고 찾았다. 처음엔 누구도 입을 봉한채 응하지 않았었는데 두 번다시 거듭 묻게 되자 누군가 장인을 모셔다드리러 갔다고 알려주었다.

   <<여보시오, 리서장님!>>

   이때 누군가 몸을 돌리려는 리경광을 주춤 서게 하였다.

   <<용서하시우, 이젠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유? 왜놈이 망해버렸는데도 그냥 서장님이라 불러서야 되지도 않을게구... >>

   <<여직 그것도 몰라 그렇게 묻소? 리부관이라 부르오.>>

   <<리부관이라, 음ㅡ 그런데 여보슈 리부관님, 여하튼 리부관님은 대운이 텄습니다요!>>

   웅쿨진 목소리가 튀여나와 누군가 보았더니 억척스레 생긴 신병호였다. 그의 말속에는 네가 제정때는 서장이 되어서 왜놈앞에 개질을 하더니 이젠 또 부관이 되어 누구의 개질을 하느냐 하는 증오와 조소가 가득 담겨져있었다. 그래서 리경광은 미간을 모으고 가시발 돋힌 눈으로 한동안이나 그를 소아보았다.

   <<허참, 날 누군지 몰라서 보는거유?... 여기루온김에 흙짐이나 한번 져보구 가구려. 기진맥진해서 이젠 모두들 일을 못해먹겟다구 합네다.>>

   <<그게 무슨소린가?!>>

   리경광은 참지 못하고 어성을 높혔다.

   <<맥이 정 없으면 좀씩 쉬는건 허락해도 그따위 소릴 해선 안돼! 죽든 살든 이달내로 공사를 끝내야 한다는걸 잊엇는가? 그리고 다른 사람을 건달부리게 하는 선동분자는 락자없이 엄벌을 받으리란걸 알란말이야!>>

   위협적인 말을 남기고 거기를 떠났다. 오칠성령감네 집으로 가는 걸음에 <<제10호마구간건축>>장소에 들려보니 거기에 털보가 있었다. 리경광은 일을 감독하고있는 그를 건드리지 않고 오칠성령감네 집으로 갔다. 그 집 마당에서 마침 집안에서 나오는 천오를 만났다.

   <<리부관은 왜 오는거요?>>

   천오는 거친 음성으로 물었다.

   <<내 남련장을 좀 볼일이 있어 왔어, 나를 따라와.>>

   <<무슨 일이길래?>>

   상관이니 규칙상 응당 존경으로 대해야했지만 천오는 화가 채 사그러지지 않았고 게다가 이전부터 늘 밉살스레 보아온 그였기에 꼬물만큼도 존경의 태도를 보이고싶지 않았다. 한편 리경광은 천오의 말투가 귀에 몹시 거슬려 당장 따귀라도 붙이고싶었지만 지금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참았다. 아직은 상관으로서 갖추어야 할 위엄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통감하면서 리경광은 이 유순치않은 놈을 어떻게 하면 노근노근하게 만들어놓겠는가만을 생각했다.

   <<남련장이 곽패장을 때렸는가?>>

   퍼런 기가 펄럭이는 장원대문을 들어서면서 리경광이 입을 열었다.

   <<때렸소. 내 오늘 그 털보숭이녀석을 녹초되게 만들어놓지 못한게 한스럽소.>>

   <<자, 들어가보라구!... 제 사람끼리 그래서야 되겠나.>>

   집안에 들어와서 안경을 벗어 닦으면서 리경광이 하는 말이였다.

   천오는 보름전에 감독이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 하지 않을뿐더러 그와 맞서 대항했던 정지항을 잡아가두고 갈비뼈가 부러지도록 차고 때렸다는 이 방안을 불쾌하게 휘둘러보다가 리경광이 지금 손에 쥐고있는 한쪽알이 깨진 안경에 시선이 멎자 히죽이 웃음을 띠웠다. 요즘 어떻게 되어 나온 말인지는 몰라도 그 안경은 여기서 려홍의 채찍에 얻어맞아 깨진게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려홍이는 분명 채찍까지 가지고 달아난건 아닌데 말대로 그한테 얻어맞았으면 참 시원한 노릇이였다.

   <<하긴 남련장의 장인도 알아보지 못하고 행패부렸다니까 맞아싸지. 나살이나있는게 어찌두 덤비는지 원.>>

   리경광은 천오가자기의 친절에 감격하는줄로 알고 빙그레 마주웃더니 털보를 두둔해서 화해시키려들었다.

   <<모르고 한 짓임이 분명하니까 남련장이 량해해주게. 곽패장도 다신 그따위짓을 하지 않겠다고 내앞에서 맹세하고 갔으니까. 이제 다시는 이런 불쾌한 충돌이 생기지 말아야지. 안그래 남련장? 우리들의 단결을 위해서 말이야.>>

   이로써 별동대 제1련 련장 남천오와 마구간건축공사감독 곽기무사이에 발생되였던 문제는 크게 말성이 되지 않고 가라앉게 되었다.

   그런데 새로운 일이 또 발생했다.

   그것은 마구간건축공사가 끝난 썩 후인 12월상순 어느날이였다. 혜옥이가 성냥사러 가게방에 가보니 공교롭게도 앞문이 다 닫겨버려 들어갈수 없었다. 혜옥이는 이 가게방주인이 이제는 도부장사노릇을 하느라고 여러날째 문을 닫고잇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전에는 이렇게 앞문을 널로 막아버린후에도 사정만 하면 물건을 팔았기에 혜옥이는 뒤쪽 출입문에 가서 불렀다.

   <<주인님!... 주인님!... >>

   사이를 두 번불러서야 조률개가 문을 빠금히 열고 내다보았다.

   <<미안해요. 성냥 다 떨어져 왔는데 좀 팔아요.>>

   조률개한테서 술내가 물큰났다. 혜옥이는 불쾌한 생각이 들어 물건을 진렬해놓은 남쪽방으로 따라들어가지 않고 그에게 돈을 넘겨주고는 부엌간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이런 변이라두야, 부엌이 달린 안쪽방에서 웬 술취한 녀석이 불쑥 나오더니 팔을 쩍 벌리고 덥석 끌어안는게 아닌가! 털보였다.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요!>>

   간이 뒤집힐지경으로 놀란 혜옥이는 있는 힘을 다하여 소리질렀다. 급해맞은 털보는 가래짝같은 손으로 혜옥의 입을 막고 안방으로 막 끌었다. 혜옥이는 빠져 나오려고 젖먹던 힘을 다해서 몸부림을 쳤다.

   한참 이러는판인데 때마침 집에 왔다가 장원으로 돌아가던 양운파가 소리를 듣고 달려들어왔다.

   <<야 이새끼야, 무슨 개지랄이냐?!>>

   <<어ㅡ 양마관이구만 헤헤헤!.... >>

   털보는 혜옥이를 놓고 뻘건 입을 벌려 악마같이 웃었다.

   <<그 개자식을 아무 때든 내 손으루 없애치우고말테다.>>

   천오는 이 일을 알고 격분해서 치를 떨었다. 혜옥이의 머릿속에 더더욱 차고 넘치는것은 오로지 려홍이를 찾아가려는 단 한가지 생각뿐이였다. 그어떠한 고해라도 넘어서 그를 찾아가고푼 마음이 불붙듯했다. 하여 그는 오빠보고 자기가 잃어져도 찾지 말라해놓고는 어느날 부모몰래 집을 훌쩍 떠나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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