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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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9)
2015년 02월 03일 10시 45분  조회:2475  추천:0  작성자: 김송죽
 

                             9

 

  

  

 

 

    민호는 포토우한테서 받은 장총을 손에 들고 이리보고 저리보았다. 길이가 베르단보다 짧고 머스킷이나 38식보다도 짧은데 총가목이며 총신은 오히려 크고 굵어 모양다리없었다. 항간에서 퉈퉁이라 부르는 구식총이였다. 그나마 새것이면 모르겠는데 이미 오래써먹어 낡은것이였다. 보아하니 여지껏 주인없어 오래도록 버려둔게 분명했다. 그건 반짝거려야 할 총신에 녹이 낀걸봐서 알 수 있었다. 민호는 격발기를 뽑아보았다. 격발기틀, 격발기머리, 탄피물리개도 그렇거니와 안전부, 안전턱 지어는 격침까지도 윤활하지 못하고 뻣뻣했다.

   《젠장, 이놈의 건 기름근이나 먹어야겠구나.》

    기분이 자연히 잡친 민호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창턱에 있는 기름병을 가져다 옆에 놓고 캉틀에 다시걸터앉았다.

    할짓없어 심심하니 시시껄렁한 음담패설이나 늘여놓고있던 11명의 한반 새자들이 저 자식이 숙맥이 아니여 언제 총이나 만져봤을가 하는 눈매로 그의 일거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이야 그러건 말건 민호는 아예 감촉도 못하는 척 총을 이리저리 보고난 끝에 분해하려다말고 어느 한 새자에게서 칼을 빌려 우선 꼴사나운 가죽총띠부터 썩 떼여버렸다.

   《에그, 그걸 어째서…그냥 두고 멜게지. 삼동이 귀신 매달라붙을가봐 그러는건가?》

    성명이 왕은경이라고 하는 빨쥐같이 생긴 새자녀석이 까불대며 납닥치다가 그만 기름병을 차놓았는데 그것이 바당에 떨어지면서 총기름이 옆사람의 바지에 까지 튀여갔다.

   《야, 이놈의 새끼야!

    민호는 벌떡 일어나면서 얼낌에 주먹으로 그자의 등을 한 대 우려주었다.

   《하하하하…》

    왕은경은 저쯤나가 곤두박질하고 다른 새자들은 온 집안이 들썽하게 일장의 폭소를 텃뜨렸다.

    민호는 분해했던 부속품들을 닦고 기름을 쳐 원모양대로 조립해놓았다. 왕견이란 류자가 그러는것을 보고 눈이 둥그래지더니 커다란 입을 벌려가면서 남먼저 탄사를 발했다.

   《저것봐, 저치가 외마는 아니구나!》

   《아니야! 외마는 아니야! 영락없이 분자를 다루던치야!》

    다른 새자들도 알았노라 고와댔다.

    민호가 배속된 반은 중앙산채에서 동남방향에 놓여있는 산채에 벽을 사이두고 같은 패의 다른 두반과 함께 들어 있었다.

    이틑날 오후다. 저쪽반의 새자 하나가 와서 민호보고 밖에서 위두령의 따님이 찾고있다고 알리였다. 뭐라? 그 계집은 왜 또 온거냐. 민호는 나가보았다.

   《아가씨가 날 찾았습니까?》

   《그래요. 찾았어요. 이젠 임자께 돌려야 할 물건있어어요.》

    민호를 만나자 향란이가 먼저 입을 열면서 갖고 온 골트권총을 내놓았다.

   《왜 이럽니까. 소용되면 가지시오. 나께두 총이 있으니까.》

   《거기서 받은거야 퉈퉁아닌가요. 그깟 부지깽이같은 걸 하나만갖구야 어떻게 해요. 엣서요. 제걸 가져요. 난 욕심안나요.》

    향란이는 권총을 돌려주고나서야 문득생각나는 것 처럼 한마디 사과의 말을 보탰다.

   《참 내가 날쏘시개를 세개나 허락없이 날려버려 미안해요.》

   《미안할게있습니까. 내가 외려 감사해야할건데. 안그렇습니까. 그게 세알 다 내 몸에 들어갔더면 어쩔번했습니까.》

   《그 일 아직두 속에 넣구있나요, 사나이답지 못하게.》

   《잊으랍니가. 그럼 잊지요. 잊고맙시다.》

    민호는 제손에 되돌아온 골트를 들어 하늘에 대고 남은 탄알 세 발을 마저 다 쏴버렸다.

   《자 이젠 싹 쏴버렸군요. 불쾌한 회억역시 날아난 탄알같이 싹 잊고맙시다. 어떻습니까. 그러는게 건강에도 썩 났겠지요, 아가씨!》

   《그래야죠. 건데 그런다구 골트까지 던지진말아요. 내한테 탄알은 얼마든 있으니깐요.》

    민호는 생각밖에 돈주고 산 제 권총을 되찾았다. 이제 더 찾아가져야 할 것은 말이였다. 물론 그것이 돈주고 산건 아니였지만. 한데 그 말을 돌려주겠는지 아니면 다른 말을 바꿔주겠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괘주를 해서 이젠 그도 류자가 됐으니 탈 말은 있어야할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것을 돌려주지 않고 있었다. 말을 가질바엔 잘달리는 좋은 말이 차례져야한다. 만일의 경우 여기서 도망치더라도 말이 좋아야 붇잡히지 않을게 아닌가.

    위진반장이 하는 얘기를 들으니 말도 이제 원 총임자의 것을 받으리란다. 그 말은 털빛이 얼룩얼룩한 워라말이였다. 게다가 그말의 임자는 지금 이 세상에 살아있지 않는거다. 누군데 어떻게 돼서 없느냐고 물으니 웬 일인지 위진은 알려주기를 싫어했다. 하여 민호는 더욱더 께림직했다. 그렇다해서 분배되는걸 싫다고 거절할 수도 없는거고. 민호는 원임자에게 돌리지 않을바에는 방정에서 타고 온 그 백말을 자기가 되갖고싶었다. 그 백말이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민호는 한 번 보고싶기도 했다. 한데 그 말이 지금 어느 마사에 있는지조차 알수 없었다. 향란이는 알 것이다. 민호가 그녀를 찾아가 물어볼가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반장인 위진이와 물어봤더니 위진이가 하는 말이 그 말은 아마 맏두령과 사량팔주의 말들이 들어있는 마사에 함께있을거라했다. 

    그들의 마사는 중앙산채의 서북쪽 커다란 귀틀집 별채에 있었다. 보통때는 일반적으로 말을 내다가 방목한다. 그러니까 지금 그 마사에 말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나마 가보고싶어서 갔더니 마사안이 생각밖에 깨끗한데 말 몇필이 구유에 매여 있었다. 털빛이 검은 가라말이 4필, 절따말이 4필, 입부리가 하얀 거하말 1필, 별박이 1필에 털빛이 흰 부루말이 2필이였다. 민호는 자기를 온순하게 바라보는 그 두필의 부루말께로 다가갔다. 그런데 어느것이 자기가 타고 온 말인지 가려낼 재간이 없었다. 그 둘은 쌍둥이같이 키도 같고 생김새도 비슷했다. 사실 민호는 그때 똥줄빠지게 추격당하는 신세다보니 자기가 타고온 말이 백말이라는것만 기억났지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사실 영 깜깜이였다. 

    민호는 전날 향란이가 탄 말을 내것이라 여기고 고깝게 보았는데 오늘 다시생각해보니 그것이 실수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낯이 붉어질 일이였다. 민호가 대체 어느것이 자기가 타고 온 말일가고 머리를 이리기웃 저리기웃 하고있는데 마침 늙수그레하게 생긴 류자가 썬 여믈을 삼태기에 담아갖고 들어왔다. 사양원이였다.

    저켠에서 민호를 먼저발견하고 석쉼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임잔 제 말을 찾느라구 그러잖어?》

   《그렇습니다. 건데 어느겐지....》

   《이게아니우. 이거우다.》

    그 류자는 부루말 두필중 하나를 가리키고나서 운을 달았다.

   《말이 먹새좋구 든든하네. 척 봐두 그렇다는게 알리잖아.》       《그런가요. 건데 내 눈에는 쌍둥같아서…》

   《아니 왜 쌍둥이같아. 다시 잘 봐. 임자거야 도총이아닌가.》       다시보니 그 말은 과연 약간 푸른빛갈을 띈 백마였다. 민호는 말의 털빛갈도 제대로 가려못볼지경 무식한 자신이 민망스러웠다.     《저 백마는 누구햅니까?》

   《이거말이우. 이건 위아가씨해우다. 잘 보살펴달라구해서 내가 한구유에다 매놓구 먹이지요.》

   《아, 그런가요.》

    민호가 자기 말을 잘거둬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나가려는데 향란의 오랍되는 위용강이 마사로 들어왔다. 위용강은 민호를 보자 그저 고개를 끄덕이여 알은체를 하고는 네필의 검정말 중 억대스레 생긴 놈 하나를 고삐풀어갖고 밖으로 나갔다.

    불알이 흰 은총이였다.

    민호는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향란이가 어디론가 가다가 오빠를 발견하고 다가오며 물었다.

   《오빠, 말은 왜서요?》

   《내가 일면파에 갔다올려구그런다.》

   《소아가씰 보려구요? 곁에서 그냥 애먹이지 않을까요?》

   《그깟거 정 시끄럽게굴면…》

   《조심해요. 되도록 완력으론 행세말자요.》

   《갑을간…내 인차돌아오마.》

   《장평을 데불구가요.》

   《개두간다.》

    두 오누이간에 주고받는 말에 귀가 자연히 솔깃해지는데 무슨일갖고 그들이 그러는지 알수없었다.

   《여게와있는걸 난…》

    향란이가 말타고 산채를 표연히 떠나는 제 오랍을 눈바램하고나서 민호를 향해 돌아서며 건늬는 말이였다.

   《위도령은 어디로 출장가는모양이지.》

   《아마 그러는거같아요.》

    향란이는 대답을 회피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말보러왔던모양이죠. 안장은 받았나요.》

   《아직 차례진 말도 없는데 안장이 언제…》

   《본래걸 그냥타요.》

    향란이는 그 마사의 웃쪽에 있는 별고(別庫)에 들어가더니 손수 안장 하나를 골라갔고나와 민호에게 주면서 당부했다.

   《잘 건사해요. 이건 삼촌이 남긴거얘요. 여기서는 제 물건 제가 건사해야해요. 망가지면 으레 제 손으로 고쳐야죠. 잃어져도 제가 책임져야하고요. 물론 안되면 새걸 하나 발급받긴해두.》

    안장은 훌륭했다.

    

    관동의 토비들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웅거하는 소굴이 있음과 동시에 활동범위가 확정돼 있었다. 하길래 만약시 색다른 류자가 발을 들여놓아 <벌이>를 한다면 그것은 도덕없는 침범행위, 즉 <남의 쟁반을 빼앗는 억탈행위>로 치부되고만다. 하길래 그런 범계자에 대해서는 추호의 양보도 없는 것이다.

    염왕산중심에서 동남방향으로 약 50여리나가면 그들의 산채가 하나있다. 그것은 겨울이 오면 추위가 유별나게 혹독한 북만에서는 어디가나 흔히 볼 수 있는, 타래로 벽을 두텁게 만든 세칸짜리 커다란 흑집인데 약간 둔덕진데에 자리잡고 앉았다. 주위는 근 100여헥타르나 되는 약담배밭이다. 그 약담배밭은 물론 염왕산의 소유였다. 염왕산에서는 년년이 륜번으로 그것을 다루어왔다. 이 시기 꼭같은 면적에서 나는 소출을 값을 쳐 따져볼 때 약담배가 다른 농작물, 이를테면 강냉이의 6배, 콩의 8배, 벼의 2배였다. 하니까 거기서 나는 수입만도 가관이였다. 염왕산류자들은 략탈을 크게 하고있지만 한편 이같이 자기의 로동으로 얻은 수입을 갖고서도 년간분배와 비용을 적잖게 보충하고 있었다.

    이것은 위삼포가 변화되여가는 국세를 감안하여 연구해낸 조치의 하나였다. 한편 또 위삼포는 계절농막과도 같은 이 산채를 평시에는 련락소로 원정때는 문전휴식장으로 리용하고 있었다.

    민호는 괘주하여 류자로 된지 한달만에 자기 반을 따라 교대거리로 거기를 지키러 가게되였다. 알고보니 전에 밥을 날라다주고 <권부가>를 부르던 새자역시 그와 한반이였는데 성명이 하진국(賀振國)이였다. 성품이 사납지 않고 온순한 편인 그는 자못 감상적인 젊은이였다. 하진국은 군대에 뽑혀갖고도 약혼녀와 떨어지기 싫어서 나가지 않았다가 말썽이 생겨 욕볼 것 같으니 도망쳐 류자무리에 가담한거라 한다.

    여기서는 중이 법세(法歲)가 있듯이 류자는 류세(綹歲)가 있었다. 민호는 자기와 동갑인 그의 류세가 6살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18살부터 토비노릇을 해온게 아닌가. 핍박에 못이겨 량산에 오른다고 염왕산류자중 적잖은 이가 수호지(水滸誌)의 인물들 처럼 부득이한 경우를 당해 이런짓을 하고들 있었다. 반장인 위진을 놓고봐도 진 빚 때문에 채주와 마찰이 생겼다가 그를 살해하고 도망쳐 여기로 온 것이다. 그런즉 염왕산은 실제상 그러루한 도주자들의 피신처이자 자유를 부리는 극락의 세상이기도했던거다.

    3반의 류자들은 마차 두 대에 갈라앉아가고 있었다. 뒷마차의 뒷켠에 앉은 민호는 자기와 나란히 앉아가는 하진국이가 하는 얘기를 잠자코들어주었다.

    《산이 깊어야 범이 있구 덤불이 커야 도까비가 난다잖소. 우리네 염왕산은 국이 크니까 든든해서 한생을 류자로 살기는 들고났소. 배는 다리의 통로에 이르면 자연히 똑바로서게되잖소. 궁하면 살길이 나지는 법이요. 민호형도 맘놓고 여게 안신하길바라오.》

     하진국은 제가 어미의 배속에서 한달늦게 나왔길래 그만큼 볕을 늦게봤노라고, 그래서 자기를 동생으로 자인하면서 민호와 교제를 트고 지내려했다. 여기는 등급제도가 엄격하면서도 서로지간에 이같이 형님동생으로 부르니까 개개인의 속마음이야 어떻던간에 겉모양을 봐서는 꼭마치 한 조상의 자손으로 단단히 묶어진 하나의 허틀어지기 어려운 화목한 대가정같았다. 두령이 애초부터 그렇게 만드느라 애써왔거니와 그에게 몸을 의탁하면서 지배를 달갑게 받고있는 새자 모두가 실행으로 그의 뜻을 받들어가고 있었다.

    《고맙다. 나도 여길 나갈 사람아니야. 너처럼 그냥있으련다.》

     미호는 거짓말을 해야했다.

     하진국은 귀가 너르게 그의 말을 곧이들으면서 향란이가 하던것 처럼 류자들지간에 쓰는 은어를 배워주었다.

    《우린말이요. 동항끼리는 조만해서 서로건드리지 않소. 외지에서 나돌 때 규칙을 장악하고 말할줄을 알면 <오 너는 리마인이구나 >하고 서로가 대방을 괴롭히지 않소. <리마인>이 뭔가말이지. 그건 이 일을 알고있는 유능한 사람이라는거요. 이런 말이 있소. <강호는 무리를 찾고 녀승은 암자를 찾고 능수가 능수를 만나는 건 제 집에서 제 형제를 만나는것과 같다>고 말이요. 그렇지만 왕왕 대방을 잘못본데서 청자를 빼들어 서로 피를 흘리게되는 때가 있는거요. 그러니 남을 서뿔리건드리지 말아야 하오. 밤중에 길가다가 서로 만났다하기오. 그런때에 대방이 물으면 림기응변을 할줄알아야하오. <너는 누구냐?>물으면 <나는 나다.>하구 대답해야하구 <팔목을 눌러라.>하면 <불을 꺼라.>하고 대답해야하는거요. 이렇게 응변이 맞아떨어지면 서로 같은 신세임을 알게되는거요. 그러지 않았다가는 대방이 먼저 손을 쓰게 되는데 좀만 어물거렸다간 끝장나고마는거요. 이 사회에 가끔 살인자가 누군지두 모를 무고한 시해가 나지군하는게 왜겠소. 바로 그래서이지.》

    《아무것두 모르는 백성인것두?》

    《누가 그걸 생각한답데. 그러게 이놈의 세상을 살아가자면 조심해야하는거요. 상대가 누군지두모르구 우쭐렁거리다가는…산채를 떠나 외지에 나다니노라면 벌목장아니면 삼장이나 양봉장같은 것을 만나 부득불 거기의 신세를 져야 할 때가 종종 있는거요. 상대가 누구란걸 눈치챈 사람이면 거개가 대해줌이 좋소. 잘해먹이구 잘재우구. 어떤데서는 지어 떠나올때면 소금이나 기름아니면 담배같은걸 줘서 보내기도하는거요. 그립겠다면서.》

    《거야 뒷일이 무서워 눌러놓는 노릇이겠지. 안그런가?》

    《물론그렇지. 까놓고말해 화를 입을가봐그러는게지. 헌데 지내보면 참 미런한 좀팽이들두 더러있소. 재작년여름이였소. 나하구 왕견이가 한 번은 나돌다 약담배밭을 지키는 오두막을 만났더랬소. 해가 다 지지 저녁때라 배도 고프지 그래 들려서 신세 좀 지려니까 령감쟁이가 어쩌는지 아오. 자기도 굶어산다면서 물먹는 것 까지 아까와 보들보들 떨더란말이요. 어찌두 괘씸하던지…돌아오자 우린 반의 형제들을 몽땅 동원시켜 회초리로…참 재미있었지.》

    《회초리로 담배꼬투리를 꺾어놨다는말이지.》

    《그렇지. 말끔히 소멸해치웠던거요.》

    《고약한 짓들을 했구나.》

    《쳇, 그 령감 쌍통이지. 우린 참외밭도 그렇게 결단낸적있소…방정에 갔을적이지…거기 채 못가서 참외밭이 하나 있더구만. 그때는 사람이 셋이 됐는데 날이 덥고 컬컬한지라 몇 개 좀 먹게 달라구 개평을 불렀지 뭐요. 건데 참외막지키는 임자녀석이 어찌두 린색하게 노는지…그래 돌아올 때 갈퀴를 세 개 사갖구 그걸루서 써레를 놓고말았소. 염왕산의 본때를 보여주느라고.》

    하면서 하진국은 저들이 의례할일을 한양 자랑을 뽑았다.

   《심술궂은 만을보라더니 네가?.... 걷보긴 얌전하게 생긴 사람이 그따위 고약한 짓을 하구다니다니 원.》

    민호는 한심하다고 웃었다.

    하진국이 코를 씨물거렸다.

   《왜 난 그만한 짓두 못할사람인가. 도적놈의 배에 올랐거든 너도 도적놈되라했어. 여기가 뭐 량반의 휴양손가.》

    민호는 입을 다물고말았다. 그렇다, 주(朱)를 가까이 하면 빨개지고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잖는가. 오가잡놈이 모여든 이 도적굴에 무슨 정인군자가 있으랴.

    할 일이 없었다. 약담배거간군이 오면 눈을 싸매여 산채로 들여보내는 일 외에는 다른일이라곤 없었다. 그래서 이곳에 온 류자들은 륜번으로 보초를 서는 외에는 산채에 있을때와 다름없이 매일 주사위를 놀거나 술을 먹지 않으면 시시껄렁한 잡담으로 무료한 나날을 보냈다.

   《오목암캐 뽈록수캐 배꼽맞추네.》

   《좋다고 들어붙어 요동을 치네.》

   《암캐는 배가 나서 물독같은데》

   《렴치없는 수캐 지랄이 났네.》

   《자갈밭에 요란하게 끌리는 소리》

   《빼여든 오리변자 두자두치라네.》

    때로는 이따위 자작 파스(笑劇)를 놀아 끓어오르는 음욕을 달래기도했다.

    까치가 까마귀무리에 섞여도 까마귀 아니고 까치지만 어찌 까마귀를 영 닮지 않으리라고 장담하랴. 위화감이 사라질 때면 그도 푸른잎이 단풍으로 변하듯 어느덧 동화되고말 것이다. 민호는 새자들이 그같이 저급적이고도 무의미한 생활에 젖어 있는 꼴을 볼때면 여기에 그냥 있다간는 나도 아무때건 저모양이 되고말겠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을 파고들어 괴로웠다. 오리가 똥보고 지절댄다고 수탉이 그모양으로 지절댈까 어우렁더우렁 지낼수는 있어도 저모양으로 섭쓸리진 않을테다 하고 민호는 속다짐했다.

    한들 뒷일을 어떻게 장담하랴.

    어느날 정오무렵. 민호가 순번이 돌아와 보초를 서고있는데 몇보 안되는 앞길로 마차 세대가 지나게 되였다. 앞마차에 앉은 차몰이군이 차를 세우더니 손을 저어 뒤에 따르는 다른 차들도 자기처럼 서게했다.

    민호는 그들이 어쩌는가 보았다.

    앞차의 마부나 중간차의 마부나 뒷차의 마부나 다가 앞말의 배띠를 풀어놓고는 두손을 말잔등에 올려나 뵈였다. 그리고는 머리에 쓴 모자를 벗어서 수레채에 걸어놓더니 채찍을 쥐여 왼쪽 수레채에서 들어오른쪽 수레채로 내리치는것이였다. 그런후 셋이 다 두손모아 류자식의 인사를 했다.

   《별식을 다 피우지, 저것들은 토비와 접촉이 많았겠구나!》

    민호는 중얼거리며 다가가 차우에 무기가 있나없나를 검사하곤 그들을 통과시켰다.

    염왕산류자에게는 10계률이 있었으니 그것인즉 일반백성의 우마차는 물론 신랑각시가 타고 가는 꽃마차를 건드리지 않고 상가의 령구를 건드리지 않고 우편차를 건드리지 않으며 나룻배를 건드리지 않고 보짐의사를 건드리지 않고 거지와 도박군의 돈을 빼앗지 않으며 도부장사의 짐을 털지 않고 대차점을 털지 않으며 승려, 도인, 불가의 것을 빼앗지 않고 과부집과 홀몸으로 밤길걷는 사람을 털지 않는 것이다. 강도에게 이런 자비가 있다니 일반사람으로서는 과연 리해안될일이였다.

     

    언젠가 향란이가 민호보고 돌아가는게 빠르다고 하더니 요즘은 하진국이가 그보고 혼이 붙었다고 한다. 다른사람이 무엇을 말하면 빨리알아챈다는 말이였다. 이들 내의 일을 많이알아야했던 민호는 판무식을 면한 그를 한 번 조용히 만나볼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던 차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겼다. 어느날 그가 민호보고 족제비잡이를 해봤는가 물으면서 함께 잡으러가자고했던거다. 

    족제비를 황서랑(黃鼠狼), 황피자(黃皮子), 황신자(黃信自) 혹은 유서(鼬鼠), 황유(黃鼬)라고도 부른다. 이름은 이같이 많건만 제 굴은 만들지 않고 낮에는 쥐구멍이나 다람쥐굴아니면 나무구멍에 들어가 자다가 밤이 되면 나와서 활동하길 좋아하는 고놈의 앙증한 물건은 개가 아니고는 잡기 쉽지 않은 짐승이다. 더구나 아직은 눈도 내리지 않아 발짝도 남기지 않으니 잡기 더 어려웠다. 민호가 족제비잡이를 적게 했던가. 해도 자기는 짐승잡이라곤 평생해보지 못한 사람이라 속이면서 흔연히 따라나섰다. 

    둘은 받고랑을 하나하나 건너다보니 어느덧 산기슭에 가 다았다. 모체를 떠난 나뭇잎들은 솜이불마냥 대지를 포근히 덮었건만 발가벗은 앙상한 나무들은 바람에 떨면서 가냘픈 울음소리를 내고있었다. 민호는 산기슭에 묘 세 개 있는것을 발견하고 그리로 갔다.      셋중 하나가 생긴지 오래지 않은것이였다.

   《이건 웬 무덤이냐?》

   《나도 이름은 모르겠소만 거기 잠자는건 방정사람이요.》

   《방정사람이 왜 여기와 묻혔냐?》

   《산삼캐러 와서 안으로 들어갔다가…》

   《아, 그 사람의 무덤이냐!》

    민호는 방정려관에서 들은 얘기가 대뜸생각났다. 범계를 해서 목숨잃었다던 운수사나운 심마니가 여기서 잠자고있을줄이야어찌알았으랴. 민호는 가까이에 있는 다른 하나의 묘를 가리켰다.

   《이건 누구의 무덤이냐?》

   《그거말이요? 우리 형제의 무덤이요. 갠 작년에 잠들었소.》

   《왜서? 여기와 앓기라도했던가?》

   《아니요. 제 사람의 날쏘시개를 먹구서.》

   《뭐라, 총살인가? 어쩌누라 제 형제끼리는?》

   《그걸 말하자면 참…》

   《참 어떻다는거냐?》

   《값없구 망신스러운거요.》

    민호가 집요하게 캐묻자 하진국은 한 류자의 죽음에 대해서 상세히 알려주었다.

    재작년 이때다. 한패의 류자가 림구(林口)에 갔다오다가 어느 한 자그마한 마을에 들려 하루밤을 지내였는데 이틑날 아침때 로파 하나가 찾아와 간밤에 제 딸이 겁탈을 당했노라 울면서 공소했다. 그때의 인솔자는 위용강이였다.

    위용강은 즉각 신호를 올려 흩어진 류자들을 집결시켰다.

   《간밤에 부덕의한 짓을 한게 누군가, 냉큼 여기루 나왓!》

    나오는 이가 없었다.

    위용강은 그럼 좋다하고는 그 로파더러 범행자를 찾아내라했다. 로파는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훝더니 마침내 수염이 더부룩한  40대의 사나이를 짚었다. 헌데 그 사람은 다른 누구가 아니라 바로 그의 삼촌 위삼동(魏三東)이였다.

    염왕산 류자내에서는 기와가마를 점령했을 때를 내놓고는 다른 어떠한 장소에서든 녀자를 희롱하거나 간음하는 것을 엄금했는바 그러는 자는 세차즈(邪叉子), 즉 말성을 일으키는 꼬챙이라면서 가만놔두지 않았다. 헌데 이번의 규률위반자는 다른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삼촌이니 위용강은 처리하기 과연 난처하게 되었다. 하여간 남도 아니요 친혈육이 아닌가. 귀찮은 일이 귀찮게 굴기 전에는 그걸 생각지 않으련만 이미 이 정도로까지 이르렀으니 묵과 할 수는 없는 일이였다. 그래서 처음 생각에는 대중앞에 반성시키고 산채에 돌아가 아버지한테 맡겨 처리하려했다. 한편 다른 류자들은 내놓고 말은 안해도 네가 문제를 어느만큼 공정하게 처리하나 두고보자고들했다. 한즉 이 문제의 처리는 금후 대오의 규률을 확보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문제와 직접관계되거니와 아무때건 제 아버지를 승계하여 산채의 두령으로 오를 위용강이 수하 새자들을 어느정도 공평정대하게 대해주는가를 검험하는 때이기도했다.

    대오가 여기에 도착했을 때였다. 위용강은 삼촌이 좀이라도 관대처분을 받겠거든 휴식을 선포하기 전에 대중앞에 나서서 스스로 자신을 반성하라했다. 그랬더니 위삼동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자 위용강은 그를 강박적으로 끌어냈다.

   《난 네 삼촌이다, 삼촌이야! 이 자식아!》

    위삼동은 위용강의 심기를 알아채고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삼촌, 별수없소. 누가 규률을 위반하라했소.》

    위용강은 이 한마디를 하고 그를 총살해버렸다. 그리고는 귀까지 베여서 겁탈당한 녀인의 집에 보내여 그를 이미 처단하였음을 알리였다. 워낙 총잘쏘는 위용강은 산채에 돌아오자바람으로 부포토우로 승진했고 일을 그같이 공정하게 처리함으로 해서 류자들속에 위망도 있게됐다.

    자기가 받은 총의 원임자가 바로 그토록 불명예스러운 자였음을 인제야 똑똑히 알게 된 민호는 나머지 묘 하나를 가리키며 그 속에는 대체 어떤자가 누워 잠자느냐물었다.

   《그거말이요. 그 속에는 고건아의 뼉다구가 있지. 걘 정말 불쌍하게 눈감았소.》

    하진국은 낯색까지 어두워지면서 아느새 말을 못했다. 사자는 그와 한날 한시에 이 염왕산에 괘주한 젊은이였는데 류자생활을 하기싫어 재작년그러께의 묘동(猫冬)기간에 집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것을 이듬해 가을에 붙잡아다가 여기서 총살해버린 것이다. 묘동이란 류자들이 산채를 떠나서 겨울을 나는 일을 가리키는건데 특수한 변고도 없어갖고 때가 된데도 돌아오지 않을시에는 변절로 인정하고 잡아다 그같이 처단해버리는거다.

    허, 이놈의데가 규률이 과연 무서운걸! 승냥의 무리에 섞여살아봐야 승냥이의 습성을 알게 되듯 민호는 주동적으로 곁을 주면서 사근거리는 류자들과 가까이 지내다보니 신비로운 색채가 다분한 이 마적단의 실태를 점점 더 똑똑히 알게되였다.

    주숙지로 돌아오니 패놓은 장작 한아름을 들여다 아궁이에 밀어넣고있던 위진이가 말을 먼저걸어왔다.

   《내 뭐라던가, 아직은 이르니까 나가지 말라잖았어. 그래 족제는 비꼬리나 봤는가?》

    민호가 보아낸건 그가 매사에 년장자다운 틀거지를 내고있는 그것이였다. 때론 그것이 지나쳐 눈꼴시였건만 노예적근성이 있다보니 자존을 잃고만 새자들은 비굴할 지경 굽실거리면서 그를 어버이같이 받들고 붙쫓았다.

   《이제 눈만 내리면야 짐승잡이하기 쉽지. 동생은 사냥을 해본적이 있는가. 여기서 겨울을 보낼바하곤 짐승잡이나 착실히 하라구. 기회가 좋으니까. 그것두 가마를 터는 것 만큼은 거의 재미있는 노름일세. 땡잡으면야 벼락부자루 될 수도 있는거구.》

   《정말 그럴가?》

   《그렇다말다. 거짓말 아니라니까. 그게 어느해던가…륙월달이였는데 삼패의 리황수녀석이 바로 여기서 사슴 한마리를 잡잖았겠나. 그래 그걸루 맏두령께 치성을 드렸던거네. 생각해봐. 그렇게 했으니 어떻게 됐겠는가. 우선 환심을 대단히 삿을게 아닌가. 그 덕에 급을 잘 췄지. 바로 그렇게 해서 자식이 운이 텄지. 우린 그렇게 여기는거네. 두령한테는 물론 형제들끼리 어우렁더우렁 지내더라두 인심은 잃지 말아야하는거야. 알겠나 위신을 사야한다 그 말일세.》

    위진의 일깨움이 어찌나 진지한지 흡사 직심스러움과 성근함이 푹 배인 목사의 설교같았다. 

    한데 듣자니 위진은 <깝지를 먹는 사람>이라 한다. 다른 새자의 물건으로 납픔(納品)하는 인간이라는거다. 하진국은 그가 해마다 제 면목을 내기 위해서 수하새자들의 돈을 묘하게 우려내군하는데 대해 불만을 품고있었다. <작은 덜미를 친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두령이 새자들의 공물을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킨다. 해마다 두령께 납품하는건 이미 없애치우기 어려운 고약한 습관으로 되여버렸다. 절대적인 권위자인 위삼포를 산채에서는 맏두령, 큰형님, 큰주인 혹은 큰나리라 부르고있는데 일반 새자는 물론 사량팔주도 그를 공경하고 높이 떠받들어야만했다. 한것은 그가 바로 산채의 대들보였기 때문이다. 이같이 류자내에 엄금한다고는 하나 층층이 올리섬기는 버릇이 그냥있었다.

    어느날 민호가 하진국이 보고 염왕같이 무서운 위삼포가 위인됨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하진국은 그이야말로 완전무결한 류자두령이라면서 관(管)이 대단히 밝은 사람이라 자랑했다. 관이 밝다는건 사격술이 대단하다는 말이다. 이젠 여러해가 된다. 한 번은 위삼포가 일면파(一面坡)에 갔을 때다. 그곳의 왕지주집에서 저녁을 먹고나서 권총을 소제하느라 말끔히 분해했는데 공교롭게도 쌍성(双城)의 관병들이 어떻게 그가 온 기미를 알고는 붙잡으려했다.

    위삼포는 담장밖에서 나는 발작소리를 듣고 분해했던 부속품들을 급급히 외투주머니에 걷어 넣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면서 되맞추었는데 대문을 열자 총소리도 울리였던 것이다. 집에서 담장대문까지의 거리는 거퍼 10여보밖에 않되였다. 이일로 하여 위삼포는 관동강호(關東强豪)의 명사수로 이름을 날렸거니와 10보를 걷는 사이 분해한 총을 제꺽맞추는 <십보법>이라는 것이 생겨난것이다. 그것이 지금은 관동토비들이 우수자를 선발하는 하나의 표준으로 정해지기까지에 이른 것이다.

    위진은 바로 이런 두령을 섬기는 것을 영광으로 삼으면서 자기가 거느리는 11명의 새자들에게 두령으로 떠받들리우고 싶어했다. 민호는 이 껍지를 가로먹는 사람―새자들중의 작은 두목이 씹어대는 말뜻을 알수 있었다. 언중유언이라 돈이 생기면 자기한테 코밑치성이라도 해야 옳은일이라는 암시였다. 민호는 언영부터 자기의 목적을 이루자면 허영심많은 이 허저족류자를 리용해야겠다고 마음먹던참이라 이제 짐승잡아 돈을 벌면야 내가 위반장을 어찌 잊으랴했다.

    그리고나서 그는 넌짓이 근중을 떠보았다.

   《반장, 위반장은 전해에 고태자서 생긴 일 알고있습니까?》

   《그 일을 말인가, 알구있구말구.》

   《그 사건에 누가 죽었습니까?》

   《거야 우리네 허저인들이였지.》

   《어떤 놈이 그런 짓 했는지는 압니까?》

   《알구있어. 내가 그걸 왜 모르겠나. 거야 청보산패가 한 노릇이였지.》

   《전에 온건 어느 패에 있었던 사람입니까?》

   《누구말이여?》

   《진사해말입니다. 모두들 그러는게 그가 바로 청보산패서 수이샹노릇을 했다더구만.》

   《그건 나도알아.》

   《안다구? 위진형은 알면서두 그래 그놈을 가만둡니까?》

   《가만두잖구 어쩌겠나 보다싶이 우린 이젠 한형제루됐는데.》

   《형제라구? 다시말해봐요, 형제라구? 그 자는 바로 허저인의 철천지원쑨데두 형제라구?…어이구 참!》

    민호는 너무도 어처구니없어서 쓰게 웃고말았다.

    위진이 변명하려들자 민호는 그가 입을 더 열지 못하게 막고는 량심있거든 좀 곰곰히 생각해봐라 무고한 동포의 피가 량손에 랑자하게 묻은 자가 어쩌면 형제로 될 수 있느냐, 네가 그렇게만 생각하면 그게 바로 제 민족에 대한 배반이 아닌가고 비난했다.

    말문이 막혀버린 위진은 그만 고개를 떨구고말았다. 이미 시위를 당긴 활이였다. 과녁을 맞추기위해서는 시력을 집중하듯 민호는 그를 눈자리나게 박아보면서 설득시키려들었다.

   《소란 놈을 좀 보시오. 그것들이 다른 소의 피만 봐도 발로 땅을 차고 뿌리로 뚜지면서 고함치고 울어대지 않습디까. 말모르는 미물이 다 그럴라니 하물며 감정가진 사람이 이게 뭡니까. 내 발등에 떨어진 불 아니라고 보고만있단말입니까, 그래? 어쩌면 참....》

   《후―》

    통박을 오래굴려 볼 일도 아니였다. 위진은 한숨을 길게 뽑았다. 곁사람의 조롱섞인 기탄없는 힐난을 받고 보니 여지껏 마비되였던 감정이 정화되면서 정신차리는 것 같았다.

    자식이 머리가 이제 좀 도는거냐. 민호는 자기같으면 절대 가만있지 않으리라면서 늦줄을 놓지 않고 계속 쐐기를 쳤다. 그랬더니 위진은 마침내 얼굴이 지지벌개나면서 이제보니 진사해는 과연 때려잡아치울 개구나 돼지구나 하고 욕했다. 원쑤를 갚음에 타인의 협력이야말로 그 얼마나 필요한것인가. 그의 칼에 피를 묻힌다면야 더없이 좋은거고. 이쯤하면 일은 될것같아 민호는 내심 기뻤다.

    류자들은 성질이 달랐건만 네것 내것 따로없이 모두먹기에 인정을 트이고 지냈다. 피끗보면 하루하루 란잡스런 자유로 무미한 생활을 엮어가는것 같고 술과 육담을 내놓고는 삶도 사상도 있는 것 같지 않지만 사실은 그런게 아니였다. 맡겨진 임무는 조금의 허실도 없이 완성하고 돌아가리라는 각오된 자각과 두령께 끝까지 충성하려는 결심이 그들로 하여금 만일의 경우 들이닥칠 수 있는 불의의변고도 과감히 맛서싸울 수 있게끔 준비시키면서 흩어지지 않는 하나의 사납고도 실력있는 집단으로 단단히 묶어놓고있었던 것이다. 마치 사나운 승냥이들이 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떼를 무은 것 처럼!

    

    날씨가 썩 추워오자 염왕산본부의 후근처에서는 이곳에 나와있는 류자들의 방한을 위해 솜옷이며 모자며 신이며 토시같은것들을 보내왔다. 모두들 올해는 새것을 발급받아 무척 기뻐했다.

    류자들의 겨울차림새는 괜찮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맏두령과 사량팔주는 토이기식의 보드러운 수달피모자를 쓰고 그 아래의 새자들은 일률로 우가 여섯쪼각으로 동그랗게 무어지고 단추모양의 꼭지를 단, 모양이 흡사 절반쪼개놓은 수박같은 털모자를 쓰는데 귀덥개는 길고 컸다. 보통 토끼가죽아니면 개가죽이나 승냥이가죽이나 여우가죽으로 만들었다. 그런 모자들은 목이 충분히 가리워 바람이나 눈이 목안으로 날아들어가지 않아 따스했다.

    위진은 민호에게 새 여우털모자를 주면서 알려줬다.

   《길을 떠나게 되면 귀덮개를 뒤로 졌혀서 끈을 매게… 왜 그러는가말이지. 총명한 사람이 그것두 모르겠나 그래?》

   《어께에 멘 분자(총)가 끝이 보이지 말라구 그러는거요.》

    옆에 있던 한 새자가 알려줬다.

    민호역시 다른사람들모양으로 검정솜저고리와 검정띠와 토끼털로 안을 댄 조끼를 받았다. 뒤가 엉덩이아래까지 내려오는 털가죽조끼를 줄 때도 있었는데 올겨울에는 기와가마마스러 가지 않고 여기에 와 있길래 그것하고 샅이 붙지 않는 털덧바지는 보내지 않는다고 량태가 책임으로 보낸 류자가 여럿앞에섵 공포다.

    모두들 하는 말이 맏두령과 사량팔주는 입는것도 썩 고급적이거니와 모양새도 다르다고 한다. 물론 그럴 수밖에. 그네들이야 전부 나으리가 아닌가.

    하진국이 허리띠는 솜저고리를 입고 밖에다 두르는건데 그 용처는 여러 가지라 알려줬다. 길이가 일률로 12자 2치되게 만들어진 그것을 허리에 띠고 거기다 권총이나 분자(칼)같은 것을 꽂을 수 있을뿐만아니라 유사시에는 바줄대신으로 사용하기도한다는거다.

    소가죽울라신도 새것을 배급받았다. 민호는 올해까지 4년철을 신어보는 신이였다. 한데도 위진은 이 조선청년이 언제 이런 신은 신어봤겠느냐면서 하진국이더러 그한테 신는 방법을 배워주라했다. 그래서 하진국은 우선 울라초를 보드랍게 해갖고 와서 손수 발에다 감아주면서까지 차견히 알려주는것이였다.

    야 이 뻐꾹아. 네 눈에도 내가 그렇게 숙맥으로 돼보이냐. 민호는 자기 발을 내맡긴채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이틑날 아침. 민호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누구보다도 빨리 울라신을 신었다. 그런다고 온 반의 새자들이 눈이 둥그래갖고 어쩜 뭐든 이리두 제꺽제꺽 배워낼가고 혀를 내둘렀다. 이 일로하여 민호는 다시한번 그네들의 눈에 대단히 총명한 젊은이로 돼보인건 더 말할것없다.

    모두들 그를 과연 혼이 붙었나봐했다. 한것은 민호가 다른사람은 꿈에도 바랄 수 없는 털양말 한 켤레를 더 받았기 때문이다. 하얀 양털실로 탄탄하게 뜬건데 그건 위삼포의 딸님이 보낸것이였다.

   《허참 별일다있다! 향란이가 그한테 양말을 떠 보내다니?》

   《관심이 이만저만아닌걸!》

   《어느새 벌써 그런 사리룬 됐나?》

    입끝마다에서 부러움끝에 놀림절반 담긴 말들이 흘러나왔다.       두령의 딸님이 어떻게 돼서 그한테만 독특한 관심을 보이겠는가, 그건 민호가 이민족의 젊은이기 때문이라느니 사나이가 생김이 름름하니 아가씨가 안중에 든거라느니 하는 따위의 제멋대로의 추측들도 있었다. 민호는 빌어먹을 자식들 어디 실컷 까불고 찧어보라했지만 자신도 향란이가 왜서 자기한테만 그같은 애잡짤한 관심을 보이고있는지 알길없었다. 그는 그 양말을 받긴했어도 신지 않았다. 울라신에 그것이 별로 소용없었기 때문이다. 향란이가 이런줄을 모를가? 그녀가 모를리없다. 한데도 그녀는 이처럼 수고스레 마음을 쓴거다. 과연 왜서일가? 민족우대는 아닐텐데. 그렇다면 이 사나이가 눈에 들어서? 정녕 그러하다면 이 사내의 어떤 장점에?…민호는 종잡기 어려운 아리숭한 기분에 빠지고말았다.

    웅성들만 모여있는 염왕산에서 유일하게 피여있는 한떨기의 아름다운 꽃인 향란이가 곧바로 녀인의 화신이요 모든 사내들이 떠받드는 우상이기도했다. 그러한 그녀를 새자들은 입끝에 올렸다.

   《향란이가 올해 나이 아마 스믈다섯이지?》

   《시집은 왜 안가는지?》

   《아직두 알맞는 대상이 없나보지.》

   《아따 거 황보재가 있잖은가.》

   《좋아지낸진 오래두 신랑감으룬 아마 모자라는모양이야.》  

   《뭐가 모자라게?》

   《아따 그것두 모르겠나. 요긴하게 쓰는게지.》

   《보재가 고재란말이냐, 그래?》

   《누가 오줌싸는걸 봤는데 고재는 아니더래.》

   《아마 물렁좆인모양이야.》

   《뭐라? 하하하…》

    민호는 위용강과 동갑인 황보재가 염왕산류자치고는 꽤 만만찮은 인물이란 말을 들은적이 있다. 그가 과연 향란이가 고른 신랑감일가? 사실 그렇다면 좋은 멋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민호는 그가 지금은 같은 배에 앉아가는 처지요 운명을 같이해야 하는 형제간이 돼버린 연유로하여 친절하달정도로 사근사근 대해주고있지만 언젠가 말타는 향란이를 거들어주다가 성급스레 칼부터 빼들면서 자기와 결판내려던 일을 다시생각하고는 내가 향란이와 가까워지면 그건 섶을 지고 불더미에 들어가는게 아닐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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