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http://www.zoglo.net/blog/jinzhenglong 블로그홈 | 로그인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역사문화이야기

'종군위안부'의 유래 (김정룡)
2007년 12월 08일 11시 22분  조회:5675  추천:116  작성자: 김정룡
김정룡의 역사문화이야기17

'종군위안부'의 유래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종군위안부 얘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흔히 제2차 대전 시, 한국이나 중국 여성들이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에게 짓밟혔던 사실을 떠올리며, 일본인이 사상 처음으로 혹은 유일무일 하게 저지른 만행의 산물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실은 종군위안부가 역사무대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중국춘추시기였다.

 춘추시대 말기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吳)나라를 정벌할 때 장수와 병사들이 가족을 그리워하여 군대의 사기가 저하된 것을 보고 여성 위문단을 모집하여 전선으로 보냈다. ‘중국의 남자와 여자’의 저자 역중천(易中天)은 “이것은 중국 최초의 종군위안부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 후 중국에서 종군위안부가 하나의 제도로서 정착되었던 것은 한무제 때었다. 당시 종군위안부를 ‘군영의 기생’이라는 의미에서 그 이름을 ‘영기(營妓)’라 불렀다. 

 ‘세상사’가 하나의 제도로 정착되기 전에는 여러 가지 폐단이 존재하기 마련인 것과 같이 ‘영기’제도가 정착되기 이전에는 종군위안부는 임시방편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상황이 복잡했다. 즉 우선 종군위안부는 분배가 문제였다. 그래서 죄인의 아내나 딸들을 강제로 군사들에게 짝지어주는 제도도 생겨났는데, 이 또한 가족이 생기고 아이를 낳고 해서 너무 비대해져 통솔과 이동에 어려움이 있었으며 모든 병사들이 다 여자를 소유할 수는 없어 내부 갈등도 심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생겨난 것이 곧 ‘영기’ 제도였다. ‘영기’ 제도는 모든 군사들이 공평하게 여자를 접할 수 있고 또 관리하기도 쉬웠으며 이동도 편리했다. 

 ‘영기’ 제도는 송나라 때까지 성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쟁이 없을 때에는 ‘영기’가 지방 관리들의 노리개로 전락되면서 관리들의 부패를 부추기는 요소로 지목되었다. 그리하여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영기’ 제도를 폐지하고 건도교(乾道橋)와 무정교(武定橋)에 관영기원, 즉 공창을 두었으며 관리들이 기생과 잠자리를 하는 것을 금한다는 어명을 내렸다. 하지만 공창 또한 이런저런 문제가 많아 강희(康熙) 12년(1673년)에 문을 닫았다. 

 종군위안부와는 성질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적을 무너뜨리려고 미인계를 쓴다든가, 전쟁에서 패하면 승전국에게 미녀들을 바치는 것도 역시 위안부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夫差)에게 서시(西施)를 바쳤고, 한나라 때 왕소군(王小君 : 흉노로 가는 도중에 자살했음. 왕소군은 서시, 초선,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녀에 속한다.)을 흉노에게 바치는 등, 이들 미녀들이 곧 위안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역사에서 중원이 주변 이민족에게 전쟁에서 패하면 미녀들을 상대에게 바친 사례가 허다하다. 그리고 1635년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은 청에 60만의 인질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중 90%이상이 젊은 여성이었으며 이들은 청에 가서 사실상 위안부 노릇을 했다. 

 20세기에 들어 종군위안부가 기본상 사라졌지만 일본인이 종군위안부를 두려고 자국 내 여성들을 모집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등 주변국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했다. 일본인의 이런 만행은 규탄 받아야 하며 반드시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 

 허나 아이러니한 것은 1973년 한국문화관광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일본인 관광객을 한국에 끌어들여 외화를 벌어들이려고 관광업계에 일본인을 상대로 기생관광판촉(선전)에 적극 나설 것을 호소했다는 것이다. “일본인의 만행에 대해 규탄하는 것이 마땅하나 한국인은 스스로 자신의 수치스런 행위에 대해서도 반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한국의 양심 있는 학자들의 지적이다.  

 최근 10여 년 동안 일본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위안부문제가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국제사회는 일본을 양심 있는 사과를 하라고 촉구하고, 일본은 강제성이 없었다고 뻗히고 있다. 이번에는 미국이 지난 26일 ‘위안부 결의안’을 하원 외교위원회에 통과시켜 일본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돌아가는 국제형세를 지켜보며 종군위안부의 역사적 유래를 한번 살펴보았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6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3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 2008-04-18 103 5990
22 일본여인의 보자기와 일본인의 정조관 2008-04-04 84 9530
21 도올 선생의 ‘원화관(源花觀)’에 대한 나의 이견(異見) (김정룡) 2008-02-15 66 6005
20 “독신주의는 문명의 변태이다.” 2008-01-10 76 5952
19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의 유래 (김정룡) 2008-01-10 81 6022
18 상놈(常奴), 타마비(踏麻妣), 빠가(馬鹿) (김정룡) 2008-01-10 89 6420
17 중국인이 공처가(恐妻家)가 많은 이유 2008-01-01 84 6738
16 '종군위안부'의 유래 (김정룡) 2007-12-08 116 5675
15 풍류도와 ‘멋’, ‘맛’, ‘판’ (김정룡) 2007-11-02 77 6330
14 구리다는 말의 유래(김정룡) 2007-10-23 102 6199
13 성녀와 기녀의 유래 (김정룡) 2007-10-23 111 6655
12 여자를 ‘꺾다’와 ‘따먹다’는 말의 유래 2007-10-21 117 8137
11 여성을 꽃이라 하는 유래 2007-10-21 94 6359
10 복숭아와 잉어를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 유래 2007-10-21 114 6457
9 바람피우다와 까오퍼쎄(稿破鞋)란 말의 유래 2007-10-14 85 6314
8 이판사판(理判事判)이란 말의 유래 2007-10-14 103 5704
7 야단법석(野壇法席)이란 말의 유래 2007-10-06 69 6259
6 중국인이 물건을 뚱시(東西)라 부르게 된 유래 2007-10-06 76 5254
5 남편을 왜 ‘서방’이라 하는가? 2007-10-06 78 5465
4 수작이란 말의 유래와 우리민족의 음주가무관습 2007-10-06 98 5157
‹처음  이전 1 2 3 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