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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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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시인 김창영 篇
2024년 08월 29일 02시 14분  조회:545  추천:0  작성자: 죽림
김창영 시인

서탑의 력사적의미와 시적인 상징성―
김창영의 련작시 "서탑"/장춘식
2012년 05월 15일 21시 03분  작성자: 경은
서탑의 력사적의미와 시적인 상징성
―김창영의 련작시 《서탑》

                                장춘식
 
1. 시작하면서
 
김창영의 시는 우리가 늘 먹는 된장이나 김치와도 같이 소박하면서 깊은 맛이 있다. 화려한 수사도 별로 없고 모더니즘의 특징이라 할수 있는 난해함도 없다. 그러나 술술 읽히면서 읽고나면 거기에서 뭔가 우리의 가슴을 저리게 하는 깊은 의미, 깊은 맛이 느껴진다.
이번에 묶은 시집 《서탑》 련작시 99편은 그의 이러한 소박하면서 깊은 맛을 집대성한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100편이 아닌 99편, 많다는 의미가 될것 같기도 하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으로 리해해도 될것이다. 하긴 저 서탑아래 도라지꽃이 피는 한, 즉 조선족의 흔적이 존재하는 한 김창영시인의 시상도 끝나지 않을것이다.
련작시는 우리 시단에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러나 김창영의 《서탑》 련작시처럼 방대한 규모의 련작시는 흔치 않다. 석화시인의 련작시 《연변》이 31편으로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지만 김창영의 《서탑》의 3분의 1밖에 안된다. 의미있는것은 두 련작시 모두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장르적으로 두 련작시는 전례가 없는것이여서 1980년대 리욱, 김철, 김성휘 등의 장편서사시가 하나의 붐을 이루었던것처럼 장르적혁신의 붐을 일으키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없지 않다.
시인이 관심을 두고있는 주제의식을 중심으로 시집의 의미와 가치를 살펴본다.
 
2. 공동체의 정체성 확인 욕구
 
련작시의 최초발상은 아무래도 조선족의 상징, 이주민의 상징으로서 비롯된것처럼 보인다. 서탑과 서탑거리는 료녕성 특히 심양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졌고 이는 사실상 연변과 마찬가지로 중국내 전반 조선족의 상징이기도 하기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99편에 달하는 련작시의 거의 반 이상이 민족 정체성의 리해와 확인의 경향을 드러낸다.
 
1) 기억속의 력사와 그 상징성
시집의 작품에는 기억속의 력사적 흔적들이 많이 나온다. 10여편이 이런 소재를 다루고있다. 가령 3번 작품의 량세봉장군에 대한 기억, 4번과 64번 작품의 조선족의 이민과 벼농사를 통한 정착의 력사적기억, 5번 작품의 새끼골목의 유래, 15번 작품의 백석시인의 기억, 16번 작품의 “봉천국밥집”의 유래 등이 이에 속한다.
15번 작품은 “시인 백석을 그리며”라는 부제를 달고 작품 전체적으로 북관 즉 우리의 이민지인 동북땅에 대한 백석시인의 인상과 느낌을 재현해내는데, 수십년이라는 시간적차이를 두고 하나의 같은 공간속에서 벌어졌던 두 시인의 느낌은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의 공간을 마련해준다. 어떤 의미에서는 력사와 현재의 시간을 하나의 공간속에서 통합시켰다고 보아도 대과는 없을것이다. 그러한 시인의 상상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 력사와 오늘의 삶을 동시에 느낄수 있기때문이다. “류치환의 ‘절도(絶島)’에 답하여”라는 부제목이 붙은 32번 작품에서는 일제강점기 이민시인 류치환의 이민지에 대한 느낌 혹은 정서와 김창영시인의 오늘의 이민지의 느낌을 대조시키고있다. “외로운 絶島”라는 류치환의 만주국치하 동북땅의 쓸쓸하고 고독한 느낌에 대해 시인은 “해빛 찬란한 광야의 하루”라는 표현으로 대조시킨다. 력사와 오늘 현실의 시간적거리감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수십년이라는 시간이 지난후 바뀌여진 정착지의 삶의 양상이 체험적으로 다가온다.
《봉천국밥집》이라는 부제목이 붙은 16번 작품과 “화평구중흥가31번지”라는 부제목이 붙은 39번 작품에서는 조선족이 현재 살고있는 정착지의 력사적인 기억과 상징성이 보다 무게감있게 다가온다. 남편을 항일투쟁에서 잃은 8명의 독립군부인들이 십시일반으로 개장했다는 “봉천국밥집”의 유래를 특별히 제시한 16번 작품에서는 오늘날 우리 조선족의 정착이 얼마나 뼈아픈 대가를 치렀는지를 기억하게 하며 39번 작품에서는 다시 옛 봉천의 조선인 부호 김창호가 살던 주택을 들어 그러한 력사적기억을 립체적으로 확산시킨다.
이런 기억이 시인의 상상력을 자극한것은 그것이 우리의 기억, 선조들을 통해 우리의 무의식속에까지 침투된, 수많은 상징과 암시를 동반한 기억이기때문이 아닐까 한다. “논밭을 바라보며”라는 부제목이 달린 4번 작품과 “새끼골목”이라는 부제목의 5번 작품, “북운하 서정”이라는 부제목의 64번 작품을 통해 우리는 시인의 그러한 인식을 확인할수 있다. 맨주먹으로 강을 넘어 남의 나라 땅에 몸을 맡긴 우리의 부조들은 거의 벼농사기술 한가지로 이땅에 정착할 밑천을 마련했고 그렇게 수많은 피와 땀을 이땅에 뿌리는 동안 몇세대를 걸쳐 오늘에 이르게 되였던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력사적기억을 끊임없이 더듬어보고 감개무량해한것은 력사적기억 그 자체만에 대한 관심때문은 아닌것 같다. 그러한 력사적기억의 재생에는 항상 오늘의 우리가 엮여지기때문이다.
 
2) “나”와 “우리” 확인의 콤플렉스
사실 시집 전체적으로 시인 김창영이 서탑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것은 오늘의 우리, 우리라고 표현되는 조선족의 존재감에 대한 확인 콤플렉스라 할수 있을 정도로 이 부분에 해당되는 작품이 량적으로도 많고(20편이 넘는다) 정서적으로도 가장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러니까 앞항에서 살펴본 력사적기억에 대한 관심은 이러한 “우리” 확인의 콤플렉스에서 비롯되였다고 볼수도 있을것이다.
련작의 첫편에서 이점은 벌써 확인된다. “어제밤 꿈속에서 부르던/할아버지가 그리워/이른 새벽 서탑을 찾는다”는 표현은 련작시 전체의 창작동기를 제시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태여나 얼굴조차 보지 못한 할아버지”의 목소리―“너 이놈, 서탑을 가슴에 심거라!”가 “탑아래서 탑의 언어에 귀 기울이다”는 표현과 겹쳐지면서 “나”와 “우리”의 정체성 확인의 욕구를 충분히 드러내고있기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서탑은 이민민족인 “우리”의 상징으로서 시인의 의식과 정서를 자극하고있다는 말이 되겠다. “묘향산 모란봉”(이북땅을 상징)을 거쳐 “한라산”(이남땅을 상징)에 이른다고 한것은 앞의 “현풍할매곰탕집”이라는 식당 이름과 련관시켜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상호(商號) 명칭이 분명하지만 이를 통해 고국의 산천, 고국땅을 표현하고자 한 시인의 의도 또한 뚜렷하다. 그렇게 보면 이 작품에서는 “나” 혹은 “우리”를 조선반도에서 이주해 서탑으로 상징되는 중국땅의 정착지에 정착해 살아가는 공동체로 보고 이를 스스로 확인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다가온다.
이점은 2번 작품에서 “우리”를 가슴에 “하얀 도라지꽃”을 피운 공동체, 즉 고국의 동포와는 구별되는 존재로 인식하는 점에서도 다시 확인된다. 이 작품에서는 또한 서탑이 “행인들의 가슴속에 탑으로 우뚝 솟았다가” “거리로 드러누웠다”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탑이 “드러누웠다”는 표현은 련작시 전체적으로 5-6곳에 등장하는데, 이는 시인의 기교적인 기호와도 관련되겠지만 그 “드러누웠다”는 표현이 “우리”의 정착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고 할 때 거기에는 뜻깊은 상징성이 동반된다. 그리고 이 상징은 련작시 전체적인 상징―서탑=조선족=자랑스런 정착민공동체의 의미를 띠게 된다. 왜 서탑이 시인의 의식속에서 그토록 절실한 의미를 가지고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로서의 정체성 확인의 욕구는 다각적으로 이루어진다. 27번 작품에서 시인은 서탑이 “여기에 이렇게 서있음은/서러움인가 자랑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해놓고는 “쪽박차고 압록강 건너야 했던 비운”이 지금까지 남아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서러움이 되겠지만 “다시금 엮어가는 우리네 삶”은 오히려 자랑이 된다고 말한다. 정체성 확인의 한 방법이 될것이다. 그리고 다시 “조선문서점”이라는 부제목이 붙은 28번 작품에 오면 고국과의 관련, 혹은 민족적인 정체성을 인정한다. “서탑대랭면점”이라는 부제가 붙은 31번 작품에서는 랭면사랑을 통해 또다시 민족적정체성을 확인한다. “북릉공원놀이”라는 부제목의 42번 작품은 심양의 조선족들이 왜서 북릉공원놀이에 그처럼 애착을 가지는지를 통해 공동체의 자기확인의 욕구를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43번 작품에서 “백두에 이르는 진달래 꽃길과/한라에 이어지는 무궁화 꽃길이 보인다”는 표현은 우리 공동체의 이중적인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시인의 독특한 감수성의 소산이라 하겠다.
이처럼 시인은 “우리”로서 조선족공동체의 자기확인을 통해 우리 삶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있는바 여기에서 서탑은 항상 그 상징 혹은 가치의 중요한 이미지로서 독자의 정서를 자극한다.
 
3) 위기 맞아 다지는 마음
그러나 공동체로서의 자부심과 가치의식은 시인에게 있어서도 항상 자신감만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도시화를 맞아 분해되는 우리 공동체의 현실앞에서 이런 문제성은 자연스럽게 도출되는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그러한 위기상황을 맞아 좌절하고 한탄만 하지는 않는다. 서탑의 이미지 혹은 상징에는 그러한 위기를 해소하고자 하는 의욕, 혹은 자기다짐의 의식들이 다수 드러난다.
그런데 시인의 위기의식은 련작시의 초반에서는 별로 나타나지 않다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점차 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도시화시대를 맞아 민족공동체가 맞은 위기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있음을 말해준다.
가령 34번 작품에서 시인은 위기의식과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처음으로 드러내고있다. 그것도 “오랜세월 삼복 폭염아래/탑이 열병을 앓는다”는 표현에서 볼수 있듯이 최근의 위기만이 아닌, 조선족이 겪어온 시련과 고난의 전 과정을 포함하고있는것처럼 보인다. 거기에 오늘의 위기도 물론 포함될것이지만.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시련, 위기의 극복을 “흐린날 뼈속에 스며든 랭기를 삭히는 일”로 보고 “가린것 하나 없이 온몸 내맡기고/열받아 깡그리 녹아내렸다가/이 땅에 다시 일어서는것”이라 락관한다. 이런 시인의 락관에는 이민과 정착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른 우리의 력사적저정이 바탕이 되였을것이다.
37번 작품에서도 시인의 락관적인 정서에는 과거 백수십년의 력사적경력이 바탕에 깔려있지만 미래의 불투명성에 대한 시인의 걱정은 조금 깊어진것처럼 보인다. “시작이 보이지 않는것처럼/끝도 없을거야”라는 첫 2행이 은유하는것은 과거의 시련보다는 현재의 위기의식이다. 그러나 시인이 다지는 마음은 여전히 락관적이다. “보이지 않는 끝은/더 높이 솟아/보일 때까지 더 솟는것이야”라는 마지막 련의 표현이 그렇다. 물론 이런 시인의 락관은 “뒤돌아보면/지금 뒤돌아보이는것까지가/참으로 소중한거야” 라는 표현에서 볼수 있는것처럼 상당히 철학적인 자신감, 혹은 강력한 문화적능력이 뒤받침해주고있다. 그리고 40번 작품에서 그러한 위기극복의 다짐과 락관적인 정서는 고조를 이룬다. 비록 “떠나야 했던 걸음에/서러움 있었을망정” 즉 이민의 출발과 과정에는 고난과 시련, 그리고 그로 인한 서러움이 있었지만 “저 끝간데 없는 벌판에 피여난/복된 벼꽃파도”처럼 “저 서탑가에 정다운/‘나의 살던 고향’ 가락”처럼 이제 서러움은, 적어도 과거의 서러움은 아니며 “해빛고운 날 날마다/해빛처럼 살 일이다/여기서 고향처럼 살 일이다” 라는 표현에서 보는것처럼 우리의 삶, 공동체의 삶은 궁극적으로 락관적이라는 시인의 정서, 의식에는 변함이 없다. 50번 작품도 비슷한 정서를 드러낸다. “따스한 봄바람뿐이였다면 오늘의 이 모습/하늘아래 당당히 자랑할수 있었을가”는 오늘날 시인의 락관주의의 원인이 될것이고 “인제 또 언제까지 오늘까지 온것처럼/그냥 이대로 이럴수밖에 없을지 모르는거야”에서는 미래 공동체 운명의 불투명성에 대한 걱정과 반드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나고있다. 그리고 67번 작품에서는 다시 한번 “꽃처럼 웃으며 살아가는 일이다” 라는 마지막 시행이 의미하는것처럼 서러움 딛고 굳건히, 끈질기게 그리고 락관적으로 살아가려는 공동체의 의지가 시인의 정서에 녹아있다.
김창영에게 있어 서탑은 시련을 이겨낸 “우리”이고 “드러누운” 서탑은 이민지에 정착하고 뿌리내려 해빛처럼 밝게, 꽃처럼 웃으며 살아가는 조선족공동체의 다른 표현이다. 비록 도시화시대를 맞아 공동체의 분해라는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있는 서탑처럼 조선족공동체 또한 끝까지 버티고 살아갈것이라는것, 그리고 이런 끈기와 힘은 백수십년 시련과 고난의 력사적과정을 거쳐 형성된 정체성과 그 정체성을 결성시킨 문화적, 생활적 능력이라는 점, 이것이 김창영시인이 축조한 서탑의 상징성 혹은 이미지의 내포가 될것이다.
 
3. 돌아갈길 없는자의 서러움―향수
 
다시 돌아갈수 없는 혹은 돌아갈길 없는 고향, 이는 이민기 우리 시인들의 중요한 정서적표현이였다. 이제 이민의 제3, 제4 심지어 제5 세가 우리 민족공동체의 주류가 된 상황에서도 이러한 고향상실의 서러움 혹은 향수는 여전히 무거운 삶의 짐이 되고있다. 디아스포라의 공통된 체험이요 정서라 하겠다.
 
1) 망향과 향수의 처절함
“바다물이 마를가/그리움은 끝없어라”로 시작되는 20번 작품은 그리움을 그냥 추상적으로 표현하고있다. 그러나 간절한 소망이 탑으로 굳어졌다는 표현은 그 상징적인 의미가 단순하지 않다. 개인적인 소망을 공동체의 소망으로 승화시키고있기때문이다. 특히 “내 간절한 소망은 탑으로 굳어지고”에서 굳어졌다는 표현은 소망의 간절함을 충분히 드러냈다 하겠다. 그렇다면 이처럼 간절한 소망은 무엇이며 또 왜 그토록 간절할까?
상기 작품의 마지막 련에 나오는 “아득한 수평선 우러러/눈 먼 마음 어찌할거나?”에서도 대개는 그 소망이 고국에 대한, 혹은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임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너무 추상적이여서 그냥 “짐작”할수 있을뿐이다. 그러나 21번 작품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고국에 대한, 고향에 대한 망향 혹은 향수의 정서가 구체화되고있을뿐만아니라 대를 이어 유전되는 그리움을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의 “가고프다”와 “보고싶다”에서 화자 세대의 “그립다”로, 다시 “예서 태여나 자란 내 아들은/말없는 탑과 탑너머 저쪽산을/아버지처럼 나처럼 기억이나 할까?”라는 걱정까지를 포함한 그리움의 궁극으로 드러내고있다.
그러한 그리움, 향수는 22번과 44번 작품에 이르러 고조를 이룬다. 그리고 왜서 그러한 그리움이 그토록 절실한지를 확인시켜준다. “해와 달이 엇갈아 뜨고 져도/받아주지 않는 야속함에/돌아갈수 없는 아쉬움이 겹쳐” 가슴에 응어리지고 가시마저 끼여있다는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서러움은 력사적으로 응어리진것이다. 44번 작품에서 “서러움 하나는 하찮은것 같아도/내 가슴속 깊은 곳에 종기로 곪고 곪아 터져/닦아도 닦아도 아물길 없”다. 여기서 서러움은 바로 “아직도 남아있다 돌아갈길 없는 서러움이”라는 마지막 행에서 표현된 망향과 향수의 서러움이다. 결국 이것이다. “돌아갈수 없는 아쉬움”, 고국, 고향은 거기 그대로 있지만 세대가 바뀌고 강산마저 바뀌여 돌아갈수 없는 상황, 그것이 이민초기의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돌아갈수 없는 아쉬움”과는 또다른 “돌아갈수 없”음인것이다. 거기에서 서러움을 동반한 절실한 망향과 향수의 정서가 자라고 솟아나는것이다. 그리고 선조들의 서러움은 지금까지도 유전되여내려오고있는것이다.
 
2) 분단의 아픔을 앓는 디아스포라
돌아갈수 없는 고국에 대한, 고향에 대한 정서는 이제 고국과 고향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된다. 24번 작품에서 “탑 이쪽을 저쪽처럼 보고/탑 저쪽을 이쪽처럼 보리”라는 마지막 2행의 표현은 탑의 이쪽과 저쪽을 넌지시 고국땅의 남과 북으로 은유하고 그에 대한 화자의 관심을 드러낸다. 그리고 48번 작품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고국의 아픈 현실에 대한 가슴앓이를 드러낸다. “탑이 소근대는 소리를 들으면/온통 겨울이야기 차가움이다”라는 첫 2행의 표현에서 “겨울이야기”는 고국땅의 안타까운 현실, 가령 분단의 현실이나 분단으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가지 안타까운 사건, 사실들을 은유할것이다. “참으로 오랜 세월/그리운 고향소식 듣는것조차 죄되여”라는 중간 2행과 마지막 3행 “고향의 봄바람이 아직도/여기에 불어오지 못하기때문/아득한 기다림이여라!”에서 이를 확인할수 있다. 여기서 특히 “아득한 기다림이여라!”는 마지막 시행은 시작자아가 얼마나 고국의 “봄바람” 혹은 그리운 소식을 기다리고있는지, 말을 바꾸면 얼마나 고국의 통일이나 눈부신 발전을 기대하고있는지를 드러내고있다.
시인의 향수속에 남북분단의 현실이 얼마나 가슴아프게 인각되여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51번 작품이다. 서탑아래서 귀를 기울이면 정답게 속삭이는 조선팔도 말씨, 사투리의 말잔치를 즐겁게 들을수 있고 친구하며 다정하게 지내지만 고국에 가면 서울과 평양, 각각 저들끼리 논다는것이다. 그 안타까운 마음은 “서울 평양 두분 특별 손님 모셔와/함께 더불어 사는 모습 보여주면 좋을까 몰라”라는 마지막 2행에서 잘 드러난다.
62번 작품에 가면 이런 분단의 아픔에 대한 가슴앓이는 남북통일에 대한 열망으로 승격된다. “한라에서 백두 가는 길/언제면 열릴까나?”라는 첫 2행의 상징적의미는 구태여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거니와 시적자아는 남북통일의 위업을 그냥 열망에 그친것이 아니라 “꽃피는 탑의 고향에/한라 백두의 얼” 심고 “금강 설악의 혼 살리자”고 호소한다. “버려진 신세여도/버릴수 없는 그곳”이기때문이며 또 상기 51번 작품에서 확인된 “탑이 낸 길”, “탑의 마음따라”, 즉 남북에 고향을 둔 조선족들이 “친구하며 다정하게 지”내는 공동체의 지혜를 모아 고국의 통일에 힘을 보태겠다는것이다. 물론 조선족공동체가 생존하며 쌓은 지혜가 남북통일에 충분히 귀감이 될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수십년간 얽히고설킨, 얼음처럼 얼고 돌처럼 굳어진 남북의 마음을 깨치고 녹여낼 힘이 우리에게 과연 있는지는 더러 의심되기도 하지만 시적자아의 소원과 열망, 그 소원과 열망의 간절함은 인정하지 않을수 없겠다.
고국과 고향에 대한 사랑, 그리움의 처절함은 49번 작품에서 다시 확인할수 있다. “아득한 외로움이여/아리랑 열두고개 불러 부르다/목까지 쉬여” 노래가락마저 쉴 정도로 시적자아는 그리움에 몸을 태운다. 그리고 “아지랑이 춤추는 봄날/봄의 노래는/가슴속에 묻어두었다”고 절규한다. 디아스포라의 슬픔이요 한맺힌 외로움이 여기에 있을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내기 어렵겠지만 보수적으로 짐작해도 조선족의 반수 정도가 한국에 다녀왔다고 볼수 있다. 그렇다면 고향에 “돌아갈길 없는 서러움” 혹은 최초의 이민으로 유발된 향수병은 기본적으로 해소되였다고 볼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것은 큰 착각이다. 미처 조상의 고향에 가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백년이상 유전되면서 오늘까지 내려온 “향수병”을 해소하기 위해 다녀온 고향이 사실상 상상속의 고향이 아니기때문이다. 고국도 변했지만 우리도 변했고 따라서 유전적으로 내려온 “향수병”은 어쩌면 영원히 치유될수 없는 디아스포라의 슬픔이 되고말았는지도 모른다.
다른 측면에서 망향과 향수, 고국의 분단을 아픔으로 앓는 마음은 사실상 조선족의 정체성의 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 항의 상징성 혹은 이미지 또한 앞항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공동체의 정체성 확인, 혹은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기확인의 의미가 될것이기때문이다.
 
4. 탑의 또 다른 이미지―삶의 진리의 상징
 
지금까지 우리는 서탑의 민족적상징의 문제에 대해 론의해왔다. 비록 련작시의 중심의제 혹은 핵심적인 주제가 공동체의 삶에 대한 관심인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한정된것은 아니다. 시집에서 서탑은 민족적상징의 문제외에도 일부 인류공동의 삶의 문제를 상징하기도 한다. 시인이 비록 서탑을 주로 조선족공동체의 상징체계로 인식하고있는것은 사실이지만 시인은 조선족공동체의 구성원이기 이전에 한 인간, 즉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와 의식을 가진 개체이기도 하기때문이다.
 
1) 력사의 무게감과 삶의 허무 그리고 달관
시인의 이러한 개체적인식 혹은 보편적인 가치는 력사의 무게감과 삶의 허무에 대한 정서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11번 작품에서 화자는 “스님들 떠나고/탑은 말이 없다”고 하고는 “내 눈에 보이는건/빈 하늘뿐”이라 하여 력사의 무게와 삶의 허무의식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허무는 공허나 상실감은 아닌것 같다. “내 마음 하늘처럼 비여/바람 한점 일지 않는/호수인양 고요하느니”에서는 삶의 공허나 역사의 허무함이 상실감으로가 아니라 달관적인 세계인식에 이르고자 하는 의식의 방향이 엿보인다. 그러나 첫 련을 거의 그대로 중복한듯한 마지막 련의 “이제 더는/탑도 없고/스님도 없어라” 라는 표현은 허무의식이 또다시 강화되면서 이른바 우주적인 괴로움을 드러내고있다.
이러한 허무의식이 불교적세계관과 닿게된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인지도 모른다. 14번 작품에서 이점은 잘 드러난다. “비우고서 있는듯 없는듯/서있는 일/누운듯이 서있는 일”이라는 마지막 3행의 표현은 “심즉공”이나 “시즉공”처럼 비움과 무위를 추구하는 불교적세계관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그것이 “탑에서 눈길 거두고/마음에서 탑을 비우는 일이란/탑의 그 공간에/나를 세우는 것이다”라는 첫 4행의 의미와 서로 호응하여 집착을 버려야 무위정적(無爲靜寂)에 이를수 있다는 불교적가치, 어쩌면 달관의 경지에 대한 화자의 인식을 보여준것이라 할수도 있다. 25번 작품에서는 그러한 시인의 인식이 인간의 인식의 한계, 인간관계의 측면에까지 확대된다. 마음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읽지 않는다면 대상을 보지도, 읽지도 못할것이거니와 대상의 뒤켠에서 대상의 마음을 읽는 다른 마음이 있다는것은 더구나 알지 못한다는것, 그 마음의 눈이란 바로 무위나 달관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시인의 달관에 대한 인식, 삶에 대한 가치추구는 33번과 35번 작품에서도 불교적인 가치관과 겹쳐지면서 어떤 깨달음, “돈오(頓悟)”의 경지를 드러낸다. 33번 작품의 “미미한것 하나 하나도/해빛같은 귀중한 존재임을/조용히 일깨운다” 라는 표현에서 읽을수 있고 35번 작품에서는 “내 생각의 천만갈래 길들이 알고보니/내가 걸은 그 단 한갈래로 이어진것을”이라는 다분히 철학적인 상징으로 표현된다. 물론 이런 시인의 인식은 “탑”과 항상 련관성을 가진다. “그곳 내 생각의 끝마다에/탑 하나씩 서있을까?”가 그렇다.
달관에 이르고자 하는 시인의 집착 혹은 명상은 38번 작품에 이르러 다시 그 경지가 무엇인지를 확인해준다. “눈뜨고 하늘 올려다보면/참으로 높아보이나/눈감고 느끼면 내 손/하늘에 닿아있는것처럼”에서는 앞에서 언급했던 “마음의 눈”의 법칙을 재확인하고있고 “탑도 없고 하늘도 없고/나도 없어라” 라는 마지막 2행의 표현은 인간이 무에서 왔다가 무에로 되돌아가는 세상의 섭리를 상징할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은 “내 서탑가를 거닐다가 잠간 멈춰서서/그대 우러러 생각한것은/그대 딛고 선 이 땅의 기운과 하나되여/머리우 하늘에 닿아 마침내” 라는 불교적 명상을 통해 얻어진것처럼 보인다. 56번 작품에서 “언제 또 허물어지는 일 있더라도/리유도 묻지 말고 서러워도 말자/눈감고 생각마저 비우고/나마저 있는듯 없는듯, 또 무엇이 필요한가” 라는 첫 련의 상징성은 여전히 “공(空)”이라는 불교적세계관과 닿아있다.
결국 시인은 비움, 무위 등 불교적인 가치를 통해 달관의 경지를 실현할수 있다고 인식하고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탑의 묵묵부동에서, 탑의 불교적의미에서 명상을 통해 얻어진것처럼 보인다.
 
2) 일상탈출의 욕구
“공”이나 “무위”에 대한 가치인식에도 불구하고 현대문명의 끊임없는 유혹은 쉽사리 떨쳐버릴수 없는 모양이다. 물론 현대인의 삶은 문명의 추구와 탈출의 욕구라는 두가지 서로 모순된 정서를 배태하고있다는 사실을 상기살 때 이것 또한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먼저 17번 작품에서 밤과 낮이 바뀐 현대인의 삶은 상당정도 비판적인 시각에서 표현되고있다. “낮달이 눈물을 떨군다” 라는 표현이 그러한 시적자아의 정서를 대변해준다. 그리고 19번 작품에서는 그러한 문명비판의 정서가 일상탈출의 욕구와 비움과 무위에의 추구로 비약한다. 여기서 “가끔은 이사하는 생각을 가져본다”는것은 일상탈출 즉 현대문명에 대한 피로감을 드러낸것이 분명하다. 흔히 이런 류형의 일상탈출의 욕구는 그냥 욕구에 그치거나 잠시적인 일탈의 욕구로 변질하기도 하지만 김창영시인의 일상탈출은 “빈 공간 빈 터 찾아” “이사길에 버리고 버려/말끔히 비여서 마침내 가벼워진 마음”이라는 표현에서 확인할수 있는것처럼 “자기비움” 혹은 “무위”의 경지를 가상목표로 한다. “내 터는 따로 없다”는것은 속세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경지가 되기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이 애초에 정해놓은듯한 경지와는 달리 현대의 문명은 끊임없이 시인을 유혹한다. 46번 작품에서 “과욕이 한껏 부풀은 내 마음”이나 88번 작품에서 “무엇엔가 자주 흔들리는 내”가 그렇다. 그러나 화자의 이러한 세속적인 욕구, 현대문명의 대표적인 욕구인 물질에 대한 유혹은 동시에 탑의 “주어진 고만한것에 참으로 만족하는” “당당한 너의 모습”에 의해 제어되고 억제된다. “이제라도 값 따지지 말고 저당잡혀야 겠다”는 마음다짐이나 “더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흔들릴 때까지 흔들리기로 한다” 라는 자기 검증은 그러한 시인의 의지를 대변할것이다.
그러니까 김창영시인에게 있어 서탑은 공동체의 상징으로서만이 아니라, 탑이라는 보편적인 이미지로서도 중요한 시적인 상관물이 된다는 말이 되겠는데, 여기서 비움이나 무위라는 불교적인 가치관은 시인이 달관에 대한 인식을 대표하는 경지가 될것이다.
 
6. 마무리
 
전체적으로 김창영의 《서탑》 련작시에서 서탑은 우리의 선조들과 우리 자신들마저 포함한 이주민을 상징한다. 이주민의 력사적기억, 돌아갈수 없는 고향에 대한 향수, 심지어 일상의 탈출욕구와 우주적외로움마저 탑은 받아준다. 서탑의 상징적인 의미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도 하고 자랑스럽게도 하며 때로는 슬프게도 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99편의 시작품을 여러해를 두고 쓰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시인의 립장이나 주제의식은 거의 변화가 없다. 이 시들을 쓰기 시작한 동기가 오랜 세월 시인의 의식속에서 발효되다가 련작시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고 볼수가 있다. 하지만 무르익은 주제의식이라는 측면에서는 장점이 되기도 하겠지만, 시를 쓰면서 더러 의식의 변화가 있음직하기도 한데 너무 변화가 없다는것은 오히려 약점이 될수도 있다. 혹 력사의 무게를 담아내겠다는 시인의 강박의식이 주제의식의 변화를 제약한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더러 여유를 가지고 좀더 가벼워진 마음, 열린 마음으로 서탑의 새 력사를 쓸수는 없을까 기대해본다.
본고의 서두에서 김창영의 시는 된장이나 김치처럼 소박하면서 깊은 맛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소박하다는것은 다른 말로 하면 단순하다는 표현도 가능하여 약점이 될수도 있다. 화려함에 흔히 동반되는 거추장스러운 군더더기를 제거했다는 측면에서는 장점이 되지만 현대시의 많은 표현기교들이 결여되여있다는 측면에서는 약점이 될수도 있는것이다. 현대시의 핵심적인 특징은 이미지의 전략적인 사용이다. 리성적인 주제발굴로서는 도무지 불가능한 창조적의미들이 시인의 감성을 통해 시인자신마저 감지하지 못하는 중에 드러날수 있는것이 바로 이미지즘의 장점이 아닐까 한다. 물론 기교라는것은 필수라기보다 선택의 문제가 되지만 오늘의 수준을 넘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다는 의미에서는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료동문학>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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