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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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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57
2015년 02월 11일 15시 50분  조회:1761  추천:0  작성자: 죽림

 

561□가상현실□김영무, 문학동네 시집 53, 문학동네, 2001

 고통은 그것이 몸의 것이든 마음의 것이든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 이 시집 속에는 고통이 가득 차있다. 그리고 그 고통이 만드는 시각의 깊이도 들어있다. 많은 시들이 군더더기를 달고 있지만, 그런 군더더기 안에 세상을 보는 일정한 시각이 담겨있다는 것은 그런 군더더기를 사소한 것으로 만든다. 많은 시들이 안이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은 아무나 갖기 힘든 것이다. 주제를 자꾸 우회시키는 군더더기를 깎아내는 노력이 필요한 시집이다.★★☆☆☆[4337. 5. 28.]

 

562□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박철, 문학동네 시집 50, 문학동네, 2001

  많은 시들이 자신의 비애를 돌아보면서 삶의 의미를 반추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 시집 역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에 빠져 어디까지 얘기를 해야 그 측은함 내지는 성찰이 절절하게 잘 드러나는가 하는 것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감상과 감동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런데 측은하게 바라보는 자신의 처지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가 하는 것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역사의 전망을 잃은 것에서 오는 것인지, 문명의 맹목성과 냉혹성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시간의 허무에서 오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방향도 없이 그곳에 그대로 머물러선 것 같은 지루함을 준다. 한자는 혹이다.★★☆☆☆[4337. 5. 28.]

 

563□빈 나무 밑을 지나가다□김강태, 문학동네 시집 73, 문학동네, 2003

  시가 일상 속에서 나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고 현실 감각을 갖는 가장 중요한 근거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상이 전부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자잘한 체험이 시가 되려면 그것이 분명한 이미지를 타고 시의 수면위로 떠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의미망이 독자와 같은 지평 위에 있어야 한다. 그저 내 체험의 진정성만 강조된다면 시가 될지언정 독자의 공감을 얻는 좋은 시가 되기는 어렵다. 이 시집의 아주 많은 시들이 체험의 특수성에 그대로 묶여서 공감을 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것은 이미지에 매달려서 의미를 강제로 짜 맞추었기 때문이다. 생각 속에 떠오르는 모든 이미지가 시가 된다고 믿는 것은 어찌 보면 시인의 부지런함일 수 있지만, 그것이 그대로 모두 시가 된다고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한 것이다. 한자는 곳곳에서 덜그럭거린다.★☆☆☆☆[4337. 5. 28.]

 

564□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김충규, 문학동네 시집 70, 문학동네, 2003

  시상도 좋고 구성력도 좋은데, 어떤 한 가지가 시에 흠집을 내고 있다. 그것은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한껏 역기를 들어올린 선수에게는 먼지 하나가 한계일 수 있듯이 그 사소함이 전체의 균형을 허무는 법이다.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과 시각이 아주 독특하다. 그것이 시를 빛나게 한다.

  그러나 이미지를 해석하는 영역이나 범위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한 이미지가 갖고 있는 영역을 벗어나면 어쩐지 무리한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것을 줄이기 위해서는 될수록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연결고리를 보여주거나 그것의 관계를 보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시집의 앞부분에서 많은 시들이 그러한 무리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이 시집의 단점이다. 그 다음에는 세계의 해석에 대한 문제로 가겠지만, 그 후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독특한 상상력의 작용이 갖는 그 무리를 없애는 것이 급선무이다. 한자는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4337. 5. 28.]

 

565□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이병률, 문학동네 시집 71, 문학동네, 2003

  티 하나 없이 문장을 다듬는 솜씨는 아주 뛰어나다. 상황에 걸맞은 말을 골라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재주도 좋다. 그런데 시집을 통독하고 나면 정서가 꽤 모호하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이것은 체험의 특수성에 묘사력을 집중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사람은 누구나 경험의 특수성이 있고, 그것을 시로 쓸 때 자신의 독특한 개성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시로 써서 그 특수성이 개성으로 승화되는 수가 있고, 특수성이 그대로 특수한 감정으로 남는 수가 있다. 이 경우에는 개성이 곳곳에서 돋보이기는 하지만, 아직 특수성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주 불편하게 한다. 문장이 말할 나위 없이 매끄러운데도 계속 몽롱한 기분이 남는 것은 이런 점 때문이다. 따라서 감정을 좀 더 분명히 정리해서 그것에 알맞은 이미지를 묘사하는 데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자는 그런 모호함을 부채질하기도 한다.★★☆☆☆[4337. 5. 31.]

 

566□이서국으로 들어가다□서림, 문학동네 시집 8, 문학동네, 1995

  한 지역의 역사가 시와 만나는 일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라는 점에서 지역과 지역사를 시로 담으려는 노력은 가히 칭찬 받을 만한 일이다. 그런데 역사라는 어떤 관념과 사실의 조합이 시속으로 들어올 때 과연 어떤 형태이어야 하며 어떤 정서로 살아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하지 않으면 왕왕 역사는 그저 말장난에 지나지 않게 된다. 내가 사는 지역의 오래 전 역사를 현실의 삶 속에서 읽어내려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현실의 어떤 모습을 역사상의 사실로 확정하는 것은 역사 해석의 문제에서도 민감한 것이지만, 어쩐지 억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시는 정서를 전달해야 하는 갈래이기 때문에 사실에서 이런 틈을 만들어놓으면 그 정서조차도 애매하게 되는 수가 많다. 역사가 한자에 의존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시에서 그럴 필요는 없다.★★☆☆☆[4337. 5. 31.]

 

567□그리운 남풍□도광의, 문학동네 시집 74, 문학동네, 2003

  시에서 치열함이란 삶의 진리에 대한 탐구와 연관이 있다. 그 절실성과 그치지 않는 의문에서 시는 반짝임을 드러낸다. 그런 치열함이 사라지면 긴장 역사 사라져 세상을 보는 안이한 눈만이 남는다. 그때 나오는 시는 이미지가 만들어가는 일종의 관성만 있을 뿐 이미지의 신선함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해서 시가 꼭 새로운 것을 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든 뒤에도 그 나이가 깨달은 내용은 치열함 뒤로 숨지만, 숨은 그 느낌이 치열함의 마그마가 되어 시의 밑바닥에서 돌아다닌다. 이 마그마가 없으면 그야말로 늙은 시다. 이 시집은 그런 늙음의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시인의 나이 문제가 아니다.★☆☆☆☆[4337. 5. 31.]

 

568□딸기□원재훈, 문학동네 시집 75, 문학동네, 2003

  시를 참 깔끔하게 잘 쓰는 시인이다. 펴야 할 곳에서 펴고 오므려야 할 곳에서 오므리는 것은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재주가 시의 전체 수준을 고르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하는 버릇이 시를 풀어지게 하고 있고, 풀어진 긴장 때문에 시가 길어지고, 그런 까닭에 마치 수필처럼 되었다. 이것은 필요한 말에 비해 너무 많은 말들이 동원되고 있다는 뜻이다.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놓는 것도 시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긴장이 풀어지는 단계까지 나가면 안 된다.★★☆☆☆[4337. 5. 31.]

 

569□고인돌과 함께 놀았다□윤희상, 문학동네 시집 43, 문학동네, 2000

  시가 아주 깔끔하다. 그 깔끔함은 시가 짧은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방법에서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특징은 다른 시에서 볼 수 없는 이 시인만의 특징이다. 자신만의 특징을 갖추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시인이 될 자질을 갖춘 셈이다. 사물을 통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묘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잘 아는 시인이다.

  그런데 순간의 긴장이 조금만 늦춰지면 이런 시들은 말장난으로 전락하기 쉽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감수성을 면도칼처럼 날카롭게 세워놓는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평생을 살다가는 미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타협할 수밖에 없는데 바로 그런 속성 때문에 시집의 절반은 상투화된 묘사에 그친다. 어차피 할 말을 절제할 것이면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의식한 것이 아니라면 너무 일찍 나온 시집이다. 한자 역시 의식할 필요가 없는 물건이다.★★☆☆☆[4337. 5. 31.]

 

570□먼지 속 이슬□박찬, 문학동네 시집 47, 문학동네, 2000

  묵은 세월이 새 세월을 당하여 빛을 발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불교의 주제는 이미 조선시대 내내 선사나 선비들이 한 마디씩 다 한 것이다. 이것이 하필 이 시대에 시의 옷을 입고 나타나려면 그럴 수밖에 없는 내면의 조건이 있어야 한다. 그런 성숙된 고민 없이 내던지는 화두는 사구일 뿐이다. 활구가 아닌 것을 보여주지 못하면 그것이 사구가 아니겠는가? 한자까지 등장한 깨달음의 세계는, 그렇게 보겠다면 말릴 필요는 없겠지만, 오늘 필요한 세계라고 보기 어렵다. 시는 오늘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4337.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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