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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 윤동주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The Road / Translated by Mark Peterson
I lost it. I don't know where or even what it was. So, with my hands fumbling through my pockets, I walk down the road.
Stones, and stones, and stones without end The road coursed along the stone wall.
The iron gate in the wall was closed tight As the wall cast its long shadow over the road.
The road ran from morning to evening And from evening to morning.
Finding my way along the wall, a teardrop falls. I look up to see the heavens are embarrassingly blue.
Not one weed has sprouted on the dirt road Because I am left over there, beside the wall.
That I am living is only Because I am going to find that which I lost.
바람이 불어 / 윤동주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理由)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理由)가 없을까,
단 한 여자(女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時代)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The Wind Blows / Translated by Mark Peterson
From where does the wind blow, and Where is it blowing next?
The wind is blowing, but There is no reason for my anxiety.
Is there no reason for my anxiety?
I have not loved even one woman. I have no sadness for these times.
The wind blows often, but I am standing on bedrock.
The rivers still flow, but I am standing on the top of the hill.
사랑의 전당 / 윤동주
순아 너는 내 전(殿)에 언제 들어왔든 것이냐? 내사 언제 네 전에 들어갔든 것이냐?
우리들의 전당은 고풍(古風)한 풍습이 어린 사랑의 전당
순아 암사슴처럼 수정눈을 나려감어라. 난 사자처럼 엉크린 머리를 고루련다. 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
성스런 촛대에 열(熱)한 불이 꺼지기 전 순아 너는 앞문으로 내달려라.
어둠과 바람이 우리 창에 부닥치기 전 나는 영원한 사랑을 안은 채 뒷문으로 멀리 사라지련다.
이제 네게는 삼림 속의 아늑한 호수가 있고 내게는 험준한 산맥이 있다.
The Palace of my Love / Translated by Mark Peterson
Suun! When was it that you came to my palace? When was it that you entered the inner chambers of the palace?
In this our palace Our young love was like those of antiquity.
Suun!, look down with your doe-like eyes of crystal And I will raise my shaggy, lion-like mane
Our love was like a word spoken by a deaf mute.
Before you blow out the heat of this holy candle Suun!, take a look from out the side door. The darkness and wind are closed out As if embracing this eternal love They are long kept outside the backdoor and disappear.
And now, to you there is a vast lake in a rich forest And to me there is a great mountain range.
슬픈 족속 / 윤동주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Our Sad Clan / Translated by Mark Peterson
White is the cloth we use to wrap around our black hair; White is the color of the rubber shoes we wear.
White is the jacket and skirt that clothes our bodies; White is the belt that ties it all together around our waists
애기의 새벽 / 윤동주
우리 집에는 닭도 없단다. 다만 애기가 젖달라 울어서 새벽이 된다.
우리 집에는 시계도 없단다. 다만 애기가 젖달라 보채어 새벽이 된다.
The Baby’s Daybreak / Translated by Mark Peterson
At our house We don’t have any chickens. Only The baby crying out for milk Tells that it is daybreak.
At our house We don’t have a clock. Only The baby chiming out for milk Tells that it is daybreak.
귀뜨라미와 나와 / 윤동주
귀뜨라미와 나와 잔디밭에서 이야기했다.
귀뜰귀뜰 귀뜰귀뜰
아무게도 아르켜 주지말고 우리둘만 알자고 약속했다.
귀뜰귀뜰 귀뜰귀뜰
귀뜨라미와 나와 달밝은 밤에 이야기했다.
The Cricket and Me / Translated by Mark Peterson
The Cricket and me Are talking in the grass.
Chir chir Chir chir
You must not tell anyone We promised that only we would know.
Chir chir Chir chir
The cricket and me We talk in the night of the bright moon.
The Cross 십자가
The sunlight is chasing after 쫓아 오던 햇빛인데 The pinnacle of the church 지금 교회당 꼭대기 Which is hung at cross.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A very high pinnacle,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How could someone climb up that high?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The sound of the bell is Quiet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So I whisper in wandering. 휘바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The agonized man, 괴로웠던 사나이 As if he is jesus christ Happily 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처럼 Will shed blood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Under the darkening sky Like flowers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After his neck is broken.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Who was crucified at the cross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사랑스런 추억 / 윤동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으로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트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차가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Loving Memory / Translated by Mark Peterson
On a morning when spring came, at a small train station in Seoul I waited for a train like waiting for hope or love.
With long crisp shadows stretching across the platform I lit up a cigarette.
My shadow lifts the shadow of the floating smoke. A flock of pigeons, without a sense of shame, Fly into the glaring sunlight.
The train, without any news, Carries me far away.
Spring now gone, in a quiet rented room on the outskirts of Tokyo, longing as for love or hope, I am left at an old crossroads.
Today, too, without any meaning several trains have come and gone.
Today, too, as if waiting for someone at the station, I hold my vigil on the nearby hill.
-- oh, youth has long left me behind.
소년 / 윤동주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씻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1939)
A youth / 윤동주
Falling down the blue autumn all around as maple leaves are. Preparing for spring at every place that the leaves cone from, the sky becomes unfolded above the branches. His eyebrows are already dyed blur while looking up the sky. With feeling his warm cheeks with his hands, the blue print is on the hands. Looking into the palm of his hands again.With a clear river flowing in the lines of the palm, a face as sad as his love appears up in the river---the pretty Soon-hee. Even with colsing his eyes in illusion, the river continues to flow, with the eyes being still filled with the face as sad as the love---the pretty Soon-hee.
The Cross 십자가
The sunlight is chasing after 쫓아 오던 햇빛인데 The pinnacle of the church 지금 교회당 꼭대기 Which is hung at cross.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A very high pinnacle,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How could someone climb up that high?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The sound of the bell is Quiet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So I whisper in wandering. 휘바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The agonized man, 괴로웠던 사나이 As if he is jesus christ Happily 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처럼 Will shed blood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Under the darkening sky Like flowers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After his neck is broken.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Who was crucified at the cross
서 시/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Prelude
yoon, dong-ju
Looking up at the sky Until the last moment of my life, I wish I were not ashamed of any spdt in my life. I felt pain even when the wind was touching the leaf.
I must love all dying things With my heart of singing the stars, And I will walk the path given to me.
The stars are touched by wind tonight, too.
Sad Family
Yoon, Dong - Ju
The white towel covers the black hair The white rubber shoes protect the rough feet.
The white skirt hangs on the sorrowed body The white belt accentuates the thin waistline.
슬픈 족속/윤동주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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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의 특징 - 부끄러움의 미학
실상 윤동주의 시에는 많은 부끄러움의 증상이 드러나고 있다. 그의 이러한 부끄러움은 대부분 '욕됨/미움/괴로움'등의 정감과 공유적 정서로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부끄러움의 결벽증은 스스로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과 반성, 그리고 그에 따르는 자기 혐오와 연민의 순수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산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로 시작되는 "자화상"에서 보여 주는 '미움/가엾음/그리움'의 변증법적 자기 인식과 사랑은 윤동주의 순결벽이 빚어낸, 청순한 젊음의 고뇌와 생래적 부끄러움의 변용적 실체인 것이다. 이처럼 윤동주의 시는 실향 의식과 상실감에서 모티브가 비롯되며, 존재론적 자기 인식과 정서에서의 변증법적 고뇌가 순결벽과 충돌하는 데서 부끄러움이라는 시적 정서의 실체를 획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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