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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시
2015년 02월 24일 21시 28분  조회:2749  추천:0  작성자: 죽림

개구리네 한솥밥 

- 백 석 


옛날 어느 곳에 개구리 하나 살았네 
가난하나 마음 착한 개구리 하나 살았네 

하루는 이 개구리 
쌀 한 말을 얻어 오려 
벌 건너 형을 찾아 길을 나섰네 

개구리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가 도랑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닁큼 뛰어 도랑으로 가보니 
소시랑게 한 마리 엉엉 우네 

소시랑게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보았네 
"소시랑게야, 너 왜 우니?" 

소시랑게 울다 말고 대답하였네 
"발을 다쳐 아파서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소시랑게 다친 발 고쳐 주었네 

개구리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 아래 논두렁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닁큼 뛰어 논두렁에 가보니 
방앗다리 한 마리 엉엉 우네 

방앗다리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보았네 
"방앗다리야, 너 왜 우니?" 

방앗다리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길을 잃고 갈 곳 몰라 운다" 

개구리 바쁜 길 잊어버리고 
길 잃은 방앗다리 길 가르켜주었네 

개구리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 복판 땅구멍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닁큼 뛰어 땅구멍에 가보니 
소똥굴이 한 마리 엉엉 우네 

소똥굴이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보았네 
"소똥굴이야, 너 왜 우니?" 

소똥굴이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구멍에 빠져 못 나와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구멍에 빠진 소뚱굴이 끌어내줬네 

개구리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섶 풀숲에서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닁큼 뛰어 풀숲으로 가보니 
하늘소 한 마리 엉엉 우네 

하늘소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보았네 
"하늘소야, 너 왜 우니?" 

하늘소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풀대에 걸려 가지 못해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풀에 걸린 하늘소 놓아주었네 

개구리는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 아래 웅덩이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닁큼 뛰어 물웅덩이 가 보니 
개똥벌레 한 마리 엉엉 우네 

개똥벌레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보았네 
"개똥벌레야, 너 왜 우니?" 

개동벌레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물에 빠져 나오지 못해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물에 빠진 개똥벌레 건져 주었네 

발 다친 소시랑게 고쳐주고 
길 잃은 방앗다리 길 가리쳐주고 
구멍에 빠진 소똥굴이 끌어내주고 
풀에 걸린 하늘소 놓아주고 
물에 빠진 개똥벌레 건져내주고 
착한 일 하느라고 길이 늦은 개구리 

형네 집에 왔을 때는 날이 저물고 
쌀 대신에 벼 한 말 얻어서 지고 
형네 집을 나왔을 땐 저문 날이 어두워 
어둔 길에 무겁게 짐을 진 개구리 
디퍽디퍽 걷다가는 앞으로 쓰러지고 
디퍽디퍽 걷다가는 뒤로 넘어졌네 

밤은 깊고 길은 멀고 눈앞은 캄캄하여 
개구리 할 수 엇이 길가에 주저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하늘소 윙하니 날아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무거운 짐 지고 못 가 걱정한다" 

그랬더니 하늘소 무거운 짐 받아 지고 
개구리 뒤따랐네 

무겁던 짐 벗어 놓아 개구리 가기 좋으나 
길 복판에 소똥 쌓여 
넘자면 굴러지고 돌자면 길 없었네 
개구리 할 수 없이 길가에 주저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소똥굴이 휑하니 굴러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소똥 쌓여 못 가고 걱정한다" 

그랬더니 소똥굴이 소똥더미 다 굴리어 
막혔던 길 열리었네 

막혔던 길 열리어 개구리 잘도 왔으나 
얻어 온 벼 한 말을 방아 없이 어찌 찧나? 
방아 없이 어찌 쓸나? 
개구리 할 수 없이 마당가에 주저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방앗다리 껑충 뛰어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방아 없이 벼 못 찧고 걱정한다" 

그랬더니 방앗다리 
이 다리 찌궁 저 다리 찌꿍 
벼 한 말을 다 찧었네 

방아 없이 쌀을 찧어 개구리는 기뻤으나 
불을 땔 장작 없어 쓸은 쌀을 어찌하나 
무엇으로 밥을 짓나! 

개구리 할 수 없이 문턱에 주저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소시랑게 버르륵 기어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장작 없어 밥 못 짓고 걱정한다" 

그랬더니 소시랑게 폴룩폴룩 거품 지어 
흰 밥 한 솥 잦히었네 

장작 없이 밥을 지은 개구리는 좋아라고 
뜰악에 멍석 깔고 모두들 앉히었네 

불을 받아 준 개똥벌레 
짐을 져다 준 하늘소 
길을 치워 준 소똥굴이 
방아 찧어 준 방앗다리 
밥을 지어 준 소시랑게 
모두모두 둘러앉아 
한솥밥을 먹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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