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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 모음
휘파람
오늘 저녁에도 휘파람 불었다오
복순이네 집앞을 지나며
벌써 몇 달채 휘파람 부는데
휘휘… 호호…
그리도 그는 몰라준다오
날마다 직장에서 보건만
보고도 다시나 못볼 듯
가슴 속엔 불이 붙소
보고도 도 보고 싶으니
참 이 일을 어찌하오
오늘도 생긋 웃으며
작업량 三백을 넘쳤다고…
글쎄 三백은 부럽지도 않아
나도 그보다 못하진 않다오
그래도 그 웃음은 참 부러워
어찌면 그리도 맑을까
한번은 구락부에서
나더러 무슨 휘파람 그리 부느냐고
복순이 웃으며 물었소
난 그만 더워서 분다고 말했다오
그러니 이젠 휘파람만 불 수 밖에…
몇 달이고 이렇게 부노라면…
그도 정녕 알아 주리라!
이 밤도 이미 늦었는데
나는 학습 재료 뒤적이며
휘휘… 호호…
그가 알아줄가?
(조기천, 1947.9. <조기천선집> 中/)
서운한 종점
헐떡이며 내닫는 것은 너뿐이랴
가까이 다가올수록
벅차만지는 나의 숨결,
미역내 구수히 풍겨오고
동백꽃 붉게 타는
남쪽바다가
그리운 내 고향은 이 길 따라
부산으로도 가지
려수로도 가지
기관차야!
숨죽이지 말고
그대로 가자꾸나
덜커덩 선 다음
왜 꿈쩍도 않느냐
달려오던 그 기세 어따 두고
너도 안타까우냐
들이 울어쌓는 기적소리
김빼는 소리
여기가 오늘의 종점이란다
꿈에서 깨여난 사람처럼
나는 또 짐을 내려야 하나
한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워진 이곳이
무척 반갑기는 하다마는
다시 천근추에 매여달리듯
홈에 돌처럼 우뚝 서
남쪽하늘을 바라본다
내 이곳에서 우선 행장을 펴
네 앞길을 닦으며
손꼽아 기다리리니
하루속히 가자꾸나
너, 나와 약속한
남으로 뻗친 지향을 싣고…
(조벽암, 1956 <해방 후 서정시 선집> 문예출판사 1979.10.)
사랑의 향기
배가 들어 온다 ― 누군가 웨치는 소리
언뜻 머리 들어 바라보니
풍어의 기폭속에서 환히 웃는 젊은이의 얼굴
처녀의 가슴에 해'님처럼 안겨 오네
할복공들 틈에서 일'손 거들던 처녀
로라 밑에 남몰래 감춰 둔
싱그러운 꽃다발 가슴에 안으니
자꾸만 숙어지는 얼굴 붉어만 지네
드르릉… 돌아 가는 로라 소리
처녀의 가슴에서도 드르릉…
님을 반겨 맞아 들이는
마음의 문 열리는 소리
하늘과 바다의 복을 거느린양
저녁 노을에 떠밀려 오는
총각의 시원스런 걸음이여
그 걸음 맞는 수줍은 얼굴이여
심장의 깊은 곳에 고이 간직한 순정
한 묶음의 꽃에 담아 들이기에는
너무도 작은 꽃다발 이언만…
꽃향기에 묻힌 처녀의 순정이여
티 없이 맑은 사랑의 향기여
송이송이에 함뿍 담김 너의 마음
어서 젊은이 불타는 가슴에 안겨 주어라.
(김규만, <청년생활> 1964)
달리면 서울길은 한나절인데
가슴 아프구나
이 대로 달리면 서울 실은 한나절인데
내 어찌 동창 마을에 발동을 멈추고
벅찬 숨'결 억눌러야 하느냐
저 삼각산 밑에 내 집이 있다.
내 손으로 지붕을 얹은 단간 초막
아침 저녁 여닫던 싸리문 활짝 열고
성큼 들어 서야 할 집이 저기에 있다.
저 삼각산 밑엔 내 어머니가 있다
총을 메고 집을 떠날 때
막바지 길을 따라 나오며
이기고 어서 돌아 오라 바래 주던 어머니
백발이 얹혀도 살아서 기어이
이 아들을 만나려고 저기에 산다
차체에 새겨진 붉은 별 하나로도
몇 백 몇 천 번을 오갔으련만
작별의 그 날, 그 말이 가슴에 옹이로 박힌
십여 년이 지나도록 풀지를 못 했다.
달리자, 나의 자동차야
승승장구 달려 온 사랑하는 통일호야
차체에 빛나는 이 별들이 아직 모자란다면 ]
내 어머니 바라 보실
북녘 하늘의 별들을 따다
빈틈 없이 차체에 새겨 넣으리라
꿈'결에도 핸들을 남을 돌려
눈에 더욱 훤히 익혀진 서울 길로
내 선참으로 질풍처럼 달려 갈
그 날을 위해
달리고 또 달리자
(김재화, <조선문학> 1965. 9기에 실림)
문풍지 우는 소리
구들장이 얼음장같은 행랑방
사정없이 몰려드는 설한풍에
문풍지 목놓아 울던 밤,
어머니는 나를 낳았다.
기쁨보다도
설음과 걱정을 받아안은 어머니
따뜻한 국 한술 들지 못한 채
눈물만 삼키었다.
아, 저주롭던 그 밤
내 울음소리 얼마나
어머니의 가슴을 허비였으랴
생의 첫울음을 눌러버리며
스산하게 울던
아, 그날의 문풍지소리, 문풍지소리 ―
그 소리 자장가 대신 들으며
나는 모진 생명을 지꿏게 이어왔어라.
이름도 없이,
꿈도 없이…
해종일 손발이 퉁퉁 얼어붓도록
빨래를 한 어머니의 치마자락을 잡고
밥달라 내 철없이 조르다
어머니 무릎가에 지쳐쓰러진 밤
서럽게, 서럽게만 울리던 문풍지소리
학대와 모멸의 그 세월에
어느 하루도 그칠 날이 없던 그 소리,
그것은 홀어머니의 한숨소리였고
가슴속 피맺힌 나의 하소였다,
하늘땅에 사무친 민족이 곡성이였다…
은혜로운 태양의 빛발이
행랑방 나의 문창에도 비쳐든 그날에야
어머니와 나의 가슴에 맺혔던
원한의 고드름은 녹아내렸나니
지금은 해빛따사로이 넘치는 창너머
거리를 씩씩하게 행진해가는 아이들의 노래소리,
세상에 부럼없는 행복의 웃음소리…
아, 이런 때면 내 가슴 세차게 흔들어주는
모진 세월의 비바람소리!
꽃피는 생활의 향기속에 취하지 말라고,
꽃피는 락원의 봄빛속에 조을지 말라고
내 마음 깊은곳을 흔들며
오늘도 울리는 그날의 문풍지소리…
(박창화, <조선문학> 1976. 8기에 실림.)
무지개
돌에서 피는 꽃
조선의 비날론 꽃솜이 보고파
휘우듬히 무지개 드리웠는가
한소나기 지나간 비날론도시
하조장 유리지붕에 그 한끝을 드리운
오, 무지개!
선녀들이 타고 다닌다는 전설의 다리
눈여겨보면
사뿐사뿐 무지개 타고 내리는
선녀들의 모습 보일 듯
무지개만 쳐다보는데
신비한 조화여라
어느결에 그 무지개 사라지고
류달리 맑은 하조장 유리지붕너머
쪽빛으로 트이는 하늘가엔
뭉게뭉게 피여나는
하얀 꽃구름…
문득
내게는 생각되여라
하조장에 구름처럼 피여나는
하얀 돌꽃솜이
그대로 저 하늘에 떠실린것처럼
천년을 봐도 싫지 않을 돌꽃솜을
하늘가에 영원히 비껴담고싶어
나도 몰래
무지개 타고 내렸던 선녀들
그 고운 손으로
하조장 유리 지붕을 거울처럼 닦고간 듯이…
(서진명, <조선문학> 1987. 5기에 실림)
봄과 처녀
파릇이 애잎을 터는
벼모를 쓰다듬으며
관리공처녀는 이야기하네
앞산 골마다 아직 눈이 하얀데
젖살오른 아기의 모습처럼
봄빛으로 싱싱한 그 한파상에서도
구석진 몇대의 벼포기
더 주어야 할 온기에 대해
처녀는 이야기하네
이제 땅을 짚고 걸차게 일어설 그 벼모
이제 쭉쭉 쳐오를 아지들을 두고
덧비료에 대해, 김잡이약에 대해…
어느덧
처녀의 얼굴엔 웃음이 무르녹고
그 웃음발에 이어져
하늘하늘 춤추는 파란 랭상모
오호! 봄
봄
처녀의 마음속에
찾아온 봄
온 들판의 푸르른 봄
시작되는곳에서
풍년꿈 아지치는 푸른 모판에 앉아
나는 이야기했네
처녀와 풍년봄과 ―
(김광춘, <조선문학> 1990. 11기에 실림.)
기폭 : 깃발
할복공 : 생선의 배를 따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
로라 : 회전시켜서 쓰는 원통형의 물건. 롤러
선참으로 : 우선. 먼저.
허비이다 : 파헤치다. 파내다.
지꿏다 : 끈덕지다. 고집스럽다
해종일 : 하루종일.
빛발 : 빛. 광선.
비날론 : 비닐론. 합성섬유 중 성질․감촉이 가장 솜에 가깝다.
휘우듬히 : 비스듬히.
한소나기 : 한바탕 내리는 소나기
하조장 : 짐 꾸리는 곳.
덧비료 : 씨를 뿌리거나 모를 내기 전에 논이나 밭에 준 밑비료
김잡이약 : 논이나 밭에 나는 잡초를 죽이기 위해 뿌리는 약. 제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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