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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인 - 존 던
2015년 03월 18일 23시 15분  조회:3061  추천:0  작성자: 죽림

존 던

1572. 1. 24/6. 19 런던~1631. 3. 31 런던.

 

영국의 시인.

 

대표적인 형이상학파 시인이며 런던 세인트폴 성당의 참사원장(1612~31)을 지내기도 했다. 사제 서품을 받기(1615) 전에 주로 쓴 세속적인 시뿐 아니라 종교적 운문과 논문 및 17세기의 가장 뛰어난 것으로 꼽히는 설교들로 유명하다.

 

초기생애

 

로마 가톨릭교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풍자시인이자 극작가인 존 헤이우드의 딸로, 헨리 8세의 서기였던 토머스 모어 경의 후손이었다. 던은 그녀의 가문만큼 종교 때문에 고통을 받은 가문은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성공한 런던 상인이었던 아버지는 유서깊은 웨일스 가문의 후손이어서 던도 그 가문의 문장(紋章)을 지녔다. 1576년 아버지가 죽은 뒤 6개월 만에 어머니는 존 시밍스 박사와 재혼했는데, 그는 여러 차례 왕립의과대학 학장을 지낸 인물로 던의 형제들을 교육시켰다. 1640년 던의 〈생애 Life〉를 출판한 아이작 월턴에 따르면, 던은 집에서 가톨릭교도인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다가, 1584년 10월 형 헨리와 함께 옥스퍼드의 하트홀(하트퍼드 칼리지의 전신)에 입학했다. 월턴에 따르면 던은 이곳에서 3년을 보낸 뒤 케임브리지대학교로 전학했다고 하는데 이 사실을 증명할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수장령(Act of Supremacy)과 영국국교회의 39개 조항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는 가톨릭교도였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지 않아 어느 대학의 학위도 받지 못했다. 그뒤 유럽의 여러 곳을 여행한 것으로 보인다. 1591년 5월경 새비스 인(Thavies Inn)에 법학생으로 등록했고 1592년 3월 6일 링컨스 인(Lincoln's Inn) 법학원으로 옮겼다. 1593년 형 헨리는 가톨릭 사제를 숨겨주었다가 체포되어 감옥에서 흑사병에 걸려 죽었다. 같은 해 6월 던은 성년이 되어 아버지의 재산 중 자신의 몫을 받았다. 1594년말까지 링컨스 인 법학원에 남아 법률직에 필요한 최종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의 많은 사람들처럼 그도 법학원을 정계로 나가는 통로나 실무가들과 접할 수 있는 방편으로 여겼다.

 

초기 관직생활과 작품활동

 

1596년에 카디스를 공격하는 해상과 육상 원정에 지원, 그처럼 공직을 갈망하는 많은 젠틀맨 출신 군인과 합류했다. 다음 해에는 아일랜즈 원정(Islands expedition)에 참여하여 아조레스 제도에서 스페인 보물선을 찾아다녔다. 이때 사귄 토머스 에저턴은 국새상서(國璽尙書)인 아버지 토머스 에저턴 경에게 그를 소개했다. 1598년초 토머스 경의 비서가 되어 높은 공직 진출이 보장된 직위를 맡았다. 토머스 경은 1601년 던을 의회로 보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의회의 논쟁이나 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했고, 의원의 동향을 알아서 토머스 경에게 보고하는 역할만 했던 것이 확실하다. 이무렵 가톨릭 신앙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던은 야심을 성취하는 과정이 순조로웠다. 이무렵에 많은 시를 썼는데, 대부분은 고대 라틴 시인들의 시를 모방한 것이다. 그 작품들로는 1592년경부터 쓴 남자 동료들에게 보내는 운문편지들이 있고, 호라티우스와 유베날리스풍(風)으로 쓴 형식을 갖춘 5편의 풍자시(1593~98경)와 풍자적 서사시 〈윤회 Metempsychosis〉(1601), 오비디우스의 시를 부분적으로 모방한 연애시와 비가집(悲歌集) 1권, 마르티알리스의 시를 다소 모방한 경구시(警句詩)가 있다. 그러나 고전적인 양식을 위트와 대담한 상상력으로 변형시킨 그의 시는 매우 독창적이다. 1601년경에 쓴 다양한 경향의 많은 연애시들은 유명한 시에 속한다. 이무렵의 시는 활력과 사실성, 열정이 넘쳐흘러 젊은시절 던의 활달한 생각과 행동을 반영한다. 동시대인 리처드 베이커 경은 던에 대해 "무절제(부주의)하지 않고 깔끔하여 귀부인과 숙녀들을 자주 방문하고 연극을 즐기는 기발한 착상의 운문의 대가"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던이 일생 동안 보여준 도덕적 엄격성과 진지성은 젊어서의 바람기를 믿기 어렵게 한다. 영국 극의 전성기에 극장 출입이 잦았다는 것은 그가 관심을 기울인 문학과 학문의 다양한 양상 중 하나를 반영하는 데 불과하다. 월턴은 던이 일생 동안 유별나게 학문에 전념한 점을 강조하는데, 그는 일찍이 1593년부터 영국 교회와 로마 교회 사이의 쟁점에 대해 깊이 생각했던 것 같다. 그가 방문한 '부인들'이란 후에 후원자가 된 귀족부인들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던은 위트와 매력이 있어서 국새상서 집안의 부인들에게 총애를 받았다. 특히 로슬리파크의 조지 모어 경의 딸이며 에저턴의 둘째 부인의 조카이자 피보호자인 앤 모어가 그를 좋아했다. 앤의 아버지는 1601년 의회가 소집되자 런던으로 그녀를 데려왔다. 둘은 비밀리에 만났는데 야심 많고 저명한 조지 경의 결혼동의를 얻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1601년 12월초 비밀리에 결혼했다. 이것은 예법과 교회법에 모두 위배되는 일이었으며, 사랑을 위해 그토록 큰 모험을 한 것은 월턴이 지적했듯이 "그의 인생 최대의 오류"였다. 1602년 2월 던이 조지 경에게 결혼사실을 알리자, 화가 난 장인은 그를 몇 달 동안 투옥시켰고 에저턴에게 그를 해고하게 했으며, 이 문제를 고등판무단 재판소에까지 올렸다. 판무관들은 이 결혼이 유효하다고 판정했으나, 던에게는 힘들고 긴 실업 상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내에 대한 사랑은 꺾이지 않았다.

 

성직자 시절

 

처음에는 서리 주 피어퍼드에 있는 에저턴 부인의 아들 프랜시스 울리 경의 집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여기에서 약 1년 동안 가족을 떠나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여행하기도 했다. 1606~11년에는 런던 남부의 미첨에 집을 마련하고 런던에도 아파트를 얻었다. 뒷날 더럼의 주교가 된 토머스 모튼을 도와 가톨릭교를 비방하는 논쟁적인 팜플렛에서 특히 제임스 1세가 영국 교회의 수장으로서 충성서약을 강요하는 것을 옹호하는 일을 한 듯하다. 여기서 던은 〈사이비 순교자 Pseudo-martyr〉(1610)라는, 왕을 지지하는 인상적인 선전문을 썼는데, 이 글로 인정을 받아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문학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쟁의 여파로 쓴 것이 예수회 수사를 공격하는 환상적 풍자문 〈이그나티우스의 비밀회의 Ignatius his Conclave〉(1611, 라틴어와 영어로 출판)이다.

 

던은 삶의 방향을 잃고 낙심하기도 했다.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사람은 목숨을 올바로 지켜야 한다는 내용의 추론식 저작 〈자살론 Biathanatos〉(1608경, 출판 1646)을 쓰면서 생각을 고쳤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심각한 종교적 갈등을 계속 겪었다. 머튼은 그에게 영국국교회 목사가 되라고 여러 차례 설득했고, 1607년에는 자신이 사임한 성직을 제의했다. 그러나 던은 자신이 자격도 없고 뚜렷한 소명도 없다는 이유로 수락하지 않았으며 계속하여 세속적 직업을 찾았으나 실패했다. 더구나 〈사이비 순교자〉를 썼을 무렵 제임스 왕은 던이 성직에 몸담기를 바라며 세속 직업을 갖는 것을 탐탁히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던도 물론 한동안은 영국성공회교도였다. 1596~97년에 반대파 가톨릭교도와 맞선 신교도인 여왕을 섬겼고, 에저턴 밑에 있기 전에 공식적으로는 가톨릭교를 포기했다. 그는 결국 그리스도교의 주요교리를 받아들이는 교회는 모두 정당하며, 행정·의식 등 '종교와 무관한' 문제는 각 나라의 관행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교의 진리에 대해 의심하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구원에 대해 완전한 확신을 갖지 못했다. 확신을 얻기 위한 그의 노력은 1607~13년에 쓴 종교시들에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영시(英詩) 가운데 손꼽히는 작품들이다. 던은 뒤늦게 지불된 아내의 지참금과 베드퍼드 백작부인 루시 러셀의 후원(1607 이후)으로 늘어나는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다. 루시 러셀과 다른 귀부인들에게 매우 독창적인 운문 편지를 보냈으며 베드퍼드 부인의 친척이 죽으면 비가(悲歌)를 지어주었다.

 

1611년에는 로버트 드루어리 경이 새 후원자가 되었다. 1611~12년에 던은 그와 함께 프랑스와 북해, 연안 저지대를 여행했으며, 드루어리는 1612년까지 런던 저택의 부속채에 던 가족이 살도록 해주었다. 드루어리의 어린 딸 엘리자베스가 죽었을 때 비가를 썼고, 1611년과 1612년에도 역시 그녀의 죽음을 기리어 〈기일 Anniversaries〉을 썼다. 이 시들에서는 주로 부패한 세계를 깊이 있게 풍자적으로 '해부'하는 한편, 천상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인간의 영혼이 승천하는 것을 관조했다. 여전히 공직을 찾으면서, 1612년 헨리 왕자가 죽었을 때와, 1613년 엘리자베스 공주가 팔츠 선거후(侯) 프레더릭 5세와 결혼했을 때에도 시를 바쳤다. 1614년에 열린 '썩은' 의회에 참석하여 특별위원회 4곳에서 일했다. 던은 공직을 얻는 데 도움을 받으려고 사귀었던 궁정 총신 서머싯 백작 로버트 카르와 악명높던 에식스 백작부인의 결혼을 축하하는 축혼시를 지었다. 1614년 후반에 드디어 궁정에서 자리를 얻을 것 같았으나, 이번에도 왕이 교회 밖의 자리를 주는 데 반대했다. 마침내 신의 대리자인 왕에 의해 성직에의 소명을 받은 것이라는 점을 확신한 그는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공부한 뒤에 〈신성론 Essayes in Divinity〉을 완성했고, 교회에서 진로를 시작했다.

 

1615년 1월 23일에 존 킹 주교로부터 부제(副祭)와 사제직을 임명받았다. 곧 승급이 되어 왕실목사가 되었고, 왕의 명령으로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616~21년에는 왕의 하사로 헌팅턴셔에 있는 케이스턴의 교구를 얻게 되었고, 전에 그가 섬겼던 에저턴이 자청해서 1616년 켄트에 있는 세븐오크스의 교구를 주었으며, 1622년에는 베드퍼드셔에 있는 블러넘의 교구를 받게 되었다. 1624년부터 죽을 때까지 런던에 있는 서쪽 세인트던스턴의 교구신부로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영혼을 치유할' 유급 성직자의 특정직을 법이 왕실목사에게 허용한 대로 2곳에만 한정했다. 1616년 10월부터 링컨스 인 법학원에서 리더(reader:목사이자 정신적 지도자)의 중요 직책을 얻었다. 그의 설교는 곧 힘과 웅변력을 지니게 되었다. 1617년 8월 던의 아내는 12번째의 아이를 사산하다 죽었다. 그는 몹시 슬퍼했으며 더욱 종교생활에 헌신하게 되었다. 아내가 죽은 후 오랫동안 건강이 나빠 친구들을 염려하게 했으며, 1619년에 링컨스 인 법학원을 그만두고, 30년전쟁 초기에 돈캐스터 자작인 제임스 헤이의 사절단과 함께 목사의 자격으로 독일과 보헤미아의 군주들을 방문했다. 1620년초 영국으로 돌아와 1621년 11월 22일 세인트폴 성당의 수석사제로 임명되었다. 여기에서 부딪친 많은 일을 던은 아주 양심적으로 처리해나갔다. 세인트폴 성당의 관리기록부는 그의 유능함과 성실성을 입증해주고 있다.

 

1625년 제임스 왕이 죽었지만 그의 지위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왕위에 오른 찰스 1세는 그를 성직자며 시인으로서 존경했다. 그러나 찰스 1세의 즉위 후 던이 쓴 시는 '성가' 3편, 종교 소네트 2~3편, 제임스 해밀턴 경의 죽음을 추모하여 쓴 비가가 전부이다. 그는 모든 창의력을 설교와, 심한 재귀열(1624)에서 회복되면서 쓴 산문 〈비상시의 기도문 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s〉에 쏟았다. 중요한 설교문 몇 편을 더 발표하기도 했으나, 런던을 휩쓴 심한 흑사병을 피해 모들린 허버트(댄버스 부인)의 집에 피신해 있던 1625년과 사위의 집에서 병을 치료하던 1630년에 자신이 메모해놓았던 설교문 100편을 옮겨 정리했고 이것을 그가 죽은 뒤 아들이 출판했다. 말년에는 친구와 후원자, 자식들(그가 죽을 때 6명만 생존)의 죽음을 겪어야만 했고 1631년 1월에 노모마저 죽자 슬픈 나날을 보냈다. 병으로 쇠약해졌지만 1631년 2월 25일에 궁정에서 마지막 설교(〈죽음의 결투 Death's duell〉로 사후 출판)를 했으며, 그 다음날 차터하우스(Charterhouse)의 간사회에 마지막으로 참석했고, 3월 21일 마지막으로 성당 일을 했다. 던은 1631년 3월 31일에 죽었고, 4월 3일 성당에 묻혔다. 월턴의 말에 따르면, 던은 마지막으로 병이 들었을 때 수의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게 했다고 한다. 이 그림을 바탕으로 하여 니콜라스 스톤은 흰 대리석으로 된 조상(彫像)을 만들었는데, 1666년 런던 대화재로 세인트폴 옛 성당이 소실되었을 때 기념물 가운데 유일하게 보존되어 지금 성당의 남쪽 복도에 세워져 있다.

 

사후의 명성

 

던은 〈기일〉을 출판할 때 친구들에게 "운문으로 된 아무 글이나 인쇄한" 데 대해 사과했다. 왜냐하면 그당시에는 시를 인쇄한다는 것이 다분히 상업적인 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영어로 쓴 시 가운데 1편만이 자필로 남아 있고, 대부분은 비교적 규모는 작지만 그의 시를 애호하는 사람들이 만들어서 돌려 읽은 필사본으로 남아 있다. 이미 출판된 소수의 시들을 제외하고 그의 첫 시집 〈시집 Poems〉(1633, 1635)은 실제로 이런 복사본을 모은 것이었다. 〈시집〉은 던이 죽은 뒤 90년 사이에 8번이나 출판될 만큼 인기가 있었으나 18세기에 그의 작품은 일반적 취향에 맞지 않았고, 그는 위대하지만 별난 '기지'(wit)를 가진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19세기초부터 예리한 독자들은 던의 시적 천재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20세기에는 시뿐 아니라 설교문도 대단한 호응을 얻었다. 시인이자 산문작가로서 17세기와 20세기의 작가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이들은 던의 기지 섞인 논리와 열정의 겸비, 복잡한 마음상태의 극적 표출, 참신하고 과감한 이미지, 셰익스피어와 비교해도 거의 손색이 없을 만큼 평범한 말로 영어의 진수를 살리면서 풍부한 시적 의미를 창출해내는 능력 등에서 자극을 받았다.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나

 

   묵상 17번 중에서  

 

 

............前略........

어느 사람이든지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이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또한 대양의 한 부분이어라.

 

만일에 흙덩어리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게 된다면,

유럽 땅은 또 그 만큼 작아질 것 이며,

만일에 모랫벌이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이어라.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감소시키나니,

나란 인류 속에 포함되어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지는 말지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기에.

.............後略.......

 

 

 

 

이별의 말 -  哀悼를 금함

 

          

점잖은 사람들은 점잖게 숨지며

그들의 영혼에게 가자고 속삭인다.

 

임종을 지켜보는 슬픔어린 벗들이

숨이 졌다, 아니다, 말하고 있을 때,

 

 

그처럼 우리도 조용히 사라지세나.

눈물의 홍수나 한숨의 폭풍이 없이

 

속물들에게 사랑을 알린다는 것은

우리 기쁨을 모독하는 것이 된다.

 

 

지구가 움직이면 재난과 공포가 따르고

사람들은 그 피해와 의미를 계산한다.

 

전체의 움직임은 그보다 더하지만

사람에게 끼치는 해로움은 덜하다.

 

 

우둔한 속세 사람들의 사랑이란 것은

그들이 오로지 관능만을 아는지라

 

이별을 이겨내지 못한다. 이별은

사랑의 요소를 제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별을 모를 만큼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믿고 있고

 

사랑으로 세련되어 있음으로 해서

눈, 입, 손이 없음을 탓하지 않는다.

 

 

우리 둘의 영혼은 결국 하나이니

내가 떠난다 해도 헤어짐이 아니요

 

가공해서 엷어진 금박 모양으로

오로지 넓게 확장되는 것뿐이다.

 

 

우리 영혼이 만일 둘이라 하더라도

콤파스의 다리처럼 한데 붙은 둘이다.

 

고정된 다리인 당신의 영혼은

다른 다리를 따라 움직이게 마련이다.

 

 

당신의 다리가 중심에 서 있어도

상대방이 멀리 움직여 떠날 때면

 

그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쪽이 돌아와야 곧게 일어선다.

 

 

당신도 나에게 정녕 그러리라.

비스듬한 다리처럼 움직이겠지만

 

당신의 확고함이 내 원을 바르게 하고

내 출발한 곳에서 끝나게 한다.

 

 

 

이 시의 상대자는 던의 아내 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잠시 동안의 이별이매 눈물에 젖어 이별하지 말자는 호소이다.

 

지리상의 발견이라든가 썰물과 밀물에 관한 천문학이라든가

지구의라든가 하는 따위의 르네상스의 새로운 과학도구를 도입하여

사상의 애호가다운 면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때로 사랑은 사람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 힘을 지니게 마련인데,

여기서는 정열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에 의해서 그런 변화가 생겨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결국 이별을 탄식한다고 하는 애정의 표현이 실은 사랑을 죽이는

일이 된다는 패러독스를 완성시키고 있다.

 

 

내 마음을 치소서

 

                  

내 마음을 치소서, 삼위일체 하느님

노크하고 숨쉬고 빛내고 고치려 마시고

 

내가 살 수 있도록 나를 밀고, 깨뜨리고,

불고, 태우고, 내가 새로워지게 당신 힘을 기울이소서.

 

 

나란 것은 적에게 점령된 포위된 도시,

당신을 맞으려 하나, 오, 소용이 없나이다.

 

내게 있는 당신의 섭리와 이성이 나를 막아야 하나

오히려 포로 되어, 약하옵고 참되지 못하나이다.

 

하지만 당신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싶은데

당신의 원수에게 팔려가게 되었나이다.

 

 

나를 떼어놓아 그 매듭을 풀고 찢어주소서.

당신한테 나를 끌고 가 옥에다 가두소서.

 

투옥될 때 나는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고

겁탈될 때 나는 비로소 정숙할 수 있사오매-.

 

 

 

이 시는 형이상학파 시인 던의 논리적인 구조를 잘 나타내고 있다.

던만큼 패러독스에 찬 사람은 많지 않다.

 

가톨릭과 영국국교회, 삶과 죽음,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소녀에 대한 사랑 등의 대립 속에 살았는데

이 시도 그런 패러독스에 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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