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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 시모음
2015년 04월 17일 21시 20분  조회:4060  추천:0  작성자: 죽림
 

<동그라미 시 모음> 박두순의 '둥근 것' 외 

== 둥근 것 ==
 
둥근 것은
곱다.

이슬 눈빛이 곱고
빗방울 속삭임이 곱다. 

둥근 것은
향기롭다.

모난 과일이 어디 있나
맛이 향기롭다.

둥근 것은
소중하다.
땅덩이도, 해도 별도 달도 둥글다.
씨앗도 둥글다
잎과 꽃과 뿌리까지 품으려니.

사랑스런 널 보는 눈이 둥글다.
네가 나를 용서할 때의
웃음도 둥글었다.


(박두순·시인, 1950-)


== 공은 둥글다 ==

배고파 우는 아이야
무서워 우는 아이야

그만 눈물을 닦고
우리 축구를 하자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졌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즐겁다

해는 저물고
돌아가는 집안에 빵은 없어도

공은 둥글다
지구는 둥글다

우리 눈물은 둥글다
우리 내일은 둥글다


(박노해·시인, 1958-)  


== 둥굴레 == 

살아가는 일에 자꾸만 모가 나는 날은 
둥근 얼굴로 다소곳하게 고개 숙인 
너에게로 살금살금 다가서고 싶다 
더 둥글게 열려있지 못해 우리 사이에 
꽃을 피우지 못했던 날을 생각하면 
마음은 계곡처럼 깊게 파인다. 
잎을 꽃처럼 달고 사랑을 기다려보지만 
내게는 바람 부는 날이 더 많았다 
아직 내 사랑에는 모가 나있는 날이 많아서 
그렇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꽃을 잎처럼 가득 차려 두기 위해서는 
내 사랑이 더 둥글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우리 서로 꽃으로 다가서기 위해서는


(김윤현·시인, 1955-)


== 둥근 길 == 

경주 남산 돌부처는 눈이 없다
귀도 코도 입도 없다

천년 바람에 껍데기 다 내주고 
천년을 거슬러 되돌아가고 있다
안 보고 안 듣고 안 맡으려 하거나 
더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천년의 알맹이 안으로 쟁여 가기 위해
다시 천년의 새 길을 보듬어 오기 위해
느릿느릿 돌로 되돌아가고 있다
돌 속의 둥근 길을 가고 있다

새 천 년을 새롭게 열기 위해
둥글게 돌 속의 길을 가고 있다


(이태수·시인, 1947-)


== 마음이 새고 있다 == 

꽉 조여지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차랑한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혀서 동그랗게 풍경을 담아낸다 

아침부터 마음이 새고 있다 
마음이 새고 있는 거기 
맺혀서는 똑 떨어져 
아슬아슬 건너오는 먼 풍경 

쟁그랑 챙 
아침 밥상 위에 
식구들 숟가락 놓는 소리, 동그랗다


(강인한·시인, 1944-)


== 둥근 자세 ==


둥글게 스민다는 말이 
소리 없이 울고 싶은 자세라는 걸 바다에 와서 알았다
둥근 수평선, 모래에 발을 묻고 
둥근 흐느낌으로 울다가 스미는 파도,
나는 왜 당신의 반대편으로만 자꾸 스며 갔을까
내 반대편에서 당신은 왜 그토록 지루하게 
둥근 원을 그리며 나에게로만 스민 빗물 보내왔을까
파도가 대신 울어주는 바닷가에서
둥글게 스민다는 말이 혼자 우는 자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를 대신하여 울던 당신이
어두운 곳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는 
오래오래 혼자 울던 당신이
이른 저녁 눈썹달로 떴다 울고 싶은 자세로 둥글게 떴다
세상은 울고 싶은 자세로 몸을 웅크리다가 둥글어졌을 것이다
수평선이 저렇게 둥근 것처럼
나를 비춰왔던 울음도, 나에게 스미어 왔던 당신도 
수평선처럼 둥근 자세였다
멀리 떨어져야 잘 볼 수 있었다
헤어짐이 끝없기 때문에 사랑도 끝없다고 당신은 말한다
둥근 눈물로 혼자 말한다


(강미정·시인, 경남 김해 출생)


== 둥글다 ==

햇살이 비스듬한 저녁,
전철역 좌판할머니 등이 둥글다
검정비닐봉지를 건네는 손등
관절 꺾인 무르팍도 둥글다
나물 봉지를 받아든 손
덩달아 둥글다

골목길, 이끼 낀 담장,

털 곤두세운 고양이의 발톱,

낡은 목제의자에 몸을 내맡긴 노인,

맨드라미, 분꽃, 제라늄, 세발자전거…
오래 전부터 둥글다

한 줄기 쏟아지는 소나기
그 빗줄기 속을 뛰어가는 배달꾼의 뒷모습
일제히 쳐다보는 눈길들
모두 둥글다


(박해림·시인)


== 동그라미 == 

너의 모습을 보면
언제나 동그라미 같아 

오늘밤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저 보름달처럼
어느 한 구석 모나지 않은 사람

얼굴도 호박처럼 둥글 
마음도 쟁반 같이 둥글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늘 순한 느낌을 주는 너

너의 모습을
살며시 훔쳐보며

나도 이 밤 문득 
동그라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정연복·시인,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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