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증류하여 뽑아낸 시/노명순
향수를 만드는 것은 꽃의 영혼인 향기를 뽑아내는 일이다. 그러나 꽃들이 어찌 제 영혼을 쉽게 내주랴. 그래서 우선 꽃의 특성에 걸맞게 달래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 다음, 꽃잎이 향기를 한껏 머금고 있는 시간을 맞추어 정갈하게 딴다. 적당히 말리고 찌고 끓이는 과정을 거쳐서 침지법· 냉침법 등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농축·정화·정류의 가느다란 냉각관을 통해 향기의 에센스를 한 방울 한 방울 받아낸 것이 곧 향수이다. 어쩌면 시를 쓰는 과정도 이와 같은 작업이 아닌가 싶다.
시인이 식물과 눈을 맞춰 오브제를 택한 다음, 언어의 재료들을 시작(詩作) 가마 속에 넣은 후 불길을 세게 또는 여리게 당겨가며 상상력과 이미지를 증류, 여과함으로써 비로소 한 편의 시가 형상화되는 이치나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해 시는 삶을 증류하여 뽑아낸 진액이다.
손끝이 열쇠라 했던가. 손끝이 닿는 대로 시작 가마에 불길을 당겨보자. 시의 진한 즙을 뽑기 위한 농축 과정이라고 할까.
< 농축>
향기의 건축물
수십 마리의 나비들이
희고 노란 날개를 팔랑대며 에워싸고 있다
현관문은 스치기만 해도 열린다
나비들을 제치고 잽싸게 치마폭같은 응접실을 지나①
대롱 모양의 긴 낭하를 지난다
취하여 미끄러지듯 계단을 타고 내려가②
수증기가 자욱한 지하실 비밀의 방 문고리를 잡아당기며
성급히 더듬이를 세우고 다가가 온몸을 부빈다
비밀의 방 한구석이 환해지며
수천 가지 빛깔이 흩어지며
붓꽃의 향기 수련 꽃다발 자스민 실측백나무
아니 막 물오른 처녀의 체취?③
단숨에 불을 붙여 불꽃은 훨훨 타고 있지만, 가슴도 끓지만 가마솥의 언어들만은 설익어 애매모호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 푹 뭉그러지기는 틀린 것 같다.
처음 가마솥에 넣은 재료는 채마밭에 가득 피어 있는 연보라빛 무우꽃이다. 꽃을 에워싼 나비를 제치고 들어간 화자가 향기의 건축물 속에 갇혀 허우적거리니 이야기의 방향이 어디로 진전이 되어 마지막 연의 전환을 가져올 것인가. 막막하다. 불길을 줄이고 여유를 가지고 정확한 향기의 건축물을 찾아야겠다.
불길을 꺼지지 않을 정도로만 아주 약하게 줄이고서 이럴 때의 비상 창고인 일기장을 펼친다. 9월 10일자의 일기에는 ‘향기의 건축물 속에 갇혀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엔 ‘쓰레기더미에서 뛰쳐나온 나팔꽃이 옆 전신주를 넝쿨로 휘감으며 향기의 고층 빌딩을 건축하고 있다’라고 씌어 있다.
동네 골목에 있는 전신주 아래에는 누가 아무렇게나 몰래 버린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고 그 전신주를 타고 가등 꼭대기까지 얼키설키 넝쿨을 휘어감고 올라가 꽃을 피우는 나팔꽃이 있다. 나는 하도 신기해서 여름내 골목을 지날 때마다 화려한 꽃다발 기둥이 된 전신주 앞에서 발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고는 했었다. 참으로 높이 쌓아올린 향기의 건축물이 아닌가. 오브제로서는 채마밭에 질펀하게 피어 있는 무우꽃보다 전신주를 타고 올라가는 나팔꽃이 형상과 내용을 활용하는 퍼스나로서는 제격인 것 같다. 자, 그러면 향기의 건축물인 전신주를 타고 올라가는 나팔꽃의 그 형상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맨 첫연에 자연스럽게 펼쳐놓고 시작 가마의 불길을 올리고 뭉근하게 달여보자
<증류>
향기의 건축물
사람들의 쓰레기더미 위로
어느 사이에 향기의 고층빌딩이 세워진 것일까?
보라빛 나팔꽃이 무릎이 까지고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동네 골목의 전신주를 휘감으며 꼭대기 가등까지 올라가
수십 송이의 꽃을 피우며 향기를 건축하고 있었다
나비들이 희고 노란 날개를 팔랑대며 에워싸고 있다
향기의 현관문은 스치기만 해도 열린다
나비들을 제치고
나는 잽싸게 대롱 모양의 긴 낭하를 지난다
수증기가 자욱한 비밀의 방 문고리를 잡아당기며
성급히 더듬이를 세우고 바싹 온몸을 부빈다
한구석이 훤해지며
수천 가지 빛깔이 흩어지며……
악취나는 쓰레기더미에서도 발을 온전히 빼낼 수만 있다면
향기의 씨앗을 맺을 수 있음을 알았다
첫연에서 쓰레기더미 위 전신주를 향해 올라가는 나팔꽃을 오브제로 택함으로써 둘째 연에서의 상상력은 자연스럽게 오브제의 줄기를 타고 이파리를 피울 수가 있다. 마지막 연에서 나팔꽃 열매는 첫 연과의 연결고리를 가지며 ‘향기의 씨앗’이라는 앞의 내용들을 뒷받침해 주는 희망적인 상징으로 이행된 느낌이 든다. 이제 화덕의 불길을 잠재우고 재료가 폭삭 고아져 틀을 갖춘 내용물을 가마솥에서 쏟아내고 시의 에센스를 뽑기 위해 증류기 안에서 여러 번의 과정을 거친다. 정화, 정류의 차거운 퇴고의 냉각관을 통해 시의 진액을 한 방울 한 방울 받아보자.
초고의 네번째 행 ①을 삭제해 버린다. 시는 감추기 작전의 명수라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향기의 건축물로 들어가는 길을 ‘치마폭’이라는 표현을 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화자가 여인이라는 한계를 두어 상상력의 즐거움을 빼앗는 결과가 된다. 향기의 건축물은 남녀의 성애에 있어서도, 종교의 길 속에서도, 자연의 극치, 세상 만물 모든 우주 속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행 ②부분은 없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지운다. 상상력의 긴박감을 끌어가야 할 시점에서 너무 말이 많아 늘어진 느낌이며 ‘취하여 미끄러지듯이’라는 표현이 신선한 시어로서 합당치 않기 때문이다.
초고의 마지막 연 ③도 삭제한다. 많은 꽃들의 향기 속에 헤매는 것이 너무 산만하다. 도대체 전환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갈 지 막막하게 만드는 재료들이다. 시의 마무리는 전체적인 내용이나 흐름을 뒤바꾸어 놓을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부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을, 쓰레기더미에서 빠져나오는 나팔꽃은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꽃은 시들고 점점 수많은 씨앗이 맺어지기 시작한다. 이 시의 마무리 부분은 가을까지 한참 기다리고서야 완성된 작품이다.
시의 성취도를 얼마만큼 끌어올렸다고는 하지만 초고에서 퇴고까지 한 계절을 넘겨서야 시의 에센스 한 병을 겨우 받아낼 수 있다니, 그렇게 어렵게 받아낸 시의 향수답게 과연 이 시의 향기가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을런지.
문만 열면 수많은 사물들의 눈빛이 내게 쏠린다. 눈이 부시다. 사물들에게서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빼앗아 가슴에 깊이 각인해 둔다. 외부로부터 어떤 계기를 통한 정신적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감정의 재료들도 모아 둔다. 시의 진액을 뽑아내는 연금술사가 되기 위해서는 늘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날카로운 눈과, 예민한 코와, 고감도의 가슴, 부지런히 뛰는 손끝이 필요하다.
시는 삶을 증류해서 뽑아낸 진액이고 시인은 그 진액을 만들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노명순)
◇89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따뜻하다』 [서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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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 이홍섭(1965∼ )
젊은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버스 앞에 세워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지시곤 했다
강원도 하고도 벽지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 번뿐인데
아버지는 늘 버스가 시동을 걸 때쯤 나타나시곤 했다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대 병원으로 검진 받으러 가는 길
버스 앞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어디 가시지 말라고, 꼭 이 자리에 서 계시라고 당부한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벌써 버스에 오르셨겠지 하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그 자리에 꼭 서 계신다
어느새 이 짐승 같은 터미널에서
아버지가 가장 어리셨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터미널이 ‘여행’의 출발선이라면 좋겠다. 나를 더 멋진 곳으로 데려다줄 좋은 곳. 이런 터미널만 알고 있다면 당신은 환한 인생을 살아온 셈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살면서 알게 된다. 피곤하고 어두운 터미널과 쓸쓸하고 외로운 터미널 등을 배우게 된다. 이홍섭 시인의 시에도 또 다른 인생의 터미널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어린 아버지의 터미널’이다.
시인의 고향은 강원도에 있다. 어린 시인은 가끔 아버지를 따라 타지에 나왔는데, 돌아갈 때는 버스를 놓칠까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기댈 곳은 아버지뿐인데, 아버지는 한참 자리를 비우곤 했다. 아버지가 안 오면 어쩌지, 버스가 떠나면 어쩌지, 나는 어쩌지, 이런 생각으로 어린 시인은 발을 동동 굴렀을 것이다.
다 자란 시인은 또다시 터미널에 오게 되었다. 예전에는 아버지를 따라 왔는데, 이제는 아들이 아픈 아버지를 모시고 왔다. 버스를 타기 전에 아들은 커피도 마셔야 했고 담배도 피워야 했다. 돌아와 보니, 아버지는 버스 앞에 꼼짝없이 서 있었다. 마치 버스와 아버지를 놓칠까봐 자리를 지키던 어린 자신처럼, 늙은 아버지는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아들이 안 오면 어쩌지, 버스를 놓치면 어쩌지, 나는 어쩌지, 이런 생각으로 힘없는 아버지는 맘을 졸였을 것이다.
자라 보니, 아버지는 완벽한 사람도 멋진 사람도 아니었다. 잘생기지도, 강하지도, 유명하지도 않았다. 대단한 아버지를 잃어가면서 우리는 소중한 아버지를 알게 된다. 아마도, 아버지는 자식에게 나이와 힘을 나누어 주느라 다시 어려졌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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