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담)
시인의 번뇌
-로댕-
김 시인님;
나는 내가 왜 시인이 되였는지 지금에 와서 의심할 정도입니다. 그러면서 왜 시를 고집하며 모지름 쓰고 있는지 정신적 질환이 아닌가 의심니다. 처녀작을 발표한지 40년이 되여 오면서 온갓 풍운을 겪었지만 근 몇년 동안은 허탈감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제5 시집을 낼 시들이 있지만 더는 시집을 낼 의욕이 생기지 않아요. 내가 시인이라고 어디가서 떳떳이 자칭하기도 싫어요. 시인은 이 시대의 약자라고 생각해요, 누가 처다 보지도 않는데 머리를 치겨들고 돌아다니는 시인을 보면 한심할때가 많아요. 시인의 자존심은 극도로 추락했어요..왜서일까요 ? 사회적인 방면도 있지만 얼마간은 우리 시인들의 문제가 아닐까요 ? 더우기 우리 시인들이 우리 시단을 훼손시킨 결과가 아닐까요 ? 우리의 자존을 우리가 지켜 내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요? 심각히 반성하고 고민하고 몸부림치는 탐색으로 시의 정신을 구현하는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아요. 물론 저도 많은 고민을 하지만 아직 까지는 이렇다할 결론과 출로가 없어요. 다만 아래의 담화를 통해 속 시원히 털어놓고 싶을 따름이에요.
(1)
김 시인님;
나는 심양서탑조선족서점에 들린적이 있어요. 심양에 가게되면 꼭 들려 어떤 새로운 책이 나왔는가 보군하지요. 또한 책꽂지에 꽃인 나의 시집도 들춰 보군합니다 서점 최경리게 드릴때는 <서점 경영도 어려우니 팔리면 경비로 쓰세요>하며 말입니다. 점원에게 몇권 팔렸느냐 물어보면 선생님 <시집>뿐만아니라 다른 시책과 소설들도 사가는 사람이 거이 없어요하고 대답하지요. 하긴 십년전에 보낸 시집도 아직 꽃혀 있으니 몇년전에 보낸책은 더 말할나위 없지요. 그때마다 나는 시인의 허무감을 슬프게 느끼면서 문학인의 소외를 한탄하게 됩니다. 얼마전 심양의 만융에 이사 오신 강효삼 시인이 술 좌석에서 이런말을 하더라고요.. 흑룡강 한 서점에 들려서 자기의 시집을 몇권 팔았느냐 물었더니 점원이 말하기를 딱 한권 팔았대요. 그것도 륙월에 개털 모자를 쓴 낯 모를 사람이 사갔대요. 그 말에 웃음보를 터트리긴 했지만 심각하게 생각 되더라고요. 혹시 우리 시인들도 개털모자를 쓰고 다니면서 개털 모자를 쓴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가하는 허탈감이 들더라구요. 서점에서 나오면 길거리엔 가짜 악세사리를 길바닥에 펼쳐 놓고 파는 장사꾼이 보여요. 시는 실용적으로 말하면 그 가짜 악세사리보다도 못한 지경에 이르렀음이 안타깝더라고요.
(2)
김 시인님;
서탑에 가면 노래방과 상가와 커피숍과 술집과 식당마다 사람들이 붐벼요. 지금은 . 물질 자극과 정신자극을 추구하는 때에요.. 감동이 필요 없는 때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단은 감동이 없는 시가 너무 많아요.. 이것이 바로 객관과 주관에서 시가 개털모자를 쓴 신세가 되지 않았나 생각되지요. 즉 상품이 되지 못하는것은 상품시대에서 자연이 물러나는 것이에요. 시는 영원히 상품으로 될수없는 것이에요.. 자극만을 추구하고 감동을 받지 않으려는 사람과 감동을 주려는 시인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어요
(3)
김 시인님;
시인은 시인이란 동아리를 벗어나면 개뿔도 아니에요.. 얼마 안되는 시인들끼리 서로의 시를 보며 이렇쿵 저렇쿵 할뿐이에요..이 동아리를 벗어나서 시인이라면 누가 존경스런 분이라고 좌석 정중에 모십니까 ? 좌석 정중에는 언제나 로반이요 돈많은 부자요 하는 권세있는 간부요 하는 분들이 차지하지요. 시인은 그것을 알아야합니다.연변의 김혁작가님게서 동창 모임을 쓴 글을 본적이 있어요..다들 외국 에 가 돈을 얼마나 벌었고. 사업해서 얼마나 성공했고 하는 돈타령인데 글 쓰는 김혁선생님은 한구석에 할말없이 가만있었다는거예요. 김혁선생으로 말하면 문학에서 혁혁한 성적이 있는 분이 아닙니까 나는 시를 쓰면서 자비심이 많은 사람이에요.자비심이 많은 우울증 시인이에요..그러면서 시를 집념하는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환갑 잔치나 결혼잔치에 가면 축의금을 주고 조용히 한구석에 앉아 못하는 술 들엇다 놨다 하다가 슬그머니 나와 버립니다. 시인의 인격은 길거리의 걸뱅이보다 좀 나을런지요. 고민입니다.
(4)
김 시인님;
한번은 절친한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에 간적이 있어요, 나도 못 마시는 술 한잔 마셨는지라 흥분하였지요, 그래서 자작시 한수를 읽었어요. 어떤 분은 자기들 말만 말이라고 듣지를 않는것이였서요. 다 읽고 나니 어떤분이 소귀에 칠현금을 타는것이라 하였어요. 그때 나의 흥분은 풍선처럼 푹하고 터져 버린것이에요
(5)
김 시인님;
시인은 사회적로 자유로워야해요. 심지어 가정에서도 자유로워야해요. 나의 생활환경은 매우 자유로운 편이에요. 딸은 상해에있고 아들은 일본에있고 안해는 한국에 있어요. 어떤 친구는 내가 매우 고독하겠다고 말하군해요. 그러나 나는 고독을 즐기고 있어요. 시인으로 고독을 즐기지 않으면 시를 쓸수가 없어요. 안해가 집에 오면 한수의 시도 나오지 않아요. 혼자면 자유자재인 셈이죠. 집안 청소도 깨끗이 하고 멀 먹고 싶으면 멀해 먹고 얼마나 좋습니까 나는 독립 생활능력이 강해요. 아마 군대에 같다 왔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남자라면 반드시 군대 같다 와야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동물들을 보면 숫컷이고 암컷이고 자기가 찾아 먹습니다 사람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분공이 생겼다 하지만 먹을것은 분공함이 없이 같이해야합니다 밥 할줄 모르는 남편때문에 집을 떠나서 안절부절 못하는 안해들이 얼마나많습니까. 나는 한가지 악습이 있습니다 밤에자다가 새벽 두시면 일어나 시를 쓰던가 책을 두시간 보다가 아침 일곱시나 여덟시에 일어나지요 자다가도 무슨 령감이 떠오르면 써놓고 잡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령감을 잃어 버리군해요.
이전엔 공장에 몸 담고 있으면서 자유롭지 못했어요. 무슨 기술 공장장이요, 서기요 하면서 더 자유롭지 못 했지요 .50이 되면서 다 뿌리쳤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자유로워 졌습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자유는 사회의 제한된 법위내에서의 자유입니다. 지금 시대는 문혁시대와 달리 창작도 많이 자유로워졌죠
(6)
김 시인님;
시인은 항상 자기의 아름다운 정신 세계와 추구가 있는것이에요. 이 정신세계는 항상 시대의 고도에 위치하고 있어 내려다 보면 현실은 언제나 불만스러운 것이에요.. 어떤 시인은 아예 현실을 떠나 자기의 정신세계만을 시상하고 있어요. 아마 이런 현상을 모더니즘 시라 하는것이라 생각되요. 어떤 시인은 현실을 정시하며 부조리에 시상을 하고 있어요 이것이 아마 비판적 사실주의라 생각되요. 이런 문학이 있길래 사회에 적극적인 작용을 하는것이예요. 전자는 도피라 한다면 후자는 참여예요. 소극적이라면 관조이고요. 나는 처음에는 사실주의 였지만 후는 도피시도 쓰군하거든요. 그러나 아직 사실주의가 주류예요 비판적 사실주의 시를 많이 쓰지만 정치 신경은 건드리지 않고 사회 체재도 건드리지 않아요. 모든 사회체재가 다 완벽하지 못한 결점과 웃점이 있거든요. 아마 공산주의에 간다해도 완벽하지 못할것이에요. 이것은 시인이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니니까요. 젊은 시절엔 격정에 넘쳐 좋은 시 한수가 세계를 바꾸어 놓는다고 생각했어요. 알고 보니 그런것이 아니에요 공산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것인지 공상적인것인지 나는 모르나 학교에서 배운대로 라면 나는 공산주의를 신앙합니다. 공산주의가 얼마나 좋습니까 ? 생산력이 고도로 발달되고 사회 재산이 어느 재벌들이 독차지 하고 있는것이 아니라 공유이고 매개인은 능력이 저능이건 고능이건 능력대로 일하고 수요만큼 분배 받는, 고도의 물질 문명과 정신 문명이 있는 그런 사회가 얼마나 좋습니까 ? 자본주의 사회나 사회주의 사회나 그런 요소들이 지금도 맹아 하고있는 것이 아닙니까? 자기의 재산을 복지 재단에 헌납하는 재벌이나 서민이 평생 모은 돈을 장학기금으로 내놓는 사례가 있지 않습니까. 레브 똘스또이도 자기 농장의 노예들을 해방시키고 평등 사회를 꿈꾸는 실험을 하지 않앗습니까
시인에께는 이런 공산주의 보다 더 아름다운 몽환적인 정신세계가 있을수 있습니다. 모든 물질에 령혼을 불어 넣는 그런 신비의 정신 세계말입니다 공상도 시상의 원천이 될수있는것으로 그것은 시인의 자유이니까요 그러기에 시인은 현실에 항상 불만족하지요
(7)
김 시인님;
몇달전에 만융에 와 사시는 강효삼 시인께서 전화가 왔서요. <중국 코리언 명시 정선>이 출간 되였는데 미안해서 선생님께 드리지 못하겠다고., 왜냐 했더니 나의 시가 한수 밖에 수록하지 않았다는것이에요. 그래서 한 수라도 수록 되였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대단한 일이냐고 어서 가지러 가겠다고 하였어요 중국 백년 문학사에 한 수가 수록 되였다는것이 얼마나 영광스런 일입니까? 그래 무슨 시냐 했더니 <벽계수>라고 햇어요, 나의 시집 <징검다리>에서 리얼리즘시 <수몰된 기억>과 <자라곰탕>은 김학송 시인님의 발견으로 <중국조선족 명시>에 수록 되였고 유미주의 시 <벽계수>가 최룡관 시인님에 의하여 발견된것이예요. 시인은 시를 써놓고 명시를 썼는지 일반시를 썼는지 모르는것이에요, 다 다른 시인들께서 발견되는 것이예요
(8)
김 시인님;
시인은 사상성이 있어야하며 현실과 사람의 마음을 간파하는 예리한 눈이 있어야해요. 사상이 없으면 현실을 깊이 파고들지 못하니까요 모든 현상엔 모두 시로 승화할수있는 시가 존재해요. 나의 시 <구두쟁이와 시인> <점쟁이와 시인> <걸뱅이와 시인><상해의 걸뱅이에게> 등 모두 길가에서 찾은 시에요. <걸뱅이와 시인>에서 시인은 정을 동냥하러 다니는 시인이라 했어요. 물질 자극의 시대에 인정의 삭막성을 비판한시에요. <다화꽃 애가>는 정조와 정신세계가 무너짐을 절규했어요. 아마 내가 추구하는 정신 세계가 없다면 이런 현상을 시로 발견하지 못하였을 것이예요
시집 <자야의 골목길>에서 석화 시인님께서 극구 찬양한 <남경로의 정오>는 측은 지심을 시로 승화 시켰어요. 아무 시적 기교가 없고 무시되였지만 독자의 코를 시큼하게 하는 시에요 즉 감동이 있는 시에요
시인은 많은 책을 보아야해요, <사서 오경>을 보아 <3강 8목>을 알며 <황제 내경>을 보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알아야해요. <황제 내경>을 보고 깜짝 놀랄만큼 중국 문화의 심원성을 느꼈어요.. 나는 퇴계 리황의 책을 아직 보지 못했어요 시인이라면 퇴계의 4단 7정을 알아야 고운 마음으로 시를 쓸수 있다고 생각해요 즉 <측은지심>,<수치지심>, <사양지심>,,<시비지심>이 없으면 감동을 주는 시를 쓰지 못하니까요..시인은 마음이 어지고 선비정신이 있어야해요. 물질 자극으로인해 이 네가지 지심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습니다,그래서 나는 애상시를 많이 쓰는 원인의 하나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이 네가지 지심이 시인의 사상이자 마음으로 되여야 하니까요
(9)
김 시인님;
요즈음은 한국의 시 간물들을 보고 있어요 한국에서 어떤 시풍이 불면 연변에도 꼭 반응이 일어 나거든요. 한국에 시인들이 약 5000명이되지만 시간물을 운영하기 힘든 모양이에요 기본상 시인들이 시인의 독자이니까요 시를 발표하면 원고비는 주지 않고 5권 이상의 시간물을 사야해요, 그런데 <3류 시인>요 <아마추어 시인>이요 하는 쟁론이 가끔 보여요
이런것들이 때론 심기를 불편하게 해요. 시인들의 권위를 내세우는 현상이니까요.. 기실 시인에게는 권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요. 다만 <원로>이라던가 <로시인>이라던가 하는 자격이 있을 뿐이고 존경이 있을 뿐이에요. 시를 씀에 있어서 좋은 시를 쓰는것은 원로나 초학자나 평등해야해요 초학자들도 좋은시, 명시를 쓸수있으니까요, 시인을 서렬하고 등급을 나누는 것은 시문학의 비애에요
(10)
김 시인님;
우리 중국 조선족 시단에서는 한때 리얼리즘 시와 모더니즘 시가 격돌이 있었어요 물론 한국에서 불어온 풍파겠지요.. 그런데 그의 치명적 약점은 서로 부정하는데서 비릇된것이에요..우리 시단이 발전하려면 공조가 필요해요. 창작 방법에서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해야해요. 모더니즘 시를 주장하는 분들이 리얼리즘 시를 비자루로 깨끗이 쓸어 쓰레기통에 처넣어도 안되는 일이지요.. 그리고 리얼리즘 시를 쓰는분들도 모더니즘의 웃점을 접목 시켜야합나다. 문제는 어떻게 감동적인 시를 쓰는가, 어떻게 새로운 정서적 느낌이나 깨우치는 느낌을 주는가 하는문제에요, <한국명시집>을 보면 모더니즘 시와 리얼리즘 시가 감동을 주는 것이 많아요 또한 이 두개 창작 수법을 결합한 시들도 많아요.. 모더니즘시의 창작방법의 주요한 내용의 하나가 <낯설게>하는 수법이에요. 그런데 <낯설게>한다고 해서 언어가 까다롭고 읽기가 짜증나서는 안되지요. 어떤시는 언어의 <폭력적 조합>도 잘못 리해하고 시를 써요.. 언어의 <폭력조합>이나 언어의 <무의미>주장은 모두 극단적인 것이에요. 그리고 내가 저급 독자가 되서인지 모르겠지만 시적 내용이 무었인지 모를시가 많아요. 그런데 시인이 독자를 <저급 독자요> ><고급 독자요> 하는 말을 시인들은 좀 안하면 좋겠습니다.<한국명시집>을 보면 어느 계층의 사람들이 다 리해하고 접수할수있고 감동을 주는 시들입니다
(11)
김 시인님;
우리의 시와 시정신이 어느 바루 와 있는지 가늠하기가 힘듭니다. 시 정신이란 두가지 방면으로 나타나요. 어떤 태도와 마음으로 시를 쓰는가와 어떤 내용의 시를 쓰는가 하는것입니다. 시창작을 자기의 생명으로 여기는 시인과 심심풀이로 시를 쓰는 시인과 그의 시의 질이 틀리지요. 그리고 시의 정신이 다름에 따라 어떤 주제의 시를 쓰는가도 구별됩니다
나를 비릇해서 감동을 주지 못하는 시가 많아요. 지금 우리 시단에서는 시정신을 탐구하고 고양할때라 생각됩니다. 나는 시의 탈출구를 찾기위해 지금도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12)
김 시인님;
시인은 자기의 정감세계를 세상에 산포하려는 욕망과 독자를 감동시키려는 욕망이 있어요, 이것이 시인의 존재 가치에요, 돈도 안되는 시집을 왜 자비로 냅니까 ?
나는 이 방면에 체험이 있어요 무순의 한 조선족 녀생이 성폭력을 당한 기사를 읽고 분노하여 <료녕조선문보>에 시를 발표한적 있어요. 그런데 림금산 부총편집게서 전화를 걸어와 당시의 계광현 총편집게서 그 시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거에요..이것이 바로 시인의 존재 가치이지요. 시인은 군중의 애달픔에 눈길을 돌려야해요 그들의 애달픔이 나의 애달픔이라 생각되거든요.. 밀항하다 죽은 민족의 슬픔을 달래기위여 쓴 <밀항비곡>, 가출한 안해를 증오하여 쓴 <림종의 애원> <서탑 로무시장에서> , 상해에서 농민공의 딸이 유치원이 부러워 란간밖에서 우두커니 바라보는 불쌍한 <야생화>, 사치가 흐르는 상해와 어울리지 않게 길가에서 초라하게 앉아 강냉이를 씹어 먹는 <남경로의 정오> 로총각이 장가를 가지 못하는 애달픔을 노래한 <달밤의 애곡>. 상품경제의 기형적인 발전에 의하여 인정이 삭막해가는 <상해의 걸뱅이에게><아파트> 등 이런 시들은 군중의 애달픔을 노래한 시로 감동이 있는시라 생각되요, 그리고 우리민족이 연해로 진출하여 격는 애달픔 <상해에서 김치 파는 아가씨>, 고향의 집을 팔고 상해로 갓지만 다시 돌아오지 못한 신세가된 <코끝의 홍매꽃> 등 시인은 군중의 최하층을 관찰할줄 알아야해요,그래야 감동적인 시를 쓸수있어요.
(13)
김 시인님;
나는 시창작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주장해요. 이것은 민족의 정체성이 무너지데서 비릇된것이에요, 시인은 민족의 발자취를 더듬어 추종하며 구가해야해요, 우리 민족은
항일전쟁 해방전쟁을 통하여 무수한 피를 흘린 민족이에요. 그리고 무수한 황무지를 개간하여 나라에 공을 이룬 민족이에요, 우리 부모들의 감정정서를 리탈하면 좋은 시가 나오지 않지요, 개혁 개방 이후 외국 로무에서 외화를 중국에 벌어 들인 민족이에요. 그리고 한국 기업을 중국에 끌어들인 교량작용을 한 민족이에요, 이와 반면에 연해로 대성시로 진출하면서 문화가 무너지고 있어요. 시인은 바로 이런 격변기에 살고있어요. 이런 현상에서 시의 소재들을 발견해야해요
(14)
김 시인님;
한 시인이 몸부림치고 있음을 발견했어요. 바로 흑룡강에서 심양 만융에 와 사시는 강효삼 시인이에요. 만융은 민족 집거구역이지만 이방인으로 많은 고독을 느끼더라구요. 초라한 옷가짐, 몇년을 신었는지 가죽이 다 달아진 신, 키가 작고 여윈얼굴, 병에 시달려 굽은 허리, 정말 볼품이 없어요, 그와 만나 술좌석을 몇번했어요 그러나 시 정신은 강렬하게 살아 있었어요. 이전에는 생활이 가난해 원고비를 벌어 생계하려고 소설, 수필, 시를 마구 닥치는 대로 썼다는거에요, 이제는 시만 파고들어 가겠다 하더라구요. 아직 열정이 대단하시더라고요..그의 시를 보면 민족정신을 발굴하는 정서가 차분히 깔려 있어요. 우리 시인들은 역경에서 혼신을 문학에 이바지 하는 그의 정신을 따라배워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런것이 바로 시정신을 고양하는일이에요
(15)
김 시인님;
료녕시단의 현황은 어떠한가구요 ? 료녕은 약 30명의 시인 대오가 있어요 대부분 심양시조선족문학회(사단법인)의 산하에 활동하고 있어요. 이미 료녕시단의 판도가 구성된셈이에요. 나는 시분과 주임으로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어떻게 하면 시의 질과 량을 제고할까고, 우선 고무가 있어야해요. <연변문학>,<장백산>, <시향만리>등 잡지에 료녕 시인특집이 나가군하지요, 이에 여러 편집 선생님들에게 감사를 드리려요, 그리고 회원작품집 <료동문학>이 15기 마다 시인들의 시가 실리지요. <료녕조선문보> 압록강 부간에도 질 좋은 시들이 나가군합니다
우리 료녕시단은 현실과 생활에서 찾은 시소재들이 많아요, 감정이 진실하고 감동적인 시들이 많지요, 김창영, 김룡호, 박경남, 서정순, 김옥화, 박애자, 로춘애,류광순, 편도현, 김군등 성숙된 시인들과 현대파의 시 풍격을 가진 박경상, 정란등 시인들이 있지요 그리고 강효삼 시인이 오셔서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우리는 산재지구로서 모든 시풍격을 포용합니다.
연변 시인들의 말을 빌으면 시 쓰기가 편하고 행복한 곳이지요. 앞으로 시적 정신을 발양하여 더 높은 단계로 진출하리라 생각됩니다 비록 활동 기금을 구하기 힘들지만 각자가 자비를 내서라도 활동을 해야지요.
(16)
김 시인님;
평론계에 좀 말해도 될런지요.비록 평론계에 대하여 아는것이 없지만. 평론계에는 편파성와 편견성과 주관 취향성을 극복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평론가들이 높은 각도에 서면 공정성이 생기고 시각이 맞춰지는것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민족의 문학을 발견하고 고양하데서 평론의 작용이 중요합니다. 작품이 몸이라하면 평론은 옷입니다,옷이 날개란 말이있지않습니까, 몸의 곡선미가 아름다우면 입는 옷도 그 곡선미를 잘 살려내 더 아름답게 단장할수 있지 않습니까. 몸이 절구통 같거나 메주덩이 같으면 아무리 잘 단장 시키려도 격에 맞지 않습니다. 러시아에서 위대한 뿌슈낀과 레브 똘스또이.체호브 등 작가들이 있었기에 위대한 평론가 벨렌쓰끼가 있는것이 아닙니까
우리 료녕 문단은 몸매가 곱지 않아서인지 평론계의 관심이 적은것 같습니다. 좀 덜 곱더라도 고운 옷을 입혀 주시면 그래도 나설만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료녕에는 평론가가 없습니다. 평론가 선생님들에게 부탁하오니 밉더라도 좀 관심해주십시요
(17)
김 시인님;
중국 조선족 시단에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시인은 누구냐구요,?
존경하는 분은 많지요, 그중에도 리상각 선생님을 더 존경합니다. 그분은 나를 시와 <악연>을 맺게한 장본인 이니까요. 청년 시절 시창작에 불타 올랐을적에 그분이 나를 시단에 등단시켰습니다 그것이 70년대이지요. < 야, 너는 시가 안되니 걷어치워라>고 꽥 소리쳤다면 지금 이 신세가 안되였을지 모릅니다. 혹시 그랬다 말하더라도 꺼지지 않고 계속 시창작에 집념했을지도 모를 일이고요 여하튼 시인이 되겠다는 욕망으로 피가 끓었으니까요,
그 분의 <시전집> 뒤에 나의 시가 한수 실려 있더라고요, 8년전 연변 회의에 갔을적에 드린 헌시지요 그 분은 많은 시인을 시단에 등단 시켰지요.그리고 관심도 많이 하시고요. 제가 첫시집 <달밤의 기타소리>를 출간하였을적에 <고군분투하는 시인>이란 수필을 써서 <연변문학>( 1999년 10호)에 발표해 나를 고무격려 해주었지요, 지금도 그 수필을 고이 간직하고 있으며 가끔 들여다보며 고무를 받고있습니다
(18)
김 시인님;
저는 소방대 참군 시절에 3층에서 추락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가치에대하여 누구보다 깊이 느끼는 사람입니다, 시는 나의 생명과도 같아요,. 6개월을 병실에 누워서도 시를 썼어요. 지금 와서 보니 시가 뭐길래 ? 그러나 죽음에서 살아 나기 위한 안간힘으로 지금도 시를 씁니다. 그러기에 허탈감도 남보다 깊고 존재의 가치에 대한 추구도 남보다 강렬합니다. 이런 정신으로 저는 시를 계속 쓰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시인님;
시를 론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시인이라면 령혼과 의지의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시단이 이런 정신이 없으면 고립의 처지에 몰리게 됩니다, 애탄만 하지말고 노력해 봅시다.
심양시 소가툰 화원신촌 서재에서
2010년 3월 8일 <연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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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10가지 흥취(시창작 단상)
리문호
시를 쓰는 것은 시인의 정감과 정서의 심리적 현상이다. 물론 시인의 정감과 정서는 시인이 축적한 체험, 지식, 감각에서 오는것이 당연하다. 시인의 심리학을 연구하려면 지각과 감각, 형상 사유와 이미지, 사유와 언어, 운률과 정서, 정감과 의지, 체험과 기억,관념과 지향 등을 떠날수 없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이런 종합적 심리활동인 것이라 본다.
이런 리론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리론적으로 깊은 작업으로서 리론에 종사하는 분이나 시인들이 연구해야할 과제이다.물론 이미 연구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리라 생각된다. 나는 나의 시창작 경험에서 체득한 < 시를 쓰는 10가지 흥취>를 정리함으로서 시인 심리학을 연구하는데 혹시 참고적 재료가 될가하고 제공하는 바이며 시를 쓰는 초학자들에게 조금의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통속적으로 말해서 시를 씀에 흥취가 없다면 시인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시를 쓰는 것은 다른 심리활동과 구별되는 심리 상태로서 사회의 직업이나 명령, 임무의 속박을 벗어난 자유형이나 자발적인 심리현상이다. 또한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로워지는 미적 향수의 심리 현상이다. 이런 향수를 간단하게 <흥취>로 귀결하여 본다.
(1) 상상하는 흥취
시인은 상상하는 흥취가 있다. 몸은 비록 좁은 공간이나, 로동현장이나 술좌석이나 회의 실에나 혹은 커피점에 있지만 마음은 그 장소를 벗어나 대자연의 절경에나,누구와의 만남이나, 추억이나, 과거이나, 미래에나 혹은 동화나 신화속으로 가있다.정신부석학에서 단순이 말하는 이른바 <집중력>이 부족한 류의 사람에 속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현실, 력사, 미래, 추억, 혹은 동화, 환상, 공상.잠재 의식, 등 무한한 상상이나 련상속에서 시상이 발견된다. 시인의 정감활동의 무대는 상상이다. 그 무대(시인의 시적 세계)가 얼마나 큰 가에 따라 상상의 깊이와 폭이 결정된다. 시인은 자기의 시적 세계가 있어야한다 이 시적 세계는 자기만의 독특한 사유방식, 개성, 표현 능력, 풍격, 정서 등으로 구성된다. 상상은 미의 정신활동이다. 누구나 아름다움을 상상하려 하지 추한것과 악한것을 상상하려 하지 않는다. 특히 시인은 상상 사유, 즉 형상 사유가 발달되였으며 형상 사유의 기본 요소는 언어와 운률이다. 어떤 시적발견이 나타날때 그것은 시로 나타난다. 즉 한수의 시가 머리속에 생긴 것이다. 혼자 고요히 상상하는 것은 아름다움에 잠기는 좋은 일이다.
(2) 고독의 향수를 즐기는 흥취
현대인은 고독을 즐길줄 모르는 것이 탈이다. 고독하면 안절부절한다. 심지어는 고독을 참지 못해 우울증을 가지게 된다. 많은 예술가와 연예인들은 고독에 취약해 우울증이 쉽게 나타나는데 원인의 하나는 고독과 허무이다. 무대에서 수천 사람들의 박수 갈채를 받다가 일단 막이 내리게 되면 고독이 밀려온다. 공허하고 허무해진다. 즉 고독이다.그들이 고독을 극복하려면 공명심과 허영심을 최소한 억제하는 심리적 자질을 가져야한다. 그러나 시인은 원초로 고독한 사람이며 고독에 습관된 사람이다.고독속에 사유를 하며 고독을 합리하게 즐길줄 안다. 시인에게 있어서 고독은 상상과 작시의 좋은 환경이다. 혼자 적막하고 외롭다고 생각될때 책을 본다. 시를 본다. 그리고 조용히 상상의 려행이나 시정의 려행을 한다. 그러면 새로운 시가 생각난다. 이것이 바로 심리를 자아 조절하는 고독을 즐기하며 향수하는 흥취이다. 다른 시인은 몰라도 나 만은 고독할때 시를 쓴다.
(3) 자작시를 감상하는 흥취
자기가 쓴 시를, 특히 오래된 시를 가끔 읽어 보게 되는데 향수를 느끼군한다. 그 시를 쓸때의 감정 정서속에 잠기는 일은 즐겁다. 또한 부족점을 찾는일도 즐겁다. 시란 감정저서의 기록이며 자국이다.또한 인생행로의 자취이다. 자기의 시를 감상하는것은 감정과 상상의 기억에 대한 새로운 감수이다. 서안의 진시황릉을 밟는 향수, 무한의 황학루에 올라 장강을 굽어보는 향수, 황산에 올라 운해의 해돋이를 감상하는 향수, 백두산에서 천지를 내려다 보는 향수,력사의 유적지에서 수천년의 력사속으로 려행하는 향수, 어떤 시정에 잠기는 등등 자기의 시속으로 들어가는것은 한장한장의 사진을 보는것처럼 새로운 감수를 느낀다.그리고 이를 통해 자기의 시창작 개성을 다시 발견하고 발양한다.
(4) 시를 쓰고 다듬는 흥취
시 초고를 써놓았지만 설 익은때가 많다. 꼭지가 떨어 지지않고 풋내 나는 때가 많다. 그러면 푹 익게 나둬야한다. 즉 상상의 사유를 익게하는 것이다. 몇일후, 혹은 몇년후
혹은 몇십년후에 다시 보면 그 시의 수개 가치가 나타난다. 시인의 사유속에는 무수한 시적 소재들을 축적하고 시로 완성 시켜야한다, 그러야만 다산 시인이 될수있다. 그러기에 생활경력이 풍부해야하며 부단히 관찰하고 모색하는 습관으로 시적 소재들을 발견해야한다. 모든 시가 다 발표되는 것은아니다. 반복의 수개가 있어야한다. 어떤 시는 수개하다 보면 원래의 감정정서와 완전히 달라질때가 있다. 변화됨이 초고보다 못해 졌다고 생각될 때는 다시 원초로 돌아가 다시 수개하게 된다.어떤 시는 즉흥으로 써 놓고 만족되여 급급히 발표하였지만 후회할때가 많다. 이것은 과정과 시간이 부족한 탓으로 잘 다듬지 않은 결과이다. 한수의 시는 진물이 나도록 잘익어야한다 반복 다듬는 과정을 거쳐 푹익어 극치의 향기가 날때의 향수. 이를 다듬는 재미라 하겠다.
(5) 시적 발견에 흥분하는 흥취
시인에게 있어서 창의(創意)력은 중요하다.창의력은 부지런한 학습과 관찰과 사고에서 이루어진다. 시인에게 있어서 이 창의력을 발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며 동등한 의미를 갖고있다고 보야겠다. 관찰과 사유를 통해 습관된 사물이나 반복되는 생활속에서 문뜩 새로운 시적 발견이 나타날때가 있다. 어떤 일에 몰입하다가 문뜩, 잠을 자다가도 문뜩 령감이 떠오른다. 이럴때는 적어 놓아야한다.게으르면 잊어 버리게 된다. 그때의 정서를 놓치고 만다. 시적 발견은 나만의 것이여야한다. 다른 시인의 시와 류사하면 시적 발견이라 말할수없다.시적 류사성이나 일반화,도식화,보편화는 작시의 실패이다.다른 시인이 발견하지 못한 나만의 발견이 나만의 시를 완성시킨다. 물론 나만의 풍격과 나만의 개성도 뒤따라야 한다.개성이란 시인의 몸에 배여있는 특성이다. 이런 특성은 장기적인 시창작 활동을 통해 수립되며 또한 발전하고 개변한다. 시적 발견도 시인의 개성을 떠날수없다 시인에게 있어서 시적발견 보다 흥분되는 일은 없다. 시인은 이런 흥분이 있기에 시를 쓰는 모양이다.
(6) 대상을 위해 시를 쓰는 흥취
친구나, 동료나, 가족이나, 련인이나 그 어떤 대상의 마음을 이끌어 잡기 위하여 자기의 감정을 표백하거나 토로할때 시를 쓰는 흥취가 있다. 특히 애정시가 그런 경우이다. 애정시는 여러가지 감정 정서로 나타나는데 실련, 열련, 초련, 미련(迷戀), 추련(追戀) 등이 있다. 심지어 거리나 상가에서 스쳐간 전혀 모르는 대상을 위해 쓰는 시도있다.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 륙유는 평생 당완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쓴 애상시로 유명하다. 그의 사랑시는 애상으로 나타난다. 이를 귀납한다면 현실적으로 실존하는 사랑에 립각한 시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거나 실현할수 없는 리상적 사랑에 대해 쓰는 시가 있다. 사랑은 많은 시인들이 시인로 된 원동력의 하나이다.만약 한수의 시가 읽는 독자와 공명을 일으킨다면 기쁜 일이다. 기실 시는 혼자서 쓰지만 혼자서 감상하는 것은 시로서의 의미가 없는것이다. 자기의 감정을 세상에 퍼뜨리는 표현주의 문학이다. 하기에 독자를 사랑하는 것은 시인의 기본이다.여기서 <사랑>이란 독자에 대한 시인의 감정의 진실성을 말하는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시를 쓰는 동기는 언제까지나 시인 본인의 감정 에너지의 발로이지 독자의 구미에 맞게 쓰려고하는 것은 아니다.사회구조가 복잡하고 독자층도 복잡한 만큼 어느 독자층의 공명을 일으키는가 하는 문제일 뿐이다. 시를 써 놓고< 이것도 시야 ? >란 말을 들으면 불쾌한것은 당연하다. 시는 언제나 객관 사물에 대한 주관 심리 활동인것이다. 추상시라도 기실 객관사물이 우리의 두되에 반영된 결과이다. 이 심리 활동이 잘 되고 못 됨은, 공명을 일으키건 안일으키건 하는것은 독자들의 판단에 달렸다. 한수의 시를 잘 썻다고 자기는 흥미진진해 하지만 독자의 랭대를 받을 때가있다. 하기에 우리 시는 어떠한 독자층을 공명할수있는가를 막론하고 숨결이 담겨있어야하며 살아 있는 시를 써야한다. 대상을 위해 쓰는 시는 반드시 순정이여야 한며 진정이여야 한다. 슬프드라도,기쁘더라도, 간절하더라도, 감정의 진실성이 있어야한다. 위선이나 가식이나 언어 장난의 시는 그 효과에 손색이 간다. 죽은 시는 독자가 없다. 옛날의 좋은 시가 지금도 애독되는 원인은 그들의 시가 수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수의 시를 대상이 애독하고 사랑할때 시인에게 즐거움이 있는것은 당연하며 시창작 욕구가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7) 사물을 감수하는 흥취
시인도 모든 보편적 심리활동과 마찬가지로 지각과 감각으로 사물을 관찰하여 감수를 얻는다. 또한 정신 세계의 그 어떤 추상적 사고를 통해서도 감수를 얻는다. 그러나 추상적 사고도 객관의 활동에서 축적된 결과이다. 감수는 시적 발상의 기초이다. 인간의 사회활동속의 한 성원으로 감수를 할줄 모르는 둔감으로는 시인이 될수없다. 시인은 모든 사물과 마음을 교감하게 할수있는 특수한 사유의 교류방식이 있어야한다. 례를 들어 꽃을 대면하였을때 향기와 모양만을 감상할것이 아니라 음운을 감상해야하며 향, 빛, 색, 모양의 움직임 등에서 언어로 대화가 통해야한다 이것이 교감이다. 마음으로 사물과 이야기하는 것을 미적 향수를 얻는 시인에게 있는 특수한 능력이라 말해야할까. 흥미있는 것은 어느 대학의 저명한 교수 수묵화 화가는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킬때 학생들더러 시를 많이 읽으라고 강조한다. 즉 시정이 있어야 그림도 잘그릴수 있다는 것이다. 한폭의 수묵화가 시정이 없으면 죽은 그림이기 때문이다. 시의 매력은 사물과의 교감을 언어로 표현한 시정, 혹은 음운이라 말할수 있다.한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시각적 감각을 언어적 감각으로 두뇌에 전환하여 감상하는것이요 한수의 시를 감상하는 것은 언어적 감각을 시각으로 두뇌에 전환시켜 감상하는것이다. 즉 언어는 인류 사유의 가장 중요한 공구이다. 시인이 사물과 교감함에서도 언어는 감정교류의 매체이다.언어가 풍부하면 교감도 풍부해진다. 한수의 시를 구상하거나 감상할때 기실은 묵독의 과정이다. 즉 시각적으로 글을 보지만 두뇌에 반영되어 혀로 반사 시킨다. 랑독은 없지만 언어들이 혀에 와 닫는다. 외냐하면 목젖과 혀에 언어의 기억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각, 청각, 미각, 피부등의 감각 기능을 자극한다. 한수의 시를 감상하는것은 종합적 감각 기능의 활동 과정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인에게 있어서 사물을 감수한다는 것은 종합적 감각 기능의 언어적 활동이다고 생각된다.
(8) 운률과 감정이 률동하는 흥취
시는 운률의 문학이다. 언어를 조직함에 있어서 감정 정서의 률동과 유기적으로 배합되여야 한다. 쉬운 말로 말해서 언어 조직은 외재률이라 한다면 감정 정서의 흐름은 내재률이다. 언어로 감정정서를 어떻게 표현하는가는 시인의 수련과 리듬의 미적 관념과 밀접한 련관이 있다. 시인은 감정 정서의 흐름을 시적 언어로 잘 다듬어야 한다. 그러나 시인의 정감이 진실해야한다 시를 쓰면서 이런것에 류의 한다면 리듬에 감정을 실어 움직이는 미적 감수를 느낄수있다.
(9) 마음과 언어가 통하는 흥취
시인에게 있어서 언어는 형상 사유의 기본 원소이다. 언어가 결핍하면 감수도 결핍해진다. 유람하면서 어떤 절경을 본 감수를 언어가 부족하면 <야 !>하고 감탄할 뿐이지 표현해 낼수가 없다. 다만 시각적 기억으로 밖에 남지않는다. 그러나 언어가 풍부하면 시로 잘 묘사할수있다. 언어로 이미지를 그려 낼수있다. 시창작을 하면서 적당한 언어를 찾지 못해 고민할때가 많다. 수개란 기실 언어의 수개이며 감정 정서를 언어로 다듬는 수개이다. 알 맞는 언어를 찾지 못해 사전을 찾아 보아도 생각나지 않다가 문뜩 몇일이 지나 생각 날때가 있다. 기실 시인에게 있어서 언어가 중요한 것은 언어는 감정정서의 표기이기 때문이다. 언어의 수련은 시인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가장 간고한 것이며 경상적으로 탐구해야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인의 감정정서를 언어 외에 다른 어떤 수단으로는 표기할수 없기 때문이다.
(10) 심리적 효과의 흥취
시를 쓰는것은 미적 향수이다. 직업과는 관련이 없이 각분야의 직업에서 시인들이 배출된다.그것은 자기의 정감을 시란 쟝르로 누구나 표현하고 전달할수있기 때문이다. 시를 쓰는것은 객관사물이 혼잡하게 반영된 심리를 추리고 정화하는 과정이다. 시를 쓰기를 몰입하면 다른 불미한 인상들이 담박해지거나 사라져 마음이 가벼워진다. 청정해진다, 밝아진다.아름다움속에 머물게 한다. 분노할때 시를 쓰면 마음이 후련해질것이고 슬플때 시를 쓰면 마음을 달랠것이고 우울할때 시를 쓰면 경물에 마음을 의탁할것이다 이것이 바로 심리적 효과의 반응이다.
이상 시를 쓰는 열가지 재미를 나의 경험에 근거하여 생각나는 대로 정리하여 보았다. 물론 아직 리론적으로 승화하지 않은 나 자신의 경험인것이라 생각된다. 시인이 되여 부자가 되려는 것은 망상이다. 그러나 시인은 가난하더라도 고생하더라도 마음에 넉넉한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유로운 심리활동에는 언제나 경쾌함, 건강함, 명쾌함, 진실함, 순수함,후련함이 뒤 따르는 것이다. 상상은 힘겨운 생활에서 평온을 찾고 희망을 구상하고 미를 그리며 시정에 머무는 정신생활 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영상과 시인이 그리는 지향 펼쳐져 있다. 시인이 되는 것은 고군분투하는 일이지만 일반인이 감수할수 없는 정신적 행복이 있다.이런 의미에서 저명한 시인이 되는 목적 이기 보다는 누구나 다 시를 쓸수 있는 혹은 시를 감상할수있는 시대가 열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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