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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칼론 / 竹兄
2015년 05월 03일 13시 22분  조회:4127  추천:0  작성자: 죽림

식칼論 1

   

  창 틈으로 당당히 걸어오는

  햇빛으로 달구었어!

  가장 타당한 말씀으로 벼리고요.

 

  신라의 허황한 힘보다야 날카롭게

  정읍사의 몇구절보다는 덜 애절한

  너그럽기는 무등산 허리에 버금가고

  위력은

  세계지리부도쯤은 한 칼이지요. 

 

  흐르는 피 앞에서는 묵묵하고

  숨겨진 영양 앞에서는 날쌔지요.

  비장하는 데 신경을 안 세워도 돼.

  늘 본관의 심장 가까이 있고

  늘 제군의 심장 가까이 있되

  밝게만 밝게만 번뜩이면 돼요

  그의 적은

  육법전서에 대부분 누워 있고……

  아니요 아니요

  유형무형의 전부요

 

 

 

식칼論 2-허약한 詩人의 턱밑에다가

   

  뼉 다귀와 살도 없이 혼도 없이

  너희가 뱉는 천 마디의 말들을

  단 한 방울의 눈물로 쓰러뜨리고

  앞질러 당당히 걷는 내 얼굴은

  굳센 짝사랑으로 얼룩져 있고

  미움으로도 얼룩져 있고

 

  버려진 골목 어귀

  허술하게 놓인 휴지의 귀퉁이에서나

  맥없이 우는 세월이나 딛고서

  파리똥이나 쑤시고 자르는

 

  너희의 녹슨 여러 칼을

  꺾어버리며 내 단 한 칼은

  후회함이 없을 앞선 심장 안에서

  말을 갈고 자르고

  그것의 땀도 갈고 자르며

  늘 뜬눈으로 있다

  그 날카로움으로 있다.

 

 

 

식칼論 3

   

  내 가슴 속의 뜬 눈의 그 날카로움의 칼빛은

  어진 피로 날을 갈고 갈더니만

  드디어 내 가슴살을 뚫고 나와서

 

  한반도의 내 땅을 두루 두루 날아서는

  대창 앞에서 먼저 가신 아버님의 무덤속 빛도 만나 뵙고

  반장집 바로 옆 집에서 홀로 계신 남도의 어머님 빛과도 만나 뵙고

  흩어진 엄청난 빛을 다 만나 뵙고 모시고 와서

  심지어 내 男根 속의 미지의 아들 딸의 빛도 만나 뵙고

  더욱 뚜렷해진 無敵의 빛인데도, 지혜의 빛인데도

  눈이 멀어서, 동물원의 누룩돼지는 눈이 멀어서

  흉물스럽게 엉뎅이에 뿔돋친 황소는 눈이 멀어서

  동물원의 짐승은 다 눈이 멀어서 이 칼빛을 못 보냐.

 

  생각 같아서는 먼 눈 썩은 가슴을 도려파 버리겠다마는,

  당장에 우리나라 국어대사전 속의 「改憲」이란

  글자까지도 도려파 버리겠다마는

 

  눈 뜨고 가슴 열리게

  먼 눈 썩은 가슴들 앞에서

  번뜩임으로 있겠다! 그 고요함으로 있겠다!

  이 칼빛은 워낙 총명해서 관용스러워서

 

 

 

식칼論 4

 

  내 가슴 속의 어린 어둠 앞에서도 

  한 번 꼿꼿이 서더니 퍼런 빛을 사방에 쏟으면서 

  그 어린 어둠을 한 칼에 비집고 나와서 

  정정당당하게 어디고 누구나 보이게 운다. 

  자유가 끝나는 저쪽에도 능히 보이게, 

  목소리가 못 닿는 저쪽에도 능히 들리게 

  한 번 번뜩이고 한 번 울고 

  번개다! 빨리 여러 번 번뜩이고 

  천둥이다! 크게 한 번 울고 

  낮과 밤을 동시에 동등하게 울고 

  과거와 현재와 까마득한 미래까지를 

  단 한 번에 울고 칼끝이 뛴다. 

  만나지 않는 내 가슴과 너희들의 

  벼랑을 건너 뛰는 이 無敵의 칼빛은 

  나와 너희들의 가슴과 정신을 

  단 한 번에 꿰뚫어 한 줄로 꿰서 쓰려뜨렸다가 

  다시 일으키고, 쓰러뜨리고, 다시 일으키고 

  메마른 땅 위에 누운 나와 너희들의 國家 위에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끌어다 놓고 

  더욱 퍼런 빛을 사방에 쏟으면서 

  천둥보다 번개보다 더 신나게 운다 

  독재보다도 더 매웁게 운다.

 

 

 

식칼論 5

    

  왜 나는 너희를 아슬아슬한 재치로나마 쉽게 못 사랑하고

  너희가 꺼리며 침까지도 빨리 뱉는

  내 몸뚱아리까지도 아슬아슬한 재치로나마 쉽게 못 사랑하고

  도둑의 그림자가 도둑의 그림자가 사알짝 덮치듯,

  그렇게나마 못 만나고,

  너희들이 피하는 내 땅과

  내가 피하는 너희들의 땅은

  한번도 당당히 못 만나는가

  땅속 깊이 침묵으로 살아서

  뼉다귀가 뼉다귀를 부르는

  저 목마른 음성처럼,

  땅 속 깊이 아우성으로 흐르는

  저 눈물같은 물줄기가

  물줄기를 만나는 끈기처럼

  만나지 못하고 왜 사랑하지 못하는가.

  내 홀로 여기 서서

  뜨드득 뜨드득 이빨 갈듯이

  내 정신만을 가는가

  내 외로운 살결은 살결끼리 붙어서

  시간을 가는가, 아아 칼을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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