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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야마 슈우시(寺山修司1935-1983)의 첨예한 아방가르드 시
나의 이솝
-테라야마 슈우시(寺山修司)
1.
초상화 속에
그만 실수로 수염을 그려 넣어버렸으므로
할 수 없이 수염을 기르기로 했다.
문지기를 고용하게 되어 버렸으므로
문을 짜 달기로 했다.
일생은 모두가 뒤죽박죽이다
내가 들어갈 묘혈(墓穴) 파기가 끝나면
조금 당겨서라도
죽을 작정이다.
정부가 생기고 나서야 정사를 익히고
수영복을 사고나면 여름이 갑자기 다가온다.
어릴 때부터 늘 이 모양이다.
한데
때로는 슬퍼하고 있는데도 슬픈 일이 생기지 않고
불종을 쳤는데도
화재가 발생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여 개혁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바지 멜빵만
올렸다 내렸다 하고 있는 것이다.
눈물은
인간이 만드는 가장 작은 바다이다.
개가 되어 버렸다.
법정에서 들개사냥꾼이 증언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도대체 누가 개가 되어 버렸을까?
개가 되기 전에 당신은 나의 아는 사람 중의 누구였습니까?
크로스워드 퍼즐 광인 교환처(交換妻)
선원조합 말단회계원인 부친
언제나 계산자를 갖고 다니는 여동생의 약혼자
수의(獸醫)가 못되고 만 수음상습자 숙부
하지만 누구든 모두들 옛날 그대로 건재하다.
그러면 개가 되어버린 사람은 누구인가?
세계는 한 사람의 개 백정쯤 없어도 가득 찰 수 있지만
여분인 한 마리의 개가 없어도
동그랗게 구멍이 뚫리는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다윈의 진화론을 사러 갔다가
한 덩이 빵을 사서 돌아왔다.
4.
고양이……다모증(多母症)의 명상가
고양이……장화를 신지 않고는 아이들과 대화가 되지 않는
동물
고양이……먹을 수 없는 포유류
고양이……잘 안 써지는 탐정소설가
고양이……베를리오즈 교향악을 듣는 것 같은 귀를 갖고
있다
고양이……재산 없는 쾌락주의자
고양이……유일한 정치적 가금(家禽)
5.
중년인 세일즈맨은 갑자기 새로운 언어를 발견했다.
마다가스칼語보다 부드럽고 셀벅로찌어語보다도
씩씩하고 꿀벌의 댄스 언어보다 음성적이며 의미는
없는 것 같고 표기는 될 것 같으면서도 안 되고 새들에게는
전혀 모르는 것 같은
새로운 언어다.
<새로운 세계>
라고 세일즈맨은 그 언어로 말을 하고 나는 해석하여 감상했다.
그리고 얼마 후 중년인 세일즈맨은
가방을 든 채 벤치에서 죽고
친척도 없이 신분증명서만이
그의 죽음을 증명했다.
나는 그가 발견한 새로운 언어로
그의 죽음을 증명했다.
말을 걸어 봤으나
아이들은 웃으며 도망치고
일꾼들은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빵집에서는 빵도 팔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세계>
가 새로운 언어로 되어 있는 것인지 새로운 언어가
<새로운 세계>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것인지를 알기 위하여
말을 거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
라는 새로운 언어가 통할 때까지
지나가는 그들
사물의 folklore
가라앉는 석양을 향해
나는
말을 건다
말을 건다
말을 건다
말을 건다
말을 건다
말을 건다
6.
불행이란 이름의 고양이가 있다.
언제나 나에게 바싹 붙어 있다.
7.
도포이송한 와우여
한도포이송 여와우
송도포이한 우여와
포송이한도 우와여
여우와 한 송이 포도를 종이에 쓰고
한 자씩 가위로 잘라
흐트렸다간 다시 아무렇게나 나열해 봅니다.
말하기 연습은
적적할 때의 놀이입니다.
*《일본현대시선》 도서출판<청하>(1984년 간행. 박현서 역)에서 발췌
일본 천재시인
테라야마 슈우시(寺山修司1935-1983)의 첨예한 아방가르드 시,
『나의 이솝』을 소개하며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주말을 맞았다. 사방에서 단풍드는 소리,
간간히 빗소리에 섞인다.
오랜만에 서점에 들러 시집 몇 권을 샀다.
늦었지만 올해의 노벨상시인 토마스트란스트뢰메르의 <기억이 나를 본다>와
W.H. 오든의 시집, 그리고 마야코프스키의 책도 샀다.
모두 밋밋하고 잘 와 닿지 않는다.
원작이 시원찮아서 그럴 리는 없고 역시 번역의 문제점일 것.
어쨌든 시로써 나에게 다가서지는 않는다.
한글번역본과 영문번역본이 함께 편집된 도서출판<들녘>의 책에는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 소식이 전해진 바로 다음 날 내가 졸역(拙譯)했던
시
사온 책을 덮고 일본 시인, 테라야마 슈우시(寺山修司1935-1983)의 시를 읽는다.
그의 전위적인 시는 번역시라기보다도 원어로 읽는 느낌에 가깝다.
이 괴짜배기 시인은 아방가르드의 진미를 적나라하게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자유혼, 인생관을 한 편의 시 속에 그토록 알뜰하게 쏟아 부었다.
내가 그의 시를 만난 것은 오랜 유랑에서 돌아와 문학에 다시 몰입하기 시작한
1980년 중반의 일이다.
혼자 경주로 3박4일 무전여행을 작정하고 떠났다가 중도에 경주남산을 포기하고
이틀 만에 돌아와 서울역 근처 헌책방에 처박혀 몇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때 내 눈에 번쩍 들어온 한 권의 헌책.
그 책이 바로 <일본현대시선>이다.
이 책에는 22명의 일본 현대시인의 시가 소개돼 있으나 그 어떤 시인도
나를 반기지 않았다.
다만 이 번역본이 나온 1984년 바로 전해인 1983년에 약관의 나이 48세로
요절한 테라야마 슈유시가 그처럼 나를 애타게 나를 기다리다가 떠나버린 것이다.
그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라 나에게는 안타까운 필연.
문학청년이던 고등학교 시절 좋은 시에 목마르던 때에 시인 조향(조섭제)을
만난 사건 이후 또 하나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 시를 번역한 박현서 시인(1931년 김해 출생. 시집 <인간> 1958년 간행)에게도
깊은 경의를 표한다. 박 시인을 찾아내고 싶으나 아는 사람이 전무하다.
그는 테라야마 슈우시를 제대로 이해한 시인이자 번역자일 것이다.
김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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