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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저리의 기능
우리는 지금껏 이미저리의 여러 유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이미저리들은 개별적으로 시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이며 여러 가지 시의 기법들과 어울려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미저리는 시 속에서 시를 형성하는 다른 요소들과 유기적으로 결합되면서 그 기능이 발휘되기 때문입니다. 이미저리는 시의 율격, 음율, 리듬, 문체, 문법의 체계, 시점, 압축방식과 확대방식, 선택과 생략의 방법, 인물, 행동, 사상의 양상들과 적절히 통합하여 새로운 의미구조를 드러내는데 적합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미저리가 갖는 기능은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 곤란하지만 그것이 갖는 영역은 시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정신현상으로서의 이미저리, 언어현상으로의 이미저리, 상징현상으로서의 이미저리가 시 속에서 무엇을 얻고 어떻게 작용하는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미저리가 시 속에서 나타내는 기능을 몇 가지로 대별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이미저리는 시 속의 화자가 말하고 있는 제재(사물, 대상)를 지시한다.
2) 제재는 축어적 이미저리에서 비유적 혹은 상징적 이미저리로 전환된다.
3) 이미지들은 시 속에서 하나의 유추가 된다.
이러한 기능이 시에 어떻게 드러나는지 실제 작품을 가지고 살펴보겠습니다.
햇살 거두운 들녘엔
억새풀 시린 몸짓
낙엽의 서러운 한숨
분명
힘겹게 달려 온
계절의 끝.
남아 있는 한 자락 햇살에
기쁨에 들뜬 마른 가지
그리움 안고 꿈꾸는
분명
노을 빛 따스한
계절의 시작.
독자의 시 <겨울 그 이름> 전문
‘햇살 거두운 들녘’이 갖는 이미저리는 소멸하는 공간, 퇴행하는 시간입니다. 그것은 또 다른 이미저리 즉 ‘억새풀 시린 몸짓’이 드러내는 차가움과 ‘낙엽의 서러운 한숨’이 지칭하는 죽음의 정조와 무관하지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계절의 끝에 걸리는 제재이기 때문입니다.
2연에서도 ‘남아있는 햇살’이 주는 이미저리는 곧바로 ‘기쁨’으로 연결되고 이는 다시 ‘꿈꾸기’라는 희망적인 이미저리로 비유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계절의 시작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미저리들은 이 시의 제재인 ‘겨울’을 지시하며 그것의 의미를 유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의 구조는 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계절의 끝’ 과 ‘계절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이 구조를 가지고 접근해 보면 이 시는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겨울을 인식하는 작자의 태도가 바로 손쉽게 드러나는 구조이며 이 시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미저리는 바로 겨울이 가진 이중성이라는 것입니다. 겨울이기 때문에 끝이고, 그러기에 슬픈 이미지가 서려 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지은이는 봄을 간직하고 있는 출발이 가까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미저리는 누구나 손쉽게 유추해 낼 수 있는 평이한 이미저리이며 평면적인 이미저리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미저리가 위와 같은 세 가지 기능을 수행하면서 얻는 것은 다음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시 속의 화자가 말하는 것을 보다 명료하게 깨닫게 해 줍니다. 겨울이 춥다든가 쓸쓸하다든가 하는 관념적인 표현보다는 몇 개의 이미저리로 그 분위기를 드러냄으로써 한결 독자들의 이해에 쉽게 부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시 속의 화자의 반응은 자신의 정서와 연결되며 따라서 시의 독특한 정조를 깨닫게 합니다. 위 시에서 ‘힘겹게 달려 온/ 계절의 끝’이 바로 시 속에서 말하려는 화자의 정서인 것입니다.
셋째로 이미저리는 시 속의 화자의 의식성을 환기함으로써 화자의 정신활동을 자극하고 그 활동을 표출시켜 줍니다. 시 속의 화자가 가진 생각을 드러나게 한다는 것이며 그에 반응하는 화자의 태도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시인이 이미저리를 취급하는 것은 세부의 선택과 비교를 통해 독자에게 시적 상황을 암시하려는 것입니다. 동시에 시적 상황 속의 다양한 여러 요소들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유인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독자의 기대감을 이끌어 가면서 의미를 환기하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이미저리가 얻는 이익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제재의 환기, 화자의 정조, 사상의 외면화, 독자의 태도를 지시한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불허의 가시로 지은 집에
가을햇살 초연히 문 두드리면
윤기 있는 맑은 이마
빛이 돋는다
비바람 세어도 푸른 이지로
동자 고이 숨겨 놓고
들국화 향기 드러나는
금빛 들녘이면
비로소 땅 위로 내려와
이 가을 스며 오는
모든 의미 속에서
그리움 하나가 된다.
독자 김남영의 시 <알밤> 전문
위 작품은 밤이 익어 가는 과정을 형상화시키고 있습니다. 알밤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그것이 가진 특징적인 이미저리를 차용하여 알밤이 가진 의미를 재구성하여 펼쳐 보인 작품입니다. 물론 마지막 연에서 ‘모든 의미 속에서/ 그리움 하나가 된다’와 같은 불투명한 이미저리가 이 시를 단단하게 매어놓지 못하게 하는 부분 이기도 하지만 지은이는 이미저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미저리가 획득하는 내용 혹은 그 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각 이미지들은 화자의 말을 매우 명료하게 만든다. 시적 화자가 말하는 내용을 분명하게 말하며, 물질이 가진 특성이 섬세하고도 정확하게 기록된다.
2) 명료한 이미지들이 시적 정서의 등가물로 나타남으로써 (화자의 정서와 결합됨으로써) 시의 독특한 어조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3) 이미지들의 결합은 시 속의 화자의 의식성을 환기한다. 그 말은 곧 화자의 의식성을 현실화한다는 것이다.
4) 이미지들이 그 디테일의 선택과 대조를 통하여 시적 상황을 암시한다.
5) 각 이미지들의 유기적 결합, 곧 이미저리는 우리의 기대를 인도하거나 환기한다. 이미지들의 전개에 따라 우리는 어떤 정서적 태도를 예기하며 동시에 시가 우리에게 주는 시적 메시지를 이해하게 된다.
소스라치게 긴 인고의 세월을
잘 인내하며 참아온 한 송이의 꽃처럼
당신의 굵은 주름은 눈물의 계곡으로 피어났고
황금빛 노란 물결의 벼는 당신의 모습이어라
독자의 시 <친정 어머니>
이 시는 비유적 이미저리로 구성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한 송이 꽃 = 어머니’와 ‘굵은 주름 = 눈물의 계곡’ 같은 비유는 안이한 비유에 속합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비유이기에 새로운 모습을 제공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미저리가 신선하지 못할 때 그 시가 갖는 생명력은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이미저리를 갖기 위해서는 사물(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언어의 유기적 결합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미저리는 그것만의 문제가 아니라 총체적인 시의 접근을 의미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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