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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황동규 - 즐거운 편지
2015년 12월 23일 03시 12분  조회:4890  추천:0  작성자: 죽림
 
    • 즐거운 편지 - 황동규
  •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언제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옆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위 시는 소설가 황순원의 아들 황동규가 2002년인가 1년에 서정주 기념 대상에 '탁족'과 더불어 수록되어 서정주시인 대상을 차지한 시의 전문이다. 평론가 이어령도 평했듯이 우리나라 시의 이놈의 다다다 따발총 어미는 정말이지 신경질이 나는 요즘 시의 대부격이다. 그럼에도 서정시의 뭣으로 선정되어 수상하게 된 시이니 뭐라 할 말은 없으나 나름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내용으로 보아 즐거운 편지 제목이 가당치 않다. 추억의 편린을 묘사 했으니 편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것이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이라 하면서 (그렇게 사소한 그대, 그 사소한 사랑이라면 뭣하러 생각하고 뭣하러 그리워하는가~)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대가 볼때에는 사소한 일이나 그대가 언뜻 생각해줘서 기억이 나면 서로 그리워 한다는 평범한 일을 상대편이 듣고 해석하기에는 신경질나는 표현과 문법에도 안맞는 수사로 호도하고 '진실로 진실로'라는 성경적 구사를 하여 자신을 극도로 폄훼하게 만드는 우를 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영문과 교수답게 문맥적 어리숙함을 읽는 독자에게 호도하여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이시가 돌출되도록하는 기교를 부렸다. 그러면서 마지막 6행처럼 그냥 세월 흘러가 듯 그리움을 묘사했다. <내사랑도 언제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라는 기가 막힌 표현도 그 다음 문구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이렇게 사랑의 깊이도 없고 상대가 사랑한다고 매달리면 그때 상황을 봐서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한다는, 불륜을 조장하고, 믿음을 상실하게 하며, 스스로의 난봉꾼임을 자랑하는.... 자세> 라는 진짜로 왕짜증나는 허식의 사랑 자세로 환장하게 하는 저열함을 보여준다. 하, 우리가 시를 읽음에 간과해서는 안될 일은 복선의 묘라 하겠다. 너무 일직선적인 시를 문맥이 매끄럽다고 좋은 시라 평할 수 없 듯 위 시도 그나마 다행이라면 복선을 두었기에 평점이하의 비평을 스스로 나눠먹는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으로 바꿔놓은지도 모르겠다.<명>
  •  
이 시를 황동규시인이 19살에 썼다고 했다.
감성적이지만 그 감성에 매몰되지않고 거리를 둔 이성이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시.ㅡ
 
 

* 어느 문학기자와 황동규 시인의 인터뷰 기사

 

 

                ㅡ가끔은 이런 '홀로움'에 ...

 

 

 

시인 황동규님의 연구실 문을 열었을 때 시인은 보이지 않았다.

한 걸음 들어서는 순간 책상 쪽에서 언뜻 그의 얼굴이 비친 것도 같은데 반짝 빛 무리가 번졌다가 사라진 듯한 느낌.

이내 시인과 마주앉고 보니 머릿속이 환해져 왔다.

시인의 단단해 보이는 얼굴은 막 세수를 한 것처럼 맑았다.

지칠 줄 모르는 정열로 변화를 거듭하는, 육순이 지난 나이에도 젊음의 시정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얼마 전 열한번째 시집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를 출간했다.

"이번 시집은 더 정열적이고 폭도 한층 넓습니다.

30여 년을 키워 온 귓병을 수술하고 나서 쓰기 시작한 시들이지요.

수술하고 나서 정말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 힘이란 새봄의 충만한 기운 같은 것이 아닐까?

1997년 1월부터 99년 12월까지 꼬박 3년 동안 쓰여진 시를 묶은 이 시집은 '이 세상에 함께 살아 있는 그 무엇'에 대한 사랑과 '홀로움'을 노래하고 있다.

 '홀로움'은 그가 만든 시어로, "외로움을 통한 혼자 있음의 환희"라는 뜻이다.

 

"시인은 숙명처럼 외로운 존재지요.

하지만 시인의 외로움은 외로움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시인이 가난한 것 역시 세상이 원하는 대로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선 좋은 조건이지요. 시인이 부유하거나 외롭지 않으면 시가 써지겠어요.

 

"밤바다에 홀로 서 있는 등대의 외로움이 있을 때 항해하는 배의 외로움은 사라지는 것처럼, 시인의 운명은 등대를 닮았다.

황동규 시인이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고교시절. 그때 교지에 실린 <즐거운 편지>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으로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즐거운 편지> 중에서)

 

"<즐거운 편지>는 한 살 연상인 여학생을 짝사랑하여 쓴 시이지만 쉬운 사랑 시 만은 아니에요.

실존주의가 밑에 깔려 있고 소월 시나 한용운 시처럼 한으로 끝나던 사랑 노래를 거부한 것이지요.

사랑도 언젠가는 끝나겠지요,

눈이 그치는 것 처럼요.

이 세상에 끝이 없는 건 없어요.

 

"학창시절엔 수재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총명했던 그는 68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더구나 시인의 아버지는 대작가 황순원 님. 하지만 그는 그런 조건들이 넘어야 할 산이었다고 고백한다.

"타고난 좋은 조건은 살면서 싸워야 할 대상이에요.

결국엔 별로 좋은 조건이 아니지요.

특히 시인에게는….

"그래서 시인은 순탄하기 만한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자주 시도했나 보다.

그는 '일상 벗어나기'의 의미로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났다.

그래서 여행 중에 길어 올린 시들이 많다.

시인의 40여 년 시력에 중요한 기점이 되는, 82년부터 14년 만인 95년에 이르기까지 70편으로 마무리한 연작시 <풍장> 역시 그렇다.

풍장은 남해안 지방의 장례풍습으로 시신을 초분에 안치하여 탈골될 때까지 놓아두는 것.

이 시집의 화두 역시 '죽음'이다.

하지만 삶의 허무와는 거리가 멀다.

 

"<풍장>을 쓰면서 죽음과 삶은 한 가지에서 피는 꽃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삶은 죽음을 통해 볼 때 더 절실해지고 간절해집니다.

죽음이 없다면 삶의 의미도 달라지지 않겠어요?

계속 아름답다면 그 아름다움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삶도 마찬가지죠.

 

"그의 시의 매력은 '힘'에 있다.

'죽음의 계곡' 사막에서도 생명의 냄새를 맡을 만큼 그의 시는 역동적이다.

서정시도 힘이 있어야 한다는 그의 시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시 속에서 시인의 자아가 변해 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른바 극서정시. 자아의 변화를 따라 좇아가다 보면 마음을 쩡, 하고 울리는 깨달음에 이른다.

 

"시 속의 자아가 변하고,

시인이 변하고,

나아가 독자가 변하고….

변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고 문학이 아닙니다.

변해 간다는 건 그만큼 열심히 살고, 거듭난다는 의미지요.

 

"「오미자 한밤중에 보해소주 30도를 빈 델몬트 병에 붓고 / 익기를 기다린다. / 아, 차츰차츰 더 바알간 색. / … / 내가 술 분자 하나가 되어 / 그냥 남을까 말까 주저하다가 부서지기로 마음먹는다. / 가볍게 떫고 맑은 맛!」(- <오미자술> 중에서)

 

다시 태어나도 시인으로 살겠느냐는 물음에,

"그건 알 수 없지요.

지금 생에 내게 주어진 건 시인이라는 몫의 삶일 뿐, 다음 생엔 혹 벤처사업가가 되어 있을 수도 있겠지요" 하고 허허 웃어 버린다.

그 웃음엔 지금 당장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속말이 숨어 있다.

시인은 지금 당장 시를 쓰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안타깝지 않다고도 했다.

삶은 시보다 중요하지도 중요하지 않다고도 볼 수 없는 것,

왜냐하면 시와 삶은 공존하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내 옆에 같이 앉아 있던 시인의 낡은 가죽가방을 가리키며 얼마나 되었느냐고 물었다.

"10년은 넘었을 걸요.

" 그 가죽가방에 호기심 많은 시인은 날마다 무얼 넣고 다닐까, 생각했다.

마침표 찍지 못한 시들의 분절음들이 와글거리고 있을까?

언젠가 우리 앞에 빛나는 모습을 드러낼 그 시들이 문득 궁금해졌다.

문밖까지 따라나온 시인과 가볍게 악수,

복도끝 유리문으로 햇빛이 와르르 쏟아져 들어오는 걸 보고

'그래, 오늘부터 봄이다' 작정하고 문득 돌아보니

그가 다시 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딸칵, 문 닫는 소리.

 

필자 : 김선경님 기자 



 

 

시인탐방 ㅡ

이별과 여행으로 다진 시인의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40년 창작생활

겨울나무처럼 외롭고 쓸쓸한 삶을 지성으로 노래하는 시인 - 황동규시인 


관악산 곳곳에 낙엽이 지고 있다. 지나간 날들을 그리워하듯 푸른 하늘에 눈빛 몇 점 떨군 채 포물선을 긋는다. 서울대 인문관 2동 3층 황동규 시인 연구실에 들어섰을 때 손 때 묻은 누런 책들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서재의 이 빠진 모습이 이미 짐 정리 중임을 말해준다. 

올해 나이 예순 다섯. 그이는 68년부터 몸담았던 이 대학을 6개월 후면 떠난다. 풍장에서처럼 생사의 갈림길은 아닐지라도 긴 세월 정든 교정을 떠나려니 덧없는 세월은 주마등처
럼 스치운다. 

봉준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부드럽게 우는 법만알았던들,/왕 뒤에 큰 왕이 있고/큰 왕의 채찍!/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포(砲)들이 얼굴 망가진 아이들처럼 울어/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들,/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귀 기울여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무식하게 무식하게.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 전문)

* 애증의 시대를 노래한 베스트셀러 시인

바야흐로 봉준이처럼 중무장한 가슴으로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계절이다. 그이는 신춘문예 심사를 맡고 있는 중앙문단의 대표적인 시인이기도 하다. 특히,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은 1978년 민음사에서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도 7만 권이 넘게 팔린 스테디셀러이다. 많은 신춘문예 준비생과 대학생들의 인기를 차지한 시집이다. 

길거리 리어카에서도 장엄한 성우의 목소리에 배경음악이 깔려 나오던 애송시 낭송 테이프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봉준이가 운다,무식하게 무식하게...."라는 그 성우의 목소리가 군홧발 뒷꿈치에서 튀던 유신시대를 지나 5공화국으로 접어들면서 눈보라치는 겨울과 애증이 얼버무려진 시편은 가슴을 축축이 적셔주기에 충분했다. 

우리 나라를 일컫는 삼남의 시린 삶이나 민족적 한(恨)을 노래하고 있는 이 시집 속에는 이런 흐름의 시로 계엄령 속의 눈, 비망기, 전봉준, 태평가 등이 더 있다.

황동규 시인은 1938년 평남 영유군 숙천에서 태어났다. 평양에서 40리 떨어진 대동군 재경 초등학교 1학년 때 해방을 맞았고, 이듬해 가족과 함께 남하했다. 고교시절 마종기 시인과 친하게 어울렸고 교과서 대신 타고르 예이츠 영문시집 읽기에 푹 빠져 지냈다. 그러면서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았고 서울대 문리대에 수석 입학했으니 수재이자 문재였던 셈. 대학 진학 때 법대나 의대 쪽 보다는 문리대를 원했고 아버지는 "후회하지 않을 길이면 가라" 했다. 일제 말엽 자신도 다른 아이들처럼 히라가나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을 때 아버지가 울던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이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소나기, 타인의 후예로 유명한 국민작가 황순원 선생의 아들, 그리고 동시대 대표적 지식인이면서 동시에 독자대중을 이끌고 있는 보기 드문 시인이다. 올곧은 인생철학과 처신, 순수 문학정신으로 일관했던 선생의 뜻을 기르기 위해 후학들이 사회장으로 치르자고 했을 때 상주인 황동규 시인은 이를 정중히 거절했었다. 평소 아버지와 비교되는 것을 꺼려했던 그이지만 겸손과 소박함으로 일관한 부친의 세세한 삶의 흐름만은 놓치지 않았던 셈. 

부친이 타계하자 언론사의 인터뷰를 거절한 채 홀연히 백령도로 떠났던 그이는 아버지의 삶과 문학 혼을 짤막한 시로 남겼었다. 부동산은 없고, 몇 병의 술과 셔츠 하나, 그리고 웃으시는 사진 한 장뿐이었다는. 

준엄했던 그 아버지를 뛰어넘기 위해 죽어라 뛰어 온 날들. 그렇게 대학 1학년 끝 무렵 갓 스무 살에 미당 서정주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당시 폐허 속에서 명동이나 무교동 술집에서 오징어 명태 혹은 감자국에 소주를 마시며 윤동주 서정주 김수영 엘리어트 시를 섭렵하고 삶과 문학을 외치던 문학 청년시절이었다. 

* 죽음 노래한 풍장을 넘어 우주로 관심 돌린 작품 세계로 미당문학상 받아

흐르는 물빛 같은 세월. 등단 당시 스승인 미당의 문학적 업적을 기르는 미당 문학상에 그이가 수상자로 결정됐다. 김현 평론가와 함께 늘 새배 다니던 미당. 친일 어용시비와 별개로 미당 시를 읽고 감동 받은 사람들은 그 감동을 진솔하게, 실존적으로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이는 미당의 작품의 진정성, 나르시시즘, 토속어와 신라정신 등을 배웠다. 

그이는 시란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등단 이후 여러 변모를 거듭해온 시 세계는 이번 미당문학상 수상작 적막한 새소리처럼 풍장을 넘어 삶을 궤적을 뚫고 다시 우주와 내통한다. 예수, 석가, 원효, 니체 등 성(聖)과 인간의 속(俗)이 만나는 공간을 노래한다. 일반 독자들에게 이러한 변모는 급작스럽고 부담된 일임에도 한동안 이러한 시도는 계속 될 것 같다. "늦가을 저녁/산들이 긴 그림자를 거두어들일 때/검불 몇 날리는 바람 속에/목소리 막 지우기 시작하는/적막한 새소리."(적막한 새소리 중에서)처럼 시원(始源)의 노래를 불러제끼면서 말이다. 

황동규 시인은 여행벽이 심하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왜 여행을 좋아하느냐에 대해 논리적으로 간명하게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운명적으로 역마살이 붙어 있는 겔까? 여행의 동행자는 시대별로 다르지만 김현 김정웅 김병익 서승해(미당 아들) 김주연 홍신선 김명인 하응백 조정권 김윤배 등 평론가와 시인 그리고 건강이 편치 않을 시기에 아버지와 동행을 들 수 있다. 

그이는 어릴 적 경의선의 조그만 역에서 십리쯤 더 들어가야 닿는 간리(間里) 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인데도 홀로 험준한 월명산 너머 산골 할아버지 댁을 찾아가다가 길에서 혼난 적이 있었다. 산허리쯤에서 늑대가 쫓아올 때는 농부의 도움으로 화를 면했고 이름 모를 적갈색 짐승이 아무리 돌을 던져도 계속 따라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내달렸다. 밤중에 아버지가 동네 청년들과 횃불을 들고 와 그이를 찾아내고 크게 혼냈던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1946년 5월 삼팔선이 채 굳어지기 전에 남한으로 내려와 
아버지가 교편 잡던 서울 중학교(서울고) 사택에서 살던 때도 집을 벗어나 홀로 이화동, 돈암동, 청량리, 서대문 등을 헤매다가 경희궁 터 사택으로 울며 돌아오던 시절을 잊을 수 없다. 어릴 적부터 여행 벽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이는 고 2 때부터 본격적인 여행을즐겼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여행은 일상에 꽉 막힌 숨통을 트게 해줘요. 요즈음엔 여행 다니던 친구들이 저보다 빨리 늙었는지 떠나길 꺼려해 저 또한 여행 횟수가 부쩍 줄었디만요."라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항구에 닿았다. 그런데 배들이 바다를 향해 뛰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항구를 들여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처음으로 배들이 육지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동안 생각한 상징의 겉 구조가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젊은 날 방황과 막막함의 해방구로 꿈꾸던 시인에게 절망적이었을 터. 탈출의 기회라고는 없을 듯한 하늘에 자유롭게 날고 있는 새들을 마주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이를 노래하는 시가 기항지 1이다. 

"걸어서 항구에 도착했다/길게 부는 한지(寒地)의 바람/바다 앞의 집들을 흔들고/긴 눈 내릴듯/낮게 낮게 비치는 불빛./지전(紙錢)에 그려진 반듯한 그림을/주머니에 구겨 넣고/반쯤 탄 담배를 그림자처럼 꺼버리고/조용한 마음으로/배 있는 데로 내려간다./정박중의 어두운 용골들이/모두 고개를 들고/항구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어두운 하늘에는 수삼개(數三個)의 눈송이/하늘의 새들이 따르고 있었다." (기항지 1 전문) 

1967년에는 여수와 목포 같은 큰 항구에도 버스가 하루에 두 대 정도였다. 어려운 걸음으로 당도했던 작은 포구. 묶인 배들이 항구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은 우리를 막는 삶의 행위가 도처에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주기도 한다. 항해에 지친 배와 일상에 지친 시인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 쓸쓸함을 어루만지듯 불빛도 낮게 드리우고 눈이 내린다. 이런 사실적 풍경화를 그린 시가 겨울 항구에서, 낙법, 노래자이의 노래놀이, 망초꽃 등이다. 

* 여행에서 시의 모티브 얻고, 14년간 전국 떠돌며 풍장 집필 

1982년 가을 또 다시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은 긴 여행길에 나섰다. 그렇게 10여 년간 서해와 남해 전국을 떠돌았다. 사십대 중반에 자신도 모르게 죽음 길들이 충동이 일어 목적지 없는 여행을 거듭했다. 일상을 떠나는 여행을 통해 삶에 대한 깨달음과 깨달음이 낳은 거듭남을 보았다. 특히 군대시절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이화령 고개를 함께 넘기도 했던 친구 김정강의 죽음(자살)은 삶과 죽음의 문제에 더 집요하게 만들었다. 

그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죽음이라는 것이 극히 일상적이라는 인식도 했다. 또한 부친상을 당하면서 인생관이 조금씩 바뀌었다. 부친은 잠들다가 운명한 탓에 유언도 없고 임종도 못하고 몇 시에 돌아갔는지도 몰라 참 허망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40대에 연작시 풍장을 썼다. 풍장은 섬 지방에서 아들이 보름이고 스무날이고 고기잡이 나갔을 때 부모가 세상을 뜨면 매장하지 않고 그가 돌아와 얼굴이라도 볼 수 있도록 한 일종의 의식 장치. 냉동시설이 없던 시절 땅에 묻지 않고 조그만 무인도에 초막을 짓고 풀로 덮었다가 나중에 땅에 묻는 것이다. 대학시절 보길도 선유도 등지에서 이 풍습에 보고 충격을 받았고 곧 풍장의 모티브가 되었다. 82년부터 14년 동안 그렇게 70편에 이르는 풍장 연작시를 집필하여 우리 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는데, 죽음을 노래하면서 허무를 이야기하지 않고 서정성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좋은 평가를 받았다. 

폴 발레리가 해변의 묘지에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노래한 것처럼, 죽음이후 삶을 일깨우는 싱싱한 바
람소리로 가득한 작품이라는 평이었다. 연작시 가운데 그 첫 작품은 이랬다.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섭섭하지 않게/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손목에 달아 놓고/아주 춥지는 않게/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군산에 가서/검색이 심하면/곰소쯤에 가서/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풍화작용에 이녁을 맡겨달라는, 상식을 뛰어 넘어 죽음을 넘어 자연과의 함께 하고 싶은 마음. 연작시를 쓰는 동안 친구인 김현 평론가, 황인철 변호사의 죽음을 보았기에 한동안 죽음의 침묵에 갇히기도 했다. 그러나 막스 삐까르 말처럼 침묵이란, "다만 무엇인가가 결핍된 것이 아니라 어떤 적극적인 것, 가장 깊은 감정은 항상 침묵에 있는 것. 결국 "죽음과 삶의 황홀은 한가지에서 핀 꽃…죽지 않는 꽃은 가화(假花). 삶의 황홀이 없다면 죽음을 맞아 끝나는 삶, 그 삶의 끝남이 무슨 의미를 지닌단 말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며 침묵을 깼다. 

* 이별을 슬퍼 말라는 시 즐거운 편지가 영화로 상영돼 화제 

그이의 시는 초창기이후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절망과 비극, 비관주의가 두드러지고 있다. 고교 때부터 혹독한 전쟁을 겪고 항무지가 된 서울에서 니체, 예이츠, 릴케 등의 영향 탓인 것 같다. 낭만주의자이기도 해 음대에 진학해 작곡가가 되려고도 했지만 친구 마종기 시인이 발성음치라는 사실을 지적하자 그 길을 포기했다. 학교에선 영미 모더니즘을 배우고 정작 시에서는 자기 방식으로 변형시킨 한국의 전통시를 쓰려하면서 갈등도 많이 겪었다. . 

어쨌든 그이의 등단작 가운데 하나인 즐거운 편지는 58년의 연애시인 데 97년 두 편의 영화 편지와 팔월의 크리마스가 화제 개봉되면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하여 문단에서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즐거운 편지 전문)

영화 편지가 개봉되었을 때 극중 최진실은 이 즐거운 편지를 읽었다. 이 소식을 당시 미국 버클리대학에 있을 때 접했다. 시집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고교 3학년 때 사랑했던 연상의 여자에 대해 쓴 이 시의 매력은 사소한 진실로 진실로라는 단어에 있다. 일상의 사소한 일처럼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간에 너를 진실로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 시를 생경하기 위해 앞 소절에 이런 낯설게 하기와 가볍게 하기라는 장치를 해 놓은 게 그이 시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나 보기에 역겨워..."(김소월 진달래꽃), "아, 님은 갔습니다.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한용운 님의 침묵), "가시도셔 오쇼서(가시자 마자 돌아 오십시오- 고려가요 가시리) 등 리듬이 우려 나온다. 그러나 지금은 떠나간 당신 언젠가 되돌아 올 날을 믿으며 한없이 기다리겠다는 전통 서정시의 구도나 연애시의 고정관념을 파괴시켜 버린다. 사랑은 늘 만들어 가는 것이지만 언젠가 인간의 끝처럼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으로 믿는다"고 단정한다. 그러면서 그 사랑의 끝이 세상의 끝은 아니라며 반드시라는 단어로 강조한다. 그러기에 더욱 눈물 나는 연애시일까. 이러 흐름의 연애시로 조그만 사랑 노래, 더 조그만 사랑 노래, 비린 사랑 노래 등이 있다.

그이는 "풍장이란 일종의 살을 버리는 행위"라 말했다. 그래서일까? "정년 퇴임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묻자 "더 살려는 혹은 무엇에 집착하려는 생각이랑 추호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결국 최후에 뼈로 남는 삶의 부스러기들.... 금방 눈이 내릴 것만 같다. 앙상한 나무 위에 존재의 가벼움으로 눈발이 휘날린다. 가볍게 비우고 간 사람들의 어깨 위와 가슴마다 눈발들 사뿐히 내려앉는다. 이내 흔적도 없이 세상을 축축이 적시며 사라지는 눈발이여.... 

■ 황동규 시인은……………


1938년 평남 평원군 숙천에서 출생, 서울대 입학 영국 에든버러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8년 서울대 교양과정부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현재 영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내년 1학기 마지막 강의를 끝으로 정년퇴임을 한다. 58년 <현대문학>에 미당 서정주 시인의 추천으로 시월, 즐거운 편지가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고 시집으로 어떤 개인 날, 비가(悲歌), 평균율 1, 평균울 2,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악어를 조심하라고?, 풍장, 버클리풍의 노래, 몰운대行, 미시령 큰바람 등이 있다. 시론집 사랑의 뿌리, 시선집 열하일기, 시적 자서전 시가 태어난 자리, 산문집 겨울 노래, 젖은 손으로 돌아보라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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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견디기 힘든                                        

 

그대 벽 저편에서 중얼댄 말

나는 알아들었다

발 사이로 보이는 눈발

새벽 무렵이지만

날은 채 밝지 않았다

시계는 조금씩 가고 있다

거울 앞에서

그대는 몇 마디 말을 발음해 본다

나는 내가 아니다 발음해 본다

꿈을 견딘다는 건 힘든 일이다

꿈, 신분증에 채 안들어 가고

삶의 전부 쌓아도 무너지고

쌓아도 무너지는 모래 위에

아침처럼 거기 있는 꿈

 

 

 

 

즐거운 편지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언제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三南에 내리는 눈                                      

 

봉준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砲들이 얼굴 망가진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목매었으련만, 대국 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 기                                                      

 

하루종일 눈. 소리없이 전화 끊김. 마음놓고 혼자 중얼거릴 수 있음.

길 건너편 집의 낮불, 함박눈 속에 켜 있는 불, 대낮에 집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불, 가지런히 불타는 처마. 그 위에 내리다 말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눈송이도 있었음.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이

나비채를 휘두르며 불길을 잡았음. 불자동차는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달려옴. 이하 생략.

늦저녁에도 눈. 방 세 개의 문 모두 열어놓고 생각에 잠김. 이하 생략.

"혼자 있어도 좋다"를 "행복했다"로 잘못 씀.

 

 

 

 

조그만 사랑 노래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떠돌이 별                                        

 

천문학자들은 항성을 행성보다 더 큰 일로 다루지만

나는 떠돌이별,

저 차돌 같은 싱싱한 지구 냄새에 끌려

늦봄의 김포와 강화를 떠돌았습니다.

길에는 붓꼿이 필통처럼 모여 피어들 있고

산 밑에는 수국(水菊)이 휘어지게 달려

벙긋이 웃고 있었습니다.

밤중에 마니산 중턱에 올라 모든 별이 폭발하듯 떠도는 것을 보았습니다.

떠돌이별 하나가 광채도 없이

마니산 중턱에서 숨쉬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아무 것도                                 

 

오늘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아침에 편지 반장 부쳤을 뿐이다

나머지 반은 잉크로 지우고

<확인할 수 없음>이라 적었다

알 수 있는 것은 주소뿐이다

허나 그대 마음에서 편안함 걷히면

그대는 無名氏가 된다

숫자만 남고

가을 느티에 붙어 있는

몇 마리 까치가 남고

그대 주소는 비어 버린다

아침은 걸르고

점심에 소금 친 물 마셨을 뿐이다

우리에 나가

말 무릎 상처를 보살펴 준다

사면에 가을 바람 소리

울타리의 모든 角木에서 마음 떠나게 하고

채 머뭇대지도 못한 마음도 떠나고

한 치 앞이 캄캄해진다

어둠 속에

서서 잠든 말들의 발목이 나타난다

내일은 늦가을 비 뿌릴 것이다

 

 

 

 

풍장(風葬)                                            

 

1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2

아 색깔의 장마비! 
바람 속에 판자 휘듯 
목이 뒤틀려 퀭하니 눈뜨고 바라보는 
저 옷벗는 색깔들 
흙과 담싼 모래 그 너머 
바다빛 바다! 
그 위에 떠다니는 가을 햇빛의 알갱이들 

소주가 소주에 취해 술의 숨길 되듯 
바싹 마른 몸이 마름에 취해 색깔의 바람 속에 둥실 떠……


3

희미한 길 하나 
골목에 들어가 길 잃었다가 

환한 한길로 열리듯 
아픈 이 하나 
턱 속에 사라졌다가 바람 불 때 
확하고 뇌 속으로 타오르듯이 

세상이 세워지다 말고 
헐리다 말고 
외롭다 말고, 세상이 
우리 모여 떠들던 광교의 술집과 
잠 못 들다 홀로 몸 붙이고 잠든 방 사이 
어디선가 타오른다 

인왕산일까 남산쯤 혹은 낙산 그 너머일까 
낙산 밑에 밀주 팔던 그 술집일까 
안방에 담요 뒤집어 쓰고 화끈 달던 
술항아리일까 
혹은 우리들보다 더 뜨거운 우리의 골목일까 
그런 골목, 우리 코트 버리고 
웃옷 벗어 머리에 쓰고 허리 낮추고 
불타는 마루를 빠져나와 마당을 빠져나와 
대문턱에 걸려 넘어져 엎어진 채로 
세상이 마르고, 세상을 태우고, 세상에 물뿌리는 소리를 듣는다 




쓸쓸한 화령길 
어려운 길 석천(石川)길 
반야사(般若寺)는 초행길 
황간(黃澗)지나 막눈길 

돌다리 위에 뜬 어리숙한 달 
(그 달?) 
등지고 
난간 위에 눈을 조금 쓸고 
목숨 내려놓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루카치 만나면 루카칠 
바슐라르 만나면 바슐라를 
놀부를 만나면 흥부를…… 

이번엔 달을 내려놓고.


7

풍란(風蘭)이 터진다 
손가락을 넣으면 
빵꾸난 주머니 시원 너덜너덜 너덜 

옷꿰맨 곳 터져 
살 드러나고 
살 꿰맨 곳 터져 
뼈 드러나는가 

가만, 
말 꿰맨 곳 터질 때 
드러나는 말의 뼈 

실과 바람사이 
바람과 난(蘭)사이 
풍란(風蘭)과 향기 사이 
에서 흰 빛깔과 초록빛깔이 알록달록 가벼이 춤추는 
뼈들이 골수속에 코를 박고 벌름대는 
이 향기. 


12

이 세상 가볍게 떠돌기란
양말 몇 켤레면 족한 것을
헤어지면 
기워신고
귀찮아지면
해어지고
(소금장이처럼 가볍게 
길 위에 떠서)

아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콘크리트 터진 틈새로
노란 꽃대를 단 푸른 싹이
간질간질 비집고 나온다
공중에선
조그만 동작을 하면서
기쁨에 떠는 새들
호랑나비 바람이 달려와
마음의 바탕에
호랑무늬를 찍는다
찍어라, 삶의 무늬를,
어느날 누워 깊은 잠 들 때
머릿속을 꽉 채울 숨결의 무늬를, 
그 무늬 밖에서 숨죽인 가을비 내릴 때.


14

오늘 낮에 새들한테 당했다
섬 밖 사방에서 날아와
떼지어 맴돌다
한꺼번에 나에게 달려든
저 갈매기표(標) 칼새표(標) 심장들
두둥 두둥둥
마싹 마른 다리로 벌떡 일어나
뒤를 보며 달리다
바닷가에 널어논 그물에 걸려
벌렁 나자빠져 춤추듯 누웠다

온통 맥박투성이의 하늘.


15

숲에서 나와 
가까이, 
땅의 얼굴에 얼굴 가까이, 
그 얼굴에 볼에 가볍게 볼 비비고 
그 얼굴에 입에 입 가까이 
혀 가까이, 
목구멍 가까이, 
가볍게 
몸이 가벼워져 거꾸로 빙빙 돌며 떠오르는 곳 
회오리 바람이는 곳 내 죽음 통하지 않고 고장 승천하는 곳.
 

16

어젯밤에는 
흐르는 별을 세 채나 만났다 
서로 다른 하늘에서 
세 편(篇)의 생(生)이 시작되다가 
확 타며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오늘 오후 만조(滿潮) 때는 
좁은 포구에 봄물이 밀어오고 
죽었던 나무토막들이 되살아나 
이리저리 헤엄쳐 다녔다 
허리께 해파리를 띠로 두른 놈도 있었다 

맥을 놓고 있는 사이 
밤비 뿌리는 소리가 왜 이리 편안한가?
 

17

땅에 떨어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물방울 
사진으로 잡으면 얼마나 황홀한가? 
(마음으로 잡으면!) 
순간 튀어올라 
왕관을 만들기도 하고 
꽃밭에 물안개로 흩어져 
꽃 호흡기의 목마름이 되기도 한다. 

땅에 닿는 순간 
내려온 것은 황홀하다. 
익은 사과는 낙하하여 
무아경(無我境)으로 한번 튀었다가 
천천히 굴러 
편안히 눕는다.
 

20 

바다는 젖어 있었다.
바다와 해가 맞물려 출렁거려
그 속에서 해당화가
왕보석처럼 빛났다.
색의 창을 슬쩍 여닫는 색의 눈,

해당화를 보다 말고 
인간을 향해
그냥 인간의 눈 속으로!


21

인간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속에 사는,
미물(微物) 속에서도 쉬지 않고 숨쉬는,
혹은 채 살아 있지 않은 신소재(新素材)도
날카로이 깎아놓으면
원래의 편안한 모습으로 되돌아가려는,
저 본능!

바람에 흔들리는 저 나무, 저 꽃, 저 풀,
도토리를 먹는 다람쥐의 오르내리는 저 목젖이
동식물도감의 정밀한 사진들 속에 숨지 않으려는
바로 그것!


22

무작정 떠 있다
멍텅구리배.
오늘은 흔들리지도 않는다.
허리 근질거림 참다보면
바다에 떴는지 하는에 떴는지
열(熱)에 떴는지.

처음으로 나무에서 내려와
땅 위에 정신없이 발디딘 원숭이처럼
땅 위에 떴는지.

인간으로 그냥 낡기 싫어
뒤로 돌아
생명의 최초로 되밟아가려다
생명 속에 떴는지.


24

베란다에 함박꽃 필 때
멀리 있는 친구에게
친구 하나 죽었다는 편지 쓰고
편지 속에 죽은 친구 욕 좀 쓰려다
대신 함박꽃 피었다는 얘기를 자세히 적었다.

밤세수하고 머리 새로 씻으니
달이 막 지고 지구가 떠오른다. 


25

희양산 봉암사에 다가갔다. 
늦가을 저녁 
발목이 깊은 낙엽에 빠지고 
시냇물 소리도 낙엽에빠지고 
바람 소리까지 낙엽에 빠지는 
늦가을 저녁. 

검음 멈추면 
소리내던 모든 것의 소리 소멸, 
움직이던 모든 것의 기척 소멸, 
문득 얼굴 들면 
하얗게 타는 희양산 봉우리, 
소리없이 환한. 

주위엔 저 옥보라색. 
빛들이 몸 가벼운 쪽으로 쏠리다 맑아져 
分光 그만두고 스펙트럼 벗어나 우주 속에 사라졌다가 
지구의 하늘이 그리워 돌아온 
저 색! 

때맞춰 하얗게 타는 산봉우리. 


26

달마는 면벽(面壁) 구 년에 왜 마르지 않았는가?
달마는 마르는 대신 왜 사지(四肢)의 퇴화를 택했는가?
사지는 말없이 그의 고통과 법열(法悅) 속에
(저 소리없는 신음소리, 아악 소리,
내장(內臟)의 웃음소리, 생명의 폭발소리)
그 모두를 참으며 세포 하나하나에 
미소 보내며 기다렸을까?

기다림이란 무엇인가? 퇴화란 무엇인가?
혹시 진화란 퇴화로부터 뒷걸음질치는 것?
발 헛디디며 계속 뒷걸음질치다
벽에 등대고 선 나의 머리와 사지.


27

내 세상 뜰 때
우선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입을 가지고 가리.
어둑해진 눈도 소중히 거풀 덮어 지니고 가리.
허나 가을의 어깨를 부축이고
때늦게 오는 저 밤비 소리에
기울이고 있는 귀는 두고 가리.
소리만 듣고도 비맞는 가을 나무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귀 그냥 두고 가리.


28

내 마지막 길 떠날 때
모든 것 버리고 가도.
혀끝에 남은 물기까지 말리고 가도.
마지막으로 양 허파에 담았던 공기는
그냥 지니고 가리.
가슴 좀 갑갑하겠지만
그냥 담고 가리.
가다가 잠시 발목 주무르며 세상 뒤돌아볼 때
도시마다 사람들 가득 담겨 시시덕거리는 것 내려다보며
한번 웃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번 배 잡고 낄길대며 위해
지니고 가리.


30

함박꽃 가지에서
사마귀가 성교 도중 암컷에게 먹히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머리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이 쾌감!
하늘과 땅 사이에 기댈 마른 풀 한 가닥 없이
몸뚱어리 몽땅 꺼내놓고
우주의 공간 전부와 한번 몸 부비는
저 경련!


31

마른 국화를 비벼서
향내를 낸다
꽃의 체취가 그토록 가벼울 수 있을지
손바닥을 들여다 보다가
마음이 쏟아진다

나비나 하루살이 몸에
식물의 마음 심은 가벼운 것이 되어
떠돌리라
비벼진 꽃 냄새 살짝 띠고


34

옷을 벗어버린 눈송이들이
지구의 하늘에서보다 더 살아 춤추는
우주의 변두리,
혹은 서울의 변두리 밖으로,
가고 싶다.
확대경 속에서처럼
큰 눈송이들이
공해에 찌든 몸의 옷 벗어버리고
속옷도 모두 벗어버리고
속살 그대로 날으며 춤추는
춤추다 춤추다 몸째 춤이 되는 그곳으로,

여섯 개의 수정(水晶)깃만 단 눈송이들이.


35

친구 사진 앞에서 두 번 절을 한다.
친구 사진이 웃는다,
달라진 게 없다고.
몸 속 원자들 자리 좀 바꿨을 뿐,
영안실 밖에 내리는 빗소리도
옆방에서 술 마시고 화투치는 조객들의 소리도
화장실 가기 위해 슬리퍼 끄는 소리까지도
다 그대로 있다고.


36 

내 마지막 기쁨은
시(詩)의 액셀러레이터 밟고 또 밟아
시계(視界) 좁아질 만큼 내리 밟아
한 무리 환한 참단풍에 눈이 열려
벨트 맨 채 한계령 절벽 너머로
다이빙.
몸과 허공 0밀리 간격 만남.
아 내 눈!
속에서 타는
단풍.


37

땅속에 발목뼈 채 묻히지 못해
한없이 떠도는 원혼(寃魂)이 된들 어떠리.
원혼 가운데서도
새처럼 가벼운 원혼,
슬피 울지도 못하고
잠투정하듯
초저녁에 잠시 우는,
울다 문득 고막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38

아침에 커피 끓여 마실 때
내 입은 위(胃)와 통화한다,
"지금 커피 한잔 발송한다."
조금 있다가 위는 창자와 통화할 것이다.
"점막질에 약간 유해한 액체 바로 통과했음."
저녁쯤 항문은 입에게 팩시를 보낼 것이다.
"숙주(宿主)에 불면증 있음." 


40

선암사 매화 처음 만나 수인사 나누고 
그 향기 가슴으로 마시고 
피부로 마시고 
내장(內臟)으로 마시고 
꿀에 취한 벌처럼 흐늘흐늘대다 
진짜 꿀벌들을 만났다. 

벌들이 별안간 공중에 떠서 
배들을 내밀고 웃었다. 
벌들의 배들이 하나씩 뒤집히며 
매화의 내장으로 피어…… 

나는 매화의 내장 밖에 있는가, 
선암사가 온통 매화, 
안에 있는가?


44

바람 소리. 

저 마을 뒤에 엉거주춤 서 있는 산, 
낯익어 고향 같다. 
개울 간신히 건너는 돌다리 
낯익어 돌다리 같다. 
눈 반쯤 감고 보면 모두 낯익다. 
바람 소리에 흔들릴까 말까 주저하는 
저 나무의 몸짓도. 
언젠가 하루 구름 갠 날 
눈 한번 아주 감으면 
모든 게 몸서리치게 낯익어지지 않을까? 

아 환한 사람 소리. 
눈 지긋 감아라.


46

며칠 병(病)없이 앓았다.
책장문들이 모두 열렸고
책들은 길 떠날 채비하고 줄 서 있었다.
더러 외투 껴입고 있는 놈도 있었다.

문밖을 나서니 시야의 초점 계속 녹이는 가을 햇빛.
간판들이 선명해라
지나치는 사람들도 선명해라
책을 들고 걷는 저 여자의 긴 손.
차도(車道)에 바싹 나와 아슬아슬 서 있는
저 흙덩이의 어깨까지 선명해라.
눈이 밝아졌구나,
아 눈이.


47

내 관악산 보이는 곳에 살며
때로는 산이 안개 속에 숨는 것을 보았다.
이슬비가 안개를 벗기기도
안개가 이슬비를 다시 감싸기도 했다.
언젠가 마음 속 간직해온 것과 헤어져야 할 때,
마음의 것들 책상 위에 벌여 놓을 때,
서가에 꽂힌 책 위에도 얹어 놓을 때,
눈앞에서 금방 사라질 것들!
꺼내 놓으라면,
관악산부터 내어 놓으리.
다녀온 암자들도 암자의 약수그릇도 내어 놓고,
가을 저녁 어둡기 직전 남 보지 않을 때 땅을 더듬다 말던
가랑비도.


49

늦가을 저녁 아우라지강을 혼자 만나노니
나의 유해 예까지 끌고 와 부릴 만하이.
앞산 한가운덴 잎갈이나무들 위통 벗고 모여
마지막 햇빛 쪼이고 있고,
주위로 침엽수들 침착히 서서
두 강이 약속 없이 만나는 것을 내려다 보고 있다
껄끄러운 두 강 만나
고요한 강 하나 이룬다
빈 배 하나 흔들리며 떠 있다
시간이 고이지 않는다


50

오늘 서가의 지도(地圖)를 모두 버렸다.
바닷가를 방황하다가
우연히 눈부신 눈을 맞으리.
건너편 섬이 은색 익명(匿名)으로 바뀌다가
내리는 눈발 사이로 넌지시 사라지는 것을 보리.
사라진 섬을 두고,
마음에 박혔던 섬도 몇 뽑고
마음에 들던 섬부터 뽑고
섬처럼 박혀 있던 시간들도 모두 뽑아버리고
돌아오리.

오늘 지도를 모두 버렸다.


59

그대는 상자 속을 들여다 보았는가?

낡은 티셔츠, 벙어리장갑 한 짝,
흑백 사진 몇 장,
몽당연필 한 자루,
붉은 연필로 겉장에 X표 친 노우트,
벙어리장갑 또 한 짝,
을 들치고 속을 보면
어느날 들어간 인사동 골목길
연탄 난로 위에 우동이 끓고 있는 조그만 노점 앞에서
키 큰 소녀 하나가 떡볶이를 먹고 있다. 
단발머리 위로
담장 위로
벌겋게 녹슬고 있는 철조망 끝으로
타고 오른
끝이 살짝 말려 있는 나팔꽃 한 줄기
그 위론 예쁘달 것도 귀엽달 것도 없는
낮달 하나
구역질

소녀는 계속 먹고 있다.
시간이 새어나가고
아무런 부피도 무게도 자리 뜬
한줌의 느낌.

 

 

70

 

냇물 위로 뻗은 마른 나뭇가지 끝
저녁 햇빛 속에
조그만 물새 하나 앉아 있다
수척한 물새 하나
생각에 잠겼는가
냇물을 굽어보는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가 
조으는가

조으는가
꿈도 없이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 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다른 새떼 지저귀던 앞뒷숲이

보이고 안 보인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 노점에 쌓여있는 귤

옹기점에 엎어져 있는 항아리, 둥그렇게 누워 있는 사람들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버클리풍의 사랑노래                                 

 

내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

꽃꽂이도

벽에 그림 달기도 아니고

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

그냥 설거지일 뿐,

얼굴 붉은 사과 두알 식탁에 앉혀두고

간장병과 기름병을 치우고

수돗물을 시원스레 틀어놓고

마음보다 더 시원하게

접시와, 컵 수저와 잔들을

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는 것,

겨울비 잠시 그친 틈을 타

바다 쪽을 향해 창 조금 열어놓고,

우리 모르는 새

언덕 새파래지고

우리 모르는 새

노란 유채꽃이

땅의 가슴 언저리 간질이기 시작했음을

알아내는것.

겁 없이.

 

 

 

 

밤 여울                                                  

 

아주 캄캄한 밤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

마음속이 온통 역청 속일 때

하늘에 별 몇 매달린 밤보다

아무것도 없는 길이 더 살갑다.

두 눈을 귀에 옮겨 붙이고

더듬더듬 걷다

갈림길 어귀에서 만나는 여울물 소리,

빠지려는 것 두 팔로 붙들려다 붙들려다

확 놓고 혼자 낄낄대는 소리.

하늘과 땅이 가려지지 않는 시간 속으로

무엇인가 저만의 것으로 안으려던 것을

자신도 모르게

놓아버리는 소리.

 

 

 

 

시 월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2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리.

두견이 우는 숲 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木琴소리 목금소리 목금소리.

 

 3

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한 탓이리.

 

 4

아늬,

石燈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 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 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5

낡은 단청 밖으론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 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히 비가

뿌려와서......

절 뒷울 안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 보면

낙엽 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그리고

방금 켜지기 시작한 등불들이 어스름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을 나는 본다.

 

 6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탁족(濯足)                                               


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

아주 적적한 곳

늦겨울 텅 빈 강원도 골짜기도 좋지만,

알맞게 사람 냄새 풍겨 조금 덜 슴슴한

부석사 뒤편 오전(梧田)약수 골짜기

벌써 초여름, 산들이 날이면 날마다 더 푸른 옷 갈아입을 때

흔들어봐도 안 터지는 휴대폰

주머니에 쑤셔넣고 걷다 보면

면허증 신분증 카드 수첩 명함 휴대폰

그리고 잊어버린 교통 범칙금 고지서까지

지겹게 지니고 다닌다는 생각!

시냇가에 앉아 구두와 양말 벗고 바지를 걷는다.

팔과 종아리에 느닷없이 만나 새긴

화끈한 문신(文身)들!

인간의 손이 쳐서

채 완성 못 본 문신도 있다.

요만한 자국도 없이

인간이 제풀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

 

 

 

 

어느 蘭의 데스마스크                               

 

낮에 잠깐 품었던 잠을 깬다.

어디 딴 세상 소리처럼 트럭 경음 들리고

무언가 메마른 것이 몸을 적신다.

우박이 내리는가

모르는 사이 베란다 쪽이 어두워지고

유리창이 자못 소란스러워진다.

베란다 화분에 빈 심지로 꽂혀 있는

며칠 전 죽은 난, 마른 줄기들.

 

깨긴 깨었는가?

베란다의 소리 적이 가라앉고

소리 줄어든 만큼 주위가 환해지고

화분 위엔 전에 못 보던 다리 긴

발 약간씩 뒤틀린 새들

무언가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는

자코메티 풍의 꼿꼿한 새들,

천천히 고개를 든다.

 

고개 들면 어디로 가겠는가?

유리창 소리가 가시고

베란다가 환해진다.

햇빛 드는 화분 위엔

꼿꼿이 삭은 심지의 촉루,

그래 어디로 가겠는가?

어디로?

갈 데 없는 난의 얼굴에

갈데없는 인간의 얼굴을 부비리라.

 

 

 

 

허공의 불타                                             

- 관룡사 용선대에서

 

바위에 붙어 있는 풀들도 허공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내민 팔들이 질긴 것 같지만

허공 쪽에서 잡으면

팔을 탁탁 끊어버린다.

그렇다. 밖으로 내민 것 끊지 않고

허공 앞에 설 수는 없을 것이다.

저 아래 새들이 날고

그 밑에 바위 그림자 가라앉을 때

등 뒤에서 태양이 머뭇거릴 때

늦가을 산정(山頂) 바람 예리한 칼끝은

줄곧 옷가슴을 들치며

심장이 여기지, 여기지, 묻는다.

불타와 예수의 앞자리치고 위험치 않은 자리 어디 있으랴?

허공에 나앉은 불타,

몰래 밖으로 내미는 인간의 팔 탁탁 끊어주소!

나무뿌리에 되우 낚아채인 다리 후들거림 멎으며

허공이 텅 빈다.

  

 
만해마을 시비 

 
 

 

소나기 <황순원>
즐거운편지 <황동규>
황금물고기 <황시내>
+
양평 소나기마을

 

 

학교 다닐 때 황순원 작가의 소설.

한 편씩은 모두 읽어 보셨죠?

 

영화까지 만들어졌던 황순원의 소나기.

아직도, 소년과 소녀의 대화가 귓가에 생생합니다.

...

 

 

 

 

 

양평에서...
 

양평에 황순원 소나기 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당장 달려 갔었습니다.

 

저에게 황순원 교수는

소나기와 학으로 유명한 작가이기도 했지만

많은 문인들이, 진정한 스승으로 생각하는 표본이 되는, 학자로 느껴졌었거든요.

 

역시 황순원 문학관을 다녀오니

인간적으로도 배울 점이 참 많았던, 스승이자 학자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15년 출생해서 2000년 사망하기까지

일제강점기와 6.25. 군사정권을 거쳐. 민주화된 대한민국까지 모두

보고 가셨으니. 하고 싶고 쓰고 싶은 말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리고 황순원 작가의 아들이자,

우리에게는 즐거운 편지로 유명한 황동규 시인.

황동규 시인, 황동규 교수 중. 저에게는 황동규 시인이 더 와닿습니다.

 

짝사랑하는 누나를 생각하며

썼다는 즐거운 편지가. 박신양 최진실 주연의 영화 <편지> 에 등장하면서

아주 유명해졌죠. 그리고 나중에는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립니다.

 

아버지가 쓴 글과 아들이 쓴 글이

모두 교과서에 등재된 집안이죠 ^^

 

황동규 교수도 황순원 작가처럼

평안남도 (북한)가 고향인데요. 그래서 가족모임이 있을 때마다

북한 음식 전문점을 찾아다니며 고향에 대해 그리움을 달랬다고 하네요.

 

즐거운편지...

그 시를 가르치면서도 참 행복했는데.

부자의 소년감성이, 그대로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황순원, 황동규를 잇는.

3대 문인 집안의 탄생이라고 유명했던 소설가 황시내 작가입니다.

황금물고기라는 작품 이후, 아직 다른 책은 더 이상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음악적 재능, 미술적 재능, 문학적 재능까지.

다채로운 재능을 갖고 있는 소설가인 듯 했습니다.

작품 속에 그런 부분을 많이 반영해서 소설을 썼더라구요.

 

 


 

 

 

 

 


 

 

그리고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

양평 황순원 문학관, 소나기마을에 가보면 소나기를 다양한 매체로 활용해 놨더라구요.

그림도 그려놓고, 퀴즈나 퍼즐로도 만들어놓고, 오디오북이랑. 애니메이션까지.

 

정말 많은 공부, 많은 도움이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황순원 작가의 학.

마지막에. 학이 나타나지 않던 마을에서 학이 다시 나타남으써

우리 민족의 밝은 미래를 상징했던...

 

정말, 짧고 간결하면서도

묵직한 메세지를 희망적으로 잘 전달해주던 황순원 작가.

멋진 분인 것 같아요.

 

많은 문인들이 존경할만한...ㅡ

 

 


 



 



한반도 통일 기원비 

해돋이 전망대 올라가는 초입 

땅끝마을에서 바라다 본 다도해~~  무척 평화롭고 한가해 보이죠



해돋이 전망대를 갈려면 모노레일이나 도보를 이용 ~~ 우리는 편도 올라가는것만 모노레일을 타기로 했네요 

전망대아래에서 찍은 다도해
 

해남해돋이 전망대 입장료가 성인 2,000원 전망대에서 안봐도 다도해가 한 눈에 보였답니다.

  ^^*전망대 아래 사랑과 언약을 약속하는 자물쇠 , 가족의 행복을 위한 자물쇠 , 나라를 위한 자물쇠 등이 있었지만

전 사랑과 언약을 약속하는 자물쇠가 제일 좋았어요.

사랑에 굶주려서 그렇까요 ㅎㅎ - 

 고은 시인의 시비 - 땅끝 시중에 '살아온 날들도 함께 왔 습니다'.에  제마음도 그랬답니다.

황동규 시인의 시비 위는 김지하 시인의 시비

  그외 많은 시비들이 있었지만 여행자들의 인증샷으로 많이 찍지 못했네요. 시비설립에 관한 비석

 가져간 카메라도 스마트폰도 베터리가 다되어 겨우 한 장 건졌네요 .  달마산 정상에 있는 도솔암 

 창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일출펜션 전망이 좋았답니다.  공기좋고 해서 곡차도 술술 ~~~ 
펜션 담벽에 흐드러지게 핀 꽃 ~  꽃이름을 몰라서 꽃에게 미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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