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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최두석 - 성에꽃
2015년 12월 26일 21시 54분  조회:4151  추천:0  작성자: 죽림
성에꽃

                      최두석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깁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다니며 보고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가 금지된 친구여. 
                                           <성에꽃 1990> 
------------------------------------------- 
*성에꽃 : 민중의 애환과 열정이 서려 있는 삶의 결정체로, 민중의 삶에 대한 시인의 애정이 반영되어 있는 이미지이다. 
*정열의 숨결 : 공동체 구성원들끼리 나누는 연대의식이나 애정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 민중의 삶을 억압하는 현실 상황 속에서 그에 대항하다 굴레를 쓰고 있는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나타나 있다.
●핵심정리
▶갈래: 자유시, 서정시 
▶성격: 상징법, 비유적(객관적 상관물), 역설법, 사회 비판적 
▶제재: 버스 창문에 핀 성에꽃 
▶주제: 서민들의 애환에 대한 애정 
▶표현상 특징 
-경험에서 연상된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일상의 사물에 주관적 의미를 부여하여 새로운 형상으로 창조하고 있다.
●이해와 감상
겨울 새벽녁 차창에 서리는 뿌연 성에에 꽃이라는 이름을 달아주면서 그 속에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성에꽃으로 아름답게 형상화된 작품으로, 80년대 아픈 역사의 상흔을 "친구"를 통해 드러냄으로서, 시대적인 아픔을 공감하게 한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은 지워져도 그 차가운 아름다움은 희망처럼 존재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에꽃에서는 가슴 저리고, 눈물나도록 아름답고 또 행복을 거부하지 않는 그런 삶이 떠오릅니다. 시인은 이렇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경계를 통찰하였습니다. 
  이 시에서 성에꽃은 그것이 지워지고 난 자리에 비치는 시적 화자의 얼굴로, 다시 자신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하던 친구로 이미지가 전이되는 객관적 상관물로서, '엄동 혹한일수록 / 선연히 피는 성에꽃'의 구절과 '다시 꽃 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에서 역설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 낸 정열의 숨결이던가'에서는 그 의미가 친구에서 서민들로까지 확장된다. 
  친구에 대한 의미는 마지막 구절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에서 친구가 같은 삶(민주화 운동)의 여정을 걸어 왔으나 암담한 사회적 상황으로 인하여 현재 옥살이를 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추가> 
한겨울의 새벽녘에 시내 버스를 타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한 번쯤 차창에 낀 성에를 손으로 문지르거나 입김으로 불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시는 엄동설한의 새벽 버스 차장에 낀 성에를 보며 80년대의 우울한 시대상, 또는 사람들의 남루하고 고달픈 생활의 초상들을 노래하고 있다. 
화자는 성에가 아닌, 성에꽃을 보며 지난 밤에 이 버스를 탔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이들은 신경림의 시에 나타나는 '못생긴 얼굴'같이 초라하면서도 남루한 삶의 길을 걷는 서민들이다. 흔히 민중 또는 소외계층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팍팍하고 고단한 삶에 의해 선연하게 아름다운 성에꽃이 피어났다. 어찌 보면 가장 미미한 존재들에 의해 가장 황홀한 아름다움이 탄생한 것이다. 
화자는 유리창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우리 사회의 우울한 표정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소외된 삶의 풍경들을 들여다 본 것이다. 화자는 '차거운 아름다움'을 한껏 느끼기 위해 이리저리 자리를 오가고 성에꽃을 지우기도 한다. 순간 장면이 바뀌면서 차창에는 푸석한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친구는 아마도 뒤틀리고 얼룩진 우리 사회를 고쳐가기 위해 올곧은 길을 걸었던 친구일 것이다. 그러나 그 친구는 시대의 암담함과 어두움에 맞서다 지금은 면회까지 금지되고 말았다. 이렇듯 <성에꽃>은 서정적인 소재를 통해 민중들의 고단한 삶과 무겁고 어두운 사회 현실을 지성과 감성의 조화로 노래한 작품이다.<디딤돌 문학>
*'창'의 의미 
시에서 이른 새벽 성에가 낀 버스의 '차창'은 세상을 바라보는 통로가 된다. 그 창에 비친 세상의 풍경은 얼룩져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막막하다. 그러나 그 막막하고 팍팍함에 오는 슬픔을 '성에'를 통해 잊게 된다. 왜냐하면 '성에꽃'은 동시대인들의 숨결과 입김으로서 공동체 의식 그 자체의 의미를 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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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석 시인 소개

 

1956(11, 23)년 전남 나주 출생

서울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80 '심상'에 시 '김통정'을 발표하여 등단

시집으로

대꽃(문학과 지성사 1984)

임진강(청사 1986)

 

~~~~~~~~~~~~~~~~~~~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무슨 꽃인들 어떠리 
그 꽃이 뿜어내는 빛깔과 향내에 취해 
절로 웃음짓거나 
저절로 노래하게 된다면 

사람들 사이에 나비가 날 때 
무슨 나비인들 어떠리 
그 나비 춤추며 넘놀며 꿀을 빨 때 
가슴에 맺힌 응어리 
저절로 풀리게 된다면

 

~~~~~~~~~~~~~~~~~~~~~

 

찔레를 보면  


찔레열매 보면 찔레꽃 떠오르네 
절로자라 피우는 아름다움이 
얼마나 생생하며 
얼마나 그윽한 향내 풍기는지 보이네 
꽃향기의 축제가 열린 
무르익은 봄날의 
잉잉대는 음악소리가 들리고 
너울거리는 춤사위가 보이네 

찔레꽃 보면 찔레열매 떠오르네 
서리 맞고 눈 맞으며 
추위와 허기를 견디는 새들에게 
기꺼이 양식이 되는 
열매가 품고 있는 여문 씨앗이 보이고 
까치 뱃속을 통과한 씨앗이 
볕바란 언덕에서 움트는 
찔레의 일생이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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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와 민들레  


간혹부러 찾는 
수백년 묵은 느티나무 아래 
민들레 꽃씨가 
앙증맞게 낙하산을 펼치고 
바람타고 나는걸 보며 
나는 얼마나 느티나무를 열망하고 
민들레에 소홀하였나 생각한다. 
꿀벌의 겨울잠 깨우던 꽃이 
연둣빛 느티나무 잎새 아래 
어느새 꽃씨로 변해 날으는 
민들레의 일생을 조망하며 
사람이 사는데 과연 
크고 우람한 일은 무엇이며 
작고 가벼운 일은 무엇인가 찾아본다. 
느티나무 그늘이 짙어지기 전에 
재빨리 꽃 피우고 떠나는 
민들레 꽃씨의 비상과 
민들레 꽃 필때 
짙은 그늘 드리우지 않는 느티나무를 보며 
가벼운 미소가 무거운 고뇌와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을 떠올린다. 


꽃에게 길을 묻는다 / 문학과 지성사 

 

~~~~~~~~~~~~~~~~~

 

노래와 이야기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처용이 밤늦게 돌아와, 노래로써

아내를 범한 귀신을 꿇어 엎드리게 했다지만

막상 목청을 떼어내고 남은 가사는

베개에 떨어뜨린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처용의 이야기는 살아 남아

새로운 노래와 풍속을 짓고 유전해 가리라

정간보는 오선지로 바뀌고

이제 아무도 시집에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노래하고 싶은 시인은 말 속에

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

그러나 내 격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

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일 뿐

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며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

 

 

대꽃 / 문학과지성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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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잔 


내 빈약한 힘살을 비웃듯이 
너는 빤스만 걸친 몸으로 
총을 든 악한들과 싸운다 
토요일 밤이면 
사자와 표범과 악어들이 출몰하는 
식민지 자손들의 안방 한구석에서 
결국 이기는 싸움만 한다 

원숭이 치이타와 코끼리 록키 
소년 자이가 그림자처럼 따르고 
너는 잽싸게 줄을 탄다 
그리하여 정글이 없는 한반도의 아이들도 
너를 따르고 싶고 
빨래줄로 흉내를 내다 
목졸려 죽은 아이도 있었다 

둥둥 북치는 아프리카 
근대화를 통해 빚수렁에 빠진 한국 
창조도 진보도 있을 수 없는 
아프리카 토인들의 역사 
일제의 식민사관 
타잔 너는 미국의 차관과 결부되어 
수입되고 상연되고 

밀림의 평화를 위한다지만 
밀림의 법칙은 약육강식 
국제 간 불변의 공식인 것을 
이 땅의 아이들은 알 수 없지, 그러므로 
너는 너를 출생시킨 나라 
미국의 이미지를 위해 싸우는 줄을 
아이들은 통 알 수가 없지. 


~~~~~~~~~~~~~

 

미소 



쓸쓸한 이에게는 
밝고 따스하게 
울적한 이에게는 
맑고 평온하게 웃는다는 
서산 마애불을 보며 
새삼 생각한다 
속 깊이 아름다운 웃음은 
그냥 절로 생성되지 않는다고 

생애를 걸고 
암벽을 쪼아 
미소를 새긴 
백제 석공의 
지극한 정성과 공력을 보며 
되짚어 생각한다 
속 깊이 아름다운 웃음은 
생애를 두고 가꾸어가는 것이라고 

아름다운 미소가 
세상을 구하리라 믿은 
천사백 년 전 웃음의 신도여 
그대의 신앙이 
내 마음의 진창에 
연꽃 한 송이 피우누나. 

 

꽃에게 길을 묻는다 / 문학과지성사

 

~~~~~~~~~~~~~~

 

마라도 바다국화 


뿌리로 검은 바위 끌어안고 
난바다 거센 파도 소리 삼키며 
모진 바람에 고개 숙여 
잔디처럼 바닥을 기다가도 
꽃만은 그윽이 푸른 가을 하늘 
마주 보며 피우누나 

내가 아는 눈빛 맑은 여인 
세상살이 온통 허무해져 
바다에 몸을 던지러 왔다가 
바다국화 꽃 피우는 모습 보고는 
마음 다잡고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가게 됐다는구나. 


꽃에게 길을 묻는다 / 문학과지성사 

 

~~~~~~~~~~~~~~~~~~~

 

마애관음보살을 보며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랑의 눈길과 손길을 거쳤던가

하지만 각별하게 따스했던 눈길과 손길마저

얼마나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가

경주 남산 바위에 새긴

수더분한 모습의

관음보살을 보며 든 생각이다

 

우람하거나 정교한 조각이 아니라서

더욱 정겨운

보살이 쥐고 있는 정병은

천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무수한 이들이 어루만진 손길로 반질거린다

그 정병을 기울여 약물을 마시면

어떤 마음의 병도 나을 것 같다.

 

 

투구꽃 / 창비, 2009.

 

~~~~~~~~~~~~~~~~~

 

투구꽃

 

 

사노라면 겪게 되는 일로

애증이 엇갈릴 때

그리하여 문득 슬퍼질 때

한바탕 사랑싸움이라도 벌일 듯한

투구꽃의 도발적인 자태를 떠올린다

 

사노라면 약이 되면서 동시에

독이 되는 일 얼마나 많은가 궁리하며

머리가 아파올 때

입술이 얼얼하고 혀가 화끈거리는

투구꽃 뿌리를 씹기도 한다

 

조금식 먹으면 보약이지만

많이 넣어 끓이면 사약이 되는

예전에 임금이 신하를 죽일 때 썼다는

투구꽃 뿌리를 잘게 잘라 씹으며

세상에 어떤 사랑이 독이 되는지 생각한다

 

진보라의 진수라 할

아찔하게 아리따운 꽃빛을 내기 위해

뿌리는 독을 품는 것이라 짐작하며

목구멍에 계속 침을 삼키고

뜨거워지는 배를 움켜쥐기도 한다.

 

 

투구꽃 / 창비, 2009.

 

~~~~~~~~~~~~~~

 

만남에 대하여 


만나고 싶다 
다혈질 인정 많은 친구여 
그대의 눈물에 흥건히 젖어 
나는 변하고 싶다 

만나고 싶다 
치밀하고 열심인 친구여 
사실은 멱살이라도 잡고 
땀방울의 진가를 확인하고 싶지만 
끝내 별일 없이 헤어질지라도 

나를 아는 모든 이여 
내가 아는 모든 이여 
혹은 미지의 사람이여 
만나고 싶다 
온갖 허위의 허물 벗어버리고 

그대의 속내에 
보름밤 쥐불처럼 호기심 불타는 것은 
이 폭력과 정신병의 세상에 
희망을 잃지 않고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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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개구리 


주룩주룩 장대비 내리는 날 
산길 걷다가 
나비를 만나면 슬프다 
비 피할 집 없이 
어디론가 날아갈 기척도 없이 
흠씬 젖어 있는 제비나비를 보면 
내 숨겨둔 날개가 젖은 듯 
후줄근해진다 

주룩주룩 장대비 내리는 날 
산길 걷다가 
개구리를 만나면 기쁘다 
좋아라고 만세 부르듯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무당개구리 
번들거리는 초록 피부를 보면 
내 살갗도 촉촉이 젖어 
생생해진다. 


꽃에게 길을 묻는다 / 문학과지성사 / 2003. 6 

~~~~~~~~~~~~~~~~

 

 

 

나비와 개구리 


콩꽃 떨기마다 이상한 나방이 射精을 하고 다녔다. 그때 
나는 국어 선생이었다. 깊이 사랑했던 이념의 말이 교과서 
구석에 씌어 있었다. 지면을 응시하자 낱말은 괴성을 지르 
며 교실을 울리고 멀리 운동장 미루나무 이파리에 머물렀 
다. 구름은 정말 한가롭게 지나가고 학생들의 한 떼는 교 
련 시간이었다. 엎드려 쏴! 찔러, 길게 찔러. 이파리는 사 
살되어 무참히 찢기우고, 고개를 돌렸을 때 교과서의 활자 
는 뻔뻔하게 그대로 박힌 채였다. 그 해 농부들이 수확한 
콩은, 껍질은 탱탱하고 의연했지만 모두 가투였다. 나는 가 
투의 의미를 가르칠 뿐이었다. 

 

 

~~~~~~~~~~~~~~~~~

 

 

구절초 


계절이 바뀌는 산등성이에서 
단풍잎 응시하며 피는 꽃이 있다 
지상의 마지막 시간 앞두고 
청을 높여 우는 풀벌레 소리 따라 
아련히 맑은 향내 풍기다가 
낙엽과 함께 사라지는 꽃이 있다. 


시와시학 / 2000 가을호

 

~~~~~~~~~~~~~~

 

다시 경포에서 


안개비 속에 
뿌옇게 흐린 
경포 호수를 바라보며 
문득 생각한다 
고여 거울이 되지 못하는 물은 
썩게 마련이라고 

출렁이는 마음속 
뿌연 거울을 들여다보며 
새삼 생각한다 
불혹이란 
자기 몫의 외로움을 겸허하게 
견디는 일이라고 

무리를 잃고 
뻘흙 위 갈숲에서 
병을 다스리는 새여 
네가 물을 차고 솟구치는 날 
숭어가 고니로 변해 날아올랐다는 
전설이 완성되리라.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때 / 문학과지성사 1997 
 

~~~~~~~~~~~~~~~

 

아우라지에서 


진달래 꽃잎 띄우고 
그리움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겨울 골짜기에 얼어붙었던 
슬픔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그리움은 슬픔을 만나 
깊어지고 넓어지고 
슬픔은 그리움을 껴안아 
강이 된다고 넌지시 일러주며

하염없이 일렁이는 물살은 
어디로 아득히 흘러가는가 
여울을 지나 소를 지나 
다시 오지 않을 생애의 한 굽이를 
소용돌이치며 돌아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 문학과지성사.1997. 

~~~~~~~~~~~~

 

겨울 폭포 


겨울 폭포가 흘리는 
눈물 머금어보았는가 
얼어붙은 마음에 
어설픈 햇살 받으며 
벙어리 눈물 흘리다가 
다시 얼어붙고 마는 
고드름으로 빼곡한 가슴 보았는가 
함성으로 세차게 흘러 
거침없이 융융한 강이 되고 싶은데 
키 넘게 눈 덮인 첩첩산중에 
굳센 얼음기둥 세우고서 
숨죽인 채 
겨울 폭포가 흘리는 
눈물 삼켜보았는가.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 문학과지성사.1997. 

 

~~~~~~~~~~~~~~

최두석 시

           노래와 이야기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처용이 밤늦게 돌아와, 노래로써 

아내를 범한 귀신을 꿇어 엎드리게 했다지만 

막상 목청을 떼어내고 남은 가사는 

베개에 떨어뜨린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처용의 이야기는 살아 남아 

새로운 노래와 풍속을 짓고 유전해 가리라 

정간보가 오선지로 바뀌고 

이제 아무도 시집에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노래하고 싶은 시인은 말 속에 

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 

그러나 내 걱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 

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일 뿐 

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며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 




지은이 : 최두석 

갈래 : 서정시, 자유시 

성격 : 인용적, 당부적 

제재 : 노래와 이야기 

주제 : 시의 본질, 노래와 이야기의 결합으로서의 시 

출전 : <성에꽃> (문학과 지성사, 1990) 



내용 연구 


뇌수 : 뇌를 말하고, 신경 세포가 모여 신경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부분. 

척수와 함께 중추 신경계를 이루어 온몸의 신경을 지배하며, 대뇌·간뇌·소뇌·중뇌 

·뇌교·연수로 나눈다. 


처용(處容) : 설화에 나오는,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의 기인(奇人). 

879년에 왕이 동부를 순행할 때 기이한 생김새와 옷차림으로 나타나 가무를 하며 

궁궐에 따라 들어와 급간(級干)의 벼슬을 받았는데, 어느 날 아내가 역신과 동침 

하는 것을 보고 향가 〈처용가〉를 지어 불러 역신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실려 전한다. 


정간보 : 조선 시대 세종이 창안한 악보. 

오선지(五線紙) : 악보를 그릴 수 있도록 오선을 그은 종이. 

유전(流轉) : 이리저리 떠돌아 다님. 

덧나다 : 병이나 상처 따위를 잘못 다루어 상태가 더 나빠지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시의 본질을 시로 표현한 작품으로, 이 시는 언어를 통하여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시의 본질을 다루고 있다.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는 구절은 시인의 고민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인은 시에 자신의 감성(노래)을 그대로 담아내려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것은 

잊혀지고 사실(지성, 이야기)만 남는다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시인은 자신의 격정(노래)을 다스리기 위해 이야기를 시로 쓴다. 

그리고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고 표현하여 '시란 무엇이 

어야 하는가'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담아 내고 있다. 


자료 


최두석(催斗錫) 


1955년 전남 담양 출생으로 서울대 사대 국어과와 서울대학원 국문과를 나왔다. 

1980년 '심상'에 <김통정>등을 발표하여 시단에 등장한 그는 1982년부터 '오월시' 

동인에 참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첫 시집인'대꽃'은 그의 感性과 知性의 어려운 통합을 이뤄내고 있는 시인 

임을 넉넉히 보여 준다. 그는 단단한 현실 인식과 섬세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독특한 

<이야기 시> 양식을 창출하여 참담한 현실을 놀라울 만큼 차분하게 이야기하는데 

그 차분함 속에는 짙은 슬픔과 분노와 사랑이 은밀히 충만(充滿)되어 있고, 그 속에 

서 감성과 지성의 어려운 통합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집에 <대꽃>, <임진강>(서사시), <성에꽃> 등이 있다. 


'노래와 이야기' 시에 나타난 내용을 중심으로 시어의 특성을 말해 보자. 


이 시는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담아 내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들이‘시'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지식에 기대어 이 시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한다. 

'노래' 와 '이야기', '심장' 과 '뇌수, 라는 서로 대비되는 시어의 의미를 파악 

하고, 특히 '노래'가 의미하는 바에 주목하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시인은 시에서 '뇌수와 심장', 즉 이성과 감성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 

그런 시인에게 노래는 쉽게 덧나는 '격정의 상처' 이면서 '악보' 이고, 이야기는 

노래의 빈틈(뇌수)을 메울 수 있는 형식적 장치이다. 

따라서 시어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느낌 그 자체(심장, 격정의 상처)를 골라 넣고 

(11행) 다스린(13행) 결과물이다. 또한 '이제 아무도 시집에 악보를 그리지 않지만, 

여전히 시어는 심장이 일정한 리듬감을 타고 뛰듯이 보이지 않는 은밀한 리듬을 

갖는다(10~11행 참조). 즉 시어는 시인의 감성(노래)을 담고 있으면서, 그것을 정제 

된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며, 확연하게 드러나거나 은밀하게 감춰진 리듬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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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시 성에꽃의 앞 구절이다. 고등학교 문학시간동안 수없이 읊조리던 시를 쓴 시인이 우리학교(한신대) 교수님이라는 것을 아는 학생은 몇이나 될까.‘ 성에꽃’의 시인인 문예창작학과 최두석 교수는「성에꽃」을 비롯하여 많은 시에서 꽃과 나무, 자연을 소재로 하는 작품을 썼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인이 없다했던가. 우리 주변의 들과 산에 피고 지는 꽃들과 말없이 자리를 지키는 나무들을 소재로 시를 쓰는 우리 학교(한신대) 문예창작학과 최두석 교수를 만나면 그것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출생 1956년 11월 23일, 전남 담양군
직업 대학교수
성별 남성
학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프로필

 
학력
-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경력
2003 한신대학교 인문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
2001 ~ 2003 한신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원장
1997 한신대학교 인문대학 한국문화학부 문예창작전공 부교수


6년만의 시집, 시적 자아가 살아있는 자기 확인

오랜만에시집을낸최교수의소감이궁금했다. 언제나시
집을 내는 일은 설레는 일일 것이다“. 문학 판에 나온 지가 벌
써 30년이 되었지요「. 투구꽃」이 여섯 번째 낸 개인 시집인데
시집을 낸다는 건 시인으로서의 생명력을 상실하지 않았다
는, 다른말로시적자아가아직은살아있다는자기확인이되
는 것 같아요. 시적자아가 살아있어야 시를 쓸 수 있는데 말
이죠.”최교수는이어6년간의정황에대해서말했다“. 이시
집에 실린 시가 예순 세편인데, 6년 동안 쓴 거죠. 이전에 낸
시집들도 대체로 6년 터울로 시집을 냈어요. 왕성하게 쓰는
다른 시인들은3,4년 터울로시집을내기도하지만난 6년 정
도가 내 시 쓰는 속도나 체질에 맞는 것 같아요. 나름의 최선
을 다하는 게 중요하니까. 신통치 않은 시 100편보다야 신동
엽의「껍데기는 가라」같은 시 한 편이 낫죠. 서둘러서 안 되는
시까지포함해내고싶진않았어요. 버리는시도많았죠.”


자기를 지켜내는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꽃을 피울수 없다

시집「투구꽃」안에는 총 예순 세편의 시가 있다. 그중에
서도 굳이「투구꽃」을 시집의 제목으로 정한 데에는 어떤 이
유가 있었을까.“ 시집 전체의 주제를 은근히 드러내는 것이
바로「투구꽃」이었기 때문이에요. 투구꽃의 뿌리가 한약재
로 부자인데, 조금씩 쓰면 사람들의 원기를 왕성하게 해주는
약인데 많이 쓰면 그것이 독이 되어 사약으로 쓰여요. 사물
을 볼 때 양면성을 보는 거지. 약인 동시에 독이 되니까요. 모
든 약이 그렇지. 세상을 표면만 보고 살아서는 곤란해요. 또
다른 이유는 꽃모양이 투구 모양인데 투구는 싸울 때 쓰는
거죠. 투구꽃은 가을꽃인데 굉장히 아름다워요. 그런데 그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면 생존경쟁,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
한 싸움을 거쳐야죠. 그래야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
이게 시집 전체 주제와 통해요.”


생태적 상상력으로 가꿔낸 꽃과 나무

「투구꽃」을 보면 유독 꽃, 나무, 자연들을 벗 삼아 노래한
시들이 많다. 그 전의 시집에 수록된 시들도 그러하다. 자연
을 노래하는 이유가 특별히 있는 것일까.“ 처음부터는 아니
고, 1990년대 중반이후에 꽃과 나무를 소재로 시를 많이 썼
지요. 생태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나니 자연스레 그리되더라
고. 사실 요즘 사람들은 쓸데없는 운동선수 이름은 잘 알면
서 자기가 늘 보는 나무 이름도 잘 모르니까. 삶이 참 답답한
거지. 공자는 시경(詩經)에 있는 시들을 이야기하면서 동식
물 이름을 잘 알려주니 시경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어요. 이
땅에서 살고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을 시로 쓰는 것이
시인으로서의 사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결국 사회속의
인간과 자연속의 인간이 어떻게 조화로운 상태에 이를까가
내게 중요한 화두에요. 휴머니즘이 인간중심주의로 기울면
곤란하고 그것이 자연생태 차원으로 폭넓게 열리기를 기원
하는데 그러한 차원에서 생태적 상상력에 비중을 두고 시를
썼어요.”


이야기 같은 시는 나의 브랜드,「 투구꽃」은 예외

우리가 문학시간마다 소리 내어 읽던 유명한 시「성에꽃」
과 같은 시들은 대개 서사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투구
꽃」만은 좀 더 음악성이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 첫 시집
「대꽃」의 맨 앞에 수록된 시가‘노래와 이야기’라는 시에요.
노래와 이야기 사이의 긴장은 내가 시를 쓰는 가장 중요한
창작 방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말로 하자면 예술성과
현실성 사이의 긴장이죠. 이야기 시는 내 시의 브랜드라고나
할까. 예전엔 한창 민주화가 중요한 과제여서 사람살이의 문
제에 몰두했죠. 그땐 이야기 중심의 시를 써야했으니 사회역
사적 상상력을 중요시했고 지금은 생태적 상상력을 바탕으
로 하니 노래중심이 됐어요. 여전히 노래와 이야기 사이의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요. 두 가지를 통합시
키는 게시 쓰기에요.”


시라는 것은 의사소통의 한 양식

쉽게 읽히는 시는 쓰기가 더 어렵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시
를 쓰라는 것
이 최 교수의 가르침이었다「. 투구꽃」의 시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그 내용은 깊었다. 최 교수
는 기자의 말에 그렇게 읽어주어 고맙다며 답을 이었다.“
라는 것은 하나의 의사소통이에요. 그런데 의사소통을 거부
하는 시를 쓴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모순이죠. 그러면서도
시라는 것이 응축적인 양식이기 때문에 한번 읽고 버리는 것
이 아니라 여러 번 읽어도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가 솟아나는
시를 쓰고 싶어 하죠. 소재를 잡으면 마음속에 두고 계속 생
각해서 의미가 제대로 맺힐 때까지 기다려요.”


시를 쓰는 일은 삶의 의미 찾기 과정

국어교육과를 나온 걸로 아는데 교육자의 진로를 가다가
시인의 길을 택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시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다른 것은 별로 내키지가 않고 시 쓰는 것이
끌려서 시를 쓰게 된 것이고, 삶의 의미를 찾기라고나 할까
요. 뭔가 의미를 찾으며 살고 싶어서, 나에게는 시를 쓰는 것
이 가장 좋았으니까. 그런데 준비가 필요해요. 시를 쓰면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했죠. 그러다보니 국
어교사를 하면서 시를 쓰면 좋겠다 싶어서 국어교육과에 간
거죠. 지금 문예창작과 시 창작 교수로 있는 것도 그거죠. 시
쓰는 것과 이게 어울리겠구나 싶어서. 시 쓰기에 안 맞는 직
업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돈벌이에 눈이 멀어서는 시를
쓰기 어렵죠. 시를 쓰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일자체도 의
미가 있었으면 싶었지요.”
그럼 시인이면서 교수직을 병행하면서 힘든 점이나 좋은
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최 교수는 말을 이었다.“ 시만 써서
는 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전업시인은 경제적으로는 실업자
이지요. 그러니까 시를 쓰려면 다른 일을 해야 했죠. 그래서
적절한 게 뭘까 고민을 해서 국어교사를 조금 했죠. 그랬더
니 표현의 자유가 제한 되요. 예전엔 어디에 글 하나만 발표
해도 내용을 문제 삼고 그랬어요. 교사가 아니라면 별 상관
도 없는 일을 갖고 귀찮게 구니까 더 자유로운 대학교수를
하자 생각했죠. 시창작전공이다 보니 늘 시를 생각해야 하잖
아요? 시를 쓰면서 법열감이라고 할까 희열을 느껴서 좋지
만, 대학이라는 곳이 생활체험으로부터는 격리되기 쉽죠. 생
생한 생활체험이 문학의 원천인데 말이죠. 그래서 될 수 있
으면 연구실에 붙어있지 않고 삶의 체험을 접할 수 있는 곳
으로 답사를 많이 가죠. 그런 식으로 극복하려고 하죠.”

한 시간여의 인터뷰를 마치며 최두석 교수는 젊은 문학도
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맹자에 나오는 말인데‘항심
(恒心)’이라는 말이 있어요.‘ 한번 뜻을 세우면 변하지 않는
마음’이 항심이에요. 다른 일도 그렇고 문학이라는 게 짧은
시간에 승부를 낼 수 없단 말이지. 마라톤선수처럼 글쓰기에
정진해야 꿈을 이룰 수가 있겠죠.”미리 읽어간 시집에 싸인
을 청하자 최 교수는 한참을 고민하고 만년필로 한마디씩을
적어주었다. 주문처럼 시집 안으로 꿈이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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