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2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詩는 몇개의 징검돌로 건너가는 것...
2016년 01월 09일 04시 35분  조회:3740  추천:0  작성자: 죽림

묵화(墨畵) /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1969년) 



김종삼(1921~1984) 시인의 시는 짧다. 짧고 군살이 없다. 그의 시는 여백을 충분히 사용해 언어가 잔상을 갖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아주 담담하다. 언어를 우겨넣거나 막무가내로 끌고 다닌 흔적이 없다. 사물과 세계를 대면하되 사물과 세계의 목소리를 나직하게 들려준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물안개가 막 걷히는 새벽 못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작은 여울에 누군가가 정성스레 놓아 둔 몇 개의 징검돌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묵화(墨畵)’의 목소리도 자분자분하다.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막 돌아와 쌀 씻은 쌀뜨물을 먹고 있는 소를 보여준다. 그의 시선은 소의 목덜미에 가 있다. 하루 종일 써레나 쟁기를 끌었을, 멍에가 얹혀 있었을 그 목덜미를 보여준다. 목덜미에는 굳은살이 박였을 것이다. 그리곤 소의 목덜미와 할머니의 손을 교차시킨다. 할머니도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소와 함께 날이 저무는 저녁을 맞고 있다. 할머니는 겹주름처럼 고랑이 나 있는 밭에 쪼그려 앉아 풀을 뽑고 돌을 캐내고 종일 호미질을 했을 것이다. 시인의 시선은 소와 할머니의 부은 발잔등으로 옮아간다. 부은 발잔등을 보여줄 뿐이지만, 우리는 소와 할머니의 하루가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이 눈여겨본 대목은 소와 할머니의 관계일 것이다. 소는 할머니를, 할머니는 소를 마주하고 있다. 이 둘 사이에 조용하고 평화롭고 안쓰러운 대화와 유대가 오가고 있다. 낮의 소란과 밤의 정적이 합수(合水)하는 성스러운 시간에 마치 삶이란 본래 비곤하고 외롭고 쓸쓸한 것이라는 듯 소와 할머니는 잠시 멈춰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하여 이 둘의 ‘서로 돌봄’은 훈훈하면서도 슬프다. (우리는 얼마나 이 ‘쓸쓸한 돌봄’을 자주 잊고 사는가) 이 시를 다 읽고 나면 우리는 얼굴 가득 흐뭇하게 피어나던 웃음이 천천히 묽어지는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된다. 본래 삶이란 웃음과 슬픔으로 꿰맨 두 겹의 옷감이라는 듯. 

김종삼 시인은 등산모를 곧잘 썼고 파이프 담배를 자주 물었고 술을 좋아했고 고전음악을 즐겨 들었다. 그에게 삶은 ‘방대한 / 공해 속을 걷는’ 일처럼 여겨졌다. 그는 ‘하늘나라 다가올 때마다 /맑은 물가 다가올 때마다 /라산스카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라며 인간의 원죄를, 불구의 영혼을 아프게 노래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는’ 사람들과 세상을 좋아하고 동경했다. 그의 시는 말이 적었지만 정직했다. 언어의 낭비가 많고 외화(外華)에 골몰하는 시대를 살수록 언어를 지극히 아껴 쓴, 먹그림같이 실박하게 살다 간 김종삼 시인이 그립다. 

(문태준·시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123 조숙한 동성련애자 천재 시인 - 랭보 2017-12-27 0 7962
2122 빈민굴 하숙방에서 쓸쓸하게 운명한 "시의 왕" - 폴 베를렌느 2017-12-26 0 4312
2121 영국 시인 - 월터 드 라 메어 2017-12-21 1 4019
2120 재래식 서정시의 혁신파 시인 - 정현종 2017-12-14 0 5924
2119 100세 할머니 일본 시인 - 시바타 도요 2017-12-12 0 4560
2118 어학교사, 번역가, 유대계 시인 - 파울 첼란 2017-11-19 0 5597
2117 [타삼지석] - "세계평화와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하는 발신지"... 2017-10-28 0 3866
2116 시창작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시를 쓰겠다는 의지이다... 2017-08-28 2 3705
2115 문단에 숱한 화제를 뿌린 "괴짜 문인들"- "감방" 2017-08-22 0 3646
2114 윤동주는 내성적으로 유한 사람이지만 내면은 강한 사람... 2017-06-09 0 3665
2113 터키 리론가 작가 - 에크렘 2017-05-31 0 4146
2112 터키 혁명가 시인 - 나짐 히크메트 2017-05-31 1 4209
2111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 말라르메 2017-05-24 0 6789
2110 프랑스 시인 - 로트레아몽 2017-05-24 0 5339
2109 프랑스 시인 - 아폴리네르 2017-05-24 0 5161
2108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 2017-05-24 0 9617
2107 아르헨티나 시인, 20세기 중남미문학 대표자 - 보르헤스 2017-05-13 0 5104
2106 시인 윤동주 "생체실험"의 진실은?... 2017-05-08 0 5790
2105 스웨덴 국민시인 - 토마스 트란스 트뢰메르 2017-05-07 0 5195
2104 모택동 시가 심원춘. 눈 2017-05-07 0 3899
2103 꾸청, 모자, 시, 자살, 그리고 인생... 2017-05-07 0 4586
2102 중국 현대시인 - 고성(꾸청) 2017-05-07 0 4549
2101 리백, 술, 낚시, 시, 그리고 인생... 2017-05-07 0 4223
2100 중국 현대시인 - 여광중 2017-05-07 0 5185
2099 중국 현대시인 - 변지림 2017-05-07 0 4742
2098 중국 현대시인 - 대망서 2017-05-07 0 4085
2097 중국 현대시인 - 서지마 2017-05-07 0 3520
2096 중국 현대시인 - 문일다 2017-05-07 0 4850
2095 중국 명나라 시인 - 당인 2017-05-06 0 4523
2094 러시아 국민시인 - 푸슈킨 2017-05-05 0 4505
2093 미국 시인 - 로웰 2017-05-01 0 4521
2092 미국 시인 - 프로스트 2017-05-01 0 4237
2091 미국 시인 - 윌리엄스 2017-05-01 0 5236
2090 시법과 글쓰기 2017-05-01 0 3433
2089 미국 녀류시인 - 힐다 둘리틀 2017-05-01 1 4832
2088 영국 시인 - 크리스토퍼 말로 2017-05-01 0 5052
2087 아이랜드 시인 - 잉그럼 2017-05-01 0 4501
2086 프랑스 시인 - 장 드 라 퐁텐 2017-04-24 0 5165
2085 [고향문단소식]-화룡출신 "허씨 3형제" 유명작가로 등록되다... 2017-04-24 0 4189
2084 중국 북송 시인 - 황정견 2017-04-21 0 4395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