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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벼랑길위에서 만나는 시인들 - 포석 조명희
2016년 02월 06일 03시 26분  조회:3237  추천:0  작성자: 죽림

포석 조명희 시 모음

성숙(成熟)의 축복

 

가을이 되었다. 마을의 동무여

저 너른 들로 향하여 나가자

논틀길을 밟아가며 노래 부르세

모든 이삭들은

다복다복 고개를 숙이어

“땅의 어머니여!

우리는 다시 그대에게로 돌아 가노라” 한다.

 

동무여! 고개 숙여라 기도하자

저 모든 이삭들과 한가지로…….

 

 

 

경이(驚異)

 

어머니 좀 들어주서요

저 황혼의 이야기를

숲 사이에 어둠이 엿보아 들고

개천 물소리는 더 한층 가늘어졌나이다

나무 나무들도 다 기도를 드릴 때입니다

 

어머니 좀 들어주서요

손잡고 귀 기울여 주서요

저 담 아래 밤나무에

아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뚝’하고 땅으로 떨어집니다

우주가 새 아들 낳았다고 기별합니다

등불을 켜 가지고 오서요

새 손님 맞으러 공손히 걸어가십시다

 

 

 

 

 

 

 

무제(無題)

 

주여!

그대가 운명의 저(箸)로

이 구더기를 집어 세상에 떨어뜨릴 제

그대도 응당 모순(矛盾)의 한숨을 쉬었으리라

이 모욕의 탈이 땅 위에 나뭉겨질 제

저 맑은 햇빛도 응당 찡그렸으리라.

 

오오 이 더러운 몸을 어찌하여야 좋으랴

이 더러운 피를 얻다가 흘려야 좋으랴

 

주여, 그대가 만일 영영 버릴 물건일진대

차라리 벼락의 영광을 주겠나이까

벼락의 영광을!

 

 

 

잔디밭에 어린 풀싹이

부끄리는 얼굴을 남모르게 내놓아

가만히 웃더이다

저 크나큰 봄을.

 

작은 새의 고요한 울음이

가는 바람을 아로새기고

가지로 흘러 이 내 가슴에 스며들 제

하늘은 맑고요, 아지랑이는 고웁고요.

 

봄 잔디밭 위에

 

내가 이 잔디밭 위에 뛰노닐 적에

우리 어머니가 이 모양을 보아주실 수 없을까

 

어린 아기가 어머니 젖가슴에 안겨 어리광함같이

내가 이 잔디밭 위에 짓둥글 적에

우리 어머니가 이 모양을 참으로 보아주실 수 없을까.

 

미칠 듯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여

“엄마! 엄마!” 소리를 내었더니

땅이 “우애!”하고 하늘이 “우애!”하옴에

어느 것이 나의 어머니인지 알 수 없어라.

정(情)

 

 

바둑이도 정들어 보아라

그는

더러움보다 귀여움이 더하리라.

 

살모사도 정들어 보아라.

그는

미움보다 불쌍함이 더하리라.

 

 

 

내 못 견디어 하노라

 

 

반기던 그대 멀어지고

멀어진 그대 그리웁거늘,

이를 다시 슬퍼하옴은

내 마음 나도 모르거니,

꽃이야 지거라마는

물이야 흐르거라마는

이 마음 부닥칠 곳 없음을

내 못견디어 하노라.

 

 

 

인간 초상찬(人間肖像讚)

 

 

사람에게 만일 선악(善惡)의 눈이 없었던들

서로서로 절하고 축하하올 것을…….

 

보라 저 땅 위에 우뚝히 선 인간상을.

 

보라! 저의 눈빛을

그 눈을 만들기 위하여

몇 만(萬)의 별이 빛을 빌리어 주었나.

또 보라! 저의 눈에는

몇 억만리의 나라에서 보내는지 모를 기별의 빛이 잠겨 있음을.

또 보라! 저의 눈은 영겁을 응시하는 수위성(守衛星)이니라.

이것은 다만 한쪽의 말

아아 나는 무엇으로 그를 다 말하랴?

 

그리고 사람들아, 들으라.

저 검은 바위가 입 벌림을, 대지가 입 벌림을

별의 말을 들으라! 사람의 말을 들을지어다!

알 수 없는 나라의 굽이치는 물결의

아름다운 소리를 전하는 그의 노래를 들으라.

 

아아, 그는 님에게 바칠 송배(頌盃)를 가슴에 안고

영원의 거문고 줄을 밟아갈 제

허리에 찬 순례(巡禮)의 방울이

걸음걸음이 거문고 소리에 아울러 요란하도다

아아, 사람들아! 엎드릴지어다. 이 영원상(永遠相)앞에…….

 

이 신(神)의 모델이 땅 위에 나타남에

우주(宇宙)는 자기의 걸작품을 축하할 양으로

태양은 곳곳에 미소를 뿌리고

바람과 물결도 가사(袈裟)의 춤을 추거든…….

사람에게 만일 선악의 눈이 없었던들

서로서로 절하고 기도하올 것을…….

 

 

 

달 좇아

 

 

이 밤의 저 달빛이 야릇이도

왜 그리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지

가없이 가없이 서리고 아파라.

 

아아, 나는 달의 울음을 좇아 한없이 가련다

가다가 지새는 달이 재를 넘기면

나도 그 재위에 쓰러지리라.

 

 

 

동무여

 

 

동무여

우리가 만일 개(犬)이어던

개인 체 하자

속이지 말고 개인 체 하자!

그리고 땅에 엎드려 땅을 핥자

혀의 피가 땅 속으로 흐르도록,

땅의 말이 나올 때까지..........,

 

동무여 불쌍한 동무여

그러고도 마음이 만일 우리를 속이거든

해를 향하여 외쳐 물어라

“이 마음의 씨를 영영히 태울 수 있느냐”고

발을 옮기지 말자 석상이 될 때까지.

 

 

 

새 봄

 

 

볕발이 따스거늘

양지쪽 마루 끝에

나어린 처녀 세음으로

두 다리 쭉 뻗고 걸터앉아

생각에 끄을리어 조을던 마음이

얄궂게도 쪼이는 볕발에 갑자기 놀라

행여나 봄인가 하고

반가운 듯 두려운 듯.

 

그럴 때에 좋을세라고

낙숫물 소리는 새 봄에 장단 같고,

녹다 남은 지붕 마루터기 눈이

땅의 마음을 녹여 내리는 듯,

다정도 하이. 저 하늘빛이여

 

다시금 웃는 듯 어리운 듯,

“아아, 과연 봄이로구나!”생각하올 제

이 가슴은 봄을 안고 갈 곳 몰라라.

 

 

 

불비를 주소서

 

 

순실(純實)이 없는 이 나라에

아픔과 눈물이 어디 있으며

눈물이 없는 이 백성에게

사랑과 의(義)가 어디 있으랴

주(主)여! 비노니 이 땅에

비를 주소서 불비를 주소서!

타는 불 속에서나

순실의 뼈를 찾아 볼까

썩은 잿더미 위에서나

사랑의 씨를 찾아 볼까.

 

 

 

감격의 회상

 

 

님이여 그대가

말없는 말을 이르시며

소리없는 노래를 아뢰실 때

이 어린 아이의

가슴에 안은 거문고는

목이 메여 떨기만 하더이다.

 

님이여

나며 들며 때로 대(對)하던 이 아이의 마음에는

마음의 곳곳마다 엄숙한 미소를 그득히 감최인 눈으로

가만히 그대를 바라보며 은근히 절하고 싶었나이다

아아 그때 나는 비로소

이 우주덩이를 보았나이다.

처음으로 님을 만났었나이다.

 

때는 이미 오래더이다

지금 다시 그대를 마음 가운데 그려보며

울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기도를 드리나이다

아아 영원히 잊지 못할

나의 책상 위에 놓았던 한 낱의 도토리!

 

 

 

떨어지는 가을

 

 

성근 낙목형해(落木形骸) 사이

등불은 냉막(冷寞)의 꿈으로 비쳐

너의 언 가슴 속으로 쉬어 나오는 한숨같이

지면을 스쳐가는 바람에 구르는 잎

사르르 굴러 또 사르르

스러져가는 세상 외로운 자의 넋인가

 

아아 황금의 면영(面影)은 자취도 없다

지금은 가을이다 찬밤이다

바이올린의 떠는 소리로 굴러온 이 마음은

시들은 풀 속 벌레의 꿈 같다

바람의 부닥치는 외잎 소리에도 혼(魂)이 사라지랴든다.

 

 

 

고독자(孤獨者)

 

 

오오 너는 어이 인생의 청춘으로

환락의 꽃밭 백일의 왕성을 다 버리고

황량한 벌판에 노래를 띄우노.

 

밤중 달이 그의 그림자를 조상(弔喪)함에

그는 가슴을 안고 시들은 풀 위에 쓰러지다

바람이 마른 수풀에 울어 지날 제

낙엽의 넋을 좇아 혼을 끊도다.

 

별들은 비록 영원을 말하나

느껴 우는 강물을 화(和)하여 노래 부르며

희미한 등불이 그를 비치려드나

고개 숙여 어두운 그늘로 몸 감추다.

 

 

 

누구를 찾아

 

 

저녁 서풍 끝없이 부는 밤

들새도 보금자리에 꿈꿀 때에

나는 누구를 찾아

어두운 벌판에 터벅거리노.

 

그 욕되고도 쓰린 사랑의 미광(微光)을 찾으려고

너를 만나려고

그 험하고도 험한 길을

훌훌히 달려 지쳐 왔다.

 

석양 비탈길 위에

피 뭉친 가슴 안고 쓰러져

인생 고독의 비가(悲歌)를 부르짖었으며

약한 풀대에도 기대려는 피곤한 양의 모양으로

깨어진 빗돌 의지하여

상한 발 만지며 울기도 하였었다

구차히 사랑을 얻으려고 너를 만나려고.

 

저녁 서풍 끝없이 불어오고

베짱이 우는 밤

나는 누구를 찾아

어두운 벌판에 헤매이노.

 

 

 

아침

 

 

아침 개인 아침

지붕 지붕

나무 나무

가벼운 나의(羅衣) 맑은 향기

소안(笑顔) 오오 그 소안(笑顔)!

그래서 나래 벌린 대지는

새 아침을 맞는다 성(聖)하고 또 영광스러운 아침을.

 

 

 

나의 고향이

 

 

나의 고향이 저기 저 흰 구름 너머이면

새의 나래 빌려 가련마는

누른 땅 위에 무거운 다리 움직이며

창공을 바라보아 휘파람 불다.

 

나의 고향이 저기 저 높은 산 너머이면

길고 긴 꿈길을 좇아가련마는

생의 엉킨 줄 얽매여

발 구르며 부르짖다.

 

고적(孤寂)한 사람아, 시인아.

불투명한 생의 욕(慾)의 화염에

들레는 저자거리 등지고 돌아서

고목의 옛 덩굴 디디고 서서

지는 해 바라보고

옛 이야기 새 생각에 울다.

 

고적한 사람아, 시인아.

하늘 끝 회색 구름의 나라

이름도 모르는 새 나라 찾으려

멀고 먼 창공의 길 저문 바람에

외로운 형영(形影) 번득이여 날아가는 그 새와 같이

슬픈 소리 바람결에 부쳐 보내며

아픈 걸음 푸른 꿈길 속에

영원의 빛을 찾아가다.

 

 

 

인연(因緣)

 

 

만년의 봄이 와

만 가지 꽃이 피어

몇 만의 나비가 있다 하더라도

지금 저 꽃 위에 저 나비는

미친 듯이 춤추고 있다.

 

영겁의 때가 있고

무한의 우주가 있어

억만 번 생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 나는 이곳에 서서

맑은 바람 팔 벌리어 맞으며

피인 꽃송이 떨며 입 맞추고 있다

 

시(時)와 처(處)와 생의 포옹

아아 그 무도(舞蹈)!

인연의 결주(結珠)!

 

바라문 종소리 고개 숙이며

십자가 휘장에 황홀은 하나

이 포옹 이 무도

아아 나는 어이?

 

 

 

나그네의 길

 

 

남으로 남으로 북으로 북으로 훨훨히 뻗친 저 길은

가고 오고 오고 가는 이 옛적이나 이적에나.

 

오오 간 이의 그림자도 없는 슬픈 이야기

오는 이의 고화(古畵)에 비친 길가는 나그네.

 

아아 수풀의 스치는 바람은 뉘 한숨이며

여울에 우는 강은 누구의 추도(追悼)인가

 

낮 볕과 밤 달의 번가는 제촉(祭燭)

창공의 상여개(喪輿盖)는 영원히 떠 있어라.

 

 

 

고독의 가을

 

 

조일(朝日)의 황금등이

동천에 하례(賀禮)하고

뭇새들의 개가(凱歌)

둘린 숲에 시끄러이 아뢰며

‘때’와 ‘빛’은 거기에 무도(舞蹈)하는

젊은이의 왕국 그 나라에

환락의 술잔 들며

산 꿈의 방향에 어리어

도취(陶醉) 난무하는 세계

아아 거기는 나의 주가(住家) 아니었었다.

 

나의 주가-고독의 세계

그곳은

‘황량과 묘막(渺漠) 여기가

너의 방황 임종의 세계다’하는 사막

그러나 거기에

알 수 없는 신비의 금자탑이

흰 구름 위에 높이 솟아

가없는 회색 안개 속에 감추어 있어

그 꼭대기 위에 요염의 애인이

초록색 고운 면사를 가리고

나의 어린 영혼을 돌아보아 손짓하다

그때부터 내 영은 치는 종소리 요란하며

 

가슴에는 열탕(熱湯)의 혈조(血潮)가 치밀다

그 희미한 꿈에 뵈임 같은 그것을 찾으러

거기에 애인을 만나러

까닭도 모르고 황홀히 취하여

온 다리에 피가 마르도록 헤매이기만 하였지

다만 지금 남은 기억은

그때가 석양이더라

피곤한 낙타의 울음과 방울소리

멀리 저문 해에 사라지고

황혼의 자금색이

지평선 위에 고별의 정화(情火)를 사를 제

그때 나는 황금주를

눈물 섞어 마시며 쓰러졌다

거기가 내 영의 한 역로(歷路)이다.

 

아아 지금 이곳은

쇠하여 가는 가을이

회색 안개의 옷을 입고

박모(薄暮)의 빛을 받아

가만히 슬피 노래하는

강물이 흐르며

싸르르한 바람이

거치른 기슭을 스쳐 지날 제

한적(寒寂)에 마른 누런 노엽(蘆葉)이

서로 껴안고 부벼대며

애수에 못 이겨 잔 사설하다

아아 여기가 지금

나의 주가 - 광야의 일우(一隅)이다.

 

오오 여기에 어찌하여 또

눈물의 석양이 왔노

나는 어찌하여 또

쓰린 거문고 줄을 만지게 되노

고독은 영원의 주가

나는 그 속에

영원의 고독자

오오 그 고독자야

푸른 옷을 입고 푸른 꿈 속에 헤매이다가

푸른 안개 속으로 사라지리라

그때 나의 무덤은

「이 지상에 두지 말아라

그 욕되고 쓰린 나머지 자취를.

 

비야 오너라

바람아 불어라

나의 그 성근 광야의 집에

오오 거기에 또한 밤이 오다

벌판이냐 구렁이냐 홀홀히 방황하며

잎 날리는 서릿바람에 몸부림하는 혼은

요련(夭戀) 소녀의 원혼 같은 나의 혼은

애정의 공락(空落)인 낙엽의 사해(死骸)를 밟아가며

사박사박 소리에 그 가슴은 칼질하다.

그믐 새벽달이 박운(薄雲)의 수건을 가리고

눈물 고인 눈으로 나를 맞을 제

오오 우는 자 그 누구뇨?

쓰러지는 자 그 누구뇨?

 

비애야 오너라

고통아 오너라

내 가슴에 불지르다

피가 끓다 몸이 타다

그러고

남의 혼이여! 멀리 가거라

끝없는 세계로 멀리 날아 가거라

지새는 별이 내게 말하기를

「너는 현실의 패잔자(敗殘者)

영원의 영승자(榮勝者)」라고

그러나 나는 슬퍼하노라

 

오오 사라져 가거라 아로새긴 환영(幻影)아

사막에 곤두박질하던 꿈아

대밭에 피투성이 하던 기억아

사라져 가거라 제발 사라져

다만 나는 노래하리라

또 노래하리라.

 

 

 

별 밑으로

 

 

세상에서 부(富)를 구하느니

가을의 썩은 낙엽을 줍지

그것이 교활(狡猾)의 보수(報酬)로 온다더라.

 

세상에서 명예를 구하느니

사막길 위에 모래탑을 쌓지

그것이 아첨의 보수로 온다더라.

 

세상에서 이해를 얻으려느니

눈보라 벌판에 홀로 돌아가지

그들 돗 같은 야인 앞에 구차히 입을 벌리느니.

 

그러면 고적한 동무야

연옥에 신음자야

안아라 너의 가슴을.

냉가슴을 안고 가자 가자

저 저문 사막의 길로 저 별 밑으로.

 

그 별에게 말을 청하다가

별이 말 없거든

그때 홀로 쓰러지자 홀로 사라지자.

 

 

 

누(淚)의 신(神)이여

 

 

애인아! 웃지를 말아라

돌길에 상한 나의 발을 보아다오

너의 웃음이 너무도 무정하구나.

 

자모(慈母)여! 미소를 떼우지 말으소서

이 상한 가슴에 이 아픈 가슴에

당신의 손만 가만히 대어주서요

미소는 너무 억울합니다.

 

신이여! 애(愛)의 여신이여!

당신의 그 평화의 화차(花車)도 성장도 월계관도 다 내어 던지고

다만 이 애도자(哀悼子) 앞에

그 검은 상의(喪衣)의 자(姿)로 눈물 흘린 얼굴로 맞아주소서

그때 나는 당신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엎드려

피눈물을 쏟으며 쓰러지리이다.

 

 

 

한숨

 

 

푸르고 검고 또는 보랏빛으로 짜낸 내 가슴의 웅덩이에

어제나 오늘이나

쉴 새 없이 일어나는 한숨이 그 무엇이뇨

오오 그 단조하게도 의미깊게 슬픈 멜로디로 치오르는 한숨이 그 무엇이뇨.

 

고독에 피곤한 나의 혼이

이 세상에 가장 큰 애인의 가슴에 안길 때

그때에나 이 한숨이 사라질까

오오 그것도 거짓말일까 하노라

망집의 고과에 헤매이는 이 몸이

해탈의 나라를 찾아가서

청정무구의 몸을 쉬일 제

그때에나 이 한숨이 사라질까

오오 그것도 거짓말인가 하노라

 

갓날 제 울던 그 울음과

숨 끊어질 제 쉬일 그 한숨이

오오 그 생이란 조롱에 갇힌 혼의 울음이

수수께끼 같은 그의 한숨이?

 

 

 

어린 아기

 

 

오오 어린 아기여! 인간 이상(以上)의 아들이여!

너는 인간이 아니다

누가 너에게 인간이란 이름을 붙였느뇨

그런 모욕의 말을…….

너는 선악을 초월한 우주 생명의 현상이다

너는 모든 아름다운 것보다 아름다운 이다.

네가 이런 말을 하더라

“할머니 바보! 어머니 바보!”

이 얼마나 귀여운 욕설이며 즐거운 음악이뇨?

 

너는 또한 발가숭이 몸으로

망아지같이 날뛸 때에

그 보드라운 옥으로 만들어낸 듯한 굵고 고운 곡선의 흐름

바람에 안긴 어린 남기

자연의 리듬에 춤추는 것 같아라

엔젤의 무도 같아라

그러면

어린 풀싹아! 신의 자(子)야!

 

 

 

생명의 수레

 

 

창공에 창공에 저 높은 융궁에

태양의 대영광물이

날마다 날마다 전 지상에

황금의 법의와 황금의 마권을 들이씌움이여

마치 대궁전 대광등하(大光燈下)에 마법의 진주를 내려 쏟음같이

또한 거기에 구름과 달과 별을 더 함이랴

아아 그의 앞에 나는 무슨 의식을 베풀어 절해야 옳으랴?

 

뻗치고 뻗치고 끝없이 뻗치고

점치고 점치고 무한히 점친

대파노라마 대수의상(大繡衣像)

산과 산이며 들과 들이며

숲과 숲이며 내와 내며

바다와 또한 바다

아아 이 장려한 대지를

나는 무엇으로 찬사를 바치랴?

 

밤이고 낮이며 낮이고 밤이며

방렬성주(芳烈聖酒)에 취한 만년의 꿈길 같은 그 속에 그 무변대궁궐 안에

아폴론 신은 대미술품을 그리고 그리고 쌓고 또 쌓으며

디오니소스 신은 대심포니를 아뢰고 아뢰고 또 새로이 아뢰어

그래서

대우주-대성전은 대생명-대거인은

대일월기를 들고 대수의 진주가사를 떨치고 대교향악 속에

영원으로 영원으로 그 무궁영겁의 길을 향하다

 

 

 

생의 광무(狂舞)

 

 

나는 인간을

사랑하여 왔다 또한 미워하여 왔다

도야지가 도야지 노릇 하고 여우가 여우 짓 함이

무엇이 죄악이리오 무엇이 그리 미우리오

오예수(汚穢水)에 꼬리치는 장갑이도 검은 야음에 쭈그린 부엉이도

무엇도 모두 다

숙명의 흉한 탈을 쓰고 제 세계에서 논다

그것이 무엇이 제 잘못이리오 무엇이 그리 미우리오

아아 그들은 다 불쌍하다

그렇다

이것은 한때 나의 영혼의 궁전에

성신이 희미한 성단에 나타날 제

얇은 개념의 창문이 가리어 질 제 그때 뿐이다

그는 때로 사라지다 무너지다

 

 

 

닭의 소리

 

 

백주는 수정의 적궁(寂宮)으로 돌아와

명상의 세계로 눈 뜨고 잠들다

이때

뜰 아래 풀 위에 바람이 슬-

건넛집 종려수 바르르-

카나리아 지지글지지글

먼 길에 자동차 붕-

그 소리 멀리 사라져 가고

백주는 다시 졸음으로 돌아오다 꿈으로 돌아오다

이때러라 말없는 ‘때의 바다’러라

닭의 소리 ‘꼬끼오-꼭-’

그는 미지의 나라 한숨의 가종(歌鐘) 지상에 전하여 울리다

또 ‘꼬끼오-꼭-’ 울리다

사라지다

먼 나라로 울려와 먼 나라로 사라져 가다

태양은 여전히 웃으며

물 위에 바람은 다시 지나가다.

 

 

 

혈면오음(血面嗚音)

 

 

꿈에도 믿던 태양이 임종의 상(床)에 들었나

시체방 누런 포장 같은 빛을 가만히 내려라

검은 피 칠한 영어의 철벽을 두드리며 거꾸러진 사형수의 넋이런가

훈연(燻煙)의 깊은 골 신음소리 웨인 일고

마디마디 애도곡인가는 봄에 홀로 된 쿡쿡의 시절도 이미 오래됨 같도다

병든 잎사귀에는 한숨도 그치고 시들은 꽃들은 눈물조차 없어라

 

아아 기막히고도 기막히어라

내 영의 빈 터전에 까막거리는 등불조차 꺼지려 함이여.

 

옛날 길가던 백마 등 위에

꿈꾸던 아침 환영의 목련화도

붉은 발로 산봉우리 바위 덤불 밟아 헤치며

새벽 구름 소매를 잡으려던 녹의소녀의 애타던 가슴도

형적없이 무너져 가도다.

 

아아 애닯어라

고뇌의 청춘이

붉고 검은 바다를 거슬러 가

 

황금수를 떨친 진주의 물결이 햇빛을 안고

영겁의 신음에 가없이 춤추는 님의 나라가

지옥과 연옥에 고행순례자를 맞으리라는

회색 피라미드에 새긴 비문을 노래하던 것도

다 떠나 가도다 떠나 가도다.

 

생이란 고역장에

염일하(炎日下) 우마도 분수가 있지

지옥에 칼부림하는 망나니의 이 가는 소리에

관문을 바라본 희생수같이 떨면서도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통곡하는 치자의 마음까지 뺏어 가도다.

 

아아 나는 어디로 갈까 나는 어디로 가

현실이란 잿더미를 디디고 서서

허무한 나락에 혼을 굴리어

주려 죽은 갈가마귀의 넋도 길들일 곳이 있지

썩은 외가지의 그늘조차 부딪칠 데 없어라.

 

 

우주란 영원의 미(謎)의 명부

인세란 영구의 고의 환권(環圈)

진리란 허황한 미지의 음부(陰府)

 

나는 다만

눈먼 광승의 피 흘린 발자취를 따르리라

이 세상 행복이란 내리는 탁류의 꺼지는 물거품

길에 구르는 유리 조각-망둥이의 노름거리

생이란 불구 걸식자의 애닯은 다리

나는 구차히 삶을 원치 않는다

차라리 폐병 임사의 애인을 껴안고

무덤을 가리키며 떨어 입맞추리라

아아 사람들아

여기는 신도 없고 악마도 없음

나는 다만

그 불쌍한 애인의 사체를 부둥켜 안고

지옥의 피 노래를 홀로 부르리라.

 

 

 

하야곡 (夏夜曲)

- 고향에서 -

 

 

반달은 벽옥반(碧玉磐)에 흰 발을 내이며

바람은 녹장(綠帳)에 향수를 뿌릴 제

엇치는 베틀에 북을 던지고

귀뚜라미 은방울을 자주 울리다.

 

건넛집 큰아기 머리에 인 물동이

희롱하는 달빛을 담고 사립문에 이를 제

답사리의 어두운 그늘로

보약 강아지 꼬리치며 뛰어들고

마중나온 발가숭이

“누이야! 누이야!” 강장거리다

 

먼 마을 북소리 때로 일고

장마 여울 물소리 아울러 요란할 제

밤은 끝없는 물결같이 흘러라.

 

 

 

태양이여! 생명이여!

 

 

성(聖)한 새벽에 영원히 떨쳐간 어머이가

겹겹의 코발트 미면사(美面紗)를 가리고

녹우의수(綠羽衣袖)를 들어 눈물어린 적자(赤子)를 부르는 성모(聖母)의 무변궁대(無邊宮臺)여

하(夏)의 백주(白晝)의 감벽(紺碧)의 융궁(隆穹)이여

거기에 옥반(玉盤)의 핵심에 그 가슴 속에

태양은 황금로(黃金爐)의 불길을 사르다

아아 대해(大海) 같은 황금소(黃金笑)여

끓어오르는 생명이여 광란한 영혼이여!

모든 풀들이여 모든 나무들이여

그들은 광(光)과 열(熱)의 포옹에 성향(聖餉)에 녹이는 감설에

그 약동에 소리치다

“푸름이여 뛰어라! 푸름이여 되어라!”

그리고

산이며 내며 길이며 온 지상에

백일(白日)의 궁성에 숭엄에 법열(法悅)에 떠는

모든 생물, 모든 물건

오오 그들은 광희에 소리치다

“아멘! 아멘!”

오오 뛰는 생명이여! 하(夏)의 태양이여!

나는 그대의 대궁궐에

저천탑(底天塔)의 대(大)피라미드를 세울까

그리고 거기다 거기다

이 세상에 없는 말을 듬뿍 새기려 한다

오 영혼이여! 대율려(大律呂)여!

내 심장에 뛰는 핏소리여!

나는 그 대홍수 물결에 그치는 물결에

용권채홍선(龍券彩虹船)을 달려 가리라.

오오 그러면

생명이여! 영혼이여!

너의 끝없는 대양에

불멸의 율려(律呂)에…….

 

 

 

알 수 없는 기원(祈願)

 

 

나는 인생에 절망을 가졌으며

인간을 무던히 미워하여 왔었다

그러나 이상도 하다

가엾으게도 어여쁘게 생기지 못한 주인 노파의 어린 딸아기

보드라운 살이 내 손에 닿을 제

이 가슴은 야릇하게도 놀래어라

야드러운 봄 물결이 스쳐감 같도다

알 수 없게도 내 눈에는 눈물이 나올 듯

그 어린 아기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엇에게 기원을 바치고 싶다.

 

 

 

매육점(賣肉店)에서

 

 

인간이 의식의 축생을 살육하여 육림을 버리고

비린 피 임리한 도마 위에 육(肉)과 뼈에 칼질함을 볼 때

만일 인간이 해탈한 뒤에

그 피살자(被殺者)를 위하여 제단을 버리고

그 앞에 서서 눈물을 뿌릴 때가 없다 하면

오오 신이여!

인간의 정토가 영영 없으오리까?

중생의 지옥이 영영이오리까?

 

 

 

불사의(不思議)의 생명의 미소

 

 

내 마음 가운데 바람이 불어오다 적열(寂悅)의 바람이

봄 들에 소리 없이 부는 바람같이

고요한 호수에 넘치는 난파(暖波)같이

내 혈맥을 통하여 내 전신을 통하여

그 마음의 오궁(奧宮)으로부터

까닭 모르는 적열의 바람이 불어오다

그는 까닭 모르는 생명의 열파(悅波)

지혜와 감각을 떠난 영혼의 미소

아아 이 알 수 없는 기쁨이 넘치는

1922년 10월 15일

햇빛은 머리에 비춘 석양 침상에.

 

 

 

내 영혼의 한쪽 기행

 

 

나는 처음에 인간애를 무던히도 동경하였다

철 모르는 어린 아기

인생의 첫 봄

아질아질 타오르는 아지랑이

넘을넘을 듯한 비 개인 강변

황금의 비죤으로 짜낸 내 영의 야원(野原)

거기서 내 어린 영은 가로뛰며 소리치다

“동무여 이 가슴 속에 흐르는 핏소리를 들으라 홍수같은 핏소리를

그리고

동무여 손 잡아다고

네 가슴과 내 가슴에 다리를 놓자”

이것은 내 영혼의 요람의 꿈자리.

 

손 잡던 동무는 돌아서 가고

세상은 찬 바람이 휘몰아칠 때

그때 내 영은 얼마나 떨며 울었으랴

처음에는 경아(驚訝) 그 다음에는 공포(恐怖)

 

………………………………………………

 

내 생명의 흐름

좁은 골짜기 거칠은 평야를 휘돌아 지나는 내 생명의 흐름

황갈색 안개 둘린 검은 핏빛 강 어구에 다달아

끝없는 암야(闇夜)의 바다가 전개될 제

 

아아 내 영은 다시 소리 없는 울음을 끊어 울도다

상(傷)한 피의 한숨을 내어 뿜도다

이 밤에 이 밤에 이 어두운 밤에

저 하늘 마루터기 희미한 외별빛이

내 어두운 가슴 속 바다를 밝힐 수 있을까

오오 이 어떠한 요희(妖戱)의 바다뇨

사람들아 들으라

상의 성도(喪衣聖徒)의 기도가 들리려 하면

-소리가 일어나고

미련의 꿈에 잠긴 애인이 귓속말 하려 할 제

주정꾼의 술노래 소리쳐 일도다

굴종이냐-방랑이냐 그 무엇이냐?

박암(薄暗)의 창공이 새로 열리며

방랑! 방랑! 쇠북소리같이 울려오다

옳다! 방랑이다 내 영은 여기서 길봇짐 싸다

과거에 부닥치던 갈대 여울이여

또는 갖은 바윗돌 갖은 나무 풀들이여

지금 나의 동무 동무여

모든 악한 동무며 착한 동무여

인간은 선악의 마루턱을 넘어 서서

참으로의 사랑이 있음을 그대들은 믿으라.

 

 

 

분열의 고(苦)

 

 

나는 우주의 어머니로부터 나온 자식

옳도다 그 어머니 가슴에 올기(兀起)한 한 낱의 수포(水泡)

윤생(輪生)의 인연의 마디

만겁(萬劫)의 시류에 보금자리 친 나의 영혼

분열의 고(苦)-생(生), 환원(還元)의 원망(願望)-사(死).

 

 

 

눈(雪)

 

 

눈 눈 흰 눈 -아니, 샛파란 눈-

꼬리를 살살 치는 어여쁜 백호(白狐)-도화의 요희(妖姬)

뼈가 저린 술에 취한 듯이

현매(眩昧)에 달려 가는 내 혼의 발걸음

산으로 들로 바다로 하늘가으로

먼 암사(暗死)의 나라로 끝없는 ‘팔랑개비’

의 나라로-.

아아 쓰리기도 하여라

피 묻은 단의(單衣)를 휘감은 듯한 나의 혼은

밤놀의 휘장 둘린 동살지대(凍殺地帶)에 서서

달의 해골이 눈땅의 뺨을 갈길 때

그는 가슴을 움켜쥐고

누구를 찾아 호곡(號哭)하다

최후의 심판정(審判廷)이나 다다른 듯이

 

애달은 마음이 님을 부르짖으나

이 세상에는 없는 님이 올 리 만무하고

냉안(冷顔)에 눈 감은 백의보살(白衣菩薩)이

안개 속으로 나타나며

엄묵(嚴黙)에 잠긴 기도를 드리려 한다.

오오 그 백호(白狐)가 변하여 백의보살(白衣菩薩)이 됨을.

 

 

 

 

 

나의 뼈-부처의 뼈, (성모(聖母)의 웃음이 좋고, 현자의 울음이 좋더라.)

 

나의 살-떼카단의 살, (---------, 취살(醉殺)의 방독주(芳毒酒)가 좋더라.)

 

 

 

번뇌(煩惱)

 

 

우는 것은 못난이의 일

다만 참아감도 어리석은 일

웃을 수는 물론 없다

그러면 너는 어찌하려느뇨?

너는?

-----------------------.

 

 

 

스핑크스의 비애(悲哀)

 

 

어느 술좌석 끝에

옆에 앉은 동무들이

어찌 그리 되지 않고 밉던지

주먹을 쥐고 일어서며

‘필리스틴’의 세상 더러운 세상!

이 되지 않은 속중(俗衆)! 하고

싸우기까지 하였다

혼자 돌아올 때

“너나 내나 다 같이 불쌍한 인간

그 불쌍한 인간을 내가 왜 학대하였노?”하여

알 수 없는 비애가 가슴에 터질 듯.

 

 

 

어떤 동무

 

 

그는 질투심도 많이 가졌다

그는 허영심도 많이 가졌다

그는 이 시대에 상당한 교육도 받을 만치 받았다

경우는 그를 행운일 만치 하여 주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괴로워한다 자기의 과오를 생각하고 참으로 괴로워한다

말소리까지 슬픈 가락을 띠어 울려 나온다

그는 한숨 쉬며 혼자 말한다

“아이고! 저 생겨 나온 대로 하여라”

가엾으고 가엾으나마

그는 땅 위에 떨어지면서 그런 탈을 쓰고 났다

그 외에 더 어찌할 수 없다

이것이 만일

색상계에 미의 대비율이 되기 위하여 났다 하면

이 저주된 생아! 현실아!

이것이 만일

전생의 과업이 아니고

다만 신의 장난으로 났다 하면

오오 때려 죽일 놈의 신이여!

 

 

 

원숭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원숭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동물원의 원숭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 새끼를 안고 빨고 귀여워합니다

어미 원숭이는 그 얼굴에 모성애가 넘칠 듯하고

새끼 원숭이는 자성(子性)의 미가 방글방글 웃는 듯하더이다

 

원숭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원숭이가 새끼를 귀여워합니다

그러나 나는

슬퍼합니다

“너는 왜, 그런 모욕의 탈을 쓰고 또 났어……” 하고.

 

원숭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원숭이가 새끼를 귀여워합니다

그러나 나는

슬퍼합니다.

 

 

 

영원의 애소(哀訴)

-고향에서-

 

 

형아 아우야 이것이 웬일일까

이 세상에 왜 낮이 있고 밤이 또 있을까

*

형아 아우야 이것이 웬일이냐

한편에는 슬피 울고 한편에는 비웃음이

*

오오 무서운 현상!

무서운 모순(矛盾)!

*

형아 아우야 울지 말아라 울지 말아라.

두리건대 이것이 영원(永遠)일까 하노라

영원의 모순일까 하노라

영원의 모순!

영원의 모순!

*

 

오오 이것이 웬일이냐

이것이 무엇이냐

이 사람이 왜 생겨났을까

이 우주가 왜 생겨났을까

*

이 밤에 이 땅에 저 둘린 암흑이

영원히 영원히 내려 싸거라

영원히 영원히 잠겨 버려라.

 

 

 

어린 아기

 

 

어린 아기는 해의 나라에서 보낸 귀여운 아기니

서릿발같이 무섭게 성낸 아버지의 마음이

그 아기 웃음 한 번에 사라지고 마나니.

 

어린 아기는 힘의 나라에서 보낸 신통한 아기니

세상을 무찌르려는 아버지의 허무의 칼날도

그 아기 울음 앞에는 그만 던져지고 마나니.

 

보라 영원히 그 아기는

터지려는 지구의 심장을

부드러운 손으로 꿰매어 주며

넘어지려는 생명의 바퀴를

작은 팔로 받치고 서서

머나 먼 나라의 길을

어여쁜 손으로 가리켜 주나니.

 

그러면 아기야 우리는 어찌하여야 좋으랴

네게 무엇을 주어야 좋으랴

저기 저 하늘의 별을 따 주랴

옳도다 별 따러 가자 별 따러 가

영원히 영원히 별 따러 가자

 

이리하여 이 우주에

부성(父性)은 자성(子性)을 좇고 자성은 부성을 따라

울음 속에 웃음이 있고

미움 속에 사랑이 있어

영원한 원무(圓舞)와 ‘심포니’가 되어

아프게도 생명의 바퀴는 굴러 가나니

새 별을 따면서 따면서…….

 

 

 

‘어둠의 검’에게 바치는 서곡(序曲)

 

 

어둠의 검! 어둠의 검!

그대에게야 설마 이 말세 인간의 더러운 냄새 같은 흐푸성스러운 말이 있사오리까

말이 있사오리까?

그대는 다만 검은 하늘빛과 같은 침묵이 있을 뿐일 줄로 압니다.

 

어둠의 검! 어둠의 검!

그대에게야 설마 울곧지 않은 만족에 망둥이같이 날뛰는 어리석은 자의 웃음이 있사오리까

웃음이 있사오리까?

그대는 다만 촛농같이 흐르는 눈물에 두 눈은 빛 잃은 태양같이 꿈벅거릴 뿐일 줄로 압니다.

 

어둠의 검! 어둠의 검!

그대에게야 설마 생쥐 인간이나 좋아하는 맛 같지도 않은 행복이 있사오리까

행복이 있사오리까?

그대는 다만 검은 피옷을 두르고 단두대 위에 선 대장부와 같을 뿐인 줄로 압니다.

 

어둠의 검! 어둠의 검!

그대는 이 철없는 세상의 말과 빛과 행복을 다 몰아 가소서

그리하여, 이 세상을 아픈 침묵으로만 잠가 주소서

다만 거짓 없는 영혼들의 소리 없는 통곡만이 땅 위에 사무치도록…….

 

 

 

온 저자 사람이

 

 

온 저자 사람이 다 나를 사귀려 하여도,

진실로 나는 원치를 아니하오

다만 침묵을 가지고 오는 벗님만이,

어서 나를 찾아 오소서.

온 세상 사람이 다 나를 사랑한다 하여도,

참으로 나는 원치를 아니하오.

다만 침묵을 가지고 오는 님만이

어서 나를 찾아 오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세계는 침묵으로 잠급시다

다만 아픈 마음만이 침묵 가운데 귀 기울이며…….

 

 

 

나에게

-반성의 낙원을 다고-

 

 

나에게 자유를 다고

나는 다만 마소가 되련다

그리하여, 이 넓은 땅 위에 짓뚱거리며 몸부림하련다.

 

나에게 먹을 것을 다고

나는 다만 도야지가 되련다

그리하여, 이 햇빛 아래에 곤두박질하여 통곡하련다.

 

 

 

세 식구

 

 

어린 딸 “아버지, 오늘 학교에서 어떤 옷 잘 입은 아이가 날더러

떨어진 치마 입었다고 거지라고 욕을 하며 옷을 찢어 놓겠지.

나는 이 옷 입고 다시는 학교에 안 갈 터이야.”

아버지 “가만 있거라, 저 기러기 소리 난다. 깊은 가을이로구나!”

아내 “구복(口服)이 원수라 또 거짓말을 하고 쌀을 꾸어다가

저녁을 하였구려. 마음에 죄를 지어가며…….”

남편 “여보, 저 기러기의 손자의 손자가 앉은 여울에 우리의 해골이

굴러내려 갈 때가 있을지를 누가 안단 말이요.

그리고 그 뒤에, 그 해골이 어찌나 될까?

또 그 기러기는 어디로 가 어찌나 되고?

나도 딱한 사람이오마는, 그대도 딱한 사람이오

그러나 우리의 한 말이 실없는 말이 아닌 줄만 알아두오.”

 

 

 

바둑이는 거짓이 없나니

 

 

바둑이는 거짓이 없나니

그는 싫은 이를 볼 때 싫다고 짖으며

정든 이를 볼 때 좋다고 가로 뛰나니

바둑이는 이다지도 마음의 거짓이 없나니라.

 

그러나 인간은 이 어이함인지

미운 이를 볼 때 웃으며 손 잡고

귀여운 이를 볼 때 짐짓 빼나니,

바둑아 너는 왜

이 몹쓸 인간을 배반치 않느뇨.

 

바둑이는 거짓이 없나니라

그러나 이 몹쓸 인간에게는 거짓이 있나니.

 

 

 

기억하느냐

 

 

물에 불을 주고

불에 물을 주는

태양의 정의를

기억하느냐, 동무야

 

주림에 주먹을 주고

울음에 칼을 주는

사랑의 정의를

기억하느냐, 동무야.

 

 

 

가을

 

 

키 큰 사람이

얇은 햇빛 쪼이는

언덕 위에 올라서

두 손을 지팡이에 얹고

생각을 영원에 놓아

끝없는 허공을 바라보며

“이제가 어느 때뇨

이제가 어느 때?”

 

가슴은 빈 한을 갖고

한숨은 높은 바람과도 같도다

긴 한숨 긴 바람에 부쳐 보내며

거듭 탄식에 그는 눈 내려감다.

 

 

 

농촌의 시(詩)

 

 

햇살이 따뜻하여가니

봄이 벌써 드나부다

금잔디가 빛이 더 나는구나

보리 싹이 멀리서 보아도

날 사이에 더 싱싱하여 가는구나

나뭇가지는 위로 향하여 위로 향하여

푸른 하늘을 가리키고 …….

깃들였던 까막까치

건넛마을쪽으로 날아가며

‘까까’ 짖는 그 소리

하늘가에 새 봄이 넘어다 본다고 일러준다.

 

이 양달마을은 볕의 천지로구나!

그러나 이 마을은

어찌 이다지도 쓸쓸하냐?

뀌여진 창구녁 넘어진 담벽

지난 가을에 흔한 집에도

썩은 새로 겨울난 이 지붕 저 지붕,

그러나 볕은 이 구석에도 저 구석에도…….

볕을 안고 앉은 ‘입분’이

볕을 안고 앉은 ‘입분’이 어머니.

 

볕은 참으로 따뜻하고나

그러나 ‘입분’이는 고픈 배만 움켜쥐고 앉았네.

봄은 참으로 오나부다

그러나 입분 어머니는

새삼스러이 눈물만 흘리네ㅡ

ㅡ늙은 어머니 배고픈 누이 살리려고

소도적질하다 붙들려가 죽은 아들을 생각하고……

……………………………………………………………

이 봄에 이 볕에 이 집안에

왜 이다지도 쓸쓸하냐

 

만세 통에 감옥에 갔던 젊은 ‘용’이

힘세고 사람 좋은 ‘용’이

늙은이는 귀여워하고

젊은이는 부러워하는

사람 좋고 날랜 이 총각 ‘용’이

그 ‘용’이가 지금 나온다고

좋아하며 쌀 꾸러 다니는 ‘용’이 어머니

 

그립던 세상이 왜 이리 쓸쓸하냐?

살림살이가 왜 이다지 괴로우냐?

네에기 감옥이 다시 부럽구나!

이 지옥살이를 하느니보다는 …….

건넛산에 아지랑이는 끼어도

 

봄을 모르는 ‘용’이는 걱정타령,

첫봄에 가슴 놀란 이웃집 각시

흥에 겨워 콧노래 불러도

봄을 모르는 ‘입분’이는

배고픈 걱정에 눈물겨워

 

진달래도 피었구나

피리소리조차 요란하다.

이 갠 하늘 끝은 어디일까?

햇빛이 널렸구나!

너른 들판에 햇빛이 널려

참 이 들판은 넓기도 하다

사람이 만일 말이었던들

굴레 벗은 말이었던들

이 들판을 한 번 가로 세로 뛰어보세

동무야! 저 금잔디 강변에

줄달음쳐보지 않으려니?

 

 

 

무제(無題)

 

 

바다와 푸른 하늘

흙과 햇빛

아아 우리는 이 바다와 이 푸른 하늘을 잊을 날이 있을까

또는 이 검은 흙과 이 빛나는 햇빛을

비록 어떠한 세상이 오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잊을 수가 있을까

우리의 목숨을 잊을 수가 있을까

비록 어떠한 위협이 오더라도

우리는 이것을 잊을 수가 있을까

 

옳도다 우리는 빵에 주린 자

사랑에 목마른 자

○○○목숨

기나긴 어둠이 우리의 뒤에 딸려있다

또는 앞으로 널려 있다

그럴수록에 우리는 바다가 더 그리웁다

푸른 하늘이 더 그리웁다

흙냄새가, 햇빛이 더 그리웁다

사랑을 나누고 싶구나

빵을 배불리고 싶구나

싱싱한 팔다리를 가지고, 씩씩한 숨을 내들이쉬고 싶구나!

 

어둠에 사는 인간일수록

밝음이 더 그리웁다 자연이 더 그리웁다

산 생명의 펄펄 뛰노는 생활이 몹시 그리웁다

그러나 우리는 한 마디 말을 더 하여두자

“어둠에 사는 자는 희미한 빛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다 큰 광명이 아니면

차라리 큰 어둠을 바란다

어둠을 지쳐가자 어둠을 지쳐가

그리운 햇빛을 보기 위하여, 그리운 그를 만나기 위하여

이 기나긴 어둠을 전사같이 지쳐 나가자

 

바다와 푸른 하늘

흙과 햇빛

사랑과 빵

그리고 또 목숨, 뛰노는 목숨

아아 백양목 같은 팔다리로 저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이 빛나는 햇빛 아래 이 넓은 땅 위에

발을 내놓아, 동무와 동무의 손을 잡아, 서로서로 일하며 서로서로 뛰놀 시절이 언제나 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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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 상징주의 시대를 연 시인 - 19세기 : 21세기 2016-02-08 0 2691
389 詩의 벼랑길위에서 만나는 시인들 - 포석 조명희 2016-02-06 0 3237
388 천재시인 - 오장환 시모음 2016-02-06 0 4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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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2016, 각 신문사 신춘문예 詩調 당선작 모음 2016-01-21 0 3812
385 ' 2016, 30개 신문사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2016-01-21 0 3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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