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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흑백 저예산 영화라 깔보지 말라. 대한암흑기(일제강점기)의 상징으로 딱 맞는 기법이 아닌가. 자신의 속내를 숨겨야 하는 세상은 흑백의 세상이다. 화려한 칼라는 시선의 산만함을 가져온다. 흑백은 오직 인물의 표정에만 집중할 수 있게 몰입도를 높여 주는 장점도 있다. 인물들의 미세한 표정에서 그 내면까지도 들여다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이준익 감독은 '꿩 먹고 알 먹고'로 비유한 그 우스갯소리에도 뼈가 있는 말이다. 윤동주만 내세우기엔 영화적 서사가 부족할 것 같아서 다른 기둥으로 송몽규를 함께 대입했다고 한다. <왕의 남자>, <사도> 등을 만든 그 내공으로 <동주>를 110분 동안 몰입도 높게 끌고 갔다.
어둔 시대에 청춘을 구겨 넣고 떠난 윤동주는 지금까지 국민시인으로 많은 혜택을 보고 있지만 송몽규는 상대적으로 별로 평가되지 못한 인물이라 이의 발굴에도 힘을 보탠 것이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산문부분 당선자인 송몽규는 결국 주권 잃은 현실임을 실감하고 독립단체에 참여하는 행동인이 된다. 그러면서 동주에게는 '너는 시를 써라 총은 내가 든다'고 하는 몽규의 말이 가슴에 아련히 남는다. 내성적이고 수줍은 많은 동주는 '시인이 되길 원했던 내가 부끄럽다'고 응수한다.
주권을 잃은 그 암흑의 시대에 지식인인 동주가 할 수 있는 것은 시 쓰는 일뿐이었다. 오랜 친구이자 외사촌 송몽규의 행동에 자극을 받아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암울한 시대 조국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도 그는 시를 썼다. 하지만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윤동주가 먼저 죽고 한 달 뒤 송몽규도 죽는다. 미완의 청춘 29살의 나이에 그들 둘은 광복 5개월을 남겨두고 대한 암흑기를 처절하게 살다 갔다.
'20대에 청춘을 마감한 아름다운 청년 그 청년이 남긴 시가 7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마음 한구석 깊이 숨어 있으며 때로는 그 것이 나를 울렁이게 한다'고 이준익 감독은 토한다. 그 시대적 아픔과 부끄러움을 묻어둘 때도 됐는데 왜 또 들춰내느냐고 책망하고 싶은데 그는 대변한다. '두 사람이 어떻게 어둔 시대를 이겨냈고 그 시가 어떻게 이 땅에 남았는지 그 과정을 영화로 담고 싶었다. 그리고 비명에 간 그들의 청춘과 그 시대를 위로하고 싶었다'는 게 이준익 감독의 의도이니 내가 어쩌랴.
영화엔 13편의 시가 나온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의 사랑과
별 하나의 쓸쓸함과…
별이란? 우리 천손민족에겐 별이란 하나의 초월 의지이며 온 곳으로 돌아갈 곳이다.
'별 헤는 밤'과 '서시' 가 인상적이다. 적진의 형무소 창에서 내다보는 밤하늘엔 초롱초롱한 별들만 가득하다.
형무소에서 알 수없는 약물주사를 맞고 각혈하면서 죽어갈 때 읊는 시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서시'는 그렇게 감정선을 절정으로 밀어 올린다. 이 영화의 전편을 흐르는 기조는 '부끄러움'이다. 어느 시대이건 부끄러움을 알고 사는 이는 덜 부끄러운 것인 만큼 지금 기득권 세대들에겐 부끄러움을, 젊은 세대들에겐 전쟁이나 식민의 상황을 그저 관념적으로만 여길 뿐 구체적 감각을 인지하는 지를 거듭 묻고 있는 듯하다.
영화를 본 후 내 삶의 의미가 겹쳐진다. 주권 없는 대한 암흑기를 당시 지식인들이 빠져 나가야 하는 어둠이듯이 나는 이 자본의 어두운 터널을 어떻게 빠져 나가야 하는지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좌절감만 엄습해서 나를 당혹하게 하고 아릿한 뒷맛을 만든다.
시의 정서만이 나를 후려치는 게 아니라 시대상의 아픔이 사정없이 나를 후려치는 채찍이다. 요즘 말하는 참여문학의 개념이 아닌 문학의 본질이자 시대적 아픔을 녹여낸 문학의 정수를 느끼게 한다. 그것이 문학의 역할이 아닐까? 문학은 대중들 앞에서 큰소리로 선동하는 것이 아니고 대중들의 밑가슴에서부터 공감을 갖게 해서 스스로 뒤에서 밀고가는 저력이 아닐까 한다. 소위말해서 '정서적 공감'이랄까.
당시 몽규에게는 일제라는 구체적인 싸워야 할 적이 있었고 동주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거대한 힘과 자기 정체성의 괴리에서 오는 인간적인 부끄러움을 대중들의 정서로 확대하고 있다.
이 시대 알수 없는 수많은 적들에게 둘러싸여 현재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나의 정체성마저 놓쳐버린 이 시대의 정신적인 고아가 되어 버렸다는 자각이다. 무엇과 싸워야 하고 어떤 정체성을 갖고 대항해야 하는지?… 현재 이 어려운 세상과 싸우는 나를 위로하고 힘을 주는 이는 진정 없는가? 한마디로 '방황'이란 대응으로 투정질을 부려볼 뿐이다.
글/정노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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