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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에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이렇게 말했다.
“단어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를 갖는 시어의 세계에서는
그 어느 것 하나도 평범하거나 일상적이지 않습니다.
그 어떤 바위도, 그리고 그 위를 유유히 흘러가는 그 어떤 구름도. 그 어떤 날도.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오는 그 어떤 밤도.
아니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이 세상의 모든 존재도.
이것이야말로 시인들은 언제 어디서든 할 일이 많다는,
그런 의미가 아닐는지요.”
1945년 ‘나는 단어를 찾는다’로 데뷔한 폴란드 시인은 그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가장 용감한 말은 비겁하고/
가장 경멸적인 말은 여전히 성스럽다/
가장 잔인한 말은 너무나 동정적이고/
가장 적대적인 말은 너무나 약하다//
그 말은 화산 같아야 한다/
격동하고, 솟구치고, 힘차게 쏟아져 내려야 한다”.
노벨문학상(1996년) 수상 때 “모차르트의 음악같이 잘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의 음악처럼 냉철한 사유 속에서 뜨겁게 폭발하는 그 무엇을 겸비했다”(스웨덴 한림원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연설문 중)는 찬사를 받자 “진정한 시인이라면 ‘나는 모르겠어’를 되풀이해야 한다”고 되뇌었던 시인의 유고시집 ‘충분하다’가 번역 출간됐다. 한국어판에는 생전 펴낸 마지막 시집 ‘여기’에 실린 시가 더해졌다.
쉼보르스카가 눈을 감기 전 완성한 시는 13편이다. 고민과 첨삭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미완성 시 원고가 또 6편 있었다. 이를 합치고 동료이자 편집자인 리샤르드 크리니츠키의 편집후기를 붙인 ‘충분하다’가 나오자 폴란드 언론들은 ‘유고시집’ 대신 ‘신간시집’이라는 말로 그에게 애정을 표시했다.
‘충분하다’의 시어들은 초창기만큼이나 꾸밈없고 명징하다. 문장은 가볍고 투명한데도 묵직한 힘으로 존재의 본질을, 생의 이면을, 문명의 폐단을 떠올리게 한다.
“다른 곳은 어떤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여기 지구에서는 모든 것이 꽤나 풍요로워/
여기서 사람들은 의자와 슬픔을 제조하지//
(…)여기서 무지(無知)는 과로로 뻗어버렸어.
끊임없이 뭔가를 계산하고, 비교하고, 측정하면서/
결론과 근본적 원리를 추출해내느라.”(‘여기’ 중)
일상을 읊다 불쑥 폭력, 전쟁 등의 테마를 눈 앞에 가져와 뇌를 식히는 문장도 여전하다. 1993년 ‘끝과 시작’이후 쉼보르스카가 이런 주제를 시 속에 언급한 일은 드물다고 한다. 그는 사슬에 묶인 채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개의 모습에서 인간을 향한 억압을, 거리에 남은 시위의 흔적을 보며 폴란드 사회의 현 주소를 본다.
“무더운 여름날, 개집, 그리고 사슬에 묶인 개 한 마리/
불과 몇 발자국 건너, 물이 가득 담긴 바가지가 놓여 있다/
하지만 사슬이 너무 짧아 도저히 닿질 못한다/
이 그림에 한 가지 항목을 덧붙여보자/
훨씬 더 길지만/
육안으로는 보기 힘든 우리의 사슬,
덕분에 우리는 자유롭게 서로를 지나칠 수 있다.”(‘사슬’전문)
‘두 번은 없다’며 유한성 앞에 겸허했던 그는 죽음 앞에서도 초연하고 담담하다.
“어쨌든 나는 돌아가야만 한다/
내 시의 유일한 자양분은 그리움/
그리워하려면 멀리 있어야 하므로” (미완성 원고 부분)
있는 힘을 다해 단어를, 문장을 갈구해 온 그가 택한 마지막 시어는 소소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
김혜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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