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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시모음
2016년 03월 10일 00시 31분  조회:4683  추천:0  작성자: 죽림

<노을 시 모음> 

+== 노을==

누군가 삶을 마감하는가 보다
하늘에는 붉은 꽃이 가득하다

열심히 살다가
마지막을 불태우는 목숨
흰 날개의 천사가
손잡고 올라가는 영혼이 있나보다

유난히 찬란한 노을이다.


(서정윤·시인, 1957-)

+== 노을 ==

저녁노을 붉은 하늘 누군가 할퀸 자국
하느님 나라에도 얼굴 붉힐 일 있는지요?
슬픈 일 속상한 일 하 그리 많은지요?
나 사는 세상엔 답답한 일 많고 많기에 …


(나태주·시인, 1945-)

+== 저녁 노을==

비 맞아 떨어진
벚나무 단풍.
책 속에 고이고이
끼워 두었지만
나 몰래 빠져나간
그 고운 빛깔.
누이야,
저 하늘에
걸려 있구나!


(손광세·아동문학가, 1945-)

+== 석양==

바닷가 횟집 유리창 너머
하루의 노동을 마친 태양이
키 작은 소나무 가지에
걸터앉아 잠시 쉬고 있다
그 모습을 본 한 사람이
'솔광이다!'
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좌중은 박장대소가 터졌다

더는 늙지 말자고
'이대로!'를 외치며 부딪치는
술잔 몇 순배 돈 후
다시 쳐다본 그 자리
키 작은 소나무도 벌겋게 취해 있었다
바닷물도 눈자위가 볼그족족했다


(허형만·시인, 1945-)

+== 노을==

해는 온종일 스스로의 열로
온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여 놓고
스스로 그 속으로 스스로를 묻어간다

아, 외롭다는 건
노을처럼 황홀한 게 아닌가.


(조병화·시인, 1921-2003)

+== 노을==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나를 곱게 물들이는 일
세월과 함께 그윽하게 익어가는 일
동그마니 다듬어진 시간의 조약돌
뜨겁게 굴려보는 일
모지라진 꿈들 잉걸로 엮어
꽃씨 불씨 타오르도록
나를 온통 피우는 일


(최윤경·시인)
* 잉걸=불잉걸 : 불이 이글이글하게 핀 숯덩이


+== 노을 빛 기도 ==

고개를 넘어가는 노을 빛은
빛의 가난을 용서합니다.
용서하기 힘든 용서를
무욕의 손으로 씻어냅니다.

노을 빛은 천천히
그러나 초연한 저 켠의 나래들을
뒷걸음질로 반추하며
비움의 철칙으로 화답하고 있습니다.

노을 앞에서는
증오의 활시위도 꺾어집니다.
가장 강한 자의 오만도 용서합니다.
핍박과 배반의 수레를 쉬게 합니다.

노을은 잿빛 하늘이 아닙니다.
평화의 하늘입니다.
노을은 괴로움의 하늘이 아닙니다.
행복의 하늘입니다.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서
오해를 거두어야합니다.
그대를 용서하지 않으면
나 자신으로부터 나를 가둡니다.

그대는 나의 스승입니다.
나를 깨우쳐 주었음이니
그대에게 갚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죄로부터의 사슬을 풀어내는
작은 기도말입니다.


(이양우·시인, 1941-)

+== 노을==

보내고 난
비인 자리
그냥 수직으로 떨어지는
심장 한 편
투명한 유리잔
거기 그대로 비치는
첫이슬
빨갛게 익은
능금나무 밭
잔잔한 저녁 강물
하늘에는
누가 술을 빚는지
가득히 고이는
담백한 액체
아아,
보내고 나서
혼자서 드는
한 잔의
술.
(홍해리·시인, 1942-)


+== 노을 ==

바이올린을 켜십시오
나의 창가에서
타오르던 오늘
상기된 볼
붉은 빛 속에
가만히 감추고
사랑의 세레나데를 연주해 주십시오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주십시오
곧 다가올
달빛 함께
가벼운 춤 출 수 있게
고운 선율로
복숭아 빛 그대 볼
감싸 안게 다가오십시오

떠나버린 한낮의 뜨거움을
새악시 외씨버선처럼
조심스레 산등성이에 걸어 놓고
또다시 돌아올
아스라한 새벽 빛 맞으러
길 떠날 수 있게
사뿐한 사랑으로
그대 내게 오십시오


(전은영·시인)

+==노을 ==

어둠끼리 살 부딪쳐 돋아나는
이 세상 불빛은 어디서 오나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서해 바다 가득한 노을을
끌고 돌아오는
줄포항 목선 그물 속
살아서 퍼득거리는
화약냄새


(나호열·시인, 1953-)

+== 황혼==

온종일 건너온 고해를
피안의 테두리 안으로 밀어 넣는
이승과 저승이 만나는 곳

수평선 위에
바닷새 한 마리
불타고 있다

하루의 제물을 바치고 있다


(조옥동·시인, 충남 부여 출생)


+== 황혼이 질 무렵==

석양을 보면
떠나고 싶다

이름 석 자 내 이름은 벗어버리고
의자에 앉았으면 앉았던 그 모습으로
언덕 위에 섰으면 서 있던 그 모습대로
바람이 불어오면 나부끼던 머리카락 그대로 두고

항상 꿈보다 더 깊은 꿈속에서
나를 부르던 아, 이토록 지독한 향수!

걸어가면 계속하여 걸어가면 닿을 것 같은
보이지 않는 그곳이 있어 아, 이토록 지독한 향수!


(홍수희·시인)


+== 황혼까지 아름다운 사랑 ==

젊은 날의 사랑도 아름답지만
황혼까지 아름다운 사랑이라면
얼마나 멋이 있습니까

아침에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의 빛깔도
소리치고 싶도록 멋이 있지만

저녁에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지는 태양의 빛깔도
가슴에 품고만 싶습니다

인생의 황혼도 더 붉게
붉게 타올라야 합니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기까지
오랜 세월 하나가 되어

황혼까지 동행하는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입니까.


(용혜원·목사 시인,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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