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7월 2024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시인 지구촌

[비는 처절히 처절히... 詩 한컷]- 극빈
2016년 04월 21일 08시 04분  조회:3641  추천:0  작성자: 죽림

<극빈> -문태준

열무를 심어놓고 게을러
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고
가까스로 꽃을 얻었다 공중에
흰 열무꽃이 파다하다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
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
그 문답 끝에 나비 하나가
나비가 데려온 또 하나의 나비가
흰 열무꽃잎 같은 나비 떼가
흰 열무꽃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가녀린 발을 딛고
3초씩 5초씩 짧게짧게 혹은
그네들에겐 보다 느슨한 시간 동안
날개를 접고 바람을 잠재우고
편편하게 앉아 있는 것이었다
설핏설핏 선잠이 드는 것만 같았다
발 딛고 쉬라고 내줄 곳이
선잠 들라고 내준 무릎이
살아오는 동안 나에겐 없었다
내 열무밭은 꽃밭이지만
나는 비로소 나비에게 꽃마저 잃었다


구례 섬진강 가 폐교 사택을 얻어 2년을 산 적이 있습니다. 제가 원래 농사꾼 출신이라 텃밭에 상추며 열무며 참깨며 채소를 많이 심었습니다. 그런데 열무는 저 혼자 먹고 남아서, 아내에게 보내고, 마을사람들에게 거저 솎아가게 해도 비 한 차례만 내리면 우쭐우쭐 자라버렸습니다. 어느 날 여행을 갔다가 일주일 만에 돌아와 보니 몇 번 먹지도 못한 열무들이 연보랏빛 흰 열무꽃을 온통 피워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열무꽃밭엔 나비떼며 벌 떼가 잉잉거리며 즈이들 사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미처 거두지 못한 열무밭을 나비며 벌 떼가 차지하고 있던 것입니다. 저는 그걸 바라보며 그 풍경이 너무 아름답고 싱그럽게 느껴졌었습니다.

문태준 시인도 저와 같은 경험을 시로 표현하고 있군요. 사람들이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고 놀리는 데서 알 수 있듯, 줄기와 잎 그리고 뿌리를 먹는 열무의 현실적 효용성을 ‘게을러’ 놓쳐버리고, ‘가까스로’ 꽃이라는 비실용적 미적 가치를 얻습니다. 채소밭은 아름다움을 위해 가꾸는 것이 아니라 채소를 재배하여 먹기 위해 있는 공간인데 비실용적이고 엉뚱한 일이 벌어져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난감하고 망설여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꽃밭에 한 마리, 두 마리, 나비 떼가 나타나 앉아서 “그네들에겐 보다 느슨한 시간 동안”을 머뭅니다. 한마디로 열무꽃밭의 쓰임새가 전복되는 순간입니다. 열무꽃밭은 사람들에게 싱싱한 채소를 제공해주진 못하지만 나비 떼에게 깊은 휴식의 시간을 만들어준 것입니다. 결국 나의 열무밭은 나비의 꽃밭이 되어버린 셈이지요. 나는 살아오면서 남에게 편히 쉬라고 내준 ‘무릎’이 한 번도 없었는데, 열무꽃은 나비 떼에게 느슨한 휴식의 자리를 내어주었으니, 어쩜 나는 열무밭에서 잎과 줄기, 뿌리만이 아니라 나비에게 꽃마저 잃은 셈이지요. 그러니 이게 ‘극빈’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름다움을 향한 허영과 욕망마저도 비워버린 지독한 가난인 셈이지요.

여기서 ‘설핏설핏’이라는 부사가 나오는데 이는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짜거나 엮은 것이 거칠고 성긴 모양입니다. 둘째 잠깐잠깐 나타나거나 떠오르는 모양을 가리킵니다. 셋째 잠깐잠깐 풋잠이나 얕은 잠에 빠져드는 모양을 가리킵니다. 물론 이 시에선 당연히 세 번째 의미를 갖는 첩어입니다. “잠을 자도 설핏설핏 노루잠을 자던 아이가…오랜만에 잠도 달게 자는 것이었다.” (현기영-변방에 우짖는 새)라고 쓸 수 있지요. 한편 거칠고 성기게 짠 피륙을 ‘설피창이’라고 하고, ‘해가 설핏하다’ 하면 해의 밝은 빛이 약해지는 것을 말한다는 것도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162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562 詩속에 음악성을 듬뿍듬뿍 띄워야... 2016-07-27 0 3412
1561 흑룡강의 시혼과 함께...강효삼론/허인 2016-07-26 0 3400
1560 詩의 文脈은 山脈, 血脈 등과 간통해야 한다... 2016-07-26 0 3749
1559 보리피리 시인=파랑새 시인 2016-07-25 0 3281
1558 詩의 리론을 깨끗이 잊는것도 공부이다... 2016-07-25 0 3590
1557 詩의 언어는 암시성을 강하게 장치해야 한다... 2016-07-25 0 3689
1556 詩作은 도자기를 만드는것과 같다... 2016-07-23 0 3260
1555 詩作을 할때 詩적 은유를 많이 리용하라... 2016-07-21 0 3767
1554 詩란 진부한 표현을 말살하는 작업이다... 2016-07-20 0 3841
1553 詩란 內美之象적 언어를 뿜어내는 것... 2016-07-19 0 3638
1552 詩作은 그림을 그리는 것... 2016-07-18 0 3568
1551 詩란 의미전달목적과 론리설명언어표현도 아닌 정서적 울림! 2016-07-17 0 3697
1550 시어의 운률미/최균선//방순애시집평론/허인//김금용... 2016-07-15 0 4009
1549 詩란 전례를 타파하는것, 고로 쓰기가 힘든것... 2016-07-15 0 3482
1548 詩作은 풍부한 사유를 많이 하는 것... 2016-07-14 0 3612
1547 詩에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자... 2016-07-14 0 3290
1546 詩란 나와의 싸움의 결과물이다... 2016-07-12 0 3451
1545 詩作는 날마다 숙제를 하듯 쓰는 습관을 가져야... 2016-07-11 5 3574
1544 詩는 예리한 눈에서 탄생한다... 2016-07-11 0 3456
1543 詩作은 많은 문학적 경험에서 나온다... 2016-07-11 0 3559
1542 詩란 언어와의 사랑이다... 2016-07-07 0 3407
1541 詩란 고정관념틀을 깨고 그속의 비밀, 맘의 눈으로 보기 2016-07-06 0 3908
1540 [재미있는 詩뒷이야기]-杜牧 唐代詩人의 詩 <淸明>과 련관되여 2016-07-05 0 4656
1539 詩는 제천의식(祭天儀式)에서 유래 2016-07-05 0 3095
1538 李相和와 李陸史 2016-07-04 0 3944
1537 詩는 문학의 정점, 곧 시작과 끝... 2016-07-04 0 3538
1536 名詩들 앞에 선 초라하고 불쌍한 자아의 詩여!!! 2016-07-02 0 3083
1535 詩란 유산균이 풍부한 잘 곰삭은 맛깔스러운 국물! 2016-07-01 0 3459
1534 詩는 안이 밖이 되고 밖이 안이 되는 것... 2016-06-30 0 3454
1533 가짜 詩人과 진짜 詩人 2016-06-29 0 3224
1532 [생각하는 詩 여러 컷] - 탁발 / 소금 ... ... 2016-06-27 0 3864
1531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없다? 있다!... 2016-06-27 0 3559
1530 <조문(弔問)과 죽음 묵상> 시모음 2016-06-26 0 3617
1529 詩적 상상력을 키워야... 2016-06-25 0 4308
1528 詩作은 금기를 풀고 틀을 깨는것... 2016-06-25 0 3978
1527 詩는 時와 空을 초월해야... 2016-06-23 0 4500
1526 詩는 광고정보 전달 수단이 아니다... 2016-06-23 0 3981
1525 [장마전, 한무더운 아침 詩 둬컷] - 밥 / 산경 2016-06-23 0 3388
1524 詩란 천장을 뚫고 하늘의 높이를 재보는것... 2016-06-21 0 3847
1523 詩의 꽃을 피우기 위해 詩의 씨앗이 있어야... 2016-06-20 0 3820
‹처음  이전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