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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없이 써 온 단어가 낯설어질 때가 있어요. 대개 그것을 깊이 생각하게 될 때 그래요. 깊이 생각하면 뒤척임도 깊어져요. 뒤척임이 깊어 생각이 깊어지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단어를 들여다보면 담긴 것과 담고 싶은 것이 보여요. 우물 같아요. 안이 자꾸 궁금해져요. 한 단어 앞에 문득 멈추게 하는 시가 있어요. 이 시가 그래요.
인사. 가장 많이 건네는 자세예요. 말로, 목소리 없는 문장으로 건넬 때도 인사에는 자세가 들어있지요. 물론 생긴 모양도 뜻도 그러하지요. 시인은 인사를 말하지만 실은 시를 말하고 있어요. 반갑고 정답고 맑은 것이 시라고. 또 시를 얘기하지만 실은 인사 얘기예요. 세상일들과 사물과 마음들에 건네는 것이 인사라고. 그러니까, 인사가 아니면 시가 아니고 시가 들어있지 않으면 인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인사에는 시가, 시에는 인사가 담겨야 한다는 것이지요.
주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어요. 세상일들과 사물과 마음들에 건네는 것이 인사인데 말이죠. 사람에 대고 열심히 인사했지만 마음은 미처 못 보았어요. 세상일들에 나름의 인사를 건넸다고 생각했지만, 이 시인의 ‘모든 건 꽃핀다’에서처럼, “너의 고통에도 불구하고/내가 꽃피었다면?/나의 괴로움에도 불구하고/네가 꽃피었다면?” 까지 살펴 들어가는 자세를 만들지 못했어요. 이런 곳에 살아있는 ‘눈짓’이 생겨날 리 만무죠.
반갑고 정답고 맑은. 지극히 간명한 단어들을 한참 뒤척였어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즉 정확하게 라는 것이죠. 안과 밖이, 앞과 뒤가 서로를 비출 때까지 맑아지는 것. 넘치면 좋은 줄 알았죠. 마음까지 파묻혀요. 흘러 넘쳐요. 그러고 보면 언제보다는 어떻게가 먼저인 인사, 참 어려운 것이에요.
인사가 너무 많아졌어요. 잠시 메일도 SNS도 멈추고(물론 이모티콘도요) 곰곰 생각해봐야겠어요. 인사 건네고 싶은 세상일과 사물과 마음들을요. 정답고 반갑고 맑은 자세가 서투르게나마 생겨날 때까지요.
/이원 시인
시의 눈빛 / 이운룡
시의 눈빛
이 운 룡
난해한 시를 지하에서 맨손으로 캔다. 광맥은 캄캄하다 눈이 어둠처럼 조밀해야 보인다. 잠 속에서는 그 떨림을 눈감고 들어야 한다.
어둠 속에 눈빛이 있다. 위험을 감수한 첨단처럼 사는 상상력을 비틀어 어둠을 짜내야 속도를 옥죄는 진동이 우러나온다. 눈에 안 띄는 게 금이다.
추상화가 선과 색채의 장난이 아니 것처럼 시는 부피를 꿰뚫고 평면을 꿰매어 광맥을 숨겨야 빛을 품는다. 첨단화 눈이 아니면 빛을 캐낼 수 없듯이 막힌 것이 뚤린 길이다.
틈새의 빛은 버려진 어둠의 찌꺼기 이다. 눈빛만이 절대의 꿈이다. 광맥이 난해하듯, 칙칙한 눈에서 빛이 나듯 벗겨야 향기를 내쏜다. 어두워야 빛나는 우주 광년이 난해한 시의 눈빛이다.
<이운룡 시전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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