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7월 2024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시인 지구촌

김춘수 - 꽃
2016년 05월 01일 18시 45분  조회:3987  추천:0  작성자: 죽림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은 릴케와 꽃과 바다와 이중섭과 처용을 좋아했다. 시에서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의미의 두께를 벗겨내려는 '무의미 시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교과서를 비롯해 여느 시 모음집에서도 빠지지 않는 시가 '꽃'이며 사람들은 그를 '꽃의 시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1952년에 발표된 '꽃'을 처음 읽은 건 사춘기의 꽃무늬 책받침에서였다. '그'가 '너'로 되기, '나'와 '너'로 관계 맺기, 서로에게 '무엇'이 되기, 그것이 곧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구나 했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것이구나 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게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며, 이름이야말로 인식의 근본 조건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대학에 와서였다. 존재하는 것들에 꼭 맞는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가 시 쓰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도.

백일 내내 핀다는 백일홍은 예외로 치자. 천 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의 꽃도 논외로 치자. 꽃이 피어 있는 날을 5일쯤이라 치면, 꽃나무에게 꽃인 시간은 365일 중 고작 5일인 셈. 인간의 평균 수명을 70년으로 치면, 우리 생에서 꽃핀 기간은 단 1년? 꽃은 인생이 아름답되 짧고, 고독하기에 연대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서로에게 꽃으로 피면, 서로를 껴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늦게 부르는 이름도 있고 빨리 부르는 이름도 있다. 내 꽃임에도 내가 부르기 전에 불려지기도 하고, 네 꽃임에도 기어코 네가 부르지 않기도 한다.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부르는 것의 운명적 호명(呼名)이여! '하나의 몸짓'에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는 것의 신비로움이여!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꽃은 나를 보는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으나, 내가 본 가장 무서운 꽃은 나를 등진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다.

세계일화(世界一花)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한 꽃이다. 만화방창(萬化方暢)이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꽃 천지다. 꽃이 피기 전의 정적, 이제 곧 새로운 꽃이 필 것이다. 불러라, 꽃!

[정끝별]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162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642 굴레가 되고 싶지 않다... 2016-10-10 0 3679
1641 김수영 시인을 다시 떠올리면서... 2016-10-10 0 4045
1640 풀의 시인 김수영 非발표작 詩 공개되다... 2016-10-10 0 3702
1639 저항시인 이육사 미발표 詩 발굴되다... 2016-10-10 0 4236
1638 윤동주 미발표작 詩 발굴되다... 2016-10-10 0 2898
1637 "윤동주 미발표 詩 더 있다" 2016-10-10 0 3643
1636 詩란 사모곡(思母曲)이다... 2016-10-10 0 3208
1635 詩는 리태백과 두보와 같다...처..ㄹ... 썩... 2016-10-09 0 3480
1634 詩는 무지개의 빛갈과 같다... 아니 같다... 2016-10-09 0 3339
1633 현대시사상 가장 다양한 시형의 개척자 - 김수영 2016-10-06 0 4114
1632 詩란 무구(無垢)한 존재이며 무구한 국가이다... 2016-10-06 0 3817
1631 詩는 추상의 반죽 덩어리... 2016-10-06 0 3396
1630 詩는 시골이다... 2016-10-03 0 3202
1629 詩란 주사위 던지기와 같다... 2016-10-02 0 3370
1628 詩란 100년의 앞을 보는 망원경이다... 2016-10-01 0 3303
1627 詩는 가장 거대한 백일몽 2016-10-01 0 3472
1626 詩人은 존재하지 않는 詩의 마을의 촌장 2016-10-01 0 3571
1625 詩人은 오늘도 詩作을 위해 뻐꾹새처럼 울고지고... 2016-10-01 0 3751
1624 詩作에서 구어체 편지형식을 리용할수도 있다... 2016-10-01 0 3512
1623 詩人은 약초 캐는 감약초군이다... 2016-10-01 0 3748
1622 詩人는 언어란 감옥의 감옥장이다... 2016-10-01 0 3615
1621 詩人은 추상화와 결혼해야... 2016-10-01 0 3701
1620 詩란 섬과 섬을 잇어놓는 섶징검다리이다... 2016-10-01 0 3129
1619 詩란 돌과 물과 바람들의 침묵을 읽는것... 2016-10-01 0 3396
1618 詩란 사라진 시간을 찾아 떠나는 려행객이다... 2016-10-01 0 3713
1617 詩作란 황새의 외다리서기이다... 2016-10-01 0 4313
1616 詩란 한잔 2루피 찻집의 호롱불이다... 2016-10-01 0 3354
1615 詩란 사라진 길을 찾는 광란이다.... 2016-10-01 0 3790
1614 詩는 한해살이풀씨를 퍼뜨리듯 질퍽해야... 2016-10-01 0 3563
1613 나는 다른 시인이 될수 없다... 2016-10-01 0 4574
1612 詩는 국밥집 할매의 맛있는 롱담짓거리이다... 2016-10-01 0 3341
1611 詩란 심야를 지키는 민간인이다... 2016-10-01 0 3565
1610 詩는 한매의 아름다운 수묵화 2016-10-01 0 3833
1609 詩는 신비한 혼혈아이다... 2016-10-01 0 3867
1608 詩作에는 그 어떠한 격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2016-10-01 0 3393
1607 詩는 길위에서 길찾기... 2016-10-01 0 3633
1606 詩에는 정착역이란 없다... 2016-10-01 0 3424
1605 詩와 윤동주 <<서시>> 2016-10-01 0 3352
1604 詩는 리별의 노래 2016-10-01 0 3084
1603 詩人은 풀잎같은 존재이다... 2016-10-01 0 3904
‹처음  이전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