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9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김춘수 - 꽃
2016년 05월 01일 18시 45분  조회:4299  추천:0  작성자: 죽림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은 릴케와 꽃과 바다와 이중섭과 처용을 좋아했다. 시에서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의미의 두께를 벗겨내려는 '무의미 시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교과서를 비롯해 여느 시 모음집에서도 빠지지 않는 시가 '꽃'이며 사람들은 그를 '꽃의 시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1952년에 발표된 '꽃'을 처음 읽은 건 사춘기의 꽃무늬 책받침에서였다. '그'가 '너'로 되기, '나'와 '너'로 관계 맺기, 서로에게 '무엇'이 되기, 그것이 곧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구나 했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것이구나 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게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며, 이름이야말로 인식의 근본 조건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대학에 와서였다. 존재하는 것들에 꼭 맞는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가 시 쓰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도.

백일 내내 핀다는 백일홍은 예외로 치자. 천 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의 꽃도 논외로 치자. 꽃이 피어 있는 날을 5일쯤이라 치면, 꽃나무에게 꽃인 시간은 365일 중 고작 5일인 셈. 인간의 평균 수명을 70년으로 치면, 우리 생에서 꽃핀 기간은 단 1년? 꽃은 인생이 아름답되 짧고, 고독하기에 연대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서로에게 꽃으로 피면, 서로를 껴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늦게 부르는 이름도 있고 빨리 부르는 이름도 있다. 내 꽃임에도 내가 부르기 전에 불려지기도 하고, 네 꽃임에도 기어코 네가 부르지 않기도 한다.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부르는 것의 운명적 호명(呼名)이여! '하나의 몸짓'에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는 것의 신비로움이여!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꽃은 나를 보는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으나, 내가 본 가장 무서운 꽃은 나를 등진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다.

세계일화(世界一花)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한 꽃이다. 만화방창(萬化方暢)이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꽃 천지다. 꽃이 피기 전의 정적, 이제 곧 새로운 꽃이 필 것이다. 불러라, 꽃!

[정끝별]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483 詩作은 온몸으로 하는 것 2016-05-29 0 4214
1482 노래하듯이 詩 랑송하기 2016-05-29 0 3836
1481 동시 지도안 2016-05-29 0 4431
1480 동시 지도 요령 2016-05-29 0 3821
1479 동시 지도하는 방법 2 2016-05-29 0 3782
1478 동시 지도하는 방법 2016-05-29 0 3929
1477 엄마도 동시를 지도할수 있다... 2016-05-29 0 3144
1476 동시랑송법 2 2016-05-29 0 3716
1475 동시랑송법 2016-05-29 0 3707
1474 랑송문화는 글자가 없던 오랜전부터 있어 왔다... 2016-05-29 0 3467
1473 랑독과 랑송의 차이점 2016-05-29 0 3826
1472 詩랑송 아름답게 잘하는 법 3 2016-05-29 0 3782
1471 詩랑송 아름답게 잘하는 법 2 2016-05-29 0 3804
1470 詩랑송 아름답게 잘하는 법 2016-05-29 0 4318
1469 詩 랑송하는 법 2 2016-05-29 0 3808
1468 詩 랑송하는 법 2016-05-29 0 4072
1467 청(靑)은 현(玄)과 흑(黑)과 통한다... 2016-05-29 0 4482
1466 프랑스 시인 - 라포르그 2016-05-28 0 4416
1465 詩人의 머리속은 하얗게 비어 왔었고... "그 불빛" 2016-05-28 0 3783
1464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라... 2016-05-27 0 3885
1463 詩作에서 관념은 가고 이미지만 남아라... 2016-05-27 0 4084
1462 시선과 시선 마주치기 2016-05-27 0 4002
1461 꼬맹이들의 동시모음 2016-05-27 0 4143
1460 <한글> 시모음 ///윤동주 년보 2016-05-26 0 4528
1459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2016-05-26 0 4690
1458 詩를 쓸 때 마무리에도 신경 써야... 2016-05-25 0 4255
1457 <책> 시모음 2016-05-25 0 3926
1456 미국 녀성 시인 - 에밀리 디킨슨 << 1775 : 7>> 2016-05-25 0 5931
1455 두 시인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2016-05-25 0 4240
1454 오누이 詩碑 2016-05-24 0 4315
1453 청마 유치환 시인과 정운 이영도 시조시인와의 사랑詩 2016-05-24 0 5031
1452 詩作에서 끝줄을 쓰고 붓을 놓을 때... 2016-05-24 0 4342
1451 詩는 뜸을 잘 들여야 한다... 2016-05-24 0 4159
1450 [비 추적추적 오는 아침 詩]- 련쇄 사랑사건 2016-05-24 0 4795
1449 詩공부는 꽃나무에 물을 주는 격... 2016-05-21 0 4139
1448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2016-05-20 0 4203
1447 우리는 귀향선을 모른다... 2016-05-20 0 4333
1446 진짜 시인, 가짜 시인, 시인다워야 시인 2016-05-19 0 3907
1445 천재 녀류시인 - 옥봉 / 詩가 내게... 2016-05-19 0 5095
1444 [화창한 초여름 아침 詩 한컷] - 졸업 2016-05-19 0 4165
‹처음  이전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