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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은 1993년 흑인 여성 작가 토니 모리슨의 수상 이후 23년 만이다. 밥 딜런은 미국인으로서는 아홉 번째 수상자다. 시상식은 12월 10일 열린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800만크로나(10억원)가 수여된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1927년)과 버트런드 러셀(1950년), 정치인 윈스턴 처칠(1953년), 탐사 보도 언론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2015년) 등이 순수 문학 창작이 아닌 저술 활동으로 상을 받은 적 있다. 밥 딜런은 미국 대중음악은 물론, 1960~ 1970년대 한국 포크 음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대수·김민기·양희은·송창식·윤형주·이장희 같은 한국의 통기타 가수와 작곡가들도 당시 밥 딜런에게 직접적 영향을 받았다. 가수 윤형주씨는 13일 본지 통화에서 "1968년 '트윈 폴리오'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 우리가 가장 즐겨 불렀던 노래 가운데 하나가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수년 전부터 밥 딜런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하면서 "그가 노벨상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의 대표곡인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Knocking on Heaven's Door)'에 빗댄 말이다. 2008년에는 "특별한 시적 힘을 가진 작사"라며 퓰리처상 특별상을 받았다.
[출처] 조선닷컴
미국 포크 록의 대부 밥 딜런이 201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해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거장이라 불리는 그가
세계의 역사를 바꾼 노래를 작사한 공로로 2016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거머쥔 것.
밥 딜런은 누구이고 무슨 노래를 만들었고 어떤 일을 했을까.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에서 미래는 다양한 형태의 지식이
빠르게 변화되는 사회에 어떻게 적응하는가의 경쟁이라 하였다.
그렇다! 21세기의 문학의 장르는 다양함을 따랐고 그중 시간에 초점을 맞추었다.
즉, 눈으로만 읽고 느끼던 지적한계를 귀로 들으면서 입체적 감동을 부가시켰고,
또 책 한 권을 장시간 읽어야 느끼던 감동을 단 3~5분에 느끼는 것도
문학이라 인정한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기사도 있네요.
“오바마에게 그저 ‘부시와 다르다’는 이유로 노벨평화상을 준 이래 가장 믿기 힘든 결정이다”
마약과 반전의 대명사인 밥딜런이 우리나라 가수였으면 벌써 풍속사범이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음반판매 불허나 방송출연 영구 금지당했을 것이다.
그의 반전운동은 관점에 따라 찬반이 갈릴 수 있으나 마약쟁이였다는 것은
누구도 옹호할 수 없을 것이다.
<밥 딜런의 생애>
밥 딜런(Bob Dylan, 1941년 5월 24일~)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시인, 화가이다.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지머먼(Robert Allen Zimmerman)이다.
그의 작품은 1960년대부터 비공식 작자와 저항음악의 대표로서 사랑을 받았다.
한국의 학생운동에도 영향을 준 "Blowin' in the Wind" 그리고 "The Times They Are
a-Changin'"과 같은 노래들은 사회상을 잘 보여주는 저항적 노랫말로
시민권을 대표하는 곡이 되었으며, 베트남 전쟁에 대한 저항의 표상이 되었다.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있는 음악가 중 한명으로 꼽힌다.
음악가로는 처음으로, 미국 노래의 전통에서 시적인 표현을 새롭게 만들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딜런은 10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1959년 미네소타 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61년에 중퇴하였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우상인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간다.
뉴욕에 도착해 우디 거스리를 만나고 그리니치 빌리지 주변의 클럽들을 전전하며
연주하던 그는 유명 음반 제작가 존 하몬드의 눈에 띄어
콜롬비아 레코드를 통해 데뷔하게 된다.
그 후 앨범 The Freewheelin' Bob Dylan(1963) 의 성공을 통해 당시 활발했던
사회적 저항 운동의 상징적인 음악가가 되었으며,
특히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 등 비트닉 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그의 시적인 가사는
대중음악에서의 가사의 수준을 끌어 올렸다.
<수상 배경>
스웨덴 한림원의 사라 다니우스 사무 총장은, "밥 딜런은 귀를 위한 시를 쓴다"고 표현하면서
"밀턴과 블레이크에서 이어지는 영어권 전통 속에서 위대한 시인이며,
항상 자신을 쇄신하고 새로운 신원을 창조하고 있다."고 하였고,
"2천5백 년 전에 써진 호메로스와 사포의 시를 지금까지 읽고 우리가 그것을 즐긴다면
밥 딜런 또한 읽을 수 있고 읽지 않으면 안 된다."고 수상 배경을 밝혔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깨닫게 될까.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이 바다 위를 날아야 백사장에서 편히 쉴 수 있을까.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영원한 평화가 찾아올까. 친구여, 그 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네.” - Blowin' in The Wind 중에서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위원회가 반전과 평화, 저항과 자유를 노래한 미국의 싱어송 라이터, 밥 딜런(Bob Dylan)을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노벨위원회는 음유시인이자 대중가수인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유에 대해 “미국의 노래 전통 속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했다.”(“for having created new poetic expressions within the great American song tradition”)고 밝혔다.
실로 파격적이고 의외의 일이었다. 노벨문학상 116년 역사상 시나 소설 등 순수 문학 장르를 벗어나 대중 가수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례가 없었기에 밥 딜런의 수상은 그래서 국내외적으로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심지어 논란이 일고 있기까지 하다. 노벨문학상 사상 116년 만에 최초로 문학 작가들을 제치고 노벨문학상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인 연세대 국문학과 정과리 교수조차도 10여 년 전부터 이미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지만 정말 노벨 문학상을 받을 줄은 몰랐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정 교수는 아무래도 일단 순수 문학이 아니니까 무의식적으로 제외하고 있었던 셈이라며 노벨상 위원회가 문학의 영역을 단순히 문학작품에서가 아니라, 문학이 들어나는 모든 문화적인 생산물들에서 그 문학을 찾겠다고 그 영역을 확대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략 12세기 전후로 해서 유럽에서는 투르바두르 투르베르라고 해서 음유시인들이 굉장히 많이 쏟아져 나왔고 결국 그 음유시인들이 사실상 오늘날 문학의 기본 토대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본다면, 사실 밥 딜런은 음유시인의 전통을 충실히 이어받고 그걸 발전시킨 사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의 어느 시인이 ‘시적인 것은 어디에나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문학적이라고 하는 것은 문학작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표현할 때 그걸 감동적으로나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는 방식으로 표현하면 그게 다 문학적인 것일 수 있고, 그런 점에서 노래도 역시 그런 문학적인 정신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이번 노벨문학상의 결정은 이제까지의 문학서적을 잣대로 평가하던 전통적 방식을 탈피, 다른 장르인 대중음악과 가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평가함으로써 노벨문학상 심사의 외연을 넓힌 것으로 보인다.
밥 딜런의 음악과 시 세계
‘Blowin' in The Wind’, ‘Knockin' On Heavens Door’, ‘Like A Rolling Stone’, ‘Visions Of Johanna’ 등에서 드러나는 그의 곡들은 밥 딜런의 시적인 은유와 상징으로 그의 가장 큰 문학적 무기다.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는 이미 밥 딜런의 노랫말을 연구하는 강좌가 있을 정도로 그에 대한 관심이 높으며, 다의적이고 문학적 향기와 철학적 메시지가 강한 그의 시와 음악에 대한 관심은 국내외를 불문코 진행 중이다. 대중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스타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되고 있던 관계로 이번 노벨상 수상은 결코 새삼스런 일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이다.
밥 딜런은 뮤지션으로 태생적인 오만함과 굴곡 많은 결혼생활이 말해주듯 고정적인 틀에서 벗어나 자유분방의 전형이었다. 그의 이러한 캐릭터는 1960년대 반전운동과 청년문화, 기성세대의 낡은 질서에 저항했던 청년 문화를 대표했다. 그런 점에서 노벨문학상의 후보에 오른 고은 시인도 일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고은 시인은 사회적인 메시지가 강한 시를 써왔고 그래서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 케냐의 응구기와 시응오, 시리아의 아도니스 등과 함께 강력한 후보 중의 한 사람이었다.
밥 딜런은 그의 가사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거부하지만, 그의 두 번째 앨범 ‘프리윌링 밥 딜런’의 수록곡 ‘블로잉 인 더 윈드’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에 대한 그의 분명한 반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1960년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에서 저항정신을 대변했다. 씁쓸한 일이지만, 시중에서는 이번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들 두고1만여 명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자료가 공개되어 충격을 주고 있는 이 땅의 이데올로기적 경직성과 사회적 폐쇄성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게 읽혀지고 있다.
밥 딜런의 앨범은 현재까지 약 1억 3천여 만 장이 팔렸고 11개의 그래미상,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엔 “팝 음악과 미국 문화에 깊은 영향”을 인정받아 퓰리처상도 수상했다. 2012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최고의 영예인 자유의 메달을 수여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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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의 함축적이고 시적인 가사는 포크음악의 예술성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5년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의 가사 ‘아무것도 없으면 잃을 것도 없다"(When You Got Nothing, You Got Nothing to Lose)가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문에 인용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미국 고교와 대학에서 교과서로 널리 쓰는 "노턴 인트로덕션 투 리터러처"에는 그의 가사가 실릴 정도로 미국 내에서는 단순한 가수가 아닌 저항시인으로 대우를 받았다.
한림원은 “미국의 위대한 음악 전통 내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며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이유를 밝혔다.
사진설명: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팝가수 밥 딜런이
2012년 5월 29일 워싱톤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메달을 받고있다.
1960년대의 반전 가수 밥 딜런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음유시인, 포크록의 대부, 저항가수로 통칭되는 그에게 노벨문학상이 주어짐으로서 문학계는 물론 문화계 전반에 놀라운 충격을 주고 있다. 수상근거는 ‘위대한 노래의 전통 속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노래를 ‘귀로 듣는 시’라고 하듯이 밥딜런은 음유시인이다. 싱어 송 라이터이자, 화가이고, 시인인 밥딜런, 그는 다면적인 마스크의 소유자이다. 음악계에서는 그를 포크록(folk rock)의 대부라고 부르지만, 정통음악계에서는 배신자라 부른다. 포크(folk) 인 ‘blowing in the wind'(바람만이 알고 있지요)에서, 락(rock)인 'knocking on heaven's door'(천국의 문을 노크하다)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흑인들의 민요인 포크 불르스, 로큰 롤, 컨트리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고 있다. 음악인으로서도 다면적 마스크의 소유자다.
1960-70년대 음악을 사랑하는 대중들은 이원화 되었다. 군사정권의 통치와 산업화의 그늘에서 음울한 시대를 살던 젊은 지성인들은 저항의 아이돌 밥딜런, 그리고 그의 에피고넨이던 한국의 밥딜런, 김민기에 매달렸다. 김민기가 맨발로 올라 <아침이슬>을 열창하던 무대에 젊은 지성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다. 당대 대학생들은 모두 김민기 키드(kid)가 돼어 시대고를 카타르시스했던 것이다. 반면 공장에서, 농촌에서 일하던 일반 대중들은 나훈아, 남진의 트롯에 열광하며 노동의 피로를 풀고, 삶의 고난에 위로받았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의 음악은 보헤미안 템퍼(bohemian temper, 낭만기질)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 하나의 히트곡 ‘like a rolling stone'이 대표적이다. 이 곡은 ‘세상을 바꾼 예술 1위’(영국잡지 ‘언컷’ 선정),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로큰롤‘(잡지 ‘로큰롤’)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의 대중가요 'Big 4'는 보통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 롤링스톤즈, 밥딜런으로 불린다. 비록 밥딜런의 top 10 곡이 4편에 불과하지만 그의 음악은 멜로디와 가사가 접목되어 ‘가사화된 멜로디’라는 신경지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비틀즈의 음악이 멜로디 중심이고 가사는 뒷전에 밀린 ‘멜로디화 된 가사’와 비교된다. 이러한 가요계의 추세에서 노래의 내용을 중시하는 즉 ‘컨텐츠의 음악’으로 격상시켰던 것이다. 비틀즈의 음악은 '리듬'으로 듣고, 밥 딜런의 음악은 '가사'로 듣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밥딜런은 세계 음악사에서 하나의 변혁을 가져온 인물이다. 밥 딜런의 영향 아래 비틀즈도 노랫말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을 정도다.
그의 음악사상은 기본적으로 비트이즘(beatism)에 기초하고 있다. 가치의 상대성을 신뢰하고, 제도화된 모든 기성가치와 사회제도에 대한 거부와 부정(anti-establishment)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음악사상은 1950년대 앵그리 영맨(angry youngman) 운동과도 연결된다. 비트이즘 차원에서 반전,반핵 사상도 분비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음유시인의 영역을 넘어 저항가수, 앙가쥬망 싱어로서의 위상을 굳혔다.
그는 일찌감치 문학의 길을 걸었다. 비록 중퇴했지만 미네소타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시도 창작하였다. 하지만 곧 음악에 심취하여 가수로의 길을 걷는다. 문학 전공자답게 가사말에 신경을 써서 시와 노래, 즉 문학과 음악의 접합을 시도한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한 사람의 인간이 될 수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지요
대표곡 <바람만이 알고 있지요>는 가사말만 따로 떼어 놓으면 훌륭한 시다. 이점을 인정 받아 이 노래말은 미국 교과서에도 실렸다. 그야말로 노래말을 시의 경지로 끌어 올린 것이다. 말 그대로 그는 음유시인이 된 것이다.
어쩌면 노벨문학상 수상의 배경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수상의 중요한 배경은 대중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힘의 이동에 있다. 현대의 대중은 지루하고 난삽한 문학보다 감각에 직접 호소하는 대중문화, 곧 대중음악에 길들여져 있다. 그 대중을 움직이는 힘, 즉 대중문화의 힘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노벨상 위원회가 이러한 문화현상에 주목하고, 그러한 새로운 트렌드에 비중을 둔 결과라 할 수 있다. 대중과의 소통과 교류, 그것이 시대적 조류로 자리잡고 있다. 팝페라처럼 다양한 장르를 융합하는 크로스오버(cross-over)음악이 있듯이, 문학도 이제 크로스오버 리터러처(literature)를 인정해야 하는 시대를 맞은 느낌이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바로 노벨문학상의 정체성, 정통성에 관한 문제이다. 아무리 노벨문학상이 문학의 외연을 넓힌다 한들 문학은 '문학'이다. 노벨 문학상이 ‘문학상’이라는 타이틀 갖고 있는 한 '음악성'이 아니라 ‘문학성’이 평가의 중심이 돼야 한다. 물론 기존의 수상자 중에 문학외적인 인물들도 문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문학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 난 것은 아니었다. 영국의 Russell은 수학자, 철학자이지만 <행복론>, <인생노트> 같은 글을 남긴 수필가였다. Sartre도 철학자이기 이전에 소설 <구토>, <자유의 길>, 희곡 < 파리>, <악마와신>, 평론<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쓴 실존주의 문학가였다. 그의 작품은 문학의 현실참여 소위 앙가쥬망 문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정치가 처칠도 그의 유명한 <회고록>(수필)을 인정 받아 문학상을 받았던 것이다.
이처럼 기존의 문학상은 결코 문학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밥 딜런은 다르다. 비록 시적인 가사를 쓰긴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음악을 전제한 노래가사이지 정통 문학은 아닌 것이다. 멜로디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시적 상상력에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곡에 맞춘 가사, 곧 음악과 시의 주종(主從)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결국 밥 딜런의 가사는 독립된 예술장르로의 시가 아니라 음악화된 노랫말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번 수상에 대하여 ‘노벨문학상’이 아니라 ‘노벨문화상’이었다는 혹평도 나오는 것이다. <닥터 지바고>를 쓴 파스테르나크도, <구토>를 쓴 싸르트르도 수상을 거부했다. 상도 하나의 구속이기 때문에 수상을 거부한 싸르트르는 진정한 자유인이다. 결혼조차 구속이라 생각하고 보봐르와 계약결혼의 상태로 자유로운 사랑을 구가한 인물이 아니던가.
밥 딜런도 수상을 거부했다면 역사적 인물로 남았을 것이다. 그의 길은 문학이 아니라 음악의 길이었고, 음악인의 길이었음으로 음악인에게 주여지는 최고의 상, ‘그래미상’ 수상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았을까. 세계적 권위의 퓰리처상도 수상하기도 했고.
노벨문학상 수상 거부 이유는 많다. 그가 주창하던 반전, 반핵의 메시지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음악에 흐르는 보헤미안 템퍼의 구속없는 보헴( bohem, 자유)정신을 실천하기 위하여. 까만 잉크병의 밤을 밝히며 언어와 치열하게 투쟁하는 진정한 문학인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 ...아는 대로, 생각한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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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ready to go anywhere/ I'm ready for to fade(난 어디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고/ 사라질 준비가 되어 있다네)" -밥 딜런 'Mr. Tambourine Man' 중에서
시인 장석남은 "나는 가수거나 아니면 유능한 세션맨이 되었어야 옳았다"며 "어떤 충만함으로 타오르는 저편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시보다 음악이 훨씬 용이하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음악은 그런 것이다. 인간이 실존의 속박에서 벗어나 시간의 물리성을 거역하고 순간 속으로 확장되는 것, 그것을 일러 '순간의 영원'이라 할 것이다. 음악은 이곳의 언어이자 피안(彼岸)의 언어다. 그래서 그 오랜 옛날부터 음악은 샤먼의 언어였다.
노래 역시 마찬가지다. 노래는 완벽한 몰아(沒我)의 시간을 선물한다. 노래하는 동안엔 자아와 세계의 경계가 사라지고 황홀하게 타오른다. 관념이 아니라 실재로서의 자유가 드러나는 시간이다. 반면 글은 나와 세계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확인하고, 그 사이에서 난파(難破)하는 운명이다. 글은 세계를 설명할 뿐이다. 글로는 결코 피안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니 시 열 줄이 노래 한 줄에 못 미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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