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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망명시인", 령혼의 나팔수 - 니자르 카바니
2016년 10월 28일 01시 13분  조회:2741  추천:0  작성자: 죽림



 

그림을 그리며 얻은 교훈
             / 니자르 카바니(시리아)


아들이 물감통을 내 앞에 내밀면서
새를 그려 달라 한다
나는 붓에 회색 물감을 떨구어
빗장과 자물쇠로 막힌 사각형을 그린다
놀란 눈으로 아들이 묻는다
"아버지, 이건 감옥이잖아요
모르세요, 새를 어떻게 그리는지?"
나는 아들에게 말한다.
"아들아, 용서해다오 나는 새를 그리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아들은 스케치북을 내 앞에 놓고 밀을 그려 달라 한다
나는 펜을 쥐고 총을 그렸다
아들이 무식한 아비를 타박하며 말한다.
"아버지, 밀과 총의 차이도 모르세요?"
나는 아들에게 말한다
"아들아, 한때 나도 밀 줄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빵이 어떻게 생겼는지,
장미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았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시절에는
숲 속의 나무들도 시민군이 되고
장미도 방탄복을 입는단다
무장한 밀의 시대엔
새들도 무장을 하고
문화도 무장을 하고
종교도 무장을 한단다
숨겨진 총을 찾아내지 못하고서는
빵 한 덩어리 살 수 없단다
얼굴에 생채기를 내지 않고서는
들판의 장미를 꺾을 수 없단다
손마디가 폭탄에 날아가지 않고서는
책 한 권 살 수 없단다"


아들이 내 침대맡에 앉아 시를 들려 달라 한다
내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베개를 적신다
아들이 놀라 눈물을 닦으며 묻는다
"아버지, 이건 시가 아니라 눈물이잖아요"
나는 아들에게 말한다.
"아들아 네가 자라서
아랍의 시를 읽게 되면
말과 눈물은 쌍둥이라는 것을,
그리고 아랍의 시는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눈물이라는 걸
알게 될 거란다"


아들이 펜을 내 앞에 놓인 필통 안에 내려놓고는
고향을 그려 달라 한다
붓을 쥔 손이 떨려 
나는 주저앉아 울고야 만다.


 



 

Nizar Qabbani(니자르 카바니) 

저항의 로맨티시즘 

아랍의 '망명시인'으로 유명한 니자르 카바니는 1923년 3월 21일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서
태어났다. 스물한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다마스커스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1945년 외교관의 길에 들어섰지만, 시에 대한 열정 때문에 후일 그만뒀다. 

카바니는 관능적이고 로맨틱한 산문들을 써서 아랍의 다양한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카바니가 아랍어 신문인 Al Hayat에 실었던 기사와 시들은 12권짜리 묶음으로 나와 있다).

반면 그의 시들은 일상언어로 구성돼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집트의 소설가 겸 주간 '문학뉴스' 편집장인 가말 엘 기탄티는 "엘리트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시를 향유할 수 있도록 했다"고 카바니의 업적을 평가한다. 
또다른 이집트 소설가 모나 헬미는 "카바니의 위대함은 남녀 사이의 로맨스 뿐 아니라
지배자와 피지배자, 압제자와 피압제자의 관계를 묘사할 때에도 아름다운 시어들을 
구사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고 평했다.


첫 번째 시집 The Brunette had Told Me (1944)에는 고향인 다마스커스가 강력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The Jasmine Scent of Damascus"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카바니의 시는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 쪽으로 향하게 된다.
아랍세계 전역에서 애송됐던 2행시 "O Sultan, my master, if my clothes are ripped 
and torn it is because your dogs with claws are allowed to tear me"에는
독재 혹은 공포정치에 대한 저항정신, 그리고 아랍인들이 공유했던 좌절감 따위가
그대로 나타나 있다 (2행시 연작 형식으로 돼 있는 이 싯구는 '패배의 書'의 일부분이다).
아마도 카바니가 '술탄'이라 부르며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시리아의 독재자
하페즈 알 아사드였을 것이다(아사드는 2000년에 죽었고 지금은 그의 아들 바샤르가
대통령직을 물려받았다) 어쨌든 이 시를 발표한 뒤 카바니는 시리아뿐 아니라 
아랍 전역에서 숭배의 대상이 됐다. 시리아든 이집트든 상황은 비슷했을 테니까. 

당신의 미친 개가 내 옷을 짖어버렸소 

카바니의 시에서 아랍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1967년 이스라엘과의 '6일 전쟁'에서 아랍권이 대패한 뒤부터다. 
'패배의 서'에 딸린 노트에는 카바니의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전쟁의 패배로 카바니는 연애담 대신 아랍-이스라엘 분쟁과 같은
정치적인 주제 쪽으로 시각을 돌리게 됐다. 
그는 이 치욕적인 패배의 탓을 아랍의 무능한 지도자들에게 돌렸다. 
아랍인들은 자기 생각을 말할 자유도, 자발적으로 형성된 시민사회도 갖고 있지 못했다.
이런 문제를 직접적으로 들고나온 카바니의 시는 아랍 문학계에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비평가들은 "여자들에게 바치는 헌시, 사랑 얘기 따위나 써온 작자가 
국가적인 문제를 논할 자격이 있느냐"고 비아냥거렸고, 어떤 이들은 이슬람 세계의
'점잖은 기풍'에 맞지 않게 관능적이고 감각적이었던 그의 시가 청소년의 도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고리타분한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카바니가 패배의 상처에 괴로워하는 아랍인들에게 손가락질이나 해대는
사디스트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렸다. 즉 그는 '아랍 군대의 사기를 더욱 떨어뜨리는
이적분자'라는 것이었다. 이집트의 작가들은 카바니를 비난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카바니는 가말 압둘 나세르 이집트대통령에게 위협에서 보호해 주도록
청원하는 편지를 써야했을 정도였다. 

적은 우리의 나약함 속으로 기어들어왔다.

카바니가 아랍인들의 사랑을 받은 동시에 지탄을 받았던 것은, 
그가 패전의 원인으로 아랍 내부의 문제를 들고나왔기 때문이었다. 
'패배의 서'에서 카바니는 말한다. 

The Jews did not come across our borders, 
but they crept in like ants through our defects. 
우리의 적은 우리의 국경선을 넘지 않았다 
적들은 개미처럼 우리의 나약함 속으로 기어들어왔다. 
1948년 팔레스타인의 상실(이스라엘 건국)과 1967년 전쟁의 패배라는 두 가지
치명적인 패배에 대해 카바니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 충격과 상실감이었지만,
그는 곧 미래에 대한 신념과 희망을 찾는 의지력을 회복한다. 

O (our) children 
rain of the spring, buds of hopes! 
you are fertile seeds in our barren life;
you are the generation that will vanquish the defeat.
어린이들은 봄비, 희망의 싹들 
너희들은 불모의 삶에 풍요로운 씨앗을 내려 
패배의 그늘을 가시게 해줄 세대 
(Palestine and Modern Arab Poetry 수록) 

카바니가 눈에 띄는 또하나의 지점은 여성을 보는 그의 시각이다.
팔레스타인 작가 Salma Khadra Jayyusi의 말을 들어보자. 
"보수적인 교육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던 카바니는 여성문제를 한때의 유행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구적인 여성관(女性觀)을 갖고 있던 그는 아랍권에 
페미니즘이 유행하기도 전에 자신만의 '여성운동'을 시작했다.
그가 쓴 에로틱한 산문들에는 그가 생각했던 '자유' 개념이 드러나 있다.
자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총체'로서의 자유를 추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여성의 몸과 영혼을 해방시켜라 

정치적 자유를 논했던 시인은 카바니 이전에도 아랍세계에 많이 있었다.
정치적 자유와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싸웠던 투사들만이 시인으로서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아랍에는 출신국 정부의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로 
망명한 시인과 작가들이 넘쳐났다. 망명시인의 시대였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카바니가 거둔 성과는 두드러진다. 이는 그가 정치적 억압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랍 문화의 금기들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의 '관능'이었다. 
그는 수세기 동안 이어져 내려온 억압적인 규율로부터 육체와 영혼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특히 여성들의 섹슈얼리티와 신체를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사회의 금기로부터 여성들을 빼내어 여성들로 하여금 잔인한 성적 차별을
자각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외쳤다. 

한번 자각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더 이상 기만은 있을 수 없다.
광신도들의 역습이 종교, 명예라는 이름 아래 시작됐지만 보수파들의 반격이
카바니의 언어를 왜곡할 수는 있을지언정 이미 자각되기 시작한 것을 
완전히 씻어낼 수는 없었다. 카바니가 외쳤던 것들은 미약한 형태로나마 
지금까지도 아랍인들의 정신 속에 살아 있다. 
그의 시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영혼의 나팔소리다.

===========

Nizar's Life 1923 시리아 다마스커스에서 출생
1944 첫 시집 "The Brunette Told Me" 발표
1945 다마스커스대학 법학과 졸업, 외교부 근무 시작
1947 첫번째 엔솔로지 Childhood of a Breast 발표
1947-49 팔레스타인 전쟁, 이스라엘 시나이반도, 서안, 예루살렘 점령
1954 Bread, Hashish and Moonlight 발표
1957 Poems For Nizar Qabbani 출간
1961 My Beloved Published 발표
1963 Poetry is a Green Lamp 발표
1965 스페인어로 된 Five Letters to My Mother 발표
1966 외교관직 사직, 런던 이주. Drawing in Words 출간
1967 6일전쟁. 이스라엘, 골란고원 점령. '패배의 서' 초안 작성
1968 The Diary of a Blase Woman, Palestine Liberation Movement,
Poets of the Occupied Land 발표
1970 The Book of Love, Commando Graffiti on the Walls of Israel 발표
1972 A Hundred Letters, Outlawed Poems 발표
1973 Balquis al Rawi 와 결혼, 맏아들 사망. 4차 중동 전쟁 발발
1976 시리아군, 레바논 북부 점령
1979 미-이스라엘 평화조약 체결, 이란에서 호메이니 집권
1981 부인 Balquis, 친이란계 게릴라 공습으로 사망
1982 이스라엘, 레바논 침공
1987 Modern Arabic Poetry An Anthology 발표
1990 Abu Jahl buys Fleet Street 퇴고
1998 On Entering the Sea: The Erotic and Other Poetry of Nizar Qabbani 발표
May 1 1998 런던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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