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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태주의" 방랑시인 - 게리 스나이더
2016년 10월 28일 23시 03분  조회:4302  추천:0  작성자: 죽림

 

Gary Snyder

 

게리 스나이더는 미국의 시인이며 선불교도이며, 산악인, 환경운동가이며, 심층생태철학자이며, 비트운동의 설립회원이다. 미국의 계관시인인 로버트 하스(Robert Haas)는 스나이더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나 도겐처럼 문학으로 윤리적 삶을 외치는 신성한 목소리‘라고 했다. ’시인의 임무는 숲을 지키는 것‘이라 한 말에서도 소로우와 스나이더의 닮은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게리 스나이더는 비트 운동의 소로우에 해당된다. 소로우와 마찬가지로 스나이더는 자신의 삶에 여유를 원했고, 인간이 욕심을 버리는 정도에 따라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소로우와 스나이더는 둘 다 야생 또는 야성(wilderness)을 귀중하게 생각했다. 여기서 야성은 때묻지않은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로우가 '야성이 세상을 보존한다'고 생각했다면 스나이더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야성은 세상 자체'라고 생각했다.

 

 

 

"궁극적으로 볼 때 자연은 위험에 처하지 않았다. 위험에 처한 것은 야성이다. 야성은 파괴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야성을 볼수없게 될지도 모른다.“

 

스나이더는 193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산이 많은 워싱턴 주에서 자라났던 그는 산을 사랑하여 17세에 이미 미국에서 높다는 산봉우리는 다 섭렵한 후였다. 오레곤 주 포틀랜드의 리드 대학에서 문학, 인류학을 전공한 그는 인디애나 대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공부했고, 데이비스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동양언어학을 공부했다. 삼림경비원, 벌목원, 선원으로도 일했다. 마테호른 봉을 잭 케루액과 오르기도 했는데 이때 경험을 살려 케루액의 소설 ‘다르마를 찾는 백수(Dharma Bum)'에 스나이더가 신비한 시인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케루액의 소설 ‘다르마를 찾는 백수(Dharma Bum)'>

 

 

1956년 일본으로 가 임제종의 선불교 공부를 하고, 경전과 불교서적을 연구 번역하였다. 10여년 동안 불교와 가까이 있었지만 그러나 출가는 하지 않았다. 1969년 미국으로 돌아온 후 평화와 환경운동에 헌신하며, 동양철학과 불교의 대중화에 공헌하였다. 또한 환경보호자들과 인디언 그룹과 어울려 야성의 삶을 실천하며 생태공동체를 주도하고 있다. 선시(禪詩)로 불리는 그의 시는 동양과 미국 인디언의 신화를 인간과 자연의 상생에 연결시킨 열린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스나이더가 일본의 선원에서 다년간을 보내며 의미있는 삶의 모델을 찾아본 동기는 동양을 탐욕적인 자아를 극복하고 내면의 힘에 집중하는 의지를 교육하는 현장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거북섬(Turtle Island)>

 

인간에게 유용한 가치만을 생태계에서 찾고 살리는 얕은 생태학과는 대조적으로 심층생태학은 생태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 본연의 내재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1982년 4월 로스앤젤레스 선원에서는 세계 최초의 심층생태학 국제회의가 열린다. 이 회의를 주관한 것은 선불교도이며 생물학자인 마이클 소울(Michael Soule)이고, 이를 도운 것이 로버트 아잇켄 선사와 게리 스나이더였다. 그가 퓰리처 상을 수상한 시집 ‘거북섬(Turtle Island)'에 실린 ’헌신의 맹세‘ 중 한 귀절을 보자.

 

“모든 존재에게

.... 나는 헌신을 맹세하네

거북섬의 흙에게

나는 헌신을 맹세하네

그곳에 거하는 생명들에게

그리고 태양아래서

상의상존성 속에 서로를 관통하는

다양하지만 그러나

하나인 생태계에도

나는 헌신을 맹세하네.“

 

스나이더는 또한 시인이며 환경운동가인 웬델 베리(Wendell Berry)와도 가까운 친구이다. 두 시인은 지역과 마을이 인간에게 아주 귀중하다는 가치관을 공유한다.

 

“땅을 되살리기위해서는 사람이 그 지역에서 일을 해야 한다. 지역은 존중심을 가지고 다가온다면 누구나 다 환영한다. 한 지역에서 일한다는 것은 그 지역에 정을 붙이는 것이다. 한 지역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지역사회를 이루고, 머지않아 문화를 키운다. 야성을 회복하는 것은 문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웬델 베리>

 

 

스나이더는 한산을 미국에 처음 소개하기도 했다. 또 2000년 9월에는 한국을 방문하여 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하기도 하고 또 법련사에서 생태와 불교에 대한 강연도 하였다. 스나이더의 '생명공동체' 회복 운동에 따르면, 생명은 생태계의 거대한 테두리 속에 식물, 동물, 미생물 등과 함께 생존해나가는 하나의 유기적 존재이다. 생태계는 하나의 거대 고리로 형성된 소우주이며, '상호의존'이라는 공동체 인식을 바탕으로 한 통합적 체계이다. 따라서 생명공동체의 입장에서 볼 때,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는 자신의 존재 장소에서 다른 생물과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진정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진정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그의 시낭송회에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가 시낭송회를 할 때는 선시 해설을 하기도 하고 또 꼭 근처의 절이나 선원에 들려 미국과 아시아의 선에 대해 말하곤 한다.  단순한 자연에의 귀의가 아닌 인간 본연에의 복귀로서 구도정신을 지향하는 시인인 스나이더는 '생활이 곧 시고 시가 곧 선(禪)인 시인'으로 불린다. 그는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반야심경과 다라니를 독송한다. 특히 불교의 명상은 자신의 시세계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독특한 자세와 호흡법, 그리고 마음을 다루는 법이 있는 명상은 아주 특수한 수행임을 강조한다. 그는 또 붇다의 가르침이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중생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뿐 만 아니라 모든 중생들도 나름의 수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 게리 스나이더|작성자 새암

 

 




뉴욕의 지반을 걸으며 정보의 바다에 살아 있기

                                      / 게리 스나이더

 

 

단풍나무, 떡갈나무, 사시나무, 은행나무

새 잎들, 벼랑 위로 살짝 솟은

나무들 사이 숨겨진, 뜨거운 태양으로 얼룩진

너럭바위 위의 "신록" -

깨어난다.

 

굴러 일어나 바위 표면 미끄러져 내린다

숲 속 걸어 들어 다람쥐 한 마리

향한다, 희귀한 인간들! 향한다 안전거리 유지한 채.

교통의 웅성거림 다가오고,

구조물들의 혼잡함 통해

사이렌. 반향하며 울부짖는다.

헬리콥터 소리로 진동하며,

높은 곳의 제트비행기

낮은 음조로 떨린다.

 

재빨리 가볍게 차려 입고

공원 돌담 뛰어넘어,

이동하는 흐름 속에 스며든다.

 

뉴욕은 말미잘처럼

경제의 바다 속에서 넓게 물결치고,

교육받은 젊은 요원들  멋진 옷 차려 입고

밤생활로 발걸음 옮긴다, 일과 끝난 뒤, 멋진 음식 -

숨결 미묘한 동력가동의 심장 뛰는

빌딩 실내  그 빌딩들 불 지펴졌다

기초 아래 깊숙한 곳, 지하실 아래에서,

왕년의 해상 상인에 의해 불 지펴졌다

이제는 바다로부터 땅 위에 뾰족이 서 있는

선박들로 가버린 이전의 불 관리자들

이전 선원들은 정지한 보일러 지켜보고,

    컴퓨터에 양보했다.

그 모니터의 열기와 동력

지하에서 읽힌다. 대기 중에,

정보의  바다 속에.

 

생기 띤 살결, 날카로운 눈매, 사람들의 물결

길 모퉁이 휘익 돌아 굽이치고

골판지 쓰레기 트럭 위로 던져진다.

섬세한 춤, 배꼽 위의 루우즈,

눈 아래 콜 먹1 치장.

 

시간과 삶의 빌딩들 - 6만의 사람 -

깃발들 바람에 물결 지고

뻣뻣한 전율 신록으로 자라는

식목한 나무 가지들 뒤흔든다,

 

유리, 알루미늄, 모아 놓은 자갈,

쇠붙이, 스테인레스

텅 빈 벌집 같은 전자 두뇌 빌딩

 

컬럼비아 대학 소유, 그 대학

정보의 바다에서

살아 있는

말미잘 식민지의 영주.

 

"야성인 클라우스"2

주로 인디언과 살았고

증인으로 출두했다 늙은 부인

"카라카파코몬트"

1701년 워싱턴 마지막 자락 팔았을 때

아래 깊숙한 곳 벽난로 물길 듣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강

도로바닥 아래, 지반 위로 구른다.

새는 통로처럼 보이는 갈색 사암 부유층 건물의

협곡을 멀리 비켜 방향 잡는다.

 

텅 빈 어둠 메아리친다

교직된 불빛 실타래

갓길의 비명들 비춰내고

밝은 빛의 계란 속에

으르렁대는 한 그림자,

혀 위의 검은 음식 핥은 자국.

사이렌 메아리 벽으로 된 협곡 흘러내리고

밤길 인도경계에 울려지자 신호등 바뀐다-

 

고개 들어 신들 본다

공정한 신, 인조견의 신, 고귀한 계보,

오랜 잡탕의 신,

각각이 붙잡고 있다  사각지게 구획된 그림자의 몫을

각각이 태양시계 원호의 하루 속에서 흔들린다.

그 하루 부분들의 총합 이상이건만.

 

구겐하임 미술관, 록펠러 센터, 프릭 기념관,

세계의 예술품 모아 두고, 판유리

창문 빛 받아들여 "수련" 위에 드리운다

물고기 혹은 유성처럼, 사람들,

움직이다, 멈추고, 방들 통해  다시 움직인다,

하이얀 자작나무 잎새 미풍에 흔들리고

경비원은 세계를 지킨다,

헬리콥터 잉잉거리며 기나긴 여행 떠나고

꽃가루와 꿀 교환한다

경제의  바다

높이

대기 중에서,

아래쪽 도로 위의 세계로

멈춤과 출발의 쇳소리 비명 떨어뜨린다

바람은 검은 터널 통해 분다

거미줄, 곰팡이, 이끼 지나며

 

곤도와나랜드3의 은행나무, 상형문자,

석관문자, 지하철 덮고 있다-

갓 지은 빌딩의 텅 빈 눈구멍

영혼 없다, 그들 역시 제례의식 기다린다

자신들 또한

새로운, 거대한

도시의 신들로 만들어줄 의식,

파이프, 케이블, 배관공사 제공받으면,

그 빌딩들 불빛 발하고, 서늘한 대기 숨쉴 것이다,

거기서 일하는 일꾼들의 정신 호흡할 것이다-

그들 앎의 흐름 호흡할 것이다

정보의

바다

하늘 위, 창공 속에 솟아오른 채,

 

골목길 가로질러 트럭 아래 고개 숙인다.

"공사 중"- 인도 옆의 쓰레기 의자-

멈추어 서서 경제 거론하는 신문 기사

커다란 로마글자 읽는다,

 

콘크리트 절단용 톱 윙윙 소리 창문 통해 흘러나온다

빈 방-벽은 없고-지하실에도 맑은 공기

마른 벽돌, 잘 익은 진흙, 녹슨 집 뼈대

카바이트 칼날 톱 벽돌 자른다. 계단으로부터

쏟아진 물벼락 지하철까지 이른다.

푸른 가슴의 여성 조깅꾼, 차도 위에서,

빨간 신호등 차량 막았지만 그녀 윙윙대는

톱 소리 속에 가로등 불빛처럼,

곧바로 뛰어 건넌다

사거리 하나는 강으로 향하고

북쪽은 숲으로 이어지고

남쪽 낚싯장에 이른다

이국인들 삼십오 층에 둥지 틀고 있다

 

갖가지 가재도구 싣고

길거리 상인 수레 끈다

혹은 봄날 저녁, 황혼녘에, 현관 앞에서,

밝은 청색 담요 두르고 잠들어 있다.

그들 위로 솟아 있는 모서리와 버팀대 쳐다본다,

콘도무스,도미니언,

도무스,

콘도미네이트, 콘도미니엄

타워들, 높은 곳에

깨끗한 사각이는 하얀드레스 흰색 피부

여자와 남자들

햇빛 더 많은 구석 차지하고,

층진 지층의 절벽 높은 곳에서, 더 많은

광합성 얻고, 더 많은 겉 껍질로 유영하며,

더 많은 스시 취한다.

더 많이 살찌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유쾌한 웃음 갖는다,

 

-이국인은 창문 지나 항해하여

언어 사슬의 가장자리 떠난다

개념들, 신학들 거둬들이며,

새로운 정보 근거한

아이디어와 과감한 투자를

뱅킹함

으로써 얻은 조각들 낚아채고-

비둘기 등의 얼룩에 고개 숙인다,

 

쇼핑 수레 끄는 길거리 밑바닥 거주자들

잉여의 떡고물 바라며 허공 확인한다,

하늘 속의 높은 곳에 사는 족속들로부터

과잉, 여분의 조각들 떨어지는 것,

 

아름다운 황혼의 미광이

사십여 층 건물의

유리 면 전체를 비추자

부드러운 수은,

우리 떠서 들어가고, 우리 먹고 사는 아름다운 빌딩들.

 

포말, 강철, 회색

 

살아 있다   정보의 바다에서.

 

 

 

1. 먹: 여성들의 눈썹 치장을 위한 먹

2. 클라우스:산타클로스 러시아의 성인 세인트 니콜라스가 기원이라고 흔히 알려져 있는 산타클로스는

   그 기원이 먼 옛날의 숲 속 야성인 혹은 요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이 있다.

3. 곤도와나랜드: 고생대 말기부터 중생대 초기까지 남반구에 존재했다고 추정되는 대륙. 나중에 아프리카

   중남미, 오스테일리아, 남극대륙 등으로 나누어졌다고 추정된다.

4. 콘도무스: 일종의 언어학적 말장난이다. 라틴어로 '콘도무스'는 '공공의 영역'이라는 뜻이며, '도미니언'은

   '지배한다', '도무스'는 '거주하다', '콘도미네이터'는 '함께 지배한다'라는 뜻이다. '콘도미니엄'은

   익히 알려진 대로 공동소유 주택이나 별장이다.

 

상생의 질서를 찾는 시학: 게리 스나이더의 시세계 / 서강목

 

 

1

 게리 스나이더는(Gary Snyder 1930~ )의 인생행로를 더듬어 보는 일은 그의 시세계를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그는 가족이 오리건 주의 포트랜드 시로 이사한 고등학교 시절 그곳의 한 등산클럽에 가입한다. 태평양 북서부 설봉들을 오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그의 등산경력은 평생 동안 이어진다. 하늘과 땅, 강과 산, 온갖 동식물들 등, 자연의 제반 요소들을 직접 대면하는 등산의 경험은 그의 삶과 시의 방향을 동시에 결정짓는다. 그는 문학과 인류학을 연구하던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도 벌목회사에서 하며 삼림 속에서 생활했고, 졸업 후 직장생활도 베이커 산 국립공원의 한 전망대 안내원으로 출발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원에서의 동아시아학 연구 또한 그의 시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울창한 살림들이 베어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고,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을 찾고자 했던 그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생활방식에 매혹되고, 더불어 동양의 세계관 특히 불교철학에 몰입한다. 이 시절 1950년대 미국 비트세대의 대표자들인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 잭 케루악(Jack Kerouac), 루 웰치(Lew Welch) 등과 교류했고, 또한 중국 당나라 시인 한산(寒山)의 시를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결국 1956년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의 쇼코쿠사(相國寺)에서 참선수련을 수행한다. 그후 상선의 기관실 청소부로 일하면서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 그는 근처 마린 카운티의 오두막에서 루 웰치와 자연 속의 삶을 꾸려가며 시작(詩作)에 몰두한다. 1959년 다시 교토로 돌아와 다이토쿠사(大德寺)에서 선수행에 정진하며, 그해 스나이더는 처녀시집 <쇄석>을 출간한다. 이듬해 <신화와 텍스트>를 발표한다. 그의 자연과 불교에 대한 관심은 1961년과 1962년 사이에 스리랑카와 인도, 네팔, 티베트 등의 여행과 달라이 라마의 방문으로 이어진다.

  이후 주로 미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모교 버클리 대학에서 영시를 강의하기도 하며 시작을 계속했고, 기회 있을 때마다 선수련과 등산여행을 병행한다. 1964년 시에라 산맥 북부 설빙지역을 배낭여행하고, 1967년에는 다시 다이토쿠사에서 참선에 몰입한다. 이 무렵 스나이더는 자연 속에서 기거하며 우주의 질서을 거스르지 않는 삶의 방식을 더욱 본격적으로 궁구하기 시작한다. 그는 일본시인 나나오 사카키의 안내로 규슈 서해안의 작은 섬 수와노세에서 자연친화적 공동체 생활에 합류하기도 하고, 1969년에는 미국 전역의 환경운동가들을 방문하여 생태운동에 헌신한다. 이때 샌프란시스코의 야생생태학회에서 <곰 스모키 경전>(Smoky the Bear Sutra)을 배포하여 현대문명의 반자연적-반생태적 양상에 커다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미국 전역으로 펴져나간 이 경전은 오래 전부터 곰의 모습으로 현현해오던 부처의 말씀을 통해 생태계를 보존하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상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1970년 스나이더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발치에 있는 상 후앙리지에 직접 집을 지어 정착했고, 그해 시집 <파도를 바라보며>를 출간한다. 이 지역의 주민들과 더불어 추진한 새로운 삶의 양식에 대한 모색과 실천, 1972년에 행한 일본 홋카이도의 야생생태 탐사작업, 80년대의 중국 방문, 90년대의 라다크 마을 여행, 최근의 동굴벽화 연구 등, 그의 활동은 어떻게든 지구상의 인간의 존재방식을 탐구하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가능한 방식을 찾아내는 일에 연관되어 있다. (계속)

 

 

끊임없이 걷고 있는 얼음 덮인 산들 / 게리 스나이더

  세이머스 헤이니를 위해

 

 

일 때문에 아일랜드 오게 되었다

열 두시간의 비행.

리피2 강

선술집의 흑맥주,

수난과 전쟁에 대한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

언덕 꼭대기 고인돌 무덤

바람 현실문 가로지른다.

이탄 늪지를 지나가니,

빙하기 사는 사람들이다.

끝없는 들판과 농장들

지난 이천 년의 세월

 

골웨이3에서 내 시 낭송하니,

벌레의 찍찍거림일 뿐

문학과 시간에 대해 명상하며

비행기 타고 귀가했다.

 

트리니티 대학의 롱 홀 도서관

빼곡히 들어찬 책의 대열

그린랜드의 빙산 위에

석기시대 줄 이었다.

 

 

1.Seamus Heaney ,1939~ : 북아일랜드 출신의 생존하는 아일랜드 최고의 시인. 1995년 노벨문학상 수상.

2.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시내를 관통해 흐르는 강.

3.아일랜드 서쪽 해안에 있는 도시 이름. 더블린과는 정반대 쪽에 있다.

 

 


〈게리 스나이더와의 만남〉


                                      /고은

 

 

시는 어떻게 나에게 오는가!

이 감격적인 물음에는 어떤 대답도 군더더기일지 모른다. 사실인 즉 이 물음은 이제부터 말해야 하는 게리 스나이더의 시 제목이기도 하다.

... 이 제목의 시는 후기 시집 『무성(無性)』의 한 극점에서 태어난, 시적인 것과 동시에 선(禪)적인 것의 합치를 지향한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의미를 넘어 흘러가는 물의 노래이기도 하다.

1966년 그는 막 죽어 가는 일본의 선사에게 물었다.

“선은 진지하고 시는 진지하지 않지요?”

그러자 선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시가 진지하고 선이 진지하지 않지요.”

그는 선사의 이 유언과도 같은 대답을 우연 또는 선물로 여기면서 선보다 시 쪽에 자신의 마음을 더 기울였다. 그의 시는 중단되었다가 이렇게 이어진 것이다.

「시는 어떻게 나에게 오는가」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밤에 둥근 바위 저쪽에서

비틀거리며 다가와

캠프파이어 둘레 밖에서

겁먹은 채 서성이노라면

그 불빛 가장자리를 향해서

나는 그것을 만나러 간다

 

 

 

 

시가 오는 것은 곧 시를 만나러 감으로써 가능해진다. 그것은 그가 말하는 ‘내 안에서 오는 시’를 내 밖에서 맞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둠 저쪽에서 뭔가 마성(魔性)이 서려 있는 듯한 무한한 가능성의 밝은 불빛 언저리까지 와서 쭈뼛쭈뼛 서성거리는 시가, 마치 오래전에 잘못 헤어졌던 사람처럼 낯설어하고 두려워하기까지 할 때쯤 시인은 운명의 꽃인 그 헤어진 사람과도 같은 시를 마땅히 만나기 위해서 그 시에 다가가는 것이다.

이 만남의 풍경 자체가 한 편의 시다.

불빛은 더 환해지고 불기둥도 더 커지는데, 그 불빛 너머 바위는 언제나처럼 둥근 침묵으로 대지를 잘 견뎌 내고 있다. 그런 일대를 커다란 보자기로 덮은 밤을 모든 것을 길러 내는 불멸의 어둠이 에워싸고 있다.

 

이 모성적인 밤, 온전한 품을 열어 모든 외부를 내부로 빨아들이는 밤의 어둠이 바로 시의 밤이다.

‘낱알’, ‘새알’, ‘과육질’ 소리가 부드러운 소의 옆구리와 허벅지의 ‘근육’, ‘백리’, ‘씨’들의 생물이 만재(滿載)하고 있는 대지와 허공의 밤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의 밤 아니고 어쩔 것인가.

 

 

마음의 시인은

집에 머문다

집은 비어 있고

그 집에는 벽이 없다

그 시는

사방에서 볼 수 있고

어느 곳에서나

곧바로

 

 

밤이 지나면 아마도 이런 시적 광경으로는 시는 세상에서 가장 무르익은 무애의 노래가 된다. 어쩌면 그런 노래까지 비어 있는 허적(虛寂)의 사물로 돌아가 잠들기와 깨어나기를 아무런 자취도 없이 되풀이하고 있는지 모른다.

게리 스나이더가 최근의 경지로 열어 보이는 ‘무성(無性)’은 자성(自性)이거니와 그것은 본질적인 것까지도 넘어서야 하는 근본으로서의 자연 그것이리라.

 

...

 

1950년대 미국 서부에서는 기존의 서구적인 것, 미국적인 것을 거부하는 문학의 혁명적 출현이 있게 된다. ‘비트 제러레이션’이 그것이다.

... 스나이더 역시 이 시절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그는 그 도시적 유파와는 그다지 밀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드디어 긴스버그와 함께 그는 인도 순례에 나섰다. 인도 체험은 위대한 두 시인에게 하나의 전기를 이루어 준다. 한 시인은 여행기를 쓰면서 거기에 심신을 기울이고, 한 시인은 그 순례의 경험을 내면화한다. 스나이더는 ... 아니 그의 피는 이미 ‘인디언’과의 혼혈이었다. 그는 인도 이외의 아시아와 태평양 바다 위의 선상 체험에도 모험적으로 나섰다. 그의 목에는 넥타이 혹은 나비 넥타이가 걸려 본 적이 없다. 그는 늘 작업복 차림으로 세계 내 존재의 표표한 자유를 실현하고 있었다.

일본 선당(禪堂)의 6년 세월은 고행이었다. ... 6년은 선으로부터 시로 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또한 6년은 시가 선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의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는 시였다.

1970년대부터 미국 서부에 정착한 그는 스페인의 한 산맥 이름을 딴 북아메리카 대륙 서부 시에라네바다 산맥 기슭에 자연과 인간의 공동체를 세웠다.

...

인류가 당장 지향해야 하는 미래적 현재에의 그의 진지한 설계는 나무와 풀과 암석과 물, 그런 자연계 생명과 물질을 인간들로부터 단절시키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인간을 자연 생태 속의 생명으로 인식하는 삶은 말처럼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다. 스나이더는 바로 그 일을 산촌의 풍경 속에서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진정으로 세속적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세속적인 형태를 보이더라도 그것조차 혐오할 필요가 없게 그는 생득적으로 비세속적이다. 또한 그는 본문의 한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무척 자세하고 긴 주(註)를 달 만큼 어떤 일에도 정성을 다한다.

그에게는 동양과 서양이 굳이 차별되는 의미를 가질 이유가 없는 것 같다. 공동체의 정신적 기반에는 원주민의 친자연적 영성(靈性)과 함께 불교 체험을 이어 나가는 보편적인 일상이 인간이 만든 국경이나 국가의 강제를 무색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그는 무정부와 질서를 대립시키지 않는 것이다.

...

그는 늘 공존과 상응, 합류와 일치를 향해 가고 있다. 그의 시편이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헬레니즘으로서의 인간 중심주의나 일신론, 그리고 여타의 우월주의적 독선을 사절함으로써 삼라만상에의 고른 친화는 실로 그의 생태적 생활화와 비이념화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는 환경이나 녹색조차도 이데올로기로 되는 것을 크게 경계한다. 그의 근대 문명과의 싸움은 명상적인 평화와 관용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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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한다.

“시가 내 안에서 계속 나와서 나는 그것을 받아쓸 수밖에 없어요.”

“시를 쓰는 일은 집을 짓는 일과 같다고 할 수 있어요.”

...

“길은 걸어갈 수 있는 당신을 어느 곳인가로 데려갑니다. 직선입니다. 그런데 그 길에 반대되는 것이 바로 ‘길 없는 길’입니다. 즉 길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길 밖에 있을까요? 한마디로 말해서 모든 것이 길 밖에 있습니다…….”

“시는 선물과 같아요. 시가 나에게로 올 적에는 완성되어 오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완성시켜야 하지요. 그것이 선물처럼 오기 때문에 그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 주시해야 합니다. 6개월이든 1년이든 기다리면서 완성해야 합니다.”

이러한 그의 성근 담론들은 고도로 단련되어 자연 그 자체가 되어버린 듯한 정신과 쉽게 이해되지 않는 특유의 시적 기교 때문에 접근할 수 없음을 일깨워 준다.

그의 시는 ‘나’가 있고, ‘나’가 말하고 있고, ‘나’ 이외의 동등한 활동을 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을 정도다.

 

...

 

나는 몇 편의 시 가운데서 그 전체와 부분을 소개한다. 먼저 「위대한 가족에게 드리는 기도」 전문이다.

 

 

밤과 낮을 쉬지 않고 항해하는 어머니 지구에게

다른 별에는 없는 온갖 거름을 지닌 부드러운

흙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해를 향하고 서서 빛을 변화시키는 이파리들과

머리카락처럼 섬세한 뿌리를 지닌 식물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들은 비바람 속에 묵묵히 서서

작은 열매들을 매달고 물결처럼 춤을 춥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늘을 쏘는 칼새와 새벽의 말 없는 올빼미의

날개를 지탱해주는

공기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노래의 호흡이 되어 주고

맑은 정신을 가져다 주는 바람에게.

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우리의 형제 자매인 야생 동물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연의 비밀과 자유와

여러 길들을 보여 주고

그들의 젖을 우리에게 나눠 줍니다.

그들은 스스로 완전하며 용감하고 늘 깨어 있습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물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구름과 호수와 강과 얼음산에게.

그들은 머물렀다가는 또 여행하면서

우리 모두의 몸을 지나 소금의 바다로 흘러갑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눈부신 빛으로 나무 둥치들과 안개를 통과해

곰과 뱀들이 잠자는 동굴을 덥혀 주고

우리를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태양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수억의 별들, 아니 그것보다 더 많은 별들을 담고

모든 힘과 생각을 초월해 있으면서도

또한 우리 안에 있기도 한

위대한 하늘, 할아버지인 우주 공간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어머니 지구’, ‘할아버지 우주공간’들의 우주적 육친이 바로 스나이더 세계의 풍광(風光)인 것을 알 수 있다.

...

시 「무(無)」는 다음과 같다. 분별 없는 무의 힘을 노래한 것이다. 노래는 무의식적이고 편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의 표현이다. 나바호 인디언들이 말하듯이 ‘아름다움 안에서 걷는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른 채.

 

 

안에 있는

본성의

침묵

 

에 있는 힘

무의

 

 

길은 무위의 길 그 자체

어떤 목적도 지니지 않고,

 

 목적이란,

은총 평안

 

구원이 아닌

치유

 

증거는

노래함

 

안에 있는 힘에 대한 증거

 

 

...

아래는 「온 중생(All Being)과 더불어 우리는 함께 서약한다」라는 시의 전문이다.

 

 

숲속에서 일을 쉬고

샌드위치를 먹는다

 

암사슴이 눈속에서 벅브러쉬를 갉아먹고

함께 씹는다

 

빌(Beale)에서 날아온 폭격기가

구름 너머

하늘을 노호로 가득 채운다

 

암사슴이 머리를 올려 귀기울이며

그 소리가 사라지기를 기다린다

 

나도 그러고 있다

 

 

다음에 나올 3행의 시는 4행의 제목 아래 존재한다. 「시에라 마터호른을 31년 후에 다시 오르며」가 그 제목이다.

 

 

한 줄로 뻗은 산맥과 산맥들

한 해가 가고 가고 또 가도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

 

 

게리 스나이더가 이를테면 버클리와 샌프란시스코에 나타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가 그 도시의 밤에 나타나면 그를 그윽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촛불의 행렬처럼 모여든다. 그는 아마 동부 뉴욕에 간 지 아주 오래되었을 것이다.

뜻있는 동부 사람들이 그를 찾아오기도 한다. 아니, 유럽에서도 아시아에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그 모든 사람과 친구들에게 일상적으로 대한다. 아마도 그는 인도, 중국, 일본 그리고 미국 원주민과 미국 양심의 새로운 가능성과 유럽의 고전적인 미덕들이 서로 융합되는 동안 펄럭이는 바람인 것 같다. ...

 

 

 

-2000년 《세계의 문학》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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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지도 없이 바다 건너 옛 둥지 찾듯… 마음은 온몸의 작용
ㆍ양극화 고통 젊은이, 내면의 길과 함께 사회·정치적 길도 찾아야

미국의 시인·환경운동가인 게리 스나이더는 “침묵은 마음을 보기 시작하는 가장 좋은 자리”라며 “듣는 것도 멈추고 스스로를  관찰하면 마음에 대해 더 알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시인·환경운동가인 게리 스나이더는 “침묵은 마음을 보기 시작하는 가장 좋은 자리”라며 “듣는 것도 멈추고 스스로를 관찰하면 마음에 대해 더 알게 된다”고 말했다.

 

게리 스나이더(85)는 영미권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시인으로 꼽힌다. 개발과 성장이 20세기 최대 가치가 되었을 때 그는 환경에 주목했다. 사라져가는 생물종과 소수 부족의 삶을 생태시로 발표했다. 미국이 돈과 무기로 세상을 이윤 추구의 산업단위로 몰아가지 않도록 미 연방을 해체하자고 주장한다. 독립된 작은 나라들이라면 힘의 독점이 줄어들 것이라고. 그는 공존을 위한 정치적 저항에 앞장선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운동은 각자 스스로의 마음을 보는 곳에서 시작한다. 

1950년대 버클리대학에서 공부할 당시 그는 새로운 시 운동에 참여했다. 비트 문학을 이끈 동인이며 길 닦는 노동자, 배수시설 공사장 막노동꾼, 산불 감시원으로도 생활했다. 잭 케루악의 소설 (선 히피)의 주인공 제피 라이더의 모델이기도 하다. 1956년부터 일본 다이도쿠사(大德寺)에서 10년 동안 매일 10시간씩 참선하며 구도했고, 틈틈이 선어록(禪語錄)을 영역했다. 1969년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거북섬이라 부르던 북미 대륙을 성찰하는 대서사시 ‘거북섬’(Turtle Island)을 발표한다. 서구 지성은 그의 통찰에 1975년 퓰리처상을 수여한다.

게리 스나이더는 시에라네바다 산속에 집을 짓고 홀로 산다. “세상은 당신을 현대의 헨리 소로라 부른다”고 하자, 그는 당나라 한산을 이야기하며 “수많은 이들이 야생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며 별일 아니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 연락이 닿은 때는 캘리포니아 들판에 노란 수선화가 봉오리를 열던 지난 2월 초였다. 산속 집으로 찾아가겠다 하니 자신의 집은 자가발전이라 난방도 안 하고, 타운에서도 1시간을 운전해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길을 잃기 십상이라며, 시내에 있는 중고책방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가 권한 곳 화장실에는 낯선 당부의 글귀가 써 있었다. ‘소변 본 다음, 물 내리지 마세요. 지금은 1000년 만에 닥친 가뭄이랍니다.’ 산동네 사람들의 사는 법이었다. 게리 스나이더가 반세기 넘도록 세상을 깨워온 가치 역시 산사람들이 자연과 공존해오던 그 지혜가 아닐까. 캘리포니아 산 굽이를 오르던 날, 고흐의 그림 속에서 물결치는 아몬드나무 흰꽃들이 허공을 메웠다. 생태주의 시인이 세상을 품는 마음을 들었다. 

▲ “마음은 뇌의 기능 그 이상 
뇌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니다
본래 마음은 문젯거리 없어 
고통스럽게 여기니 고통인 것”

▲ “세상에 징징대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라는 메시지는 
저차원적 ‘가짜 성찰’
인간은 결코 홀로 떨어질 수 없어 
협력과 사회·정치적 작용 이뤄져야”

안희경(이하 안) = 요즘에는 더 많은 이들이 마음의 문제로 답을 구합니다.

게리 스나이더(이하 스나이더) = 마음이란 별것 아니에요. 마음이 문제라고들 하는데 본래 마음엔 문젯거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대해 특별한 방식들로 생각한다는 것이 문제죠. 마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마음 그 자체와는 같지 않습니다. 

안 = 모든 사람들이 마음에 대해 다른 방식의 기대를 갖는 것이 문제라는 건가요.

스나이더 = 마음은 이 우주 자연의 일부예요. 의식은 인간만의 것도 아니고요. 나무도, 다람쥐도, 새들도 인식을 합니다. 저 밖에 있는 아몬드나무도요. 다만 다양한 차원으로 존재할 따름입니다.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하죠. 그러하기에 명상을 통해 아몬드나무의 마음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명상은 우리의 마음을 경험하는 도구입니다. 

안 = 심층 생태학자인 조안나 메이시는 명상을 통해 우리가 범고래가 되어 보고, 제주 구럼비 바위의 마음이 되어 본다면 그 존재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명상하는 대상의 상태를 살피려고 노력하기에 가능하다는 건가요. 

스나이더 = 명상은 스스로의 마음을 발견해 가는 작업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마음속에서 살아가고요. 이는 이론이 아니라 고요히 앉아 집중하는 겁니다. 침묵은 마음을 보기는 가장 좋은 자리예요. 말도, 다른 사람에게 듣는 것도 멈추고 스스로를 오래 관찰하면 마음에 대해 더 알게 될 겁니다. 벚나무를 살펴보는 것과 똑같아요. 그 나무를 바라보며 침묵한다면, 당신은 당신 마음을 바라보게 되죠. 그럼 굳이 다른 이에게 마음이 무엇인지 묻지 않아도 될 거예요. 우리는 마음으로 마음을 봅니다. 

안 =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를 인터뷰했습니다. 그는 마음이란 뇌의 활동이라고 했습니다.

스나이더 = 온몸의 작용이에요. 뇌로 생각하는 것만은 아니죠. 당신은 지금 몸 전체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잖아요. 그리고 몸 안의 여러 곳을 집중해 돌아다닐 수 있고 그 영역을 경험해 갈 수 있죠. 마음이 뇌의 기능이라는 것과 마음이 생각하고 몸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서양의 사고이고 부분적인 과학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의 관점에는 마음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건 너무 약해요. 만약에 생각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아니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뇌의 작용이죠. 그렇지만 이는 한 가지일 뿐입니다. 동물과 곤충을 관찰해 보아도 알 수 있어요. 새들은 아무런 지도 없이 바다를 건너고 같은 장소에 착륙합니다. 온몸으로 감지하죠. 마음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이는 봄에 하얀 꽃들로 복제됩니다. 선(禪)의 전통에는 많은 흥미로운 언어들이 있어요. 가끔은 재미나기도 하죠. ‘모든 것이 마음이다. 말하기는 쉬우나 수행하기는 어렵다’ ‘마음은 없다. 수행하기는 쉽지만 말하기는 어렵다’, 이는 둘 다 참이죠. 

안 = 언제 선생의 마음에 다가갔는지, 그 처음을 기억하시나요.

스나이더 = 열다섯 살이었어요. 그때쯤 되면 어떤 아이들은 대마초를 하거나 또는 무작정 산에 올라가거나 합니다. 장래에 열중인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가려고 노력하고요. 하지만 그들도 대학에 가고 경력을 쌓아도 나중에는 꼭 자기 질문에 부닥치곤 해요. 먼저 하든 나중에 하든 자기 마음을 공부하게 되어 있죠. 그렇다고 꼭 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저는 그 나이에 산에 올랐어요. 오리건과 워싱턴주를 잇는 눈 덮인 큰 봉우리인데, 그 일이 나를 깨웠습니다. 3일 동안 산을 탔어요. 어떤 산이나 새벽 두 시에 일어나 움직여야 하는데 얼음이 단단하죠. 위험합니다. 무서웠어요. 배도 고팠고 두려웠습니다. 그때 배운 한 가지가 있습니다. ‘죽을 수 있구나!’ 대부분의 10대들은 자기가 영원히 살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죽음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선택을 했죠. ‘살자’ 하고요. 우리는 충분히 신중해진다면 그 자리에서 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안 = 인도의 광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광산이 무너지자 그 광부는 오로지 숨 쉬는 데 몰두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보름 지나고도 살아서 구조될 수 있었답니다. 어차피 살아있다는 것은 지금 쉬는 그 숨으로 결정되지만 그의 평정심이 놀라웠습니다. 

스나이더 =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큰 변화를 불러옵니다. 오래전 미국의 원주민들은 열네 살, 열다섯 살 소년 소녀들을 야생으로 보냈습니다. 홀로 놔두면서 음식도 주지 않고 말해요. “사나흘 뒤에 오거라.” 스스로를 보살피라는 거죠. 그러면 세상을 보는 눈이 생깁니다. 이를 ‘힘을 찾는 여정’이라고 하죠. 캘리포니아 원주민들은 모두 그랬어요. 숲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 나이 많은 여인이 가서 묻죠. “무엇을 보았니? 무엇을 들었니? 어떤 꿈을 꿨니?” 만약에 그 대답이 시원찮을 경우 아이들은 다시 야생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안 = 우리의 실제 생활에는 많은 고통이 있습니다. 마음을 살필 겨를도 없이 무너지는 실직의 고통, 빈곤의 궁핍도 있고요. 

스나이더 = 그래요. 그런데 고통은 자기만의 것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그리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는데도 괴로워하고, 어떤 사람들은 고통을 받아들이며 이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 오늘은 고통받기 좋은 날이구나.” 

안 = 매일이 기쁜 날일 필요는 없지만 씁쓸합니다. 개인에게 떠맡기는 것 같아서요. 서점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자기계발서들의 주장이나 청년의 멘토들이 격려하는 바도 아쉬움을 남깁니다. 긍정론, 자기성찰, 절망했을 때 노력하면 이뤄진다는 그런 파이팅 메시지, 또 승자의 배려, 이긴 자만이 바꿀 수 있다는 영웅주의를 보면 경쟁으로 내모는 구조를 더 공고히 하는 선동문처럼 다가오거든요. 실패의 원인이 노력 부족이라고 보기에는 경쟁구조가 승자독식입니다. 꼭대기도 늘 바뀌고요. 불안한 승자와 우울한 나머지들의 세상입니다. 

스나이더 = 자연에는 경쟁의 측면도 있지만 상호작용하는 공생적 측면도 있습니다. 다양한 존재들이 수많은 공동체를 이루며 유기적으로 살죠. 인간이 다른 종을 도구로 이용하며 소멸시켜 왔듯이 우리들끼리도 경쟁이라는 명목으로 억압을 당연히 받아들이도록 해왔습니다. 그 가운데 자기계발의 메시지는 지친 영혼들에게 매우 인기를 끌죠. 미국에서도 그렇습니다. 이런 방식의 자기성찰은 일종의 낮은 단계예요. 불교를 이야기하는 책들도 많은데 이 경우라면 불행히도 가짜 성찰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라는 포인트 자체는 매우 좋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세상을 욕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지 말라고도 하죠. 당신만의 상황을 돌보라고요. 영어로 말하면 ‘Don’t whine’, 징징대지 말라는 건데요. 이는 저차원입니다. 충분히 깊지가 않죠. ‘자신을 보아라’까지만 했지, ‘내가 없음을 보아라’는 안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를 보다보면 내가 홀로 떨어진 ‘나’로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먹고 마시고 입고 치료하는 데 필요한 모든 협력관계뿐 아니라 사회·정치적인 작용까지 볼 수밖에 없어요. 할 수 있다고 기운을 북돋우는 그 말들 속에서 이 나라에 있는 젊은이들도 자기 희망을 북돋우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국도 그렇고, 아시아·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에는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가 없습니다. 25세 이하의 젊은이들 중 25%가 실업자죠. 그래서 내면으로 가는 길과 함께 우리는 사회·정치적으로 가는 길을 구해야 합니다. 발달된 자본주의는 기능상 일자리를 공급할 능력이 없습니다. 꽉 찬 거죠. 하지만 세상엔 돈이 너무나 많아요. 거기엔 또 다른 진실이 있죠. 그 넘치는 돈이 몇몇 나라들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미국은 인도의 농부들한테 농약과 비료, 종자를 팔아 수백만달러를 벌어들입니다. 농부들한테 그런 화학제품은 필요 없습니다. 이미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잘 짓는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들이니까요. 사람들은 물질 개선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휩쓸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물질주의를 비판하는 무아와 자기를 비판하는 무아, 그 둘을 하나의 방향으로 추구해야 하는 거죠. 오늘날, 세상은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문명, 인간이 만드는 길 - ‘마음’ 전문가들과의 대화](2) 생태주의 시인 게리 스나이더

안 = 처음 이야기할 때 선생님은 아몬드나무의 마음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나무 역시 의식을 가졌다고요. 좀 더 들려주시죠. 

스나이더 = 나무도 마음을 가졌고 당신도 마음을 가졌어요. 나도 마음이 있고요. 그렇지만 이들이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나무의 마음이 어떤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거기에도 엄청난 지능이 작용하고 있다는 거죠. 나무는 언제 꽃을 피우는지 알아요.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죠. 어떻게 벌레를 다뤄 침입을 막을지 압니다. 그리고 수만년 동안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았어요. 자연의 전체 세계는 스스로 조절하고 스스로 다스립니다. 이러한 일종의 지능적인 작업이 전체적으로 이뤄지고 있죠. 다만 우리 인간들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복잡한 일이니까요. 그리고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려고 노력을 다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안 = 어떻게 아몬드나무와 인간의 마음이 소통할 수 있을까요.

스나이더 = 인간의 마음은 반드시 우선 그 자신과 소통해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당신이 마음과 잘 연결된다면 아몬드나무의 마음도 이해할 거예요. 당신이 당신을 이해할 수 있는 만큼요. 과수원에서 가지치기를 할 때 주인들이 전지하는 이들을 보고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저이들은 마치 아몬드나무가 된 것처럼 하네’ 그럽니다(웃음). 

안 = 우리의 마음을 확장해 모든 존재에게 뻗어간다면 세상은 보다 나아질 거라는 건가요.

스나이더 = 그래요. 나는 그리 믿습니다. 내가 어떻게 불교에 다가갔는지 말하지 않았죠? 시애틀 북부에서 부모님이 농장을 했어요. 소를 키웠죠. 송아지들도 있었는데 그 중 하나를 제가 돌봤습니다. 그 녀석이 세상에 나올 때도 제가 한몫했죠. 예닐곱 살 때 수의사가 저보고 ‘게리야, 네가 해야겠다. 너는 팔이 가느다라니까 송아지를 잡을 수 있을 거야. 엄마소 속으로 넣고 머리가 느껴지면 돌려서 빼내거라.’ 제가 해냈습니다. 그 어린 암송아지를 정성껏 키웠는데 그만 좀 있다 죽었지요. 주일학교 알죠? 교회에서 하는 학교요. 선생님이 남자였어요. 암송아지가 걱정돼서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우리 송아지도 천당에 가죠?’ 선생님은 못 간다고 했습니다. 동물은 천당에 갈 수 없다고요. 저는 밖으로 나갔고 다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 조금 지나 불교를 배우게 됐죠. 그들은 감각하는 존재에 대해 말하더군요. 모든 존재들요. 내게 깊게 와 닿았습니다.

안 = 종교마다 표현의 방식이 다르지 않습니까. 

스나이더 = 역사적이며 사회적인 문제인데요. 만약에 당신이 매우 깊이 소수가 이해하는 부분까지 유대교와 기독교에 다가간다면 아마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같은 이해를 구하고 있구나 알게 될 거예요. 그렇지만 많은 대중은 그렇지 않죠. 동물을 소비하는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중 다수는 그 의미를 가볍게 이해합니다. 적어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비한다면 현대의 문화는 또 다른 출발점에 서게 될 거예요. 

안 = 명상이나 기도 중에 스스로를 기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 탓으로 돌리는 것 역시 결정을 빨리 내리고 안도하려는 방어기제 같고요. 

스나이더 = 그래요. 우리가 자기 기만이 되지 않도록 잘 살펴야 하는 이유죠.

안 = 이런 기만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묵묵히 생 전체를 두고 나아가야 하는 건가요.

스나이더 = 보통 의 일상에서 진정 모든 일에 집중하며 살아간다면,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는 법을 배워나갈 겁니다. 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에요.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스스로를 기만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스승이 필요하죠. ‘나는 안다’ ‘깨달았다’ 해도 스승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지적해 줄 수 있으니까요. 

안 = 어떻게 스승임을 알죠. 

스나이더 =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세상에 스승이 그리 많지 않다는 의미겠죠. 그래도 꽤 좋은 스승들이 있습니다. 잘한다면, 우리가 스스로의 스승이 될 수도 있고요. 정작 허점은 아무도 그 스승과 그리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죠. 

안 = 일상에서 참고할 만한 매뉴얼이 있을까요. 

스나이더 = 매뉴얼로 쓸 만한 작은 책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사용해요. 미국 사람들한테 기회가 될 때마다 추천하는 책인데, 동아시아 최고의 매뉴얼일 거예요. <도덕경>이죠. 이는 일종의 시죠.

안 = 첫 구절을 기억합니다. 도가도 비상도, 도를 도라 부르면 도가 아니다.

스나이더 = 제 번역은 조금 다릅니다. 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하나는 그리 말하여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길이죠. 그러니까 보편적인 번역이 ‘도라 불릴 수 있는 것은 진정한 도가 아니다’인데 제 번역은 ‘그리 따를 수 있는 길은 진정한 길이 아니다’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 길을 따를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이는 길이 아니라는 거죠. 먼저 우리는 길을 걷는 것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런 다음 우리가 그 길을 이끌 수 있어요. 

안 = 자신만의 길을 발견하는 겁니까. 

스나이더 = 아니죠. ‘the path’입니다. 

그는 ‘그 길’이라 했다. 어렴풋이 의미가 전달되었다. 하지만 더 물을 수 없었다. 그가 답을 한다하여도 나는 알아듣지 못할 것이며, 독자의 혜안을 가리게 될 듯하여 침묵했다. 그리고 길은 그 길을 걸을 때 존재할 것이다. 

 

▲ 게리 스나이더 
젊은 시절 선 수행… 퓰리처상 받은 생태시인

 

게리 스나이더와 안희경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게리 스나이더와 안희경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게리 스나이더(85)는 시인, 수필가, 환경운동가이다. 미국 리즈대학에서 문학과 인류학을, 인디애나대학과 버클리대학에서 동양언어학을 공부하며 비트 문학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시운동에 참여했다. 1985년부터 UC 데이비스대학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서구의 언론은 그를 일러 ‘현대의 성자’라고 표현한다. 또 블룸스베리 리뷰에서는 ‘자연계와 시의 부족 연방들의 원로’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모두 열여덟 권의 책을 집필했으며, 그중 <야생의 삶(The Practice of the Wild)> <비 속에 남겨지다, 1947~1985년 시모음(Left Out in the Rain, New Poems 1947~1985> <도끼자루(Axe Handles)>는 미국도서상을 수상했다. 

 

또한 <거북섬(Turtle Island)>으로 1975년 퓰리처상을 받았고, <산하무한(Mountains and Rivers Without End)>으로 1997년 시 분야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볼링겐상을 수상했다. 미국 예술원상(1966)을 비롯하여 미국 시인아카데미가 주는 월러스 스티븐상의 영예를 얻었고 구겐하임 펠로십, 베스 호킨상, 레빈슨상 등을 받았다. 2003년에는 미국 시인아카데미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한국에는 <야생의 삶> <지구, 우주의 한마을> <무성(無性)> 등이 소개되어 있다. 

/안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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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의 여름 / 게리 스나이더

 

 

네모난 낡은 집 서쪽, 연못 팔 때 생긴

둔덕 위, 우리 한때 집 밖에서 잔 곳,

트램플린 놓였던 곳,

 

땅의 영이여 제발 노하지 마시길

시멘트 트럭 부르릉대더라도

식물의 영들이여 잠시만 기다려다오

제발 돌아와 웃음 지어 주길

 

시궁창, 배선과 배수관

거푸집과 타설하기 위해 숨겨진 문들

집짓기가 시작된다!

 

에너지에는 태양을

벽널에는 삼나무를

프레임에는 갓 껍질 벗긴 기둥

자박길 위한 자갈돌

돈 대는 볼링겐*!

 

다니엘은 껍질 벗기고

모스는 노래하고

매트는 큰망치질 하고

브루스는 사색하고

척은 수도관 공사

데이빗은 벽 말리고

착색하고, 색깔 짙기 조절한다;

스튜는 배수로 바위 놓고

커트는 뜨거운 와이어 작업

게리는 시원한 맥주 마시고

캐롤은 유쾌한 너털 웃음

그녀 떠난다

일꾼들 슬퍼한다,

겐은 페인트칠

모든 유리창틀

겐-색깔로 다시 붉다

 

점심에는 정원의 오이.

신선한 토마토 와삭와삭.

 

토르는 실내 채색과 히죽 웃음

테드는 지붕 기와

티르종이 말리고

톱밥 휘날린다

트럭은 실어 나르고

큰 깡통은 소각용

낡은 침실들 사라진다

 

야생 터키들 구경하고

사슴은 경멸하는 눈초리

황소개구리 개굴거리고,

 

데이빗 파민터는 마루용 떡갈나무

밤 늦게 가져온다,

그의 제재소 불 났으나,

변함없이 가져온다.

 

산드라는 샤워실 타일 벽에

만자니타 무늬 더듬어 본다.

미닫이 문 위에서도

매끄러운 새 마루바닥에서도-

 

낡은 집 이제 고대광실

창고만큼 큼직하니

큰 술잔 식탁 위에 꽝 내리쳐도

문제없다

로빈은 시 쓸 방 가졌고,

한밤중에 뒷일 보러 집밖 나갈

필요 없다,

 

캐롤은 드디어 집으로 오고

그녀 많은 방 들여다본다.

떡갈나무 소나무 하릴없이 쳐다보고

낡은 킷킷디즈의 집 이제

새 건물 가졌다-

 

그리하여 우리 한잔 술 따라 노래하리-

천국만큼이나 즐거웠으니,

97년의 여름이었다.

 

*볼링겐 재단이 1948년 처음으로 제장한 시 부분에서 가장 정평이 나 있는 미국의 문학상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으로 옥중에 있던 에즈라 파운드가 제1회 수상자였다.

 게리 스나이더는 1997년에 이 상을 수상하였다.

 

 

이 현재의 순간 / 게리 스나이더

 

 

이 현재의 순간,

 

오래 살아,

 

먼 옛날

 

된다.

 

 

 

게리 스나이더 시선집 <이 현재의 순간> 서강목 번역 


위대한 가족에게 드리는 기도」 -게리 스나이더

 

밤과 낮을 쉬지 않고 항해하는 어머니 지구에게

다른 별에는 없는 온갖 거름을 지닌 부드러운

흙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해를 향하고 서서 빛을 변화시키는 이파리들과

머리카락처럼 섬세한 뿌리를 지닌 식물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들은 비바람 속에 묵묵히 서서

작은 열매들을 매달고 물결처럼 춤을 춥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하늘을 쏘는 칼새와 새벽의 말 없는 올빼미의

날개를 지탱해주는

공기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노래의 호흡이 되어 주고

맑은 정신을 가져다주는 바람에게.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우리의 형제자매인 야생 동물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연의 비밀과 자유와

여러 길들을 보여 주고

그들의 젖을 우리에게 나눠 줍니다.

그들은 스스로 완전하며 용감하고 늘 깨어 있습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물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구름과 호수와 강과 얼음산에게.

그들은 머물렀다가는 또 여행하면서

우리 모두의 몸을 지나 소금의 바다로 흘러갑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눈부신 빛으로 나무 둥치들과 안개를 통과해

곰과 뱀들이 잠자는 동굴을 덥혀 주고

우리를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태양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수억의 별들아니 그것보다 더 많은 별들을 담고

모든 힘과 생각을 초월해 있으면서도

또한 우리 안에 있기도 한

위대한 하늘할아버지인 우주 공간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대지의 시 / 게리 스나이더

 

 

 

보기에 족할 만큼 넓고

 

움직이기에 족할 만큼 트였고

 

정직하기에 족할 만큼 건조하고

 

강인하기에 족할 만큼 가시투성이

 

살아가기에 족할 만큼 푸르고

 

꿈을 주기에 족할 만큼 오랜

 
 

가부좌 틀고 / 게리 스나이더

캐롤을 위해

 

 

낮은 텐트 지붕 아래 가부좌 튼다,

흐릿한 불빛, 저녁 마치고,

 

차 마신다. 우리 오래된

건조한 서부에 산다

 

셔츠자락 올리면 드러나는 피부

기대어   입술 닿는다-

 

오래된 촉감

사랑 만들고, 시, 만들어지고,

 

항상 새롭고, 똑같은 내용

삶 이어 또 삶,

 

밀라레파비록

네 번이나 석탑 쌓았으니

 

모두가 처음과 같았듯이

우리 사랑 돌과 시내와

뒤섞였다,

하나의 박동, 같은 숨결, 한 응시

 

현기증 나는 소용돌이 속 자리잡는다.

이 오래된 맑은 길로 사니

 

 

-재와 등걸불의 한 지글거림.

텐트 자락에 이는 미풍의 스침

 

차 한 모금, 뼈의 웅크림,

우리 둘 여기 있으니 무엇이 오랴.

 

 

*Milarepa 1040~1123: 티베트 불교의 종파인 카규파(喝擧派)의 승려.

 

 

 

 
 

마음 속 공간 찾기 / 게리 스나이더

 

 

나 60년대에 처음으로 그것 보았다,

캠핑용 폭스바겐 운전하여

맹렬한 게이 시인과

쉰 목소리 지닌 아름다우나 위험한 처녀와 함께,

 

캐나다로부터 내려왔다

산맥의 동쪽 사면 건조한 곳으로. 그랜드 쿨리, 블루

마운틴, 용암 흐른 동굴들,

앨보드1 사막-뾰족한 산맥-

빛나는 흑요석 깔린

바이어로 향하는 통로,

낯선 길 늦은 9월

새벽의 된서리; 그리고

협곡 따르니 갑작스레 열린다

언저리 위로 만곡한 은빛 평원이

 

오, 아! 공허의

깨달음이

공감하는 마음 이끌어 낸다!

 

우리는 평원의 가장자리 따라

도로 끝나는 바위기둥 이르렀다

스모크 샛강 옆구리로부터,

티피통로 따르는

마술사들의 농장 지나

고갯길 찾아내어 피라밋 호수3 이르렀다.

다음 날 우리 샌프란시스코 도착하니

세상이 새 길로 돌입하는 듯 보이는

바로 그 시각이었다.

다시, 70년대에, 멀리

몬타나 주로부터, 부주의하게도 고속도로 벗어나

평원으로 이르는 흙길 선택했다,

차 박혀-아이들 놀라고-하룻밤 지냈다.

이튿날 차 빼내고 계속 갔다.

 

십오 년이 지났다. 80년대에

내 애인과 길 끝나는 곳 함께 갔다.

종일 산들 거닐고,

뚝 떨어지는 곳 바라보았다,

작은 길 발견했다

쑥대밭 속에 숨겨진 돌에 새긴 글 있는 곳

 

"탐욕을 버릴 것"

"삶에서 가장 귀한 것은 물질이 아니다"

 

늙은 사막 쑥대 옆에 놓인 말씀.

 

이 비탈 높은 곳에서 본 흐릿한 해안선

오래 전에 죽은 라혼탄4 호수

침적토 속의 목 떨어진 송어 영혼-

콜럼비아 맘모스 뼈다귀

사백 척 높은 곳 파도가 새긴

해변 너럭바위 위, 바위 속에 쪼아 넣은

똘똘 말린 뿔 달린 사막 염소,

 

평원으로 트럭 돌렸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 향해,

뼛가루 같은 회색 흙 열탕으로 굽이치고,

수 마일 이어져, 길도 없고, 변화도 없다,

차 타주(惰走)하여 금 가고 갈라진

평평하고 딱딱한 지면에

멈추어 서니

겨울 눈 회오리치고,

여름 태양 가마솥처럼 작렬하는 곳.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나와, 존재하는 지 존재하지 않는지,

 

모든 것 동등하고, 멀리 미치며, 경계라곤 없다.

소리 삼켜져 없어지고,

물도 없고, 산도 없고, 덤불 숲도

없고 풀도 없으니

풀도 없고

그늘도 없고 당신 그림자만 있기 때문.

평평하지 않음이 없으니 평평함도 없다.

잃음도 없고, 얻음도 없다 그러니-

길 위에 걸릴 것 아무것도 없다!

-땅이 하늘이고

하늘이 땅이다,

그 사이 아무것도 없고, 단지

 

바람 일어 미풍 될 뿐,

텐트 입구 바람 불어가는 쪽 향했고,

시간 여기 존재한다.

우리 가슴에 가슴 맞대고,

다리에 다리 단단히 꼬아,

뼛속 이르는 입맞춤으로 만난다.

새벽 태양 눈에 곧바로 든다. 멀리 보이는

이빨 같은 산꼭대기 리어왕이라 불린다.

 

지금 90년대 사막의 밤

-나의 연인 내 아내이고-

오랜 친구, 낡은 트럭들, 근처에 대어놓고;

바깥 쪽 어둠 속에 자전거 탄 아이들 커다란 원 그린다

불빛이라곤 없고-꽃받침 같은 초승달 옆에

금성만이 홀로 빛나는 밤,

프라이팬에 튀긴 메뚜기 맛본다.

 

메뚜기들 어떻게든 근처에 우글거린다-

둥글게 앉은 아들과 딸들

메뚜기 먹으며 얼굴 찌푸리고.

황야의 곤충들 위해 경전 읊조린다,

 

-그 광활함, 그

어리석도록 사랑 베푸는 공간

 

마음 가득하다

 

걷고 걸으니,

발 아래 지구 회전한다

 

강과 산들 결코 그대로 멈추어 있지 않는다.

 

공간은 지속된다.

그러나 먹 적신 검은 붓

뾰족한 끝 점으로 좁아져,

들려 치워진다.

 

1956, 마린 암(庵)5 - 1996, 킷킷디즈6

 

 

1. 미국 오리건 주에 있는 사막의 이름

2.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어가는 고개 중 하나.

3. 네바다 주에 있는 시에라네바다 산맥 우측의 호수.

4. 네바다 주 북서부와 북동부 교차점에 위치했다는 선사시대의 호수

5.샌프란시스코 근처 마리 카운티에 스나이더가 지은 오두막 암자. 그는 이곳에서

  1958년부터 루 웰치와 한동안 함께 거주했다.

6. 스나이더가 1970년에 시애라 네바다 산맥의 발치에 있는 상 후앙 리지(San Juan Ridge)에 지은 집의 이름.

 

 
 


초승달의 혀 / 게리 스나이더

 

 

 

연한 초승달이 원호, 웅크린다.

 

다시 서녘에서. 푸른 저녁,

 

사슴 움직이는 어스름.

 

나무가 차지한 영역 진홍색 그늘-

 

백만 년의 냄새 맡기,

 

핥기, 입술 그리고

 

내민 혀.



흐름 / 게리 스나이더

 

원류

 

머리 담근다 황동색

용의 입으로 된 분출구 아래

절벽으로부터

샘 솟는 곳 - 교토 뒤쪽 카모

강 원류이다.

깎아지른 석벽 부도상

푸른 면상의 야단치는 부도,

 

원류의 주인, 물로

바위 만들고,

바위로부터 물 만든다

 

 

하상

 

아랫쪽 하상에는

약간의 노래 가락,

양철깡통, 불거져 나온 포크 자루,

돌멩이 반은 이전 둥근 캠프파이어 검은 자국 띠고 있다,

 

집시 배우들, 넝마조각과 낡은 헝겊,

마누라들 모두 무희,

아이들 어릿광대,

깡충대며 내려온다

둥근 바위로 뛰어 오른다,

현명하고 - 자유롭다 -

 

카모 강 파낸 자갈밭 하상

트럭 위에 자려진 준설 장치

돌과 버들가지 골라내는

회전 그물망 - 모래 채취

 

셀릴로 야키머

와스코, 위시램, 웜스프링*에는,

연어 잡고, 대화하고,

바위 위에 흩뿌려진 낮잠들

 

바위 위 위태로이 설치한 버팀대에

물보라 덮어쓰고 버팀줄 묶어 기댄 사랑

그가 든 기다란 뜰채 그물

 

그의 젖은 한쪽 옆구리 아래서

컬럼비아 강 전체가 포효한다

멀리 위로 소용돌이치는 물의

용솟음과 물기둥,

 

정지한 물보라 둥글게 가로지르는 연어,

 

 

폭포

 

바위 입술 위로

시냇물 도약한다

포말로 흩어지고 지류로 나뉜다,

모든 것 제 길로  가게 한다.

 

뒤로는, 저 멀리 물러난 곳에, 설원들

사이사이 화강암 갈비뼈 드러낸 채

여름 태양에 해면처럼 변한다

빙설수 아래로 스며 나와

얕은 흙탕으로 흐른다

들꽃 뿌리와 이끼 히이드풀에 엉키고

진창의 풀밭 스며들어

아른거리는 빛나는 모래 평지로 모인다

그리고는 너럭바위 뛰어내린다-

 

물바닥 둥근 바위들에 천둥소리로 부딪는다

고통 없이, 유희하며,

작은 물방울들 다시 모여

가장 낮은 곳 찾는다,

아래쪽으로 흐르길 계속하여

자갈 많은 강바닥 든다.

 

아무 소용없다, 물의 순환 쏟아져 돌 뿐-

 

시에라 네바다

그 중심부 높이 들어 올렸으나

흠집 많은 높은 방어막일 뿐

서쪽 향해 미끄러지는 산정의 추동력 - 주위의

구름 일으키고 뒤흔드는 힘 -

그리하여 소나무들 잎세포에 붙잡힌

햇살의 등을 타넘고 - 마술의 노래처럼

영양소 미네랄 소집하여

    삼목 통나무 인도한다, 결국에는

       바다에 도달하고픈

         거대한 카누 되고픈 삼나무를.

 

부드러운 숨결, 온 세계에 펼쳐져, 낮과 밤에

일어났다, 잦아들고,

위대한 정신은 그 자신의

    섬세하게 벼린 생각을,

    사통팔달로 소통시킨다.

    부지개 단단히 걸려

       전체 물줄기 움직임에만

       약간씩 흔들릴 뿐,

          물길 오르락내리락해도

             고정되어 떠 있다

 

나는 쏟아지는 포말과 농무 속에 흠씬 젖어,

기도한다.

       

 

하구

 

하구

너 굵디굵어

한숨 짓는 초원 쏟아낸다

흙탕물 뱉고

온갖 것 모아

끝없이

쏟아낸다

멀리 대지 밖으로

가장 미세한 것도 등급 매긴다.

엄하디엄한, 진중한, 온화한 너,

 

- 오 가슴 저미는 노래

손가락 사이로 느끼는

매끄런 부딪침과 입질 - 허벅지에 -

눈에도 밀려오고

내 불알 주위로 웅크린다

늘어난 주름진 피부

게으르게 수영하는 자지 둘레로.

 

하늘 맑은 한때 소나무 씨앗 간지럽히며

부식토, 이끼 고사리 자란 돌 지나왔지만

그러나 이제는

 

광활함

모든 발견되고, 빨아들이고, 보존하고,

탄생시키고, 익사시킨 것 풀어내는 자,

 

잠든 듯이 침잠하여

바다로 든다.

 

나의 뿌리

단단해져 너에게 고개든다,

굵디굵은 흐르는 강이여,

 

그리고 이 시 짓는다

 

 

*웜스프링: 스나이더가 살았던 포틀랜드 시 북동쪽의 지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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