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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모더니즘 대변자 김수영 작품 공자에 젖줄 대다...
2016년 10월 31일 22시 22분  조회:3929  추천:0  작성자: 죽림
 
김수영(1921∼1968)은 한국적 모더니즘의 대변자로, 혹은 저항시인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런데 그의 작품세계가 공자에 젖줄을 대고 있단다. 동서 사상사를 횡단하는 이런 흥미로운 주장을 편 이는 서울대 철학과 김상환 교수다. 데카르트 철학의 권위자인 그는 신간 ‘공자의 생활난’(북코리아)에서 서로 배타적인 것처럼 보이는 모더니즘과 전통주의가 김수영에 이르면 서로 맞물려 있다고 말한다. 
 
몇몇 평론가들이 김수영의 대표시 ‘풀’을 논어의 한 구절과 연관시켜 해석한 바 있다. 저자는 이를 확장시켜 김수영과 논어의 연관성을 하나의 학문체계로 완성한다. 첫 작품에서 마지막 시에 이르기까지 싯귀 하나하나를 예로 들어 설득력 분석하고, 일관성 있게 풀어가는 솜씨가 놀랍다.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 사물의 우매와 명석성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김수영의 첫 시 ‘공자의 생활난’(1945)이다. 이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의 사상 속에 꿈틀대는 죽음충동이 분출하는 문장이라고 지적한다. 정약용이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기 전에 한강을 건널 때 마음에 새긴 문장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 밝힌 대로 혼돈의 시류와 억압적 정국에 맞서려는 김수영의 ‘바로 보마’ 정신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정신이다. 이는 명석 판명한 진리를 구하는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시선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 ‘풀’(1968) 역시 군자의 덕을 바람에 비유한 논어의 문장을 새로운 차원으로 해석했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도 같다.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다.” 가혹한 형법주의에 이의를 제기하던 공자는 자신의 덕치주의를 바람과 풀의 관계를 끌어들여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나 김수영의 시에서 풀은 바람의 구속력에서 해방되어 자발적인 운동의 주체로 거듭난다. 김수영은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며 일견 덕치 논리를 따르는 듯 하면서도 종국엔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게 된다”며 민초의 힘을 우위에 둔다. 

이 뿐 아니다. ‘더러운 향로’(1954)는 군자를 청동향로에 비유하는 유교전통과 이어져 있고, ‘나의 가족’(1954), ‘가옥찬가’(1959)는 유교적 가족 윤리에 대한 자긍심을 노래한다. ‘폭포’(1954)는 선비정신을 집약하는 직(直·곧음)과 연결된다. 저자의 말대로 김수영의 핏줄에는 면면히 선비정신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안의 서구 추종주의를 부끄럽게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충분히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인 만큼 보다 대중적인 글쓰기를 시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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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의 생활난 / 김수영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장난을 한다

 

나는 발산한 형상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 이태리어로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叛亂性)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1945)

 

가까이 할 수 없는 서적 / 김수영

 

 

가까이 할 수 없는 서적이 있다

이것은 먼 바다를 건너온

용이하게 찾아갈 수 없는 나라에서 온 것이다

주변 없는 사람이 만져서는 아니 될 책

만지면은 죽어버릴 듯 말 듯 되는 책

캘리포니아라는 곳에서 온 것만은

확실하지만 누가 지은 것인 줄도 모르는

제2차 대전 이후의

긴 긴 역사를 갖춘 것 같은

이 엄연한 책이

지금 바람 속에 휘날리고 있다

어린 동생들과의 잡담도 마치고

오늘도 어제와 같이 괴로운 잠을

이루울 준비를 해야 할 이 시간에

괴로움도 모르고

난 이 책을 멀리 보고 있다

그저 멀리 보고 있는 것이 타당한 것이므로

나는 괴롭다

오 - 그와 같이 이 서적은 있다

그 책장은 번쩍이고

연해 나는 괴로움으로 어찌할 수 없이

이를 깨물고 있네!

가까이 할 수 없는 서적이여

가까이 할 수 없는 서적이여

 

                             (1947)

 

아메리카 타임 지(誌) / 김수영

 

 

흘러가는 물결처럼

지나인(支那人)의 의복

나는 또 하나의 해협을 찾았던 것이 어리석었다

 

기희와 유적(油適) 그리고 능금

올바로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나는 수없이 길을 걸어왔다

그리하여 응결한 물이 떨어진다

바위를 문다

 

와사(瓦斯)*의 정치가여

너는 활자처럼 고웁다

내가 옛날 아메리카에서 돌아오던 길

뱃전에 머리 대고 울던 것은 여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오늘 또 활자를 본다

한없이 긴 활자의 연속을 보고

와사의 정치가들을 응시한다

 

*와사: 개스(gas)의 일본식 표기.  

                                        (1948)

 

 

이(蝨) / 김수영

 

도립(倒立)한 나의 아버지의

얼굴과 나여

 

나는 한번도 이(蝨)를

보지 못한 사람이다

 

어두운 옷 속에서만

이는 사람을 부르고

사람을 울린다

 

나는 한번도 아버지의

수염을 바로는 보지

못하였다

 

   신문을 펴라

 

이가 걸어나온다

행렬처럼

어제의 물처럼

걸어나온다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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