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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실존주의파 시인 - 장 주네
2016년 12월 11일 21시 06분  조회:5031  추천:0  작성자: 죽림

장 주네


 
 
 
Jean Genet (1983).

장 주네 (Jean Genet, 1910년 12월 19일 ~ 1986년 4월 15일) 는 실존주의파에 속하는 프랑스의 시인·소설가·극작가이다.

파리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창부였던 어머니의 버림을 받고, 10세때는 굶주린 배를 억제하지 못하고, 애정에 굶주려 절도죄로 감화원(感化院)에 들어갔다. 그 후 탈옥하여 거지·도둑·남창 (男娼)·죄수 생활을 하면서 유럽 전역을 방황했다. 점령 중에 투옥되었을 때에는 1942년 프렌 형무소에서 데뷔작 소설 <꽃의 노트르담> 및 자전(自傳)의 <도둑일기>를 썼다.

1947년에 주베가 <하녀들>을 상연한 것으로 극작가의 길을 열었는데, 이후 그 전작(前作)인 <엄중경계>를 비롯하여 <발 콘> <흑인들> <간막이>가 상연되어, 찬부(贊否) 양론을 낳았다. 그것들은 어느것이나 남색(男色)과 반역과 증오와 범죄가 지배하는 암흑의 세계를 가장 외설스럽고 난잡한 비어음어(卑語陰語)와 빛나고 투명한 시어로써, 독창적이고도 난해한 문체로 그려내서 관객을 현대의 흑막세계로 안내한다. 그것은 반역과 악의 찬가(讚歌)이며, 순수성에의 역설적인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주네에 대한 평전 《성 주네》를 저술하면서 그의 문학을 "말로 표현된 고행승적 (苦行僧的) 실험"이라고 했다. 대표작으로서는 시집 《장미의 기적》과 빈민 구제사업의 도움으로 살아난 자기의 이야기를 쓴 소설 《도둑 이야기》, 그리고 희곡 《하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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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범죄자·부랑자였으나 소설을 통해 관능적이고 때로는 외설스러운 주제를 시적 우주관으로 변형시켜 보여주었다. 또한 전위극, 특히 부조리극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한 극작가이기도 했다.

가브리엘 주네의 사생아로 어머니에게도 버림받아 어떤 농가에서 자랐다. 10세 때 절도죄로 사춘기의 일부를 악명높은 메트레 소년원에서 보냈는데, 그곳에서 후에 소설 〈장미의 기적 Miracle de la rose〉(1945~46)에서 묘사된 일들을 많이 체험했다.

자전적인 작품 〈도둑 일기 Journal de voleur〉(1949)에서는 바르셀로나·안트웨르펜 및 기타 여러 도시에서 떠돌이, 소매치기, 남창 노릇을 하며 살던 시기(1930경~39)의 일들을 숨김 없이 기록했다. 이 작품에는 탐미주의자이며 실존주의자, 그리고 부조리극의 선구자인 작가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1942년 프렌에서 강도죄로 복역하던 중 글을 쓰기 시작하여, 걸작 〈꽃들의 성모 마리아 Notre-Dame des Fleurs〉(1944)를 발표했다. 여기에서 그는 전쟁 직전의 몽마르트르 풍경, 살인청부업자, 포주, 성도착자들이 판치는 지하세계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렸다. 그의 재능은 장 콕토,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의 관심을 끌었다.

1948년 강도죄로 10번째 기소되어 자동으로 종신형이 선고되자 여러 저명한 작가들이 프랑스 대통령에게 청원했고, 마침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또다른 소설 2편 〈장례식 Pompes funèbres〉(1947)과 〈브레스트의 논쟁 Querelle de Brest〉(1947, 영화화 1982)을 발표한 후,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초기 희곡들이 보여주는 간결성과 신고전주의적인 단막극 구성은 그가 사르트르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엄중한 감시 Haute Surveillance〉(1949)에서는 자신이 있던 감옥세계를 배경으로 한 주제가 계속된다. 그러나 〈하녀들 Les Bonnes〉(1947)에서는 정체성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파헤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문제의식은 새뮤얼 베케트, 외젠 이오네스코 등 다른 전위 극작가들에게로 이어졌다. 이 작품으로 그는 부조리극의 대가로 자리를 굳혔다.

이후의 희곡작품 〈발코니 Le Balcon〉(1956)·〈흑인들 Les Nègres〉(1958)·〈병풍 Les Paravents〉(1961) 등은 표현주의 양식에 따른 대작으로, 관객들 자신의 위선과 공범의식을 폭로함으로써 충격을 주고 그들을 극 안으로 말려들게끔 구성했다. 이 '증오의 연극'(thétre de haine)은 정치적·사회적 상황으로부터 최대한의 극적 효과를 얻어내려고 시도하지만 반드시 우파 아니면 좌파(급진주의)라는 식의 정치적 진부함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반항아이며 극도의 무정부주의자인 그는 모든 형태의 사회적 규율과 정치적 참여를 거부했다. 그가 체험한 난폭하고 종종 타락한 에로티시즘은 신비스러운 겸양의 개념으로 이어졌다. 장 폴 사르트르는 평론 〈성자 주네, 배우 겸 순교자 Saint Genet, comédien et martyr〉(1952)에서 금욕과 겸양에 대한 그의 명백한 추구를 성자의 노력에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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