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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 노벨문학상, 수상양보(?),그리고 "목매기세계"
2016년 12월 15일 19시 48분  조회:5013  추천:0  작성자: 죽림

노벨문학상에 목매지 말고

2013.10.23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의 관계자가 한국을 찾아왔습니다. 방한목적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 문인들은 수상후보자 선정을 위해 사전조사를 하러 온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 상을 받는 것이 거의 비원(悲願)처럼 절실해진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손님이 없었겠지요. 한국문학의 우수함과 어느 나라보다 더 활발한 문학시장(특히 시)을 열심히 소개하는 한편 유명 음식점에 모셔 그야말로 칙사 대접을 했다고 합니다. 

그 모임이 끝나고 헤어질 때 문학인 A씨가 문학인 B씨에게 했다는 말이 나중에 화제가 됐습니다. A씨는 그때 “이번엔 자네가 양보하게.”라고 했답니다. 내가 먼저 노벨문학상 후보자(또는 수상자?)가 되는 것 같으니 나보다 나이가 적은 자네는 다음 순서를 기다리라는 뜻이었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이 아무것도 약속한 게 없는데 ‘양보’ 운운한 이 우스꽝스러운 말은 B씨에 의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입이 걸기로 유명한 B씨는 “지가 뭔데 나보고 양보하라 마라 해?” 그러면서 A씨를 마구 씹었습니다. 우리 문학인들의 정서와 경쟁심리를 잘 알게 해준 에피소드입니다. 

금년에도 노벨문학상은 한국을 비켜갔습니다. 지난해 중국 소설가 모옌(莫言)이 수상했을 때 부러움과 질시의 눈길을 보냈던 우리는 올해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상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예측에 더 마음을 졸였습니다. ‘다행히’ 수상자는 무라카미가 아니라 캐나다의 소설가 앨리스 먼로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산케이(産經)신문 디지털 뉴스가 ‘무라카미 하루키 노벨상 수상’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호외를 냈다가 오보로 밝혀져 망신을 샀습니다. 수상에 대비해 작성해둔 기사를 담당자가 실수로 내보낸 탓입니다. 우리와는 좀 다르지만 일본인들도 노벨문학상을 고대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문학인들의 초조감과 조바심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994년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가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중국도 2000년에 가오싱젠(高行健), 2012년 모옌이 상을 받았습니다. 한중일 ‘문학 삼국지’에서 중국과 일본은 두 명씩 수상자가 나왔는데 한국은 한 명도 없는 상태입니다. 올림픽 개최연도는 일본 1964년, 한국 1988년, 중국 2008년으로 한국이 중국보다 20년 빠릅니다. 무역규모나 각종 경제ㆍ사회지표 등 모든 부문에서 한국이 노벨문학상의 경우처럼 일본과 중국에 비교도 안 되게 완전히 처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더 약이 오르고 애가 타는 거지요. 

게다가 2005년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했던 오에 겐자부로가 유력 후보자로 지목한 중국의 모옌(2012),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2008), 터키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2006) 등은 다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후보 중 한 명으로 꼽은 한국의 소설가 황석영 씨만 아직 무소식입니다. 황씨는 작품 8종이 프랑스어로 번역돼 ‘프랑스에 가장 잘 알려진 한국 작가’입니다. 올해 노벨상 발표를 앞두고 프랑스에서 독자들과의 만남 행사를 했는데, 이번에도 반가운 소식은 역시 듣지 못했습니다. 

해마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10월 10일 무렵이면 고은 시인의 집 앞에 민망한 풍경이 빚어집니다. 기자들이 몰려들고, 부담을 느낀 고씨는 일부러 집을 나가곤 했습니다. 2005년 당시 수상을 하지 못하자 고씨는 아내를 통해 “국민들 앞에 면목이 없습니다.”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가 후보였다고 확인해준 사람도 없었는데 왜 면목이 없어야 하는지, 아무래도 이상한 말이었습니다. 

노벨문학상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이상적인 방향으로 문학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여를 한 사람’에게 수여됩니다. 하지만 취지에 맞게 정치색이 완전히 배제된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만큼 우리 문학인들은 더욱 더 세계적이고 인류 보편적인 작품을 창조해 내야 할 것입니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 미흡이 노벨문학상과 인연이 없는 주요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늘 지적되는 번역 문제도 다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1년 설립된 한국문학번역원이 해외에 번역 출판한 작품은 10월 현재 28개 언어권 608건입니다. 스웨덴어로 번역 출판된 것은 고은 4종, 이문열 2종, 황석영 2종에 불과합니다. 이에 비해 최근 10년간 수상한 외국 시인 소설가들의 스웨덴어 출판량은 평균 6.6종이라고 합니다. 

일반인들은 우리 문학작품을 더 많이 읽어야 합니다. 한국인들의 한 달 독서량은 문학서적을 포함해서 0.8권에 불과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꼴찌라고 합니다. 자국 독자들도 읽지 않는 문학이 세계에 널리 알려질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기초예술 지원 7개 분야 중 문학분야 지원은 총 관련 예산의 4% 수준으로 꼴찌였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40억원 규모의 문학나눔 사업(문학도서 보급)이 문화부의 우수도서 선정사업에 통합돼 문학 진흥을 위한 행정이 후퇴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 여부가 그 나라의 문학적 성취를 가늠하는 절대적 척도는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머잖아 수상자가 나올 것입니다. 문학인이든 일반인이든 너무 상을 의식하지 말고 문학이 생활화하도록 그 기초와 풍토부터 다지고 내실을 키워가야 합니다. 특히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이라는 특수성을 반영한 작품이나 토속적이고 민족적인 작품을 중시하는 경향이 이제는 지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발전과 통합에 기여하고 인류 보편의 소통과 성숙에 힘을 더하는 ‘매력적인 문학’이 중시돼야 합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한국일보 논설고문, 자유칼럼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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