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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희, 로, 애, 락, 욕, 지, 의, 정 등의 복합적 예술품이다...
2017년 01월 08일 17시 05분  조회:2635  추천:0  작성자: 죽림

시를 배울 때 고쳐야 할 표현들 ㅡ도종환 



5. 나약한 감상으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시를 쓰는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로 정서를 빼놓을 수 없다. 정서란 어떤 사물을 대하면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말한다. 러스킨은 사랑, 존경, 찬탄, 기쁨의 네 가지와 미움, 분노, 공포, 슬픔의 네 가지를 합쳐 '8대 정서'라 했다. 사람의 감정 중에 희, 로, 애, 락, 애, 오, 욕이 모두 시가 될 수 있고, 근본적으로는 지, 정, 의(知情)가 모두 시심의 밑바탕이 된다. 그 중에서 '정'이 정서가 되겠는데, 문제는 이런 감정 중 사랑 또는 이별 슬픔 외로움 등의 감정만이 시의 중요한 정서인 것처럼 편협하게 생각하는 태도이다. 

문득 헤어져야 할 때를 생각해 보면 오늘의 이 기쁨이 영원할 것 같지만은 않다. 헤어짐을 전제로 하지 않은 만남이란 없고 만남 자체도 헤어짐이 있음으로써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너의 그림자가 사라져가는 버스 뒤꽁지의 창문을 쳐다보면 또 다시 쓸쓸해지는 어깨를 움찔하며 내일의 만남을 기약해 간다 어쩌다 이대로 헤어진다고 해도 다시 만날 것을 믿으며 어색하지만 반가운 너의 얼굴을 원 없이 쳐다볼 수는 있겠지 - 「사랑 그리고 그만큼의 아픔」 중에서 

오늘은 갑자기 내가 너를 그리워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울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서글픔은 고동색 절망으로 흐르고 나란 존재는 정말 무엇일까 하는 생각만 그곳에 가득하다 

네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리고 좋아한다고 고백한 적도 없다 그저 내 곁에만 있어 주면 좋았는데 오늘은 네가 곁에 있어도 허전하기만 하다 - 「서정시가 흐르는 화폭」 

위의 시 '사랑 그리고~'는 만남의 기쁨과 헤어짐에 대한 불안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원 없이 쳐다보고픈 마음을 담은 시다. 두 번째 시 '서정시가~'는 그리워하는 마음의 복잡함, 그 심리적 고통에 대해 쓰고 있다. 그런데 그리움을 우울한 슬픔으로 표현한 곳이라든지 서글픔을 고동색 절망이라고 표현한 부분 등은 앞에서 이야기한 삶 또는 사랑에 대한 피상적 인식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동색 절망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것은 고동색과 관련이 있는 주관적 경험의 표현일 뿐 객관적인 공감을 얻지 못한다. 이렇게 되니까 5행의 '나란 존재는 정말 무엇일까' 하는 철학적 질문도 전혀 철학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감상적인 자문으로 들릴 뿐이다. 게다가 '오늘은 / 네가 곁에 있어도 허전하기만 하다'라든가 '헤어짐을 전제로 하지 않은 만남이란 없고' '다시 만날 것을 믿으며' 등은 류시화, 서정윤, 한용운의 시에서 많이 접했던 구절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는 서정 또는 정서에 대한 심적 반응이 나약한 감상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윈체스터는 문학의 정서적 효과에 대한 영원한 가치 평가의 항목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정서의 공정 혹은 타당, 둘째 정서의 활기 혹은 힘, 셋째 정서의 계속 혹은 안정, 넷째 정서의 범위 혹은 변화, 정서의 등급 혹은 성질이 그것이다. 쉽게 말하면 그럴 만한 이유가 느껴지느냐, 생생한 생동감으로 살아 있느냐, 믿을 만한 힘이 느껴지느냐, 얼마만한 변화를 줄 수 있는 정서이냐, 정서다운 고상함이 있느냐 하는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대 휘어지게 선 겨울 언 땅 서릿발로 동동거립니다 손을 내밀면 차가운 대기 속에서도 따스하게 전해오는 당신의 맥박 늘 푸른 서향나무로 차 오릅니다. 가늘게 실눈을 뜬 겨울햇살로 당신을 보면 당신은 언제나 쓸쓸한 쪽으로 눈을 주며 내게로 가만히 건너오십니다. 가슴 속 그윽한 강물들 거느리고 강물 위에 드리운 산그늘로 내 온몸을 담고 계신 당신 눈동자 속 엷게 비치는 눈물로 흔들립니다. 그대가 담고 있는 당신은 어느 적 당신의 사람이었기에 오늘은 이토록 당신의 말들을 잃게 합니까 당신의 그대에게 건너가야 할 처녀의 말들 저 눈발로 떠돌고 있는 산천 당신 금이 간 서릿발로 서러웁습니다. - 「갈대 3」 

작품 후반부의 그대와 당신의 혼용으로 인한 약간의 혼란스러움은 있지만, 자아 속의 초자아 또는 사랑하는 대상의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그가 사랑하는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체로 이 시의 정서는 잔잔하면서도 믿을만하게 느껴진다. 쓸쓸함과 서러움의 정조를 과장하거나 엄살 떨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가고 있는 잔잔한 서정의 울림이 있다. 

6. 추상적인 표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런 놈끼리 저런 놈끼리 요런 놈끼리 끼리끼리 모여 사는 세상 작은 괄호로 묶고 큰 괄호로 묶고 묶고 묶다 보면 결국은 하나 

하나라는 것을 이런 놈도 저런 놈도 요런 놈도 알고 있을까? - 「하나로 살기」 

시는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형상화할 때 더 생동감이 있다. 이른바 객관적 상관물을 빌어 생생하게 그려갈 때 느낌이 더 살아난다. 이 시는 끼리끼리 집단 이기주의로 모여 살지 말고 하나되어 살아야 한다는 심정을 표현하려 한 시다. 만약에 다음과 같이 고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비교해 보자 

모래알은 모래알끼리 조약돌은 조약돌끼리 버려진 돌들은 버려진 돌끼리 끼리끼리 모여 사는 세상 개울가에서 만나고 여울로 가다가 만나고 골짝을 넘는 구비구비에서 만나는 결국은 하나라는 것을 모래알도 조약돌도 버려진 돌들도 알고 있을까 

조금은 더 생동감이 있을 것이다. 막연하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내용을 가질 때 시는 더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 '들에는 이름 없는 숱한 꽃들이 피어 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들이 빽빽히 숲을 이루었다'라는 식의 표현보다는, 꽃 이름 나무 이름 새 이름이 적재 적소에 살아 있도록 표현한다면 시의 내용은 그만큼 더 풍부해질 것이다. 다만 진부한 느낌이 들거나 설명적이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주의도 있어야 한다. 자칫하면 상상력의 공간이 그만큼 줄어 들 수도 있고, 시의 중요한 장점 중의 하나인 다의적 해석의 공간이 그만큼 좁아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7. 사실에 맞게 표현해야 한다 

시를 쓰다 보면 욕심이 나게 마련이다. 더 잘 표현하고 싶고, 더 적절한 비유를 만들어 보고 싶고,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 들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부분을 상상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새로운 것을 찾아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혀 사실과 다르게 표현해 놓는 경우가 있다. 

성장이라는 단어의 배를 갈라 내장을 뒤져볼까 그 속 어딘 가엔 분명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주선하는 장기라도 있을까 만남 우혈관과 헤어짐의 좌혈관의 혈액이 감미로운 리듬에 따라 춤을 추다가 혹 장애라도 일으켜 좌충우돌로 뒤범벅되진 않을까 - 「자라기 위한 수술 준비」 

이 시는 우리가 성장하면서 겪는 고통의 원인이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데서 착안하여 성장 과정과 관련한 정신적인 개념들을 육체의 일부분과 결합해보는 기발한 착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몸에 좌심방 우심실 이런 이름은 있어도 좌혈관 우혈관은 없다. 상상력의 자유로운 전개는 얼마든지 좋지만, 부정확하거나 논리적 모순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런 한 부분의 오류가 시 전체의 결정적인 결함이 될 수 있기 대문이다. 앞에서 살펴 본 시 중에 이런 부분도 마찬가지다 

피는 물 위를 기름처럼 흐르고 사람들은 원심분리기 속에서 제 무게만큼의 속도로 흩어져 간다 

피는 물 위를 정말 기름처럼 흐를까? 물과 기름은 서로 겉돌지만, 피와 물은 그렇지 않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시이지만 사실에 맞지 않게 표현해서는 안될 것이다. 

□ 강사 소개―도종환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 국어교육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 제1집에 「고두미 마을에서」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 당신은 누구십니까』, 『 부드러운 직선』 펴냄. 교육에세이집 『마지막 한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펴냄. 1990년 제8회 신동엽 창작기금 수혜, 1997년 민족예술상 수상. 현재 (사)민예총 충북지회장, <나팔꽃> 동인, 중학교 교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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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김형영 (1944∼ )

모기들은 날면서 소리를 친다
모기들은 온몸으로 소리를 친다
여름밤 내내
저기,
위험한 짐승들 사이에서

모기들은 끝없이 소리를 친다
모기들은 살기 위해 소리를 친다
어둠을 헤매며
더러는 맞아 죽고
더러는 피하면서

모기들은 죽으면서도 소리를 친다
죽음은 곧 사는 길인 듯이
모기들,
모기들,
모기들,

모기들은 혼자서도 소리를 친다
모기들은 모기 소리로 소리를 친다
영원히 같은
모기 소리로……

 

 
 

꿀벌, 나비, 잠자리, 무당벌레, 방아깨비……. 아름다운 날벌레가 많다. 인간에겐 옷이 날개, 이들에겐 날개가 옷. 사실 모기도 그리 외모가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되는데, 유독 우리 미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 순간에도 지구별의 수많은 방에서 인간과 대등하게 지력과 운동신경과 체력을 겨루고 있을 모기들. 에이, 그냥 물리고 말자. 항복하고 누운 사람을 기어이 다시 일으키는 건 모기 소리다. 아니, 살그머니 한 모금 빨고 갈 것이지 모기는 왜 그리 소리를 치는 걸까? 페어플레이 정신인가? 기어들어가는 듯 작은 목소리를 ‘모기 소리 같다’고 하지만, 깊은 밤 모기 소리는 귓전에 사이렌 소리처럼 울린다. 그리하여 ‘위험한 짐승’이 된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게 만들었다. 사람의 삶을 모기의 삶에 빗댄 재밌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시.

모기에게 우리 인간은 ‘위험한 짐승들’이다. 그처럼, 돈 많고 권세 있는 사람들이 ‘위험한 짐승들’이 되면 아무리 악을 써도 모기 같은 인생살이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모기들,/모기들,/모기들,’이라고 되뇌면서 시인은, 사람은 모기가 아니라고, 모기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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