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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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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자기자신이 만든 세계를 깨부시는" 힘든 작업이다...
2017년 02월 11일 12시 51분  조회:2512  추천:0  작성자: 죽림

알기 쉬운 현대시 작법-자유시에도 운이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형시뿐만 아니라 자유시의 경우도 각운rhyme에 의해 시의 음악성이 강조된다. 
각운은 흔히 낱말의 동일한 위치에서 동일한 소리가 반복되는 현상, 
한국어의 낱말은 일반적으로 초성, 중성, 종성으로 되어 있고, 
따라서 각운은 초성이 반복되면 두운alliteration, 중성이 반복되면 요운internal rhyme, 
종성이 반복되면 말운rhyme이 된다. 
각운이란 말은 운율을 맞춘다는 의미와 머리, 허리, 다리에서 다리가 되는 운, 
곧 말운이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각운은 광의로 두운, 요운, 말운을 포함하고 협의로는 말운에 해당한다. 
물론 각운은 낱말과 낱말 사이에도 적용되고 시행과 시행 사이에도 적용된다. 
다음은 낱말과 시행 양자에 걸쳐 두운이 나타나는 경우. 



말리지 못할 만치 몸부림치며 

마치 천리 만리나 가고도 싶은 

맘이라고나 하려볼까 


- 김소월 <천리만리> 




먼저 낱말의 경우 1행에는 "말리지 / 못할 / 만치 / 몸부림치며"에서 알 수 있듯이 
네 낱말의 머리에 "ㅁ"이 반복되는 두운 현상이 나타난다. 
"만치"를 독립된 낱말로 읽지 않는 경우 1행은 "못할 만치 / 몸부림치며"가 되고 이 때는 "못할 / 몸부림"의 두운 현상 "-만치 / -림치며"의 요운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1행의 첫소리, 2행의 첫소리, 3행의 첫소리는 모두 ㅁ으로 시작되는 두운 효과를 준다. 
문제는 말운이고, 정형시의 경우도 우리시에는 말운 현상은 없고 운 대신 형태소나 낱말이 반복된다. 
윤동주의 대표작 <서시>가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것은 무슨 사상의 깊이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음악성 때문이고, 
그것도 두운과 요운 현상 때문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중략)......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먼저 "하늘을 우러러"가 문제이다. "하늘을 우러러"란 무슨 뜻인가? 
정확하게 표기하면 "하늘을 쳐다보며"이거나 "하늘을 공경하며"이다. 
그러나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라고 표현한다. 
"쳐다보며". "공경하며"가 아니라 "우러러"라고 표기한 것은 무엇보다 요운의 효과 때문이다. 
"하늘을 / 우러러"의 경우 "-ㄹ-/ -ㄹ-"이 반복되므로써 요운 현상이 나타나고. 
따라서 "하늘을 쳐다보며"나 "하늘을 공경하며"가 단순한 의미 전달을 목표로 한다면 
이런 표기는 미적 효과를 목표로 하고 시가 예술일 수 있는 것은 이런 미적 책략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한 점"도 문제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이라고 말하지는 않고 " 
결코 부끄럼이 없기를" 혹은 "죽어도 부끄러움이 없기를" 이라고 말한다. 
혹시 일부에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하는 식으로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서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말에는 시간을 알리는 경우나 점에 대해 말하는 경우가 아니면 "한 점"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그것도 한 점 부끄러움이라니? 
그렇다면 두 점 부끄러움도 있고 세 점 부끄러움도 있단 말인가? 
이런 표기는 앞에 나온 "하늘"과 관계되는 바. 
두 낱말 모두 첫 소리가 ㅎ으로 되어 있고 따라서 두운 효과가 있다. 
요운 현상은 2행 "부끄럼이 없기를"에도 나타난다. 
"-ㄲ-/-ㄱ-"의 반복이 그렇다. ㄲ과 ㄱ은 다르지만 이 시행이 경우 비슷한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마지막 행이 아름다운 것 역시 "-밤-/-별-/-바람-"의 요운 현상 때문이다. 
결국 윤동주의 <서시>는 사상이 아니라 소리 효과, 음악성, 
그것도 섬세한 운의 효과가 감동을 주고 그의 시가 명시인 것은 이런 예술성 때문이다. 

우리시에는 정형시든 자유시든 말운 현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각 시행의 끝이 비슷한 혹은 같은 소리로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말운은 아니지만 각 시행의 끝에 비슷한 혹은 같은 소리가 음으로써 미적 효과를 낳는 경우는 많다. 
엄격하게 정의하면 앞에서도 말했지만 각운rhyme은 각 시행의 끝소리가 같은 소리로 조직되는 것이고, 
따라서 협의로는 말운을 뜻한다. 
그러므로 두운 역시 각 시행의 첫 소리가 같은 소리로 조직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위에 인용한 두 편의 시 가운데 김소월의 시가 두운 현상에 적합하고 
윤동주의 경우는 변형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요운 현상 역시 각 시행 중간에 같은 소리가 나오는 경우이고 
한 시행 속에 나오는 경우는 요운의 변형, 
혹은 자음조화consonance나 모음조화assonance로 읽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말하자면 "팔리지 못할 만치 몸부림치며"는 자음조화, 
"마치 천리 만리나"는 모음조화로 읽을 수 있다. 
우리시의 경우 각 시행이 끝이 같은 소리가 오는 이른바 말운 현상은 없지만 비슷한 소리(?)가 오는 경우는 있다.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빛이 뻔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듯 눈엔 듯 또 핏줄엔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말운의 정확한 보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시의 미적 효과는 각 시행의 끝에 비슷한 소리가 오기 때문이다. 
1행, 3행, 7행은 "끝없는 / 뻔질한 / 끝없는"의 ㄴ소리가 반복되고 
2행, 4행, 8행은 "-네 / -네"의 같은 모음이 반복되고 
5행, 6행,은 "듯 / 곳"의 ㅅ소리가 반복된다. 
그러나 이런 소리의 반복은 말운 현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시의 경우 각 소리들은 각 낱말의 종성에 위치하는 소리가 아니라 
낱말이거나 어미 활용에 속하고(끝없는, 흐르네,인 듯) 
굳이 종성에 위치하는 소리를 찾자면 "곳"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같은 ㅅ소리를 반복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이 소리는 운이 아니라 
"곳"이라는 낱말의 반복이기 때문에 말운이 아니다. 
여컨대 우리시의 경우 말운이 아니라 같은 어미나 낱말이 반복되고 이런 반복이 미적 효과를 준다.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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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
―유병록(1982∼ )

여기 망치가 있다
쇠를 두드려 장미꽃을, 얼음을 두들겨 태양을,
무덤을 내리쳐 도시를 만든

망치는 무엇이든 만들어내지만

함부로 뭉개진 얼굴
눈이 감기고 귀가 잘리고 입이 틀어 막힌
둔기의 윤리

괜찮소 누구나 귀머거리가 되니까 누구든 벙어리
가 되니까 언젠가 숨 쉬지 않는 자가 될 테니

 

 

없는 눈을 감은 채
망치는 자신이 만든 세계를 힘껏 내리친다

그의 사랑은 어차피 한 가지 방식뿐이니까

장미꽃을 두드려 겨울을, 태양을 두들겨 밤을,
도시를 내리쳐 무덤을 만드는
둔기의 본분



요새는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자란 딸과 망치질 한 번 시키지 않고 키운 아들이 많으니 망치 없는 집도 있을 테다. 망치는 나무 손잡이에 쇠머리가 달린 공구다. 전에는 집집마다 망치를 하나쯤 갖추고 있었는데, 못을 박거나 호두를 깨먹는 데 사용했다. ‘쇠를 두드려 장미꽃을’ 만드는 세공용 망치부터 ‘얼음을 두들겨 태양을, 무덤을 내리쳐 도시를’ 만드는 거대한 망치까지 ‘망치는 무엇이든지 만들어내지만’, ‘자신이 만든 세계를 힘껏’ 내리치기도 한단다. 
 

 

“어떻게 한 숨결에서 뜨거운 숨과 찬 숨이 동시에 나올 수 있는 거냐!”(엘러리 퀸 장편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에서) 그것이 망치다. ‘함부로 뭉개진 얼굴/눈이 감기고 귀가 잘리고 입이 틀어 막힌’ 망치. 감정이 없으니 표정이 있을 리 없는 얼굴로 옹골차게 목표물을 가격할 따름. 그런 냉혹함과 완강함, 망치의 ‘윤리’와 ‘본분’으로 인류 문명이 이루어졌을 테다. 시인은 사물 망치를 빌려 인간을 말한다. 용도에 따라 이기(利器)도 되고 흉기도 되는 망치. 건설도 하고 파괴도 하는 인간 망치!

못 하나 박을 때도 망치를 잘못 휘두르면 다친다. 제대로 망치질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망치와 호흡을 맞춰 한 지점을 향해 정확하고 강하게 힘을 날리는, 기하학을 아우르는 그 감각! 망치를 들어 올려 내리치기까지의 부드럽고 힘찬 율동, 그리고 일격, 일격의 리드미컬한 망치 소리! ‘여기 망치가 있다’ 어떻게 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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