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음유시는 문자와 멜로디와의 두개 세계를 아우르는 시이다...
2017년 07월 24일 03시 57분  조회:2048  추천:0  작성자: 죽림

『현대시학』의 기획사업인 <인접 예술과의 만남> 그 두 번째 자리가 <스페인, 중남미 음유시에의 초대-스무 개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란 이름으로 마련되고 있다.

 물론 그 자리에선 네루다의 시도 불려지고 낭송되겠지만 음유시가 케케묵은 미분화시대의 무슨 원시적 유물이 아니라 엄연한 현대적 장르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거기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네루다가 누군가. 우리에게도 친숙한 1971년 노벨 문학상 수상의 현대시인이 아닌가.
음유시가 왜 이처럼 현대적 장르로서의 가능성을 지닐 수 있는가. 오늘의 문자문학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또다른 향유에의 갈망이 오늘의 삶 속에서 이미 싹트고 있으며, 오늘의 시가 본질적으로 탈환해야 할 요소가 거기 있을 수 있겠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기타가 시에게 말한다
내가 널 종이에서 꺼내 줄게
현의 부드러운 바람이
쇠사슬을 부수면
넌 더 이상
포로가 되지 않을 거야
두 손이 묶여서
흰 초원 위에 버려져
말을 잃어버린...
시야 깨어나라
아침을 열어라
소리의 동지인 내가
널 이렇게 일츠키고 있잖니
-⌈기타가 시에게⌋ 전문

위 시는 니카라구아 음유시인 살바도르 카드데날의 시다(김홍근 옮김). 위의 시가 말하고 있듯 오늘의 시는 적잖이 도구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로서의 자율성을 잃고 있다는 뜻으로 형태적 산문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산문적 삶의 와중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시들이 너무 많다는 뜻이다.
이 말은 문자가 없던 시대, 이른바 구비문학의 시대로 퇴행하자는 주장을 전제로 한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그 시대는 노래와 시가 분리되지 않았던 그야말로 <몸시>의 시대일 수 있었고, 누구나 함께 시를 향유할 수 있는 가장 행복했던 문학의 공존기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원시적 미분화의 상태일 따름이다.

아기의 눈동자가 순수 그 자체이며 아기의 말이 엉뚱하다고 해서 그 자체가 시는 아니듯이 말이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여지를 제해 놓고 보면 위의 말이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문자문학, 문자시로서 오늘의 시는 바로 그의 몸이라고 할 수 있는 언어의 원형질 가운데 어느 한쪽에만 지나치게 기대 온 반편(모자람, 바보의 뜻도 포함해서)의 양식이었다는 혐의가 짙다고 보지는 않는가. 너무 읽기만을 강요하지 않았던가.

<눈>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귀>를 위한 또 하나의 기능을 망각해 왔던 것이 아닌가. 그렇다, 소리! 소리가 없었다.

특히 오늘의 우리 한국 현대시는 그간 이른바 말 만들기, 수사법, 이미지 만들기에만 줄곧 매달려 왔다.

그것만이 현대성이라는 생각으로 알맹이 없는 방법적 추구에만 함몰해 있었다. 가시적인 구조물이 모두라고 생각해 온 혐의가 짙다.

<소리>가 없다는 것은 <울림>이 없다는 뜻이다. <에코>가 없다는 뜻이다. 그것은 곧 서정성의 상실을 뜻한다.

문자만으로 다가간다는 것은 논리와 계산을 동반한다는 뜻이며, 소리로 다가간다는 것은 리듬과 멜로디로 다가간다는 뜻이다.

그만큼 생체적이어서 에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에코는 본래 소리의 본질이다. 이 두 개의 세계를 아우르는 자리에 시가 있다. 그게 시의 자율성이다.
음유시는 음유시 대로의 독립된 장르가 되어야 하겠지만 거기엔 바로 소리! 소리가 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610 첫사랑아, 첫사랑아, 나에게 돌려다오... 2017-07-24 0 2211
609 시의 첫머리는 독자와 만나는 첫번째 고비이다... 2017-07-24 0 1931
608 장마야, 우리들은 널 싫어해... 2017-07-24 0 2032
607 "시인이 되면 돈푼깨나 들어오우"... 2017-07-24 0 1863
606 백합아, 나와 놀쟈... 2017-07-24 0 2079
605 "해안선을 잡아넣고" 매운탕 끓려라... 2017-07-24 0 1961
604 "언제나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것은"... 2017-07-24 0 1791
603 시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창조성의 요인은 바로 상상력이다... 2017-07-24 0 2328
602 동물들아, "시의 정원"에서 너희들 맘대로 뛰여 놀아라... 2017-07-24 0 2657
601 시인은 불확실한 세계의 창을 치렬한 사유로 닦아야... 2017-07-24 0 1980
600 초여름아, 너도 더우면 그늘 찾아라... 2017-07-24 0 2090
599 "내가 죽으면 한개 바위가 되리라"... 2017-07-24 0 2632
598 련꽃아, 물과 물고기와 진흙과 함께 놀아보쟈... 2017-07-24 0 2288
597 현대시야, 정말로 정말로 같이 놀아나보쟈... 2017-07-24 0 2112
596 선물아, 네나 "선물꾸러미"를 받아라... 2017-07-24 0 2424
595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2017-07-24 0 2077
594 채송화야, 나와 놀쟈... 2017-07-24 0 3604
593 시의 초보자들은 문학적인것과 비문학적것을 혼동하지 말기... 2017-07-24 0 2123
592 찔레꽃아, 나와 놀쟈... 2017-07-24 0 2421
591 상상력의 무늬들은 새로운 세계와 세상의 풍경을 만든다... 2017-07-24 0 2031
590 커피야, 너를 마시면 이 시지기-죽림은 밤잠 못잔단다... 2017-07-24 0 2562
589 시는 언어로 그린 그림이다... 2017-07-24 0 2363
588 담쟁이야, 네 맘대로 담장을 넘어라... 2017-07-24 0 2284
587 시인은 사막에서 려행하는 한마리 락타를 닮은 탐험가이다... 2017-07-24 0 2156
586 꽃들에게 꽃대궐 차려주쟈... 2017-07-24 0 2272
585 무의식적 이미지는 눈부신 은유의 창고이다... 2017-07-24 0 2385
584 유채꽃아, 나와 놀쟈... 2017-07-24 0 1990
583 음유시는 문자와 멜로디와의 두개 세계를 아우르는 시이다... 2017-07-24 0 2048
582 풀꽃들아, 너희들도 너희들 세상을 찾아라... 2017-07-24 0 2079
581 시인은 은유적, 환유적 수사법으로 시적 세계를 보아야... 2017-07-24 0 2299
580 풀들아, 너희들 세상이야... 2017-07-24 0 2371
579 시인은 날(生)이미지를 자유롭게 다룰 줄 알아야... 2017-07-24 0 1944
578 봄아, 봄아, "봄꽃바구니" 한트럭 보내 줄게... 2017-07-24 0 2347
577 시인은 그림자의 소리를 들을줄 알아야... 2017-07-24 0 2068
576 금낭화야, 나와 놀쟈... 2017-07-24 0 1754
575 시인은 절대 관념이나 정서의 노예가 아니다... 2017-07-24 0 2043
574 춘향아, 도련님 오셨다... 2017-07-24 0 2349
573 좋은 시는 그 구조가 역시 탄탄하다... 2017-07-24 0 1951
572 아카시아야, 나와 놀쟈... 2017-07-24 0 2263
571 시를 쓰는것은 하나의 고행적인 수행이다... 2017-07-24 0 2113
‹처음  이전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