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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명의 시민, 백년의 시인을 노래하다...
2017년 02월 17일 17시 48분  조회:2599  추천:0  작성자: 죽림
하늘가에 울려퍼진 윤동주 '서시' ...
백명의 시민, 백년의 시인을 노래하다
(ZOGLO) 2017년2월15일 
백명의 시민, 백년의 시인을 노래하다
 
- 룡정.윤동주연구회 윤동주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형기념행사 조직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난 괴로워 했다.

 
2월 16일 룡정시 동산마루에는 랑랑한 시랑송소리가 소슬한 겨울바람을 이겨내며 산마루에 울려퍼졌다. 민족시인 윤동주 옥사 72주기를 맞아 백여명의 시민들이 동산에 잠든 윤동주의 묘소를 찾은것이다.
 
룡정.윤동주연구회에서 기획, 주최한 윤동주탄생100주년계렬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백명 시민 백년시인을 노래하다”라는 명제의 대형기념행사가 윤동주의 묘소에서 열렸다. 
 

행사에서는 가슴앞에 조화를 단 참가자 일동이 윤동주의 묘소에 묵념을 하고  윤동주의 친지 윤인주선생과 룡정.윤동주연구회 임원, 시민들이 윤동주의 령전에 제주(祭酒)를 올렸다.
 
행사에서는 룡정.윤동주연구회 리승국 부회장이 윤동주의 생애를 소개하고 온가족을 대동하고 온 김화자등 시민대표가 소감발표를 했다.
 
룡정.윤동주연구회의 임원들과 시민들이 윤동주의 대표적인 시편들인  “새로운 길” , “또 다른 고향”, “자화상” ,“별헤는 밤”과 동시들을 랑송했다. 
 
나중에 100여명의 참가자 일동이 윤동주의 주옥같이 빛나는 시 “서시”를 집체랑독하였다. 


 
장편인물전 “윤동주 평전”과 장편소설 “시인 윤동주”의 저자인 룡정.윤동주연구회 김혁 회장이 “100년의 성좌를 우러르다”라는 제목으로 발언했다. 
 
김혁 회장은 “윤동주 시와 민족정신의 일반화, 보편화를 위해 시민들을 주인공으로 한 행사를 기획했다”며 “올해로 ‘백세지후(百歲之後)’를 맞는” 윤동주는 “강인한 항일,저항정신을 지녔으며 사랑과  평화를 지향하며 이를 맑고 순한 언어로 적어내렸기에 오늘날 그렇게 많은 독자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고 있다”면서 “그이를 기리는 일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의 민족적 자긍심과 책임감을 일깨우는 시간과 기회로 될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고향의 시인을 기리는 일에 불같이 뜨거운  동참의식을 보여주어 추운 겨울에 따뜻한 감동을 느꼈다며 시민 여러분께 감사를 전한다고 했다. 
 
김회장에 따르면 룡정.윤동주연구회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 한해 많은 일들을 기획하고 있다. 
 
룡정.윤동주 연구회 산하의 력사답사팀의 주도로 력사 유적지 탐방을 정기적으로 이어나가며 윤동주의 숙명의 동반자이며 반일지사, 문사인 송몽규를 기리는 기념행사를 더불어 펼쳐나가며 청소년인물전 “’별’의 시인 윤동주”를 출간, 각 학교에 무상으로 보내며 “’별을 노래하다’- 윤동주 시 가영대회”를 지난해에 이어 제2탄으로 성대하게 거행하며 윤동주의 생애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윤동주 평전” 그리고 윤동주의 문학생애를 소설화한 장편소설을 출간하여 백주년에 헌례하려고 한다. 
 
이외 윤동주 묘소 참배, 시랑송회, 세미나 등 다채로운 행사들로 시인의 백주년을 맞은 이 한 해를 축제의 분위기로 이어나갈 계획이다. 
 
한편2014년 9월 27일, 윤동주의 민족애와 문학정신을 선양하고 나아가 민족의 문화와 력사의 의미를 환기하고 고양하는데 몸바칠 취지로 조선족의 작가, 학자, 매체일군, 교직원들로 무어져 윤동주 시인의 고향 룡정에서 발족된 사단법인 “룡정•윤동주연구회”(회장 김혁)는 짧은 시간내에 많은 일들을 해왔다.   
 
2014년 12월 20일, 명동촌 윤동주 생가에서 윤동주 탄신 97돐 기념행사를 가졌다. 2015년 2월 16일, 윤동주 옥사 70주기를 기념하여 “항일 시인 윤동주 70주기 기념행사”를 가졌다. 
 
민족의 인걸들을 조명하고 민족공동체의 이슈와 현안에 대해 진맥하며 나아가 우리 민족의 비전에 대한 제안 등의 알쭌한 내용들로 꾸며진 문화총서 “룡두레”를 편찬, 출간했다. 
 
2015년 4월, 윤동주의 장례식이 치러졌던 윤동주의 용정자택 자리에 윤동주연구회 사무실을 오픈하고 본격적인 사무에 착수했다. 
 
2015년 청명을 맞아 조선족 대형문학지 “장백산” 잡지사와 손잡고 윤동주 추모제를 개최했다. 
 
유족의 동의를 얻어 룡정의 시민들을 휘동하여 윤동주의 묘소를 새롭게 단장했다.
 
2015년 9월 20일 룡정•윤동주연구회 산하에 력사답사팀을 발족시켰다. 윤동주의 발자취가 어린 명동, 나아가 조선족역사의 “박물관” 격인 룡정, 연변지역에 산재한 민족의  유적지, 전적지에 대한 계획적인 답사를 취지로한 답사팀은 그동안 윤동주의 발자취 테마, 15만원탈취사건 테마, 청산리대첩을 테마로 비교적 규모가 있는 답사들을 펼쳤다.
조선족문학의 순문학지인 “도라지” 잡지사, 문화종합지 “문화시대” 등 잡지들과 손잡고 룡정•윤동주연구회 회원 특집을 마련했다. 
 
윤동주 인물연구서 “윤동주 코드”를 출간했다. “윤동주 코드”는 출간 후 호평을 이끌어내며 누구나 쉽게 접할수 있는 “백과사전처럼 읽는 윤동주생애”라고 일컬어지고있다.
윤동주 관련 서적, 민족인걸들을 조명한 서적 수백부를 시민들에게 무료증정했다.
 
2016년 5월 15일, 반일지사, 문사이며 윤동주의 숙명의 동반자인 송몽규를 기리는 행사 “송몽규를 기억하다”를 펼쳤다.
 
2016년 7월 15일 윤동주 시읊기 대회를 성황리에 펼쳤다.“‘별’을 노래하다- 제1회 윤동주 시 가영(歌咏)대회”라는 제명하에 연변각지의 문인, 유명 아나운서, 아나운서를 꿈꾸는 어린이, 용정.윤동주연구회 임직원, 용정시 시민, 학생등 100여명이 모여 윤동주의 대표적인 시편들을 랑송했다.   
 
2017년 12월 30일 윤동주 탄생99돐기념 및 용정.윤동주연구회 설립 3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80여세 고령의 로인으로부터 7세 꼬마에 이르기 까지 연변 각지에서 모여온 일반 시민 210여명이 참가했다. 
 
 
조글로미디어 리계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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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연변의 자산 겨레의 재부
채영춘
오늘(2월 16일)은 항일저항시인 윤동주가 일제감방에서 생을 마감한지 72돐이 되는 날이다. 또한 올해는 윤동주의 탄신 100돐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72년 전 일제감방에서 28세의 젊은 나이에 옥사한 시인의 육신은 고향 룡정에 묻혔어도 그 넋은 우리와 함께 하면서 무한한것을 깨우쳐주고있다.

누군가 “세익스피어는 시대가 없다”는 말로 위인이 창출한 문학정신의 영구불멸을 함축성있게 정리한바 있다. 민족수난기 겨례의 비극을 뼈저리게 아파하고 이를 극복할수 있는 힘이 자기에게 없음을 부끄러워한 윤동주의 순수한 정신, 반성의 자세는 일제식민지시대를 초월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겨례의 소중한 유산으로 자리매김하고있다. 세계 기타 민족의 명인들과 마찬가지로 윤동주는 연변의 자산임과 동시에 겨레의 공동한 문화재부로서 그가 부각시킨 불멸의 정신적 유산은 지역을 넘어  민족과 나라, 더 나아가서 세계 평화애호인민에게 속한다.

고금중외에 자국의 력사문화명인을 초개처럼 대한 나라는 없는 줄로 알고있다. 자국인이 아니더라도 일단 자국운명에 적극적인 영향을 미쳤다면 결코 “홀대”하지 않고 자국력사에 기록돼온 사례는 많고도 많다.

몇년전 19세기 저명한 작가 고골리의 탄생 200주년에 즈음  하여 로씨야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 사이에 고골리의 나라귀속 문제를 두고 치렬한 론쟁이 벌어졌었다. 고골리가 우크라이나 에서 태여났고 우크라이나에서 생활했으니 당연히 우크라이나 작가라는것이 우크라이나측의 태도였고 고골리는 로씨야어로 집필하고 로씨야어로 사고하였으니 백퍼센트 로씨야작가라는게 로씨야측의 주장이였다. 구쏘련이 해체되기전에는 전혀 문제시 되지 않았던 이슈다. 결국은 두 나라에서 각자 자기“유산”으로 표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수 밖에 없었던것 같다.

고골리 나라귀속이 어떻게 변했던 그가 19세기 저명한 비판적사실주의 문학정초자로서의 세계적지위, 그와 관련된 지금까지의  문화콘텐츠내역은 변한게 없다.

윤동주도 가끔 나라귀속론란에 휩싸일때가 있다. 장장 150 여년이라는 중국조선족이민사에 대한 료해가 전무하거나 삐뚠시 각을 가진 일부 이방국학자들이 윤동주가 처했던 일제식민지 력사시기 민족수난의 생태를 도외시하면서 상식을 벗어난 이른 바 윤동주 “국적반환싸인” 헤프닝까지 벌리여 우리 나라 학자들 의 빈축을 샀던적까지 있다. “헤프닝”은 어디까지나 “헤프닝”일 뿐이지만 우리에게 은근히 시사하는바가 크다고 생각해본다.

“위인 치고 고립된 산정(山顶)은 드물다. 위인은 련산(连山)  의 정상이다.” 윤동주는 “고립된 산정”에서 우연하게 배출된 인물이 아니라 20세기초  룡정반일항쟁의 피어린 “련산”에서 솟아난 선각자의 한사람이라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윤동주에 대한 리해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패러다임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윤동주는 28년이라는 짧은 생애에서 21년을 룡정이라는 이 반일항쟁성지에 몸담고 반일계몽교육을 받으며 항일저항시인으로 부상되는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과정을 차례로 소화했다고 할수 있다. 룡정의 비장한 반일 넋이 윤동 주의 정신을 정화시켰고 시인의 지조와 사상적 뿌리가 고향룡정 에 내려지게 하였다. 어찌보면 일제의 감옥에서 옥사한 시인의 룡정회귀는  락엽귀근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겠는가?

윤동주는 룡정이 낳은 연변의 아들로서 숙명적으로 우리가 정중하게 대해야 할 위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윤동주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초급단계에 머물러있 다는 점이다. 윤동주 발견이 우리가 아닌 일본학자에 의해 지난 8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후 연변문단이 비로서 윤동주에 접근하기 시작했지만 어쩔수 없이 이방국 연구성과에 편중해온 것도 사실이다. 어찌됐던 이는 윤동주고향의 타이틀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수 없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 때 남의 “입양아”로 전락될수도 있음은 먼 일이 아닐것이다. 일부 이방인들이 벌린 “싸인” 촌극도 이같은 맥락에서 나오지 않았나싶다.

다행스러운것은 소설가 김혁선생이 3년전 대학교교수, 문인 들을 규합하여 룡정· 윤동주연구회를 발족시키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면서 늦은대로 윤동주연구가 본격적인 흐름을 타고있어 체면을 살리게 되였다. 윤동주살리기, 우리 정부의 힘이 보태 져야할 시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윤동주연구는 문학인들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따라서 조선족에게만 국한된 명인연구가 돼서도 안된다. 윤동주연구가 광범 한 조선족과 기타 민족, 나아가서 아세아 여러 나라 학자들의 폭넓은 관심, 동참, 성원과 이어졌을때만이 윤동주정신의 탈지역 세계화의 가치성이 증폭될수  있다.

올해는 윤동주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윤동주의 고향 룡정이 세계 윤동주연구의 구심점으로 돼야 함은 당연지사인줄 안다. 시인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동주연구작품활동, 연구포럼, 각종기념이벤트가 탄력을 입으며 윤동주생가기념관, 명동기념 관을 비롯한 룡정의 관련유적지건설이 세계적인 눈높이에서 재검토, 재기획, 재정리되면서 명실공히 정신적 품위가 돋보이고 문화적 향기가 그윽하며 새로운 비전이 꿈틀거리는 거창한 윤동주연구전시체험공간으로 재건되리라는 소망을 가져본다.

연변일보 2017-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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