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시의 씨앗은 시인의 몸 안에서 "무자각적"으로 싹터 자란다...
2017년 03월 14일 18시 48분  조회:2663  추천:0  작성자: 죽림
 

 

 

하남성 숭(嵩)현 구점(九店)향, 돌이 유명해 돌 이름이 붙여진 작은 산골마을 석장(石場)촌에서ㅡ


한 편의 시가 태어나기까지/이희정 





< 그러나 그 시의 씨앗은 시인의 몸 안에, 이른바 ‘무자각적 의식’ 부분 안에 숨어든다. 거기서 그 씨앗이 점점 자라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그때 물론 그 씨앗과는 다른 많은 시적 씨앗이 함께 자라는 수도 있다. 시인은 자기 몸 안에서 몇 편의 시가 동시에 자라나도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아까 어느 새벽에 느낀 죽음에 대한 시의 씨앗은 자꾸 자란다. 일어나 기지개 켜다가 고혈압으로 죽은 사람, 봄 내내 일한 남편의 몸보신을 시킨답시고 아내가 사온 산낙지의 다리가 목구멍에 붙어 기도를 막는 바람에 되레 죽어버린 남편, 군사통치 시절에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사람, 공사장 앞을 지나다가 골재가 머리 정수리에 떨어져 죽은 사람, 방금까지도 희희낙락 얘기를 나누다가 자기도 모른 심장병 때문에 숨이 억 막혀서 죽는 사람, 그뿐인가, 

온갖 고생고생 끝에 이제 아이들 대학도 다 졸업시키고 나서 살만하니 덜컥 암이 걸려 죽는 사람, 아흔 일곱을 사는 할머니 앞에 일흔 두 살 먹은 딸이 먼저 죽자 예순 살 먹은 며느리가 “아이고 똥오줌 받아내는 우리 어머니나 돌아가시지 고모가 돌아갔다”고 탄식하자 “아 제 년 제 명대로 살고 나는 내 명대로 사는데 너는 내가 그렇게 죽었으면 좋겠느냐”며 역정을 냈다는 결코 안 죽겠다는 사람, 또 요사이 나온『자살』이라는 책에서 보듯 각종 이유로 자살을 택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영원한 사랑을 위해 자살을 택해 죽은 사람, 불로장생을 위해 수많은 신하와 많은 국가예산을 들여 불로초를 캐러 보냈으나 끝내 죽은 진시황 같은 사람 등등에 대한 생각들이 자꾸 되고, 그 죽음 의식은 마침내 동물, 식물과 온갖 생물에까지 이어져 결국 죽음에 대한 철학적 담론이나 해석에까지 미친다. 그리고 그런 수많은 죽음들을 타인의 죽음이라고 생각했으나 어느 순간 나의 실존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될 때부터 그 인식의 성장속도는 급격히 빨라진다. 

또 우리가 어떤 이별을 보았다 하자. 마침 이시영 시인의「어떤 이별」이란 시가 있어 그것을 먼저 여기에 적는다. 


여름 한낮의 햇빛 속을 
맨 손의 한 여자가 울면서 길을 가고 있다 
저 적요의 뒷모습에 쏟아져 내리는 
한낮 여름의 강렬한 함성! 

여름 한낮의 햇빛의 그늘 속에서 
가방을 든 한 남자가 비스듬히 서서 
그 여자를 오래오래 바라보고 있다 

아, 사라지고 사라질 때까지 계속되는 
흰 길 위의 두 점의 가없는 펄럭임 


보다시피 이 시는 어떤 이별의 광경을 그 이유나 사정에 대한 시시콜콜한 천착이 없이 거시적이고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기본적 이별의 경험 뒤에 나의 생각은 더더욱 자란다. 그녀를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떠나보내면 더 서럽겠지, 소슬한 바람에 낙엽이 지는 날 보내는 것은 너무 고전적이니까 차라리 벚꽃 만발한 그 화려한 날 보내는 게 더 서럽겠지, 불치병에 걸린 걸 알리지 않고 떠나는 여인의 속내를 모르는 남자의 미칠 것 같은 마음에 천착해보는 게 났겠지, 산모퉁이를 기적소리와 함께 돌아서 떠나버린 여인 뒤의 철로에 주저앉아 그 많은 눈물로 주변에 무더기무더기 망초꽃을 피우거나 언약의 징표였던 구리반지를 구겨버리는 남자의 속마음에 대해 탐구해보는 게 났겠지… 회자정리라는 말이 있는데 그 관념의 실제를 겪는 자의 서러움과 고통에 대한 생각은 날로 자라서 시인은 실제로 삶에서 이별을 겪고 마는 경우까지 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한 편의 시가 바로 탄생하려는 순간이 온다. 한 편의 시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 씨앗의 자람이 며칠이 될 때도 있고 몇 년이 걸릴 때도 있다. 더구나 시의 씨앗은 우리의 의식 속에도 자라고 꿈같은 무의식 속에서도 자란다. 그 씨앗의 배경과 전경, 그 씨앗의 본질과 실존, 그 씨앗의 꿈과 현실, 그리고 씨앗의 형태의 구체성과 본질의 철학성에까지 미치도록 자란다. 
  
===================================================================================

 

쌀 빚을 탕감해달라고 관아에 바친다(呈分司乞?戶米·정분사걸견호미)

 

 

호젓한 집을 개울가 응달에 장만하여
메추라기와 작은 숲을 나눠 가졌는데
썰렁한 부엌에는 아침밥 지을 불이 꺼졌고
쓸쓸한 방아에는 새벽 서리만 들이친다.
초가삼간에는 빈 그릇만 달랑 걸려 있고
쌀알 한 톨은 값이 만금(萬金)이나 나간다.
낙엽 쌓인 사립문에 관리가 나타나자
삽살개는 짖어대며 흰 구름 속으로 달아난다.

幽棲寄在澗之陰(유서기재간지음)
分與??占一林(분여초료점일림)
冷落山廚朝火死(냉락산주조화사)
蕭條野確曉霜侵(소조야확효상침)
三椽小屋懸孤磬(삼연소옥현고경)
一粒長腰抵萬金(일립장요저만금)
落葉柴門官吏到(낙엽시문관리도)
仙尨走吠白雲深(선방주폐백운심)

 

―정초부(鄭樵夫·1714~1789)

 

 

가난뱅이 시인의 낭만적인 넋두리 시다. 영조 시대의 노비 시인 정초부의 초가집으로 쌀 빚을 갚으라고 아전들이 쳐들어왔다. 그에게는 갚을 쌀도 없었고 버틸 권력도 없었지만 다행히 시를 쓸 능력은 있었다. 며칠 굶은 궁상을 늘어놓아 빚을 갚을 처지가 못 됨을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메추라기와 산자락을 나눠 차지했다니 그의 삶은 메추라기처럼 미약해보이고, 삽살개가 짖어대며 흰 구름 속으로 달아났다고 하니 조금만 더 몰아세우면 그도 곧 영영 인간 세상을 버릴 것만 같다. 시를 아는 관리라면 연민의 정이 들어 그냥 되돌아갔으리라. 시는 때때로 논리가 정연한 문서보다도 더 강한 힘이 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330 윤동주 서울 하숙집 가보다... 2017-03-17 0 2522
329 시쓰기는 보석쟁이가 값진 다이아몬드를 세공하는것과 같다 2017-03-17 0 2546
328 윤동주의 시는 끝까지 한글 작품으로 남아있다... 2017-03-17 0 2819
327 윤동주의 친동생 윤일주도 시인이었다... 2017-03-16 0 3718
326 시비(詩碑)가 뭐길래 시비(是非)인거야... 2017-03-16 0 2856
325 한 편의 시에서 시의 1행이 주조행(主調行)이라 할수 있다... 2017-03-16 0 2600
324 윤동주 묘비에는 "詩人尹東柱之墓"라고 워낙 각인되여... 2017-03-16 0 3065
323 시인은 늘 령감의 메시지를 잡을줄 알아야... 2017-03-15 0 2694
322 시의 씨앗은 시인의 몸 안에서 "무자각적"으로 싹터 자란다... 2017-03-14 0 2663
321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이골이 나다"의 유래 2017-03-14 0 2232
320 일본 교토 윤동주 마지막 사진 찍은 자리에 詩碑 세우다... 2017-03-13 0 2739
319 시 한편이 태여나는것은 늘 울고 웃는 과정을 그려가는것... 2017-03-13 0 2407
318 있어야 할건 다 있고 없을건 없다는 "화개장터" 2017-03-12 0 2650
317 우리 고향 연변에도 "詩碑자연공원"을 조성해야... 2017-03-12 0 3046
316 일본 문화예술인들 윤동주를 기리다... 2017-03-12 0 4161
315 일본 한 신문사 부장이 윤동주의 "빼앗긴 시혼(詩魂)"다루다... 2017-03-12 0 2881
314 일본 녀류시인 50세부터 한글 배워 시를 번역하다... 2017-03-12 0 3071
313 일본인 = "윤동주 선배가 나와 같은 의자에서 공부했다니"... 2017-03-12 0 2750
312 일본의 중견 시인이 윤동주 시를 일본어로 완역하다... 2017-03-12 0 2974
311 일본 녀류시인 이바라키 노리코가 윤동주 시에 해설을 달다... 2017-03-12 0 2692
310 작문써클 선생님들께: - "실랑이" = "승강이" 2017-03-11 0 2478
309 조선어의 자멸의 길은 있다?... 없다!!!... 2017-03-11 0 3370
308 시는 짧음속에서 큰 이야기를 보여줘야... 2017-03-11 0 2037
307 독자들도 시를 보고 도망치고 있다... 2017-03-10 0 2603
306 시인들이 시가 싫어 도망치고 있다... 2017-03-10 0 2269
305 작문써클 선생님들께= 아름다운 순 우리말로 작문짓게 하기... 2017-03-08 1 2766
304 윤동주의 친구 문익환 목사도 시 "동주야"를 썼다... 2017-03-07 0 4549
303 청년문사 송몽규도 시를 썼다... 2017-03-07 0 2731
302 청년문사 송몽규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에 들다... 2017-03-07 0 3935
301 시인과 수석인은 이웃이다... 2017-03-07 0 2291
300 민족시인 윤동주를 연변 룡정 고향에서 모실수 있다는것은... 2017-03-07 0 2374
299 시는 생명의 황금빛이며 진솔한 삶의 몸부림이다... 2017-03-06 0 2527
298 시인은 죽기전 반항하면서 시를 써야... 2017-03-03 0 3180
297 시는 천년을 기다려서 터지는 샘물이여야... 2017-03-03 0 2374
296 시는 이미지 무덤이다... 2017-03-02 0 2744
295 시는 상식, 틀, 표준 등 따위가 깨질 때 탄생해야... 2017-03-01 0 2562
294 시 한수라도 마음속에 깊이 갈무리 해야 함은?!...ㅡ 2017-02-28 0 3408
293 작문써클선생님들께;우리와 다른 알고 넘어가야 할 "두음법칙" 2017-02-28 0 2740
292 시는 "빈 그릇"이다... 2017-02-28 0 2404
291 시문학도들이 알아야 할 시창작원리 12가락 2017-02-27 0 2537
‹처음  이전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