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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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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언어라는 무기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수 있다...
2017년 02월 18일 19시 01분  조회:2658  추천:0  작성자: 죽림
 

 

 

2월 14일(음력 1월 18일) 푸젠(福建, 복건)성 푸톈(莆田, 포전)시 쑹둥(松東)촌에서 1년에 한 번 개최되는 ‘맨발로 숯불 건너기(赤腳踩炭火)’ 행사가 개최됐다. 직경이 4m에 달하는 나무 더미에 불이 붙었고 맨발의 청년 및 장년들은 신상(神像)을 실은 나무 가마를 들고 불 속으로 뛰어들며 새해 좋은 날씨, 복, 평안 등을 기원했다. /신사넷/인만망 역



시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누가 써온 것인가? 그 기원을 찾아서. 
이승하(시인.중앙대 교수) 


시인은 말도 안 되는 것을 말하는 사람 

시인은 말도 안 되는 것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의사소통을 위한 말의 질서를 파괴하고 그 잔해 위에 새로운 말의 탑을 세우는 자, 
그의 이름은 시인입니다. 시인을 빨리 말하면 신이 되지만 신은 시인을 좋아지지 않을 겁니다. 
기도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세상을 꿈꾸는 족속이기 때문이니까요. 
다른 세상은 이데아입니다. 이상향에 대한 꿈은 낭만주의자들만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주의자도 상징주의자도 초현실주의자도 새롭게 만들보고자 하는 어떤 세상이 있습니다. 
꿈을 현실과 연결시키려는 이가 소설가라면 꿈을 그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기는 자가 시인입니다. 
제가 애송하는 시 2편의 한 부분씩을 인용합니다. 


창가의 벽이 피를 흘리고 
나의 방에서 어둠은 떠나지 않는다 
나의 눈이 폐허에 부딪치지 않는다면 
나의 눈은 어둠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으리라 
유일한 자유의 공간은 내 마음 속 깊은 곳 
그것은 죽음과 친숙한 공간 
혹은 도피의 공간 
(이곳에 살기 위하여)부분 오생근역 

귀기울여도 있는 것은 역시 바다와 나뿐. 
밀려왔다 밀려가는 무수한 물결 위에 무수한 밤이 왕래하나 
길은 항시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데도 없다. 
(바다)제1연 

앞의 것은 초현실주의 시를 쓴 폴 엘뤼아르의 작품인데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쓴 그의 대표작입니다. 벽이 피를 흘릴 
수는 없으므로 이 시에서 벽은 바람벽이나 장애물이 아니겠지요. 
관계의 단절일 수도 있지만 전쟁의 참화를 겪은 도시의 벽, 
핏자국이 남아 있는 벽, 단절의 벽, 닫힌 내면의 벽... 
다중의 해석이 가능합니다. 사람의 눈이 어둠 속을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폐허에 부딪칠 수는 없는데 시인은 그것을 가능케합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이 유일한 자유의 공간이었는데 
시절이 하 수상하여 죽음과 친숙한 공간, 혹은 도피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렇듯 시인은 사전적인 뜻을 무시하기도 하고 넘어서기도 하지요. 
뒤의 것은 (화사집)에 실려 있는 서정주의 작품입니다. 
일제의 수탈이 극에 다다랐을 때 쉬어진(바다)이니 만큼 제 1연의 마지막 행을 저는 시인이 내뱉은 비분강개한 말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몇편의 친일 작품으로 말미암아 시인은 친일 문인의 대표자로 
매도 되기도 했지만 좋은 작품까지 비판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길은 참으로 많지만 
식민지 치하인 이 땅에서는 길이 길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이 무엇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으므로 시인은 
이렇게 부르짖었던 것이겠지요. 

아-스스로히 푸르른 정열에 넘쳐 
둥그런 하늘을 이고 웅얼거리는 바다. 
바다듸 깊이 위에 
네 구멍 뚫린 피리를 불고...청년아. 
애비를 잊어버려, 
에미를 잊어버려, 
형제와 친척과 동무를 잊어버려, 
마지막 네 계집을 잊어버려, 

알래스카로 가라, 아니 아라비아로 가라, 
가라 아니 침몰하라. 침몰하라. 침몰하라! 
(바다)부분 

"청년아"하고 부른뒤에 그대와 관계가 있는 모든 이와 결별하고 
먼 곳으로 탈출하라고 하더니 침몰하락 마구 외칩니다. 
가는 도중에 침몰할지라도 일단 떠나라 외치는 
정신나간 자- 바로 시인입니다. 이런 외침이 시이기 때문에 세상은 그를 정신 나간자로 보지 않고 시인으로 봅니다. "네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잊어버려"라고 했다면 참 무미건조했을 터인데 
먼저 네 애비와 에미를, 형제와 친척과 동무를, "마지각 네 계집을 잊어버려"라고 권유합니다. 
시인은 이처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고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습니다. 말로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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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끝 
―정홍순(1964∼ )

구기자 꽃피는 억새 너울진 샘
저드래

담자색 꽃물이 흥건히 들어차
두레박으로 질러먹던

두멍 물 길어 채울 때마다
시퍼렇게 솟던 아버지

풀벌레 질금거리던 여름 홀랑
달빛 눈부시게 씻어 당긴 샘

 

 

석 질이나 차던 물길 돌아누워
먼저 간 식구들 생각에

 

물 끝은
늘 그리움을 상처내고 흐른다 


짧은 장마가 지났다. 햇빛에 환호작약하는 듯 매미울음 소리 자지러진다. 목이 바짝 마르다. 집에 넘쳐나던 생수가 다 떨어졌다. 이 염천에 무겁기 짝이 없는 생수를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5층으로 배달시키는 건 못할 짓이라 자제한 결과다. 수돗물이라도 마셔야겠다. 페트병에 든 ‘아리수’는 마시면서 수도꼭지에서 받아 마시는 건 왜 내키지 않는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물을 사 마셨다고…. 

‘저드래’는 시인의 고향인 충남 태안군에 있는 마을이다. 구기자 꽃피면 ‘담자색 꽃물이 흥건히 들어차’던 ‘억새 너울진 샘’은 시인에게 고향의 상징이다. 머나 가까우나 마을사람들이 ‘두레박으로 질러먹던’ 깊은 샘. 거기서 ‘풀벌레 질금거리던 여름’이면 달빛 아래 홀랑 벗고 몸을 씻었지. ‘두멍 물 길어 채울 때마다/시퍼렇게 솟던 아버지’, 그 샘은 시인의 혈기방장 젊은 아버지의 상징이기도 하다. 두멍은 물을 많이 담을 수 있는 큰 항아리로 수도가 귀하던 시절의 중요한 부엌세간이다. 지금은 생활의 멋을 아는 호사가의 집에서 부레옥잠을 띄우고 있을 테다. ‘석 질(세 길)이나 차던 물길’ 왜 돌아누웠을까? 그 물을 퍼서 두멍을 채우던 사람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리라. 아니면 무슨 용수로 다 빼가서 고갈된 것일까. 맑고 깊은 샘은 사라지고, 생명의 물 찰랑거리던 아버지도 어머니도 가셨다. 산천이라도 의구하면 지금은 없는 사람들이 상처 없이 그리울라나. ‘물 끝’, 바닥난 샘에 방울방울 샘물인 듯 눈물이 흐르고, 화자의 마음에 그리움이 아릿아릿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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