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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호들의 "참회록"
2018년 12월 24일 00시 29분  조회:2781  추천:0  작성자: 죽림

못다 쓴 참회록

 

「참회록」하면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루소의『참회록』이다.
그 다음으로 다시 생각나는 것은 루소의 『참회록』과 함께
세계의 3대「참회록」이라고 불리는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의 『나의 참회』
그리고 성 어거스틴의 『참회록』이 있다.
윤동주 시인은 그의 유고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참회록」이란 시(詩)를 남겼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 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래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러운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바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 나온다.

 

 

  윤동주 시인의 시(詩)로서의『참회록』이다. 세계3대 「참회록」과는 다른 장르 이긴 하지만 간결하고 슬픈「참회록」이 아닌가. 가톨릭에서 하는 기도문 중에는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는 자기 성찰의 기도문이 있다.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한국인으로서 받아드리기엔 조금 낯간지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이 또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종의 집단적 기도로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주술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참회의 형식이다. 비록‘무엇이 내 탓인지’는 알수 없지만 이 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대범함이 나를 비롯한 한국인에게는 조금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이가 들면 조금은 마음이 약해져서 가끔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자신으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들은 없는가, 점검해 보기도 한다는데,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도 늘그막에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실은 한국인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격상 민망하고 쑥 스럽다는 생각 때문에 사과하거나 반성의 골든타임을 놓이고 말았기 때문이라고 함이 옳을 것 같다. 임종을 앞두고 눈물을 흘리며 과거를 후회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대단히 미안한 일이고,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사후세계에 간다면 ‘지난 생의 잘못을 통렬히 반성했으니 지난 잘못을 더 거론하지 맙시다.’하는 일종의 보험은 아닌가 하는 불경스런 생각도 해 본다.

 

 

  명색이 문학도(文學徒)라면서 누구의 것이 되었던 그 유명하다는「참회록」한 편 읽어보지 않았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부끄럽기 한이 없다. 한 동안 마음의 갈길을 잃어 불면의 밤을 지새우면서도 한 줄의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전전 긍긍하다가 느닷없이 이 새벽에 「참회록」이라는 화두에 침몰하고 말았다. 내가 만약에‘참회록’을 쓴다면 무엇을 써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침몰해 가는 황혼이라고 해도 자신의 발가벗은 과거를 글로 남기고 죽는 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 나 같은 필부가 언감생심 어찌 진솔한 마음으로 이른바‘참회록’을 남길 수 있겠는가? 또 숨 막히도록 답답해진다. 70평생을 살아오면서 몸으로, 또는 생각으로, 또 때로는 어줍잖은 말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프게 했는가를 어찌 필설로 다 할 수 있을까? 나로 인해 차마 말은 하지 못하면서 불편(不便)해 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무엇으로 사죄해야 할까? 그 동안의 독서 경험으로 보아 많은 사람들이 시작은 참회하는 글로 시작 해 놓고 그 마지막은 온통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는 소위‘회고록’이니‘자서전’이니 하는 이름이 되고 마는 경우를 보아 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떤 호색한(好色漢)은 수절(守節)하는 과부를 훼절(毁節)하게 해 놓고‘밤마다 외로워하는 중생을 어여삐 여겨 낙원(樂園)을 보여 줬다.’고 큰 소리치는 세상이니 어찌 조심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차라리 옛 어른들의 말을 빌려‘아서라, 네 감히 참회록 이라니 개가 웃을 일’이 아니더냐고 스스로를 질타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해서 이 여름 방학에는 세계3대 「회고록」을 읽어야 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대신하기로 정하고, 내가 쓸 ‘나의 인생 참회록’은 나 하늘이 불러 떠나는 날에 마지막 쓰는 글로 남겨두기로 했다.

 

 더불어 이제부터라도 다른 이의 눈에 티끌을 보지 않고 내 눈에 들보를 찾는 일에 더 이상 게으르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하겠다. ‘잘못된 모든 것들은 남의 탓이요 잘된 모든 것들은 내 업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는 진솔한 글을 쓸 수가 없다. 함께 하면 가볍고 즐거운 일을 내 몸이 좀 피곤하다고 해서 남에게 미루는 일은 자신만 안녕하기를 바라는 이기주의다.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은 지나친 독선이다. 옛 어른들은 ‘백짓장도 함께 들면 났다.’고 가르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어렵지 않은 일들인데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가? 그렇게 쉬운 일들을 알면서 행(行)하지 못한 스스로는 더 나쁜 죄인(罪人)임을 이 나이가 되어서 깨닫는다. 그러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 그런 깨달음을 스스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슴속에 받아 드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소귀에 경 읽기에 불과 하다.’적어도 대학에서 배운 것들 만큼은 작은 것들부터 실천해 나가는 것이 배우는 자의 태도이고 또 도리라고 믿는다. 그저 제멋에 겨워 여기 온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배운 대로 행(行)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다른 이에게 관대하고 스스로에게는 엄 하라.’는 가르침 때문에 그 다른 이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하나를 위해 둘을 잃는 것’임을 마음에 새겨둬야 겠다. 다른 이를 불편하게 해서 함께 있을 자격이 없다고 물러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고 현실도피의 비겁한 행동이라는 것도 마음에 간직할 일이다. 스스로 정한 규범을 잘 지켜 냈다는 판단이 섰을 때 비로소 나만의「참회록」을 쓸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언제가 될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때가 되면 내 모든 것, 부끄러운 짐들을 벗어던진 「삶의 참회록」을 남길 만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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