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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오늘도 많이 떨어지고...
2017년 04월 18일 16시 54분  조회:2164  추천:0  작성자: 죽림




 


 

2. 시는 내 인생의 길이었다


네게 시란 무엇이었니?
윤미야, 너는 시를 좋아하고, 시도 자주 읽고, 또 시를 쓰고 있잖니. 그런데 시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니까 어떻게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지. 그러면 왜 시를 가까이 하는지, 시를 가까이 하면 시가 네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 말해 볼래.
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그러면 우리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는 내 시 있잖니.
몇 행 안 되는 짧은 시니까 그 시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그래, 「어떤 마을」이라는 시말이야.
이 시의 첫 행은 이렇게 시작하지.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

이 시의 첫 행을 읽고 학생들이 이런 질문을 한 대. 
“선생님,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 거 하고 별들이 많이 뜬 거 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요?”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을 해 주어야 할까.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무슨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니?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무 관계가 없어. 그렇잖니?
사람들이 착하게 안 산다고 별이 안 뜨는 건 아니잖아. 그럼, 이 시는 잘못 쓴 시일까?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별들이 많이 뜬 걸 보고 왜 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착하게 사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이 시는 이렇게 이어지고 있지.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물바가지에 떠 담던 접동새 소리 별 그림자
그 물로 쌀을 씻어 밥 짓는 냄새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

사람들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
  
이 시를 쓰게 된 곳은 박달재 밑에 사는 친구네 집이었어. 산골동네에 와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판화가 이철수라는 친구네 집을 찾아갔는데 밤에 잠시 마당에 나와서 하늘을 보았더니 별들이 그렇게 많이 떠 있을 수 없었어. 우리가 어린 시절에 사랑했던 모든 별들이 다 모여 있었어. 하얗게 뿌려진 듯한 별밭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별들을 보다가 문득 내가 사는 도시 하늘의 별들은 왜 보이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그 생각을 처음 한 것은 우리 딸이 숙제를 해야한다고 해서 함께 별자리를 찾으러 나갔다가 도시를 떠나지 못한 희미한 별 몇 개만 깜빡이는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였어. 
윤미야, 우리가 사는 도시 하늘의 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별들이 도시의 하늘을 떠나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물론 이건 문학적 상상이야. 
너도 같이 한번 생각해 볼래? 
만약 별들이 도시의 하늘을 하나씩 둘씩 떠난 것이라면 별들은 왜 도시의 하늘을 떠나고 있는 것일까.
밤이면 머리 바로 위에 메밀꽃처럼 돋아나던 별들. 별자리도 선명해 자로 금을 긋듯이 눈으로 이어지게 하던 그 많은 별들은 언제부터 이 도시의 하늘을 떠나기 시작한 것일까.
우리가 우리 일에만 얽매여 사는 동안 옛날처럼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별들은 견딜 수 없었던 것일까. 사람들이 모두 바쁘다는 이유로 제 발 밑만 쳐다보며 사는 동안, 그리하여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을 잊어 가는 동안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을 별들도 뼈저리게 느꼈던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별들도 사람들이 더 이상 자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던 것은 아닐까.
침침한 등불이 켜 있는 방보다는 들마루에 앉아 있기를 좋아하거나 멍석을 깔고 마당에 나와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수시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시절,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하나씩 사랑하는 별을 간직했었지. 먼길을 가면서 별을 보았고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며 별을 올려다보곤 했어. 별 아래서 가슴을 졸이며 사랑을 했고 별 아래서 눈물로 가슴을 씻으며 수 없는 맹세를 하기도 했어.
사람들은 오만하지 않았고 제 생각을 밤이면 별에게 되물어 보면서 마음을 다지곤 했었단다. 별은 희망이었고 믿음이었어. 별은 어머니의 그 어머니의 어머니 적 아리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지니고 있었고 별 그 자체로서 늘 출렁이는 신화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어. 수많은 사람들이 그 별을 보며 인생의 가파른 고개를 넘었지.
그렇게 자연과 하나 되고 이웃과 하나 되어 살던 마을을 떠나 도시로 도시로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조금씩 별을 잊어 갔던 거야. 별을 바라볼 마당이 없는 집에서 살아야 했어. 별을 바라볼 창문이 없는 집에 살아야 했어. 사는 일에 뒤엉켜 아우성치는 소리가 가득한 곳에 살아야 했고 우울한 얼굴로 내뱉는 한숨 소리, 고통받는 많은 이들의 비명 소리 속에서 살아야 했어.
그때부터였을까. 우리들의 우울한 그림자와 한숨, 우리들의 고통에 찬 소리와 나날의 절망, 이런 것들이 별과 우리들 사이의 허공을 가득 메우면서 별과의 거리를 멀어지게 한 것은.
그것 때문만도 아닐 거야.
사람들이 모두 제 사는 일에 급하여 남을 돌아다볼 여유가 없게 되었을 때, 우리 이웃의 아픔과 고통 따위는 어찌해 볼 도리 없다고 결정해 버렸을 때, 별들은 이 땅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을 거야. 자기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과 자기 이웃의 고통받는 모습조차도 외면한 채, 제대로 쳐다보려 하지 않는데 밤하늘의 별 따위를 쳐다볼 여유가 어디 있겠어.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이 저마다 하나씩의 등불을 들고 있지 않니. 
지식의 등불, 욕망의 등불, 오만의 등불, 과학의 등불, 논리의 등불, 그런 등불 말이야. 이런 등불을 하나씩 들고 있는데 구태여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꺼질 듯 꺼질 듯 깜빡이며 밤을 지샐 필요가 없어졌을 거야.
더 이상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도시의 하늘을 떠난 별들은 모두 어디에 가 있을까. 어둠 속에서 가슴 졸이며 산을 넘어오던 날 나는 보았어. 우리가 길을 잃고 두려워 떨면서 하늘을 올려다볼 때 별들은 거기 기다리고 있는 거야. 두려움 속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말라고 다정하게 이야기하듯 머리 위에 몰려와 있었어.
오순도순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 마을 위에 많은 별들이 모여 있었어. 일찍 뜬 별 그림자가 어리는 맑은 물로 쌀을 씻는 동안 접동새 우는 소리가 들리던 그런 마을에 뜨던 별이었어. 서로 도와가며 더불어 함께 살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동네 어귀 느티나무 위에서 아직 돌아올지 않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떠 있었어. 그 별은 가난하던 시절 저녁밥 짓는 연기가 오르던 굴뚝 위에 내려와 밥티처럼 따스하게 반짝이던 별이었어. 별은 우리가 그들을 버리지 않는 한 결코 그들이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어. 그 날 밤 나는 별을 바라보며 시 한 편을 썼단다.

윤미야 어쩌면 시는 잃어버린 별을 찾아 나서는 일인지도 몰라. 우리를 떠난 별들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 다시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착한 마음과 별 하나에 따뜻한 얼굴을 심어 가는 일인지도 몰라. 시는 그러면 현실을 떠난 비현실적인 상상 속의 세계로 돌아가자는 것일까. 아니야, 시를 가까이 하면서 우리가 잊고 있는 아름다운 자기의 별 하나씩 간직하며 살자는 거야.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고 살자는 거야. 자연과 사람과 착한 심성이 하나로 어우러진 삶을 되찾자는 거야.
우리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되찾게 해 주는 게 시라고 나는 생각해. 아름다운 마음 따뜻한 심성을 되찾기 위해서 시를 읽고 감상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정작 교실에서는 한 편의 시를 앞에 놓고 거기서 어떤 문학지식을 배워야 할 것인가를 더 많이 고민하고 있어. 
이 시만 해도 시에 들어 있는 심상을 찾는 일에 더 주안점을 두고 시를 배우고 감상하고 있어. 정작 시를 쓴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시에는 시각적 심상, 청각적 심상, 후각적 심상, 촉각적 심상이 모두 나 들어 있고 거기다가 공감각적 심상으로 표현한 곳도 두 군데나 있다는 거야. 그리고 이건 너무 중요해서 국어시험에 반드시 출제가 되는 거야. 그러다 보니 정작 내가 이 시를 통해서 이야기하려던 건 뒤로 밀려나고 심상과 관련된 문학지식만 강조하게 되는 거야.
윤미야, 문학지식은 몰라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 시에서 시인이 이야기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 문학지식을 공부하는 일보다 먼저라는 걸 잊지 말라는 거야. 

시를 통해 아름다운 마음을 되찾게 되는 것 이게 우리가 시를 가까이 하는 첫 번째 이유라면 우리가 시를 가까이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무얼까.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에게 시는 무엇이었나요?’ 하고 물으면 사람들마다 다 대답이 달라. 어떤 사람은 거울이라고 대답하고 어떤 사람은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하고, 깃발이나 나팔소리 같은 것이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장식품 같다고 대답하기도 하고, 등대와 같은 것이었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어.
거울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시를 읽으면서 늘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지금 어떤 모습 어떤 얼굴로 살고 있는 가를 비추어 보게 되기 때문에 거울이라는 거야. 친한 친구 같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에게도 못하는 말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는 숨김없이 다 털어놓고 말하는 것처럼 시를 쓸 때는 가슴 깊은 곳에 있는 것들을 다 솔직하게 이야기하게 되기 때문에 시는 친한 친구 같다는 거야. 깃발이나 나팔소리 같다고 하는 사람은 자기가 살면서 지쳐 쓰러지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며 앞으로 나아가라고 울리는 나팔소리 같은 것, 내 앞에서 나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워 주는 깃발 같은 것이 시라고 말해.  
그런가 하면 시를 모르면 교양 있는 사람들 속에 낄 수 없으므로 가까이 하긴 하지만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보조적인 방편이지 시가 자기의 전부일수는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어. 그런 사람들에게 시는 목거리나 장식품 옷 위에 걸치는 숄과 같은 것으로 느껴지겠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반대로 시가 곧 자신이요, 자신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어.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과 같은 것이라고 믿는 거지. “내 시 여기서 더 이상 필요 없어 나 또한 필요 없게 되었다.”며 자살한 쎄르게이 예쎄닌 같은 시인도 그랬을 거야. 
등대와 같다고 말한 사람은 인생의 가없이 넓은 밤바다 한복판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을 때 한 줄기 등대 불빛처럼 자기 인생의 불을 밝혀 준 것이 시였다고 말하지. 
윤미야, 네게 시는 무엇이었니?
네겐 샘물과 같은 것이었을까?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누구인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비쳐보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시는 우리에게 참 고마운 존재야. 거기다 내 몸과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해주는 샘물과 같다면 참 좋겠지. 그래서 늘 깊이 있게 생각하고, 차분하고 사려 깊게 행동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도 얼마나 기쁜 일이냐.
내게 시는 길과 같은 것이었어. 
아니 길이었어. 
내가 내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마다 시와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시가 가라고 하는 대로 지금까지 살아왔어. 시는 내게도 등대 같고 나침반 같고 이정표 같은 것이었어. 나는 시가 가라는 대로 선택하고 살아온 삶을 다행스럽게 생각해.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길이었다고 해도 가치 있는 길이었어.
내가 오랜 전에 학교에서 쫓겨나 거리의 교사로 살던 시절이 있었어. 무슨 일을 어떻게 시작 해야할지,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힘을 모아야할지, 무엇보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던 시절이 있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가야 할 것인가를 모여서 논의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좋은 의견을 내 놓아도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답답해 하다가 우연히 창 밖을 내다보게 되었어. 창 밖 옆 건물 벽에 담쟁이 잎이 가득 붙어 있는 게 보였어.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건물의 벽을 파랗게 기어오르고 있는 담쟁이 잎들을 바라보다가 저 벽에는 물 한 방울 마실 곳이 없고 뿌리를 내릴 흙도 없는데 저런 담벼락에서 처음 살도록 던져진 담쟁이 씨앗은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 그렇지만 저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른 담쟁이 잎들과 함께 손을 잡고 벽을 기어올라간 담쟁이를 생각했지. 숲과 비옥한 대지에서 자라는 다른 식물들보다 자라는 속도도 느리고 초조했겠지만 서두르지 않고 여럿이 함께 힘을 합해 어려움을 헤쳐나간 담쟁이에 대한 생각들이 미치자 나는 몰래 연필로 회의 서류 뒤에다 시를 써나갔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담쟁이」전문

나는 절망의 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꾸어 놓는 담쟁이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서두르지 말자.’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해결하자’ ‘나 혼자 천 발짝을 앞서가지 말고 천 명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로 일하자’ 이런 생각을 이 시는 가르쳐 주었어. 그리고 이 시가 가르쳐 주는 삶의 길을 걸었고 10년의 해직교사 시절을 헤쳐 나올 수 있었어.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터넷에 이 시가 떠돌아다니기 시작하는 거야. 사람들이 자기가 읽고 나서 다른 친구들에게 이 시를 보내기도 하고 e카드로 예쁘게 만들어 보내기도 하고 자기 홈페이지 첫 화면에 올려놓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 내게 용기를 주고 나를 꿋꿋한 걸음으로 걸어가게 한 시가 이제는 나를 떠나 다른 이들이 저마다 위안을 받고 자기가 아끼는 사람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기 위해 이 시를 보내고 있는 거야. 몇 해 전에는 고등학교 참고서를 만드는 회사에서 전화가 왔어. 이 시를 참고서에 싣고 싶다는 거야. 그래서 당연히 국어참고서에 시 읽기 자료로 싣겠다는 줄 알았거든 그랬더니 그게 아니야. 과학, 수학, 영어 이런 여러 과목 교재의 첫 쪽에 이 시를 싣겠다는 거야. 부교재를 만드는 사람들이 정말 어렵고 힘든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읽히고 싶었던 가봐. 야후나 엠파스에 들어가서 검색어에다 ‘담쟁이’라고 써넣고 치면 ‘담쟁이는 포도나무과에 속하는 반양지 식물로.....’ 이런 생물학적 설명보다 이 시가 먼저 뜨고 있어. 
시는 내 인생의 길이 되고 내 삶에 힘을 주고 나를 떠나 다른 이들에게도 위안과 용기를 주는 것임을 담쟁이는 잘 보여주고 있어.
하나만 더 예를 들게. 해직생활을 끝내고 학교로 되돌아가게 되었을 무렵 나는 우리나라 고건축의 추녀를 보다가 ‘부드러운 직선’ 이라는 시어를 만나게 되었어. 우리나라 궁궐이나 사원 건축의 추녀는 중국이나 일본의 고건축과 다르게 추녀의 끝이 부채살처럼 펴진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지. 끝이 부드럽게 휘어 올라간 모습의 건축미를 일본과 중국의 건축은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거든.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다가 그 추녀의 아름다움이 휘어진 나무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곧게 다듬은 직선의 나무들을 촘촘히 잇닿아 가며 만든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 곧게 다듬은 나무처럼 자기 삶의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부드럽고 유연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자세로 문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   

높은 구름이 지나가는 쪽빛 하늘 아래
사뿐히 추켜세운 추녀를 보라 한다
뒷산의 너그러운 능선과 조화를 이룬
지붕의 부드러운 선을 보라 한다
어깨를 두드리며 그는 내게
이제 다시 부드러워지라 한다
몇 발짝 물러서서 흐르듯 이어지는 처마를 보며
나도 웃음으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저 유려한 곡선의 집 한 채가
곧게 다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본다
휘어지지 않는 정신들이
있어야 할 곳마다 자리잡아
지붕을 받치고 있는 걸 본다
사철 푸른 홍송 숲에 묻혀 모나지 않게
담백하게 뒷산 품에 들어 잇는 절 집이
굽은 나무로 지어져 있지 않음을 본다
한 생애를 곧게 산 나무의 직선이 모여
가장 부드러운 자태로 앉아 있는
           ---「부드러운 직선」전문

  ‘부드러운 직선’ 이 말은 얼핏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말 같기도 해. 부드러우면 곡선이지 어떻게 직선이 될 수 있겠어. 그러나 그게 가능할 수 있는 게 또 시라는 거야.
너도 배운 적 있지?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그래 유치환 시인의 시 「깃발」이야. 멀리서 깃발이 바람에 마구 나부끼며 휘날리고 있는 장면을 그린 건데, 아우성치는 것처럼 휘날리지만 멀리서 보고 있으니까 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을 이렇게 표현한 거 쟎니. 이런 표현을 우리는 <모순어법>이라고 하지. 김영랑 시인의 쓴 ‘찬란한 슬픔’과 같은 시구절도 마찬가지야. 슬픔이 어떻게 찬란할 수 있겠니. 그러나 모란꽃처럼 화사하고 찬란한 꽃이 지는 아름답고도 슬픈 모습을 이렇게 앞뒤가 서로 모순되게 표현하여 그 느낌을 더 극대화하는 것 그런 것이 바로 시가 할 수 있는 독특한 표현양식이야. 
어쨌든 나는 이 시를 쓰면서 이런 삶의 자세로 인생을 살기로 했단다. 시가 매 순간 순간 기로에 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할 때마다 대답이 되어 주고 길이 되어 준 것을 나는 고맙게 생각한단다. 그리고 이렇게 시를 쓰며 살게 된 것을 나는 고맙게 생각한단다. 
윤미야, 너도 네 가 쓰는 시가 네게 샘물이 되기도 하고 거울이 되기도 하고 등대가 되기도 하고 길이 되기도 하면서 너와 함께 흘러가게 되길 바란다. 시가 너를 이끌어 주고, 시가 가자는 대로 함께 걸어간 삶에서 우러난 네 시가 다른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위안과 기쁨을 주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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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울 수 없는 노래
―4·19혁명 21주년 기념시
김정환 (1954∼ )

불현듯, 미친듯이
솟아나는 이름들은 있다
빗속에서 포장도로 위에서
온몸이 젖은 채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던 시절
모든 것은 사랑이라고 했다
모든 것은 죽음이라고 했다
모든 것은 부활이라고 했다
불러도 외쳐 불러도
그것은 떠오르지 않는 이미 옛날
그러나 불현듯, 어느 날 갑자기
미친 듯이 내 가슴에 불을 지르는
그리움은 있다 빗속에서도 활활 솟구쳐 오르는
가슴에 치미는 이름들은 있다
그들은 함성이 되어 불탄다
불탄다, 불탄다, 불탄다, 불탄다.
사라져버린
그들의 노래는 아직도 있다
그들의 뜨거움은 아직도 있다
그대 눈물빛에, 뜨거움 치미는 목젖에

 

대한민국의 첫 시민혁명인 4·19혁명을 소재로 삼은 최고의 시일 것이다. 이 시가 발표된 게 1981년, ‘그것은 떠오르지 않는 이미 옛날’, 그때 젊은이에게도 자꾸 잊히고 있었으니, 지금 젊은이들에게는 거의 일제강점기 일만큼이나 멀고 관심도 없을 4·19혁명은 3·1운동과 더불어 대한민국을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정신적 밑둥이다.(3·1운동-민족주의, 4·19혁명-민주주의).

이 시에서 화자는 그때의 함성과 죽은 이들의 젊은 이름들을 안간힘을 다해 망각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 기억의 힘으로 당대의 불의(5·18민주화운동 한 해 뒤다!)와 싸우려 노력한다. 기억은 역사를 밀치고 이끄는 힘이다.

뜨겁게 젊은 시! 절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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